전 그때 대학2학년생이었고 한창 TRPG와 일본어로 된 게임(19금과 건담에 포켓몬)에 빠져살았습니다.

고2~ 고3 때부터 일본어로된 인터넷에 게제된 관능소설을 졸렬한 인터넷 번역기 하나 꼬나들고 열심히 읽고 있었죠. 당시엔 라이트노벨 개념도 거의 없었지만 대다수의 문고판 소설이나 관능 소설류가 실상 비슷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에로라이트노벨 장르도 생기더군요. 대표적으로 2차원문고. 아주 초창기부터 e북 사업에 열심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릴때부터 SF, 판타지나 TRPG 같은 부류를 접하고 살다보니 자연스레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어했습니다. 당연히 야한것도 좋아하니 결론은 판타지 야설.

전 어머니랑 대화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제가 판타지물 좋아하는것도 잘 알고 계셨고 프라모델 모으는 것도 집이 좁아서 SD건담같이 작은 것만 모으는게 살짝 안쓰럽다고 하신적도 있었죠.(하지만 박스는 진저리를 치며 시간날때마다 치우려고 하셨...) 어느날인가 대화하다가 제가 문득 이야길 꺼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야설 써보고 싶다 한마디였는데 어머니의 반응은

"그래 뭐든 한번 써봐야지. 원고지 하나 사줄테니 열심히 써봐라"

진짜로 200자 원고지를 사주셨습니다. 어머니도 처녀적엔 문학소녀기질이 있으셔서 문학이나 여타 창작물에 호의적인 분이긴 했는데 원고지까지 사주시니 참 감격했습니다. 그래 사실 동성애자들의 사랑법을 알려준 사람은 어머니였군요. 그것도 초6때...

지금도 죄스러운건 그 원고지 3분의 1도 못채우고 어디론가 증발했다는 것과, 이제는 아무리 대하소설 분량으로 써도 보여드릴수가 없다는 거군요.

저와 어머니는 나이차가 꽤 납니다. 어머니 47년 저 84년해서 38세에 늦게낳은 아들이죠. 그런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취미에 이토록 호의적인 어머니가 또 계셨을까 싶어서 지금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있습니다. 뭔가 완성된 물건을 내놓지 못한게 언제나 죄스럽습니다. 물론 쓰고싶은 장르가 장르인지라 이걸로 돈벌겠다는 생각은 어디 일본에 아는사람 하나두고 계좌나 틀고 나서나 생각해야겠죠. 한마디로 무리!?

지금은 배경한번 끝내주게도 미아리 텍사스 뒤의 뒷골목에서 밤을 지새며 집세 걱정 하고 사는 신세입니다. 그래도 꼭 뭔가하나 써올려보고 싶네요. 꼭 어른의 장르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모아놓은 TRPG 자료들을 보면서 창작욕구는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데 손가락은 게으르니 지금도 어머니 뵐 낯이 없어요.

본의 아니게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고있는 근황이지만 무언가 써보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조만간 취향타는 물건이나 한편 써올려볼까 합니다. 물론 잡혀갈 물건은 아닐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