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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86회차/3] 루아벨라 루아벨라 나는 당신을,
글쓴이: 모핀
작성일: 13-12-01 07:48 조회: 1,471 추천: 0 비추천: 0
 
 
 
 
 
 
1
 

 
 나는 탄식을 한 번 하고, 비교적 마른 편인 양말을 헹거에서 걷었다. 오십 이 주 만에 돌아온 집의 풍경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비닐장판 위엔 약간의 물이 고여있었고 날파리들이 형광등 주변에서 앵앵거렸다. 나는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들을 창문 바깥에 내놓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나란 인간은 여전히 허술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저기 오십 이 주 째 입을 뻥긋 열고있었을 쪽창문처럼. 
 
 나는 엉망인 집을 마저 정리하고 방 한 구석에 앉아 가방 속에 들어있던 공책을 꺼내들었다. 중고생이 주로 사용할 듯한
푸른 바탕에 영어문구가 간단히 쓰여있는 그런 공책이다. 표지를 넘기자 익숙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흑색과 갈색으로 그려진 어느 여성의 초상화는 그을음과 물기로 인해 제법 섬뜩하게 보였다. 새까만 눈과, 흐릿한 눈썹과, 목 뒤로 길에 드리워진 진한 갈색의 머리칼, 물기로 인해 기괴하게 번진 미소. 마치 공책 바깥으로 벗어나려는 듯 옆으로 뻗었지만 타버린 바람에 형체를 알 수 없는 손까지……  쿵, 쾅 순간 가슴이 뛰었다. 마치 심장이 이 그림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쿵……
 
  쾅, 이번엔 가슴이 아니라 머리가 바닥에 부딛혔다.
 
 " 미쳤어, 진짜 그정도면 정신병 아니에요? "
 
 고개를 꺾으니 머리맡에 루아벨라가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등 뒤에서 발로 차였나보다. 으이그, 진짜 집 꼬라지좀 봐. 그녀는 혀를 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공책을 바닥에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 그림보고 흥분할 시간에 방청소나 하지 그랬어요? "
 "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거? "
 
 나는 귀찮은 것을 마다하고 열렬히(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청소를 끝마친 상태다. 저렇게 말하면 섭하다.
 
 " 청소하란 말이 그렇게 눈 부릅뜨고 노려보면서 '아, 저년이 나한테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거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쁜 말이었어요? "
 " 안 부릅떴어, 안 노려봤어, 그리고 그런 생각 절대 안했어. 했다고, 보면 모르는거야? 청소 했단 말이야."
 
 그녀가 다시 방을 둘러보더니 나를 내려다 본다. 분식집에서 산 김밥을 다먹고 난 뒤 아무 생각없이 구겨버리는 쿠킹호일 같은 그녀의 얼굴.
 
 " 당신 별명이 쥐새끼란건 아는데 시궁쥐인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
 " 뭐? 시궁… 야 루아벨라. "
 
 나는 엄청 쓴 소리를 하려다 참는다. 어디까지나 난 대인배고 남자다. 여성에게 모진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순 없다. 그녀가 등에 메고 있는 거대한 일렉기타 하드케이스 때문은 절대 아니다. 그녀가 살짝 그것을 휘두를려고 한 것 같지만 절대 그것 때문이 아니다. 나는,
 
 " 다시할게, 청…소. "
 
 눈을 깔았다. 이런 머저리같은 놈.
 
 
 
 
2
 
 
 
 그녀가 도와준 덕분에 방 청소를 빨리 끝낼 수 있었다. 그녀가 의자에 거꾸로 앉아 벽면에 붙은 중국집 전화번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 저녁은 아무래도 짜장면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나는 쪽창 쪽을 바라본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법 푸르르던 바깥이 보랏빛으로 저물어가고 있다. 거기 만리장성이죠?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와 말투.
 
 " 하나만 묻자. "
 
 루아벨라가 젓가락을 쪼개다 말고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그녀의 오른다리 옆에 놓인 짜장면 그릇을 본다. 벗겨지지 않은 래핑에 짜장소스가 잔뜩 묻어있다. 저번엔 젓가락으로 휘적휘적해서 먹었었는데… 저런건 또 언제 배웠는지 모르겠다.
 
 " 왜 다시 온거야? 여기에. "
 
 딱, 하고 그녀가 젓가락을 쪼갠다. 나는 오른손과 왼손 각각 젓가락 하나씩을 들고 짜장면을 비비기 시작한다. 래핑 벗겨지는 소리와 단무지 씹는 소리. 멀리서 목탁소리가 들린다. 참, 오늘 토요일이지. 토요일만 되면 옆에 있는 작은 절에서 불경을 왼다. 풀벌레가 운다. 찌르르, 찌르르, 그리고 그에 답해 방 안에서 울리는 우적, 우적, 씹는 소리.
 
 " 그리워서 "
 
 그녀가 답한다. 그리고 웃는다. 그녀의 등 뒤에 눕혀진 채로 열려있는 기타 케이스가 보인다. 신문지에 싸인 그 것들이 보인다. 나는 그 것에서 시선을 거두어 내 짜장면 그릇을 본다. 검다. 코웃음 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낸건지 내가 낸건지 분간이 안간다. 어쩌면 짜장면을 먹고 있는 그녀의 후루룩소리 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입가가 검게 물든다.
 
 " 또 올건가? "
 
 꿀꺽, 하고 그녀의 목울대가 흔들린다. 그녀의 눈망울이 나를 바라본다. 시선을 피하다 슬쩍 그녀와 눈을 마주친다. 노란 머리와, 검게 물든 입이 보인다. 동물원의 판다같은 그녀와 시궁창의 쥐… 같은 나. 닮은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데 그녀는 왜,
 
 " 당신은, 싫어요? 이런 내가? "
 " 싫을리가 없잖아. "
 
 그릇을 들다말고 그녀의 말에 냅다 대답해버린다. 역시, 나란 인간은 허술한 놈이다. 무턱대고 저렇게 대답해버리다니. 나는 아직 단 한번도 젓가락질 하지 못한 짜장면 그릇을 내려다본다. 이번에도 먹긴 글른거 같다. 그녀가 잘린 양파를 춘장에 찍어 입에 넣는다. 나보다도 더 한국인 같은 그녀. 햄버거를 좋아했던 나와 짜장면을 좋아하는 그녀. 그녀, 그녀, 그녀. 끊임 없이 생각나는 검은 입과,
 
 희미한 형광등에 빛나는 노란 머리.
 
 나는 때를 기다린다. 그녀가 곧 젓가락을 내려놓고 휴지로 입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 것에 다가갈 때 만을 기다린다. 정확하진 않지만 나도 모르게 숫자를 센다. 십, 구, 팔, 칠… 이, 일… 열을 다 세고 일곱을 더 세고 나서야 그녀가 입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아까 그녀의 말에 대답한 그 기분대로, 멍청하고, 대책없이 그녀의 손을 붙든다.
 
 " 뭐, 뭐하는거예요? "
 " 생일 축하해. "
 " 무슨… 당신 그거 어떻게 알았어? "
 
 내가 웃자 그녀가 난처해하며 따라웃는다. 닮았다. 그림과, 닮으면 안되는데…….
 
 
 
 
 
3
 
 
 
 
 방안이 어둡다. 어두울만 하다. 지금은 깜깜한 밤이고, 천장엔 형광등도 없고, 벽지도 다 뜯어내 콘크리트만 보인다. 바닥에 깔린 신문지 몇 장이 부서진 쪽창에서 불어온 바람에 방 이리저리 쓸려다닌다. 나는 그런 방 한 구석에 서 있다. 아무도 없다. 있을리가 없다. 있었다, 있었을까, 있었을지 모른다. 나 외에 누군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손을 붙들고,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피어오른다. 안개가, 불꽃이, 연기가, 울음이, 난처해하는 얼굴 속에 피어나는 미소가, 희망이, 눈물이, 목탁소리와 그녀의 꿀꺽하는 목소리가. 공책이 있다. 공책 속에 그녀가 있다. 첫째 장에 그녀의 얼굴이 둘째 장에 그녀의 이름이 셋째 장에 그녀의 나이가 넷째 장에 그녀의 취미가 다섯째 장에 그녀의 직업이 여섯째 장에 그녀의 꿈이 일곱째 장에 그녀의… 아니…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아도 주변이 새까만것은 똑같다. 달라지는 것은 조금 더 깊숙히 다가오는 소리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연기와, 불꽃과, 살려달라는 그녀의 울음소리. 아니 살아달라는 그녀의 울음소리. 타들어가는 기타케이스와 거뭇했던 것이 새하얗게 변해버린 '그 것' 몽롱해지는 정신과 흘러내리는 눈물과 녹아내리는 살결과 무너져내리는 영혼.
 
 
 
 
 또 올것이다. 그녀도, 나도, 그 날 다시 이곳에 올 것이다. 그리고 듣겠지. 그녀의 숨소리, 울음소리, 웃음소리. 피어오르는 불꽃 속에서 들려오는 모든 것들을. 그리고 답할 것이다. 이번엔 반드시,
 
 
 
 
 
루아벨라. 루아벨라. 나는 당신을,
 
 
 
 
 
 
 
 
 
 
 
 
 
 
 
 
 
 
 
 
 
 
 
 
 
2013 12 01 / 모핀 쓰다.
기한은 이미 지난거 알지만, 그래도 끄적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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