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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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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86회차/1] [수정본]기념일
글쓴이: 블루헤븐
작성일: 13-11-27 18:37 조회: 1,588 추천: 0 비추천: 0

세상을 붉게 물들였던 가을의 치맛자락은 물러나고 하얀 소복을 곱게 차려입은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겨울이 왔는지 알 길 없는 바쁜 현대인들은 그저 자신의 할 일에 충실 할 뿐이었다. 그런 냉대에 화가 난 겨울은 작은 심술을 하늘에 뿌렸고 사람들은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어 겨울이 이미 왔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 해 겨울, 첫 눈이 내렸다.

그 첫 눈을 맞으며 한 청년이 복도에 서 있었다. 갈색 트렌치코트를 걸쳐 입은 20대 중반에 청년의 어깨에는 흰 눈이 얇게 쌓여 있었고 헝클어진 그의 검은 머리 위에도 작은 눈송이 몇 개가 달라붙어 있었다.

 

"하아."

 

추위에 굳은 양손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청년은 천천히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복도에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고, 청년은 초조하게 문 너머 반응을 기다렸다. 정적. 굳게 닫힌 문처럼 청년이 찾은 집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청년은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문을 바라보며 자신의 예상대로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다시 한 번 초인종 소리가 복도에 맴돌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전과 같은 정적뿐이었다.

 

“역시.”

 

청년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품속에서 몇 가지 소도구를 꺼내고 작업을 시작했다. 열쇠구멍 옆쪽에 작게 구멍 낼 수동 드릴과 어느 형태로든 구부릴 수 있는 철사. 해가 중천에 떠있는 대낮이지만 빈집털이범인 청년은 여의치 않았다. 청년이 추운 날씨 속에서도 이 원룸을 주시하며 고르고 고른 시각이었다. 청년은 자신이 문을 여는 동안 어느 누구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자신감은 정확했다. 적어도 청년이 문이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끼이익.

녹이 슬었는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린 문 뒤쪽으로 청년은 예기치 못한 손님과 마주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예기치 못한 손님은 청년 쪽이겠지만.

 

“.......”

 

“.......”

 

문이 열린 현관에는 퀭한 표정의 집주인이 물끄러미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 되면 오히려 몸이 굳는다던가. 너무 놀란 청년은 입을 벌린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집주인을 마주보았다. 청년이 본 집주인은 오랫동안 안 씻었는지 선이 아닌 면이 되어버린 떡진 머리와 여러 얼룩들로 본래 색이 짐작조차 가지 않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둥글둥글한 귀여운 얼굴과 호리호리한 몸매. 아직 고등학생 정도로 어림짐작되는 소녀였다.

 

“흠, 일단 들어와.”

 

팔짱을 낀 채 말없이 청년을 바라보았던 소녀는 청년을 향해 검지를 두 차례 까딱거린 후 집안으로 들어갔다. 청년은 황당한 상황에 어찌 할 바를 모르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 소녀를 따라 들어갔다. 들어간 원룸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인 기억의 지속처럼 온갖 쓰레기들이 방에 녹아들어져 있었다. 그런 쓰레기들이 익숙한 듯 소녀는 자연스럽게 그 위에 걸터앉았다.

 

“앉아.”

 

소녀의 말에 따라 청년은 쓰레기들을 살짝 옆으로 밀어낸 후 자리에 앉았다.

 

“집에 차가 있긴 한데, 아마 찾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더 빠를 거야.”

 

소녀는 퉁명스럽게 수북이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소녀의 말대로 저 쓰레기 더미 속에서 티백 찾기는 모래 속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다.

 

“너 빈집털이범이야?”

 

“어, 어.”

 

너무나 단도직입적인 말에 청년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몇 번째야?”

 

“처, 처음.”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소녀의 반말에 어떤 불평도 하지 못하고 청년은 우물쭈물 대답할 뿐이었다.

 

“거짓말하지 마. 문 여는 솜씨가 한두 번이 아니던데.”

 

처음 초인종이 울릴 때부터 소녀는 문 앞에서 청년의 솜씨를 구경했다. 비록 소녀가 볼 수 있는 것은 작은 구멍과 철사의 움직임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만큼 청년의 움직임은 막힘없고 빨랐다.

 

“세, 세 번째.”

 

“흠.”

 

“다섯 번. 이번엔 정말이야.”

 

면도날보다 날카로운 소녀의 눈초리에 청년은 솔직하게 고백했다.

 

“머, 상관없지.”

 

소녀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며 청년을 이곳으로 부른 목적을 위한 밑밥을 뿌리기 시작했다.

 

“일단 내 소개부터 할게. 내 이름은 시오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모르는 사람도 아닌 빈집털이범을 불려 앉혀놓고 자기 소개하는 시오네의 모습이 비정상적이라고 느껴질 법 했지만 청년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었다.

 

“직업은 보는 바와 같이 백수. 특이사항이라면 역시.”

 

시오네는 잠시 뜸을 들여 청년의 반응을 한차례 살핀 후 말을 이었다.

 

“나는 흡혈귀야. 나이는-”

 

“잠깐,”

 

청년은 재빨리 오른손을 들어 시오네의 말을 제지했다.

 

“흡혈귀라니. 혹시 사람 피 빨아먹고 사는 그, 괴 아니 그거?”

 

청년은 괴물이라는 말을 입에 담으려다가 치켜 올라가는 시오네의 눈썹을 보고 가까스로 말을 돌렸다.

 

“사실, 흡혈은 필요 없지만 내가 니가 생각하는 그거가 맞아.”

 

“저, 미안한데 갑자기 그런 엉뚱한 말을 해도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라.”

 

“일반인은 아니고 범죄자겠지.”

 

“그야, 그렇지만.”

 

떨떠름한 청년의 표정을 보며 시오네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진실 자체는 간단하며 명확하다. 그러나 아무리 간단한 진실이라도 믿게 하는 과정은 고단하며 복잡하다. 그와 반대로 사람들은 진실에 비해 복잡하며 모호한 거짓말은 너무나도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우선, 니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아?”

 

“그야. 네가.......어?”

 

청년은 네가 부르지 않았냐는 말을 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범행을 들킨 빈집털이범이 집주인이 부른다고 냉큼 집안에 들어간다니 말이 맞지 않았다. 보통의 빈집털이범이라면 들키자마자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매료라는 거야. 흡혈귀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술로 눈을 마주친 상대를 잠시 동안 최면에 빠뜨려 자신의 말을 따르게 하는 거야.”

 

시오네는 자신의 커다란 흑색 눈동자를 가리켰고 청년은 그 눈동자에서 겨울 밤바다를 엿 볼 수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었고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청년은 자신도 이해 할 수 없는 자신의 행동에 공포를 느끼며 진실을 부정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거짓들이 넘쳐났다. 알고 보니 시오네가 강력한 최면 술사였다든지 자신이 너무 놀라 패닉 상태였다든지 혹은....... 자신이 시오네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거나. 그 중 가장 그럴듯한 거짓을 골라내 말하기 전 청년은 눈앞에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으드득.

 

“퉤”

 

청년이 말릴 세도 없이 시오네는 자신의 엄지를 깨물어 뜯어버린 후 뱉어버렸다. 툭 소리와 함께 청년 앞으로 굴러간 붉게 물든 엄지손가락을 보며 청년의 두 눈은 화등잔하게 커졌다. 청년의 비명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지기 전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다. 비디오테이프를 뒤로 감듯 청년 앞에 떨어진 엄지손가락이 중력을 무시하고 시오네의 잘린 손가락 마디로 날아갔다.

 

“짠.”

 

시오네는 웃으며 멀쩡해진 오른손을 청년을 향해 펼쳐보았다. 그 모습에 청년은 얼이 빠진 듯 입을 벌리고 그제야 진실을 받아들였다.

 

“그럼, 이제 내가 널 이곳에 부른 이유를 말해도 될까?”

 

청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도와줘.”

 

10년이나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은둔형 외톨이에 부탁이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시오네는 천천히 자신의 사정을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될까. 우선 방금 말했다시피 난 흡혈귀야. 머, 사실 흡혈귀라고 해봤자 사람이랑 별 차이 없어. 사람의 피를 빨 수는 있지만 그건 선택이고 필수사항은 아니고, 태양 또한 흡혈귀로서 능력이 감소하긴 하지만 쐰다고 불타오르거나 화상입지는 않아. 흐르는 물도 상관없고. 단지.”

 

시오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촉촉하게 젖어 들어갔고 그녀는 눈물을 감추려는 듯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죽지 않아.”

 

불로불사. 불(不). 시오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그녀는 늙지도 죽지도 않았다.

 

“......잠깐, 그게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청년은 살짝 보인 시오네의 눈물에 흔들린 마음을 다잡기 위해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청년의 질문에 시오네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떼어 청년에게 건넸다.

 

“자.”

 

청년은 건네받은 달력의 년도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2003년이라니 무려 10년 전 달력이었다. 도대체 이 달력에 무슨 비밀이 있는 지 1월부터 차분하게 살펴보던 청년은 12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딱히 이상한 점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단지 특이한 점이라고는 비어있는 날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동그라미 쳐진 날들이 많았고 그 날짜마다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사람 이름이라고 짐작되는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오늘이 11월 25일이라 다행이야.”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시오네의 말을 들으며 청년은 11월에 해당하는 페이지를 폈다. 11월 중 25일은 유일하게 동그라미가 쳐져 있지 않은 날이었다.

 

“오늘은 아무도 안 죽었거든.”

 

시오네의 말에 청년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놀라며 달력을 처음부터 다시 살폈다. 365일 중 고작 15일. 시오네가 죽은 자들을 애도하지 않는 날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녀에게 350일은 지인의 기일이었다. 이런 달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야 할까.

 

“나이 아니 추,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

 

청년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시오네에게 물었다.

 

“1246살.”

 

꿀꺽. 시오네의 짧은 답변에 청년은 침을 삼키며 그제야 시오네가 말한 죽지 않는다는 의미를 단편적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10년 전 내 마지막 지인이 죽었어. 이름이 미연으로 내 친구의 증손녀였어. 이제 세상에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

 

시오네는 씁쓸한 듯 말했다. 미연의 죽음만으로 자신이 이렇게 은둔형 외톨이가 된 것은 아니다. 그저 미연의 죽음은 물이 가득한 컵에 떨어진 마지막 방울일 뿐이었다. 그렇게 터져버린 슬픔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람을 만나지 않는 거, 겁니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시오네가 1246살이나 된다는 사실을 안 이상 더 이상의 반말은 힘들었다.

 

“갑자기 존댓말 하지 마. 거북하니까.”

 

“어, 어. 알겠어.”

 

매료를 썼는지 안 썼는지는 시오네만 알 수 있겠지만 청년은 시오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시오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청년의 방금 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였다.

 

“그래. 어차피 만나봐야 저 달력에 동그라미만 늘어날 뿐이야.”

 

시오네의 말이 끝나자 청년은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맞는 이야기다.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면 누구와도 이별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롭지?”

 

청년의 갑작스러운 말에 시오네가 놀라 동그란 눈으로 청년을 뚫어지게 보았다. 하지만 청년은 시오네의 그런 표정을 보지 못한 채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도와줄게.”

 

오랜 침묵 후 생각이 정리 된 청년이 말했다. 청년은 자신의 행동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신 몇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어.”

 

그 말을 시작으로 청년은 달력에 적혀 있는 사람 하나하나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달력에 새겨진 빼곡한 글자처럼 수많은 질문들과 답변들이 시오네와 청년을 오고갔다. 시오네는 청년에 질문에 웃기도 화내기도 슬퍼하기도 즐거워하기도 하며 대답했다. 10년의 침묵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시오네는 쉼 없이 자신의 인생을 말했고 청년은 조용히 경청했다. 천년이란 세월을 담았던 하루가 그렇게 지나고 만났을 때처럼 두 사람은 현관에 마주섰다.

 

“그럼, 이만 갈게.”

 

“......그래.”

 

작별인사를 건네는 청년의 모습에서 시오네는 어제 하루 동안 잠시 잊었던 자신의 그림자가 돌아옴을 느꼈다. 이별.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그녀의 그림자였다.

 

“돌아와야 해.”

 

혹시 자신도 모르게 매료를 걸까봐. 시오네는 고개 숙이며 청년은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그, 그 내 부탁 잊지 말라고!”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시오네는 버럭 소리쳤다.

 

“하하, 걱정 마. 우선 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처리하고 도와줄게.”

 

청년은 웃으며 현관을 나섰다. 그리고 천천히 문을 닫았다.

끼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시오네의 눈동자를 보며 청년은 과연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의지인지 아니면 매료 때문이지 생각했다.

 

“매료겠지.”

 

아직 그치지 않은 눈 사이를 걸으며 청년은 실없이 웃고 있었다. 핑크빛으로 보이는 눈들을 보며 청년은 확신했다. 자신은 어느새 시오네에게 매료돼 있었다.

짧았던 만남 이후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갔다. 추웠던 겨울 후 짧은 봄이 지나가고 더운 여름과 낙엽 지는 가을 또한 지나갔고 다시 첫눈과 함께 겨울이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겨울처럼 청년은 복도에 서 있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눈이 쌓인 갈색 트렌치코트에 눈을 터느라 헝클어진 머리. 다만 올해에는 작년과 달리 한손에는 갈색 상자를 들고 있었다.

 

"하아."

 

청년은 문 옆에 갈색 상자를 잠시 내려놓고 추위에 굳은 양손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 후 청년은 천천히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작년과 달리 초인종은 고장이 났는지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청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품속에서 소도구들을 꺼냈다. 작년에 낸 구멍은 용접되어 막혀있었지만 청년은 수동 드릴로 다시 한 번 구멍을 내고 철사로 문을 열었다.

끼이익.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문 너머로 청년은 작년과 한 치 변함없는 소녀와 마주 볼 수 있었다.

 

“안녕.”

 

작년과 달리 청년은 소녀의 모습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인사말을 건넸다.

 

“흥, 한참이나 소식 없던 도둑놈이 무슨 일이야?”

 

소녀-시오네는 짜증이 가득한 말투로 청년을 쏘아 붙였다. 청년은 시오네의 냉대에도 미소 지으며 문 옆에 두었던 갈색 상자를 들었다.

 

“선물 주려고.”

 

청년은 조심스럽게 갈색 상자에서 선물을 꺼냈다. 그가 꺼낸 선물은 달력하나와 케이크 하나였다.

 

“자.”

 

이미 한해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건네주는 2014년도 달력 선물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시오네는 말없이 선물을 받았다.

 

“그럼, 잘 지내.”

 

정말로 선물을 건네주는 것만이 볼 일이었는지 망설임 없이 청년은 뒤돌아 떠났다.

 

“뭐야.”

 

시오네는 황당해하며 케이크를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달력을 살폈다. 그 달력은 특이하게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달력처럼 수없이 많은 동그라미들이 쳐져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시오네의 표정은 점점 변했다. 검은 두 눈에서는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녀의 입가에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 바보가.”

 

시오네는 청년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 시오네는 달력을 품에 안고 빠른 속도로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맨발이라 추울 법도 했는데도 시오네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1월 3일 애니 생일, 1월 4일 안드레와 샤니 결혼기념일. 1월 5일 피오 생일, 1월 6일 부르스 리 생일.......11월 25일 미연 생일. 오랜 세월 그녀와 함께 했던 지인들의 기념일들이 차곡차곡 달력에 새겨져 있었다. 그녀의 지인들은 슬픔의 기일들만 그녀에게 남겨주지 않았다. 10년이나 바보 같이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멈춰!”

 

시오네의 외침에 하얀 거리를 걷고 있던 갈색 트렌치코트의 청년이 멈춰 뒤돌아보았다.

 

“너!”

 

시오네는 자신이 이미 집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을 잊은 채 소리쳤다.

 

“이름은 가르쳐 주고 가야지!”

 

시오네의 말에 청년은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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