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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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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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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아저씨가 어린왕자에 온다면.
13-12-24 22:16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었다.

제과점 <어린왕자>의 일 년 매상을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날이라고 해도 좋을 날이.

이맘때는 말야,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게 있지. 우리도 그 중 하나아니겠니?”

어째서?”

신우야. 슬슬 너도 알아차려야지. 가게에 들어온 손님들이 우리를 보기만 해도 설레하는 거 모르겠니? 즉 우린 크리스마스이브에 내리는 눈이나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란 말이지.”

, 여자 친구 같은 거구나.”

고롬, 고롬.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없으면 왠지 옆구리가 시리는 거고 말야. 킥킥"

엄마는 쪼개는 듯한 미소를 보이면서 쿠키 반죽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짰다. 벌써 며칠 째 크리스마스 한정 쿠키를 수천 개를 만들고 있었지만, 엄마는 힘든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평소의 짜증이나 날선 태도는 전혀 없다. 오직 이맘때에만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다.

신우도 바빴다. 어머니가 과자를 만들어내는 족족 포장하고 진열해야 했다. 그래도 올해는 한결 나은 편이었다. 매장을 관리할 아르바이트생이 두 명이나 있어서 할일이 많이 줄었다.

조금 마음을 놓을까 싶던 순간,

-삐삐삐삐삐!!

시끄러운 경고음이 조리실까지 들려왔다.

매장 보고 올게.”

카운터에는 어린왕자의 유니폼을 입고 하얀 모자를 쓴 아르바이트생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계산대 버턴을 마구 두드리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경고음은 더 시끄럽게 울렸다.

라희야.”

한숨을 쉬며 부르는 신우의 목소리에 라희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눈망울로 도움을 요청했다.

신우가 캐셔 기계를 만지고 나서야 겁에 질려 있던 라희도, 귀를 틀어막고 있던 손님들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제부터 누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해. 상품 입력 안하고 누르면 이런다니까.”

, 으우. 이 소리에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 매번 머릿속이 하얘진다니까.”

예전 라희의 고백이 떠올랐다. ‘덤벙거리고 실수가 많은 스타일이라고 했었지. 그래도 이 정도일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런 말이 뇌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단순한 기계치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일단 더 이상 카운터는 무리. 매장을 꽉 채울 정도의 손님을 얼른 보내드려야 한다.

,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할게. 넌 들어가서 과자 포장 좀 해줘.”

으으, 분하도다. 이 기계덩어리, 반드시 정복하고 말리라!”

라희는 이를 앙물고 계산대를 쏘아보더니만 조리실로 뛰쳐 들어갔다.

그런 모습도 귀여워! 신우가 라희의 뒷모습에 미소 짓던 그때,

-와장창!

신우의 머릿속을 깨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또냐!!"

매장 안쪽 테이블로 눈을 돌렸다. 가게 유니폼에 앞치마를 두른 키 큰 여자애가 테이블을 밟고 서 있었다. 신우네 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바닥에 뿌려져 있는 건 덤이다.

, 브레이커!”

은아는 고개만 획 돌려 신우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질 수 없다. 여긴 우리 가게야!

벌써 몇 번째야! 너 말고, 손님! 손님이 왕이라고!”

과자 받는 태도가 공손하지 못했어.”

, , ! 예의바른 숙녀처럼 굴기로 약속했잖아!"

상대가 날 숙녀처럼 대하지 않았어.”

상대의 문제가 아냐! 범법행위를 당한 게 아니면 손님을 패지 말라고, 이 멍청아!”

은아는 쓰러진 남학생들을 발로 툭툭 찼다.

, 성희롱 했다고 말해.”

너 진짜…… ! 어디가!"

은아는 카운터에서 손님들의 주문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잔소리까지 하는 신우에게 콧방귀를 끼고,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럼 그렇지.’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

 

상품 등록하고, 계산 버튼 누르고, 현금 혹은 카드 선택하고, 돈통 열고."

라희야.”

상품 등록하고, 계산 버튼 누르고, 현금 혹은 카드 선택하고, 돈통 열고."

라희야!”

으앗, 놀래라! 신우군!”

청소는 이만하면 됐어. 먼저 들어가지 그래.”

매장 바닥은 이미 광택으로 번쩍였다. 라희가 계산 과정을 외운다고 대걸레만 몇십 바퀴를 돌아준 덕이다. 라희는 대걸레자루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 오늘 좀 심했지.”

, 아냐. 괜찮아!”

신우는 일부러 밝게 말했다.

열정적으로 배우는 건 좋은 거지. 안 그래? 누구나 다 시행착오는 있는 거야. 중요한 건 네가 계속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지. 안 그래?”

라희의 울상이 사라졌다.

고마워 신우 군.”

습관처럼 팔을 벌려 다가오던 라희의 몸이 1m 앞에서 딱 하고 굳었다. 미적미적 차렷 자세로 돌아가 몸을 돌리는 라희의 모습에 신우는 아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이번에는 껴안아줄 줄 알았는데.

얼마 전, 정전기 사건 이후로 스킨십이 확 줄어버렸다.

좋았어!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까지, 계산 임무 정복이다! , 그러니까!”

힘차게 뻗은 팔과 달리, 라희의 눈은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상품 등록하고, 돈통 열고, ……. 계산!”

상품 등록하고 계산 먼저라니까.

 

***

 

피곤하다는 엄마를 집에 들여보내고, 신우는 매장의 쇼케이스를 정리했다. 라희가 도와주겠다고는 했지만 신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선장이 해야 하는 일이야. 엄마가 피곤해서 일찍 들어가셨으니까, 지금 이 가게의 선장은 나지.”

,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신우 선장님!”

근데 말야. 은아 있잖아.”

신우는 한참 전에 앞치마를 내버리고 휙 가버린 은아가 신경이 쓰였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오늘따라 기분 나빠 보이던데.”

?”

눈을 깜빡이는 신우에게 라희는 짐짓 어색하니 웃었다.

그런 게 있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뭔데 그래?”

뭐랄까, 기대해선 안 될 일에 기대를 해서 실망했다고나 할까. 나 이만 갈게.”

, 그래. 내일 봐.”

라희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조금 급하게 가게를 나섰고, 마침내 신우는 매장에 홀로 남았다.

그래, 알 바 아니지.’

신우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껐다. 쇼 윈도우 너머로는 깊어가는 밤의 어둠이 뒤덮여 있다. 쇼케이스 정리에 손을 움직였지만, 머리의 일부분에 또다시 은아가 떠올랐다.

'자기가 먼저 벗어나겠다고 했으면서.’

분명 의지는 있었다. 단지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3주 전 쯤, 은아에게 라희와 함께 서빙을 보라고 권했었다. 손님을 대하다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최근에는 좀 잘하나 싶더니만…….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거겠지.’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난 네가 누군지 모른다.

? 누구.”

-네가 무슨 꿍꿍이인진 몰라도 나의 인정을 바라는 거라면, 안됐지만 그런 여유 따윈 없다. 다만 나에게는 남다른 재주가 있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다.

-밥 벌어먹고 했던 짓이 이런 거라 이거 하나는 분명히 말해줄 수는 있다. 널 찾아낼 거다. 널 찾아내서반드시.

, 리암 니슨 아저씨.”

신우는 조용히 타일렀다.

여기 제과점이에요. 문 닫아야 하니까 술 취해가지고 장난전화 하지 마시고, 집에 가서 자제분하고 오붓한 시간이나 보내세요.”

-…….

알아 들으셨죠? 자 그럼. 메리 크리스마스.”

끊으려던 참이었다.

신우 등 뒤에서 땡그렁 하고 도어벨이 울렸다. ? 하고 돌아보니 어떤 중년 아저씨가 핸드폰을 들고 서 있었다. 버버리 코트 차림에 머리는 헝클어졌고 턱수염을 기른 아저씨. 뭔가 분위기가 많이 익숙했는데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저 아저씨 눈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저씨 눈빛이 번쩍했다.

이 쉥키가!”

크악!”

중년의 울분을 담은 구둣발이 무방비 상태였던 신우의 명치에 명중했다!

난데없는 아픔도 잠시, 후속 킥이 슈욱! 하고 면전을 갈랐고 신우는 용케 고개를 숙여 피했다.

잠깐만요!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셧 업!”

이번엔 돌려차기였다. 뱀소리처럼 발끝에서 쉭쉭 하는 소리가 나면서 신우 얼굴을 스쳤다. 신우는 아슬아슬하게 피하고만 있었다. 아무렇게나 막 차는 것 같았지만 실전적인 타격기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만하라구요! 경찰 부를 거예요!”

로우 킥!”

으악! 뭐하는 거예요! 진열대 박살났잖아요!”

이번엔 미들킥!”

쇼케이스 치지 마요! 크리스마스 장식 다 떨어졌잖아요!”

그럼 하이킥이다, 임마!”

아저씨는 완전 폭주기관차였다. 신우의 격투 레벨로는 분노와 실전스킬이 겹쳐진 연속적인 킥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현란한 발차기는 계속 되었고, 신우가 피할 때마다 매장의 엉뚱한 것들만 박살났다.

스콜피온 킥!”

코브라 킥!”

순항 미사일 킥!”

아 진짜 그만 해요!”

신우가 돌아선 순간, 아저씨의 불붙은 눈동자가 한곳을 겨누고 내려찍기를 날렸다.

그 이름은 자그마치!

“2세 방지킥!”

이 아저씨가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신우는 자신의 낭심을 노리고 날아든 아저씨 발을 손으로 막아냈다.

아저씨의 눈이 칼날처럼 매서워졌다.

놔 임마! 이 자식이 감히 어른 발을!”

웃기지 마요! 누굴 호구로 알아요?”

신우의 방어에는 자신의 후세를 위한 인간 최후의 보루와 같은 단단함이 있었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굴라구요! 어디서 천박하게 발차기나 하고……. ?”

이 상황, 이 대화. 어디서 많이 겪었다. 그렇다. 라희네 반에서 있었던 채은아와의 일전.

설마.

은아 아버지세요?”

딩동댕!”

아저씨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무협영화의 경공처럼 몸을 회전시키는 바람에 신우는 손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이미 박살 난 매장 안에 무지막지한 선풍이 불었다.

이게 대체 뭔 지랄이야?’

날아다니는 크리스마스 장식에 신우가 넋을 잃은 사이,

궁극 필살기!”

능숙하게 착지한 은아의 아버지는, 허이짜 하고 무릎을 굽혔다가 로켓처럼 튀어나왔다.

앵그리 파더 박치기!”

!

지이잉!

신우 머리가 울렸다.

다이아몬드마냥 맨질맨질한 중년의 탄두(彈頭), 신우 머리에 작렬했다.

이런 공격, 처음이야…….’

신우는 의식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끼며 무너져 내렸다.

, 돌머리…….”

어른한테 돌머리는, 다이아몬드라고 해라.”

은아의 아버지는 어지러운 매장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

 

오늘의 연장근무는 끝날 줄을 몰랐다.

신우는 커피를 한잔 뽑아서 은아 아버지 앞에 두었다. 철없는 어른의 대표라고 해도 좋을 법한 이 아저씨는 생각보다 은아와 많이 닮아있었다. 큰 키에 다소 깡마른 체격, 제멋대로 사람의 오해하는 그 성격까지도.

여긴 어떻게 아셨어요?”

나님이 도둑놈 잡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

도둑놈이요?”

그래, 이 딸 도둑놈아. 애지중지 키웠더니만 너 같은 놈이 훔쳐갈 줄이야. 20년 경력 중에서 네놈이 가장 최악의 케이스다.”

뭔가 오해하고 계신가 본데요. 은아하고 저는 그런 사이 아니거든요?”

이 자식이 형사의 직감을 뭘로 보고.”

경찰이셨어요?”

은아가 말 안하디?”

전혀요.”

어쩐지 채은아 격투 실력이 무지막지하더라니. 분명 이 아버지에게서 배운 걸 거다.

아저씨가 손을 내밀었다.

청초서 강력계 채석인 경사다.”

노신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초면부터 발길질을 하셨나요?”

네 놈은 맞아도 싸니까.”

왜요?”

내가 민중의 지팡이로 뼈 빠지게 일하는 사이 딸을 훔쳐갔으니까. 잠깐 서울로 출장가서 조폭들을 때려잡고 왔더니만 내가 선물했던 곰인형 자리를 네놈이 떡하니 차지했더라?”

, 브래드요? 오해하신 거예요. 그 은아가 말하는 곰돌이라는 게 사실은.”

, M이냐?”

아저씨는 은아가 짓던 표정 그대로 비웃음을 흘렸다.

, 엠요? 미쳤어요?! 아니거든요!!”

곰돌이가 은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쯧쯧, 숨겨진 욕망을 순수로 포장하지 마라.”

전혀! 상상하신 거와 달라요!”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지. 범인이 나 범인이오.’하는 거 봤냐?”

신우는 오랜만에 속이 터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역시 채은아 상위호환 존재였다.

그런 신우의 모습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는지 아저씨는 히죽히죽 커피를 홀짝였다.

암튼 이게 다 네놈 때문이야, 짜샤. 네놈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서, 은아가 이제는 난 거들떠도 안 본단 말이다. 니미럴, 연말이라서 가정에 봉사하려 했더니만, 계집애가 단단히 삐져가지고.”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에요?”

글쎄다.”

아저씨가 머리를 긁적였다.

난 잘 모르겠는데, 뭔가 삐졌나보더라고.”

왜인지는 이유도 모르고?”

딩동댕.”

아저씨가 버버리 코트 속에서 뭔가를 꺼내려했다. 척 보니 입에 물면 모자이크 쳐질만한 물건. 신우는 그것을 빼앗아서 카운터 앞 쓰레기통에 핀포인트로 던져버렸다.

너 임마, 무슨 짓이야!”

달콤한 제과점에 담배는 흉기입니다. 그래서 왜 오신 거예요?”

젠장, 은아가 집 문을 잠갔다. 갈 곳이 없어.”

그게 저희 가게에 오실 이유는 아니죠. 뭘 원해서 오신 겁니까?”

아저씨가 날렵한 눈으로 고개를 확 들이밀었다. 무슨 범죄자를 취조해 자백이라도 받아내려는 눈빛에 신우는 움츠러들었다.

, 왜 그러, 세요?”

, 도둑놈.”

아저씨는 능숙하게 신우의 오른손을 앞으로 낚아챘다. 깜짝이야! 수갑 채우는 줄 알았잖아!

그리고 아저씨의 다음 말은 수갑을 채우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 나 좀 도와줘야겠다.”

 

***

 

다음 날.

그래, 내일이 크리스마스니까.’

그것도 남의 일이 아닌 은아 일이니까.

신우는 교복을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어린왕자 매장으로 나왔다. 라희는 오늘 좀 늦는다고 했었고, 웬일인지 은아는 신우보다 일찍 와서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미안하다. 그래도 이해해주라.’

신우는 목소리를 깔았다.

, 채은아.”

은아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흘낏 보았다.

? 할 말 있어?”

너 어제 그러는 게 어딨어? 애가 일을 하면 책임감이 있어야지. 그렇게 손님들 보는 앞에서 뛰쳐나가기나 하고.”

채은아의 심기가 꿈틀거리는 징조가 보였다.

너 지금 나한테 훈계하는 거야?”

여기서 언성을 높여야한다.

훈계하면 어때서!? 엄마가 나보고 관리하라고 했다고! 꼬우면 서빙보는 애답게 사고치지 말던가!”

침 몇 방울이 채은아 얼굴에 튄 것 같다. 은아의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하려는 징조를 읽고 신우는 은아 몰래 밖으로 눈짓을 보냈다. 순간, 밖에서 지켜보던 어느 날렵한 눈동자가 가게 안으로 살금살금 기어들어왔다.

너 그러다 한 대 치겠다?”

? 내가 못 칠 줄 알고? 곰돌이한테 한번 죽어라 맞아볼래?”

쳐봐, 찌질아! 오랜만에 몸 좀 풀자!”

이게!”

신우가 과장된 손찌검을 날렸다. 당연히 은아는 고개를 틀어 피했다.

곧바로,

곰돌이 주제에!”

하고 응징의 2단 돌려차기를 가하려던 여왕님을 대신해,

격노한 아버지 킥!”

!”

아저씨가 펼친 회심의 다이빙 킥이 신우 명치에 꽂혔다.

-철퍼덕!

하고 바닥으로 패대기치는 신우.

-쭈욱~!

하고 바닥에 몸째로 미끄려졌다가,

-우당탕!

하고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진열된 쇼케이스 끝에 볼링핀처럼 부딪치고 말았다.

으아아…….’

킥 하나에 몸이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 그래도 이 정도면 아저씨도 영웅으로 보이겠지?

신우가 아픔을 꾹 참고 올려보니 아저씨가 은아 옆에 액션배우마냥 폼을 잡고 서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한테 감히. 은아야, 괜찮니?”

아저씨가 다정한 투로 물으며 다가섰다. 하지만 아무런 보람도 없이,

, 이제 괜찮아. 아빠가 이놈을. 커헉!”

은아의 매서운 주먹질이 날아들었다.

아저씨는 침을 흩뿌리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정신 나갔어!! 내 곰돌이한테 지금 뭐하는 짓이야!”

, 은아야, 난 그냥…….”

창피해 죽겠어! 정말 최악이야!”

, 은아야. 아빠는…….”

주제에 무슨 얼어 죽을 아빠!”

뛰쳐나가던 은아와 조금 늦게 어린왕자로 온 라희가 마주쳤다. 당황한 라희를 피하며 은아는 거리 속으로 뛰쳐나가버렸고, 라희는 뻔하다는 듯 아저씨를 빤히 째려보았다.

 

***

 

어린왕자 가게 문에는 잠시 영업 준비 중이란 푯말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가게의 종업원들은 영업 준비는커녕 테이블에 앉아 인민재판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를 노려보는 라희와 고개도 못드는 아저씨.

정말 구제불능이에요. 제가 안 도와주니까 신우를 꼬셨죠?”

꼬시긴. 이 자식한테는 빚이 있단다.”

됐고요. 신우 너도 경솔했어.”

난 발차기 맞은 죄밖에 없는데. 억울한 심정에 신우는 중얼거렸다.

난 그냥, 아저씨가 그렇게 하면 풀어진다고 해서.”

! 풀어질 리가 있나. 아저씨가 저지른 실수가 얼마나 어마어마한데.”

어마어마해?”

들어봐, 노신우.”

라희는 그 큰 가슴 밑에 팔짱을 딱 꼈다. 신우는 눈이 가슴을 향하는 것을 억지로 무시하며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저 앞에 있는 아저씨는 진짜 아빠 중에서 최악. 기껏 은아 마음을 풀고 나면, 도로 아미타불의 반복이었다고 할 수 있지.”

라희야. 아니, 내가 언제…….”

아버지로써!”

아저씨의 핑계가 나오기도 전에 라희의 주먹이 테이블에 떨어졌다. , 가슴이 출렁거린다. 신우는 잽싸게 눈을 아저씨에게로 향했다.

따님이 필요할 때 없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아웃! 게다가 이번 약속을 어긴 건, 단번에 쓰리아웃 삼진! 은아가 왜 아저씨를 이 가게로 초대했었는지 알기나 해요?!”

아니, 그건, …….”

보여드리려고 했다구요! 자기가 이렇게 얌전하게 숙녀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걸, 누구보다 아저씨에게 먼저 보여드리려고!”

!”

신우는 요 몇 일간 얌전히 일하던 은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 이제야 알 것 같아. 그럼 그렇지! 은아가 괜히 저기압일 리가 없지!

아씨, 진짜!”

!”

신우의 앞발이 테이블 밑 중년의 정강이를 찼다. 은아 아버지는 앉은 채로 폴짝 뛰는 신기한 재주를 발휘했다.

, 쪼인트! 쪼인트! 크악!”

은아 친아버지 맞아요? 채은아가, 그 채은아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 내가 놀았냐! 민중의 지팡이로 활약을 하다 보면 가정은 좀 소홀할 수도 있지!”

그래도!”

신우의 머릿속에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아저씨가 유일한 가족이잖아요!”

아저씨의 눈동자가 신우를 향했다.

은아한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 아셨을 거 아니에요. 그걸 가족이 들어주지 않으면 누가 들어주나요? 최소한, 최소한의 시간은 은아와 함께 했어야죠.”

신우와 같은 증후군을 가지고 있던 소녀. 제법 긴 시간동안 그렇게 지냈다고 들었다. 자신은 엄마가 엄마 나름대로의 신경을 써 주었다. 하지만 은아는.

아저씨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졌다.

미안하구나.”

어른의 항복이었다.

그리고,

잠시 마실을 갔던 어머니가 돌아와서는 가게를 보고 말았다.

, 밖에 푯말 뭐야? 가게 꼴은 이게 뭐고! 아직도 준비 안 끝났어?”

그게, 은아가 청소하다 말고 가서.”

바닥에 이 질질 끌린 자국은 뭐야?”

그건 아들이 쓸린 자국이고.

쇼케이스는 왜 이래? 케이크 다 흐트러졌잖아!”

그건 아들의 몸개그가 저지른 일이고.

, 차마 얘기하고 싶지 않다.

침묵하는 신우를 보던 엄마의 눈이 아저씨에게로 갔다.

거기 계신 분은 누구시오?”

아 저…….”

아저씨는 자신감을 상실한 것 같았다. 라희가 대신 말했다.

은아 아버지세요.”

아 그래? 안녕하세요, 아버님. 은아 보러 오셨어요?”

. 그러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늦게 부끄러움을 깨달았는지 어깨가 축 늘어져서는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저씨는 천천히 가게 문으로 나갔다. 엄마는 어리둥절해하다 아들을 다시 보았다.

, 노신우. 그래서 은아 어디 갔니?”

그게…… 일 있어서 나갔어. 오늘은 안 올 것 같은데.”

! 그럼 어떡해! 오늘이 대목이라 좀 있으면 손님들 몰려올 텐데! 대타는 있고?”

신우의 눈이 번뜩이며 은아 아버지의 축 처진 뒷모습을 향했다.

 

***

 

아저씨! 거기 걸레로 똑바로 문질러요. 발자국 안 지워졌잖아요!”

알았어, 임마!”

아악! 내 운동화에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네놈 신발자국이니까 네놈 신발을 닦아야지. 덜 닦였으니 다시 내놔!”

청개구리가 따로 없네!”

 

한 시간 후,

음료 만드는 건 간단해요. 아메리카노는 여기에다 물만 타면 되고요, 라떼는 우유를 이걸로 끓여서…….”

그냥 맥X 사서 타주면 안 될까?”

안 돼요.”

테스X스 초X스는 어때?”

절대 안 돼요!”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방금 그 서빙 뭐예요! 커피 다 넘치잖아요!”

한 방울도 안 넘쳤어. 뭐가 문젠데?”

손님 불안하게 하지 말고 두 손으로 똑바로 하라구요! 공손히!”

, 공손히!”

물개도 아니고, 머리로 서빙하지 마세욧!”

 

그리고 다시, 한 시간 후,

, 아저씨. 계속 지켜봤는데요.”

또 뭔데?”

손님 나갈 땐, ‘안녕히 가세요.’해야죠! 그렇게 노려보면 무서워서 안 오잖아요!”

난 그냥 내 손님한테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어떤 손님이요?”

강력범.”

손님은 용의자가 아니에요!”

 

***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은 점점 깊어갔다.

한참 시끄럽던 처음과 달리, 은아 아버지는 점점 진지하게 딸이 하던 일을 대신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딸에 대한 미안함이겠지. 조금은 어색하긴 해도 저번 알바생이 입던 웨이터풍 유니폼도 키 큰 아저씨에게 그럭저럭 잘 어울린다. 신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까.’

신우의 마음 한 구석에 조금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꼭 아빠가 온 것 같아.’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빠.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어쩌면, 저런 모습이었을까?

안녕히 가십쇼! 메리 크리스마스!”

라희의 밝은 목소리가 신우의 딴생각을 깨웠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경고음이 울리지 않았다. 라희는 신이 난 얼굴로 신우를 쳐다보았다.

어떠하오, 신우 군? 소녀 이제 완벽한 전자계산 낭자가 되었다오!”

전자계산 낭자?”

그러하외다!”

라희가 단호한 얼굴로 척 하고 섰다.

이 세상의 악이자 절대권력인 금권주의을 단호한 컬큐레이션으로 인수분해 하는, 이 시대를 위한 히어로! 그 이름도 빛나는! 전자계산 낭자!”

라희가 특촬물 스타일의 삼단계 안무를 시전했다.

으읏, 아무리 라희의 돌출행동에 내성이 있다지만, 이번 건 닭살을 참기 좀……. 신우는 등 뒤에 삐질삐질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손발이 펴질 것 같지가 않아.

하하, , 근데…… , 하루만에, 마스터 했네?”

그거슨 바로 이미지 트레이닝!”

이미지 트레이닝?!”

라희가 활짝 웃었다.

그렇소이다. 눈을 감고 가상의 손님들을 만들어서 계산하는 연습을 했다오. 그리하여 이제는 눈감고도 계산대를 조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얼마나 트레이닝을 한 거야?”

어젯밤에 정확히 구백 팔십 육명까지 손님을 받고 잠들었거든.”

구백 팔십 육명?!”

응 마지막 주문은 라떼 세 잔과 특제 마카롱 두 개. 거기다 티라미슈 케이크까지 해서 삼일만삼천육백 원 카드로 결제였지. 영수증은 버려달라고 했었다구.”

이게 정도까지의 이미지 트레이닝이 필요한 일이야?! 하지만 신우는 라희의 노력인 만큼 절대로 필요한 일이라고 넘어갈 수 있었다.

우리 라희, 진짜 대단하다니까.”

신우의 칭찬에 라희의 눈웃음이 더 깊어졌다.

대단한 건 신우지. 저 아저씨를 부려먹을 생각을 하다니. 진짜 그 마음, 바다보다 넓어.”

그거야……. 저 근데, 은아한테 연락은 해봤어?”

걱정 말게나. 계속 시도 중이라네.”

부탁해.”

신우는 은아 아버지를 다시 보았다. 손님이 뜸해진 틈을 타서, 아저씨는 허리를 쾅쾅 두드리고 있었다. 일하다 허리 아픈 것 보다 더 아플 것 같았다.

 

***

 

가게 뒷마당.

신우와 은아 아버지가 쭈그리고 앉아 보랏빛이 도는 회색의 흐린 밤하늘을 보았다.

어때요? 할 만하세요?”

사람 앞날은 모르는 거구만. 내가 커피 셔틀이 될 줄이야.”

. 은아도 비슷한 소리 하던데. 투덜거리면서도 자그마치 3주 동안 일했어요.”

허이구, 진짜 대단하네. 그 계집애 성깔에 그만큼이나?”

아저씨는 호주머니 속에서 최근에는 TV에 나오기만 해도 모자이크 처리 당하는 어떤 물건을 꺼내 물었다. 뻐끔뻐끔. 그것을 맛있게 피우는 모습에는 형사다운 멋이 있었다. 그나저나 설마, 이런 걸로 여가부에 트집 잡히는 건 아니겠지?

한숨처럼 나오는 하얀 김을 바라보며 아저씨는 중얼거렸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말이다. 처음부터 나쁜 아빠는 아니었단다.”

당연히 그러셨겠지요.”

후훗, 어릴 때 은아는 날 정말 좋아했지. 귀엽기도 엄청 귀여워서는 완전 아빠바라기였단다. 그때 사진 보여주리?”

아저씨가 뒷주머니에서 꺼낸 지갑 안에는 오래된 사진이 한 장 있었다. 아저씨와 은아였다. 정말 꼬마로 보이는 은아를 젊을 적의 아저씨가 공주님 안기로 번쩍 들고 있다.

채은아가 공주님 안기를 좋아한 건 이때부터인가.

우리 은아 예쁘지? 나는 이때가 가장 행복했다. , 길진 않았다만.”

아저씨는 신우가 듣든 말든 상관없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이후에 어른의 사정 때문에 은아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만들게 됐지. 은아에게 문제가 생겼었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네 말마따나 최소한 나는 은아를 지켜줘야 했는데.”

아저씨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은아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었다. 다만, 내가 샘이 좀 많아서 말이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아저씨는 지갑을 주머니에 넣었다.

좋은 형사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고들 하더만.”

신우는 피식거리며 자조하는 아저씨를 향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좋은 아빠가 될 필요까지도 없어요.”

매섭고 싸한 바람이 불었다.

아빠라는 건요.”

신우는 눈이 따가운 이유는 그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작고 하얀 눈, 수없이 많아서 온 세상에 동시에 떨어질 것 같은 눈.

아저씨는 미성년자 구입불가의 물건을 비벼껐다.

눈이 오고 지랄이람. 악마의 똥가루 같으니.”

험악한 대사와는 달리, 아저씨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그 미소에 신우도 마주 웃었다.

꽁초는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알았다, 이놈아.”

 

***

 

크리스마스이브라 그런지 진열대는 텅텅 비었다. 덕분에 <어린왕자>의 영업도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끝났다. 가게의 불은 반쯤 꺼졌고, 다들 유니폼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엄마는 잠깐 기다려주다가 송년회 약속이 있다며 먼저 떠났다. 나머지는 혹시나 싶어 영업시간까지 은아를 기다렸지만…….

안 오려나보다. 지 엄마마냥 고집은 세서.”

아저씨의 얼굴에 체념이 비쳤다.

고맙다. 얘들아. 오늘 밤은 찜질방에서 자야겠다.”

아주 잠깐, 신우는 아저씨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신우를 눈치 챘는지, 아저씨는 신우의 볼을 꼬집었다.

내 딸 크리스마스에 혼자 두면 네놈 머리털을 전부 뽑아버릴 테다.”

, , ! 라희랑 같이 찾아 갈 거예요!”

, 그리고 이거.”

아저씨가 트렌치코트에서 조금 구겨진 선물꾸러미를 꺼냈다. 붉은 리본으로 제법 예쁘게 포장한 손바닥 사이즈의 선물이었다. 손에 만져지는 감촉은 작은 곰인형. 아저씨는 신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은아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올해는 주식하다 날려먹어서 사이즈가 좀 작지만.”

올해는?’

신우의 뇌리에 은아 침대를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곰인형이 떠올랐다. 그것도 아저씨가 선물해준 거라면.

그건 아마 아저씨가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애정이었을 것이다.

신우는 훌쩍 가보려는 아저씨를 붙잡았다.

이런 건 직접 전해주셔야죠.”

아저씨는 고개를 돌렸다.

괜찮다. 내가 지는 해라면, 넌 뜨는 해일 테니까.”

힘 있게 뿌리치고 한 손을 들어주며, 눈발 휘날리는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신우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손에 든 채,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 남자의 새로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

*

*

 

잠깐.

 

*

*

*

*

*

 

, 뭐지?’

신우는 움찔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떠났던 아저씨가, 되돌아서 전속력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 , 잘못했다니까! 진정 좀 하렴!”

아저씨가 소리치면서 신우 뒤로 파고들었다. 당황한 신우의 눈에 눈발을 헤치고 돌격하는 긴 흑발의 소녀가 들어왔다.

, 채은아?!”

유니폼 위에 패딩 점퍼로 무장한 야생의, 아니 무쌍 모드의 채은아가 나타났다!

비켜! 안 비켜?!”

신우가 옆으로 피하자마자 은아는 매끈한 검은 스타킹을 드러내며 숙달된 날아차기로 아저씨의 뒤통수를 날려버렸다. K.O. 땡땡땡!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오옷! 필살기 대디 브레이커!”

라희의 추임새가 쿡쿡거리는 웃음과 함께 즐겁게 울렸다.

눈이 쌓인 보도블럭에 대자로 뻗어버린 아저씨 앞에 은아가 섰다.

아이고, 머리야! 아빠 죽는다…….”

서글픈 음성이지만 목소리에 웃음기가 있었다. 라희와 신우의 입 안에도 웃음이 가득 찼다.

음아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용서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채은아.”

은아는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신우를 보았다. 그런 은아 앞에 신우는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선물꾸러미를 가볍게 던졌다.

은아는 한손으로 척 받아내더니 새초롬하게 투덜거렸다.

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곰돌이 인형이람.”

아저씨는 머리를 움켜쥐고 버럭 거렸다.

, 세상에서 그게 가장 좋다며!”

그게 여덟 살 때 일이야.”

그럼 도로 내놔!”

시끄러, 아빠.”

은아는 자신의 손에 들린 선물꾸러미를 만지작거렸다. 손을 꼼지락 거릴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럽고, 아빠 나 대신 일 아주 개판으로 했다며? 라희가 다 말했어.”

, 개판? , 내가 얼마나!”

아저씨를 내려 보는 은아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렸다.

일어나, 아빠.”

은아가 내민 손에 버럭 거리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음소거라도 한 듯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제대로 한 번 보여줄게.”

 

‘Closed’라는 팻말이 걸린 <어린왕자> 매장에 불이 켜졌다. 테이블에는 뒤통수에 혹이 난 아저씨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유니폼 차림의 은아는 그 아저씨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무엇을 드릴까요. 손님.”

은아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기품 있고 부드러운 말투. 아저씨는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다 라희의 눈총을 받고서야 후다닥 주문했다.

, 라떼. 시럽 많이 넣어서.”

, 손님. 과자와 빵은 셀프 서비스이오니 카운터에서 계산하신 후 드시길 바랍니다.”

아저씨는 굳이 일어서지 않았다. 은아의 모습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딸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간식인 것 같았다. 그런 아저씨의 시야 안에서 은아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져 라떼를 한잔 뽑아내고, 시럽을 듬뿍 넣어 쟁반에 담아 아버지 앞에 우아하게 내려놓았다.

주문하신 라떼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입꼬리가 크게 올라간 은아의 미소. 그 미소끝을 따라 올라가니 아주 살짝, 젖은 눈동자가 있었다. 신우는 조용히 생각했다. 내일 아침에는 엄마를 위한 사브레를 만들어야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레몬 사브레로.

아저씨는 딸의 모습을 가만히 마주보다 라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 뜨거! 게다가 너무 달아!”

그냥 주는 대로 마셔!”

팩 돌아서는 은아를 아저씨가 서둘러 붙잡았다. 그러고는 꼬옥 안아주었다. 항상 휘두르던 은아의 주먹은 부들부들 거리면서도 꽉 움켜쥐어 있었다.

 

신우는 미소 지었다.

있기만 해도 충분한 것들.’

딸과 그 딸의 아버지.

크리스마스이브의 다과.

화이트 크리스마스.

그리고 자신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라희.

 

이번 크리스마스에 작은 <어린왕자>,

산타의 선물을 차고 넘칠 만큼 많이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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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 크리스마스이브 특선 단편입니다.

Muse 13-12-24 23:19
답변  
I don't know who you are..., 잘먹었습니다. 행복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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