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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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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86회차/2] 인형사
글쓴이: 은학
작성일: 13-11-30 23:55 조회: 1,089 추천: 0 비추천: 0

새벽 사이에 비가 내려서인지 아침 공기는 엄청나게 추웠다. 교복 위에 점퍼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도 찬 공기는 옷을 뚫고 몸 안으로 들어왔다. 주머니에 손을 쑤셔놓고 흠뻑 젖은 길을 걸어가면서 장갑을 놓고 왔다고 깨닫는다. 양말 역시 젖어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으니 이대로 가도록 해야겠다.

차들이 도로 위를 달려갈 때마다 바퀴가 빗물을 스치는 소리가 나고 도로 위는 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반짝였다. 초등학교를 지나고 도로 주변의 아파트들이 보인다. 그리고 사거리에 자리 잡은 상가건물 하나가 있다. 혹 누군가 나에게 궁금한 게 있냐고 묻는다면 상가건물의 2층이 왜 항상 커튼이 쳐져 있냐는 점이다. 그 안은 도대체 뭐가 있을지? 간판조차도 없었다. 친구들끼리도 저긴 뭐냐는 이야기가 간혹 나오기도 한다.

심심한 등굣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깨지고 말았다.

혹시 이게 필요하니?”

소리가 들린 쪽을 보니 나와 친분이 있는 여자애가 어느새 옆으로 와 있었다. 꽤나 잘 사는 집 아이로서 기품이 느껴지는 차분한 성격의 여자애다. 이름은 기억하기 쉬운 어감인 김선이였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장갑을 보고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오, 너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느낌으로?”

그녀는 어깨를 살짝 들어 올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학교로 천천히 걸어갔다.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사거리의 신호를 기다리고 교문의 용모 검사를 하는 학생부 선생님을 지나 추위를 피해 굳게 닫혀있는 교실의 문을 열었다. 책상 고리에 가방을 걸고 푹신한 방석 위에 앉는다. 나는 교실에 도착하고 나서도 목도리를 풀지 않았다. 아니, 추워서 못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그녀는 자연스레 말을 걸어온다. 평소에 하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이야기 중간에 그녀는 장갑을 내밀며 내게 끼고 있으라고 했다. 아까는 사양했었지만 지금은 추위를 참을 수가 없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 학교라는 건물 자체가 밖보다도 추웠다.

고마워.”

얼른 손을 뻗어 장갑을 끼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의 문제가 끝났다면 이제는 발이 문제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까 물웅덩이를 밟아버렸는데 양말이 일부분 젖어버렸었다. 그래서 일단 양말을 벗었다. 열을 뺏기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다리를 벌벌 떨자. 선이도 그것을 눈치 챘는지 내 책상 아래쪽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양말을 벗어서 주려는 것을 간신히 말릴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남한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위로 치켜 올린 눈썹 밑으로는 웃고 있었다. 얘가 웃다니. 보기 드문 광경이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수업 때문에 벗고 있던 번 목도리를 번개같이 둘렀다. 물론 장갑도 함께. 히터 좀 틀어줬으면 좋겠는데.

어디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가 물었다. 어디긴 화장실이지. 그런데 추워서 복도에 나갈 용기가 나질 않는다. 나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일관된 무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뭐야아. 가는 거야 마는 거야.”

나는 하얀 입김을 낼 생각으로 한숨을 쉬었으나 입김은 나지 않았다.

화장실 가려고 했는데 못가겠어. 나 추위 잘 타는 거 알지? 쟤처럼 반팔 입고 돌아다니고 싶은데.”

교실에는 덥다고 반팔을 입고 다니는 녀석이 있었다.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아, 대신에 여름에 덥지 않을까?”

그건 그렇겠지만.”

나도 쟤랑 체질이 비슷해서 지금 좀 더워.”

진짜로? 여자애 중에 그런 애는 또 처음 보는데?”

추우면 내 점퍼입어.”

나는 감사를 표하고 그녀의 점퍼를 무릎담요 대신 덮었다.

학교가 끝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선이는 동생의 생일 때문에 서둘러서 가야한다며 먼저 달려가 버렸다. 생일파티를 무슨 건물을 통째로 빌려서 한다나? 우리와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다.

잠깐 내 길을 막고 있던 신호가 바뀌고 길을 건너가자 장갑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장갑을 낀 손을 보고서 잠시 고민을 하고, 장갑을 다시 고쳐 꼈다. 내일 돌려주면 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중간 쯤 도로를 건넜을 때였다. 돌연 왠지 모를 충격이 엄습해왔다. 세상은 거꾸로 돌아갔고 무언가의 마찰음도 들렸다.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바닥에 몇 번을 굴러갈 필요가 있었다. 뒤늦게 온 몸에서 고통이 느껴지고 지금 나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푸르던 하늘은 새빨갛게 보이고 몸을 일으키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말소리는 도로에 뻗어있는 내 사방에서 들렸다.

팔이 꺾였어.”

세상에나…….”

여기 학생이잖아.”

뼈를 에는 추위가 느껴졌다. 옷과 목도리를 두르고도 찬 공기는 그것을 뚫고 몸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의 웅성임이 멀어지고 빛이 나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린 곳은 아주 따뜻한 곳이었다.

 

. 목격자도 많고 가해자가 협조적이라 다행이죠.”

…….”

가해자가 생각을 바꾼 게 어디에요. 어제만 했어도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그렇게 우겨댔는데.”

……. 그건 그러네요. 좀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우리 애 사고 낼 때는 멀쩡하더니 어제 왔을 때는 어디서 그렇게……. 어휴.”

엄마는 내가 누워있는 병실 침대의 옆에서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제는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나를 승용차로 박아버린 사람이 왔던 모양이다. 머리가 어지럽다. 말로만 듣던 사고를 직접 당하니 신기함보다는 당혹감이 컸다. 보험회사 직원은 보험 용어를 써가며 보험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까지는 가해자가 꽤나 불친절한 대우를 해줬다는 모양이지만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태도가 돌변했다고 한다.

나는 엄마와 보험회사의 언제까지고 이어질지 모르는 이야기를 들으며 시선을 병실 주변에 두었다. 침대에 누워서 TV를 보는 분과 병문안을 온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분, 자고 있는 분 등등 각자 사연이 있어 병원에 온 사람들이다. 내 자리는 6인실의 가운데 쪽이고 딱 TV를 보기 편한 위치였다. 오른손은 깁스를 하고 있어서 가려운 곳이 있어도 마음대로 긁지 못했고 한 손으로 귤 까먹는 불편을 감수해야했다. 오른 다리도 깁스를 하고 있었기에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 휠체어를 타야했다.

보험회사 직원이 용무를 마치고 나가고서 엄마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내 옆에 있었다. 보호자 상주니까 하루 종일 있는 셈이다. 저녁을 먹고서 할 짓이 없어 하품을 하고 재미없는 예능 프로를 억지로 시청했다. 엄마도 재미가 없었는지 잠시 밖에 나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굳이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여기 있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잠시 나갔다 온다고 한 뒤 병실의 문을 뒤로했다.

심심했던 나는 한 손으로 귤을 까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귤 까는 거 힘들지 않아?”

커튼 너머로 옆 침대에서 묻는 친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 귀찮아. 넌 왜 여기 있냐.”

드르륵 소리를 내며 커튼이 걷어지고 무표정한 선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친척 겸 너 면회 왔어. 나 여기 있던 거 몰랐지? 너한테 면회 가려고 했는데 마침 친척도 여기 있었더라고.”

. 친척이 바로 옆자리라니 세상 참 좁네.”

나는 이 말도 안 돼는 우연에 허탈한 웃음을 내었다.

몸은 괜찮아?”

오른쪽 팔다리 부러진 거 말고는 다행히 문제 없으시단다. 걱정 마.”

걱정 말라니? 이틀 전만 했어도 팔팔했던 애가 이렇게 됐는데?”

괜찮아.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잖아.”

, 참 낙천적이시군? 내가 너 소식 듣고 얼마나 사고 낸 아저씨한테 화났는지 알아?”

선이는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왜 화를 내.”

그거야 그렇잖아. 혹시라도 네가 죽으면 내 꿈이 무너지니까…….”

? 꿈이 뭔데 그래?”

그건 비밀이야…….”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화제를 바꿔 말했다.

아무튼. 퇴원하고 나면 항상 내 옆에 붙어 다녀. 알았어?”

왜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데? , 딱히 상관은 없지만.”

상관없으면 내 말대로 해줘. 부탁이야.”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내가 걱정된다는 진심어린 표현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뭐, 알았어.”

그제야 그녀는 안심을 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용건은 여기까지였는지 내 허락을 받고나자 작별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가버렸다. 이대로 가는 건가? 친척 병문안은?

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먹을 것을 잔뜩 사서 돌아온 엄마를 보자 그것은 금세 잊혀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를 쳤던 가해자가 나를 찾아온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사과를 하고 싶다는데 엄마는 가해자의 전화를 받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 안녕……. , 몸은 괜찮아? 하긴 괜찮을 리가 없지……. 네 여자친구라는 애가 잔뜩 화가 나있더라고…….”

체구가 왜소한 그 아저씨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거나 다른 곳으로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어쩌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기겁을 하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마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나 말고도 다른 환자들과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의 사과는 몇 시간이나 계속 되었고 우리 가족들이 억지로 그를 떠밀어내서야 끝이 났다.

 

오늘은 시간에 여유가 되지 않는지 선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병문안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친척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나를 챙겼다. 특별히 내 건강을 위해 비타민제를 사왔다는데…… 어차피 병원에서 잘 챙겨주지만 예의상 먹기로 했다.

비타민제를 입에 넣고 물을 들이켰다. 오늘따라 유난히 알약이 넘어가지 않아, 물을 한 번 더 들이켰다. 힘들게 비타민제를 목구멍에 넘기고 컵을 고스란히 옆 서랍 위에 올려놨다.

어땠어? 그 말라깽이 아저씨. 너한테 제대로 사과했어?”

그녀는 내 자리의 커튼을 치며 말했다. 이로써 우리를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분할 정도로 받았어. 아니, 그냥 미친 사람 같아.”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멍이 든 얼굴을 내밀고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을 글썽였던 그 사람을 떠올리자 기분이 나빠졌다. 선이는 그 아저씨가 말랐는지 살이 쪘는지 알 리가 없다. 게다가 그 아저씨가 했던 여자친구라는 단어가 거슬렸다. 의심은 한 번 시작하자 거스를 수 없을 정도로 내 의식에 깊고 어둡게 확산됐다.

그래? 그럼 됐어. 그런데 너 양말이 또 젖어있었더라. 내가 새 거 가져다줄까?”

괜찮아. 다른 거 있으니까.”

대답을 마치고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에 잘 웃지 않던 선이가 지금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실실대고 있었다. 점점 학교생활 내내 친근했던 그녀가 멀어져갔다.

그녀는 미소를 보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것을 뿌리치고 한 쪽 팔다리를 이용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선이는 더더욱 입가에 미소가 늘어났다.

한 쪽으로만 움직이기 불편할 텐데……. 아장아장 거리는 게 귀여워.”

그녀의 손이 다시 한 번 내 머리에 올라갔다. 왼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너 도대체 왜 이래. 이런 애 아니었잖아.”

무슨 소리야? 난 바뀐 게 없는데?”

선이는 유혹적인 눈빛을 내며 내가 누워있는 침대로 올라왔다. 밀어내려고 했지만 왼손 하나로는 역부족이었다. 다리로 내 팔을 누르고 손등으로 볼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붉게 물든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난 원래이랬어. 참았을 뿐이지. 너를 위해서 한 일이 많아. 네가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이지. 며칠 전만 해도 내가 장갑을 건네주고 점퍼도 줬잖아? 사실 나도 추웠어. 그래도 네가 나를 의지해줬으면 해서 그랬지. 그리고 너를 이렇게 만든 아저씨도 내가 보복을 해줬어.”

? 그건 아니야. 보복할 필요는 없었어.”

필요해. 너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줘야 하거든. 넌 내가 보호할 거니까.”

나는 몸을 발버둥 치며 그녀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내 몸은 내가 지켜. 그러니까 이거 놔.”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넌 오늘부로 퇴원이야. 퇴원하면 계속 내 옆에 있을 거라고 했지?”

난 아직 퇴원

그건 내가 결정해. 안전한 곳으로 가자.”

젠장! 여기가 제일 안전해. 헛소리 그만하라고!”

그때였다. 우리를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우리의 말다툼을 듣고 말리러 온 것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를 찾아온 사람은 내 옆자리에 있던 환자였다. 커튼이 점점 걷어지고 커튼의 천에 가려져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드러났다. 병실의 환자들 전부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전부 찾아올 정도로 심한 말싸움은 아니었는데?

선이는 붉게 물든 얼굴로 사방을 쓱 둘러보더니 작게 웃기 시작했다.

헤헤.”

왜 웃는 거야?”

그녀는 우리의 얼굴을 서로 맞붙이고 속삭였다.

안전한 곳으로 가자.”

여기가 제일 안전하다니까?”

어제 말했었지? 혹시라도 네가 죽으면 내 꿈이 무너진다고. 그 러 니 까. 아무도 너를 건드리지 못하는 곳에 데려다 놓아야겠어. 이번 사고를 통해서 알았거든. 천천히 꿈을 진행시키다간 네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걸.”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그녀를 무시하고 내 침대 주변에 있는 환자들에게 시선을 줬다. 그들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리들을 보기만 했다. 도와주러 온 게 아닌 건가? 그럼 왜 여기 몰려있는 거지?

그녀는 내 생각을 읽은 듯이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은 다 내가 고용한 사람들이야. 아무리 병원에 있다고 하더라도 네가 걱정돼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거든.”

그럼 네 친척은……?”

그건 거짓말이야. 미안.”

선이는 오른쪽 치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잔뜩 구겨진 장갑을 꺼냈다.

.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갑 같지 않아?”

그것을 보자 머리가 몽롱해졌다.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준 비타민제를 먹고 나서부터 그랬었다. 단지 내가 눈치 채고 있지 못했을 뿐.

그건 내 장갑…….”

그래, 며칠 전에 네가 집에 놓고 온 장갑이야. 그래서 내가 내 껄 빌려줬잖아?”

내 손에 억지로 장갑을 끼우며 말했다.

오른손도 끼우고 싶다아. , 이게 다 그 아저씨 때문이야.”

이번에는 왼쪽 주머니에서 구겨진 양말을 꺼냈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준비한 양말이야. 이제 밖으로 나갈 거거든? 따뜻한 수면양말로 갈아 신자.”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정성스럽게 내 양말을 벗기고 발등에 키스를 했다. 그 다음 부드러운 수면양말로 갈아 신겼다. 나는 그 과정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난 나갈 생각…… 없어…….”

나는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간신히 한마디를 꺼냈다.

나중에는 나에게 감사하게 될 거야. 잘 자.”

내 손을 잡고 나를 토닥였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원치 않는 수면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칠흑 같은 어둠에서 벗어나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정신을 차리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날이 벌써 어두워졌는지 병실, 아니, 어딘지 알 수 없는 방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나는 우선 목발을 찾았다. 그러나 병원침대에 걸쳐있을 그것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이곳은 선이가 말한 안전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젠장.”

주머니를 뒤지고 침대를 더듬었다. 핸드폰을 찾을 수 없었다.

장갑은 벗겨져있었고 양말은 또 어느새 다른 것으로 갈아 신겨져 있었다. 마치 내가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김선이의 인형.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주인이 하는 대로만 따라야 하는 인형. 중학교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내내 사이좋게 지내왔던 그녀가 왜 지금 와서 나를 이렇게 대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 얌전하고 차분한 성격의 선이가, 항상 내가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던 선이가, 도대체 왜……?

어딘가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누군지 확인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커튼을 살짝 걷어, 도시의 빛이 들어오게 했다. 나는 그 미세한 빛을 이용해서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했으나 오히려 역광 때문에 알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대충 체구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낸 결론은 김선이라는 것이다. 역시 선이가 말하는 안전한 장소는 그녀와 나 말고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일 테지.

김선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어서 병원에 데려다 줘.”

그러자 커튼은 도로 빛을 삼키고 잠시 어둠이 몰려왔다. 이윽고 몇 자국 발소리가 나더니 방의 어둠이 물러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깨 있었구나. 방을 한 번 둘러봐봐. 안전하다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일단은 네가 궁금해하던 상가건물의 2층이야.”

그녀의 말대로 전등 덕분에 밝아진 방을 둘러봤다. 사방이 내게 익숙한 물건들이었다. 침대, 책상, 옷장, 컴퓨터, 헹거……. 전부 내 방에 있던 것들이다. 소름이 돋았다. 그나마 그녀를 믿고 있던 마음이 깨지고 말았다. 그녀에게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분노로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

나는 눈을 부릅뜨고 가증스러운 그 녀석을 노려봤다.

하아아아……. 그 표정. 으으음.”

그녀는 탄식을 한 번 하고, 비교적 마른 편인 양말을 헹거에서 걷었다. 다만 그녀에게 있어서 탄식이란 다른 의미의 탄식이었다. 황홀감에 젖은, 그런 느낌이었다. 양말을 집어 들어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대었다. 그것이 달콤한 초콜릿이라도 되는 양 냄새를 맡았다. 검은 색과 흰색의 줄무늬의 양말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넘쳐나겠지만 그것이 내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헹거에는 내가 평소에 즐겨 입던 옷가지들이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내 꿈은 말이지……. 너를 내 남편으로 만드는 거야. 너도 동의하지?”

그 놈은 내가 대답하려 하자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소리치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하하하! 너무 좋아서 소리 지르는 거야? 앞으로 여기서 나랑 같이 살자. 내가 지켜줄 테니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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