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지났군요. 배경은 인천입니다. 지금 보니 귀엽네요.
문장은 어설프지만 풋풋하고 진심이 느껴지는 듯 ^^; 지금은 이런거 못 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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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거 난 나가본 적 없어.”
“나도 없어 임마.“
“니가 적어도 전교 부회장이면 너 밀어준 친구 살리는 건 의무 아니야?”
“아니야.”
“개색...”
2006년 유월 즈음.
학생회가 새로 개편되고 우리에겐 난데없는 비보가 전해져왔는데, ‘xx고와 oo여고는 나름 뿌리 있는 연합이니까 대통을 이어서 네놈들이 알아서 친해지세요!’하는 선배님들의 말씀이 그것이었다. 친해지는 수단은 전혀 낯 모르는 아낙네들과 무작정 좌담회를 가지는 것. 그런데 전혀 숙맥인데다가, 꽤나 수구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 소식에 위축되기도 위축되었을뿐더러,
‘학생인데 왜 여자를 만나서 히히덕거려야 해?’하며 되려 반감을 가지고 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태초부터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잠시 멈춰주는 법이 없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나는 어느 새 쭈뼛대며 다른 학생회 임원들과 같이 그놈의 좌담회 장소로... 위축된건 나 뿐이 아니었는지 모두가 흡사 갈대가 흐느적 대는 양 걸어갔던 것 같다. 우리는 ㅁㅁ역 근처에 있는 게임 센터에 들러서 철권을 하며 긴장을 풀었다.
“야, 걔네들 데리고 그냥 여기서 시간 때우면 안되냐? 아주 독서실에서 좌담회하는 건 어떠냐?”하고 반응 좋은 헛소리 조금 지껄이면서.
어떻게 하면 쪽을 덜 팔릴까. 그냥 구석진 자리에서 소다수나 처먹으면 되겠지- 하며 연신 조이스틱만 부러져라 돌렸던 게 사실이며 괜히 죄 없는 교육부 장관과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욕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 삼십 분 지나서 그녀들이 왔다. 중간고사 첫날의 1교시를 맞는 듯 우리는 실로 긴장했다. 부회장의 뒤로 자연스럽게 삼각형을 이루며 서고 있었다는 게 그걸 증명했다.
내가 말했다. “ㅇㅇ야, 넌 이 xx고의 차기 헤드니까 어떻게 좀 해봐.”
“그래 맞어..”
파도처럼 모두가 “널 믿는다.”
빌어먹을, 이거 꼭 해야되냐?
그 때 어깨를 드러낸 옷을 입은 누나가 우리를 손짓해 불렀다.
“너희가 xx고 1학년이니?”
헉. 예쁘시네. 우리 대신에 ㅇㅇ가 답해줬다.
“예. 맞는데요.”
“저쪽에 있는 애들이 1학년 애들인데-”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빼꼼히...
내 감상으론 예쁘다라고 표현하기 보단 총기 있는 생김새들이었다.
“기왕이면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래. 이제부턴 정말 좌담회를 하는거구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뭐 사회에서의 미팅도 약간 이런 의미일테니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자. 우리는 ㅁㅁ역 앞에 운영하는 보드 게임방에서 좌담회를 하기로 결정했고, 그러니까 내 인생 첫 미팅(?) 첫 코스는 보드 게임방이다.
모든 것은 선배님들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 4명이 팀을 이루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여학생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접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거니와 시트에 앉는다는 것은 정말 바늘이 시트에 있는 듯이 주저했다. 그러다가 ㅁㅁ 녀석과 우물쭈물하다가 여학생 3명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좀 기분 나쁘게도 부회장 ㅇㅇ도 세트로 딸려왔다.
드디어는 여학생들과 한 자리에 앉게 되었구나.
약간의 정적. 테이블 내에서 가장 먼저 말을 한 것은 놀랍게도 나였다.
“ㅇㅇ고 학생회입니다. 이런 자리 처음이에요.”
“우리도 처음이에요.”
“그런데 정말 우리랑 동갑들 맞아요?”
“...”
“다들 나이 들어 보이는데...”
특히나 나를 겨냥해서 말한거 아냐, 이것들?!
자리에 모두가 앉자 학생회의 전통 대로 우리는 모두 일어나 서로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막상 분위기에 녹아들자 의외로 할 만 한 것이었다.
가운데 있던 눈매가 진한 여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동갑인데 반말 쓰면서 지내자고. 우리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곧바로 서로 반말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존댓말을 쓸까 어쩌다 하다가 좀 지나서야 반말을 썼는데, 반말을 막상 시작하고 나니 정말 앞에 대치한 3명이 그냥 별거 아니게 느껴지더라.
첫 게임은 젠거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벽돌 빼내기 게임이었는데, 정말 끝이 더럽게 안 보였다. 그래서 두 번째 게임으로는 뭔 요상한 카드 게임을 가져왔었는데... 이 빌어먹을 것! 기억하기로는 비슷한 카드가 나오면 가운데 있는 종을 쳐대고 카드를 가져가는 형식의 게임이었는데, 나는 이 게임을 하며 동네북 신세가 되었다. 했다 하면 꼴찌...
“아 젠장 좀 봐주라.”랄지
“이런 씨앙!”이랄지
“솔직히 그런거 쪽팔리잖아!”같은 말들을 무지하게 쏟아냈었다.
상황이 잘 맞물려서 그런지 평소보다 입담이 좋았던 것 같다. 가운데 좌석에 앉았던 눈매 진한 여자애가 나를 작살내는데 힘쓴 일등 공신이었는데, 걔는 내가 웃겼는지 무지하게 웃더라. 나는 계속 져서 슬펐는데 말야. 얘는 뭐 하던 애였더라... 아, 선도차장이라 그랬지. 내가 재밌는 이미지로 보이는 건 나쁘지 않았다. 학교에선 수도승 같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런 자리에서야 뭐 어떠랴! 그런데 얘랑은 어째 손이 겹치는 등의 사고가 좀 많았다. 웃음으로 때우며 넘어가긴 했지만...
잔소리가 많았는데 어쨌던 나는 그 보드 게임방에서 계속 패배자였다.
두 번째는 노래방이었다. 노래방에 간다기에 나는 어쩐지 뚱한 기분이었는데, 당시까진 노래를 정말 더럽게 못 불렀다. 괜히 분위기 띄우는 아이템으로 굳혀지는 것 아닐까 하는 게 좀 걱정이었는데...
그 땐 정말 그렇게 되었다.
막말을 섞어서 전성기 시절의 이주일을 보는 것처럼 쑈를 했던 것 같다...
특이하게 그 눈매 진한 애 앞에서는 더욱 더 터무니 없는 일들이 증폭됬는데, 심지어는 화장실 간다고 해놓고 마이크 줄에 걸려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열나게 챙피해서 그냥 한번 씨익 웃고 문을 나갔는데 외려 그게 더 웃겼는지 걔는 또 웃더라. 사실 써놓고 보니까 나도 웃기다.
그렇게 좌담회는 끝나가고 있었다.
끝날 즈음에 비가 내렸는데, 어느 새 걔가 좀 신경쓰였다.
집에 가는 길에 ㅁㅁ 녀석과 얘기를 계속 했다.
너 오늘 재밌었다, 인기 좋았겠다.
그래봐야 순 지랄이지 뭐...
어떻게 하면 그렇게 카드게임을 파투 낼 수 있냐?
뒤질래...
...
너 걔 어땠냐?
누구?
선도 차장. 눈썹 진한 애.
뭘 어쩌긴 어쩌냐..?
특별히 뭔가를 느껴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실제로 가장 기억에 남는 애가 걔였다. 특히나 노래 부르던 모습은 아주 멋졌다. 정말 뛰어난 노래 실력이었다. 내 과장일수도 있겠지만 잠시 멍하니 쳐다봤을 정도로. 성격도 원만한 것 같고. 챙피한 감상이지만 가만 보면 귀여운 구석도 있었다. 이 정도가 관심을 가진 거라면 관심 가진걸까?
어느 새 시간은 조금 지났다. 다른 애들은 휴대전화로 ㅁㅁ여고 학생회와 문자나 가끔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약간 도태된 기분이었는데. 사실 속으로 생각하기를 ‘뭐, 공중전화만 써도 괜찮지 않아?’하며 괜히 자기합리화했다. 문자를 보내서 수다나 가끔 떨고 싶긴 했으나 집안 분위기 상 내게, 고등학생 주제에. 휴대전화란 용납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가끔 애들한테 들려오는 소식이나 들으며 엉, 엉, 하며 고개나 끄덕이는게 고작이었다.
성적표를 보고 기분이 상당히 엿 같아져서 비명을 좀 지르고 싶었던 풍운의 시험기간이 지나가고 2학기가 찾아왔다. 학생회니까 이제는 축제 준비가 우선이겠지. 나는 선배님들에게 신임 받는지라 여러 중책들을 맡았고, 내 스스로도 그걸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웃사람 말에 꼬박꼬박 따르는 예스 맨. 그것이 나의 이미지였다.
물론 그 예스 맨이란 사실은 훗날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무대 위에서 지랄을 하는 한 코너의 진행자가 되는 비극으로 왜곡되긴 했지만...
그렇게 성심 성의껏 일하던 차에, ㅁㅁ 여고 학생회의 얘기가 들려왔다. 연합이니까. 같이 일을 도와줄테니 끝나면 밥이나 먹자는 얘기. 내가 열심히 의자를 나르며, 혼자 영웅 심리에 차서 4개씩 옮겨다 놓을 때 그 애들이 찾아왔다.
“쟤가 걔야?”
나를 보고 어떤 여학생이 웃으며 끄덕거린다. 아, 걔구나... 선도 차장. (알고 보니 공부 굉장히 잘하는...) 하지만 ‘쟤가 걔야?’라니? 내 얘기가 저쪽에서 좀 퍼뜨려진 것일까. 저 선도 차장 애가 내 얘기를 해준 것일까. 혼자 내색하지 않고 생각했다. 내용이 어떻건 간에 추정해 본 그 사실은 기뻤다.
...그런데 ㅇㅇ여고 학생회들은 와서 멀뚱히 있었다. 별로 열심히 안 일하네...
드디어 모오든 일이 끝나고 서로 모은 돈으로 밥을 먹는 시간이 왔다. 고기 뷔페에 간다는구나. 하지만 운이 없게도 난 당시에 배 상태가 좋지 못했다.
어쨌던 학생회 관례대로 서로의 소개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1학년 학예 차장 고물라디오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좋구나. 나를 겨누어 쏟아지는 박수 갈채라는 건. 유난히 내 타이밍때 박수 소리가 컸다는 건 기쁜 사실이다. 그리고 그 때 ㅇㅇ여고 선도 차장의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걔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서 여기서 이름은 공개하지 않으련다.
그런데 그렇게 자리에 앉을 때 아주 뭐랄까. 획기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 좌석 앞에 걔가 있어..? 우연일까? 우연이라고 하긴 뭐해.
분명히.
자리를 바꾸어서 내 앞으로 와 주었다.
‘아..’
뱃속으로 탄식이 나왔다.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에 그나마 있던 식욕까지 싹 사라지고 완전한 긴장 상태가 되었다. 정말이야? 우연이 아닐까? 이 추측이 맞는 거야?
걔는 분명 여러 가지 말을 걸어왔는데 뭐 이를테면 많이 좀 먹으라 뭐 이런 말들이었다. 재밌게 이끌어 갔어야 바람직했는데 그저 나는 병신같이 답했다.
“아니 뭐... 아까 뭘 많이 먹어서. 어어, 많이 먹었지.” (에휴.)
그중에서 결정적인 것은 이 부분이었다.
2학년 선배 누나 중에서 왠지 정형돈씨를 닮으신(약간 죄송합니다.) 장난기 많은 누나가 물을 좀 따라달라고 했던 것 같다.
“이것도 숙명적인 인연인데 뭐 어때?”
“아뇨, 그냥 우연같은디요.”
이제야 재담을 좀 할 기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 못한 복병이...
맹세하건데 여지껏 들어왔던 말 들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그럼...”
“나랑 만난 것도 우연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