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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
13-06-16 23:53
 
 
  "그렇군요."
  상아 씨는 살짝 의아해하며 말했다.
  "의외네요. 분명 웃으실줄 알았는데."
  "세계를 구한 사람들이라면, 그 반대도 가능하겠죠."
  "…이상한 부분에서 쉽게 받아들이시네요."
  그러니까, 그런 상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세계정복이라고 해도 주지육림의 대마왕이 되어 모든 인류를 사육장에서 기른다는 귀축 망상은 아니었다.
  좀더 스마트하게, 원하는대로 개인적인 이상에 맞게 지구 사회를 재편한다. 그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세계정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대의를 위해서.
  지구는 미드가르드에 비하면 많은 인류가 행복을 느끼는 곳이지만, 분명 그렇지 않은 부분도 존재한다. 어쩌면, 미드가르드에 못미칠뿐이지 지구 또한 불행한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구도 구해져야할 것이다. 구해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세계정복자'라는 위악을 뒤집어쓰는 것도 마냥 우습고 나쁜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왜죠?"
  "저만해도, 게이트가 없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은 세계를 구하기 적당한 나이가 아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2학년은 세계를 정복하기 적당한 나이가 아닐 것이다.
  만약 내가 '세계를 정복할 운명'이었다면, 나는 무심코 이세계의 물건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럴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게이트가 있다고 해도 이세계에서의 능력과 지구에서의 능력은 천양지차일테니까요. 뭐, 귀환 용사 네트워크 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그게 정말 그렇다고 확신은 못하겠지만."
  "사실이에요. 가장 능력을 많이 쓸 수 있는 사람도 겨우 10%에요." 빠른 수긍이다. "하지만 불가능은 아니죠."
  나는 코웃음을 쳤다.
  "뭐, '혼자가 아니니까', 그런 말을 하고 싶은거에요? 그렇담 궤변이죠. 세계를 구했던건 용사의 능력 100%였을 뿐이었을테니까요. 용사의 능력에 못미치는 많은 힘들이 있어봤자… "
  "아뇨. 그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럼요?"
  "게이트가 없는 사람에게도 게이트를 줄 수 있고, 약한 게이트는 더 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귀환 용사라면 누구든 100%의 힘을 쓸 수 있어요."
  그게 뭐야.
  그런 치트키가 세상에 어디있어?
  "어떤 여자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그 여자아이는 어느날 다른세계에 뚝 떨어졌어요."
  "…."
  "그 세계는 판타지 소설 속에서 보던 이세계가 아니었어요. 어떤 낡고, 고장난 플랜트였죠. 이해해요? 인공 중력장으로 우주 공간에 만든 인간 주거 지역. SF소설이나 건담보면 자주 나오는데."
  "뭔지 알아요."
  "이상하게도 그 플랜트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우글거렸죠. 플랜트 밖으로 그 아이를 실어나를 배는 하나도 없었으니 그 아이는 꼼짝없이 괴물 밥이 될 운명이었죠."
  "…."
  "하지만 그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거든요."
  어쩌면 모든 모험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불과할까?
  "그저 살아 남기 위해서 식량을 찾아다니는 사이, 플랜트의 시설들을 조금씩 복구 시키면 다른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다못해 다른 플랜트나 행성에 구조 요청이라도 할 수 있겠죠."
  "…."
  "그리고 긴 모험 끝에 그 아이는 플랜트에 얽힌 비밀을 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뭐,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는 지금 중요하지 않으니 다음에 하죠. 아무튼 그 아이는 기념삼아서 그 모험에서 가장 극적인 물건 하나를 가져왔죠. 인공 구조물에 어떻게 이런 현무암이 나왔을까요? 그건 모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퀴즈로 놔두고."
  상아씨는 그러면서 테이블에 놓인 돌멩이를 손에 쥐고 만지작거렸다.
  "처음에는 그저 기념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 돌멩이를 쥐고 있으면 그 플랜트에서 잃어버렸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는거 있죠? 그녀의 '지식'은 지구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이세계의 것'이었는데, 그 돌멩이는 한계를 벗어나게 해준거죠."
  "그 돌멩이가 이 돌멩인가요?"
  "딱히 제 이야기라곤 안 했는데요."
  "…."
  상아 씨는 웃으며 돌멩이를 주머니 안에 넣었다.
  "뭐, 네트워크에 그런 사람도 있다는거죠. 그리고 그 덕분에 게이트를 만들어내거나, 게이트의 능력을 성장시킬수도 있었다는거고."
  그런건가.
  "그러니 우리는 이세계에서의 100%의 이능력을 가질 수 있어요. 그건 영식 씨도 마찬가지고요. 네트워크에 들어오겠다고 하시면 되요. 우리는 너무 급진적으로 일을 계획할 생각은 없어요. 능력이 있다면 시간은 여유로우니까요. 이세계에서처럼 목숨을 걸일은 없을거에요. 많은 일을 할 생각도 없어요. 저 같은 '인사부'만 제외하면 일은 늘 하는둥 마는둥하죠. 좀더 열심히 일할 생각이 있다면 돈을 받고 일해도 되요."
  마지막 회유라는 느낌이 들었다.
  상아 씨의 표정에는 네트워크에 대한 광신적 태도는 없었다. 그저 흔한 영업사원처럼 '이 상품 가격이 참 괜찮은데' 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점이 마음에 들었다.
  세계 정복이라는 딱지를 가지고 있지만 네트워크의 대의는 분명 선하다. 물론 그 와중에 발생할 작은 희생들은 충분히 감수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하지만 그건 신념의 증거였다. 그게 없다면 아무리 바른 대의도 끝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흐트러질테지.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거절합니다."
  상아 씨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요?"
  "고등학교 2학년은 세계를 구하기 적당한 나이가 아니죠."
  "네?"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2학년은 세계를 정복하기 적당한 나이가 아니에요. 아, 이제 고등학생도 아니구나. 그냥 검정고시나 준비하고. …아무튼 중요한건 그건 제 '역할'이 아니라는거에요."
  "운명론? 겨우 그런 이유로…"
  겨우가 아니다.
  "한 악당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그 악당은 아스가르드에서 미드가르드로 온 악당인데…" 아니, 불필요한 설명은 관두자. "그냥 제 소설 최종보스라고만 알아두세요. 이제 2부 시작이니까 완결나려면 멀었지만."
  "…난데없이 스포일러인가요."
  "아무튼 그 악당은 실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했던적이 있다고 말했어요. 아카식 레코드가 뭐냐면,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운명의 도서관'이에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들에 대한 책들이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죠."
  "알아요."
  "하지만 그 악당은 '사서'들 때문에 아주 조금의 시간 밖에 없었다고 해요. 결국 악당은 단 한 권의 책, 그 중에서도 딱 한 줄 밖에 볼 수 없었죠. 그게 뭔지 알겠어요? 그냥 자기가 그 도서관에 들어가면 뭘 볼까 했을때 생각하면 금방 아는데."
  "글쎄요. 사랑하는 사람의 책에서 자신이 나오는 부분?"
  "…뭐 사람 마다 다르겠죠. 그 악당은 자기 책의 마지막 줄을 읽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때 자신이 저에게 죽을 운명이라는걸 알았다네요. 그런 악당이 그 운명을 알았을때 어떻게 했을 거 같아요?"
  "스포일링이군요. 최대한 피하려 했겠죠?"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결국 영식 씨가 승리하고 돌아왔다, 이건가요. 운명에서 벗어나는 발버둥이 쓸데 없다, 그런건가요. 용사의 운명, 세계 정복의 운명을 타고났다면 모를까 굳이 없는 능력을 덤으로 가져서 지구에서 불필요한 운명을 자진해서 지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될까요?"
  "네."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몸을 숙이고 있던 상아 씨는 등받이에 등을 턱 하고 기댔다.
  "잘 들어요, 영식 씨. 저는 영식 씨 팬이에요.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귀환 용사는 희귀 자원이에요. 그래서 '반드시' 끌어들인다는게 네트워크 철칙이죠."
  "협박입니까?"
  "만약 협박으로 결국 영식 씨를 끌어들인다면 그건 결국 운명 아닐까요?"
  "그렇겠죠."
  "…정말 알 수가 없군요. 그럼 '협박해주세요' 하는거랑 다를게 없잖아요? 왜 굳이 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죠?"
  그러면서 상아는 주머니에서 레이져포인터를 꺼냈다. 나를 겨냥하고 단추를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구멍이 난건 내가 앉은 소파였다. 불타거나 탄약은 없다. 그저 바람이 흐트러지는 훅 하는 소리가 전부였다.
  상아 씨가 말했다.
  "제가 못쏠거라고 생각한다면 거절하세요. 이 장비는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아요. 제가 주저할까요? …제가 이런 일이 처음일 거 같아요?"
  글쎄요.
  오히려 몸의 긴장이 빠지고 느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아까 입구에서 봤던 뿔테안경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문득 상아 씨 뒤로 화장실 표지판이 보인다.
  우리는 긴장감 있게 대치했지만, 그저 저 뿔테안경 아가씨에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으로 보이겠지. 그런 생각을 했을때, 느닷없이 뿔테안경이 상아 씨의 얼굴로 무언가를 뿌렸다.
  "?! 우와와왓!?"
  스프레이? 최루 냄새였다. 치한 퇴치용 스프레이다.
  그덕분에 상아 씨는 얼굴을 부여잡으며 고개를 숙였고, 뿔테가 내 팔을 잡아 당겼다.
  "뛰어!"
  그와 동시에 우리는 번개같은 스피드로 달리기 시작했다.
  카페를 나오고 전력 질주를 한다. 대학로를 달리고, 사람들 사이를 달리고, 입간판에 종아리를 찧고, 넘어지고, 그래도 달린다.
  심장이 터질듯이 뛰고 입안에 쇠맛이 돌 쯤에야, 우리는 멈춰섰다. 정확히는 내 손목을 잡아끌었던 뿔테안경이 멈춰섰다.
  헥헥 숨을 몰아쉬는 사이 내가 말했다.
  "누, 누구?"
  뿔테안경은 숨이 가쁘긴 하지만 힘든 내색은 없었다.
  "뭐? 모르겠냐?"
  "누구시죠?"
  "진짜 몰라? 와, 힘들게 구해놨더니 은인도 몰라보네."
  "네?"
  머리를 기울여봐도 아는 사람중에 이런 미소녀는 없었다. 나는 남중 남고였거든!
  "혹시 사람을 잘못보신건지…"
  "멍청아!" 
  "으악!"
  알 수 없는 여자애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이런 상황이면 찰떡같이 알아야하는 거 아냐? 보통 너같은 오타쿠새끼는 찰떡같이 알아본다고. 흔한 클리셰 아냐?"
  "네?"
  "나라고. 화이트팽."
  네?
 
+ 작가의 말 : .

달팽이껍질 13-06-17 00:12
답변  
네?
한울마루 13-06-19 13:14
답변  
오오,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요... 출판되길 기대할게요. 추천 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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