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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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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이세 팬픽단편] 역시 내 작은 용사님은 추하다.글 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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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 작은 용사님은 추하다.
13-07-12 21:08
 
 

 

 "남자의 예쁜 모습? 다들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은 소리를 하네. 그딴 게 어디 있어. 남자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든 추할 뿐이라고."

 야니의 눈이 붉게 빛났다.

 "그 말은 낭군님께서도 추하다는 말인가요?"

 나는 야니를 바라보았다. 야니 바이스는 그 어떤 농담도 땅꼬마와 연관지어 버리는 순수한 아이였지. 항상 날 보면 물 만난 고양이마냥 캬릉캬릉거리지만 그 순애보 같은 성격은 보면 볼수록 귀엽다.

 귀여우니까 더 장난을 치고 싶어진다.

 "당연한 거 아냐? 남자로 태어난 이상 추함은 언제나 따라붙는 거야. 온라인 게임에서 절대로 벗겨지지 않는 속옷같이."

 "그 비유는 이해하지 못 하겠사와요. 싸움을 거는 거라면 받아주겠는데요."

 야니는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오른손이 움찔움찔 움직이고 있었다. 워워, 너무 놀렸나보다. 싸움을 걸 든 말든 받아주려는 의지가 충만해 있었다. 아까 지윤이에게 하려던 것처럼 내 쪽을 향해 손끝을 열지 말지 고민하고 있겠지. 야니의 뒤에서 하트(뱀파이어, 7)가 곤란한 듯 경직된 표정으로 내게 눈치를 주고 있었다. 7살 꼬맹이 주제에 건방지게스리. 다 안다고.

 "봐주라 좀. 그때 맞은 뒤통수 아직까지 쑤신다고."

 야니를 놀려먹기 좋다는 뜻이지 야니와 싸우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이쯤 해두자고. 몇 달은 지났을 해묵은 상처 때문에 뒤통수에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 그때 정말 아프긴 했지. 살살 웃으면서 나는 야니를 진정시켰다. 7살 꼬맹이가 뒤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도미연은 뭔가 다른 부분에 마음이 걸렸는지, 약간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죠. 신의 양이 시하 군한테 키스해서였던 것 같은데."

 "아아."

 그런 일도, 있었지. 왠지 머리가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

 뇌의 작용은 신비하다. 의식적으로 아무런 상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어떤 키워드를 제시하면 뇌는 무의식적으로 그 키워드에 대해 여러가지를 연상하게 마련이다. 그 연상작용의 힘에 기대 인류가 번창해 온 것이겠지만 정신계 능력에 관해서는 이런 특성이 가장 강력한 약점이 되곤 한다.

 실제로 카이아스의 정신계 능력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라든가 다크네뷸러의 정신고문법이라든가 하는 멘탈 어택도 대부분 이런 뇌의 연상작용을 응용한 것이다. 어느 키워드를 제시하고, 그 키워드로부터 다른 키워드를 연상하게 유도하고, 그렇게 얻은 키워드를 재차 투입해 원하는 정보를 도출해낼 때까지 반복하는 귀납적 방법론이다. 무식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어쨌건 도미연이 내뱉은 '키워드'가 내 뇌를 멋대로 열어서는, 내게 그 때의 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여간 누가 '강제개정' 아니랄까봐. 강제개정 탓인지, 야니 탓인지, 뒤통수가 찌릿찌릿했다.

 시하의 말버릇처럼 시하가 날 귀찮게 해댄 역사를 책으로 쓴다면 본편 외전 설정집 단편집에 특전 브로마이드와 한정 피규어 핸드폰 줄을 합쳐 23권쯤 되겠지. 8권쯤에 해당하던 시점, 그러니 시하가 예쁘게 여장을 하고 봉란 고교에 잠입한 직후의 일이다.

 다크 네뷸러에 납치되었던 인질들을 구출한 시하는 평소처럼 개박살이 난 채로 돌아왔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급히 실려왔고, 나는 평소처럼 시하의 몸을 기계수리 하듯이 고쳐놓았고 침대 옆에 앉아 시하가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이 좀 들어?"

 시하가 내는 인기척을 느끼고 나는 시하가 누워있는 침대를 바라봤다. 시하는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다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하에게도 내 병원 천장이 자기 집보다 익숙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건 요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여긴, 어디죠?"

"아아- 안심해. 병원이야. 지혈제를 썼고, 응급 수술을 했어."

"으사양반, 제 좋지 못한 곳은 괜찮은 거죠?"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원래부터 없었던 거 아닐까?"

"그랬지…"

 시하는 좋지 못한 곳이 아파오기라도 했는지 깊은 신음을 흘렸다. 자기가 지금껏 여장을 하고 있었다고 새삼스럽게 깨달았나 보다. 하긴 그 애는 여장이 정말 어울려서 아예 여자애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었다. 솔직히 말하면 여장한 모습이 내 취향이기도 했고.

 젠장할, 역시 교복 입은 여고생은 최고라니까. 그 민둥민둥하고 뽀송뽀송하고 사프란 향기 나는 살결이라니. 반드시 주물럭거려줘야 되잖아. , 사프란 향기가 아니라 피투성이였지. 여장시키면서 주물럭거렸을 때랑 헷갈렸다.

"희진이는요?"

"걘 체력이 다 되어서 영양제 먹고 충전 중. 걔는 너보단 튼튼하거든."

"하하그렇겠죠…"

 희진의 치료는 진작에 내 소관에서 벗어났지만 나는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오러 관련이나 내상에 대해서는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지만 시하의 심리 상태는 내 소관이었고, 의사로서 환자에게 괜한 걱정을 시킬 필요는 없었다. 듣기로 그 때 희진은 맥거핀이 휴대폰 충전기랑 주사기랑 뭐더라, 영웅본색? 이름도 기억 안나는 요상한 홍콩 느와르영화 DVD를 가져다가 자그마한 손으로 조물딱조물딱해서 만든 오러충전 보조기를 뒷목에 푹- 꽃힌 채로 충전 중이었다고 했었나. 이렇게 말하고 보니 무슨 전자기기 충전하는 것 같다.

 원래대로라면 그런 식의 급속오러충전은 강기발현자들에게 결코 좋지 않았겠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인질들을 구출해 내고 나서 희진은 방전 상태에 야니는 맥거핀이 조정 중, 시하는 부상, 도미연은 전투원 쪽이 아니고, 맥거핀도 마찬가지니까, 그 당시에 꼬맹이 일행에는 즉시전력이 부족한 셈이었다. 비교적 양호한 상태였던 메이드 씨 빼고는. 반면에 저쪽(다크 네뷸러)은 언제라도 이쪽을 습격할 수 있는 상태였고. 그러니 전력 공백을 줄이려면 별 수 없이 급속회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아무리 야매라도 일단은 의사라서 그런 엉터리 치료방식엔 동의하지 않았지만, 별 수 없이 허가해 줄 수 밖에 없었다. 하여간 이 놈이고 저 년이고 귀찮은 애들 투성이다. 이쪽 파티는.

 시하는 그 외에도 지 하렘 멤버들을 챙기는 등 진상 짓을 부려 날 귀찮게 했다. 멤버들이 무사하다고 하나씩 확인하고서야 시하는 안심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그때 보았던 진료시트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온몸 구석구석 멀쩡한 곳 없이 야니 초기 상태의 5% 정도만큼 엉망진창이었지. 한마디로 피투성이였다. 그렇게 다쳐놓고 와서 날 귀찮게 하고, 기껏 고쳐놓으니 희진이 걱정에 하렘 타령부터 하는 모습을 보자니 기가 찰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정말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만큼 사소한 부분에서, 나는 시하의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신기하네."

 "? 뭐가요?"

 "네 그 (웃기지도 않는) 하렘 말이야."

 "으잉, 신의 씨 방금 전에 작게 뭐라고 말했죠?"

 "무슨 소리야?"

 이 때는 모르는 척 했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귀는 밝아요.

 "아닌가? 여튼, 그럼 신의 씨도 드디어 제 하렘에 들어오실 생각이…!"

 "지금 모습으로 그런 말하니까 꽤 끌리는걸? 가볍게 삼각목마부터 시작할까?"

 "하하하아니요."

 정색할 것까진 없었는데. 그 때 그 모습이었다면 분명 철장에 채찍까지도 도전할 수 있었을 텐데! 내 평생의 실수다. 약해져 있는+ 여장하고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아예 조교를 시켜놨어야 했는데.

 어쨌건, 나는 시하에게 내가 깨달은 점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희진이 걔는 네 그 (신기한) 하렘 멤버가 아니지?"

 "네 뭐. 그렇죠."

 시하는 인정했다. 그 당시에는 흰 꼬맹이에 부잣집 아가씨랑, 야니, 그러고보니 이 때쯤 은주도 요 녀석한테 은근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까 3.5명이었나. 하렘이니 뭐니 떠들기 시작한 건 도미연한테 잔뜩 능욕당하고 난 뒤에 반발심으로 자기도 하렘을 이루겠다면서 투덜거렸을 때부터였겠고, 야니를 만난 이후에는 하렘마스터니 뭐니 하면서 잘난 척 해대기 시작했겠고.

 어쨌거나 이 꼬맹이 녀석의 (괴상한) 하렘에 '노희진'이라는 애는 분명 없었다. '희진'이라는 키워드에 시하의 표정이 정신공격을 받은 것처럼 확연히 어두워졌다. 나도 이 때는 마음이 덜컥했었지. 환자에게 괜한 이야기를 하면 치료에 방해가 된다. 그 애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만 않았다면 이쯤에서 대화를 멈췄을지도 모른다.

 "희진이는희진이한테는 그렇게 못해요."

 , 반대로 그 애가 먼저 용기를 내서 말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 그 애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나는 되물었다.

 "?"

 "…"

 "그 애, 소꿉친구라고 하지 않았냐? 왜 그런거 많잖아. 소꿉친구 히로인 같은 거 말야."

 나는 시하가 희진에게 하렘에 들어오라는 식의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은주를 비롯해서- 아마 자기가 만난 모든 여자들한테 하렘하렘 거리면서 떠벌댄 적은 많았다. , 나에게도 몇 번인가 그랬었지. 가끔씩 마주치는 카이아스 여자 요원들한테도 그 이야기를 꺼냈는지 은주가 심각하게 주의를 줬던 기억도 난다. 결국엔 본인이 그 수렁에 제일 깊게 빠지고야 말았으니 인생무상인 셈이지만.

 그런데 희진이한테는 놀랍게도 조용했었지. 이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오랫동안 같이 싸웠고, 게다가 소꿉친구고, 항상 얼굴을 맞대는 희진이에게만 유독 거리감을 두는 것이다. 처음엔 시하가 희진을 싫어하나 했는데, 매번 희진이를 걱정하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고.

 시하는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고민을 하는지 주저하는지 나를 올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무슨 짓을 하나 싶었다.

 "됐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래. 아직 회복 덜 되었으니까, 푹 쉬어."

 다시 말하지만 환자에게 괜한 이야기를 시키면 치료에 방해가 된다. 나는 다시 시하를 눕혔다. 고쳤다곤 해도 아직까진 겉만 멀쩡한 상태일테니 회복되려면 한참은 안정을 취해줘야 했다. 시하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괜히 쓸데 없는 소리를 했다며 자책하는데 시하가 침대에 누운 채로 내 쪽을 보며 얼빠지게 미소지었다.

 "뭐야?"

 "…, 아니에요. 어떤 할아버지한테 했던 말이 떠올라서요. 상황은 다르지만."

 "?"

 "그냥이것저것 생각해봤어요. 역시 신의 씨라면말해도 되겠구나 싶기도 하고."

 "카운셀링은 별로 취미가 아닌데? 정신과는 전공도 아냐."

 그래도 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말해봐. 나는 쓰게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해줬다. 용사의 고민을 들을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은 법이다. 왜냐면 이 용사는 너무 건방지거든. 변태에 에로 꼬맹이기도 하고.

 시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고민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하고 싶었던 말을 어떻게 정리해 꺼내야 할지 고민했겠지. 이럴 때는 용사도 별 수 없는 10대 꼬맹이구나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시하는 입을 열었다.

"한 누나를 만났어요."

"은주?"

"아니, 은주 씨도 일단 누나긴 한데 다른 누나랄까…"

"그럼 나냐?"

"아니요."

"왜 난 즉답이냐 꼬맹아? ?"

 환자만 아니었다면 가슴을 주물러줬을거다. 그 몇 분 전에 이미 충분히 주물러서 질려있던 참이었거든? 그리고 내 몸 설정상으로는 스물 여섯이거든? 은주보다 어리거든? 누나거든? 더 따지려들다가 관두었다.

 "그래서, 그 누나가 왜?"

 "그 누나가 그랬어요.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으니까 포기하라고."

 ", 보통 그렇지."

 희진이와는 플래그를 세울 수 있을리가 없으니 포기했다는 식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어떤 사람인진 몰라도 꽤나 시하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커플을 두고 볼 수 없는 솔로의 영혼이나.

 시하가 아니라고 했어도 나는 은주를 의심했지만, 곧 나는 시하가 만났다는 누나가 은주가 아니었음을 확신했다. 지금의 은주라면 몰라도 그 때의 은주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란 건 없다!'면서 어떻게든 그 일을 붙잡고 끙끙거렸을테니까. 어휴, 그 애는 시하가 아니었으면 대체 누가 데려갔을런지.

 시하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아뇨, 그러니까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라고 했어요."

 솔로의 영혼보다는 시하를 마음에 들어하는 누나였었나. 또 그놈의 하렘 운운의 피해자였나보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빨리 포기하고, 더 발전적이고 좋고 나은 일을 하라고. 해도 안 될 일에 매달리지 말고, 그 다음 좋은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어요."

 "하드보일드하네."

 그리고 어쩌면 시하가 만났다는 그 누나는 터프하고 '하드보일드'한 여자일지도 모르겠다.

 "하프보일드에요."

 반숙? 지금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지만 당시에 나는 시하가 그저 말장난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반숙이든 완숙이든 알게 뭐람. 맛만 좋으면 되었지.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이때 만난 누나가 리린이었는줄 내가 어찌 알았겠어.

 "그래. 그 하프보일드한 누나는 왜 그런 말을 했지?"

 내심 '노희진은 포기하고 날 보란 말이야'라는 식의 수라장 전개를, 되도록이면 비키니 차림의 소녀들의 몸이 얽히고 섥히고 뒤섞이는 그런 끈적한 전개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시하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저는…"

 나는 망상을 관두고, 손짓으로 더 말해보라고 재촉했다. 시하는 망설이다가 뭔가 좋지 않은 것이라도 토해내는 듯이 고백했다.

 "전 희진이한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했어요."

 "…?"

 얼굴이 저절로 굳어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라니들은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희진이는 내게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맥거핀도 도미연도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나는 시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신의씨라면 말해도 되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럼 그 애들은 모르고 있었나. 시하는 그 애들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당사자인 희진은나는 희진이 보여주던 시하에 대한 증오를 떠올렸다. 아니지, 정말로 희진이는 시하를 증오하고 있었나? 희진이가 시하에게 짜증을 내는 건 늘상 있는 일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건 더 흔한 일이었다. 그 행동들은 시하가 미워서였나? 시하가 저지른 잘못이 그 애를 상처입혔기 때문이었나? 아냐, 그랬다면 희진이 내게 말해주지 않았을리가. 혹시 시하가 자기 멋대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아니었을까.

 "돌이킬 수 없으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혼란스러운 와중에 시하는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분한 표정으로 천장을 노려봤다. 그 애의 모습을 보고 나는 더 이상의 질문을 관두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하는 자기가 희진이에게 무언가 엄청난 일을- 그것도 용사의 힘으로도 어찌 돌이킬 수가 없을 만큼 뿌리깊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분하지만, 분하고 어이없고 한스럽고 짜증나고 화가 나지만, 그걸 어떻게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그래서 포기했어요."

 시하는 다른 의견은 있을 수 없다며 그렇게 단언했다. 시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내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통곡을 했을법한 그런 슬픈 얼굴이었다. 나는 그 슬픈 표정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시하가 보여준 그 표정은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추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라는 거야'라고도 하지 않았다. '왜 본인한테 직접 사과하지 않는거냐고 이 답답이야'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대체'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희진이 앞에서 하렘이니 뭐니 떠든거냐 눈치도 없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눈을 감아 눈물을 떨어트리는 꼬맹이를 내려다보면서, 그래, 전력공백을 메우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그를 조용히 내버려 두었을 뿐이다. 대신에,

 그렇게 욕을 처먹으면서도 육중한 몸을 힘겹게 이끌며 카이아스에 눌러붙어있는 한 돼지놈을 떠올렸다.

 하루종일 지도만 쳐다보면서 죽지 못해 사는 어느 할배를 떠올렸다.

 그리고나라는 존재, '소라'로든 '신의'로든, 일 관계든 사적인 관계든,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일상에서든 비일상에서든, 반토막난 반도 안에서든 물 건너 섬나라에서든, 이제껏 마주쳤던 수많은 남자들을 떠올렸다. 다시 한 번 시하의 눈감은 모습을 확인하고, 그리고 내린 결론은 단 한가지.

 역시 남자들은 추하다.

 용사님이라고 해서 별 다를 건 없었던 것이다. 거대로봇을 격파해 맥거핀을 도와주고, 도시 폭파 계획을 막고, 은주를 농락하고, 야니를 구원하고, 여장까지 하면서 인질들을 구출해낸 용사라고 해도 추한 건 추한 거다. 그 애의 말이 전부 맞다면 그 애는 언제나 자기가 상처입힌 피해자의 옆에서, 이렇게 아픈 자신을 보라고 자기 잘못을 자책하며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어요."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애는 용사였다는 점이다.

 "대신에 다른 착한 일을다른 좋은 일을 할 거에요. 그래서 노력할거에요."

 그제서야 나는 시하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그 애가 지금껏 해왔던 일들도, 그에 얽힌 비밀들도, 그 애가 지금껏 어떤 마음을 먹고 여기까지 왔는지를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맥거핀을 구했다. 희진이를 구할 수 없어서.

 삼원시를 지켜냈다. 희진이를 지켜줄 수 없어서.

 야니를 구원했다. 희진이를 구원해줄 수 없어서.

 "그래서 희진이에게…"

 시하는 말을 삼켰다. 하지만 나는 뒤의 말을 알 수 있었다.

 '속죄한다.' 용사는 단지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희진이에게 하렘이니 뭐니말할 수 있을리가 없어요."

 그 애는 희진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희진이를 하렘 멤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시하는 베개에 눈물을 떨어트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 매번 상처투성이 몸으로 이곳에 오는 걸까, 왜 매번 무리를 하는 걸까, 왜 매번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다니는 걸까, 영원히 고통받는 AS직원처럼 끊임없이 고쳐도 고쳐도 망가져서 돌아오는 시하를 보며 들었던 의문을 나는 그제서야 해결했다. 그 애는 '속죄'라고 했다. 그러니 매번 이런 자해나 다름없는 짓을 벌여왔던 것이겠지. 일부러 무모한 짓을 선택하면서, 혹은 강요당하면서.

 역시나 내 작은 용사님은 추했다.

 그래서 안심했다. 안심, 그래 안심이었을지도. 나는 시하의 추한 모습에 안심했던 거다. 그 애가 추한 남자애라서 다행이라고, 다른 남자들과 차이가 없는 추한 인간이라서 다행이라고, 나는 그런 얼빠진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는 처음 그 애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 살아있는 사람같지 않은 위화감, 걸어다니는 시체, 엉덩이 무거운 어느 할배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 표정, 평범한 10대 소년이 낼 수 있을만한 성질이 아닌 달관한 표정.

 까짓거 추하면 어때, 당시에 비하면 얼마나 인간스럽냐 이 말이야.

 그래도 어쩐지 안쓰러워져서 나는 시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흥분해서였는지 미열이 느껴졌다. 시하가 놀라서 두배로 커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귀여운 표정을 보고 있자니 풋,하고 나답지 않은 웃음이 나왔다.

 "…, 역시 카운셀링은 내 분야가 아니네. 그래도, 그래도 말야. 꼬맹아."

 시하의 그 돌이킬 수 없는 잘못에 대해서는 결국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나는 시하에게 더 이상은 묻지 않기로 했다. 이런 상담은 아마추어인 내겐 무리다. 카운셀링이랍시고 어설프게 환자의 트라우마를 건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 잘 될거야. 넌 용사잖아."

 그리고 분명 다 잘 되겠지.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시하는 맥거핀이 다크네뷸러에 잡혀가기 전에 맥거핀을 구했다.

 시하는 삼원시가 폭파당하기 전에 삼원시를 지켜냈다.

 시하는 야니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 전에 야니를 구원했다.

 그렇다면, 늦지 않기 전에 반드시 도착하고(絶大時下) 지각을 용납하지 않는(磨勘嚴守) 시하의 운이 계속 이어진다면, 어쩌면 정말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리기 전에 희진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속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희진과 다시 제대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바보 같은 상상을 문득 해버렸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시하의 눈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속눈썹이 손가락을 간지럽히는 감각이, 눈꺼풀이 움찔움찔거리는 감각이, 손끝을 적시는 촉촉한 눈물의 감각이 그대로 느껴졌다. 뭐라고 시하에게 말해줘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카운셀링은 내 분야가 아니다. 정신과는 내 전공도 아니다. 그래도 시하는 내 고객이니까, 환자니까, 나는 환자를 안심시켜야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더 쉬라고. 용사님. 희진이는 어디 안 가. 아직 안 늦었으니까."

 그리고 그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

 "그러고보니 그런 일도 있었죠. 신의 양이 시하 군한테 키스해서였던 것 같은데."

 그런 일도, 있었지왠지 머리가 활짝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후의 일은 잘 기억이 안난다.

 그것이 야니의 노림수였다면 정말 대단한 실력이라고 칭찬해줬을 정도로 그 이후의 기억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언제나 바라보기만 했었던 환자용 침대에 내가 드러누워있는 진귀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야니가 어쩌고 희진이가 어쩌고 하는 소문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한설의 얼굴과, 입술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느낌과 함께 내가 그 애한테 키스를 했었다는 사실만이 어렴풋하게 남았을 뿐이다.

 시하는 그 키스를 치료행위의 일환으로 알고 있었나보다. 내가 변명한답시고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신체접촉이나 체액교환을 이용한 회복은 흔한 치료수법중에 하나였다. 특히 내 고향인 물 건너 쪽에서 많이 발전된 방법이고. 마력충전이니 성마법(性魔法)이니 하는 것들도 이런 수법의 연장선상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스킨쉽에 의한 안정효과에 기대는 치료방법도 있고. 프리허그도 그렇고. 아하, 카운셀링법의 일종이라고 둘러댔구나. 프리키스.

 그래도 그 변명이 거짓말이었다고 당시의 나도 지금의 나도 인정했다.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나는 어째서 시하에게 키스를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봤었다. 나를 공격한 야니에 대해서 떠올리기 싫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답은 의외로 간단히 나왔다.

 추하다는 말은 싫어한다는 말과 동일시되지 않아서였다.

 누구에게나 특이한 취향은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도 씨네 아가씨는 가진 것도 많으면서 쓸데없이 도벽이 있다. 예를 들어 은주는 그다지 정의롭지도 않은 이 반도의 나라를 사랑했다. 예를 들어 맥거핀은 자기랑 키차이도 얼마 안나고 건방지고 매번 무모한 짓을 하는 시하를 좋아했다. 야마도, 미래선 할아범도, 카이아스 국장도 제각기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 성질 급하고 배려심 없는 사람이라면 당췌 이해할 수 없을 만한 특이한 무언가를 좋아한다. 하지만 난 이래뵈도 남의 취향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아니지. 그때 키스를 했던 건, 역시나 내가 순애보 소녀 취향이어서였겠지.

 땅꼬마 용사님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야니나, 희진이와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하는 시하나. 둘 다 똑 닮게 소녀 감성이었으니까. 최근에 와서는 그런 상상도 해본다. 야니가 시하를 좋아하는 이유도 어렴풋이 동질감을 느껴서가 아니었을까하고. 두꺼운 모포같은, 끈적거리는 꿀같은 그런 소녀스러운 분위기 말이다. 하여간 진상에 바보 커플들이다.

  '진상에 바보 커플들'에 속하는 또 다른 두 사람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두 사한 사람과 뱀파이어를 바라보면서 나는 짧게 '아아'라고 대답했다. 도미연이 재차 물어보았다.

 "왜 키스같은 걸 했는데요? 그렇게 남자 싫어하면."

 나는 마음을 굳혔다.

 그 사건 이후에 야마한테 부탁해서 나름대로 시하와 희진 사이에 있었던 일을 조사했고, 카이아스의 어설픈 일처리 방식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관련 파일을 확인했고, 소녀법관인지 뭔지 하는 년때문에 부끄러운 일을 당했다고 징징거리는 야마를 적당히 달래줬고, 미래선 할아범이 날 보고 음흉하게 미소 지으면서 내민 새끼 손가락을 힘껏 꺾어줬고, 그런저런 사소한 일을 겪은 후에,

 역시나 내 작은 용사님은 추했다고 다시금 확인한 일은, 비밀로 부쳐두자고.

 지윤이나 7살 꼬맹이야 상관없지만 하렘(웃음) 멤버들에게 굳이 자신들의 연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어쩌면 둘일지도 모를) 꺼내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봤자 득볼 일이 없다. 그녀들은 지금 상태가 딱 좋다. 더 나아간다면 속이 뒤집어지게 시하와 진상짓 하는 장면을 보는 재미도 없어질테고. 특히 저기 야니 앞에서는 말하면 안되겠지. 다크 네뷸러가 있을 적처럼 영원히 고통받는 AS직원이 되는 건 사양이다. 요즘도 슬슬 그럴 기미가 보인다고. 내 성격으로나 직업상으로나 일거리는 적으면 적을 수록 좋다.

 대신에 나는 변명이라고 해야할까, 내심 그럴듯한 말로 내게 주목해있는 관심을 돌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 녀석, 그때 여장하고 있었잖아?"

 
+ 작가의 말 :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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