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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76회차/3] 베텔기우스의 충동
글쓴이: 남루인
작성일: 13-06-22 21:44 조회: 1,571 추천: 0 비추천: 0

단편: 베텔기우스의 충동


여기는 테슬라 01, 테슬라 01. 명령을 기다린다. 오버

도그 페이스에서 응답. 벌거벗은 여왕님 작전을 지금 실행하라.

 

음성 명령이 전달됨과 동시에 작전 콘솔의 초록색 LED 전구가 붉은 색으로 바뀌었다.

턱으로 바로 앞에 있는 자세 제어장치를 누르고 왼쪽으로 약간 비틀었다.

그러자 관성에 의해 오른쪽으로 약한 중력이 느껴지면서 바뀌는 시선.

새까만 우주 공간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테란의 아마데우스급 구축함이 눈에 들어왔다.

크기를 빼면 다른 소형 연락정이랑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밋밋한 원통형의 전함은 오늘 작전에서 내가 처리해야할 목표다.

 

미적 센스라곤 없는 테란 놈들.”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실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테란의 함선을 보니 비웃음이 나왔다.

방금 전 모선과의 직접 교전을 통해 추진기가 파손된 적의 구축함은, 제어능력을 상실한 채 무중력의 바다에서 빠른 속도로 밀려나고 있었다. 무중력의 전투에서 한번 충격으로 밀려난 적함에 재공격을 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레이저 유로로 어떻게 명중을 하더라도 메인 기능에 타격을 입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 실제로 부서지는 것은 겉에 있는 정도. 그 옷을 벗기고 적의 심장을 취하는 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역할이다.

과거 중력 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라면 한 번의 타격으로 승무원들을 몰살시켰겠지만, 아무것도 잡아줄 것이 없는 무중력에서는 살짝 미는 정도의 피해밖에 주지 못했다.

결국 열로 태우는 방법으로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 많은 전함들이 선택한 것이 두꺼운 입기. 생존이나 전투능력과는 상관없는 모듈들이나 빈 공간을 밖에 두르고 타격을 입더라도 그 부분만 버리는 식으로 진화한 신예함이다.

이런 상황에서 빔 이상으로 효과적인 무기는 없었다. 사실 빔도 크게 효과적이진 못했다. 각종 빔 코팅에 흡수재, 특수 재질로 이루어진 두꺼운 갑옷에 데미지를 주기 위해서는 정확히 같은 위치에 집요하게 수차례 빔을 쏘아 줄 필요가 있었다.

모함인 토르와 공격을 주고받은 적함은 상당 부분이 벌거벗겨진 상태로 처참하게 코어를 노출하고 있었다. 바보 같은 지구태생들. 함대함 전에서 1:1로 우리 군과 싸워 이길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코어에 빔 공격 따위로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태양 속에서 수 분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열에 강한 재질로 이루어진 코어는 빔으로 생채기 하나 내기 힘들었다.

그것이 새로운 병기를 탄생시키게 했다.

내가 지금 탑승하고 있는 GFS48-02, 무기번호: 00487225-17. 일명 거미

GFS의 약자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뭔가 상당히 복잡한 이름이었는데…….

뭐 암튼. 이번 작전명이 벌거벗은 여왕님인 이유도 한 이유.

탑승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강화 외골격으로 이루어진 갑옷에 가까웠다. 이것을 입고 우주 공간을 수영하듯 움직여서 적함의 코어에 돌입, 그것을 분해하는 무기다. 원래 중력 아래에서 활동하는 것이 힘든 우리 같은 우주 태생들을 위한 근력보조 기구였지만, 우연히 그 가치를 인정받은 덕분에 나 같이 노동자 계급도 우주 전투에 투입될 수 있게 되었다.

무장이라곤 코어를 자르기 위한 모노필라멘트 커터와 소형 레일건 정도였지만, 적함 외장에 설치된 방어 포탑을 무력화시키기엔 충분했다. 뭣보다 우린 우주태생이라 선외 활동은 밥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적함이 2콤마 정도의 크기로 눈에 들어왔을 때 분대장의 명령이 들려왔다.

 

테슬라 02, 03. 역추진 실시하라! 3. 2. 1!

실시!

 

명령 복창 후 동시에 역추진.

몸체 앞의 노즐에서 파란 불꽃이 일면서 감속 되는 것을 느꼈다.

추진을 너무 늦게 하거나 너무 성급하게 하면 큰 사고가 일어난다. 충격방지가 어느 정도 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위험했다. 이 금속 관 안에서 짜부라지기 싫으면 경험 많은 분대장의 명령을 잘 따라야했다. 만약 그렇게 죽을 거면 역추진을 포기하고 적함에 부딪치라고 훈련 받기까지 했으니.

모선의 캐터펄트에서 쏘아진 우리 거미들은 수 초 만에 적당히 2차원적인 추진만으로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적 구축함에 당도할 수 있다. 물론 놈들은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애 쓰겠지만 추진기가 무력화된 이상, 움직임은 뻔했다.

당연한 듯이 고속으로 발사된 금속 파편들이 날아왔다.

이건 우릴 직접 죽이기보다는 궤도를 흩트려 우주 미아로 만들거나, 생명유지장치나 무기를 망가뜨리기 위한 것이다. 중력권에선 꽤 치명적인 공격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 유도되는 무기 따위에 맞는다면 그냥 죽어도 싸다. 시간차로 파고드는 파편을 피하는 순간 눈앞에 있던 자동 포탑 하나가 불꽃을 뿜으면서 폭발했다. 분대장이 쏜 빔 공격이었다.

순간 포탑이 폭발하는 충격으로 적함은 약간 더 밀려났다.

 

앵커 사출!

 

훈련받은 대로 다음 행동을 무전으로 말하고 거미의 양 다리에 있는 앵커를 발사하여 기체를 적함의 코어부분과 고정했다. 오늘 작전에선 옷을 벗기지 않아도 된다. 심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니.

 

!

 

선체와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만약 이 상태로 공격을 당한다면 영 좋지 못한 꼴을 당한다. 앵커의 와이어를 끊을 수도 없다. 한번 끊어버리면 다시는 접선을 못하게 되니. 다행이 오늘은 모함이 재대로 일을 해 준 덕분에 적의 방어 장비는 거의 박살이 나 있었고 남은 것도 분대장과 테슬라 02가 처리해 주고 있다.

내 역할은 코어에 직접 타격을 가해서 승무원들을 죽이거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다.

 

땅딸보들. 가능하다면 그냥 항복을 받아 줬으면 좋겠는데.”

 

턱으로 무장 버튼을 눌렀다.

 

MC Ready

모노필라멘트 커터가 준비되었다는 메시지.

철컹하는 진동과 함께 어깨 부분에서 팔이 하나 튀어나와 가느다란 선을 발사했다.

가느다란 선이라고 했지만 사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가는 단분자로 이루어진 드릴이다. 커터는 이내 불꽃을 내면서 적의 코어의 외장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은 적당히 작은 구멍을 뚫었다. 공기가 새 나가는 게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콘솔의 정보론 공기가 새는 건 확인되지 않았다.

좀 더 크게 구멍을 뚫기로 했다. 적당히 사람 하나 나올 정도로.

 

테슬라 03. 어떻게 되어가나?”

침을 발라보았습니다만 반응 없습니다. 다음 단계로 진행하겠습니다.”

알았다.”

 

실망스럽게도 완벽할 정도로 정원의 구멍을 거의 다 완성할 때 쯤, 적함의 엔진이 꺼지는 느낌이 들렸다. 그리고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더 하면 멋진 구멍을 내어 주는 건데. .’

여기는 도그 페이스. 테슬라 응답 바란다. 작전 중지. 작전 중지. 적함이 항복했다. 지금 공격을 중단하고 대기하라!

제길! 땅딸보 놈들! 기껏 구멍 다 뚫었더니 항복이야?”

테슬라 03. 맥스웰. 수고했다.”

 

위로라고 한 말인 진 모르겠지만, 분대장의 수고했다는 말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모함이 다가올 때 까지 을 빨면서 놀고 있을 수밖에.

테슬라 02. 스털링의 무전을 통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 휘휘이~

넌 뭐가 즐겁다고 휘파람이야.”

오늘처럼 쉽게 제압한 적은 오랜 만이지 말입니다.”

‘~말입니다는 좀 관두지 않을래?”

 

수백 년 전 지구 군인의 말투를 흉내 내는 녀석의 말투가 기분 나빴다.

이제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되었는지도 수십 년짼데, 지구 전통이니 역사니 뭐니. 기초 교육 이외에는 노동교육을 받고 있던 나로선 학자계급이면서 군대로 온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도 거미 기수를 지원하고 말이야. 건방지게.

 

돌아가면 오늘도 어디 짱 박혀 있어야지.”

. ‘빨러 가시는 겁니까? 맥스웰 병장님.”

. 그래 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말고

 

+ + + + +

 

귀함 후 분대장은 보고서를 쓰기 위해 행정반으로 갔고, 스털링 녀석은 적 구축함의 인양 작업 인원이 필요해서 끌려가버렸다. 분대 내무실에 남은 것은 나 혼자.

난 혼자 할 일 없이 뒹굴 거리다가, 예정대로 을 빨기로 했다.

모선 기관실의 구석에 작은 공간을 알고 있다.

시끄러운 엔진음 때문에 웬만하면 아무도 찾지 않는 비밀의 장소.

보급품이 아닌 사제로 구입한 고급 담배와 함께 그곳에서 보내는 것이 나의 가장 소중한 낙이었다. 소음 따위는 방해거리도 안 된다. 귀찮은 행정보급관만 나타나지 않으면.

 

쿵쾅쿵쾅-

쩝쩝

 

시끄럽게 울려 펴지는 엔진음에 맞춰 담배를 씹는 소리로 하나의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씹을 때 느껴지는 묘한 안정감과 만족감.

조금 전까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힘쓴 시간을 잊을 수 있다.

베텔기우스 전역에서 복무한지 벌써 6. 마지막 휴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좁은 함선 생활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방법은 많지 않다. 보급품은 항상 제한적이고 어떻게 하면 병사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연구해서 나온 군용 잡지들뿐이다. 사제 잡지는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하나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우리 높으신 분들은 병사들이 무료함에 죽는 것 이상으로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 없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애당초 이 전쟁을 우리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닌데.

훈련소에서 배운 전쟁의 원인과 적에 대한 적개심 등을 주입교육을 받았지만, 6년이 지난 시점에서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 이 꿀을 빠는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꿀 빠는 거 재미있어?”

?”

 

목소리의 정체는 아미티지 상사였다.

그녀는 내가 담배를 씹으면서 엔진음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내 눈 앞에 나타나 있었다.

 

어디 갔나 했더니. 결국 여기구만. 좀 다른 곳 좀 찾아라.”

아하하. 행보관님도 참.”

 

아미티지 상사는 나보다 훨씬 오래전에 부사관으로 입대해서 지구-식민지 전쟁 초기부터 참여한 베테랑이다. 여자의 몸으로 쉽지 않은 전쟁이었을 건데, 많은 전공으로 상사 계급을 달고 있었다. 지금은 군인의 신분으로 짧게 머리를 깎고 화장도 하지 않지만, 민간인 시절 사진에 있는 행보관의 모습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이젠 땅콩 파괴자라던가 『◯◯잡이 상어라는 별명으로 불리긴 하지만.

난 아마티지 상사로부터 또 어떤 갈굼을 당할까 벌써 걱정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뜬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그거 맛있어?”

말 그대로 꿀이지 말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스털링의 말투를 흉내 내었다. 아무래도 자꾸 듣다보니 입에 배어버린 것 같다. 담배곽을 내밀자 아미티지 상사는 한 개를 집어 코로 향기를 맡았다.

 

너 그거 알어?”

. 말입니까?”

담배. 지구에선 불을 붙여서 피웠다는 거.”

 

처음 듣는 소리였다. 담배를 씹지 불을 피우나?

 

뭐 됐고, 제길. 멍청한 윗대가리들!”

무슨 일 있었나요?”

 

그녀의 얼굴은 심각했다. 담배를 한입 물어 씹으면서 벽 쪽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방금 전투 구역이 중립지역이라는 거야. 조약에서 정의하지 않은.”

. 그래서?”

생각 좀 해라. 멍충아. 짬밥을 얼마나 먹었는데도 모르냐?”

아하하. 저 같은 노동자 출신이 뭘 알겠습니까?”

정식 교전 구역이 아니니 풀어주라는 거야. 함선 채로. 포로도 남김없이.”

 

순간 입에서 미친이라는 소리가 나올 뻔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민간인 구역을 습격했던 테란 놈들을 두고 조약을 지키라니. 방금 전까지 내가 했던 고생은 무슨 일이란 말인가. 과거 군대에서 이유 없이 산을 옮기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고 들었지만, 직접 당해보니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공격하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러니 전쟁이 안 끝나지. 내 눈앞에서 그런 소리를 했으면 ◯◯를 뜯어버리는 건데.”

 

자주 듣는 말이지만 아미티지 상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영 익숙치 않았다.

 

하아-”

어쩌겠냐. 이것도 다 우리 일인데.”

 

작전을 위해 나쁜 머리로 외운 3차원 지도에 작전 계획, 전술 훈련 다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난 크게 한숨을 쉬고 또 담배 하나를 씹었다.

상사는 그런 나를 달래주듯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런데. 꿀 빤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뜬금없는 말.

 

지금처럼 구석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건 맞는데 말이야. 거기서 이 뭘 뜻하는지 알고 있어?”

? 글쎄요? 그냥 쓰는 말이라서 쓴 거라.”

 

신병 시절 조교를 시작으로 고참병, 부사관들까지 이란 표현을 많이 썼었다. 그 전에 사회에 있을 때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뭘까? 대체.

 

꿀이라는 게 벌레가 만든 액체라는 거야. 나 참.”

으엑. 그걸 어디다 쓸려고…….”

단맛이 나서 음식 같은데 넣거나 그냥 먹는다던데.”

 

지구 놈들이 여간 정신 나간 놈들인 건 알지만 벌레의 체액 같은 걸 먹는다니. 역겨웠다. 그게 내가 알고 있던 의 정체라고?

 

그럼. 옛날 군인들은 쉬는 시간에 벌레 주둥이랑 키스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으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암튼 그렇데.”

 

그런데 순간 내가 말한 키스라는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히는 상사의 표정에 살짝 가슴이 떨렸다. 오랜 함 내 생활에서 여자와 대화하는 기회는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직접 아미티지 상사와 오래 이야기 하게 될 줄은. 지금 보니 짧은 머리에 화장을 안했어도 예쁜 얼굴이었다.

 

. 맥스웰...”

. . 상사님.”

 

무언가 조심스레 말을 꺼낼 것 같은 상사의 모습에 갑자기 심장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건? 좁은 기관실 창고에 있는 것은 나와 상사님 단 둘. 소음 때문에 우리 목소리는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

 

그때 갑자기 큰 충격과 함께 선체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아미티지 상사는 충격에 쓰러지듯 내 품에 안겼다. 상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대로 나를 올려보고 말을 했다.

우리 잠깐 여기서…….”

 

나는 아미티지 상사의 얼굴을 내 가슴에 묻어버리는 것으로 그녀를 입 다물게 했다.

 

쿵쾅쿵쾅-

 

엔진 소리는 계속 시끄럽게 울렸다.




작가의 말: 제시어가 Honey라고 안했지 말입니다.(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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