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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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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86회차/1]미안하고, 고마워.
글쓴이: Abanox
작성일: 13-11-30 23:03 조회: 1,424 추천: 0 비추천: 0

싱그러운 4월의 바람이 머리를 쓸어낸다.

한가한 토요일 오후. 나는 지금 문벅스의 외부 테이블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길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벚꽃이 떨어지는 시기에 바람까지 부니 도심의 벚나무들도 자신들의 봄을 힘껏 퍼뜨리며 도시를 분홍빛으로 물들인다. 실로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운 날에….

“야, 나 왔다.”

…문벅스에서 남정네나 만나고 있자니, 이게 무슨 고문인가 싶다.

“불러서 바쁜 몸 이끌고 나왔더니 그건 또 뭔 표정이냐.”

부름도 받고 푸대접도 받아버린 남정네, 나일식은 눈을 찌푸렸다. 스키니 진과 검은색 티셔츠, 체크무늬 남방이 조화를 이루어 도시남자 분위기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그랬지, 내가 자처한 고문이었지.

“그 뭐냐, 날씨가 참 좋아서.”

“그건 또 뭔 개소리야.”

일식은 내 정면 자리에 가방을 두고 커피를 시키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도중에 분 바람이 그의 체크무늬 남방을 들추었다. 순간적으로 주변 여성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저렇게 잘생겼는데 왜 여자친구가 없는 걸까,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 정꼬.”

시크한 도시남자 스타일을 지대로 연출해주시던 일식이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참고로 정꼬는 내 별명이다. 출처는 노코멘트.

그다지 좋아하는 별명은 아닌지라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오늘만은 부탁하는 입장이라 그냥 넘어가주자.

“너 이벤트 같은 거 기획해주고 있었지?”

“정확히는 이벤트 플래너다. 거대한 공식행사부터 사소한 데이트 이벤트까지 전부 맡고 있지. 그런데 그게 왜?”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페의 점원이 나와 일식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아메리카노를 일식의 앞에 두는 그녀에게 그는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감사인사를 보냈다. 점원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재대로 심장에 치명타를 준 듯하다.

“하던 얘기 계속 하지.”

“어? 아, 응. 사실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나는 어쩐지 말을 꺼내기 부끄러워져 말끝을 흐렸다. 우물쭈물하는 것을 싫어하는 녀석이라 짜증을 내진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도 일식은 아무렇지 않은 듯 커피를 후후 불며 마시고 있었다.

에잇, 그냥 말해버리자. 이정도 부탁은 들어주겠지. 친구니까!

“사실 내일이 여친이랑 100일 되는 날인데….”

“푸흡!! 쿨럭! 쿨럭쿨럭!”

뭐, 뭐야 이 녀석! 엄청난 기세로 기침하기 시작했다!

“뭐? 뭐?! 여친? 니가 여친?!”

“어, 어라? 말 안했던가?”

여자친구 사귀자마자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내 기억이 틀린 건가?

“당연히 거짓말인줄 알았지!”

“당당하게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일식은 조심스레 커피잔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았다.

“…설마 진짜였을 줄이야.”

“애당초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살짝 식은 커피잔을 들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들이켰다. 고소한 커피향이 입안을 감돌고 씁쓸한 느낌이 목 너머로 넘어갔다.

“아니, 너 정꼬잖아.”

일식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뭔 이유가 그따구야! 그리고 내가 부탁하는 입장이라 참으려고 그랬는데, 정꼬라고 부르지 마! 난 정꼬가 아냐!”

“부탁? 뭔 부탁?”

“…….”

가볍게 무시당한 듯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애초에 몇 년이나 사용한 별명을 그리 쉽게 그만둘 리가 없다.

“내가 내일 여친이랑 100일이라는 건 말했지?”

“그랬었지.”

일식은 의외로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래서 내일 데이트를 할 건데, 도움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음, 그렇군. 잘 알았다.”

일식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 알아준 건가?

“요컨대, 이건 꿈이로군.”

“알긴 개뿔 이 똥멍텅구리야!”

나는 테이블을 내리쳤다. 테이블 위에 있던 커피가 일렁이고 주변의 시선이 잠깐동안 이쪽으로 쏠렸다. 그런 와중에 일식은 턱을 괴고 스마트폰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이 녀석의 신경은 스테인리스로 돼있는 건가?

“진정해라. 나도 내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말 한 거니까.”

“그래? 그러냐? 오냐, 그럼 한번 들어보자. 그 주옥같은 근거!”

“이게 꿈이라고 생각하는 근거 따위, 하나로 충분하다.”

일식의 커피도 살짝 식었는지 그는 잔을 들어 커피를 두 모금 마셨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넌 정꼬잖아.”

“셜록이 울고갈 추리력이다 이 자식아! 근거는 개뿔!”

아주 잠깐이나마 긴장한 내가 바보였다. 일식은 재미있는지 킥킥대며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계획은 짜둔 거 있어?”

“어?”

“계획. 데이트 계획.”

아, 원래 이 이야기였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깜빡하고 있었다.

“대충은. 일단 에바랜드를 갈 생각이야.”

“에바랜드라. 그 메카물 성지?”

“응. 여친이 에바 팬이거든.”

일식은 가방에서 안경케이스와 태블릿PC를 꺼냈다. 그러고는 안경을 쓴 뒤 태블릿PC에 내가 한 말을 자세히 받아 적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손을 놀리던 일식이 나긋하게 말했다.

“에바랜드 다음은?”

“어? 아, 응. 6시에 퍼레이드를 한다고 하길레 그거 보고 저녁을 먹을 거야.”

“레스토랑은 예약 해뒀어?”

“어? 아, 아니.”

일 모드에 들어간 일식은 상당히 다부졌다. 태블릿의 화면에는 에바랜드 근처의 레스토랑 목록과 내가 짠 계획을 정돈한 메모장, 추가할 계획을 적어둔 메모장이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상당히 믿음직스러웠다.

“비용은?”

“어느 정도 여유는 있어.”

“저녁 이후의 계획은?”

“음…생각해둔 건 없는데 반지를 주고 싶어. 아, 반지는 이미 사뒀어.”

“그럼 로맨틱한 게 좋겠군. 스케일 커도 상관없나?”

“둘 다 신경줄은 굵으니까 상관없어.”

“그렇군.”

가방에서 추가로 메모장과 이아패드가 나왔다. 펜을 휘갈기며 무언가를 적어놓고 이아패드에 스케줄을 정리하고 태블릿PC로 자료를 찾는 그의 모습은 정말 프로라는 느낌을 주었다.

“저녁은 여기로 하지. 그리고 이벤트도 생각해뒀는데 이정도 비용이 들 것 같다.”

…윽, 생각보다 비싸다.

“인맥이 있으니 가격 디스카운트는 할 수 있어. 가능해?”

“…아슬아슬하게.”

“좋았어. 그럼 이제부터 계획을 설명한다.”

일식의 계획은 이러하였다.

12시에 합류→자유이용권을 끊고 5시 30분까지 놀이기구 즐기기→관람차를 탄 후 퍼레이드 구경→요람선 위의 레스토랑에서 식사→강 중반을 건넜을 즈음에 거대한 LED현수막을 임대건물에 걸어놓고 반지를 주며 “100일 동안 나같이 못난 놈과 있어줘서 고마워.”

솔직하게 생각한걸 말하자면, 완벽했다.

“추가비용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아마도.”

“좋았어.”

일식은 메모장과 태블릿PC를 차례대로 가방에 넣었다. 아이패드는 몇 번 조작한 뒤에 나에게 건네주었다.

계약서였다.

“사인하면 바로 작업에 착수하마. 사실 선 의뢰가 있긴 한데 별로 급하지도 않고 친구니까 먼저 처리해주지.”

“나일식…!”

친구 좋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나는 계약서에 서명을 한 뒤 일식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계약서를 훑어보고 아이패드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초소형 무전기야. 귀에 꽂아둬.”

“느닷없이 최첨단기기가 나오는구나.”

“마지막 이벤트는 타이밍이 중요하니까. 참고로 이쪽이 이어폰이고 이쪽이 마이크니까 반대로 마이크 귀에다 꽂지 말고.”

일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샌가 그의 잔이 깔끔하게 비어있었다.

“귀에 꽂아봐. 통신 테스트해야 되니까.”

그는 나의 대답도 듣지 않고 가방을 맨 뒤 카페 밖으로 나갔다. 나는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어디보자…이게 이어폰 이랬나?

[아, 아. 들려?]

이어폰을 귀에 끼고 잠시 기다리자 이어폰에서 일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잘 들린다.”

[작동은 잘 하는군. 그럼 내일 데이트 내내 이어폰을 꽂고 있어. 돌발 상황이 오면 연락해야 되니까.]

“알았어.”

[정꼬.]

“그따구로 부르지 말랬지.”

[100일 축하한다.]

나는 일식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그가 먼저 담담하게 말했다.

[여친 있어도 여전히 정신은 꼬맹이답네.]

“내 감사랑 신뢰 돌려내 이 자식아!”

일식의 웃음소리가 귀에 울리더니 어느 순간 뚝하고 끊어져버렸다.

…뭔가 내일이 걱정된다. 이 자식 믿어도 되는 거야?

우려와는 달리 데이트는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잠깐 휴식해라. 네 여자친구의 상태가 안 좋아 보여.]

[후방에 대규모 인파 발견. 떨어지지 않게 손 꼭 잡고 있어라.]

[예정 변경이다. 관람차로 가. 지금부터 줄을 서야 퍼레이드에 늦지 않을 것 같다.]

일식은 내 시야에 벗어난 곳에서 데이트를 지원해주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나와 그녀의 데이트는 원활하게 이어져갔고, 시간에 맞추어 관람차를 탈 수 있을 것 같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이거 탄 다음에 퍼레이드 구경하는 거지?”

“기대돼?”

“응!”

관람차의 줄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관람차보다 퍼레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늘 퍼레이드는 다른 날보다 더 스케일이 크다는 둥, 이곳 퍼레이드는 초호기의 머리 모형이 실감하서 유명하다는 둥, 퍼레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기대하고 있나보다.

“표 확인이 있겠습니다!”

어느 샌가 앞에 있던 대기 줄은 사라지고 우리들의 차례가 되었다. 직원이 티켓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관람차의 문을 열었다.

“즐거운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직원은 문을 닫았고, 나와 그녀는 단 둘이 되었다.

“…….”

“…….”

관람차가 출발하고 잠시간의 침묵이 이곳을 스쳐갔다.

이야기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던 나는 아무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바깥 풍경을 내다보았다. 풍경을 보고 아름답다. 그 한마디로 이야기의 장을 펴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창밖의 풍경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목을 타고 올라왔다.

“…아.”

얼빠진 소리를 냈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바깥 풍경에 빠져들었다. 웃음이 나왔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을 전부 가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작은 소녀를 나는 사랑한다.

메카물을 좋아한다며 다짜고짜 잡지를 들고 찾아온 그녀를 나는 사랑한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아스키와 같은 색으로 물들여달라고 조르던 그녀를 나는 사랑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져든 내가 고백하자 “같은 마음이었구나.”하며 눈물 머금은 웃음을 지어준 그녀를 나는 사랑한다.

100일이란 시간은 어떻게 보면 짧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와 사귀기 이전의 나와 비교하면,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녀와 만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다고.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그 어떤 말로도 지금의 기분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짧은 한 마디로도 괜찮겠지.

“카나야.”

나는 나긋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난 정말 행복한 놈인 것 같아. 그치?”

대답은 없었다.

내가 무언가 잘못한 건가?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상태가 이상했다.

안 그래도 하얗던 피부가 더욱 창백해져있다. 그녀의 작은 신체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고 있다. 고개 숙인 그녀의 얼굴을 공포감이 지배하고 있다. 나는 다급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오카나!”

나의 다급한 부름에 그녀가 흠칫 떨고 고개를 들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 어? 왜, 왜? 나, 나 불렀어?”

“뭐야, 왜 그래? 괜찮은 거야?”

“아, 저, 그게.”

카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마음속에 있던 불안감이 물러나고 좌절감이 찾아왔다. 나는 선택을 실패한 것이다.

“너, 고소공포증 이였어?”

“아, 그게, 저기, 모처럼의 부, 분위기를 깨면 아, 안된다고 새, 생각해셔….”

그녀의 대답은 나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는 나를 생각해 억지로 관람차에 탄 것이다.

“퍼, 퍼레이드 생각을 하면서 고, 공포증을 이, 이겨내야지 새, 생각했는데, 아, 아무래도 무, 무리였나바….”

그래서 관람차의 대기 줄에서 계속 퍼레이드 이야기를 했던 건가…. 빨리 알아채지 못한 내가 바보였다.

[미안하다…. 나도 눈치 채는 것이 늦어버렸다….]

무전기를 통해 상황을 지켜봤던 일식이 사과를 해왔다. 아냐, 이건 다른 누구의 잘못이 아냐. 내 잘못이지.

나는 적어도 그녀를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손에 손을 뻗었다.

덜컹!

관람차가 큰 소리를 내며 갑자기 회전을 멈추었다. 큰 소리에 놀란 그녀가 기겁을 하며 나에게 안겨 들어왔다. 조각을 맞춘 듯 폼 안에 쏙 들어온 그녀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떨림도 느껴졌다.

일식의 다급한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괜찮아?!]

나는 품에 안긴 카나가 주변을 살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작은 소리로 마이크에 대답했다.

“아직 문제는 없어.”

[관람차에 무언가가 말려들어간 것 같은데.]

“시간 맞출 수 있을까?”

[모르겠어. 지금 도와주던 스태프가 상황 살피러 갔으니까 기다려 봐야지.]

무전기 너머에서 일식을 부르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일식은 무전기를 껐다. 머리를 한 대 치는 듯한 소리가 귀에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낮게 깔린 일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가 말려들어간 건 맞는데 관람차의 관리가 외부업체여서 고쳐질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고 한다. 제기랄, 미안하다. 다 내 책임이야.]

“아니야. 네 잘못은 없어. 이런 돌발 상황은 아무도 상상 못했을 거야.”

나는 자책하는 그를 진정시켰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사죄해왔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현실은 고소공포증에 기계트러블이다. 수많은 감정이 머릿속에서 섞인다.

허탈했다.

그 때, 손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가 나의 손을 잡은 것이다. 나는 그녀를 내려 보았다. 내 셔츠에 얼굴을 묻고 있는 탓에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긴 갈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염색한 머리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은 부드러웠다.

한참이 지나고, 바깥에서 떠들썩한 노래가 들려왔다.

“퍼레이드….”

[…미안하다.]

한참을 조용히 있던 일식의 목소리가 짤막하게 들렸다. 나는 그녀의 몸을 양팔 가득 껴안았다. 그녀의 온기가 아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로부터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뒤, 관람차가 다시 움직였다.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에는, 퍼레이드가 이미 끝나있었다.


“아아~진짜 아쉽네.”

“미안해….”

“사과할 필요 없어! 그건 돌발 상황이었잖아.”

관람차에서 내리자마자 나와 그녀는 관람차 앞에서 나눠주던 사죄의 선물(거대한 놀이공원이어서 그런지, 상당히 값비싼 물건이었다.)을 받고 강가로 향했다.

“멀미나지 않아?”

“전혀 안나! 오히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배가 엄청 고파!”

그녀의 얼굴을 여전히 창백했지만 관람차의 안에 있었을 때보다는 나아졌다. 예약해뒀던 코스요리를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건강해보여서 다행이다.

[슬슬 간판으로 나와. 요람선이 곧 강 중반에 도착한다.]

일식은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지령을 내렸다. 그의 무전을 신호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판으로 나가자.”

“그러자! 슬슬 다 먹었으니까.”

결전의 때가 다가왔다.

나는 계단을 오르며 주머니에 들어있는 두 개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현수막과 함께 그녀의 손에 끼일 반지. 이번 이벤트만큼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요람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 정면에서 오른쪽이다.]

“알았어.”

나는 작은 소리로 마이크에 대답했다. 카나는 조명으로 밝혀진 갑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너무 뛰어다니면 다른 사람이랑 부딪혀!”

“걱정 마! 피할 수 있…아구구!”

그녀는 결국 지나다니던 사람을 피하려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한달음에 그녀 앞까지 달려갔다.

“카나야! 괜찮아?”

“에고~. 넘어져버렸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지 그녀는 헤헤 웃으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에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곧 도착한다. 준비 해.]

“…카나야.”

“응?”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뒤로 살짝 물러섰다. 천진난만한 그녀의 얼굴에 심장박동수가 더욱 올라간다.

[야, 거기 잡아. 어, 그래. 좋아 그대로! 준비 됐지?]

침을 삼켰다.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다.

[간다! 5, 4, 3, 2….]

“오카나!”

[1!]

“저길 봐줘!”

나는 오른손을 펴서 일식이 현수막을 건 건물을 가리켰다. 나와 그녀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

“…….”

[…….]

현수막은 걸려있었다.

그런데….

“밝고…하야네.”

그녀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현수막에는 아무런 문장도 적혀있지 않았다. 배경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얀 현수막을 보며 내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갔다.

[…현수막을 거꾸로 폈다. 미안하다. 현수막과 건물 임대비용은 받지 않으마. 정말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일식이 아까 전의 사고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는지, 결국 실수를 하고 말았다. 머릿속이 아찔했다.

[반지! 일단 반지를 건네줘!]

나는 일식의 다급한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그랬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아, 저기…!”

나는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너무 긴장했던 것일까.

“……!”

나는, 나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앗!”

카나의 입에서 짤막한 탄성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넘어져서인지 오른쪽 옆구리가 쑤셨다. 손에서 떨어진 반지가 데굴데굴 구르며 그녀의 발을 때리더니,

팅….

“…….”

보석이, 떨어졌다.

“…….”

“…….”

나는 일어날 수 없었다.

고개를 숙였다. 꼴불견이었다. 오늘은 최악의 날이다. 중요한 곳에서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오늘은 특별한 날인데…. 나 자신이 한심해서 참을 수 없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망가진 관람차도, 거꾸로 펼쳐진 현수막도, 요람선도, 보석이 떨어져나간 반지도,

나도.

그녀의 표정을 나는 볼 수 없었다. 무서웠다. 그녀가 나를 경멸 할 것 같았다. 관람차 안에서의 표정이 뇌리에 스쳐지나간다.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하지만,

“…예쁜 반지네.”

나의 걱정은,

“내 손가락에도 딱 맞아.”

그 한마디에,

“고마워, 멋진 선물이야.”

무너졌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녀가 내민 손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태양처럼 뜨거웠다.

관람차의 안에서 느꼈던 느낌이다.

“나 손 엄청 작은데. 혹시 사이즈 직접 주문한 거야?”

“…응.”

그녀의 손은 따뜻한데도 내 마음은 풀리질 않았다.

“고마워.”

그녀의 다정한 말에 심장의 얼음이 녹기는커녕 더욱 차가워져만 갔다. 고통스러운 말이 목에 차올라 입 밖으로 내뱉어졌다.

“미안해.”

갈라진 목소리가 내 입에서 나온다.

“오늘…우리 100일 되는 날이라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려고…그래서 관람차도 타고 퍼레이드도 구경하고 멋있게 고백도 하려고 했는데!”

차갑게 식어버린 눈물이 눈가에서 흘러나온다.

“전부 망쳐버렸어! 애초에 관람차를 타는 게 아니었어! 그것만 타지 않았으면 카나가 떨 필요도 없었고! 퍼레이드도 볼 수 있었어! 그리고 이거 때문에 긴장한 일식이도 마지막 이벤트를 성공시켰을 거야!”

말의 칼날이 나의 이곳저곳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아니, 이건 그냥 다 핑계야. 나는 못난이야. 좋은 날에 특별한 추억도 못 쌓아주는, 그런 형편없는 남자야. 난 정말…!”

묵직한 무언가가 정면을 향해 날아왔다. 따뜻한 그것은 나를 꼭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카나였다.

“…그거 알아? 나는 너를 정말 좋아해.”

옷에 파묻혀 목소리가 묻히는데도, 그녀의 목소리는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나도 좋아해.”

“응.”

카나가 고개를 들었다. 엉망인 내 얼굴과는 달리 너무나 자상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사랑해.”

점차 가까워지더니,

“카나…?”

결국,

“읍…!”

겹쳐졌다.

키스.

심장의 얼음이 녹아내린다. 새하얗고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이 노란빛으로 물든다. 차가웠던 입술이 점차 따뜻해진다. 나는 눈을 감았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시간이 끝나간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멀어져갔다.

나의 품 안에 있는 그녀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여전히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이젠 모든 것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항상 어린애 같고, 천진난만하던 그녀가, 오늘만큼은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워보였다.

“100일 동안 나 같은 꼬마랑 있어줘서 고마워.”

아아, 그렇다. 나는 이 웃음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세계제일의 미소. 순수하지만,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 미소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그건 내가 할 말이야. 100일 동안 나 같은 정신 꼬마랑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자상했던 웃음이 평소와 같은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돌아왔다. 아아, 이 모습도 너무 사랑스럽다.

“복수야.”

“…응?”

나는 그녀가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얼굴을 좁혔다.

두 번째 키스.

카나의 눈이 커졌다. 갑작스런 기습에 그녀는 놀란듯했다. 하지만, 이내 나를 받아들여주고, 눈을 감았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정신 꼬마’라는 뜻의 정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어른스러운 것을 좋아하던 나는 그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그녀가 통할 수 있다면.

“사랑해, 카나.”

“나도 사랑해.”

꼬마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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