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 전체 게시판 규정사항 *


1. 개인간 쪽지로 할 수 있는 용무를 글로 쓰는 것을 금지합니다.

2. 이용자 불특정 다수, 혹은 불특정 개인에 대한 불만글 역시 동일하게 취급합니다.

3. 상대방을 기분나쁘게 할 수 있는 욕설이나 폭언을 자제해주세요.

4. 연재 게시판에 한해 하루 새로운 제목을 가진 3개 초과의 게시글을 금지합니다.

5. 이용자 불특정 다수가 불쾌함을 느낄 수 있는 글 (예:성인향 글, 특정 정치성향을 포함한 글) 을 자유 게시판, 연재 게시판을 포함한 모든 게시판에서 금지합니다.


첨. 광고글, 저작권 위반 자료의 경우 경고 없이 게시물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참조 - http://www.novelengine.com/bbs/board.php?bo_table=free&wr_id=4427400

 
최고악역과 백조의 노래글 도코리
라이트노벨
 
 
첫회보기 관심
목록
 
 
1.
16-05-01 15:15
 
 

요란한 엔진 소리. 크락션의 신경질적인 울림. 타이어 끄는 날카로운 소리가 나긋한 열기를 타고 흘러들어온다. 거기에 드는 약간의 위화감은, 아마 나긋하지 못한 소리가 나긋하게 흘러 들어오는 거나 여름이라고 하면 필수불가결인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원인일 것이다.

시원하기는 하지만 기분이 나쁘기에 설치하고는 전혀 틀지 않아 지금도 입을 다물고 있는 에어컨 대신 열린 창문은 아무리 생각해도 냉방 기구로선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냉방 기구라니, 들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 듣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잠을 자는 건 무리다. 분명 열기는 날 나른하게 만들었고, 몸을 움직이기 싫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날 짜증나게 만들었기에 내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거기에 시끄러운 소리들은 나를 깨우기 위해 일부러 내는 소리인 마냥 귀에 정통으로 꽂혔기에 더 뒹굴거리는 건 물거품이 됐다고 봐도 되겠다.

머리 부근이 땀으로 끈적해졌다는 게 피부를 타고 느껴져서 짜증은 배가 됐다. 그 이외에 짜증나는 일을 한 가지 씩 꼽다보면 체스판 64칸을 전부 채울 것 같았기에 소리 없이 신음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다리에 힘을 주고, 여름용 얇디얇은 이불을 치우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분명 자다 일어났고, 다리에 힘이 없는 것은 맞지만 이 이불은 겨우 다리에 힘이 빠진 정도로 치우기 힘든 물건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 허벅지에는 이 얇디얇은, 흰색이지만 조금 때가 탄 이불이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 정확히 내 허벅지 부근을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내 허벅지 부근의 느껴질 만한 무게감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면 사람은 아무리 가능성이 제로라도 무엇이든 떠올려 보기 마련인지 나 또한 이 무게감의 정체가 무엇일지 생각했다.

강도구만.

.아침에 일어났더니 갑작스레 허벅지에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무엇일까요?

.강도?

심리테스트라고 하면, 은둔형 외톨이나 피해망상증을 앓고 있는 환자 정돈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내겐 같이 지내는 사람도, 우리 집 열쇠를 가지고 있는 소꿉친구(여자), 내 위에 올라 타 있다고 생각하기엔 조금 위험한 발상이지만 주말에 잠만 퍼 잔다고 구박하는 어머니도 없었다.

이 집은 조금 넓지만, 그만큼 텅 비었다. 넓은 침실이 두 개, 계속 커서 이제 180은 넘는 신장의 내가 앞구르기를 여러 번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거실에(커다란 소파가 놓여 있다), 쓸데없이 4인 가족용 식탁이 딸린 부엌까지.

이 넓은 아파트엔 나 혼자 뿐이었다. 아무리 다시 떠올려봐도, 지금 이 상황에 내 허벅지 위에 있는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속이 보이지 않는 상자에 손을 넣고 물건을 만졌더니 각지고 딱딱한 느낌이 든 것 같았다. 보통은 물컹한 거 아니냐고. 그게 반응도 좋고 맞추기도 비교적 쉽잖아. 이 기획을 짠 놈은 머저리냐.

그렇게 얼굴 모를 기획자의 욕을 중얼거려 봐도 정체불명의 무게감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흰 옷 은발의 소녀일지도 모르지. 근데 난 소꿉친구가 없는데. 여자건 남자건. 딱히 평화를 버스터했던 추억은 없다고.

결국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졌다. 일어나서 눈을 뜨고 확인하자.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저 바깥의 소음처럼, 나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아까 농담조로 강도라곤 했지만, 진짜일지도 모른다. 현관은 자물쇠와 번호키로 나조차 나갔다 들어왔다 하기 귀찮을 정도로 굳게 잠겨 있고, 이 아파트는 경비 아저씨도 성실하게 일 하는 모양이지만, 그런 현실적인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공포영화에서 흔히 그러듯 번호키는 천천히 한 번호씩 누름으로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존재하고, 자물쇠는 방심하게 만들어서 놀라게 하기 위함이다.

근데 지금은 현실이잖아.

그렇기에 눈을 뜨고 번쩍 몸을 일으켰다.

 

소녀가 있었다.

어쩐지 조금 적중해 버린, 긴 은발, 검고 초롱초롱한 눈, 힘주어 다물고 있는 입.

그렇지만, 조금 비껴나간, 중고등학생으로 확실히 여겨지는 크기’, 어디에서 본 것만 같은 교복과 다른 의미로 어디에서 본 것만 같은 고깃칼(네모 낳고 넓적한, 용도 불명의 구멍이 뚫려있는 그것)이 교복과 어울리지 않게 허리에 매여져 있었다.

그렇게 눈 앞의 소녀를 시각 정보로 받아들인 뒤 텍스트로 바꿔 저장하고, 소녀와 나 사이에 시선이 오가고,

 

, 드디어-”

으와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

 

그 소녀의 연분홍색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준비했다는 듯 입에서 장렬한 비명이 터저나왔다.

그 후로 잠깐은, 창문 밖에서 비웃는 듯한 매미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잠시 후.

놀라움이 가라앉고, 소녀가 칼만 들었지 나를 곧바로 해칠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은 후에야 겨우 침착해 질 수 있었다.

아니, 이 상황에 침착이고 뭐고 없거든? 강도가 들어오면 잠시 침착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하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허브티로 티타임이라도 가질 생각이냐. 향기는 좋을 것 같다. 하는 김에 케이크도 꺼내라고. 밴드를 하면 더 좋다.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나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지만, 침착해 진 건 침착해 진 거다. 실제로 상대가 성인 남성이었다면 강도여도, 강도가 아니여도 위험천만에 심의나 이것저것 걸릴 것도 많겠지만, 상대가 어린 소녀라면 이야기는 한 10~15도쯤 달라진다. 여전히 심의나 이것저것 걸릴 게 많으니까. 어쩌면 성인 남성보다 위험천만 일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로.

그렇지만, 얌전히 앉아있는 소녀를 두고 나 혼자 날뛸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겉으로는 평정을 기하며 소녀를 일어나게 했다. 허벅지를 계속 눌린 탓에 다리가 저린 것도 있지만, 포즈가 문제다. 여러 가지로. 나는 정부에 반기를 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쪽수에서 너무 밀린다고.

소녀가 내 말을 듣고 순순히 일어나 침대 옆에 섰다. 아까 비명을 지른 나를 볼 때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아까의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입을 굳게 다문 모습이었다. 제 딴에는 의지가 넘치게 보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소용은 없었다.

 

.그렇게 굳어 있진 말고.”

.”

 

면접이냐. 긴장은 왜 한 거고, 난 왜 긴장을 풀어주는 걸까? 의문이다.

그나저나 지금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당연하게 그런 고민을 했다. 상황이 상황이기로서니 내 머릿속에 설정된 커맨드 목록에 간밤에 들어온 영문모를 소녀에 대한 내용은 없다. 기껏 해야 기초 일본어 회화(입문)’이나 사람을 대할 때(기초)’, ‘괴물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같은 기초 서적밖에 없다.

, 범인을 잡으면 동기를 알아내는 게 중요하댔으니까, 그거라도 물어야지 하고 나는 그녀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질문했다.

 

.그래, 여기 들어 온 목적이 뭐야?”

 

그리고 금세 후회했다.

안 그래도 초롱초롱한 눈에 있을리 없는 섬광이 순간 비추고, 긴 은발을 격하게 흔들더니, 긴장했던 입꼬리를 신난 듯이 끌어올리고, 가지런히 허리 언저리에 붙였던 손을 들어 나를 냅다 삿대질했다.

 

그래요! 그렇게 나오셔야죠! 물어보시니 대답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이건, 그거다.

친구라곤 있어 본 적이 없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해 본 것이나 실제로 거리에서 봤던 정보에 의하면 흔히 오타쿠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설명 할 때의 흥분과 같았다.

아니, 그것보단 로켓단이었다. ‘대답 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이냐. 목적은 백만볼트 인가. 우리 집은 110볼트인데.

하여간 붉은 머리를 연상시키는 언행을 보이는 소녀가 말을 계속했다. 어쩐지 손을 높이 들거나 허리를 굽히는 등의 안쓰러운 액션을 취하면서.

 

제 이름은 TA-001! 정식 명칭 타입 아테나! 당신을 찾아 이곳까지 들어왔습니다!”

어째서 나를,”

물론 이 부분에선 어째서 나를!’이 나오겠죠! 그에 대한 대답도 충분히 준비 해 뒀습니다!”

 

질문 할 틈도 주지 않는다. 눈도 조금 초점이 흐려졌는데, 괜찮으십니까. 내가 안 괜찮다.

 

당신은 말이죠-!”

 

그 다음에 꺼낸 것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배우 일을 그만 둔 제작년 까지 등장한 모든 작품의 이름과 배역 명이었다. 지금 들으면 그런 것도 했었지~’ 하는 것부터 생각 이상의 망작이라 얼굴이 붉어지는 것, 큰 호평을 받았기에 조금 기뻤던 것 등등 수 많은 이름의 나열.

이런 팬도 있구나. 지금 까지 살아오면서 팬과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기에 신선한 기분이었다. 애초에 팬이 있다는 인식이 있었던가? 어렴풋한 기억으론 고등학교 때 작중 배역이 너무 기분이 나쁜지라 몇 안 되는 학교 가는 날 마다 괴롭힘을 당했던 것 같은데. 걔네들이 다 내 팬이었구나! 내 팬은 츤데레네! 남자 츤데레라니, 조금도 안 기쁘다.

소녀는 그렇게 가장 최근에 찍었던 작품까지 나열하고, 산소 공급을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듣고 보니 작품을 많이 하기는 했네. 새삼스레 나의 열정에 감탄하면서 나를 칭찬하려다 지금 내가 자신의 칭찬을 하며 기뻐 할 만한 상황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게 왜?”

그랬다는 거죠!”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웃어도 여기에 무단으로 침입한 이유는 설명이 안 된다만. 그런 애매모호한 발언에 실실 웃으면서 뭉뚱그려줄 정도로 쿨 한 어른이 못 되어서 말이지.

 

그러니까, 내 과거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는데, 그게 어쨌는데?”

그게 당신이 제 주인이 될 만한 이유라는 거죠!”

?”

 

아직도 흥분이 가시질 않았는지 자신의 은발을 샴푸 광고마냥 찰랑거리며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다. 방금 주인이라고 했나?

주인은 위험한데. 일반적으로 주종관계라고 하면 노예 혹은 메이드다. 이 두 단어는 전혀 나쁜 단어가 아니지만, 어쩐지 이상한 예만 떠오르는 건 내 정신의 문제일까. 게다가 나이도 어리다고. 나이 어린 여자 아이가 나오는 이상한 예는 범죄자 위임서라고. 그런 직함은 절대 사양이다.

 

그러니까, 꼬마야.”

제 주인님이 돼 주세요!”

꼬마야, 그러니까.”

꼬마가 아니라 TA-001, 정식 명칭 타입 아테나.”

그래, 아테나. 침착하게 이야기 해 봐.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가출이라도 한 걸까. 이 세계는 고등학생이 가출해서, 생판 모르는 아니, 이 상황에선 좋아하는 배우라고 해야 하나? 여튼 가출해서 좋아하는 배우 집에 쳐들어가서, 주인님이 되어달라고 할 정도로 세기말적인 상황이 되었던 건가? 근데 내 집은 어떻게 알았담? 또 어떻게 들어오고? 아무리 5층이라지만, 저런 여자아이가 벽을 타고 올라올 정도로 낮은 건 아닐텐데. 굳이 여자아이에 제한을 둘 필요도 없나.

그렇게 돈이 없어서요.’ 당신이 좋아서요.’같은 정상적인 대답 후 어떤 식으로 집에 돌려보낼까 생각하고 있을 때, 소녀(자칭 TA어쩌고. 이게 뭐야?)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다시 그 부담스러운 눈을 초롱대며 말을 했다.

 

물론 세계정복을 위해서죠!”

?”

 

적어도 내 뇌 속에서 물론은 당연한 일 앞에나 붙이는 단어일 텐데. 사람 사이의 소통은 부족해도 문장 쪽에서는 빠삭하다니까. 굳이 빠삭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그러니 내 논리에 의하면 세계정복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당연한 일은 아니다. 삼단 논법에서 대전제로 인정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

결론.

세계정복은 보통 사람이 물론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론의 결론.

안쓰러운 아이구나.

이 아이는 굉장히 안쓰러운 아이였구나. 흔히 애니메이션,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중2병이다. 보통 중2병의 설정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산다는 건데, 딱 이 아이가 적절한 모델이다. 태어나서 리얼 중2병은 처음 보는데, 평소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안쓰러워 보였다. 보통 애니메이션에서 중2병 캐릭터는 재수없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얘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해맑게 웃고 있는 만큼 안쓰럽기만 하다.

내가 그 안쓰러움에 말을 못 잇고 있자, 그 소녀는 해맑음을 농축시킨 액체를 바른 것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세계 정복을 위해서 파견된 특수부대 같은 건데요, 그게 영 시원찮아서 말이죠.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쭉 실패 해 왔던 일이니 방법을 바꿔보겠다, 그리 생각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봤죠. 그랬더니,”

 

이 부분에서 잠시 숨을 멈추고, 눈을 감은 뒤, 그 느낌을 터트리듯 은발을 나부꼈다.

 

당신을 발견해 낸 거죠! 저는 당신을 알게 된 순간, 이 사람과 함께라면 세계 정복도 꿈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칭찬. 맞지?

대충 사정은 이해가 됐다. 원인은 모르지만, 소녀는 자신만의 세계를, ‘자신과 불특정 다수가 악역인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거기에 적합한 역할인 나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렇게 섭외를 왔다. .어떤 감독도 나를 캐스팅하러 직접 찾아온 적은 없었기에 새로운 기분이었다. , 저는 그런 중요한 배역을 맡을 수 없어요! 라고 하면, 할 수 있다며 어깨를 꽉 잡아주려나. 아니, 성별이 바뀌어서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다.

뭐 상황도 상황이겠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어울리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저 안쓰러울 정도로 해맑은 얼굴을 봐서라도 내 특기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연기를 그만 둔지 꽤 지났지만 감이 죽었을 리가 없다. 지금 당장이라도 세계정복은 애들 장난이지라며 악당 연기를 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싫다. 이 꼬맹이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이런 애들 장난을 받아 줄 정도로 쿨한 어른이 못 되어서 말이지.

그렇기에 짐짓 화난 표정을 하고 입을 열었다.

 

, 꼬맹아.”

저는 TA-001, 정식 명칭은.”

세계를 우습게 보는 거냐?!”

?!”

 

화난 게 아니다.

절대로 나조차도 살아오는 데 생 고생을 한 이 세계를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 같은 꼬맹이가 정복이니 어쩌니 떠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강경 대책으로, 엄청난 의지로 문까지 따고 들어온 이 소녀를 내보내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기에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설득할 수 있다면 문을 따고 들어올 리가 없으니까.

애초에 소녀의 뇌내 세계는 논리를 싸그리 무시한 상태일 텐데, 거기에 정론을 들이댄다고 해서 순순히 받아들여 줄 리가 없다.

.. 즉석에서 생각해 낸 것 치곤 그럴싸한 변명이다. 중고생 꼬맹이에게 진지하게 화를 냈다는 추태는 감출 수 있겠군.

 

세계는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쉽지 않단 말이다. 너 같은 한 낱 꼬맹이가 정복 따위를 논 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수 없이 떠들어 본 만큼, 나는 세계 정복의 허구성을 누구보다도 잘 느끼고 있다. 흔히 영화에 나오듯 미국을 정복한다는 이야기는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대물에서 그렇듯 도시 하나를 지배하는 것도 힘든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근데 세계 정복은 무리다. 트랜스머처럼 커다랗고 멋진 비행선으로 세계를 돌면서 하나 둘씩 정복해 나갈 생각이 아니라면, 아이맨처럼 멋진 슈트를 입고 세계를 하나씩 돌면서 항복 선언을 받아낼 게 아니라면, 전대물처럼 우선 도시 하나를 지배한 뒤 관광버스를 타고 세계를 돌면서 야금야금 먹어치울 생각이 아니라면 세계 정복은 그만두는 게 좋다.

물론 귀찮게 하나 둘 씩 도느니 싹 쓸어버리는 게 낫지 않나, 그렇게 말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정복이 아니라 단순한 학살이다. 사람이 없는 땅에서 사는 게 정복이라고? 그건 그냥 주거. 그저 사는 것일 뿐이다.

정복이라 함은 그 아래에 내게 불만이 없지는 않음에도 따를 수 밖에 없는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성립한다. 좀 사디스트적인 느낌이 있지만,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인간은 모두 약간의 사디스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놀림, 괴롭힘이란 단어가 있고, 함무라비 법전이 생기고, 사회계약설이 논해져 온 것이다. 출처는 나의 뇌내 망상 연구소이다.

하여간 세계 정복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빈 땅에 깃발을 꽂는, 아무 소용없는 정복이라면 모를까. 매체에서 정복 정복 거리는 건 다 거짓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단언하고, 소녀의 꿈이 어린 망언을 말끔하게 도려내는 것이다.

 

애초에 너는 그런 능력이라도 있는 거냐? 현재 미국의 군사력으로도 세계 정복을 미뤄 두고 있는 실정에 너는 할 수 있다는 거냐? 미국 이겨? 이기냐고오.”

 

이건 쿨한 어른이 못 된 정도가 아니다.

20이 넘은 젊은 남자가, 자기보다 어린 소녀를 진지하게 논파하고, 이젠 놀리기까지 하고 있다.

.내 잘못이 아니라, 내 몸 속에 흐르는 악역의 피가 잘못이다. , 물론 부모님은 정상인이지만.

그런 내 악역의 피가 멋대로 떠들어 댄 독설에 기가 죽었는지 고개를 푹 숙인 소녀를 보며,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 미안! 하지만 네가 나빠! 아니, 이건 사과가 아니잖아.

시무룩해져 있는 소녀를 달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정신 차려. 세계는 그리 우습지 않다고? 세계 정복을 하고 싶다면 우선 미국을 뛰어넘는 군사력 아니, 돈이 있어야.”

헤에.”

 

내가 정성을 들여 최대한 찌질하지 않게 소녀를 위로하고 있는데, 소녀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냈다. 고개를 숙인 채였기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그저 그 이상한 소리가 웃음 소리 같다고 짐작 할 뿐이었다.

당황한 것도 잠시, 소녀는 표정을 반들반들한 은발에 감춘 채로 말을 이어갔다.

 

그 소리는, 제가 그만한 힘이 있다면 도와주실 거란 이야기죠?”

그래,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결국 안쓰럽구나. 이 애는 구제불능이야.

 

알았으면 이제 나가렴. 무단 침입은 빨간줄이니까.”

 

내가 어른의 여유.를 보이며 소녀의 어깨를 잡고 방에서 내보내려고 하자,

 

잠시, 가만히 계세요.”

 

그 소리가 내 귀로 다 받아 들여 지기도 전에, 내 손에 분명히 잡혀 있던 어깨가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저 열기 때문인지 어째선지 손에 땀이 찰 것만 같던 온기가, 내 손바닥 신경에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 느낀 것은, 고통이었다.

고통이라고 해도 가벼운 고통이었다. 조금 아릿한, 종이에 베인 듯한 감각이 몸의 다섯 군데에서 느껴졌다.

동시에.

. 손목. 발목.

그리고 그 다음에 느낀 것은, 갑자기 불어온 바람의 감각이었고,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소녀는 내 앞에서 숨을 헐떡대고 있었다.

순서를 매기기는 했으나, 솔직히 말해 그 순서도 애매하다. 거의 동시에 엿으니까.

고통과, 온기가 사라져 허공에 떠 있는 손과, 귀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와, 다시 반들반들거리는 소녀의 은발.

한 순간 이었고, 그 감각에 의한 감정도 한 순간 터져 나오려고 했으나, 무의식적으로 그걸 막았다.

그 순간에 소녀를 괴물이라 인식하고 백지화 하려 했던 뇌나,

고통에 놀라 주저앉으려고 했던 두 다리나,

공포에 잠겨 떨려고 했던 두 눈이나,

전부 내 의식 아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멈췄다. 멍해진 정신을 깨우고, 순간 힘이 빠진 다리에 다시 힘을 주고, 흔들리려 한 시선을 한 곳으로 고정했다.

휴우. 어때요? 최대한 빠르게 한 건데요.”

소녀는 그리 말하면서 힘 빠진 미소를 지었다. 아까와 같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해맑은 웃음 이었지만 내게 그 웃음은 아까와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내 머리로 떠올린 것은, 아까 소녀가 말했던 세계 정복’, ‘우리들같은 중2병 발언이었다.

방금 전에 말했듯, 세계 정복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빈 자리를 채울 사람이 있다면?

사람을 죽이고, 전부 죽이고 텅 빈 세계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까는 당연히 농담이라 생각하고 코웃음 쳤을지 모르지만, 이제 와서 그러기에는 그 감각이 너무 리얼했다. 지극히 옅은 베인 고통이, 그 어떤 상처보다 공포로 다가왔기에 나는 그 의지를 비웃으며 어른의 쿨함이니 어쩌니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공포에 무릎을 꿇을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릎을 꿇고, 감정에 솔직해 졌다간 죽음이다. 격하게 미스매치였기에 처음부터 제하고 생각했던 그 칼은 아직도 소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표정은 웃고 있고, 지친 듯이 헉헉대고 있지만 그 칼 만큼은 살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포에 떤다고?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의 나도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을 뿐 속으로는 식은땀을 삼키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의 본능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소녀가 아까 했던, 내가 세계 정복에 적합하니 어쩌니 떠들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적어도 살고 싶다면, 지금 공포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내 직감이 날카롭게 울어댔다.

그렇기에 난 두려움을 억지로 치우고, 공포에서 눈을 돌리고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후후후. 제법이군.”

 

물론 내 특기를 살린 눈살 찌푸리기와 사악한 웃음소리는 덤이었다.

솔직히 조금 멍청하고 무모한 발상이었다. 성공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마구잡이식 작전이었다.

하지만 걸었다. 내 눈 앞의 소녀가 조금 맹한 것 같다는 점.

그리고, 소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사람을 의심하는 일 따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나의 연기.

 

이건 진짜구나. 꼬맹이. 미안하군. 네놈을 얕봤던 것 같다.”

 

복장이라도 제대로 가췄으면 좋으련만. 다음엔 이럴 때를 대비해 망토라도 두르고 자야겠다. 지금은 더우니 겨울에.

 

이 야망을 다시 꺼낼 수 있게 되리라곤 꿈에도 몰랐군. 운명이란 건 재밌구만.”

 

있는 척 하는 포즈, 깔보는 듯한 말투. 모든 게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하긴, 내 실력이 조금 쉰 것 정도로 녹 슬 리가 없지. 경력이 얼만데.

 

, 그 말은?”

 

소녀는 내 반응에 놀란 듯한, 기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까보다 한 층 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좋다, 좋아. 저런 리액션이라야 연기 할 맛이 나는 법이지.

 

굳이 말로 하는 것도 폼이 안 나지 않겠나?”

!”

 

그렇게 사악한 표정과 함께 대사를 말하자, 소녀는 극히 감동한 표정이 되었다. 울지는 않았지만. 울었으면 여러모로 곤란하다. 악당은 우는 소녀를 달래지 않으니까.

 

, 감사해요! 주인님!”

아니, 그 호칭은 아닌 것 같군.”

 

소녀의 위험한 발언을 정정하느라 멋진 마무리도 못 했고, 옷도 후줄근한 티셔츠에 반바지 바람이기에 폼은 조금도 안 났지만, 이래저래 자포자기한 상태였기에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마무리의 만족도 보다, 지금 눈을 부담스럽게 뜨고 있는 소녀를 어떻게 하느냐가 심히 걱정됐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 소녀의 해맑은 표정을 보며 복잡한 감정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멀쩡한데, 몸의 다섯 군데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진짜이기에,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순순히 귀여운 아이구나, 그런 생각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이제 와서 후회하기도 뭐하지만, 나 잘 한 걸까?

 

 

 
+ 작가의 말 :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 제 작품의 평가가 알고 싶습니다. 될 수 있으면 평가를 좀 남겨 주세요...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