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2기는 안나오네요....
엔딩 이후의 세꼐 2기 라디오 방…
엔딩 이후의 라디오 제8회 방송 …
늦었어도 상관없다!!!
지금 제 꿈을향해, 열심히 달려…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손만 잡고 잤을 텐데?! 단편글 류호성
라이트노벨
 
 
첫회보기 관심
목록
 
 
어버이날 특선편 - 내일도 어버이날처럼
14-05-09 15:07
 
 
 툭, 하고.
 힘이 빠진 자로의 손에서 두루마리 휴지가 떨어졌다.
 말은 없었다. 그저 둘 다 경악에 가득 찬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 자로의 방 안에는 시계의 초침소리만 들려왔다.
 아니, 초침소리만이 아니다. 자로가 쓰고 있는 헤드폰에서도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으니까.
 -앙……! 다멧……! 소코와……! 아앙……!
 남자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본어. 신음 소리.
 그리고 모니터에서 나오는 건, 살색 가득한 영상.
 자로는 차마 그것들을 끌 생각도 못하고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런 자로를 보고 있는 것은, 문손잡이를 잡고 방으로 들어오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자임.
 “……이, 이건 말이다…….”
 겨우 먼저 입을 연 것은, 자로의 쪽이었다.
 입가는 삐질삐질. 눈은 초점이 맞지 않은 채로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빠르게 움직인다. 손도 손가락도 움찔움찔. 그러나 영상은 끄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당황한 상태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다행히 다른 손으로 팬티를 끌어올릴 정도의 사고는 가능했다.
 “그, 그러니까, 나, 남자라는 생명체는 말야, 어쩔 수 없는 거야. 응. 그, 그러니까…….”
 그리고 그 필사적인 변명에도 자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커다란 눈동자는 동그랗게 뜨고, 자로와는 다르게 시선은 한 군데에 고정된 상태.
 “…….”
 그리고 조금씩 미간이 일그러지고, 벌려졌던 입이 윗니만 드러나게 뒤틀린다. 그 얼굴이 의미하는 것은 완벽한 혐오감.
 마치 주말 술집 앞의 전봇대를 보는 표정.
 마치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보는 표정.
 딸에게 그런 시선을 받은, 그리고 딸에게 그런 광경을 들킨 자로는 그 표정만으로도 당장 혀를 있는 힘껏 깨물고 싶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남자란 말이다. 남자 고등학생이란 말이다. 아무리 자신이 육욕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천재 과학도라고 해도, 생명체인 이상 그럴 때가 있단 말이다. 자연스러운 본능 같은 거란 말이다. 남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단 말이다. 그보다 노크는 도대체 왜 늘 안 하는 건데?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라고! 남의 자유시간도 존중하지 못하는 거냐!
 외치고 싶었다. 물론 외칠 수 없었다.
 외쳤다가는 정말 인생이 끝날 것 같았으니까.
 5월 7일의 한 밤중. 홀로 있는 시간. 모두 잠든 시간.
 자칭 이 시대의 천재 과학도, 매드 사이언티스트 진자로는 살면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소년 진자로에게는 특별한 점이 몇 군데 있었다.
 가장 첫 번째는 자칭 천재 과학도라는 것.
 실제로 그 나이에 15개나 되는 특허에, 특허를 팔아서 받은 로열티로 생계를 꾸려가는 점을 감안하면 그럭저럭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만 했지만, 그걸 자기 입으로 떠들고 다닌다는 것과 주위 사람들을 우민 취급하는 점은 주위에서 자로를 보는 눈을 상당히 안쓰럽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요즘 세상에 친한 소꿉친구가 있다는 것.
 자세연. 다소 얼빵하다는 평가를 듣는 유치원 때부터 옆집에 산 자로의 소꿉친구. 그에 걸맞게 긴 생머리에는 언제나 꽃핀을 꼽고 다시는 활발한 미소녀. 언제나 조금 어리숙한 세연을 자로는 어릴 적부터 마치 여동생처럼 돌보면서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참고로 세연의 꿈은 자로의 신부. 당당하게 장래희망 조사에도 적는다.
 세 번째는, 그런 세연과 사이에 진자임이란 딸이 있다는 것.
 자로와 세연을 적당히 닮은 외모. 앙증맞게 빨래집게로 묶은 사과머리의 귀여운 소녀. 사실 딸이라고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사고를 쳤거나 속도위반을 한 것은 아니다.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찾아왔으니까.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런 자임의 목표는 미래에 싸우고 헤어지는 자로와 세연이 지금 어린 나이에 서로 사랑하여 합체해 자신을 가져서 헤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 어린애다운 생각이긴 했지만 효과를 봐서, 여러 사건을 겪고 난 지금은 가족끼리 함께 살고 있었다. 바로 며칠 전 집을 나간 자임을 찾기 위해 미래에서 자로네의 메이드 로봇 진지혜까지 찾아와서. 역시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지금, 그 중 어떤 사실도 자로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어째서 헤드폰을 낀 걸까.
 어째서 문을 잠그지 않은 걸까.
 어째서 남자라는 짐승은 한 지붕 아래에서 자칭 아내와 자칭 딸이 있는데도 성욕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일까.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크흠.”
 자임의 작은 헛기침 소리에 패닉 상태였던 자로의 온 몸이 움찔, 하고 경련했다.
 자임은 혐오감 가득하던 표정을 지우며 방에 들어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 행동이 더욱 자로의 불안을 부채질 했다.
 딱히 자신을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체면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남자로서, 아니 그 전에 인간으로서의 수치심이라고 해야 할까, 생명체로서의 부끄러움이랄까, 그런 문제다.
 그리고 그런 수치심과 혼란에 그저 자임을 바라보는 자로의 시선에, 잠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있던 자임은 생긋 웃었다. 그 웃음에 자로는 소름이 돋았다.
 “미안, 아빠. 내가 방해했나보네.”
 “어, 으, 응. 그, 그래…….”
 스스로도 이 상황에 얼마나 웃기는 답변인지를 깨닫고 혀를 깨물고 싶었지만, 도대체 방해했다는 걸 알면서 왜 방에 들어와 문을 닫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둘 중 어느 쪽도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어정쩡한 자세의 자로를 보고 자임은 히죽 웃었다.
 “그럼 어디 한 번 아빠 취향이나 좀 볼까?”
 “뭐…….”
 차마 말을 끝낼 틈도 없이 자임은 뽀로로 달려와서 자로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헤드폰의 코드를 뽑았다. 자로는 막지는 못했지만 재빨리 스피커의 소리를 줄일 수는 있었다. 어째서 끄지 않았는지를 후회하는 것은 행동한 뒤의 일이었다.
 물론 방에 울려 퍼진 것은 듣기 민망한 신음소리.
 “…….”
 그리고 후회할 때는 이미 그 소리에 다시 몸이 굳어버렸다.
 “에헤……. 아빠는 이런 거 보는 구나……. 흐응~?”
 식은땀이 흘렀다. 울고 싶었다. 왜. 이건 도대체 무슨 고문이야. 세상에 이렇게 잔인한 고문이 있어도 된단 말인가. 이 꼬맹이는 무슨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의 자식이란 말인가. 어떻게 이 상황에 저런 표정으로 웃으면서 놀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아빠라고 부르면서. 자기가 딸이라면서.
 자임은 모니터 속의 배우를 가리키며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그런데 이 배우, 어쩐지 엄마 닮았네?‘
 “우, 우아아아아아아악!”
 자로는 비명을 지르며 컴퓨터를 걷어 차버렸다. 그 충격에 본체가 넘어지고, 그 안의 하드웨어들이 혼선을 일으키고 코드가 뽑히며 그대로 컴퓨터는 죽어버렸다. 씩씩대며 숨을 고르는 자로를 보면서 자임은 아쉽다는 듯 히쭉 웃었다.
 “거기까지 할 줄은 몰랐네.”
 “시, 시끄러워 이 꼬맹아! 왜, 왜 노크도 안 하고 들어오는 거야! 나, 나도 자유시간이 있다고! 남자는 어쩔 수 없다고! 별로 안 닮았어! 닮아서 달라고 했던 거 아냐!”
 “아, 거기부터 멈췄던 거구나?”
 “이, 이, 이 꼬맹이가!”
 자로의 외침에 자임은 더욱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아빠, 지금 나한테 화낼 상황이 아닐 텐데?”
 “죄송합니다앞으로안그러겠습니다남자는슬픈동물이에요어쩔수없었어요아무리제가육욕을초월한완벽초인이라고해도생명체의본능을어쩔수는없어요봐주세요제발이르지말아주세요…….”
 “……빛의 속도로 무릎 꿇고 절까지 할 줄 이야.”
 자임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닥에 이마를 대고 랩을 해대는 자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거만한 표정으로 발끝으로 톡, 톡 하고 자로의 머리를 건드리며 자임은 말했다.
 “왜 그래? 이 마음 넓은 딸은 다 이해해. 그래. 남자가 딸 좀 칠 수도 있지. 응응. 한 집 아래에 아내랑 딸이 사는데 그러는 건 용기가 있으니까 하는 행동이겠지. 아무렴. 딸이 그렇게 못 본 척 넘어가겠다고 해도 엄마랑은 합체 안 하면서 엄마 닮은 배우가 나오는 야동은 볼 수도 있지. 물론이지.”
 “큭, 크흑…….”
 무릎을 꿇고 절을 한 채 의자에 앉은 딸에게 머리를 밟히는 이 상황. 평소라면 당장 벌떡 일어나서 상하관계를 철저하게 가르쳤겠지만, 아무리 자로라도 이 상황에서는 슬픔과 굴욕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자임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자로를 이런 식으로 자신이 우위에 서서 놀리고 장난칠 수 있었으니까. 그럴 기회를 잡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방에 들어와서 놀리는 거였고.
 아마 거기까지 하고 둘만의 비밀로 숨겼다면, 꽤나 오랫동안, 아니 어쩌면 계속해서 아빠와 딸의 권력밸런스는 역전됐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임은 그 선을 조금 더 넘어갔다.
 “어디 한 번 해봐? 딸 쳐보시지 그래? 어쩔 수 없다며. 응?”
 음흉한 그 웃음과 말투에, 자로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돋았다. 지나친 억압과 조롱은 혁명의 불씨를 일으킨다. 혁명은 반드시 피로 그 끝을 보게 되어있다. 폭력은 혁명의 도구. 자로는 결심했다.
 “그래, 원한다면 딸 쳐주마!”
 “꺄악!”
 벌떡 일어나는 자로. 그 머리에 발을 대고 있던 자임은 그대로 뒤로 넘어져버렸다.
 “아야야……. 응?”
 바닥에 찧은 머리를 문지르던 자임은 검은 그림자가 자신의 위를 덮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고개를 들었다. 그 곳에 보이는 건 혁명의 깃발을 든 남자의 불타는 눈빛.
 “아, 아빠……. 설마……?”
 자신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오는 자로의 모습에 자임의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뒷걸음질을 치면서 자임은 말했다.
 “서, 설마 아무리 그래도 딸에게 욕망을 풀 생각은 아니지? 응? 아무리 아빠가 완전 폐품 찌그러기라고 해도……?”
 “물론 풀 생각이지. 이야, 오랜만이야 딸 치는 건. 이 날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지.”
 자로는 집에서 입는 체육복의 목깃을 풀고, 목과 손목을 풀며 웃었다. 그 음흉한 미소에 자임의 눈에서 희망의 빛이 사라졌다.
 잠시 후. 큰 소리에 잠에서 깨 자로의 방으로 들어간 세연과 지혜는 자임을 눕혀놓고 엉덩이를 신나게 두들기는 자로를 발견했다. 오랜만의 스팽킹 플레이였다. 울먹이는 자임은 자초지정을 세연과 지혜에게 털어놓았다.
 자로는 살면서 두 번째로, 빠르게도 진심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
 
 5월 8일. 자로네 반.
 웅성……. 웅성…….
 그런 효과음이 들릴 것 같은, 자로와 세연의 반.
 자로는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세상에서 자신을 격리했다.
 “이야, 용케 등교거부는 안했네?”
 하지만 그런 자로를 내버려두지 않고, 자로의 단 하나뿐인 친구 신난다는 히쭉히쭉 웃으면서 자로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댔다. 올해는 더 이상 같은 반이 아니지만, 이런 좋은 놀림거리가 있는데 오지 않을 수는 없다.
 난다는 약간 느끼하지만 잘생긴 얼굴을 능글맞은 웃음으로 가득 채우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걸 들키냐. 한 지붕 아래에 여자 셋이랑 같이 살면 언제나 조심해야지. 방문도 안 잠그고. 이걸 강심장이라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흑, 시끄러워……!”
 드물게 훌쩍이면서 자로는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쏟아지는 차가운 시선.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반에는 소문이 퍼진 상태였고, 그 소문은 이젠 전교로 퍼져나가는 상태였다. 자로와 세연이 자임과 함께 살며 자칭 딸을 학교까지 데려오는 건 이미 유명했으니까.
 “더러워! 저질! 변태! 어떻게 그딴 짓을 할 수 있어?”
 이건 주로 여자 쪽의 의견. 거의 바퀴벌레를 보는 눈이었다.
 “나 같으면 자살한다.”
 이건 주로 남자 쪽의 의견. 즐거워 미치겠다는 눈이었다.
 “……뭐, 남자니까 이해는 하지만 좀 조심해라.”
 이건 주로 선생님들의 의견. 아침 일찍부터 교무실로 불러 어깨를 두드리며 했던 고릴라 담임의 말이 제일 아팠다.
 “야……. 신난다……. 정말 이대로 죽으면 편해질까?”
 “아마 꽤 오랫동안 기억되겠지만. 딸 치는 걸 딸한테 들켜서 쪽팔림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이라니, 9시 뉴스감이지.”
 정정. 난다의 저 즐거운 미소가 제일 아팠다. 자로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꿍얼거리는 목소리가 난다에게 들려왔다.
 “뭐……. 이해는 해. 그야 그렇겠지만……. 애당초 노크도 안 하고 들어오는 쪽이 더 몰상식하잖아……!”
 난다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는 배려심은 있었다. 난다는 그저 자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최대한 배려심 넘치고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뭐 남자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네 마음도 이해해.”
 “이해한다고?! 너 임마 오랜만에 해피타임 좀 가져보려고 했더니 딸이 문 벌컥 열고 들어오는 마음을 진짜 이해하냐?! 너 다음번에 딸 칠 때 꼭 나한테 전화하고 해라! 내가 자임이한테 너네 집에 놀러가라고 해줄 테니까! 앙?!”
 “…….”
 위로해주려고 한 말에 벌떡 일어나서 성을 내는 자로의 말에 난다는 ‘뭐 어쩌라고?’ 하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을 정도의 배려심은 있었다. 그 말에 저쪽에서 여자애들이 더더욱 속닥거리는 것도 굳이 자로에게 알려주지 않을 정도의 배려심도 있었다. 작게 한숨을 쉬고 난다는 그 사이 다시 고개를 숙인 자로에게 말해줬다.
 “뭐, 그래도 세연이랑 자임이도 그렇게 삐진 건 아니지 않겠어? 봐봐. 분명 지금쯤이면 평소처럼 웃으면서…….”
 난다와 자로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세연을 바라봤다. 시선을 눈치 챘는지 세연은 자로 쪽을 바라봤다. 평소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헤실헤실 웃었겠지만, 지금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이쪽저쪽 돌아보다 결국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부끄러워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나 죽을래.”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자로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아하하…….”
 그런 자로의 모습에 난다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아예 자임이 쪽은 보이지도 않았다. 평소처럼 양호실에 가서 노는 거라고 난다는 판단했다.
 “그건 그렇고 짜로도 아쉽게 됐네. 모처럼 어버이날인데.”
 “…….”
 별 생각 없이 했던 그 말에 자로가 움찔, 하고 반응하는 걸 난다는 보지 못했다. 부끄러워하는 세연의 가슴에 달린 빨간 종이 카네이션을 보면서 난다는 말했다.
 “자임이가 세연이한테는 준 모양인데, 아무래도 짜로는 올해 받기는 그른 것 같은데?”
 놀리듯 말하며 돌아본 난다의 말에 자로는 고개를 돌렸다. 그 반응에 난다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토닥였다.
 “뭐, 농담이야. 자임이도 화 풀리겠지. 아니면 짜로가 직접 가서 말해보던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뭐, 가족이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이야기 들어 보니까 자임이도 진심으로 싫어한 것 보다는 짜로 놀리려고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자로는 그저 그렇게 대답했다.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차임벨이 울렸다. 난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성욕은 좀 줄이고. 그거야 세연이랑 요즘 사이도 좋아지고 세연이도 짜로한테 많이 어필하는데 손 댈 수는 없으니까 쌓이는 건 이해해도, 적당히 해 적당히.”
 “시끄러워!”
 그 놀리는 말에 자로는 필통을 내던졌지만, 난다는 요령 좋게 피하고는 낄낄거리며 반을 나섰다. 자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필통을 주워오는 사이 아이들이 자리에 앉고, 선생님이 반에 들어왔다. 수업이 시작됐다.
 “에…….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 마디만 하고 시작하자. 진자로, 그러다 뼈 삭는다.”
 “…….”
 자로는 생각했다. 역시 등교거부할 걸 그랬어.
 
*
 
 “어머, 딸 치는 진자로 후배님 아니십니까. 어서 오세요.”
 방과 후. 부실에 들리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나봄의 말에 자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봄 선배까지 그렇게 나오시는 겁니까.”
 “생각보다는 상태가 많이 호전됐군요. 이렇게 말하면 벽에 머리를 박고 주먹질을 해대면서 바닥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실 줄 알았는데 말이죠.”
 “오늘 하루 시달릴 만큼 시달렸으니까요. 그보다 그 표정 좀 어떻게 안 됩니까?”
 “물론 안 되죠 변태 진자로 후배님. 이렇게 좋은 놀림거리가 있는데 제가 안 놀리고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셨을 거 아닙니까?”
 정말 재미있어 미치겠다는 그 표정에 자로는 그저 투덜거렸다. 이 사람 진짜 성격 나빠. 그 생각을 하면서.
 하나봄. 진자로와 단 둘뿐인 ‘창조과학부’의 부원. 사실 그 정체는 미래에서 온 진자임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시간관리요원. 자임의 부모인 자로에게는 그런 사정을 밝히고, 자임이 과거로 와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일이다.
 나봄은 은빛의 긴 웨이브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아무튼 색욕마인 진자로 후배님도 많이 쌓이셨나보군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미래에는 자세연 후배님과 청사초롱 불 밝히고 거사를 치르실 텐데 조금 일찍 하셔도 상관없다고요. 자임 양도 어머니랑 아버지의 사랑하는 모습을 봐서 기뻐하실 테고, 자세연 후배님도 자신을 닮은 AV 배우에게 남편을 NTR 당하지 않아서 기뻐하실 테고, 인간을 포기한 육욕의 화신 진자로 후배님도 끓어오르는 욕망을 분출하셔서 기뻐하실 테고, 저는 자임 양의 목적도 달성했으니 데리고 돌아가 미래에는 메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천재 과학도의 성생활을 담은 영상을 매스컴에 판매해서 가십거리 만들고 돈까지 버니 기뻐하고,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데요.”
 “……필요 없거든요.”
 “태클 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는데 그냥 그걸로 끝내는 걸 보면 정말 피곤하긴 하신 모양이군요, 노출증환자 진자로 후배님?”
 “……지금 언제쯤 화내면서 태클 걸지 재고 있는 겁니까?”
 “아시면 슬슬 반응 좀 해보시죠, 딸 앞에서 딸 치는 진자로 후배님. 슬슬 레퍼토리가 떨어져서 곤란해지는 참이랍니다.”
 이 사람은 진짜…….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싱글벙글 웃으며 그런 말을 하는 나봄의 말에 자로는 그저 깊은 한숨만을 내뱉었다. 당장 집에 가기는 그래서 피신 온 건데, 피신 올 장소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꽤나 많이 들었다.
 “좋아요. 그럼 제가 진자로 후배님에게 좋은 제안을 하죠.”
 “드디어 이상한 타이틀이 사라졌네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좋은 제안이라는 게 뭡니까?”
 나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잔뜩 쌓이셨고, 자세연 후배님과 동침하실 용기는 없는 동정 특유의 공포심으로 똘똘 뭉치셨다면 제 방을 빌려드릴까 싶어서요. 아시다시피 저는 혼자 사니까 잠깐 정도는 빌려드려도 괜찮습니다.”
 “……제안이라는 게 그겁니까.”
 “부족하시다면 반찬이라도 제공해드릴까요?”
 자로의 깊은 한숨에 나봄은 커다란 가슴을 강조하듯 팔짱을 끼고 찡긋 윙크를 했다. 자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질렀다.
 “나봄 선배,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데 요즘 욕구불만입니까?”
 “아무리 욕구불만이라도 진자로 후배님 같은 분을 유혹하는 독특한 취향은 없습니다만. 뭐 생각보다 반응이 재미없으니 농담은 이 정도로 해두고.”
 피식 웃으면서 나봄은 지긋지긋하다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자로에게 말했다.
 “하여간 진자로 후배님도 하필이면 어버이날 바로 전날에 그런 걸 들키다니 운도 없으시군요. 오늘만큼은 자임 양도 친밀하게 대할지도 몰랐는데 말이죠.”
 “……어버이날이 뭐가 특별하다고 그래요.”
 그리고 자로는 나봄의 말에 아까까지보다 더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씹어 뱉듯 말했다. 나봄은 자로의 표정에 놀리는 표정 대신 푸근하게, 어딘지 안쓰럽다는 느낌으로 웃었다.
 “그렇군요. 가족을 혐오하는 진자로 후배님에게는 싫은 날이겠군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싫어하는 날이죠.”
 자로가 자신을 천재라고 주장하고, 로열티로 생활하고, 소꿉친구인 세연을 돌보고 살아온 것에는 이유가 있다.
 자로의 두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자로를 방치하며 자신의 일에만 열중했다. 흔히 말하는 ‘워커홀릭’이었다. 그런 부모님의 관심을 받기 위해 자로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돌아온 것은 중학교 2학년 생일날 해외에서 걸려온 방치 통보였다. 자로는 혼자서도 잘 하니까, 앞으로 돌아갈 일은 없다고.
 생활비조차 없는 학생생활에 자로는 자신의 특허를 팔고, 자주 집을 비우는 세연의 부모님이 일로서 세연을 돌봐달라는 제안을 받아 지금까지 생활해왔다.
 가족을 증오하면서. 그 개념 자체를 혐오하면서.
 그래서 자로는 어버이날이 싫었다. 감사한다는 마음이 없었으니까. 그 관계와 행동을 허울뿐인 것으로 여겼으니까.
 “그런데 올해는 이런 일도 생기고, 역시 어버이날은 싫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자로의 표정만으로도, 나봄은 그 뒤에 숨겨진 감정까지 읽을 수 있었다.
 “진자로 후배님은 정말 생각하는 게 다 드러나는군요.”
 피식 웃으면서 그저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아쉽지 않으신가요? 모처럼 자임 양에게 카네이션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딴 거 받아서 뭐 합니까. 돈이 나와요 밥이 나와요.”
 툴툴거리는 자로를 보고 웃고는 나봄은 마침 생각났다는 듯 짝, 하고 박수를 쳤다.
 “그렇지, 좋은 걸 드리죠.”
 “또 이상한 거 주시면 화낼 겁니다.”
 “속고만 사셨나요. 잠깐만 기다리시죠.”
 뚱한 자로의 눈빛을 받으면서 나봄은 부실 서랍을 뒤져 쓰고 남은 노란색 색종이를 꺼냈다. 자로는 눈을 깜빡였다.
 “뭐 하려고 그래요?”
 “기다려보시죠.”
 자로의 ‘이 사람이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눈빛을 받으며 나봄은 솜씨 좋게 색종이를 이리저리 접었다. 잠시 후 색종이는 모양 좋은 노란색 튤립으로 변했다.
 “이래봬도 손재주는 제법 있는 편이죠.”
 “나봄 선배랑 정말 안 어울리는 손재주네요.”
 “……그 말은 조금 기분 나쁘군요. 저 같이 여성스러운 사람과 딱 어울리는 손재주 아닌가요.”
 자로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나봄은 철사에 꽂은 노란 종이 튤립을 자로에게 내밀었다.
 “좋은 거 준다는 게 이거였습니까?”
 “어차피 올해 아무 것도 못 받으실 게 뻔한데, 이거로라도 마음을 달래시지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튤립입니까?”
 “접기 편하니까요. 제가 카네이션 접어서 드리는 건 아무리 그래도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자요.”
 나봄은 자로의 교복 주머니에 노란 튤립을 꽂아줬다. 말없이 그것을 보는 자로를 무시하고 나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가시게요? 오늘은 빠르네요?”
 평소 나봄은 자로가 먼저 자리를 뜬 다음에야 부실을 나선다. 자로의 지적에 나봄은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딸 앞에서도 딸 치는 변태 색욕마인 육욕의 화신 노출증환자 진자로 후배님과 단 둘이 부실에 있는 건 제 정조가 위험할 것 같아서 말이죠. 먼저 실례하죠.”
 “우이씨!”
 벌떡 일어나는 자로를 보며 쿡쿡 웃고는 나봄은 부실 문을 닫고 사라졌다. 굳이 쫓아가서까지 따질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자로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가슴에 꽂힌 노란 종이 튤립을 한 바퀴 빙글 돌려봤다.
 딱히 카네이션을 받고 싶은 건 아니지만, 안 어울리는 이것보다는 낫겠다고 자로는 생각했다.
 
*
 
 “아, 어서 오세요 주인님.”
 대문을 열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지혜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자로를 맞아줬다. 싱긋 웃으면서.
 “어, 다녀왔다. 집에 아무도 없어?”
 손을 내미는 지혜의 동작에 겨우 그것이 가방과 외투를 달라는 의미라는 걸 깨달은 자로는 넘겨주며 물었다. 지혜는 받아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모님과 아가씨는 친정에 가신다고 하셨어요.”
 “친정이라고 해봤자 바로 옆집이지만.”
 그것도 다섯 걸음 걸으면 도착하는 아파트 옆집. 자로의 말에 지혜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어버이날이지 않나요. 친정은 친정이죠.”
 진지혜. 고작 사흘 전에 자임을 찾아 과거로 온 미래 자로네의 메이드 로봇. 미래에 자로가 개발한다는 메이드 로봇. 아직 자로는 그 사실이 제대로 믿기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적응된 것도 아니었지만, 지혜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주인님은 주인님이라는 논리로 자임이 돌아가겠다고 할 때까지 이 집에서 가정부로서 지내고 있었다.
 검은 색과 하얀 색 배색의 정통파 메이드 복을 입은 지혜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자로에게 공손하게 물었다.
 “마실 거라도 준비해드릴까요, 주인님?”
 “아, 응. 그럼 부탁해.”
 “알겠습니다.”
 지혜는 다시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이고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지혜는 주스 잔을 건넸다.
 “목이 마르실 것 같아서 시원한 걸로 준비했습니다.”
 “아, 응.”
 눈치가 제법 좋군. 이제 지혜에게 적응해가는 중인 자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른 목을 축였다. 확실히 미래에 메이드 로봇은 만드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저, 그런데 주인님.”
 말하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지혜는 조심스럽게 자로에게 말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콜록, 콜록! ……이 타이밍에 그걸 이야기하다니.”
 예상도 못 한 순간에 애써 잊고 있던 아픈 곳을 맞은 자로는 기침을 해대며 찌릿, 하고 지혜를 노려봤다.
 “죄, 죄송합니다! 그, 말씀드렸듯이 제가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해서요……. 그걸 화젯거리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그걸 화젯거리 삼으려는 시점에서 네가 얼마나 수다를 좋아하는지는 잘 알겠다.”
 미래에 메이드 로봇 만들 때는 제대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자로의 시선을 받는 지혜는 정말로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당연하지만 이 대화를 피하고 싶었다. 창조물과 어제 자위를 하려다 딸에게 들킨 것에 대해서 떠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자로는 지혜가 풀이 죽은 걸 이용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혜는 자로의 예상 이상으로 강인했다. 지혜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 나, 남자는 그러는 법이라는 건 메이드 로봇인 저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풀이 죽지 않으셔도, 히익!”
 척, 하고 어느새 바로 턱 밑에 허리에 차고 다니던 스패너를 밀어넣는 자로의 행동에 지혜는 비명을 질렀다.
 “……우리 그 이야기는 그만 좀 하면 안 될까?”
 “아, 알겠습니다. 그, 그냥 저는 주인님 편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어요. 네. 그것뿐이에요.”
 손을 흔드는 지혜를 보며 자로는 다시 스패너를 허리의 공구벨트에 집어넣었다. 자신의 편이라. 싫은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더 듣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자로는 그게 아쉬웠다.
 “그래……. 어차피 세연이도 자임이도 정 떨어졌겠지.”
 창피함이나 부끄러움보다 씁쓸한 기분을 느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오늘이 어버이날이기 때문이라고 자로는 생각했다.
 사실 세연과 자임과 최근 있었던 냉전에서 회복한 것도 고작 하루 이틀 전이었다. 지혜의 등장에 과학도로서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옷을 벗기고 분해해보려던 게 둘에게 들켜서 주말 내내 냉전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었으니까. 그리고 겨우 회복하자마자 이번에는 자위하려는 걸 들키다니. 정나미가 다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자로는 쓰게 웃었다.
 “아뇨.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자로의 중얼거림에 지혜는 고개를 저었다.
 “뭘 아냐. 오늘도 집에 안 있고 세연이랑 같이 저쪽 집 갔잖아. 정 떨어져서 그런 거겠지.”
 “밤에는 돌아온다고 하셨습니다. 어제 카네이션을 준비하시기도 했고요. 저한테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러냐.”
 빙긋 웃으면서 하는 지혜의 말에 자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아무 말도 없던 자로는 결심한 듯 물었다.
 “그……. 미래에서는 어땠어?”
 “매년 준비하셨습니다. 미래의 주인님은 받지 않으셨지만요.”
 대답하는 지혜의 얼굴이 조금은 쓰게 변했다.
 “언제나 아가씨는 주인님에게 드릴 카네이션을 준비하셨죠. 처음에는 생화로 준비했지만, 주인님이 받아주지 않으시자 덜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종이로 준비하셨습니다. 주인님이 집을 비우시는 일이 많아서 전해드리지는 못했지만요.”
 “…….”
 그 대답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로의 쓴웃음 역이 색을 더해갔다.
 “그래도, 매년 준비하셨어요. 올해는 받아주시리라고 기대하시면서요.”
 “……왜, 그러는 걸까?”
 자로의 중얼거림에 지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준비하는 거요?”
 “아니. 이 날이 어버이날이다! 하고 날짜를 정해서 생각해주는 시늉을 하고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하는 거. 어차피 생색내기잖아. 평소에 잘 하지 않다가도 그 날만 신경 쓰면 가족을 생각하는 효자효녀 흉내를 내고.”
 자로는 그런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만 날이 아니다. 만약 부모와 같이 산다면, 있다면, 어제도 내일도 계속 똑같은 날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버이날’ 하고 정해두고는 그 날만 특별히 더 생각하는 척을 한다. 평소에는 그러지 않으면서. 그런 면도 가족이 거짓이라는 증거라고 자로는 생각했다.
 “주인님.”
 그런 생각을 하며 쓰게 웃는 자로에게 지혜는 말했다.
 “주인님은 어버이날과 카네이션의 유래를 아시나요?”
 “……아니, 몰라. 사실 관심도 없어.”
 가족의 행사 따위에 자로가 관심을 가질 일은 없었다. 지혜는 그 대답에 싱긋 웃으면서 자로의 옆에 앉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자로는 그 위화감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약 100년 쯤 전에, 미국 버지니아주의 웹스터라는 마을에 안나 자이비스라는 여성이 살았다고 해요. 어머니와 단 둘이서 살던 어느 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죠. 안나 자이비스라는 분은 생전에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어머니 산소 주위에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흰 카네이션을 심었고, 그것을 따서 언제나 어머니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살아계신 부모님께는 빨간 카네이션을, 돌아가신 부모님께는 하얀 카네이션을 드리는 풍습이 생겼죠.”
 “……결국 생색내기잖아.”
 지혜의 말에 자로는 주저했지만 말했다.
 “살아 있을 때는 아무것도 못 해줬으니까, 죽은 뒤에야 계속 생각한다는 흉내를 내는 것뿐이잖아.”
 “하지만, 그래도 생각한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요?”
 지혜는 자로의 말에도 웃었다.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해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거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비록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그 날 하루만큼은 순수하게 감사를 드린다.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것을 감사한다. 그런 마음도 좋지 않을까요?”
 “…….”
 그 웃음에 자로는 순간 누군가가 떠올랐지만,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지혜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니까 분명 아가씨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고, 어제 그런 걸 보셨다고 주인님을 정말로 싫어하거나 하지는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가씨를 생각해서라도, 혹시 오늘 아가씨가 먼저 다가가신다면, 잠시 부끄러워도 참아 주세요.”
 그럼 저는 저녁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웃고는 지혜는 부엌으로 향했다. 자로는 말없이 그런 지혜의 등을 보았다.
 
*
 
 모두가 잠든, 아직은 5월 8일이던 밤.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자로는 잠시 고민했지만 방문을 열었다.
 “오늘은 이상한 짓 안 하네?”
 “오늘은 제대로 노크 하네.”
 서로 조금은 얼굴이 빨개졌기에 자로와 자임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자임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들어가도 돼?”
 “벌써 들어왔잖냐.”
 자로는 그 말만 하고는 돌아서서 자리에 앉았다. 자임은 잠시 주저했지만 자로의 옆에 앉았다.
 “……오늘은 이상한 거 안 한다.”
 “물어보지도 않았거든?”
 잠시 다시 침묵. 주저하던 자로는 결심했다.
 “그러니까 어제 그건 말이지…….”
 “됐어. 그런 더러운 거 변명하는 거 듣고 싶지 않아.”
 딱 자르는 자임의 말에 자로는 더더욱 얼굴이 빨개졌다. 자임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대단히 한심하다는 눈으로 자로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그냥 화끈하게 엄마랑 확 해버리라고. 그렇게 못 참아서 엄마 닮은 야동까지 볼 바에야 어차피 아빠도 불끈불끈하면……. 으브브브브브!”
 “넌 배려심도 없냐?! 그 놈의 발랑 까진 입 좀 어떻게 안 할래? 하여간 틈만 나면 이런 소리나 하고, 이 19금 꼬맹이가!”
 “으브브브브브브브브브!”
 자임의 입을 아프게 양쪽으로 쭉쭉 잡아당기기를 한참. 겨우 자로가 손을 놔줬을 때 자임의 입은 쭉 늘어나 있었다.
 “아우으으으으……. 아바요, 아바…….”
 “…….”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새빨개진 양 볼을 문지르는 자임의 말에 자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새빨개진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돌리며 자로는 겨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못했다.”
 “잘못했다는 사람이 사람 볼을 이렇게 만들어?”
 “……그것도 잘못했다.”
 뚱하니 자신을 보는 자임의 눈에 자로는 더더욱 얼굴을 돌리기 힘들었다. 자임은 그런 움츠러든, 보기 드문 자로의 모습에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잘못한 건 알지?”
 “잘못했습니다…….”
 여전히 고개는 못 돌리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자로. 자임은 볼을 문지르며 여전히 뚱한 눈으로 자로를 보면서 말했다.
 “그, 그거야……. 나도 남자는 그런 일 한다고 듣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엄마랑 딸이랑 같이 살면서 그런 더러운 짓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아빠도 트라우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쪽에서도 트라우마라고. 알아들어?”
 “……원인을 따지자면 네가 노크도 안 하고…….”
 “알아들어?”
 “알아들었습니다. 제가 다 잘못 했습니다…….”
 말하다 얼굴이 빨개지는 자임의 모습에 자로는 투덜대려 했지만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자임은 빨개진 얼굴을 슬쩍 돌렸다.
 “……뭐, 내가 노크도 안 하고 들어온 건 미안. 아빠 사생활 침해한 것도, 뭐, 조금은 미안.”
 하지만 거기까지 말하고 자임은 다시 눈빛을 강하게 하며 자로를 돌아봤다.
 “그렇다고 용서하는 건 아니니까. 다음에 또 그래봐.”
 “……그래. 안 그럴게.”
 “좋아. 그럼 어버이날이니까 특별히 용서해주지. 이거.”
 고개를 끄덕이는 자로에게 자임은 주머니에서 구겨진 빨간 카네이션을 건네주었다.
 “원래는 어제 이거 주려고 들어왔는데…….”
 “……왜 구겨져있냐?”
 “그거야 그런 광경을 봤으니까. 솔직히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기왕 만들었으니까, 줄게.”
 자임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고는 깨갱 하는 자로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줬다. 확인 차 한 번 찰싹, 하고 카네이션과 자로의 가슴을 치고 자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줄 것도 줬으니까, 오늘은 자러 갈게. 내년에는 착한 아빠로 있으면 안 구겨진 거 줄 테니까.”
 “……그래. 노력은 해보마.”
 고개를 끄덕이는 자로에게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 자임은 방문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작게 말했다.
 “잘 자, 아빠.”
 “그래. 잘 자라.”
 문이 닫히고, 자로 혼자 방에 남았다. 자로는 조용히 가슴의 빨간 카네이션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신기한 기분이라, 구겨진 그 카네이션을 손끝으로 만져봤다.
 
*
 
 “그래서, 어떻게든 화해했나보네?”
 “……뭐, 그렇지.”
 다음 날. 난다의 말에 자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다는 자로의 가슴을 보면서 히쭉 웃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버이날 아닌데 그걸 달고 오다니, 짜로 의외로 마음에 들었나봐?”
 자로의 가슴에는 구겨진 빨간 카네이션. 그 상태로 세연과 자임과 함께 등교한 자로의 모습에 아침부터 그 광경에 박수 치는 걸 좋아하는 모두가 박수를 쳐줬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딱히 그런 건 아냐.”
 자로는 가슴의 카네이션을 문지르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그래도 뭐, 어제는 못 달았으니까.”
 아까부터 힐끔 힐끔 자신의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을 보는 자임을 보면서 자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도 똑같았고.”
 아직 부모님에게 희망을 잃지 않았을 때.
 자로 역시 매년 카네이션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것은 드린 그 장소에 그저 남아있을 뿐이었다.
 많은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딱히 그걸 달고 주위에 자랑하며 다니는 걸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고맙다고. 그렇게 말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단 1초라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뻐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으니까, 달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딱히 마음에 들어서 다는 건 아니다? 그냥 자임이가 나한테 뭐 주는 게 이번이 처음이니까 다는 것뿐이야. 착각 하지 마!”
 “뭘 착각했다고 그래? 제대로 이해했는데.”
 자로의 외침에 난다는 그저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뭐라 난다가 더 말하려는 순간, 난다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쿠, 그럼 난 그만 가봐야겠네.”
 “응?”
 갑작스러운 난다의 말에 자로는 고개를 돌렸다. 보인 것은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가는 난다와, 그 자리에 있는 세연.
 “……어, 음.”
 “…….”
 둘 다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반의 모두도 자신들의 수다를 멈추고 그런 둘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그, 짜, 짜로야.”
 “어, 으, 응.”
 뭐가 ‘어, 으, 응’ 이냐. 자로는 스스로의 대답에 자학의 의밀 혀를 깨물 정도로 당황했지만, 세연은 여전히 주저하며 몸을 비틀면서 말했다.
 “그, 어, 어제 엄마랑 이야기 했는데…….”
 “너 너희 어머니한테도 이 이야기 한 거냐?! 진짜 했냐?!”
 “아, 아빠한테도 말했는데…….”
 “──…….”
 다급히 외치던 자로는 더 외치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세연은 여전히 신호등마냥 빨간 얼굴로 시선을 피하고 몸을 배배 꼬면서 더듬거렸다.
 “아, 아무튼. 드, 들었어. 이 나이 남자애들은, 음, 그럴 수도 있다고. 자, 자연스러운 거라고. 그……. 그러니까, 이해할게.”
 “…….”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세연을 바라보는 자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연은 잠시 부들부들 떨고는 홱 하면서 그런 자로를 돌아봤다.
 “하, 하지만! 내가 지난번에도 말했는데 그러는 건 여자로서 좀 자존심이 상해! 말했었잖아!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이제는 섹스가 뭔지도 잘 알고 있다고! 짜로 야동들도 몇 개나……. 으브브브브브!”
 “안 해! 안 한다고! 이젠 그거고 이거고 다 안 해!”
 세연의 볼을 쫙쫙 잡아당기며, 자로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 잡놈들아 박수 그만 안 쳐?! 도대체 왜 여기서 박수를 치는 건데, 도대체 왜?!”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남자여야 한다니, 모든 아버지는 참으로 위대하다고.
 
*
 
 “자세연! 일어나! 학교 가야 할 것 아냐!”
 “으음……. 아직 5분 정도 시간 있는데…….”
 “없거든?! 완전 부족하거든?! 진자임 너도 얘 좀 깨워!”
 “흐하아아암……. 난 학교 안 가도 되는데…….”
 자로는 생각했다.
 “아, 진짜! 야 좀 일어나! 너 버리고 간다? 나 혼자 간다?”
 “안 돼! 짜로 나 버리면 싫어할 거야!”
 “그럼 좀 일어나든가 좀!”
 아직, 가족은 싫지만. 여전히 좋아하지 않지만.
 “주인님! 아침식사를 거르시는 건 좋지 않습니다!”
 “아침은 얼어 죽을! 지혜 넌 왜 얘 안 깨웠어?”
 “송구스럽습니다. 오늘은 충전이 늦게 끝나서…….”
 “아……. 킁킁, 밥 냄새…….”
 “거기에는 반응하네! 하지만 먹을 시간은 없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꼬맹이 넌 먹든가 말든가 하고 세연이 넌…….”
 “잘 먹겠습니다!”
 “학교 가야 한다고!”
 “많이 드세요. 아, 주인님도 어서 오세요.”
 가족실험일, 뿐이지만. 그래도, 실험이라면. 실험중이라면.
 “……아, 진짜. 난 몰라…….”
 부끄러운 아빠로서는, 결과가 확실하게 나오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자로는 웃었다.
 소란스러운 식탁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자로의 방. 작업대에는 구겨진 카네이션이 자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
 
 덧붙이자면, 그 후 자로는 컴퓨터를 수리하면서 그런 영상을 전부 삭제했지만……. 모두 알다시피 현자 타임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 용량은 또다시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문을 잠글 정도로는, 성장했다.
 
+ 작가의 말 : 어버이날 특선 단편입니다.

즈믄 14-05-09 15:57
답변  
3권은 언제나옵니까 3권은..  빨리 일하란말이야...!!(짝 죄송합니다 건강생각하면서 하세요 )
ISYM 14-05-09 16:01
답변  
아니 근데 3권은요??
세작 14-05-09 16:47
답변  
아니 이 작가님 이런 무서운일을...
mo아일리카 14-05-21 18:50
답변  
.....호러물.... 잘봤습니다
SIN통우 14-06-04 20:43
답변  
무서운 이야기를 쓰시는군요
ZUMP 15-05-08 08:33
우연히 1년 딱 지나서 읽는데 어버이 날인데다가 1-2권 까지만 읽었네요. 참, 우연이 기구하네요.......
Komachi 15-08-02 00:56
답변  
정말 재미있습니다!
괜히 서점에서도 파는 라이트노벨이 아니란 걸 실감이 나네요!!
온나노 15-10-18 21:00
답변  
..................................................(충격먹음)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