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까마귀들의 왕글 까레니나
공모전
 
 
첫회보기 관심
목록
 
 
1.
13-05-23 23:58
 
 
 한창 전학생을 소개하던 중에, 선생님은 옆에 서 있는 전학생에게 들리지 않게 무어라고 물었다.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기는 하지만, 이름을 이야기하려다 말고 그렇게 묻고 있는 순간부터 선생님이 지금 전학생의 이름을 잊어버렸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전학생은, 선생님이 숨기고 싶어 낮춘 목소리와 비슷한 톤으로 대답했다.
 "서윤진입니다."
 "아, 미안해요. 이름은 서윤진이라고 하고-"
 선생님은 잠깐 끊겼던 소개를 다시 시작했지만, 그 얼굴에는 당황하다 못해 그런 실수를 했다는게 절망스럽다라는 말이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경력이 갓 1년 밖에 되지 않은데다, 유난히 덜렁거리는 성격이었다. 문제는, 덜렁거리는 동시에 그럴 때마다 보는 사람이 미안해질 정도로 당황해한다는 것이다.
 소개라고 해도 특별히 나올 이야기는 없었다. 이름이 서윤진이고, 경기도 고양에서 전학했고, 서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라는 상투적인 당부가 따라나왔다. 간략한 소개가 끝나고 전학생은 교실 뒤쪽에 새로 가져다놓은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물론, 선생님은 여전히 '당황했음'이라는 단어를 줄줄 떨어뜨리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사실상 본격적인 소개는 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가고 난 후 시작됐다. 전학생이 왔다는 이야기가 돌자마자 2학년 거의 전부가 반에 몰려들었고, 교실 안을 채우다 못해 복도까지 누가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메워버렸다. 전학생이 한 명 왔다, 라는 사실만 놓고 보면 대단한 일도 아닌데, 지금 몰려온 녀석들에게는 그게 무슨 무료한 학교 생활을 해소하는 신선한 이벤트 같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전학생의 근처를 에워싼 녀석들은 제각기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전학을 왔는지, 동생도 있는지, 동생이 있다면 동생도 같이 전학을 왔는지 같은 사소하고, 그냥 할 질문이 없어서 하는 물음부터, 공부는 잘 했었는지 같은 대답하기 까탈스러운 것도 있었다. 주위에서 말을 걸 수 없었던 녀석들은, 발꿈치를 들고 전학생을 바라보면서, 예쁘다느니, 드디어 학교에 여자가 한 명 생겼다느니 하는 쓸데 없는 이야기에서부터, 몸매가 좋다느니 하는 조금 적나라한 이야기, 마지막으로는 가슴이 크다느니 하는 거침없이 적나라한 이야기까지 떠들기 시작했다.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전학생은 귀찮을 법한 질문에도 처음에는 그럭저럭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직장을 옮기는 참에 이사했다는 전형적인 이유로 전학했다는 것과, 동생은 없다는 것, 공부는 그렇게 잘하지 못했다는 것 같은 이야기들은 나도 대충 주워들었다.
 그러다가 대충 남자친구가 있었는지 혹은 있는지, 전학 온 학교에서도 인기가 있지 않았는지, 남자가 많이 들러붙었을 것 같은 모습이라느니 하는 말이 튀어나왔을 때였다. 쓸데 없는 질문들에 대한 인내심이 다했는지 전학생은 차가운 목소리로, 짧게 한마디를 했다.
 "시끄러."
 소란스럽던 반은 그 한마디로 조용해졌다. 요즘 세상에 시끄럽다는 말이 대단히 험한 말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목소리가 워낙 차가웠기 때문인지 쌍시옷이 여럿 들어가는 말 그 이상의 섬뜩함 같은 게 있었다. 거기다 쉬는 시간도 끝나가고 있었고, 그런 분위기에서 더 말을 건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 몰려들었던 녀석들은 한두 명씩 제 반으로 돌아갔다.
 여자애은 궁시렁거리며 외모 하나만 믿고 고압적으로 구는 재수 없는 녀석 아니냐, 라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떠들었고, 남자애들은 반대로 심하긴 심했지, 하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해해주는 척 하는 후자도 그 속에 숨은 의도가 썩 좋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심하긴 심했지. 그 이야길 남자애가 했거든."
 점심시간에, 이나현이 내 책상 앞에 붙어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나 같이 존재감 없는 인간에게 말을 걸고 있는 그녀는, 반장, 모범생, 압도적인 전교 1등 따위의 무시무시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여자애였다. 거기다 공부 뿐만 아니라 운동에도 능했고, 음악에도 소질이 있어 학교 안에서 밴드까지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이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성격이 비뚤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완벽한, 혹은 이상적인 학생이라고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까.
 "남자가?"
 "조금 그렇지? 괜히 추근거리는 거 같잖아."
 말 뿐만 아니라, 그렇게 물어봤던 녀석은 음흉한 웃음 같은 것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소심한 녀석이라면 그래도 얼굴을 붉히는 것 밖에 할 수 없었겠지만, 이번에 온 전학생은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걔를 좋아하는 여자애가 한 명 있어서, 자기가 뭔데 내 남자친구한테 그런 식으로 말을 하냐, 그런 소리를 하기도 하고, 하여간 뭐 그런 상황이야."
 "뭐야, 여자친구도 있었으면서 치근거린 거야?"
 "사귀는 건 아니지. 그 여자애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이니까."
 "삼각관계도 아니고, 그런 건 뭐라고 부르지?"
 "해프닝?"
 아직까지는 해프닝이고, 그런 착각이 길게 이어지면 곧 비극이 될 거다. 그 여자애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상만으로 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싶었다. 어쨌든 그런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전학생이 재수 없다라는 식의 묘한 공감대가 형성이 됐으니 가능한 일일 터다.
 "그래도 조금 무섭기는 해."
 나현이 말했다.
 "무서워?"
 "고등학생치곤 묘하게 분위기가 있다고 할까?"
 떠드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전학생을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았던 나는, 잠깐 고개를 돌려 뒤쪽에 앉아있는 전학생, 서윤진을 바라봤다. 어깨 밑까지 흑발을 늘어뜨리고, 감정 없는 표정을 띄우고 있는, 그런 여자애였다. 남자애들이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던 것처럼 예쁘긴 했지만, 그게 오히려 주위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친근하다기보다는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었으니까 말이다.
 "앞으로 피곤하겠어."
 내가 말했다.
 "왜?"
 "이러나 저러나 여자애들한테 찍혔을 거 아냐."
 "뭐 어때. 누가 뒷담화를 해도 '시끄러.'라고 한마디 하면 상황이 정리될걸?"
 그녀가 흉내낸 시끄러, 멍청아라는 말이 묘하게 비슷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보면 고등학생치고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말은 나현에게도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었다. 그녀 또한 표정이나 얼굴 생김이 묘하게 매혹적인 면이 있었다. 아마 점잔 빼고 앉아있으면 전학생과 비슷한 느낌이 날 것이다.  단지 그녀가 워낙 사교적이고, 활발하다 보니 가까이하기 어렵다거나, 무섭다거나 하는 말이 나오지 않을 뿐이다. 그녀와 내가 이야기씩이나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성격과, 어릴 적에 친하게 지냈었다는 작은 인연 덕분이었다.
 "거기다 고등학생씩이나 되서 누굴 괴롭히고 하는 것도 우습잖아."
 "우리 학교에는 그런 거 없나?"
 "내가 알기론 없어."
 누가 누굴 괴롭히고 하는 걸 내어놓고 하겠는가마는, 그녀가 그렇다고 말하니 어쩐지 그게 그대로 사실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학교에는 학교 폭력이 없습니다, 라는 선포처럼 들렸다고 할까.
 "그래도 누구 괴롭히고 그러는 건 다 큰 어른들도 하는 짓인데?"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누굴 심하게 괴롭히고 그러는 건 중학교보다 덜하잖아."
 생각해보면 고등학생이 되도록 정신을 못 차렸다면 당연히 그런 티가 나기 마련이다. 눈에 띄게 티를 내는 녀석은 확실히 없었다. 티를 내지 않을 정도로 음험하고 교활한 인간들이 섞여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거기다 쟨 누가 그래도 끄떡없을 거 같아."
 "무슨 얼음공주냐."
 "그렇잖아.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도로 잡아먹힐 거 같은데."
 이제 막 전학온 여자애를 놓고 누가 누굴 잡아먹을 것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우스웠다. 물론 이것도 위험한 추측이긴 하지만, 이전 학교에서도 그런 트러블 같은 것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트러블 때문에 전학했다고 하는 뻔한 이야기도 해볼 수는 있다.
 "그래도 친해지면 재밌을 거 같은데."
 나현이 말했다.
 "그래?"
 "도전하는 즐거움도 있을 거 같고."
 그런 것도 도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어쨌든 나현은 호기로운 웃음을 짓고 있다.
 "거친 야생동물을 길들이는 것 같은 느낌."
 "...길들이지 마."
 말로는 얼음공주를 한 마리 강아지로 만들 기세다. 누굴 잡아먹고도 남을 거라는 여자애에게 나현이 어떻게 접근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긴 했다. 아마 그때는 시끄럽다 대신 꺼지라는 정도의 말이 난무하지 않을까.
 "어린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는 것처럼."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진 않을걸."
 내가 말했다.

 아직 한 학년이 남은 2학년 2학기지만, 지금 반에는 바로 다음 학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것 같은 분위기가 돌고 있었다. 1학년이라는 게 고등학교와 중학교가 잘 구분되지 않는 시기라고 한다면, 2학년은 이제 겪을 건 다 겪은 것 같은 시기라고 할까. 3학년은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전학생이 왔다라는 사건은 그 겪을 걸 다 겪었다는 상황에서 작은 전환이 되긴 했지만,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은 상태로 돌아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상투적이긴 하지만, 전학생에게는 실제로 절실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못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학생인 채로 남게 되는 것이다.
 서윤진이 그랬다. 며칠이 지났지만 누구 한 명 친해진 사람 같은 것도 없었고, 하루 종일 제대로 이야기조차 한 마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친해지려고 해보자니 그 '시끄러'라는 한 마디가 너무 무서웠던 게 아닐까. 나현이 간간이 말을 걸기는 했지만, 그녀의 전학생 길들이기 프로젝트는 딱히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적극적이다, 소극적이다라는 차원을 넘어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영영 전학생인 채로 남는다고 해도 별 불만은 없을 것 같은 모습이다. 아니, 오히려 그러기를 바랄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정이야 어쨌건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 가볼 거야?"
 나현이 물었다.
 "그래야지."
 사실 지금 당장 나와 관계가 있는 일은 따로 있었다.
 이틀 전부터 이지훈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한 연락이 온 것도 아니었고, 전화를 걸어봐도 연결음만 끝도 없이 반복될 뿐 받는 사람이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선뜻 어떻게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선생님은 늘 그렇듯 당황했을 뿐이다. 서윤진, 혹은 다른 누군가의 사정과 내가 별 관계가 없는 것처럼, 지훈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그 녀석과 대단히 친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가끔 적당히 이야기나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런 사소한 것도 당황한 선생님의 눈에는 사태의 해결사가 될 수 있는 조건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무슨 일일까?"
 "글쎄...잘은 모르겠지만 별 일은 아니겠지."
 아무런 연락이 없는데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도 이틀 동안이나 시간을 질질 끌었다는 자체도 문제가 있었다. 불길한 느낌을 연장하면서도 마치 서로 눈치를 보듯 시간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별 일이 아닐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해결사 노릇을 하게 된 입장으로서,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나도 같이 가볼까?"
 "그럴 필요 있겠어?"
 필요 없나? 라고 나현이 다시 물었고, 나는 없겠지, 라고 대답했다.
 "별 일 아니잖아."
 내가 덧붙이듯 말했다. 실제로 별 일 아닌 것인지, 아니면 별 일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늘 모든 일에 앞장서서 나섰었던 나현도 이 일에는 어쩐지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만큼 불길한 느낌 같은 것이 풍겼는지도 모른다. 여자의 감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런 생각을 덧붙일수록 기분은 좋지 않았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서, 곧장 학교 건물 밖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수업이 끝났는데 괜히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끄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건물 입구에 어느새 나온 서윤진이 기대 서 있었다. 마치 앞질러나와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녀는 지나가려는 나를 불러세웠다.
 "저기, 우산 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했던 것처럼 차갑지는 않았다.
 "우산?"
 "응."
 날씨는 아침부터 흐렸고, 결국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만 봐도 오늘은 비가 올 것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런 날에도 우산을 챙기지 않거나, 현관 앞까지는 챙겼던 우산을 놓고 오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서윤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디까지 가면 되는데?"
 "너랑 가는 길이 겹쳐."
 "그래?"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아?"
 "옆에서 들었어."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가? 나는 그런 생각을 잠깐 하다가, 말을 덧붙였다.
 "오늘은 다른 데를 거쳐가는데."
 "그러니까, 그 길하고 내가 집에 가는 길하고 겹친다는 거야."
 나현과 내가 했던 이야기를 들었던 걸까? 굳이 나를 기다렸다가 불러세운 것도 그것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괴상한 관찰력이 묘하게 꺼림칙했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머리 위로 우산을 받쳐주었다. 그녀의 체구가 작아서인지 우산 아래 공간은 생각보다 부족하지 않았다. 장막처럼 쏟아지는 비가 우산을 두들기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몸의 고동이 느껴지는 듯 했다. 살다보니 이런 클리셰 같은 일도 생기는 건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친구 집에 가는 거지?"
 서윤진이 물었다.
 "응. 그런데 그런 것까지 듣고 기억할 필요는 없는데."
 "들리니까 들은 것 뿐이야."
 목소리가 그렇게 컸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그녀가, 그런 말들 하나하나까지 듣고 있었다는 건 조금 의아했다.
 어차피 서로 대단히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길을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 쯤 걷다가, 지훈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정문까지 도착했다. 그랬다가 이제부터 어디로 갈 거냐는 물음을 깜박한 사이에 서윤진은 아파트 건물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집은 어느 쪽이야?"
 그제야 내가 물었다.
 "친구 만나러 가는 거잖아? 내가 따라가도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녀는 조금 엉뚱한 대답을 꺼냈다.
 "뭐...안 될 건 없지."
 "어차피 비도 금방 그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야."
 확실히 안 될 건 없긴 한데, 그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나는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이대로 비를 맞고 가면 여기까지 우산을 쓰고 온 것도 별 의미가 없긴 하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어셔가가 당장이라도 몰락할 것 같은 날이야."
 거기다, 그녀는 그런 알 수 없는 말까지 덧붙였다.
 날씨가 확실히 좋지는 않았다. 단순히 비가 오는 정도였다면 그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늘은 먹이라도 풀어놓은 것처럼 어두침침했다. 그런데 어셔가가 몰락했던 날이 이런 날이었던가?
 지훈의 집에서, 그를 만나 간단히 설명을 듣는다, 그게 내가 끊임없이 그리고 있었던 시나리오였다. 왜, 그냥 학교에 사흘 쯤 가기 싫은 날이 있잖아. 연락도 하기 싫고. 그런 실없는
 11층의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부드럽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지훈이 살고 있는 집은 1109호였다.
 문 옆에 달린 초인종을 눌렀지만, 한참이 지나도 안에서는 별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 없는 걸까? 안쪽에서 들려올 수도 있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문을 손으로 두드려보니 마치 공동 속에 들어찬 공기가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돌아왔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러는 동안에도 쏟아지고 있는 비의 소리가 불길했다. 그렇게 내가 잠깐 시간을 끄는 동안 서윤진은 주저없이 문의 손잡이를 돌려 당겼다. 문은 가볍게 열렸고, 그 안에, 현관에 엎드려져있는 지훈의 모습이 보였다.

 목덜미에 손을 대보니, 맥박은 뛰고 있었다. 그렇지만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몸을 흔들고 불러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일단 업고 아래 층으로 내려가."
 당황해서 지훈을 흔들고, 눈꺼풀을 뒤집어보고 있는 내게 서윤진이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지금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축 늘어져있는 지훈의 팔을 어깨에 메고 거의 질질 끌듯 엘리베이터로 옮기는 동안, 서윤진은 전화를 걸어 주소를 부르기 시작했다. 119에 전화한 듯 했다.
 구급차는 곧 도착했고, 지훈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근처에 있는 종합병원이었다.
 구급차에 있었던 구급대원부터 응급실의 의사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어떤 증상을 보였는지를 물었지만 딱히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사흘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기에 찾아가봤더니 의식 없이 쓰러진 채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라는 말을 의미 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혈액검사부터 MRI 촬영까지 준비하면서, 의사와 간호사들은 끊임없이 보호자들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지만 그것 역시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사흘 동안 부모들은 어디 있었던 것인가? 지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훈은 부모 없이 혼자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응급환자였기에 진단을 위한 검사는 보호자의 동의 없이도 진행되었다. 의사들은 뇌 손상을 의심하는 듯 했다.
 나는 연락처를 남겨놓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비는 여기저기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간신히 작은 물결을 남기는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비는 안 맞아도 되겠다."
 마찬가지로 밖으로 나와 내 옆에 선 서윤진이 말했다. 그녀를 돌아보고 표정을 살폈지만, 서윤진의 얼굴에는 딱히 표정이랄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나를 재촉했던 모습도 그렇고, 그녀는 신기할 정도로 침착해보였다.
 "그건 그렇네."
 특별히 할 말이 없어서, 나는 그정도로만 대꾸했다.
 보호자는 아마 병원 측에서 수소문해 찾아낼 것이다. 그러면 이제 학교와 선생님에게는 무어라 말해야 할까? 그저 찾아가봤더니 쓰러져 있었기에 병원으로 옮겼다고 말하면 충분한 것일까? 별로 어려운 물음 같지도 않았지만 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별 일은 없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그래?"
 "직감이야."
 그게 진심인지, 아니면 안심하라고 짐짓 하는 말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다음날 나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선생님에게, 어제도 한참 반복했던 말, 그러니까 집에 찾아가봤더니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선생님은 역시나 평소처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당황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선생님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반에서는 특별히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것에 대단한 관심이 있을 것 같은 녀석은 없었다. 물론 나현에게는 말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면 지금 위험한 상태인 건가?"
 그녀가 물었다.
 "의식이 없다고 하면 위험한 거겠지? 병원에서는 어떻다는 말은 못 들었어. 어제는 그냥 검사만 했지."
 "그러면 오늘도 가볼 거야?"
 "병원?"
 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간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긴 하지만."
 "그렇지도 않을 거야. 걔 지금 거의 행려병자나 마찬가지일 거 아냐."
 "병원에서 보호자한테 연락을 해보겠다고 하긴 했는데."
 그렇지만 연락이 닿았을지 어땠을지는 모른다. 애초에 연락이 닿을 사람들이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걔 부모님은 어떻게 된 거야? 부모님이 안 계셨었나?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물었다.
 "그건 나도 몰라.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그게 물어볼만한 것인지 어떤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런 것도 결국 타인의 가정사라는 게 아닐까?
 "오늘은 나도 같이 가봐도 될까?"
 "병원?"
 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전의 상황이 그대로 반복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볼 필요가 있나?"
 "가볼 필요는 없지. 가서는 안 될 이유도 없는 거고."
 꼭 가야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막연한 책임감? 그런 것 때문일 수도 있다.
 
+ 작가의 말 : 짧게.

노블B 13-05-29 17:46
답변  
1주차 마감일이 이번주 목요일(5월 30일)입니다. 연재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