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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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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86회차/3] 12월 25일
글쓴이: 내팔은최강
작성일: 13-11-30 13:55 조회: 1,113 추천: 0 비추천: 0

평범한 삶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 그건 TV에서, 소설에서,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약한 사람들은 굶지 않고, 남들과 비슷하게 살기 위해 평범함을 원한다.


강인한 사람들은 지겨워서, 혹은 이 험난한 세계에 지쳐서 평범함을 원한다.


그래서 그는 평범하게 살았다. 뭐든지 적당히 했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고, 적당히 잤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중도(中道)를 걸었다.


학교생활은 썩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도 적당히 있었고 성적도 적당히 나왔다. 그의 꿈은 이대로 대학에 들어가서,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알콩달콩 사는 것이었다. 그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침의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미 지하철은 만원이었지만 당장 출근길이 급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애를 쓰면서 다른 사람의 등을 밀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지각해서 선생님에게 혼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지하철에 탔다.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힘겹게 움직였다. 굳이 균형을 잡을 필요도 없었다. 사방에 사람이 가득해서 몸이 흔들릴 공간도 없었다. 지하철은 사람들의 땀 냄새와 숨소리로 가득 찼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몇 명이 있는지 셀 수도 없다. 한명 한명이 다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그 모두가 한 덩어리로 뭉쳐진 인간의 집합으로 보였다. 언제나 보는 광경이지만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문득, 세상에는 사람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죽는다. 오늘 지금 이 장소에서 북적대고 있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죽어 뼈만 남게 될 것이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다. 무슨 대단한 깨달음은 아니었다. 누구나 목숨은 하나뿐이고 수명은 유한하다는 걸 다시금 되새겼을 뿐이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막 엄마 뱃속에서 나온 갓난아기라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작은 사실 하나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는 여전히 평범한 삶이 최고의 삶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커다란 단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범한 삶은 재미가 없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사고의 회로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삶인데 굳이 욕망을 참아가며 지루하게 살 필요가 없다. 즐길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즐긴다. 쾌락이란 쾌락은 뭐든지 맛본다. 하루라도 헛되이 쓸 수 없다. 인생은 알차게 살아야한다.


그는 꿈을 바꾸기로 했다. 앞으로 뭘 해야 보람차고, 죽을 때 웃으면서 죽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수초간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는 세계를 정복하기로 했다.


허리를 폈다. 구부정한 어깨를 반듯이 하고 목을 빳빳하게 세웠다. 이 세계를 지배할 패자인 만큼 거만하게 웃었다. 정신이 바뀌자 몸도 바뀌었다. 상쾌했다. 몸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능력이 개방되었다.


능력을 각성한 것만으로도 폭풍이 몰아쳤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컴컴한 지하를 달리던 지하철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터져 나온 에너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천장을 들이 받았다. 하늘이 열렸다.


그는 뚫린 구멍을 통해 날아올랐다. 막 태어난 동물이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걷듯, 그는 스스로의 능력을 제어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 눈송이가 쏟아졌다. 높게 선 건물 사이로 건조한 칼바람이 불었다. 대형 쇼핑몰 옆에 커다랗게 서있는 나무가 보였다. 아래로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는 손을 들었다.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 그리고 잊혀 진다. 그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이 세계에, 행성에, 다시는 지워지지 않을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신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마왕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는 손을 쳐들었다. 대기가 요동쳤다. 하늘이 울부짖었다. 그리고 새빨간 불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그게 수백만 명을 죽인 이유냐.”


나는 탄식을 한 번 하고, 비교적 마른 편인 양말을 헹거에서 걷었다. 녀석은 헤실헤실 웃으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


너무나 해맑은 미소다. 이 세상 최악의 쓰레기가 저런 표정을 하다니 기가 막힌다. 난 빨래를 대충 걷어 바닥에 늘어놓았다. 차분히 앉아 정리를 했다. 녀석은 무지개처럼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큰 눈을 굴리며 흥미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넌지시 물었다.


그 사람들한테 미안하다는 감정은 없는 거냐?”


그거야 미안하지.”


미안한 놈이 그런 짓을 해?”


미안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내 욕심이 더 소중한걸.”


헤헤 웃는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저 말을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겠지만 나는 상관없다. 웃는 표정이 꼴 보기 싫지만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나에게도 소중한 게 있다. 그걸 위해서라면 백만 명이든 천만 명이든 죽일 수 있다. 난 묵묵히 빨래를 개었다. 녀석이 꼬물거리며 다가왔다.


손놀림이 좋은데. 가사가 익숙한가봐?”


가까이오지 마.”


왜에~”


녀석은 팔을 몸에 딱 붙이고 한껏 애교를 부려왔다. 긴 머리가 찰랑거리고 좋은 향기가 났다. 나는 몸서리를 쳤다. 이 미친놈이 진짜 가지가지 하는 구나.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어깨를 밀쳤다. 의외로 쉽게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그게 곧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짧은 치맛자락이 뒤집히며 레이스가 달린 하얀 팬티가 보였다. 욕이 절로 나온다. 시각을 포기하고 싶다.


녀석은 꺅꺅 거리며 화를 냈다.


아야야. 뭐하는 거야아~ 숙녀한테!”


숙녀는 무슨. 빨리 꺼져! 나는 네가 싫고 세계정복이니 사천왕이니 하는 것도 관심 없어.”


? ! ! 같이 세계정복하자!”


이제는 팔을 꽉 잡고 달라붙는다. 녀석을 때내려고 발악을 했지만 돌로 굳어진 석상마냥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빽 소리를 질렀다.


저리 떨어져! 사내새끼가 왜 달라붙고 지랄이야.”


사내 아니야~ 아리따운 숙녀라고.”


난 징그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숙녀가 되고 싶으면 다리 사이에 달린 그거나 좀 떼고 오시지.”


녀석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건 싫은데. 난 남자가 좋아~”


남자가 좋다는 놈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


그거야 재미있으니까! 여장은 처음 해보는데 이거 은근히 재미있어! 너도 한 번 해볼래?”


한숨이 나온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너 마왕이잖아. 모든 능력을 가지고, 모든 능력을 상회한다는 괴물이잖아. 나 같은 놈의 도움이 필요해?”


.”


?”


사천왕이 없으면 마왕이 아니잖아? 부하가 있어야지. 혼자만 있는 마왕? 들어본 적 없어.”


뭐야, 그 말도 안 되는 논리는. 난 손을 내저었다.


됐다. 어쨌든 난 생각 없으니까, 가라 좀.”


다시 빨래를 개는데 집중했다. 양말은 짝을 찾아서 발목부분을 뒤집어 한데 묶고 옷은 예쁘게 접어서 차곡차곡 쌓았다. 하얀 손이 뻗어왔다. 그러더니 정리해놓은 걸 몽땅 뒤집어놓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잔뜩 심통이 난 마왕의 얼굴이 보였다. 난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넌 이대로가 좋아?”


?”


이대로, 빨래나 걷고 밥이나 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게 좋아? 그냥 이대로 죽을 거야? 이 세상에, 네가 존재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은 생각은 없어?”


마왕의 얼굴은 진지했다. 어린애 같은 발상이지만 나쁘지 않다. 현실이 어쩌고 들먹일 필요도 없다. 녀석은 실제로 그럴 능력이 있었다.


사실은 나도 이대로 죽기 싫다. 남자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이름을 남기고 싶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어찌 되든 좋아. 중요한 건 그 애야. 녀석에겐 평범한 생활이 필요해. 그러니 네 제안은 거절이다.”


마왕의 표정이 변했다. 갑자기 가면이라도 뒤집어쓴 것 같다. 방금 전까지 시답잖은 여자 흉내나 내며 헛소리를 늘어놓던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놈은 굵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가 그 애를 죽여줄게. 그러면 망설일 필요 없겠지.”


무지개색 눈이 광채를 띠었다.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새까만 안개가 스멀스멀 방안에 퍼지는 것 같다. 놈은 고개를 쳐들고 나를 깔아보았다. 그러더니 씨익 웃었다.


아니면 협박을 해야 하려나?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그 애를 죽인다고.”


당장이라도 고개를 박고 빌어볼까 했지만 관뒀다. 놈이 바라는 건 겉치레가 아니다. 그런 수작이 먹힐 상대가 아니다. 나는 본심을 드러냈다.


할 수 있으면 해보시지.”


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못할 거라 생각하나? 수백만을 학살하고 한 손가락으로 세계지도를 바꿔버릴 수 있는 이 마왕이?”


그래봐야 인간이지.”


나는 놈을 노려보았다. 놈도 무서운 눈길로 나를 마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왕이 짧게 내뱉었다.


역시.”


놈은 갑자기 굳은 얼굴을 풀며 웃었다. 그러더니 와락 나를 껴안았다. 아까와 같은 가녀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멋있잖아앗!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어! 나랑 같이 놀자! 세계정복 한 번 해보자! 내가 사천왕 시켜줄게. ?”


, , 미친놈이. 저리 꺼지지 못해?”


아잉. 어떻게 숙녀한테 그런 소리를......”


이젠 진짜로 구토가 나오려고한다. 나는 간절히 말했다.


부탁이니 그 콧소리 좀 내지 마. 소름 돋는다.”


마왕은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마구 볼을 비벼대었다.


싫어, 싫어, 네가 놀아줄 때 까지 할꼬양!”


“......”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나는 그 뒤로 놈이 무슨 짓을 하든 가만히 있었다. 녀석은 한참동안이나 열을 올리면서 아양을 떨었다. 하지만 나는 반응하지 않았고 녀석은 잔뜩 삐쳐서 화를 내며 가버렸다.


그 뒤로 녀석을 만났을 때, 놈과 나는 적이 되어있었다.

 



벌써 오년 전 일이다. 나는 평소처럼 빨래를 걷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다. 창밖으로 하얀 눈이 송이송이 떨어져 내렸다. 밖을 내다보았다. 난리도 아니다. 오밤중인데도 밖은 낮처럼 환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때는 1225. 성탄절이다. 그리고 또한 인류가 마왕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해방의 날, 지구를 구원한 용사를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다.


까만 하늘을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산타와 루돌프가 가로질렀다. 그 아래로 칼과 방패를 든 쳐든 용사가 뿔 달린 마왕과 싸우는 모습이 재생되었다. 곧이어 허공에 그려진 빛 덩어리가 점멸하고 대문짝만한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용사 갑옷과 마왕 지팡이를 받은 아이들이 까르륵 웃으며 뛰어다녔다. 거실에 틀어놓은 TV에서는 마왕과 용사 간에 있었던 최후의 전투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쓴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기 이름도장 찍고 싶어 안달을 하더니 진짜 했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마왕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대부분의 말은 욕이다. 녀석은 악당이었으니까. 하지만 나 역시 악당 중에 하나다. 용사의 옆에서 싸우긴 했지만 그건 그 놈이 내 친구였기 때문이다.


나는 마왕에 대해 떠올렸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행동력이 넘치고, 애 같고, 바보였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쓰레기지만, 그래도 대단한 놈이었다.


사리가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나는 주방으로 가 미리 준비해두었던 와인을 잔에 따랐다. 찰랑거리는 컵을 들고 다시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보았다. 밤하늘에 새하얀 달이 떠 있고 바람이 불고 눈발이 휘날렸다. 캄캄한 하늘 아래로 인간의 빛이 반짝였다.


오늘은 용사의 날. 수많은 아이들이 용사를 동경하며 꿈을 키우는 날이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다. 착한 아이들이 있으면 나쁜 아이들도 있는 법. 마왕을 보며 세계정복을 꿈꿀 아이도 있을 거다. 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도 있지만, 스스로의 욕심을 위해 남을 죽이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에게 마왕처럼 멋진 롤모델은 없을 거다. 그리고 나는 나쁜 놈이었다.


잔을 치켜들었다. 가볍게 흔들었다.


건배.”


오늘은 마왕의 날.


악당의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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