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86회차/(2)] Fallen Idol
글쓴이: 김아란
작성일: 13-11-30 21:09 조회: 1,581 추천: 0 비추천: 0
 “데뷔한지 이제 곧 1년이 되는데 어떤 느낌이에요?”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네요. 벌써 그렇게 됐나? 싶기도 하고.”
 잘 손질된, 그렇지만 필요 이상의 손길은 닿지 않은 검은 머리가 찰랑거렸다. 앙증맞은 오렌지색 머리띠와 일자로 자른 앞머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쾌한 기분을 느끼도록 했다.
 “이게 두 번째 정규앨범인데, 벌써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중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됐어요.”
 “에이,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여자는 맑게 웃었다. 내면의 행복이 그대로 흘러나오는 듯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리포터도 완전히 함락된 듯 시종 즐거운 표정이었다. TV 앞에 앉은 남자 하나와 여자 둘 -4인조 밴드 상계동우체국의 멤버들 역시 입이 귀에 걸린 채였다. 뭐냐. 난 악어들이랑 밴드를 하고 있었단 말인가.
 “진짜 감개무량하다.”
 “여기서 동고동락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다음 라이브 때 보러 오려나?”
 멤버들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추억담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그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지금 TV에 나오고 있는 대한민국 탑 아이돌인 소현. 우리 네 사람에게는 상계동우체국이 5인조이던 시절 보컬과 키보드를 맡았던 한소현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여자였다.
 “힘들지 않겠어요? 지금 차트 1위부터 11위까지 쫙 줄 세워 버렸잖아요. 그리고 음악만 하는 것도 아니고 예능이다 뭐다 눈코 뜰 새도 없지 싶은데.”
 TV에서 조금 떨어져 앉아 마이크를 툭툭 두드리고 있던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기타를 맡고 있는 상철이 형이 월요일에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들리는 소리를 냈다. 
 “역시 그러려나. 우리 소현 양. 대스타가 되실 줄 알았으면 알아서 모셨을텐데.”
 “어쩔 수 없지 뭐. 한달에 한 번 정도 우리 보러 와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
 “그래도 역시 쓸쓸하네. 소현이 보고 싶다.”
 베이시스트 지영이 누나와 드러머 세희가 한마디 씩 거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바닥을 두 번 마주쳤다.
 “자, 자. 잡담은 이제 그만. 이 와중에도 시곗바늘은 째깍째깍, 연습실 사용시간은 야금야금, 우리의 자금사정은 훌쩍훌쩍. 한소현 양 얘기는 그만하고 마지막으로 합주 한번 해보고 끝내죠.”
 세 사람은 입으로는 불평하면서도 주섬주섬 악기를 챙겼다. 일견 설렁설렁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다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들이다. 하기야, 이 나이 먹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밴드나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기는 했다. 예외라면, 정말로 단순히 정신을 못 차린 놈에 불과한 나 정도겠지. 벌써 햇수로 5년째 밴드를 해 오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밴드 활동에 특별한 애착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잘도 밴드를 하고 있구나, 하고 가끔 나 자신에게 감탄하기도 했다. 
 
 그 날은 유난히 좋은 공연을 한 날이었다. 목 상태도 최고조였고, 관객 반응도 유명 락 페스티벌 부럽지 않을 수준이었다. 공연 자체만 놓고 보면 내 4년간의 밴드 인생에서 최고였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공연에 큰 감명을 받은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네.”
 받아든 명함에 적힌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척추가 맨 위부터 아래까지 재정렬되는 줄 알 정도로 놀랐다. 남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연예기획사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운명을 믿지 않고 있었던 나는 처음으로 운명의 여신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가 운명의 여신에게 드린 인사는 그날 그게 마지막이었다. 철없던 시절부터 꿈꿨던 아이돌 가수, 그 환상 속의 유람선에 탑승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으니까. 나에게 명함을 준 것은 단지 내가 맨 앞에 서있었기 때문이고,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쪽지를 건넨 이후에 그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사람의 눈은 소현이만 보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형. 당구장이라도 갈래요?”
 “노 노. 이제부터 일이다. 나도 언제까지나 편돌이 할 수는 없잖냐.”
 “그래봤자 알바면서 무슨. 누나랑 세희는요?”
 “나도 일. 베이스 취미반 과외 하나 더 시작했다.”
 “나는 공예품 만드는거 일손 돕고, 자택 아르바이트 몇 개.”
 나는 무거운 악기를 메고 흩어지는 멤버들의 등에다 대고 팔랑팔랑 손을 흔드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밴드 활동으로 얻는 이익은 한 달에 수만 원 정도. 네 명이서 나누는 것도 무의미해서 그냥 한 달에 한번 피자나 치킨을 시켜 먹는 걸로 땡치는 수준이다. 정말로 다들 열심히 살고 있다. 나는 새삼 우리 멤버들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취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을 떠 보니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반지하인 내 방 창문으로 해의 위치를 볼 수는 없었지만 대강 그런 시간이었다.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해의 그림자라도 보려고 시도해봤지만 차가운 바람이 눈물을 말려 줄 뿐이었다.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마지막 남은 수면양말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양말을 두 개 겹쳐 신으려 했지만 어제 빨래를 한 터라 멀쩡한 양말이 한 쌍 뿐이었다. 나는 탄식을 한 번 하고, 비교적 마른 편인 양말을 헹거에서 걷었다. 덜 마른 양말의 냉기에 푸지게 욕을 내뱉으려는 찰나, 문짝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발바닥을 종아리에 대고 비비며 거칠게 문을 열었다.
 “안녕, 오빠. 오랜만이야.”
 그곳에는 눈썹 너비만큼만 살짝 드러낸 왼쪽 이마가 귀여운 대한민국 7개 음원사이트 석권자, 아이돌 소현이 서있었다. 
 “들어가도 될까?”
 “아, 응. 어서 들어와.”
 갑작스러운 방문에 얼이 빠진 채로 서 있던 나는 얼른 뒤로 물러서 소현을 안으로 들였다. 소현은 방 여기저기를 곁눈질로 보면서 낮은 탁자 앞에 앉았다. 나는 올려져 있던 노트북을 치우고 반대편에 앉았다. 
 “미안. 대접할 게 없네.”
 “아니야. 대접은 무슨.”
다소곳이 앉은 아이돌 소현 양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그 상태로 입도 열지 않고 목석처럼 앉아 있기만 하니 나는 미칠 노릇이었다. 무릎 아래가 저려와서 뭐라도 말을 하려던 차에 소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미안해.”
 “엉?”
 “...미안. 이런 말로 끝날 게 아니라는 건 알아. 무슨 낯으로 여기까지 왔냐고 해도 할 말 없어. 그래도 최소한 오빠한테는 얼굴을 보고 사과해 두고 싶었어.”
 “아니, 저기 말야...”
 “괜찮아. 받아주지 않을 거란건 생각하고 왔으니까. 난 단지...”
 “아니, 잠깐 기다려. 너 뭐 잘못한 거 있냐?”
 소현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새로 샀는데 무심코 연 냉동실에서 그 핸드폰이 발견됐을 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영문을 모르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그 만화 그리기 교본 같은 데에 예시로 나올 것 같은 표정을 따라해 보였다. 소현은 잠시간 그러고 있다가 힘들게 입술을 우물거렸다.
 “저기, 기사, 아직 안 봤어?”
 “기사? 미안, 나 사실 방금 전에 일어났거든.”
 “그, 그렇구나. 그, 그러면...”
 소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양 손의 검지를 서로 쿡 쿡 마주치게 하는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차라도 타 오는 게 좋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소현은 무언가 체념한 듯한 모습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사과하러 왔으면서도 아직 용기가 없네. 내 입으로 말할 수가 없어.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은 진짜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뭔지를 모른다니까.”
 “아마 핸드폰을 보시면 알 수 있을 거야.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오빠.”
소현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났다. 올 때 만큼이나 갑작스러운 퇴장에 나는 변변한 인사도 못하고 소현을 보내야 했다. 
 “...뭐냐고, 대체. 전혀 대화가 안 됐잖아.”
 소현이와 친하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언제나 조금씩 대화가 맞지 않는 느낌을 받아왔었다. 오늘은 조금 정도가 심하긴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에 사소한 문제가 있었던 이유는 나와 그녀가 근본적으로 다른 인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뭐? 뮤지션으로서의 목표?”
 “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소현이가 우리 밴드에 들어온지 2개월 정도 지났고, 내가 조금씩 성과 없는 밴드 활동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존댓말을 하던 소현이는 연습이 끝나고 나와 둘이 남았을때 이런 질문을 해 왔다. 
 “너는 뜬금없이 진지한 말을 해서 사람을 당황시킬 때가 있단 말이지... 아무튼 뮤지션으로서의 목표라면 없다고 하는게 맞겠네.”
 “없다고 하심은?”
 “그러니까 뭐랄까, 나에게 밴드 활동이란 건 과정의 일부거든. 내 도착지가 뮤지션이 아니니까, 뮤지션으로서의 목표 같은 건 없다고 하는 게 맞겠지.”
 그때 나는 일종의 심술로, 일부러 기운 없는 목소리를 연출했다. 구제할 길 없는 음악 바보였던 소현이에게 현실의 벽에 부딪힌 선배의 모습을 보여줘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현이는 태연하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해 왔다.
 “그럼 선배의 목표는 뭔데요?”
 “어?”
 “밴드는 과정이라면서요. 그럼 그 과정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니, 그야 그렇다만. 화 안 내? 너라면 음악을 모독하지 말라느니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그걸 알면서도 그러셨단 말이에요? 오빠, 성격 나쁘네요.”
 소현이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날 째려봤다. 나는 양심에 찔려 딴청을 부렸다.
 “그러니까 내 목표는...”
 “우와, 어딜 자연스럽게 넘어가려고 하고 있어요?”
 “네가 물어봤잖아. 아무튼 내 목표라면 뭐,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되는 거랄까.”
 “YB나 자우림 같은? 어라? 그런거라면 좀 속물적이긴 하지만 충분히 뮤지션으로서의 목표에 부합하는 것 같은데요?”
 “달라. 내가 되고싶은건 아이돌이거든. 뮤지션하고는 다르지.”
 “아이돌이요?”
 소현이는 눈을 올빼미처럼 둥그렇게 뜨고 내 몸 구석구석을 뜯어봤다. 갑자기 시작된 즉석 품평회에 왠지 부끄러워진 나는 소현이를 밀쳐냈다. 소현이는 그래도 꿋꿋이 여기저기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빠, 의외로 꽤 괜찮네요?”
 “뭐, 뭔 헛소리야. 괜찮기는 어디가.”
 “에이. 아이돌을 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면 자기도 자기가 잘생긴 거 뻔히 알 텐데 무슨 겸손한 척? 헤헤,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 좀 괜찮다는건 진심이니까.”
 소현이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지영이 누나가 이런 소리를 하면서 웃어보였다면 괴롭힘이었겠지만, 소현이의 웃음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얼굴이 달아올라서 나는 괜시리 벽을 쳐다봤다.
 “그런데 오빠, 아이돌이랑 밴드가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경력이라고 할까. 요즘은 아이돌이 하도 많아서 외모나 노래, 춤 이런 것들 가지고는 차별화가 안 되거든. 홍대에서 인디밴드로 활동하던 아이돌. 멋있잖아? 아차, 이런 얘기 너에게 하면 화내려나.”
 나는 슬쩍 소현이의 표정을 살폈다. 걱정과는 달리 전혀 화난 표정은 아니었다.
 “아니요. 왜 화를 내겠어요. 오빠는 오빠고, 저랑은 다르니까요.”
 “이해해 줘서 고맙네.”
 “별 말씀을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역시 화난 건가 싶어 다시 한번 봐도 소현이는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결국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내가 물었다.
 “그럼 너는 어때? 네 뮤지션으로서의 목표는 뭐야?”
 “저도 없어요.”
 “뭐? 설마 너도 나처럼?”
 “아뇨. 저는 정말로 목표가 없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이뤘다고 할까요?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즐기면서 하는 것. 그게 제 목표에요. 그러니까 더 이루고 싶은 건 없어요.”
 먼 곳을 보며 말하던 소현이는 말을 마치고 나와 눈을 마주친 채 웃었다. 나는 웃어주지 못했다.
 “완전히 꼴이 반대가 돼 버렸네.”
 나는 조용히 뇌까렸다. 10대 때부터 꿈꿔온 아이돌은 여전히 꿈 속 일일 뿐이고, 자유롭게  음악하고 싶다던 아가씨는 잠 잘 시간도 없이 남이 써준 노래나 부르고 춤이나 연습하고 있어야 하다니.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는 일이었다.
 “아, 맞아. 그러고보니 뭘 사과하려던 거였지?”
 소현이가 핸드폰을 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했었던 것이 기억나 핸드폰을 보자, 전화랑 카톡이 수십 개 씩 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확인하려던 차에, 전화가 울렸다. 상철이 형이었다.
 “이 게으름뱅이 자식. 너 지금 일어났지?”
 “네, 뭐. 아 맞아. 형 방금...”
 “나중에 얘기하고. 노트북 있지? 빨리 켜서 아무 포탈사이트 뉴스 란 들어가 봐.”
 상현이 형의 목소리는 무슨 사망 소식이라도 전하는 것처럼 착 가라앉아 있었다. 치워놓았던 노트북을 열어 메인 뉴스를 클릭해보자, 믿을 수 없는 기사가 있었다.
 
 “유명 아이돌 소현, 표절 인정... 차후 활동 어떻게?“
 “본인이 직접 인정,.. ’초유의 사태‘ 소현 표절파동 어디로 가나.“ 
 “[단독]소현 표절 대상 작곡가 인터뷰... ‘아이를 빼앗긴 심정’”

 이란 핵 문제를 다루는 외교 협상 자리도 이렇게 딱딱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상계동우체국의 멤버 네 사람은 상현이 형의 집에서 모아이상처럼 아무 말도 없이 돌처럼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가장 연장자인 상현이 형이었다. 첫 발언이 나오자 다른 사람들도 서서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냐니. 우리가 뭘 어떻게요?”
 “그 표절곡 말야. 민섭이네 노래잖아.”
 나는 놀라서 상현이 형을 쳐다봤다. 나 빼고는 다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민섭이네란 밴드 프리샤우트로,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밴드였다. 공연을 같이 한 적도 많고 리더인 상현이 형과 민섭이 형이 친구라서 거의 자매밴드같은 사이였다. 물론, 우리와 마찬가지로 거의 인지도가 없는 밴드였다.
 “그렇다는 말은...”
 “그래. 아이돌 노래나 쓰는 그런 놈들이 우리같은 소규모 밴드 음악까지 찾아 들을 리가 있냐?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확실해.”
 지영이 누나는 배신감에 불타는 듯 했다. 세희도 말은 없었지만 동조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반론하려 했다.
 “아니, 기다려 봐요. 다들 왜 이래. 소현이 몰라요? 한소현? 우리 다섯명 중에 최고로 음악밖에 모르던 애잖아. 그런 애가 남의 노래를 훔친다고?”
 “걔가 우리를 떠난지 벌써 일년이야. 사람은 그보다 더 짧은 시간에도 쉽게 변해.”
 상현이 형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뭐, 그 말은 사실인 것 같네요. 여기 여러분들을 보면 알 수 있으니까.”
 내 빈정거리는 말에 세사람 모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차가운 표정으로 셋을 바라봤다.
 “내가 지금까지 사람 잘못 봤나 봐요. 우리가 소현이를 안 믿어주면 누가 믿어주는데? 세상 모두가 못 믿어줘도 우리는 믿어줘야 하는거 아냐? 아니, 됐어. 필요 없어. 알아서 해요. 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말을 하다 보니 흥분한 나는 언성을 점점 더 언성을 높였다. 발끈한 상현이 형이 벌떡 일어난 순간, 세희가 갑자기 구석에 틀어져 있던 TV를 가리켰다.
 “자, 잠깐만. 저것 좀 봐봐.”
유명 개그맨이 얼굴에 스타킹을 쓰고 있는 화면 아래로, 아이돌 소현의 은퇴발표를 알리는 노란 글씨가 지나갔다.
 
 나는 그 길로 상현이 형네 집을 박차고 나와 달렸다. 소현이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분을 못 이기고 새로 산 스마트폰을 그대로 바닥에 던졌다.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욕설을 뱉었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내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소현이는 이미, 우리들의, 나의 세계를 떠나 버렸는데 무슨 수로? 
나의.
우리들의.
발걸음을 멈췄다. 허벅지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무시하고, 방향을 돌려 다시 달렸다. 오래지 않아, 나는 상계동우체국의 단골 연습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연습실 문을 거칠게 열자,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여린 소녀가 앉아 있었다.
 “안녕, 오빠.”
 “소현아.”
 소현이는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반복적으로 울려퍼지는 라 음을 들으면서 나는 문을 닫았다.
 “어떻게 알았어?”
 “이 거리에 네 흔적이 남아있는 건 여기뿐이니까.”
 연습실을 빌리는 것도 당연히 공짜가 아니다. 우리같은 소규모 밴드에게 있어서는 연습실 사용료만 해도 큰 타격이다. 우리가 마음 놓고 여길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든든한 지원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후훗, 오빠. 시인이네. 아이돌 하기엔 과분한 인재야.”
 음계는 이제 시로 변해 있었다. 나는 성큼성큼 다가가서, 키보드를 누르는 소현이의 손을 잡아챘다. 소현이는 텅 빈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왜 그랬어?”
 “미안해 오빠. 그러니까, 내가 다 책임지고...”
 “지금 그 소리를 하는게 아니잖아!”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현이는 토끼눈을 뜨고 초점을 나에게 맞췄다.
 “오빠...?”
 “네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왜 사과를 하고, 책임은 왜 져? 그거 네가 한 거 아니잖아.”
 “내가 한 거 맞아. 내가 민섭오빠 노래를 표절한 게 우연 같아?”
 “우연? 당연히 아니지. 야, 너 바보냐? 그 회사에서 너를 어떻게 스카우트해 갔는데? 그날 우리 앞에 공연했던게 프리샤우트였던 거 기억 안 나?”
 소현이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는 답답해서 주먹으로 가슴이라도 치고 싶은 심경이었다. 거기다 소현이의 다음 말은, 정말로 나를 화나게 했다.
 “그게 내가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순 없어.”
 “너 내가 바보로 보여? 1년동안 옆에 있었던 여자애가 어떤 앤지도 모를거 같아? 내가, 한소현에 대해서, 모를 거 같아? 젠장, 네가 밴드를 떠난 이후로 하루라도 네 생각을 안 한 날이 없는데, 네가 그럴 앤지 아닌지도 모르겠냐고!” 
 온 몸의 내장이 다 쏟아질 기세로 말을 뱉어낸 나는 폐의 공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서 캑캑 기침을 했다. 씩씩거리며 소현이의 눈을 바라보자, 입을 조금 벌리고 멍하니 앞을 보던 소현이가 피식 웃었다. 나는 그제야 부끄러운 말을 뱉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오빠한테는 못 당하겠어. 응, 내가 한 거 아니야. 절반은.”
 “그렇겠지. 네가 프리샤우트 노래를 몰랐을 리가 없으니까. 아마도 오늘 은퇴를 발표하는 것 까지가 네 계획이었겠지?”
 “응, 전부 맞아.”
 소현이는 씁쓸하게 웃었다.
 “곡을 받자마자 바로 알았어. 나를 얼마나 바보취급하고 있길래 이정도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걸까 싶었지만, 곧 아니라는걸 깨달았지. 그 사람들은 날 바보취급한게 아니라, 그냥 상품으로만 취급한거야. 내가 뭔가 생각할 거라는 가정 따위는 처음부터 할 필요도 없었던 거지. 그래서 결정했어. 너무 무거워서 입을 수도 없는 옷 같은 건 그냥 벗어버리자고.”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다던 소녀. 
 아무도 듣는 이 없어도 하늘 끝까지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 숲속을 찾아 날갯짓을 하던 카나리아는, 새장 속에 갇혀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노래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마저도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도 아닌, 밤새 조련사가 시키는 대로 연습해야 하는 노래만을 불러야 하는 신세. 그녀를 동정하려면, 동정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기적이야.”
 “응?”
 “세상에 아무 괴로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세상에는 네가 있는 그 자리에 가고 싶어도 절대 갈 수 없는 사람들도 잔뜩 있다고. 나를 봐. 나는 무슨 짓을 해도 할 수 없는 일을 그렇게 쉽게 버리지 마! 그럼, 그러면 내 꼴이,”
 우스워지잖아, 라는 내 마지막 마디는 소현의 말이 가진 무거운 울림에 가로막혀서 나오지 못했다. 
 “오빠야말로 이기적이야. 오빠도 하고 싶은 일이 있듯이,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난 그러기 위해서 이러는 거야. 오빠를 생각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버리나는건, 이타심을 요구하는 걸 빙자한 이기심의 발현이야.”
 소현이는 완벽한 논리로 내 추악한 열등감을 짓밟았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붕어처럼 입을 여닫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드는 것도 힘겨웠다. 뭔가 설교할 것처럼 와서 이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오빠.”
 감히 소현이를 쳐다볼 엄두를 못 내고 있던 내 턱에 부드러운 손가락이 닿았다. 나는 손가락을 따라 천천히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내 입술에, 무언가가 와서 닿았다.
 ‘뭐...!’
 당황한 내가 손을 뻗어 밀쳐내려 하자, 소현이는 내 양 팔을 자기 팔로 단단히 감아버렸다. 나는 갈 곳을 잃은 팔을 몇 번 허우적대다가, 소현이의 어깨 위에 얹었다. 영겁 같은 몇 초가 지난 뒤, 소현이가 내 품에서 빠져나갔다. 
 “오빠의 그런 점. 싫어하지 않아.”
 “소현아.”
 소현이에게 한 발 다가가자, 소현이는 검지손가락을 뻗어 내 입술에 갖다대 더 이상 다가오는 걸 막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의 상처, 아픔. 내가 다 쓰다듬어줄게. 그러니까 오빠도 노력해야 해. 응?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알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현이는 해맑게 웃고 연습실을 나갔다. 정말로, 상처가 전부 아무는 것 같은 미소였다.

후일담.
 나는 상계동우체국을 그만두고, 아이돌 양성 전문이라는 댄스 학원에 등록했다. 사회적으로 보면 아직 한창인 스물넷이지만, 아이돌로는 거의 중견 급인 나이인지라 이래저래 힘들었다. 파릇파릇한 중고등학생들 사이에 껴 있는 것 자체도 눈치 보이고, 수업만 끝나면 온몸 마디마디가 쑤셨다. 그래도 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는 항상 같은 노래를 들었다. 파란우체통이라고, 최근 데뷔한 원 맨 밴드의 곡이었다. 여자니까 원 우먼 밴드인가. 거의 인지도랄 것도 없고 음원 사이트에서 서비스도 안 해 줘서 CDP로 들어야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였다. 다 좋지만 가장 좋은걸 뽑으라면, 역시 보컬인가.
 “천사의 목소리 같단 말이지.”
 “그런 말 할 생각할 시간 있으면 춤 연습을 더 해, 오빠.”
 천사의 계시라면야, 들을 수 밖에 없겠네.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