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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대학을 가도 외톨이는 외톨이다 #1
16-08-27 15:50
 
 

추억. 추억이란 게 사람들에겐 어떤 식으로 다가올까? 대체로 사람들에게 있어 추억이란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이 든다.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 혹은 너무나 무료하고 따분할 때 추억을 되새겨 본다면 금세 살아갈 힘을 찾게 해주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신비한 기억이 추억이란 것 아닐까.

반대로 추억이란 것에 너무 심취하다 보면 과거에 갇혀 앞을 바라보지 못할 때도 있는 법이란 생각이 든다. 과연 전자와 후자 중 나는 어떤 경우일까. , 생각해 보자니 난 전자도 후자도 속하지 않는 것 같다.

난 분명 과거의 추억을 사랑하고 그 추억을 발판으로 삼아 하루하루를 힘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는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거나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가 추억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는 이유는…….

, 갑작스럽게 무슨 말을 하는가 싶을 거란 생각이 드네. 다시 말하자면 난 지금 10년 전에 겪었던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라 생각하고서 열아홉 살까지 살아왔다. 그것도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스무 살이 되니 11년이 되는 걸까.

, 지방에 사는 학생들은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에 가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9월 달에서 11월 달만 돼도 적당히 가능성 있는 녀석들은 수도권 쪽에 있는 대학교에 원서 하나 둘쯤은 시험 삼아 써보는 경우라고 해야 하나. 그게 아마 정상적일 경우일거다.

하지만 난 미리 말하자면 전형적인 비정상에 속하는 사람이다. 왜냐고? 첫 번째, 난 지금 19살의 언제 민감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고3 수능생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그 수능생은 수도권 중에서도 제법 편차치 높은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점수를 따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어이없을 텐데…….

난 서울 강남에 살고 있지만 대학교를 지방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다. 무슨 미친 생각을 하고 있냐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거라 보지만 사람이란 원래 그 나라 인구 수 만큼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참고로 지금 난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커다란 아파트 17층에 있는 1701호라는 집 거실에서 무릎을 꿇은 채 한 사람의 설교를 듣고 있는 중이다.

이유는 당연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길 때문이지.

분명히 성적 잘 나오면 다 된다고 한 건 엄마 아냐? 갑자기 말이 바뀌면 내 나름대로 곤란한데.”

“‘내 상식선에서 이해가 되는 경우에라고 분명히 말 한 것 같다만?”

대충 길러 삐죽삐죽한 머리에 평균보다 살짝 마른 몸, 눈가엔 피곤함이 서려 옅게나마 다크 서클이 서려있고 거기에 교복까지 차려 입은 누가 봐도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티를 풀풀 풍기는 게 바로 나, 강유성이라는 놈이다. 오늘은 122. 12년 동안이나 공부하고 노력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수능결과 발표일이다. 참고로 내 평균은 1.5등급. sky쪽을 노릴 수는 없지만 적당한 수도권 쪽의 대학이라면 장학금까지 노릴 수 있는 좋은 성적을 받았다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점에 있어서 만큼은 지금 무릎 꿇고 있는 내 앞에서 한 쪽 무릎을 굽힌 채 앉아있는 사람도 동의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빛을 띈 한복을 입고 단아하게 정리한 단발을 한 여성. 둥근 갈색을 한 눈에 전체적인 이목구비는 차가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표정이지만 피부나 외견으로 봤을 땐 정말이지 스무 살이라 해도 믿을 만큼 아름다운 이 사람이 바로 내 어머니 신녀 최선화란 사람이다.

신녀라는 게 뭔가 싶을 거라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동네에 흔한 점쟁이나 무녀들 보다는 훨씬 사주라던가 작명 같은 걸 잘 하는 점쟁이라고 보면 되려나. 우리 엄마가 참 대단한 게 원체 기똥차게 사주를 잘 맞추다 보니 정치인들도 엄마한테 사줄 보고 어마어마한 돈을 쥐어준다는 거다.

덕분에 이런 으리으리한 집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온 나였고 그 덕분에 공부를 함에도 전혀 힘든 걸 느껴본 적은 없었다. 전부 내가 피곤하고 내가 귀찮은 것들뿐이었지. 그런 내가 수능을 치르고 나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솔직히 말하면 엄마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이미 원서는 다 썼으니까 되돌리긴 글렀거든? 수도권 대학은 꿈도 안 꾸니까 말이야.”

하아……. 공부 헛시켰나…….”

자리에서 일어나 조선시대에서나 쓸법한 곰방대를 가져와 불을 붙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상당히 큰일을 저지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사람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는 건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걸 억지로 참고 있다는 표시니까. 미리 말하지만 우리 엄마, 폭발하면 정말 감당할 수 없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 빌딩 숲속을 벗어나 진짜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진 산뜻하고 시원한, 정말로 마음이 편해지는 지방으로 내려가고 싶단 생각에 미친 듯이 책만 봤는데 지금 접어버리기엔 억울하지 않나?

미쳤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앞에서 계속 말했던 추억. 그래, 난 지금 내가 느꼈던 추억을 다시금 느끼고 싶기에 지방으로 내려가겠다는 어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9살 때, 엄마가 신기를 채운다고 지방으로 내려가 지냈던 적이 있다. 정확한 지역은 대구. , 잊을 수가 없지.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푸른 나무와 풀들이 뿜어내는 시원하고 산뜻한 공기에 마음이 치유되는 듯 한 기분은 10년이 지나도 도저히 잊으려야 잊을 수가 있을까. 거기에 그때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았던 또 다른 가족……. 아름다운 경치보다도 더욱 더 추억속에 자리잡은 또 다른 가족에 대한 기억이 지금 내 삶의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엄마라는 분께선 내 마음을 인정해 주진 않는 모양이다. 곰방대를 뻑뻑 피워대면서 안 그래도 싸늘한 얼굴을 더욱 찡그리고 있으니 지금 내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은 말 안해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모두 수도권 대학에 가고 싶어 미친 듯이 공부하는데 넌 오히려 지방으로 가겠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니?”

재떨이에 재를 털고 난 뒤 한숨을 내쉬며 우리 싸늘한 어머니께선 말을 잇는다.

대체 뭣 때문에 그런 건지 이유나 들어보자. 그래, 1.5등급이나 노력해서 타신 분께서 지방으로 내려가려는 이유가 뭐지?”

이유고 뭐고 예전부터 계속 말했잖아, 그건…….”

다시 생각해 보면 참 멍청한 이유가 아닐까 하기도 하지만 역시 생각해 봐도 대답을 달리 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만나고 싶다. 빌딩들이 가득한 도심이 아닌 초록빛의 숲에서 함께 지냈던 가족들과 만나고 싶다. 분명 10년이나 지났으니 만나기는 힘들 것이고 만난다 해봤자 모두 자신들만의 새로운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겠지. 그러니 그때 느꼈던 풍경만이라도 마음껏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정도는 해도 되는 것 아닐까?

엄마도 알잖아. 9살 때 대구에 가서 살았던 거. 그때 풍경도 참 좋았고 함께 지냈던 가족그 누나들 엄마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지?”

그 녀석들 말하는 가 보네. 설마 지방으로 내려가려는 이유가 같이 목욕했던 누나들을 보고 싶어서라니 정말이지 너란 놈은…….”

사람 순식간에 변태 만들면 상당히 기분 나쁜데.”

잊지 않으려야 그럴 수가 없지. 그때의 그 기억 하나만 보고 지금껏 살아왔는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나. 그리고 짧은 시간동안 함께 살았던 가족들. , 방금 말한 대로 그때 함께 살았던 가족들은 네 명의 누나였다. 솔직히 얼굴은 지금 가물가물해서 기억이 나지 않긴 하지만 함께 살았던 그 순간의 기억만큼은 확실히 행복했고 즐거웠다고 내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나이가 어리니 같이 목욕을 했단 것 정도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긴 한 것도 있고.

아무튼 난 지금 이 싸늘한 것 같지만 화나면 엄청나게 무서운 어머니를 상대로 내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든 난 지방으로 내려가 산뜻하고 깨끗한 공기와 나무들이 꽉꽉 자리 잡은 나만의 낙원을 느껴볼 생각이니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다. , 전혀 없고 말고.

하지만 내 의견을 피력하기에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아주, 매우, 많이, 정말 무섭다는 게 좀 흠이라고 해야 하나…….

지방 내려가서 네 멋대로 살라고 너 공부시킨 건 아닌 것 같다만?”

의견 피력은 매번 한 것 같은데? 인간관계 죄다 정리한 거 보면 모르겠어? 아무리 일이 바쁜 엄마라고 하지만 이건 좀…….”

입이 상당히 건방져 졌네, 우리 아들. 그에 상응하는 각오를 하고 내뱉는 말이겠지?”

…….”

역시 엄마의 무서움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내 나름대로 강하게 나와 봤지만 그저 날 일직선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체력이 쫙 빨려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지간한 각오가 아니었다면 금세 꼬리 말고 하라는 대로 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기가 센 사람이니까…….

하지만 포기할 수가 있나. 말 그대로 인간관계마저 정리하면서까지 공부했던 나인데 지금 와서 꼬리 말고 도망칠 수는 없지. 인간관계를 정리했단 게 무슨 말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어 굳이 말한다면…….

친구가 생길 때마다 학년 바뀔 때 쯤 되면 관계 전부 정리하고 공부에만 미치도록 전념한 나라고.”

지금 내 상황은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라고 해야 하나? 수업이 끝나고 난 뒤에 넉넉하게 시간이 생기는 와중에도 같이 놀 친구 하나 없이 그냥 집에 돌아오는 일상도 이제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 친구 없이 공부한 덕분에 이런 성적이라도 받아온 게 아닐까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기 위안이 되긴 한다만, 아니, 자기 위안도 할 필요 없이 내가 원해서 외톨이가 된 건데 그럴 필요가 있나?

그래, 내가 원해서 인간관계 생각하지도 않고 공부에만 전념해 왔던 거다. 그것 자체에 후회는 없다. 그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허락하기가 쉽진 않겠구나. 굳이 내 자식을 멀리 보낼 이유를 느끼지 못하겠어.”

이 앞뒤 꽉꽉 막힌 어머님이 문제라는 거지. 이렇게까지 말해도 이해해 주지 않을 줄은 예상은 했다만 정말이지…….

깊은 한숨을 쉬며 다시금 곰방대에 입을 가져다 대는 모습을 보니 엄마 나름대로 상당히 고민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솔직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이렇게 끊임없이 어필한다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금세 날 노려보는 모습을 보면 그럴 생각도 싹 가신다. 아니, 그냥 무섭다. 역시 염라대왕을 모신다고 하는 신녀님의 눈빛인걸까.

결국 요약해 보자면 같이 목욕했던 애들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인거지?”

아니, 왜 자꾸 목욕으로 주제가 옮겨지냐고요……. 말했잖아. 그때 겪었던 추억을 한번만 경험해 보고 싶다고.”

하아, 이것도 결국엔 운명인가…….”

, 운명일 수밖에 없죠. 거기에 날 데리고 간 것도 운명이고 거기서 내가 좋은 추억을 간직했다는 것도 운명이고 지금 내가 그 추억에 사로잡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결정한 것도 다 운명이란 거죠. 신녀님이라면 그런 것 잘 믿을 거 아닌가?

정말 꼭 가야만 하는 거니? 그렇게나 그때 만났던 녀석들을 찾고 싶은 거야?”

그런 게 아니거든? 10년이면 어엿한 가정도 있을텐데 찾는 건 민폐고. 그냥 그쪽에서 살고 싶을 뿐이야. 거기다 10년동안 이것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눈에 뵈는 게 없거든.”

하아…….” 

짧은 시간에 벌써 세 번이나 한숨을 내쉬며 곰방대에 입을 가져다 대는 걸 보니 슬슬 내 숨이 막힐 것만 같다. 그만큼 엄마도 고민하고 있다는 걸까.

잠시 기다려.”

……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간다. 뭔가 가져올 심산인 걸까 기다려 보니 몇 분 정도 지나고 나서야 다시 안으로 돌아왔다.

, 이거 받고.”

? …….”

뭔가를 내게 건네주기에 손을 바라보니 작은 부적이 들어있는 넓적한 유리 공예품이 걸린 목걸이가 눈에 띈다. 제법 예쁜 모습을 하고 있어 평상시에 걸고 다녀도 될법한 느낌이지만 역시 안에 들어 있는 부적이 눈에 띈다고 해야 할까.

뭔데 이거?”

그렇게 지방으로 가고 싶다면 가도록 해.”

뭐야? 갑자기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바꾸면 도리어 불안한데?"

다만. 몇 가지 조건이 붙을 건데 받아들일 거야?”

역시 이럴 줄 알았지. 뭔가를 해주는 데 조건이 안 붙으면 우리 엄마라고 할 수가 없지. 분명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날 괴롭힐 게 뻔하지. 지금껏 살아온 세월을 생각해 보면 이젠 당연한 거라고 여겨진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수는 없지.

조건이 뭔데?”

…….”

깊게 한 모금 들이마시고서 엄마는 날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고,

오케이. 그 정도야 뭐…….”

난 엄마가 내민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래, 내가 원하는 지방생활의 시작인 것이다.

 

 
+ 작가의 말 :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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