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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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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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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you글 hotf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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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4
16-04-30 08:37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서로가 내놓는 카드는 뒤집는 족족 침묵, 또 침묵.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카드가 쌓일수록 견고해지는 침묵 탓에 마치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야말로 로맨스 영화처럼, 몰래 서로를 좋아하고 있던 청춘남녀가 고백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망설이는 장면을 쏙 빼닮아있었다. 
‘청춘이라..’
하지만 세연과는 2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만난 데다 여태 한 마디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서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 것도 오늘 도서실에서가 처음이었다. 그러니 사랑이니 고백이니, 그런 오렌지 향기 나는 소리를 갖다 붙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더욱이 방금 전까지 미행을 당하던 상황이었다. 복선도 없이 갑자기 장르가 서스펜스에서 로맨스로 바뀐다니, 그건 싸구려 삼류영화에서나 쓰는 전개였다. 
뭐 때문에 이러는 걸까. 뭐 때문에 사람 불편하게 쫓아와서는 말도 안 하는 거지. 정말로 나를 말려죽일 속셈인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놓을 즈음 드디어 세연이 입을 열었다. 
“저기.. 공책, 돌려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공책..?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뜸을 들이나 기대하고 있었건만, 갑자기 공책을 돌려달라니 김이 팍 샜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역시 내 청춘에 꽃이 필 일은 없는 모야이다.
하지만 공책이라, 짐작 가는 바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세연이 그 공책을 찾는 거지. 애당초 찾고 있는 공책이 그 공책이 맞기는 하는 건가. 자칫 잘못해서 주인도 아닌 세연에게 그 공책을 줬다가는 공책의 주인은 물론 나까지 이상한 사람으로 찍히는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검증이 우선이었다. 
주인이 맞는지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공책을 보여줄 필요도 없고 내용을 물어볼 필요도 없다. 단 한 마디면 됐다. 이렇게 -
“붉은 천사?”
순간 세연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다. 부끄러워하는 거겠지. 모른다면 저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이로서 공책의 주인이 세연이라는 건 입증된 셈이었다. 
그건 그렇고 얼굴 한 번 빨갛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게 꼭 터질 것만 같았다. 상상해보면 끔찍한 말이기는 하다만, 그보다 적합한 말도 없었다. 붉은 천사라는 이름은 저기서 따온 건가.
“무.. 무슨 소리를 하, 하, 하시는 건지..”
웃는 것도 아니고 말 더듬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어지간히도 당황했나보다. 숨넘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세연은 부정하려 들었지만, 얼굴에 적혀있다는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거다. 찔리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야 얼굴을 붉히지도 않고 눈을 피할 일도 없겠지.
‘이제 어떻게 하지..’
세연이 공책 주인이라는 건 확실하고, 돌려달라고 말하고도 있으니 돌려주는 게 당연했다. 한 시라도 빨리 없애버리고 싶은 거겠지. 봉인해뒀다고 생각한 공책이 다시 세상에 나타나자 과거로부터 엄습해오려는 혼돈을 미연에 없애버리려는 게 분명했다. 물론 그 혼돈께서 기어오고 계시느라 미행까지 할 정도로 서둘려야할 필요는 없었지만 말이다. 
세연에게 있어서 공책은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일 터였다. 열렸다고 세상에 종말이 도래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세연 자신의 학교생활에 종말이 올 것은 틀림없었다. 이미 내가 열기는 했다만, 번개를 손에 쥔 난잡한 여성편력의 아저씨는 없었고 상자가 열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결국 공책만 없앤다면 내가 아무리 떠들고 다닌다고 한들 증거가 없는 이상 바보가 되는 건 다름 아니라 나였다. 
‘돌려줘야겠지?’
돌려줘야 마땅한 물건이었다. 애당초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생각도 없었고, 달리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적어도 내일까지는, 복사본을 만들 때까지는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설정이라면 누나도 혹하겠지. 미끼로 슬쩍 던져두면 언젠가는 마법을 시도하는 현장을 급습할 수 있을 거다. 그 광경을 찍을 수만 있다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나날도 끝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모른 척 해야만 했다.
“혹시 도서실에 있던 공책을 말하시는 거라면, 그거라면 그대로 도서실에 두고 왔어요.”
“이미 찾아보고 왔어요. 어서 돌려주세요.”
“찾아봤다뇨?”
세연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들었다. 익숙하다 싶더니만 도서실 열쇠였다. 
아무리 없애버리고 싶기로서니 열쇠까지 훔쳤을 줄이야. 어물쩍 속여 넘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법에 저촉되지만 않는다면 뭐든 할 기세다. 조연 선생님이 버티고 있는 교무실에서 열쇠를 빼돌린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잘 보니 열쇠 모양이 조금 달랐다. 교무실에 비치되어있던 열쇠는 손잡이 부분이 사각형이었던 것에 반해 세연의 것은 클로버 모양이었다. 분명 열쇠는 하나뿐인데,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답은 금세 나왔다. 복사본인 거다.
멋대로 열쇠까지 복사하다니, 법에 저촉되는 짓도 하려는 모양이다. 교실에서는 멀쩡해보이더니만 누나 못지않게 속이 다른 사람이었다니. 하기야 마법으로 세상을 구한 천사였다. 다른 게 당연하겠지.
겁이 나서 당장 돌려줄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복사를 할 때까지 결코 내어줄 수 없었다. 어차피 내일 곧바로 도서실에 돌려놓을 거라 하루 빌리는 것에 불과했다. 공책을 가지고 이상한 짓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면.. 그게 어디로 갔을까요?”
이럴 때는 발뺌이 제일이다. 가방에 공책이 있기는 합니다만 모르는 일이에요. 일부러 시선도 피하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일관했다. 눈을 피하면 찔리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대뜸 달려들지도 몰랐다. 
어쩌면 마법으로 폭발시키려 들지도 몰랐고 말이다. 열쇠까지 훔친 마당에 뭔 짓을 못할까 싶었다. 더욱이 앙골모아와 싸웠다던 여자애다. 마냥 우습게 볼 수만도 없었다. 
그러자 세연은 한숨을 내쉬더니 열쇠를 도로 집어넣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공책 내놓으라고 멍청아! 누구를 바보로 아는 거야?! 공책에 발이 달렸나? 네가 하는 말이 그거 아냐? 공책에 발이 달려 우리에서 탈출한 햄스터 마냥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잖아? 해바라기 씨라도 뿌려볼 걸 그랬나, 아니면 톱밥이라도? 네가 나간 뒤에 없어졌으니 범인은 너 아니야! 네가 모른다는 게 말이 돼? 햄스터가 기억을 갉아먹었나?!”
“히익!”
저기, 누구시죠. - 세연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무서워서 눈도 마주치지 못할 지경이다. 붉은 천사라더니, 그게 아니라 붉은 악마겠지.
게다가 천사치고는 말투도 험악하다.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마법까지 쓰는 고귀한 천사께서 멍청이라니, 틀린 말도 아니다만 조금 순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빨리 안 내놓으면 힘으로라도 가져간다. 때려눕힐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세연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더니 내 복부에 가져다댔다. 다행히도 날붙이는 아니었다. 마법천사께서 칼을 들고 다닐 리가 없지. 그랬다가는 전부 검열의 철퇴를 맞고 몽둥이로 변할 테니까 효율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워질 거다.
하지만 마법천사께서 예상을 뒤엎고 꺼내든 물건은 전기충격기였다. 애당초 마법천사라는 말도 이해가 안 간다만, 마법과 천사를 합친 주제에 무기가 전기충격기라고?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컨셉이냐. 지나치게 현실이잖아.
저거 맞으면 아프겠지. 겁이 나서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그보다도 도대체 전기충격기를 어디서 구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기억이 맞는다면 위력이 강한 전기충격기는 허가를 받아야만 소지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위력이 약한, 마비는커녕 벌에 쏘였을 때 느끼는 고통 수준밖에는 주지 못하는 전기충격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가정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이 없었고, 세연의 표정을 보면 이번에도 그런 것 같았다.
아버지가 사다주기라도 한 모양이군. 그런 걸로 같은 반 학생을 위협하다니 아버지가 슬퍼하실 거다. 아버지의 사랑을 이용하여 회유해볼 생각도 했으나 험상궂은 표정을 보아하니 감정은 일찍이 차단한 듯 싶었다.
“돌려주면 난 그냥 보내주는 거야?”
복부를 쿡쿡 찔러대는 전기충격기를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물론이지. 그러니 어서 내놓으라고.”
세연이 생긋 웃으며 전기충격기로 배를 꾸욱 찔렀다. 웃는 모습이 얼마나 무서운지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조연 선생님이 또 귀신 같이 나타나서 구해주기를 바라게 될 정도였다. 
“그래, 보내준단 말이지.”
하지만 지금은 도움을 바랄 때가 아니었다. 내 일은 내가 해결한다. 아버지에게 지겹도록 들은 말 그대로다. 알아서 해결해야만 했다. 이건 미국 코믹스가 아니었다. 가슴에 가문의 문양을 새긴 코스튬을 입은 행성의 마지막 생존자가 구해주러 올 리가 만무했다.
마지막 생존자보다는 편집증 환자가 되는 게 낫겠지. 계획대로 되고 있음에 좋아하고 있는 세연의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세연은 긍정의 표시라 받아들이고 복부에 들이대고 있던 전기충격기를 떼어놓았다.
기회는 지금이었다.
“허나 거절한다.”
곧바로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세연의 손을 후려쳤다. 여자아이라고는 하나 세연은 버튼 하나로 나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괜히 망설이다가는 당한다. 주저해서는 안 됐다. 강하고 빠르게, 단 한 번으로 마무리해야만 했다.
“뭐하는 거야..!”
생각했던 대로 세연은 깜짝 놀라며 전기충격기를 떨어뜨렸다. 급히 도로 주우려했지만 내 쪽에서 먼저 양팔을 꽉 붙잡았다.
이제 무기도 없으니 진솔한 대화를 나눠볼 시간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잘난 줄 아는 녀석들한테 ‘노’라고 말하는 거지. 내가 공책을 돌려주길 바란다고? 그렇다면 명령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내가 되어야 맞는 거지. 네 일기를 모조리 복사해서 학교에 뿌려버리는 수도 있어.”
세연은 협박할 무기를 잃은데 비해 나는 아직 무기를 쥐고 있었다. 이중생활을 낱낱이 알릴 공책, 이거라면 세연도 꼼짝할 수 없었다. 대화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었다. 
그러나 세연을 억제하기 위한 공갈일 뿐이지 정말로 학교에 뿌릴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런 짓을 한들 얻는 것도 없었고, 이득 볼 것도 없는 이상 괜히 기운 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기를 복사해 학교에 배포한다고 해도 그 내용을 세연이 작성했다는 증거는 될 수 없었다. 더욱이 지금과는 현저히 다른 학교에서의 모습을 떠올리면 누구도 일기와 세연을 연결시키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일기를 퍼트린들 바보가 되는 건 나였고, 결국 이건 허세에 불과했다. 공갈이었다. 그리고 계획은 제대로 성공했다.
“지금 협박하는 거야?”
세연은 팔을 떼어내려고 몸부림쳤다. 하지만 힘 차이가 확연히 나서 무리였다. 그게 어지간히도 분한지 눈가가 촉촉해져있기까지 했다.
달리 생각해보면 인적 드문 골목에서 남자학생한테 억지로 붙잡혀있는 거다. 겁이 나는 것도 당연하겠지. 누군가 본다면 경찰에 신고할 만한 상황이었다. 막상 생각해보니 무지막지하게 위험한 상황이다. 하지만 세연이 먼저 협박한 데다 놓아줬다가는 뭔 짓을 할지 몰랐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세연이 분해하며 씩씩대는 모습을 보니 영문 모를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전기충격기에만 신경 쓰던 때와 달리 여유가 생기자 가슴의 두근거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슴은 요동치고 머리는 새하얘지고, 정신이 없어서 하마터면 팔을 놓을 뻔 했다.
이 감정은 설마!
“협박이라니, 내가 그럴 악당으로 보여? 아니지, 나는 그런 심성 뒤틀린 사람이 아니야. 봉사활동도 꼬박꼬박 나가고 있고 버려진 고양이들 밥도 주고 있지. 나는 착한 사람이야. 대게 이런 소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들 외투를 벗겨보면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난 진심이야. 이것도 조금 진정성이 의심되는 말이기는 하네. 아무튼 네가 공책을 돌려받고 싶다면 내 부탁도 들어줬으면 좋겠다 이거야.”
“부.. 부탁이 뭔데?”
순간 세연의 눈동자에 공포가 반짝였다. 그렇게나 돌려받기를 바라는 공책에는 말 못할 과거의 행적이 모두 기록되어있었다. 퍼트렸다가는 학교생활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던 만큼, 그런 무기를 손에 쥐고 할 만한 부탁이라면 분명 끔찍한 일일 거라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말했다시피 그렇게 악랄한 사람이 아니었다. 바퀴벌레도 쉽사리 죽이지 못했고 엄연한 살아있는 곰팡이를 없애라는 엄마의 말에 반항하다 얻어맞은 적도 있을 정도였다. 더욱이 지금은 세연에게만 착한 사람이 되고 싶기까지 했다.
“나랑 사귀어줘.”
“뭐?”
세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이쪽을 쳐다보았다. 넋이 빠진 모습이다. 두려움이 일렁이는 시선은 교복 아래 숨겨져 있을지 모를 환자복을 찾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 말을 들어서 과연 여기가 현실이 맞는지 고민하는 중인 것만 같았다. 
당연하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언할 수 있느냐면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미심쩍은 감이 없지 않지만, 확실하다고 믿고는 있었다. 느껴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래도 이 가슴을 헤집어놓는 영문 모를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뭐겠는가. 빈혈과도 같은 아련함이야말로 세연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욕망이 틀림없었다.
“이건 운명이야. 그렇지 않아? 우연히 지각해서 학교에 남게 되고, 재수 없게 사서 노릇을 하다 공책을 발견하고, 그 공책을 가져왔더니 너랑 만나게 됐지. 그리고 같은 반에서 세 달을 지내고도 이름밖에 모르던 너에 대한 모든 걸 알게 됐어. 이게 운명이 아니면 뭐겠어?”
세연의 공책을 누나를 고약한 비밀로부터 풍겨 나오는 악취마저도 씻어내 주는 수면 아래에서 끄집어낼 미끼로서 이용할 속셈이었지만 계획이 바뀌었다. 그런 치졸한 짓이나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요시해야만 했다.
단순히 상황에 휩쓸려 세연에게 마음을 품게 된 것은 아닌지 몇 번이고 되뇌었다. 대답은 긍정과 부정의 평행선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정 쪽의 득표수가 간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이거야말로 내가 기다려오던 상황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 그야말로 기적이라고밖에 설명 못할 우연을 사랑이라고 생각해오지 않았던가? 이건 운명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나는 아무런 마음도..”
세연은 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리고 침묵, 침묵, 침묵, 조심스럽게 쓰리 페어의 침묵을 내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의 스트레이트로 응수할 뿐이다.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만남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천재일우의 기회, 이것이 사랑이건 아니건 일단 들이댈 필요는 있었다. 
“조.. 좋아. 그렇게 해줄 테니까 공책 돌려줘.”
세연은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크게 숨을 내쉬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만세!”
환호를 지르며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맙소사, 이게 꿈은 아니겠지. 정말로 받아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의 포기하고 있던 만큼 감동이 엄청났다. 
공책도 그냥 돌려줄 생각이었다. 갑자기 고백한 무례에 대한 사죄의 표시로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연인이 되어 건네주는 기념적인 첫 번째 선물이 되는 셈이었다.
“여기, 네가 찾던 공책이야.”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세연에게 건네주었다. 그제야 세연은 의심을 거두고 나에게서 시선을 떼더니 공책을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공책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소중한 곰 인형을 돌려받기라도 한 모습이다. 방금 전까지 보여주던 무서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평소의 온화한 얼굴이었다. 
단순히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의 덩어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나도 소중히 다뤘으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까지 보면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 감이 없지 않아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러면 네 번호 좀 알려줄래? 그렇다고 해서 밤마다 전화를 해대겠다는 뜻은 아니니까 걱정 마. 차근차근 단계를 밟자는 뜻이니까. 우리 관계가.. 평범한 건 아니잖아? 단번에 계단을 오른 셈이지.”
일단은 번호부터다. 그리고 계속해서 차차 알아 가면 되겠지. 갑작스럽기는 해도 시간은 아직도 많았다. 천천히, 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었다. 
세연은 가방에 공책을 집어넣고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알아서 번호를 저장해두라는 뜻인가. 까칠하기는. 그런데 손바닥이 밑을 향하고 있어서 핸드폰을 가져갈 수가 없었다.
손등을 노크하듯이 살짝 두드리자 세연은 그제야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 모양새가 조금 이상했다. 네모난 데다 각지고 버튼이 달린 게, 자세히 보니 핸드폰이 아니라 -
전기충격기였다.
“이런!”
죽도록 아프다. 이런 고통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뼈와 살이 분리되는 고통이었다.
맙소사, 할아버지가 보인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벌써 삼 년 전에 돌아가셨잖아요. 제가 수영 못한다는 것도 잊으신 건가요. 저는 강을 건널 수 없어요. 나중에 제가 배를 구해서 갈 테니 기다려주세요.
“의식을 잃을 정도는 아니지? 잠시 누워있어. 이건 내 손을 때린 벌이야. 그리고 방금 사귀겠다고 한 말, 거짓말이야. 공책도 돌려받은 김에 네 장단에 맞춰줄 필요는 없지.”
세연은 나자빠지는 나를 힘겹게 받아주고는 벽에 기대어주었다. 하마터면 자기도 넘어질 뻔 했는데도 기꺼이 받아주는 모습에는 콩깍지가 씌인 것과는 별개로 깊은 감동을 느꼈다. 
정말로 나에게 관심이 없었더라면 목적을 달성한 마당에 받아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자빠지도록 내버려뒀으면 모를까. 괜히 자빠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로 배려심이 깊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상냥한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전기충격기를 휘두르지는 않지만. 
세연은 벌벌 떨어대는 나를 내버려두고 주저 없이 걸어갔다. 매정한 아이 같으니. 운명이라고 생각했거늘 고작 오 분도 못 갈 줄이야. 그러나 다행히도 세연이 가다말고 잠시 멈춰서더니 뒤를 돌아봤다.
“그래도 네가 아주 싫다는 건 아니니까, 그냥.. 친구? 그래, 친구로 지내자고. 말했잖아? 뭐든 천천히. 그러니까.. 천천히 알아가자고.”
말을 마치자마자 후다닥 도망쳐버린다.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있던 걸 보면 거짓말만은 아닌 것 같았다. 
지금부터 친구라, 오히려 친구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겠지. 더욱 많은 추억을 쌓고, 더욱 많은 기억을 공유하고. 그 산더미 같은 인연 속에서 사랑은 더욱 빛날 거다. 이거야말로 정도, 왕도. 노력 없이는 결실도 없는 법이다. 벌써부터 학교에 가기가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건 그렇고 -
‘아무도 없는 거야. 나 못 움직인다고. 집에 좀 데려다줘.’
 
+ 작가의 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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