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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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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가 적다 SS] 하세가와 가의 일상글 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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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가와 가의 일상
15-05-05 23:02
 
 
1

눈부신 햇살에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조금만 더 자고 싶어…
어제 연습을 하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연습이라고 하는 것은 초능력 연습이다. 우연히 초능력과 관련된 책을 손에 넣어 학교에 갔다 온 뒤로 계속 연습에 몰두했다. 오빠는 “일찍 자둬.”라고 했지만 방에서 몰래 더 연습했다.
“코바토, 아침이야”
조금 멀리서 오빠 목소리가 들린다. 언제나 날 깨워주는 오빠의 목소리는 듣기 좋다. 듣기 좋은 만큼 몸도 편안해져서 더 일어나기 싫다는 게 곤란하지만. 
“코바토! 그러다 지각한다고”
오빠 목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니 아마 내 방에 오는 중일 것이다. 어느 정도 의식은 있지만 피곤해서 그런지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콩콩.
“코바토~!”
바로 손잡이가 돌아가고 방문이 열렸다.
“코바토 일어나.”
오빠가 내 몸을 흔든다.
“우음…”
“코바토!”
“으…알겠어…”
간신히 눈을 뜨고 오빠를 바라본다. 뜨자마자 보이는 건 사나운 눈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늦게 일어나는 나를 두고 화를 낸다고 하겠지만 오빠가 화를 내는 건 절대로 아니다.
“정말이지…얼른 나와”
“응.”
오빠가 나가자 몇 번이고 아침이라는 시간을 원망하면서 기지개를 편다. 온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개운함에 불쾌했던 기분이 꽤나 풀렸다.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부엌으로 갔다. 오빠는 분주하게 이것저것 나르고 있었다. 오늘 아침은 토스트인가… 츄릅.
나는 얼른 내 자리에 앉아서 준비가 끝나길 기다렸다. 오빠는 일찍 일어나 준비했던 것인지 금방 식탁이 차려졌다.
개인용 접시에 샐러드를 담고서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문다. 오늘도 적당히 잘 구워졌다. 맛있어!
“오빠의 솜씨는 나날이 늘어나는구먼”
“토스트야 토스트기가 다 해주지만… 그래도 칭찬 고마워”
토스트 때문에 당겨진 식욕이 포크질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헤한호 헤히헌호 하힜허!(계란도 베이컨도 맛있어!)”
“다 씹고 말해”
우물우물. 다시 한 번 맛있다고 이야기하자 오빠는 신났는지 미묘한 불 조절이며 절묘한 간 맞추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미안하지만 솔직히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먹는 데 집중했다.
“그러니까, 계란이 반숙에서 완숙으로 변하기 직전에 불을…”
“우움?”
입에 음식을 가득 넣고 오빠를 쳐다보자 왠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 아니야. 마저 먹어”하며 자기도 샐러드를 먹기 시작한다. “맛있으면 됐지”하면서 중얼거리는 오빠가 조금 슬퍼 보인다.
금방 접시의 내용물이며 커다란 그릇에 담긴 샐러드가 동이 났다. 난 만족하며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하품이 나왔다.
“어제 밤샜구나, 또.”
“아, 아니여! 일찍 잤어…”
이상한 부분에서 예리하다, 오빠는.
“어제는 무슨 이상한 놀이를 한 거야.”
식탁에 있는 그릇을 치우면서 오빠가 물었다. 근데 이상한 놀이라니, 난 이상한 놀이한 적 없는데. 흥.
“이상한 놀이 아니야. 초능력이야.”
“아, 요새 유행하는 독심술 같은 거 말하는 건가?”
독…신술? 뭔가 멋있어 보이는 말이다…
“그게 뭐야?”
“중학교에서는 꽤 유행하는 건데. 이것저것 연습하면 상대방 마음을 엿볼 수 있다고 하나 봐. 듣기로는 선생님의 마음을 읽어서 시험문제를 알아낸다거나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을 읽어서 고백하기 전에 준비를 한다거나 하는데… 솔직히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왜? 마음을 읽으면 좋은 거 아니야?”
멋있기도 하고.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있는데 그걸 완전히 드러내는 꼴이잖아.”
오빠는 말하면서 조금 쓸쓸하게 웃었다. 왜일까?
“게다가 니시모토라든가! 스자키라든가! 왜 삥을 안 뜯길 목적으로 그걸 나한테 사용하는 건데! 내가 화젯거리가 됐다고 조금 기대했는데에에에… 우우우우우우”
폭발했다?!
아니, 울고 있는 건가… 
아무래도 이상한 스위치가 들어간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오빠는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는지 핫, 하고 정신을 차리고 마저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남의 마음을 멋대로 읽는 건 별로 좋지 않는 거 같아.”
“응… 언젠가 독신술을 접하게 되면 주의할게”
“혼자 사는 기술이라면 괜찮겠지만 말이야.”
오빠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 난 계속 오빠 곁에 있을 건데.
“그래서 이상한 놀이는 어떻게 됐어? 성과는 있었어?”
“이, 이상한 놀이 아니랑께! 초! 능! 력!” 
“그래, 그래.”
이참에 이 자리에서 보여줘야겠다. 내 초능력을 보면 오빠도 놀라서 기절할 거야.
“오빠!”
“왜?”
“포크!”
손을 내밀어 포크를 달라는 동작을 취한다. 오빠는 별말 없이 아까까지 아침 식사를 훌륭하게 수행해준 포크를 주었다
포크를 받고 식탁에 앉아 포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흐으으으으으읏”
내 기합에 맞춰 오빠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나는 포크에 온 신경을 쏟았다. 책에 따르면 물체와 공명이 일어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 사이에 최대한 물체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서 나는 한눈팔지 않고 포크를 노려보았다.
포크를 
노려
보았다.

포크를…
포크를…
포크를…

“코바토!”
“왜?”
“이제 포크 줘, 씻게.”
“안 돼! 이제 좀만 더하면 된단 말이여!”
“그게 얼마인데.”
“음… 열 시간 정도?”
“참 애매한 능력이네.”
오빠는 초능력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남기고서, 
“그리고 너 학교 가야하잖아.”
“응…”
“계속 포크만 노려보고 있을 거야?”
“우으…”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지금까지 1mm 정도 구부러…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 여유가 없을 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
“오빠!”
“응?”
“저기! 냉장고에 브라키오 사우르스가!”
“어?”
이젠 오빠가 시선을 냉장고로 돌릴 것이다!

그때!
그때!
그때…

오빠는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워째서?!”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아니… 오빠는 브라키오 사우르스 보고 싶지 않아?”
“브라키오 사우르스가 왜 우리 집 냉장고에 있겠어”
“우리 집 냉장고 크니까 들어가지 않을까?”
“그 공룡… 우리 집보다 크다구”
“에에에?!”
나는 순수하게 놀랐다. 이름은 귀여운데. 브라키오.
오빠는 씁쓸하게 웃고는,
“아무튼 뭐하려고 했던 거야. 코바토”
“우음… 냉장고로 시선을 돌리면 포크를 힘으로 구부리려고…”
“그건 차력이지 초능력이 아니잖아”
“책에는 ‘시간이 없을 땐 상대방 시선을 돌린 뒤 힘으로 포크를 구부려서 상대방에게 보여주세요.’라고 적혀있었단 말이야…”
“뭐라고?!”
“참 덧붙여서 ‘꼭 염동력으로 구부렸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라고 했어.”
“코바토… 당장 그 책 버려”
아마 독신술을 포함해서 오빠는 초능력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나 보다. 초능력은 민감해서 힘을 쓸 때도 있는 건데.
“우우… 오빠가 초능력을 좋아하게 하려면… 다른 방법으로 염동력을 보여줄 수밖에 없나…”
“아직도 있어?!”
“잠깐만”
얼른 내 방으로 가서 책을 한 권 가지고 왔다.
가져온 책은『할 수 있다! 초능력!』.
“우와, 진짜로 저런 책이 있었구나…”
오빠는 순수하게 놀란다. 
“엣헴. 그럼 염동력 마지막장. ‘모든 방법이 실패했을 때 대처방법’”
“그전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만 있었던 거 같은데”
오빠가 신속하게 딴죽을 건다. 하지만 이 마지막 방법을 보면 오빠는 다시 놀란 표정을 짓게 될 거야. 기대하라구.
“음… 여기 있다. ‘아 컨디션이 안 좋네. 다음번에 보여줄게. 여기는 너무 기운이 안 좋아서 내 초능력이 제대로 실력발휘를 못 하는 거 같아, 라는 뉘앙스로 말하면 됩니다…’”
“그거 전형적인 사기잖아…”
사기라니, 오빠도 참…
……
………
후에?
아무리 살펴봐도 염동력과 관련된 내용은 거기서 끝이다.
어젯밤에는 공명을 일으키는 데 시간을 쏟느라 끝까지 읽지 못해서 잘 몰랐지만 지금 다시 보니까 허술하다. 힘으로 물건을 구부리는 것도… 우우우…
“…오빠 …이거 다 거짓말?”
“…아마도”
오빠가 처량하게 나를 쳐다본다.
“힝…”
“아무튼 그 책 버려.” 
“학교에서 빌린 책이라 못 버려…”
“책 관리 좀 하세요 사서 선생님”
사서 선생님한테도 한 마디 하는 오빠였다. 그나저나 반납해야겠다, 이 책.

아침 식사가 끝나고, 학교 갈 채비를 마저 한다.『할 수 있다! 초능력!』을 가방에 넣고 교과서를 확인한다. 음… 완벽해! 숙제는 완벽하지 않지만. 수학이랑 영어 어려워…
“코바토! 준비 다했어?”
오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잠깐만, 다했어!”
부리나케 가방을 챙겨서 방을 나온다.
“그럼 가자.”
“응!”
집 밖을 나서자 조금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한기에 몸을 떨었다.
“따뜻하게 좀 입지”
“그치만, 이 옷 마음에 든단 말이야.”
“몸이라도 안 좋아지면 어떡하려고”
“그때는 초능력으로 어떻게 할게.”
“아직도 포기 못했구나, 초능력…”
오빠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걸어간다. 나도 오빠와 걸음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갔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와 오빠가 다니는 중학교는 우리 집과 미묘하게 멀어서 통학하기에는 조금 피곤한 거리다. 다행히도 난 집 근처에 통학버스가 서는 정류장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오빠는 버스와 전철을 타고 학교에 간다.  
사실 오빠와 난 통학하는 방향이 다르지만 오빠는 항상 날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준다. 10분 남짓한 거리지만 걸으면서 나누는 이야기가 나는 즐겁다.
“자, 그럼.”
“어?”
어느새 정류장까지 와있었다. 생각보다 참 짧은 거리다.
“오늘은 몇 시에 와?”
묻는 걸 잊지 않는 나.
“음… 오늘 하는 만담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으려면, 네 시쯤 올 거 같아.”
“알겠어.”
오빠는 가끔 늦는 일이 있기 때문에 -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종례 시간에 잠깐 졸다가 못 일어나서 - 일부러라도 물어보게 된다.
“그럼 좀 있다 보자~”
손을 가볍게 흔들고 지금까지 온 길을 돌아가는 오빠. 나도 힘껏 손을 흔들어 오빠를 배웅한다. 몇 시간 동안 오빠를 못 보는 건 아쉽지만… 말이다.
곧이어 버스가 도착한다. XX초등학교 문구가 붙어져 있는 버스는 꽤 낡았는지 여기저기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다. 벗겨진 페인트는 기묘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 계속 쳐다보게 만든다. 오! 못 보던 자국이 있다. 근사하게 생겼네.
버스에 오르자 같은 반인 몇몇 애들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에 전학 온 지는 얼마 안 되어서 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그 아이들과 조금 떨어져서 자리에 앉았다.
그 애들은 내 행동에 조금 뭐라고 수군거렸지만 그것도 잠깐인지 곧바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제 봤던 TV 프로그램 이야기, 아이돌 이야기, 숙제 이야기… 그중에서 내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 숙제는 조금 신경 쓰였다. 
잡담을 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독신술 - 왜 독심술이라 하지? - 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빠네 학교 말고도 우리 학교에서도 꽤 유행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면 독심술을 할 수 있는지, 독신술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등에 대해서 즐거운 듯이 이야기하는 애들을 보면서 나도 억눌러 놓았던 관심이 다시 동했다. 독신술… 초능력 같고 멋있으니까. 남들은 못하는, 대단한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매력적이다. 나중에 도서실에 가서 책을 찾아봐야지.

학교에 도착에서 바로 오전 수업 시작. 오전 수업은 생각보다 일찍 끝난 느낌이다.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하세가와 양, 숙제는 좀 더 열심히 하는 편이 좋아요~”라고 이야기를 한 것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우우… 정말이야…
점심을 같이 먹자는 권유를 거절하고 얼른 도서실로 갔다. 나가는 도중에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솔직히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도서실에 들어서자 벌써 몇 명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반납대에 『할 수 있다! 초능력!』을 내려놓고 그 공간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이 표현… 이공간이라는 느낌이라 분위기가 있다!
서가를 둘러보니『할 수 있다! 초능력!』은 시리즈물이었던 것 같다. 『할 수 있다! 초능력!』은 정리 직전에 있던 것을 그대로 빌렸기 때문에 나머지 시리즈물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할 수 있다! 초능력!』, 정확히는 ‘할 수 있다!’ 시리즈라고 해야 할까. 서가 한 구석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할 수 있다!’ 시리즈는 몇 십 권을 훌쩍 넘었다. 제목도『할 수 있다! 요리!』,『할 수 있다! 연애!』,『할 수 있다! 사기안!』등 다양했다. 근데 사기안은 뭘까.
독신술… 독신술… 이건가?

『할 수 있다! 독심술!』

내가 알고 있는 제목과 미묘하게 다른데. 그렇지만 ‘독신술’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은 없었다. 오타라도 났나 보다. 일단『할 수 있다! 독심술!』을 빌리고 추가로『할 수 있다! 차력!』도 같이 빌렸다. 오빠는 분명 독신술 이야기를 하면서 차력이라는 말도 같이 했다. 그렇다면 차력도 초능력과 비슷한 게 아닐까?
점심시간이 상당히 많이 흐른 것을 확인하면서 얼른 학교 매점으로 갔다. 원래 급식을 하는 학교였는데 급식을 주는 사람들이 지난 학기 부정 입…입……잘? 아무튼 나쁜 짓을 해서 이번 학기에는 도시락이나 학교 매점으로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고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보통 이럴 때는 오빠가 도시락을 싸주지만 오빠도 이래저래 바쁜지 “미안. 코바토… 다음 주부터 꼭 싸줄 테니까, 이번 주까지만 매점으로 참아줘”라고 해서 난 오늘도 매점행이다. 매점이 싫은 것은 아니다. 특히 펩치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오빠의 도시락을 맛볼 수 없다는 건 아쉽다.
야키소바빵과 멜론빵, 펩치 캔 하나를 사서 바로 교실로 가서 먹었다. 오물오물. 야키소바는 역시 오빠가 만든 게 맛있어… 우으으. 오빠가 빨리 도시락을 만들어줬으면… 
펩치 캔을 따고 한 모금. 크흐흐. 이 애매한 달달함이 정말로 좋다. 목을 따끔따끔하게 만드는 탄산도. 멜론빵은 집 가는 길에 먹어야겠다.
야키소바빵의 마지막 한 조각을 목으로 넘긴다. 먹는 동안 계속 주위에서 “꺄아~ 귀여워…”라든가, “공주님 같아!”라든가 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반에 그런 인물이 있었던가? 
어릴 적에 특별한 존재인 공주님을 동경하긴 했지만 예전에 ‘공주님도 편한 것은 아니다’라는 느낌의 프로그램을 본 이후로 내 환상은 완전히 박살났다. 현대의 공주님들은 정말로 일을 많이 해서 나는 절대로 공주님은 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특별한 존재에 대한 동경은 멈출 수 없어서 지금은 초능력 탐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만일 정말로 공주님이 우리 반에 있다면 힘내라고 말하고 싶다. 고생이구나, 공주님…

오후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하세가와 양, 혹시 숙제 힘드니?”라고 물어 와서 울 뻔했다.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숙제가 어렵긴 어렵다. 나중에 오빠한테라도 도와달라고 해야 하나… 부끄러운데.
통학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오빠 말대로라면 1시간 후면 오빠를 볼 수 있겠지. 오늘 저녁은 뭘 해달라고 할까? 고기!
저녁 식사를 생각하니 배가 고파진다. 점심시간 때 사두었던 멜론빵을 꺼내 조금 떼어 먹는다. 냠냠. 그러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공주님 때문인가?
오물거리면서 있다 보니까 어느새 내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했다. 일어서자마자 주위에서 “하세가와 잘 가!”라는 인사가 날아 왔다. 깜짝 놀라 쉰 목소리로 “아! 안녕…”이라고 답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아암. 드디어 집이다. 어쩐지 피곤한 게 어제 밤샘의 피로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방에 가서 옷을 적당히 던져 놓고 일상복으로 갈아입는다. 숙제는… 밤에 오빠한테 도와달라고 하자.
거실로 가서 소파에 앉는다. 그전에 부엌에 들러 펩치를 꺼내왔다. 이걸로 준비 완료! 『할 수 있다! 초능력!』은 실패했지만 아직 나에겐 두 권의 책이 남아 있다. 우선『할 수 있다! 차력!』부터 펼쳐서 팔랑팔랑 넘긴다. 음… 근성과 기합이라… 뭔가 있어 보이는 단어다. 흐아아아아아암.

근성과 기합…
근성만 있으면 차력은 손쉽다.
기합을 넣어서 포크를 구부려라!
근성과 기합으로 안 된다면 사과해라!

어쩐지『할 수 있다! 초능력!』 염동력 편과 비슷한 건 기분 탓이겠지.
근성과 기합…
근성과 기하…
근성…
근…
쿠우.

*
*
*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
아무리 걸어도 빛은 보이지 않는다. 
걷다 지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런데.
수군거리는 말들이 들린다.
듣기 싫어 귀를 막았다.
동정하는 얼굴들이 보인다.
보기 싫어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무리 귀를 막아도, 아무리 눈을 감아도 없앨 수가 없었다.

도와줘…
도와줘… 제발…
나를 여기서 꺼내줘.

목소리는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울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누군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꼬옥 안아 주었다.
그건… 너무나도 따뜻해서 더욱 눈물이 났다.

그건 분명…

“우움… 오빠…”
“어? 왜 코바토?”
“어… 어… 오빠?!”
어느새 소파에서 잠들었나 보다. 몸을 뒤척이니 담요가 몸에서 떨어진다. 
“후아암…”
크게 기지개를 편다. 하품 때문인지 눈물이 조금 났다.
“잘 잤어?”
“우응…”
“저녁 다 됐으니까.”
그러고 보니 좋은 냄새가 난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거의 7시가 다 됐다. 나… 3시간 넘게 잤나 보다.
“배고파”
“그래, 그래. 오늘은 스키야키야~”
“고기!”
“오늘 고기가 세일이라는 전단지가 기억나서 말이야. 만담 보고 무리해서 장보러 다시 나갔지. 후. 후. 후.”
오빠는 스키야키를 준비하면서 엄청난 인파에 휩싸이면서까지 고기를 손에 넣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고기를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을 무용담처럼 계속 이야기했지만… 내 관심은 이미 고기에 박혀 있었다.
“고마워! 오빠!”
“아무튼 고기는 많으니까 오늘은 마음껏 먹어도 돼~”
“와아아아아~~~!”
나는 얼른 식탁으로 달려갔다. 오늘만큼은 나도 식탁 차리는 것을 도와줬다.
“웬 일이야?”
“고기!”
“참…”
오빠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포근한 손길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후다닥 식탁을 차리고 내 자리에 앉아 고기가, 정확히는 스키야키가 완성되는 것을 기다렸다. 오빠도 한껏 기대하는 눈치다.
“참, 코바토.”
“왜?”
“오늘 만담을 보면서 생각한 게 있거든. 한 번 들어볼래?”
“우에에…”
생각해보니 오늘 만담하는 날이었구나. 만담 하는 날이면 오빠는 눈빛이 좀 더 초롱초롱해져서 - 주위에서는 누군가 잡아먹을 것 같은 인상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 즉석에서 만든 개그 같은 것을 들려준다. 안타깝게도 한 번도 재미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오늘도 재미는…
“…토끼가 사실은 변장한 거북이였고, 거북이가 사실은 변장한 토끼였던 거야! 그런데 여기서 극적인 반전을 노리기 위해서 토끼와 거북이가 한 번 더 변장을 했고, 결국 토끼는 토끼였던 거고, 거북이는 거북이였다는 이야기로 결말을 변화시켜봤어.”
괴상해… 이미 개그의 차원을 넘어선 이야기가 되고 있어… 
오빠의 긴 설명이 끝나고 평가를 요구하는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 같아, 오빠… 아하하…”
“흠, 우화를 빌려서 하는 개그는 조금 난이도가 높아지는지도 모르겠네. 그렇다면 조금 더 친숙한 이야기가 좋을까…”
의외로 내 애매한 대답에 납득한 것 같았다. 다음 주에 좀 더 해괴한 개그가 나오겠지만…
고기는 맛있었다. 몇 번이고 오빠한테 주의를 받은 통에 채소도 꾸역꾸역 먹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오빠도 만족한 듯이 - 음식보다는 개그가 때문인 것 같았지만 - 저녁 식사를 마쳤다. 
특별 서비스로 식기까지 개수대에 넣은 다음에 다시 소파로 가서 아까 보던『할 수 있다! 차력!』을 이어서 봤다. 조금 기대했지만 오빠가 또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는 않았다. 흥.
파라라락. 책 페이지를 넘기면서 재밌어 보이는 대목을 찾는다. 처음부터 읽는 것 좀 있다 할 거야!
그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엉덩이의 힘’

조금 읽어보니, 사람의 엉덩이에는 잠재된 힘이 다른 부위에 비해 3~5배나 많다고 한다. 그래서 초보자가 처음 차력을 접할 때, 엉덩이부터 시작하면 수월하다고 그렇게 적혀있었다. 
오오… 나한테도 숨겨진 힘이, 그러니까 엉덩이에 무시무시한 힘이 있다는 거지?
『할 수 있다! 차력!』은 연습 방법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방법 중 엉덩이로 나무젓가락 부러뜨리기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나무젓가락은 생각보다 단단해서 엉덩이로 부러뜨리기 어려운데 그렇기 때문에 나무젓가락으로 연습을 하면 자연스럽게 엉덩이 근육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고 - 이것이 가장 기초가 된다고 한다.
하나하나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감탄하면서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오빠!”
“왜?”
“나무젓가락 어디 있어?”
“음… 아마 찬장에 있을 거 같은데? 한 번 찾아볼래?”
“알겠어!”
찬장에서 나무젓가락을 찾는 건 의외로 쉬웠다. 오빠가 깔끔한 성격이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도 웬만해선 정리하기 때문이다. 나무젓가락이 충분히 있다는 점도 오빠답다. 
목표물인 나무젓가락 한 뭉텅이를 들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리는 순서는 상당히 간단했다.

1. 나무젓가락을 엉덩이 사이에 고정한다.
2. 양쪽 엉덩이 힘으로 구부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린다.

1.이 어려울 때는 끈 등으로 묶어주면 좋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엉덩이 사이에 나무젓가락을 위치시켰다.
그리고 엉덩이로… 엉덩이로…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엉덩이 근육을 평소에 사용해보지를 않아서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도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시도해본다.
참 근성과 기합도 중요하다고 했던 것 같다.
이참에 기합을 넣어서…
“하아아아아아앗!”
“뭐해? 코바토.”
“흐엑?!”
깜짝 놀랐다. 
“나무젓가락… 그것도 엉덩이에 대고…”
점차 오빠의 표정이 알 수 없게 변해간다.
“연습이야. 연습.”
“이젠 어떤 연습인 거야…”
“엉덩이로 나무젓가락 부러뜨리기라고 차력의 기본이 된대!”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나.
“아. 그래서 나무젓가락을 달라고 했구나…”
“응, 열심히 연습해서 나중에 보여줄게~”
“아니… 괜찮아…”
오빠…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 무슨 일 있나?
“조심하고, 나무젓가락은 다 쓰지 마… 언제 써야할지도 모르니까”
“응! 아껴 쓸게”
그리고 오빠는 오빠 방으로 돌아간다. 
오빠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한 만큼 열심히 해야지!
난 다시 나무젓가락을 엉덩이로 부러뜨리기에 매진했다.

시간이 흘러 10시가 가까워졌을 무렵.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아까 분명 잤는데.
내 주변에는 나무젓가락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다. 사실 조금 과장했다.
나를 위해서 희생한 나무젓가락 수를 대략 어림잡으면 10개 남짓? 솔직히 오빠가 방으로 들어간 이후로도 많이 부러뜨리지는 못했다. 좀 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깨끗하게 쪼개지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지만 이젠 슬슬 씻고 싶다…
“오빠~”
부르면서 오빠 방으로 간다.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잘 안 들렸나 보다.
문을 열고 오빠 방으로.
“으헉?!”
“뭐하고 있었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책 읽고 있었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오빠. 그러면서 안 보이는 데다 들고 있던 책을 숨긴다. 궁금한데…
“무슨 책?”
“별 거 아냐… 공부에 도움 되는 책이야. 아하하”
시선을 피한다.
수상하다.
저번 집에 살 때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계속 물어봐도 대답해주지는 않았던 터라…
오늘은 꼭 그 대답을 듣고 말 테다!
“무슨 책?”
“아… 몰라도 되는 책이야…”
“무슨 책?”
“음… 그냥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책이야.     
왠지 울 것 같다. 여러모로 곤란한 것 같은데…
그렇지만 이때야 말로 기회지! 
잠깐 동안 침묵에 오빠는 내가 포기한 줄 알았나 보다. 내게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나는 그 순간을 노려 기합과 함께 오빠가 숨긴 책을 다시 꺼냈다.
“안 돼에에에에에에에~~~~~~~~~~~~~~~!”
후후후. 그럼 볼까?

『친구 100명 만드는 방법』

후에? 무슨 책일까.『친구 100명 만드는 방법』을 숨겨놨던 주변에는『커뮤…니케이…션(처음 보는 단어다)의 이해와 실천』,『첫인상과 분위기』,『실전 대화』등이 꽂혀있었다. 재미는 없어 보인다. 
오빠는 후다닥, 내 손에서 책을 빼앗아 아까 있던 자리에 꽂아 넣었다.
“으으… 정말 들키고 싶진 않았는데…”
상당히 침울해져 있다.
“근데 왜? 코바토.”
그러면서도 용건을 묻는 오빠. 
“같이 목욕하자!”
일단의 목적은 달성했기 때문에 - 그리고 하도 오빠가 축 쳐져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캐묻는 걸 그만두고 원래 오빠에게 하려던 말을 한다.
“아… 그래… 목욕물 받아둘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방 밖으로 걸어 나간다. 나도 같이 따라 나갔다.

아직 혼자서 머리를 감으면 샴푸가 눈에 들어가기 때문에 오빠가 꼭 필요하다. 샴푸모자도 꼭 필요하고… 저번에 혼자서 감으려다가 눈을 못 뜰 정도로 매웠던 적이 있다. 그땐… 으으… 상상하기도 싫다.
오빠는 목욕을 하면서 “아까 본 일은 절대로 비밀이다! 알겠지, 코바토?”라고 몇 번이나 내게 말을 걸어왔다.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빠에겐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나 보다. 게다가 오빠의 애처로운 박력 때문에 “응, 알겠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목욕을 끝내고 냉장고에 있던 펩치를 꺼내 마셨다. 크아~ 역시 목 넘김이 예사롭지 않다, 펩치는.
오빠는 목욕이 끝나자마자 방으로 들어갔다. 목욕하면서 조금 기분이 풀린 것 같았지만,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중에라도 미안하다고 이야기해야겠다.
목욕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쉽게 하품이 나오고 만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어차피 내일은 휴일이니까… 내일 차력이랑, 그리고 독신술을 연습하면 되겠지.
그대로 방으로 직행해서 잘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 역시 옷은 다른 데 던져 놨다 - 바로 침대로 뛰어들었다.
눈은 저절로 감겼고 몸은 나른하다.
나는 바로 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2

으으…
머리가 아프다.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거리며 정신을 차린다. 머리가 아픈 것도 휴일이라고 무턱대고 잔 것이 때문인 듯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나 엄청나게 잤네…  벌써 오후다. 그래도 점심시간 부근인 건 다행이면 다행이다.
귀중한 휴일의 절반을 버린 것을 아깝게 생각하면서 거실로 나갔다.
묘하게 썰렁하다. 오빠는 어딜 나간 걸까?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오빠 방문으로 다가갔을 때,
문 앞에 이상한 쪽지가 붙어 있었다. 

‘코바토, 오늘내일은 내 방에 들어오지 마. 정말정말정말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 걱정은 말고. 정말정말정말 미안한데 아침에 카레 만들었거든. 밥은 그걸로 대충 먹어줄래? 정말정말정말 미안해.’

정말이 많은 건 그렇다 치고. 무슨 일이지?
무심코 방문을 두드렸다. 
콩콩.
아. 그래도 들어가지만 않으면 괜찮겠지.
“오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조금 더 두드려보기로 한다.
콩콩콩.
“……응?”
조금 작지만 오빠 목소리다.
“아… 오빠?”
“……코바토구나”
“저기 무슨 일인가 해서…”
“……정말 아무 일도 아니니까. 정말정말이니까.”
“아… 알겠어.”
기운 없는 대답이 이어져서 더 물어보기 힘들어졌다. 
일단은 오빠가 있는 건 확인했으니까 그걸로 괜찮으려나…
오빠가 만들어 놓은 카레를 먹고서 방에서 차력 책을 조금 보고 있자니 다시 호기심이 발동했다.
오빠는 혼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혹시 오빠도 초능력 연습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어제 이상한 책이 많이 있었지. 코무니캐이션…이었던가 그건 설마 마법의 주문이 아닐까?
점차 오빠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어제처럼 무작정 들이닥치기에는… 오빠가 책을 들켰을 때 표정이 아직도 선명해서 못 하겠다.
다른 방법이 뭐 없을까?
그러자 독신술 책을 빌렸던 것이 떠올랐다.
분명 상대방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고 했던가. 만약 내가 그 능력을 익힐 수만 있다면…
오빠가 싫어했던 것 같지만, 오빠가 삥을 뜯는지 안 뜯는지만 확인 안 하면 괜찮지 않을까?
바로 나는 차력 책을 덮었다.

“독심술은 심오한 기술입니다.”로 시작하는『할 수 있다! 독심술!』은 차근차근히 독신술에 접근하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일단 책이 설명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첫 번째.
전화를 하라.

전화? 이게 독신술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아, 그러고 보니 주의사항에 “의심은 금물, 믿음이 중요합니다.”라고 적혀 있어서 우선 믿기로 했다. 독신술이니까 이러면서 대단한 게 적혀있을 거야.

1. 휴대전화/가정용 전화기 확보(안 되면 종이컵 전화기라도 괜찮습니다).
2. 상대방에게 전화를 건다.
3. 상대방이 전화를 받으면 물어본다. ‘네 생각이 뭐니?’

으으응?
전화기를 들고 오빠한테 전화를 걸었을 때 다시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단순히 전화 거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여전히 힘 빠진 목소리다.
“아…”
막상 전화를 받으니까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책에 적혀 있는 대로 말해 버렸다.
“어어… 네 생각이 뭐니?”
“……아앙?”
오빠는 당황하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
이 방법은 실패인가 보다.
그 이전에 이 방법이 옳은 건지도 모르겠다. 
의심을 지울 수 없어 책을 다시 살펴보니, 지금 건 준비 운동 비슷한 거라고 했다. 다행이야.
그럼 다음 건…

두 번째.
편지를 써라.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편지? 편지가 정말 독신술과 관계있는 건가? 의심은 좋지 않지만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그래도 써보기로 한다.

편지 쓰는 법 가이드.
- 상대방 안부를 물어본다.
- 자신의 근황을 알린다.
-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을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이 부분 중요!) 물어본다.
- 맺음말로 마무리.

……
………
단순한 편지쓰기잖아?!
어떻게 편지 한 통을 완성하긴 했지만… 
“마음이 중요하다.”라고 해서 마음을 담아서 쓰긴 했지만, 이건 단지 편지쓰기다.
으으으… 설마 이것도 준비 운동인가.
쓴 편지를 들고 방 밖으로 나왔다. 아, 그래도 쓰긴 썼으니까 오빠한테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오빠 방문에는 틈새가 없어서 곤란하다. 어쩌지……
살짝 문을 열고 거기다 던져 넣기로 했다. 그 정도는 괜찮겠지. 들어 간 건 아니니까!
손잡이를 잡고 살짝 돌리자 쉽게 문은 열렸다.
그리고 문틈으로 살짝…
…?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틈에서 서늘한 기운이 새나왔다. 조금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온몸이 소름이 끼쳤다. 
이렇게 추운 방에서 오빠는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괜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아주 살짝만 방문을 더 열고 오빠를 보려고 했다.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오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침대 위에 누워 있었으니까. 윙윙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빠는 침대 위에서 자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자는 것처럼 보였으면 상관없었을 테지만 나에겐 그렇게만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죽…
화들짝 놀라면서 그런 생각을 지웠다.
그럴 리가 없어. 오빠…
여태까지 오빠 몰래 하려던 것을 까먹고 소리 나게 문을 열고는 오빠에게로 달려갔다.
“오빠!”
방안은 상당히 추웠다. 윙윙 거리며 돌아가는 에어컨이 찬바람을 끊임없이 뿜어대고 있었고 창문도 열려 있었다. 오히려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따뜻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얼른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닫은 다음에 오빠의 상태를 확인했다. 
조금 괴로워하면서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거칠지만 숨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오빠 이마를 만져보니 열도 꽤 있는 듯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지?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오빠가 이렇게까지 아팠던 적은 없어서…
머리를 계속 굴려보았다. 
그리고 내가 아플 때 오빠가 해줬던 것을 기억해냈다.
찬 수건!
예전에 감기에 걸려서 정신이 몽롱할 때 이마에 찬 기운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아마 그때 올렸던 것이 수건이었던 것 같다.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서 안 쓴 수건을 꺼내고 찬물로 적셨다. 꽉 짜긴 짰는데 물이 조금씩 떨어진다. 으으…
어쩔 수 없이 그 상태로 오빠 이마에 댔다.
흐에에… 얼굴로 물이 흐른다.
다른 수건을 꺼내서 흐르는 물을 닦고 있을 때,
“으…… 누구……?”
오빠가 깼다.
“아…… 코바토…구나……”
“흐에엥… 오빠…”
아파서 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빠 목소리를 들으니까 괜히 마음이 놓여서 코가 시큰해진다.
“후에에에엥… 오빠 괜찮은 거지????”
“아…… 감기인 것 같은데… 그러다 감기 걸려, 코바토…”
“괜찮당께!!!”
“아니… 안 괜찮지만…”
그리고 잠시 동안 말이 없는 오빠.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 저기 책상에 있는 감기약…… 좀 줄래?”
“응!”
바로 달려가, 약상자라고 생각되는 것을 집어서 오빠에게 건넨다.
오빠는 일어나서 근처에 있는 물병 - 얼음 알갱이들이 떠다니고 있는 게 보인다 - 에 있는 물로 약을 먹은 다음에 다시 몸을 눕혔다.
“코바토… 지금 몇 시야?”
“어? 어… 오후 8시쯤 됐어”
“그래…?”
다시 생각에 빠지는 오빠.
“…이 정도면 괜찮겠지…… 꽤 지독한 감기 같으니까…”
“응? 뭐라고 했어?”
“아니… 혼잣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오빠 상태가 더 중요하니까.
“코바토, 여기 있다간 감기 옮으니까…”
“아니, 괜찮다니껜!”
“참…”
오빠는 희미하게 웃었다.
“오빠는 지금 아프니까, 내가 오빠를 도와줄 거야!”
“그래, 그래…”
“그래서 난 뭘 하면 돼?”
당차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실 찬 수건 말고 잘 모르겠다.
“그럼… 수건 좀 갈아 줄래…? 그리고 물 닦을 수건도…”
우우… 미안, 오빠…

몇 차례, 수건 갈기가 끝나는 동안 - 끝내 나는 물기를 꽉 짜지 못했다 - 약 때문인지 오빠는 아까보단 편안한 상태에서 잠을 잤다. 그러자 나도 조금 마음이 진정되었다. 
오빠 곁에서 책을 읽었다. 독신술 책은 반납하려고 책가방에 넣어둔 상태다. 그 대신, 차력 책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면서 관심이 가는 내용을 확인했다. 지금 당장은 못하지만… 보는 건 괜찮겠지.
독신술 책과 달리 차력 책은 역시 대단했다. 이것을 해낼 수만 있다면 정말로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차력을 연습해서 특별한 존재가 된다면 오늘 같은 일도 좀 더 수월하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오빠도 아무것도 못할 때가 생길 것이다. 오늘처럼 아픈 날이거나, 무슨 문제가 생긴다거나. 거의 상상도 안 해본 일이라서… 실제로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내심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 될까?
오빠 없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역시 잘 모르겠다.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여서, 선생님이 숙제로 내준 수학 문제보다 어려운 문제여서…
어…?
근데… 조금 어질어질하다…
머리도 무겁다.
졸렵나…?
추운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잠깐 눈을 감고 있는다는 것이 아예 잤던 것 같다.
그런데 머리가 너무 아프다.
몸도 으슬으슬 떨린다.
콜록, 콜록.
콜록.
“……으으으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아팠던 것은… 많이 자서 그런 게 아니라 감기 기운이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을 하면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방에 있었다?
분명 오빠 방에서 책을 읽다가 잤던 것 같은데… 
으음… 몽롱해서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점심 부근. 아예 하루가 지난 것 같다.
뭔가 오묘해진다.
콩콩.
“코바토, 일어났어?”
“어? 어어…”
그리고 오빠가 들어온다.
나도 몸을 일으키니, 이마에서 수건이 흘러 떨어진다. 아, 은근히 시원했던 게 이거 때문이었구나.
“몸은… 괜찮지는 않겠구나. 미안, 코바토”
오빠가 왜 사과를 하지?
“내 감기를 너한테 옮긴 것 같아…”
“아, 아녀…”
“그래도 말이지…”
머리를 긁적이는 오빠. 
“이러려고 그랬던 게 아닌데 말이야.”
나지막하게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응? 뭐라고?”
“아, 아니야. 어쨌든 배고프지?”
그리고서는 오빠는 밖으로 나갔다. 바로 쟁반에 이것저것 챙겨오는 오빠.
“먹기 좋을지 모르겠네.”
가지고 온 것은 죽이었다. 아마 색깔로 보건데 계란죽이 아닐까 싶다.
“먹어야지 약도 먹고 그러니까.”
한 숟가락을 떠서 조금 식히고는 바로 입으로 넣으니까, 고소한 계란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따끈따끈해지는 기분이다…
“후에에…”
“천천히 먹어. 다 먹으면 약 갖다 줄 테니까.”
“하힜허(맛있어)!”
“그래, 그래”
멋쩍게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오빠는 바깥으로 나갔다.
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약을 먹은 다음에 얼른 잤다. 오빠가 중간에 이마끼리 대면서 열을 쟀는데 오빠도 열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오빠 이마도 따끈따끈해서…
오빠가 이래저래 고생하게 한 것 같아 많이 미안해졌다.
해롱거리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몸이 조금 괜찮아서져서 몸을 일으켜보니 바깥이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시간도 저녁때를 지난 것 같고.
일어난 김에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방에서 나갈 때,
오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열이 있으니까… 내일은 어떻게든 학교를 뺄 수 있지 않을까. 괜찮을 거야…… 양아치 이미지도 있으니까… 우으으으으으…… 그래도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건 기뻐해야 하는 걸까…”
“오…빠?”
“어어어어?”
상당히 놀란다.
“코바토, 어, 어, 어, 어, 어, 어, 어, 언, 제 일어났어?”
“방금 일어나긴 했는데…”
“혹시 다 들었어?”
“무슨 이야기했어?”
일단 모른 척했다. 엄청 곤란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아, 별 이야기 안 했어. 그냥 세상 돌아가는 게 슬퍼서, 그거, 그거 이야기했어. 응.”
아닌 것 같지만,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독신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알 수도 있었겠지만, 그 책은 이젠 반납할 거라서.
아무튼 오빠가 숨기는 일을 억지로 캐물어서는 오빠가 또 축 처질 게 뻔하니까. 이걸로 끝내기로 했다.
“코바토,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으음… 고기?”
“고기라니… 괜찮겠어?”
괜찮을 것 같은데, 고기.
“잠깐만 기다려 봐”
그리고서 분주하게 무언가 만들기 시작한다. 난 그걸 지켜보았다. 심심하기도 했고.
잘게 썰고, 살짝 볶고, 조금 끓이고.
한 30분쯤 지났을 때,
“다 됐다!”
“오오!”
나도 따라서 감탄하고 말았다.
“처음 만들어본 거라서, 맛이 어떨지 모르겠네.”
그러면서 오빠가 내놓은 것은 죽이었다.
“죽?”
“아까랑은 다른 죽이야.”
“으음…?”
확실히 색깔은 다르지만……
“코바토가 바랐던 고기가 들어간 고기죽, 이야!”
“아…”
썰고 볶고 했던 게 아마 고기였나 보다.
“아픈 사람이 바로 고기 먹기는 좀 그럴 거 같아서 죽이랑 한번 섞어 봤어. 내 나름의 방법으로 만든 건데, 어떠려나?”
그리고 오빠는 내 반응을 살핀다. 처음 만든 음식을 내놓을 때 오빠는 상당히 긴장하면서 반응을 살피는데 대체로 맛은 괜찮지만 가끔 폭탄이 섞여 있기도 해서…
어쨌거나 맛을 본다.
“흐음…!”
“어때?”
“뜨…”
“뜨?”
“…뜨거워”
맛 자체는 그냥 죽이었다. 고기 건더기가 조금씩 느껴지긴 하는데 고기 자체의 맛이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죽 맛이네”
“아… 죽 맛이구나”
묘하게 실망하는 오빠였다.
그래도 한 그릇은 비웠다. 

오빠가 적신 수건을 가지고 와서 몸에 있는 땀을 닦아주고는 나간 뒤로, 나는 계속 방에서 쉬고 있었다. 내일쯤이면 열도 많이 떨어질 것 같다. 오빠도 빨리 감기가 나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열 때문에 학교를 뺀다고 했으니까 아직 많이 아픈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조금 오빠가 걱정되었다.
한번 물어나 볼까.
오빠가 일찍 자라고 했지만, 조금 늦게 자는 건 괜찮겠지.
그리고 다시 오빠 방문 앞에 섰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는데 그 사이로 오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하세가와 코다카라고 합니다!”
갑자기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와서 당황했다.
“너무 기운찬가? 조금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긴장된다… 어떡하지? 저기… 안녕하세요. 하세가와 코다카…라고 합니다아아아아아…… 모르겠다! 내일 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빠는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눕는다. 
“오빠?”
무심코 말을 걸어 버렸다…
“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그럴 줄은 알고 있었지만 역시 놀라는구나. 오빠…
“어, 어, 어, 이, 이, 이, 이건 말이지!!!!!!!!!!”
“뭐하고 있는지 알아.”
“어? 알고… 있었어?”
“대충은…”
솔직히 그거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 딱히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닌데. 사실은 숨기고 있었으니까 숨긴 게 맞긴 하지만! 숨기려고 숨긴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으으으으 뭐가 어떻게 된 거냐면…”
“연기 연습 중이잖아. 어디 무대에 서?”
“어?”
갑자기 말이 없어지는 오빠. 
“…아니야?”
“아, 맞아. 맞아. 연기, 아! 나 연기하고 있었지. 참. 하하하”
“오빠도 감기잖아. 무리하지 마…”
“간단하게 하는 거라.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코바토.” 
오빠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준다.
“에헤헤”
“코바토는 몸 괜찮아? 내일 학교 갈 수 있겠어?”
“어… 하루 푹 자면 괜찮을 거 같아!”
“다행이네, 그럼 일찍 자둬.”
“알겠어!”
이번에 들이닥친 건 오빠가 침울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방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 있으니까 이것저것 생각하게 된다. 이번 주말은 별일 없는 것 같으면서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사실 아팠던 게 다지만. 아픈 것도 일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진짜 고생은 오빠가 다했지. 게다가 아픈데도 연기 연습까지 하고.
오빠도 할 일이 많을 텐데 내가 오빠의 일을 늘린 게 아닐까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 그러고 보니까 사과할 일도 있었다.
여러모로 오빠한테 미안한 날이다.
빨리 낫는 게 최우선이다.
그래야 차력을 연습할 수 있지.
어쩌면 오빠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은 그만하고 얼른 자기로 했다. 너무 많이 자서 잠이 잘 오지는 않았지만…

3

다음 날.
다행히도 열은 내려서 나는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오빠는…
“쿨럭, 쿨럭, 쿨럭. 코바토… 미안. 오늘 난 학교에 못 갈 것 같아…”
커다랗게 기침 소리를 내면서 오빠는 학교를 빠졌다. 감기가 다시 심해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등교를 하게 되었다. 오빠가 정류장까지 나오려고 했지만 내가 말렸다. 이럴 때는 밖에 나오는 건 별로 좋지 않으니까.
혼자서 걸어가는 10분 남짓한 거리는 이상하게도 썰렁해서 자연스럽게 기분이 축 처졌다. 애들이 버스 안에서 말을 걸어 왔지만, 제대로 반응하지는 못했다. “침울한 것도 귀여워!”, “갖고 싶어~” 이런 이야기가 들려온 것 같은데…

오전 수업이 끝나고, 나는 반을 나섰다. 저번처럼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지만 거절하고 도서실로 갔다.
『할 수 있다! 독심술!』을 반납하고 감기와 관련된 책을 빌렸다.『할 수 있다! 감기!』라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은 안 빌렸다. 뭔가 감기를 걸리는 방법이 적혀있는 거 같아서… 
오후 수업 내내 감기 관련 책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오빠를 제대로 도와줄 것이라고 마음먹으면서. 
오후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꺄아아아아아악!!!! 양아치가 나타났다!!!!!”
“삥을 뜯을 거야!!!!!!!”
“엄마~~~~~~~~~~~~~~~!!!!!!!!!!!!!!!”
무슨 일이진 모르겠지만 소란스러웠다.
학교를 여러 군데 다니긴 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어서 살짝 관심이 갔다. 가는 길에 슬쩍 보고 가자고 생각하고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근처로.
거기에는 오빠가 있었다.
오빠는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였다. 오빠는 무언가 물어보려고 한 거 같은데 애들한테 물어보려고 할 때마다 애들은 울거나 비명을 질러서 오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사실 초등학교에 중학생이 온 것만 하더라도 - 오빠는 중학교 교복을 입은 상태였다 - 주목받기 쉬운데 게다가 오빠를 모르는 사람이 오빠를 보면…… 그래서 이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았다.
내가 몇 번 오빠를 불렀지만 다른 애들 목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오빠한테 다가가려고 해도 계속 애들한테 밀려 다가가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에 선생님들이 등장하고, 오빠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대충 무슨 일로 왔냐고 묻는 것 같았다. 오빠보다 더 험악한 표정으로. 오빠는 당장에라도 울 것만 같았다.  
오빠한테 가야 해.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빠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를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오빠를 몰아세우기만 할 뿐이다.
답답했다. 오빠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게 너무 답답하고 답답해서…
“그만 혀!!!!!! 이 멍충이들아!!!!!!!!!!!!!!!!” 
소리를 지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순간의 정적이 찾아왔다. 
어째선지 눈물이 넘쳐흘렀다. 울면서 오빠에게로 달려갔다. 어느새 애들도 길을 터주고 있었다.
오빠도 오빠대로 당황했는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달려오는 나를 가만히 안아 주었다. 
“미안, 코바토…”
왜인지 사과하는 오빠였지만, 우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사과해야 하는 건 나인데…
정적은 다시 웅성거림으로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저 멀리서 허겁지겁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이 상황을 보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재빨리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들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오빠에게 나지막하게 사과를 하고는 모여 있는 애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뛰어 오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입구 쪽에서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아빠였다.
…?
아빠가 여기에 왜?
“헉, 헉, 허억… 여기 교무실이… 어엉 코바토? 누구야!!!!!!!!!!! 우리 코바토 울린 놈이!!!!!!!!!!!!!!!!!!!!!!!!!!!!! ”
아빠는 오자마자 시비를 거셨다. 오빠는 바로 아빠를 진정시키고 귓속말로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정신을 차리고는,
“아… 흠, 흠. 처음 보는데 결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이래저래 오해가 겹친 것 같네요. 제 아들을 의심하신 건 정말 불쾌합니다만, 사과를 하셨고 아들도 그걸로 괜찮다고 하니까… 이 이야기는 이걸로 끝내는 것으로 하죠. 코바토 선생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코바토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주변에 서 있던 선생님들은 아빠와 오빠에게 다시 사과를 하고는 흩어졌다. 아빠는 우리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러 교무실 쪽으로 갔고, 남아 있는 것은 오빠와 나뿐이었다.
“그럼 갈까, 코바토?”
“어디를?”
“음… 빵집 같은 데? 아빠, 꽤 걸릴 것 같으니까.”
“알겠어.”
어느 순간 보니 난 오빠 손을 잡고 학교를 내려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늦게 일어난 아침, 오빠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건 내 용건으로 상담을 하고 싶다는 우리 선생님의 전화였다. 아빠가 외국에 있는 상황에서 오빠는 지금 당장 안 될 것 같다고 거절하려고 했으나, 선생님이 아빠가 안 된다면 오빠라도 괜찮으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해서 오빠는 오빠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학교에 가려고 했던 것 같았다. 오빠 자신하고라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나. 아무래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 다음 주 초에 만나겠다고 약속을 한 오빠는 자기도 학교에 가야한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사실 오빠 학교가 끝나고 가도 상관은 없었을 것이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학교를 빼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주말 동안 일부러 감기에 걸리려고 했다고. 감기로 학교를 빠지고 상담에 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 오빠는 그래서 그날 창문을 연 다음 에어컨을 틀고 얼음물까지 껴안고 잤다고 했다. 어제 말한 연기 연습도 사실은 상담 연습이었고.
아빠는 오빠가 “코바토 관련해서 학교에서 상담이 있을 것 같은데 무리해서 오실 건 없을 것 같아요.”라고 보낸 오빠의 문자 메시지에 하던 일을 모두 중단시키고 가장 빠른 비행기로 오늘 학교에 도착한 모양이다. 
저녁 대신으로 간 고기 뷔페에서 아빠는 “괜히 코다카 네가 신경 쓰게 만들었네, 정말 미안하다.”하고 고개를 계속 숙이셨고, 오빠는 그만 하라고 아빠를 뜯어 말리느라 고생했다.
상담 내용은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던 것 같았다. 아빠가 선생님처럼 “요새 공부 어렵니?”라고 물어봐서 우울해진 것만 빼고는. 참, “우리 딸이 학교의 공주님이라니…”하면서 웃다가 화내다가 울다가 하셨는데 그건 대체 뭐지?
 아빠는 무리하게 중단시킨 일 때문에 밤 비행기로 다시 외국으로 나가셨다. 공항까지 마중을 나갔는데 “으어어~ 코바토~ 미안하다~”하면서 나가는 아빠의 모습이 처량해보였다.

그날 밤.
나는 오빠 방문을 두드렸다.
콩콩
“으음… 코바토…?”
오빠는 자고 있었나 보다.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늘 같이 자도 돼?”
“어… 감기가… 괜찮으려나…”
“책에서 그랬는데 감기가 다 나았을 때 항, 항, 항… 아무튼 뭐시기가 생긴다고 했는데 그거가 있어서 괜찮을겨!”
“그래, 그래…”
오빠는 침대 위에서 한 사람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준다.
“에헤헤…”
“쿠우…”
오빠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오늘 일이 꽤 피곤했던 것 같았다.
오늘은 꼭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또 미뤄야할 것 같다. 사과의 말이랑 그리고…
오빠가 듣지 못하더라도.
나지막하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속삭인다.

“오빠… 고마워. 좋아해.”

 
+ 작가의 말 : 따로 분할하지 않고 전체로 그냥 업로드합니다. 11시 20분에 다시 글씨 크기 수정했습니다. 글씨를 키우니 겹쳐 보여서 이건 그냥 포기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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