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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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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86회차/1] 데이트
글쓴이: tangy귤
작성일: 13-11-30 23:47 조회: 1,402 추천: 0 비추천: 0
데이트
 
 
 
 
 
형광등 빛이 눈부신 작은 사무실 안.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상들 옆쪽에 배치된 프린터기와 복사기가 요란하게 돌아간다.
소음들 위로 수업 일정과 여러 전달사항들이 스쳐가는 방의 정중앙.
그곳에 위치한 책상에는 수학ⅠⅡ 정석과 각양각색의 문제집들이 책꽂이에 기대어 서있고, 군데군데 A4 용지 다발이 각종 복잡한 기호와 무수한 붉은색 눈송이 그리고 빗줄기를 담은 채 흩어져있었다.
묘하게 소란스런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성훈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여전히 졸음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까만 눈동자 아래로 턱까지 내려앉은 다크 서클이 짙게 자리 잡았고, 자다 일어난 것치곤 얌전하게 가라앉은 검은색 머리카락은 굳은살이 베긴 거칠고 커다란 손에 의해 헝클어진다.
하품도 기지개도 없이, 스르륵, 의자에서 일어난 성훈은 바삐 굴러가는 밤 10, 학원 내 피곤한 활기에 면역이 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안녕?”
문 앞에서 성훈을 맞이한 건, 앳된 여자 아이의 목소리.
성훈의 모교, XX 고등학교의 교복 블라우스와 스커트 차림으로, 옆머리를 땋아 반 묶음 한 검은 머리칼이 허리 위쪽까지 찰랑거리는 작은 소녀가 귀엽게 미소 짓는다.
안녕.”
힘없는 성훈의 목 울림에 소녀는 양 볼을 통통하게 부풀렸다.
뭐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아직까지 무뚝뚝한 얼음 왕자님 모드인 거야?”
소녀가 장난기 어린 미소와 함께 검지와 엄지를 들어올린다.
기껏 너의 첫사랑님께서 몸소 여기까지 찾아와주셨는데 너무하잖아?! , 웃으라고! 웃어!!”
한껏 잡아당겨진 성훈의 눈매와 입가가 기이하게 일그러진다.
그마애, 하미(그만해, 다미).”
? 더 하라고? 좋았어!”
짓궂은 다미의 얼굴에 작게 한숨을 내쉰 성훈은 그녀의 양 손목을 잡는다.
정도껏 하자, 우리. 근데 넌 어째 변한 게 하나도 없냐?”
변할 게 뭐 있나?”
손목에 수갑, 상태가 된 다미의 볼이 살며시 붉어진다.
아름답게 자라는 게 내 일이라며? 그래서 예쁘게 꾸미고 왔다, 이거야.”
, 봐봐 예쁘지? 하고 묻는 듯이 다미가 그 자리에서 빙글 돌자 스커트가 가볍게 부풀어 오른다.
그땐…… 하여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냐?”
불만 있어?”
아니.”
다미가 웃었다.
나보고 뭐라 할 계제가 아닌데? 너도 똑같잖아. 쑥스럼 대마왕인 주제에 밝히긴 엄청 밝히고 바보같이 허세만 잔뜩 부리는. 정말이지, 변한 게 없어요.”
성훈이 시선을 피하자 다미는 그의 오른손을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봐봐, 또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대로 일만 한 거지? 게다가 홀쭉 마르기까지! 잘 챙겨먹긴 한 거야?”
글쎄?”
눈 피하지 말고 말해보시지 그래?”
문자 그대로, 멀고 먼 산을 응시하는 성훈.
굳이 말 안 하겠다면 내가 맞춰볼까? 빵 한쪽으로 아침 때우고 저녁은 컵라면, 점심은 누가 쏘겠다고 할 때만 먹는다. 어때?”
, 스토커냐?”
흥이네요. 그러게 내가 채소랑 고기랑 잘 좀 먹고 살라니까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요.”
다미가 팔짱을 낀 채 얼굴을 팩 돌리며 콧방귀를 뀌자 성훈이 몰래 미소 짓는다.
어쩌겠어.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빚도 무시 못 하는데 대학 간답시고 학자금 대출까지 쌓였거든.”
그렇다고 학원 강사랑 편의점 알바에 노가다까지 뛸 필욘 없었잖아. 넌 몸을 너무 혹사시킨다니까.”
다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급작스레 성훈에게 팔짱을 끼었다.
, 뭐야?”
뭐고 자시고, 오늘은 나랑 데이트를 하는 날. 그런 고로, 엄청나게 특별한 하루니까 맘 편히 쉬는 거야.”
누구 맘대로?”
내 맘대로!”
이 시간에?”
어둑어둑하니 좋잖아. ? 어디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서 야시꾸리한 짓이라도 할 예정?”
……못하는 말이 없다, .”
성훈인 이제 어른이니 혈기왕성한 중고딩 때랑은 다를 거 아냐. 갑자기 늑대가 돼서 내 볼 싸대기를 맞을 일도 없을 테고, 아냐?”
글쎄다.”
호오, 혹시 자신 없으신가요?”
노코멘트.”
끊임없이 툭탁거리며, 그들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다리에 거위 알만한 알통이 자연 생성되는 경사길 중간에 ‘XX 고등학교라고 한자로 새겨진 정문 기둥들이 서있다.
양쪽 길가에는 누구를 위한 배려인지 알 수 없는 계단이 촘촘하게 박혀있고, 그 위를 철창이 가로막는다.
어두컴컴한 시간에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는 건 경비실과 10개가 넘는 몇몇 교실들 뿐.
그마저도 차가운 흙먼지가 몰아치는 운동장 너머로 뿌옇게 흐려 보인다.
여기도 변한 게 없구나.”
어머, 생긴 거랑 안 어울리게도 감상에 젖으셨나 봐요, 성훈 씨?”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싱글싱글 웃어 보이는 다미를 성훈은 가볍게 째려본다.
“7년 만에 처음 와보는 거다. 당연한 거 아냐?”
, 심했다! 스승의 날도 안 와본 거야?”
다미의 둥그레진 눈동자를 성훈은 슬며시 피했다.
난 매번 갔었는데. 카네이션이랑 카드랑 만들어가지고.”
그야 넌 고등학생이잖아. 고딩이 중학교 가는 거랑 대딩이 고등학교 가는 건 질부터가 다른 거야. 사복을 입고 학교에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뻘쭘한 건지, 넌 모를 거다.”
, 글쎄
다미는 성훈의 손목을 깍지 낀 양손에 잡는 식으로 팔을 뻗어 그의 시선을 마주볼 수 있을 만큼 크게 회전한다.
순간 회전축이 되어버린 성훈의 손이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그녀의 손에 잡히고, 그는 말똥말똥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와 마주하게 된다.
그냥 귀찮았던 건 아니고?”
성훈은 별로 반갑지 않은 상황에 진땀을 흘리며 고개를 한껏 돌렸다.
어딜 보시는 건가요? 여길 봐야지요.”
마주잡은 손의 각도가 내려가며 슬금슬금 가까워지는 상대방의 존재감에 성훈은 사면초가에라도 빠진 기분이다.
몇 년 전 발렌타인 데이 당일, 다미가 제 딴엔 정성을 다해 만들어 온 초콜릿 케이크의 맛을 잘못 품평했다가 한번 당해본 경험이 있는 그때와 한 치의 오차도 없었으니까.
대화의 화제는 달랐지만.
지금처럼, 유혹이라도 하듯 간격을 좁혀 와선 몸에 닿을락 말락 애무하듯이 주도권을 휘어잡는다.
정말이지, 바뀐 게 없는 녀석이다.
성훈은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은 채 심호흡을 하고 코앞까지 다가온 다미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미안, 말 실수했어.”
성훈의 나지막한 목소리.
다미는 완전히 경직된 그 목소리에 생긋 미소 지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헤에, 많이 성장했네. 저번엔 다짜고짜 덮치려고 했었잖아. 그래도 한 대 맞고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지, 안 그랬음 범죄 성립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멋대로 남의 이성의 끈을 끊어버린 사람 입에서 듣고 싶은 말은 아니란 걸 염두에 뒀으면 좋겠는데.”
뭐야. 남은 기껏 열심히 칭찬해줬더니만.”
그때 쇠로 된 야구 방망이를 들고서 앙칼지게 노려보던 네 모습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는데도?”
, 그건 중상모략이다. 난 그저 바로 옆에 있는 걸 집어 들었을 뿐이란 말야.”
다시 팔짱 낀 자세로 돌아간 다미가 입술을 툭하니 내민다.
뭣보다 난 네가 날 소중하게 생각해서 참은 거라고 믿고 싶었는데, 계속 그러면 실망이라고!”
나 삐졌음, 이라고 써 붙인 듯한 다미의 얼굴에 소리죽여 웃던 성훈이 그녀의 이마 위쪽에 가볍게 키스를 한다.
, 뭐야?”
꽤나 새빨개져선 성훈을 올려다보는 다미.
그냥.”
그의 부드러운 미소에 더욱 빨개지고 만다.
, 뭐 잘못 먹었지?”
, 그러고 보니……
자유로운 오른손을 펼쳐 헤아리던 성훈이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짓는다.
점심부터 암 것도 안 먹었군.”
정말이지못 말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다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먹는 얘길 하니 말인데, 저 음식점 기억나? 오므라이스랑 만두국이 갑이었잖아.”
물론. 네가 몇 번인가 쐈었던 걸로 기억한다만?”
꼭 오늘도 내가 내야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다미가 흘겨보자 성훈은 어깨를 으쓱인다.
이미 문도 닫혔는데 뭐. 그리고 어차피
그들은 씁쓸하게 마주 웃었다.
저 빵집은 야자 할 때 야참으로 딱 이었지. 크림빵이랑 단팥빵 가지고 싸웠지만. 넌 아직도 크림빵 파?”
아무렴. 입맛이 어딜 가겠어.”
……
다미의 당당한 미소에 성훈은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너랑 헤어진 뒤론 단팥빵을 입에 댄 적이 없다.”
어머, 그렇게 날 못 잊으셨어요?”
당연 하잖아!!”
거칠어진 성훈의 목소리에 다미는 그의 팔을 소중하게 끌어안는다.
저 술집은 아직도 있네. 고등학교 옆 골목에 있는 거치곤 장사가 잘 되나봐.”
살짝 떨리는 다미의 말에도 성훈은 그저 묵묵하게 걷기만 한다.
보호자도 있겠다, 한번 들어가서 한잔 하는 건 어때?”
안 돼.”
그러기야? 분위기만이라도 만끽하면 좋잖아.”
넌 엄연히 미성년이라고.”
-!”
성훈은 단단히 삐진 표정을 한 다미의 대자로 튀어나온 입에다 키스를 하면 예전처럼 석화 되어버릴지, 괜스레 궁금해진다.
, 다미 분식!”
직접 실험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을 정리하던 성훈의 뒤통수를 친 건 다미의 단발마였다.
, 반갑네. 나랑 이름이 같다는 핑계로 덤을 챙겼었잖아.”
그랬나?”
왠지 아쉬운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뚱한 표정이 된 성훈이 되는대로 입을 놀린다.
아줌마가 나한테 반해서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런, 자뻑도 그만하면 병이래요.”
네 남자친구가 멋지고 잘생겼다는데 나쁠 건 없잖아.”
멋은 무슨, 일에 치여서 한껏 초췌해진 주제에.”
그러니까
마침 골목길을 빠져나와 대로변 횡단보도 앞에 선 성훈의 목소리가 떨린다.
누가, 나만 내버려두고 떠나래?”
침묵.
잠시 동안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늦었지만 한산하지 않은 도로를 바삐 밝히는 헤드라이트를 응시한다.
멋대로, 내 눈앞에서 죽어버리면…… 나보고 어쩌라고?”
바람이 분다.
세찬 바람에도 다미의 스커트 자락은커녕 머리카락 한 가닥도 흔들리지 않았다.
불가항력이었잖아. 사고였는걸.”
그제야 팔짱을 푼 다미는 한발 뛰기로 횡단보도의 하얀 선의 숫자를 헤아린다.
대강 여기쯤이었나? -하고, -하고,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네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 그때 넌, 우린, 고작 고1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래도-가 아니잖아!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너야말로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다미의 다그침에 성훈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생각이라니?”
요즘 같은 세상에 과로사가 뭐냐고? 내가 얼마나 황당해 했는지 알아?!?!”
그래? 난 또, 네가 마중 나와줬길래 환영이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 지금 당장 다시 죽고 싶지?”
아니.”
그대로 어퍼컷을 날리거나 아니면 엎어치기라도 한판 할 것 같은 다미의 기세에도 성훈은 마냥 웃어 보인다.
뭐라도 해야 했어. 학생일 땐 공부가, 그 후엔 일이 있었을 뿐이야. 불행인지 다행인지 빚은 차고 넘쳤으니까.”
진심으로 죽일 듯이 노려보는 다미에게, 성훈은 호랑이에게 육포를 내미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가만히 안아주었다.
바쁘면 바쁠수록, 기억을 추억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후회하진 않아.”
바보! 누가 그런 걸 바란다고!!”
성훈의 품안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도 바라지 않았더라도, 난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싫지 않은데.”
다미의 목에 깍지 낀 양팔을 걸친 모습으로 성훈이 상체를 기울인다.
너는 어때?”
붉게 달아오른 다미의 답변에 성훈의 미소가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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