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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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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86회차/1] 지금부터 저는 자살합니다
글쓴이: Korita
작성일: 13-11-27 17:51 조회: 2,260 추천: 0 비추천: 0
서채린, 그녀에 대해 내린 나의 평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애’ 였다. 이런 나의 주관적인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야 이 학교에 차고 넘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평가를 철회할 마음이 없다.
용모단정, 성적우수, 팔방미인. 늘어뜨린 흑발과 맑고 고운 눈동자, 단정하게 차려입은 교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아함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제법 육체파라서 체육시간엔 물 만난 고기마냥 뛰어다닌다 고한다. 실기 평가도 올 A라지.
 
그림으로 그린 듯한 모범 학생. 그러나 내게 있어선 그저 특활시간마다 내게 치근대며 매점에서 맛있는 거 사달라고 조른다든가, 멋대로 가방을 뒤져 사생활을 침해한다든가 하는 애물단지. 아니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는 건 상관없는데 도대체 내 가방을 멋대로 뒤져대며 교과서를 빌려가든가 과자 몇 개 가져간다든가 하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애초부터 음침하고 어두운 나랑 어울리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또래 아이들의 분위기 메이커.
 
이해할 수가 없어.
잘난 거 하나 없는 나랑 어울리려고 애쓰는 것도, 별거 아닌 일에 흥분하고 업되는 것도.
 
그거 말고도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지적하고 싶은 거야 널리고 널렸지. 서채린이라는 이 소녀는 내게 있어 의문의 결정체이며 불가사의의 집합체다.
 
그리고 나는 그 불가사의와 의문의 궁극체를 눈앞에 조우하고 있었다. 아무리 톡톡 튀고 사고방식이 자유분방한 애라고 하지만 내가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관용을 전부 베풀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아니 애초에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인간이라면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서채린을 앞에두고선... 뭐..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선배.”
 
때는 5월 8일. 어버이날.
장소는 휴일을 만끽하며 집에서 등교조차 하지 않은 학생들 덕분에 텅텅 빈 교내의 옥상.
막 옥상 문을 열고 들어온 소년이 하나.
위험천만하게 난간 위에 올라서서 소년을 바라보며 웃음짓는 소녀가 하나.
 
“지금부터 저는 자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듣고서도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분명 채린이가 짓고 있는 미소엔 삶에 대한 절망보다는 희망이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런식으로,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도 행복한 듯 미소짓고 있던 소녀는 조용하고 담담하게 자살을 선언했다.
 
 
“...휴일에 여기서 뭐하냐.”
“뭐하긴요, 자살한다니까요.”
 
뭘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이 대답하는 채린이를 보고 있자니 더 어이가 없었다.
 
“질 나쁜 농담은 그 쯤 해두고. 여기서 뭐하냐고. 휴일인데. 특활 때문에 나왔냐?”
“진짜 자살할건데요.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어서 이 난간 너머의 허공으로 몸을 던지려는 참이었어요.”
 
그토록 암울한 사실을 전하고 있는 그 목소리는 오히려 밝고 활기찼다. 언제나 채린이가 그랬던 것 처럼.
 
“봐요. 여기 유서도 써왔어요. 에헤헤.”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자랑하는 초등학생처럼 머쓱대며 웃는 채린이가 꺼낸 것은 구깃구깃해진 A4 용지였다. 나는 유서랍시고 꺼낸 그 종이를 보고 잠시 미간을 구겼다.
 
“뭣하면 읽어드릴까요? 저, 작문은 잘 못하는데 이번엔 제법 잘 쓴 것 같아요. 구구절절한게 누가봐도 아! 정말 불쌍하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잘 썼다니까요?”
 
나는 그저 가만히 서서 채린이를 응시했다. 평소에도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채린이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활짝 웃으며 자살을 이야기하고, 베시시 거리며 유서를 읽어대는 여자애를 누가 정상인이라고 생각하겠냐.
채린이는 한번 목을 가다듬더니 시키지도 않은 유서 낭독을 시작한다.
 
“아아, 음. 그러니까. 저는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 앞으로의 제 인생에 밝은 미래란 도저히 보이지가 않고 지금 이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벅차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누군지 모르겠으나, 그때 쯤이면 이미 저는 죽었겠지요. 죽은자를 위한 애도라고 생각하시고, 제 푸념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채린이가 낭독하고 있는 글의 내용은 어이가 없을정도로 현실과 정반대의 사실을 서술하고 있었다. 무엇하나 부족한 거 없이 자란 채린이에게 앞날의 어두움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따위 있을 리가 없다.
 
“전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외동으로 태어나 사랑받으면서 자랐습니다. 화목하고 행복하게, 조금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집이었습니다만 그런 건 신경 쓸 필요도 없을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다정한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거짓말. 경제적으로 쪼들리긴. 네 아버지는 의사고 어머니는 중소기업 대표이사란 사실은 대충 다 퍼져있잖아.”
“어머, 선배. 일생일대의 유서를 낭독하고 있는데 태클을 거는건 너무하잖아요.”
 
채린이는 볼을 한번 부풀리며 불만을 토하더니 다시 입을 다문 나를 한번 바라보고 씨익 미소지은 후 낭독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보증을 잘못 선 아버지의 식당이 완전히 망하고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이 되자 부모님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져갔습니다. 매일 매일을 눈물지으며 보냈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는 날이 잦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 외롭고 힘든 하루 하루를 보냈죠. 그 때부터 성격도 음침해지고 사고방식도 부정적으로 변해서 친구 하나조차 제대로 만들기 힘들었고,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완전히 반에서 소외시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고, 어머니는 보험금을 들고 사라지셨습니다.”
 
암울한 인생사. 그러나 읽고 있는 채린이의 얼굴엔 한점의 슬픔조차 없다.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전 완전히 외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친척들은 외면하고 사회기간에서는 최소한의 도움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혼자서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겨우겨우 학교를 다니며 질긴 목숨을 이어왔지만, 그럼에도 버틸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어버이날입니다.”
 
그 밑으로는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종이를 내리고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기념일이겠지요. 가족들과의 화목을 다지기 위해 국가에서 권장해 부모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날이지요. 기념해야 하는 날이겠지요. 전국의 모든 가정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그들간의 유대를 확인하는 날이겠지요. .....근데 저에겐, 그럴 가족이 없는걸요.”
 
채린이는 조용히 신발을 벗는다. 그리고 그 신발의 아래에 유서를 깔아놓고서는 허리를 곧게펴고 나를 본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소름이 돋았을 거다. 그렇게 담담히 암울한 과거사를 말한 채린이의 표정은 한 점 슬픔도 후회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행복한 듯, 담담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매년 어버이날이 올 때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한심한 내 인생에 조소를 보내고 주먹에서 피가흐를 때 까지 벽을 쳤습니다. 그럼에도 암울한 미래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살아갈 용기를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이 제 유서의 내용이며, 이렇게 슬픈 인생을 살아간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채린이는 눈을 맞춘다.
 
“2013년 5월 8일. 학교의 옥상에서, 고된 삶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그렇게 유서의 낭독이 끝났다.
 
“거짓부렁도 적당히 해.”
 
화가 났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채린이의 표정은 절대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진정 죽기로 한 인간은 저렇게 희망찬 눈빛을 지닐 수 없다. 내가 보증한다.
암울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정도의 고통을 수반하는 거니까. 저런 눈빛조차 고된 인간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행복한 삶을 살아왔고, 부족한 것 없이 살아왔어야만 저렇게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만들 수 있다.
 
“진짜로 자살할건데요. 봐요, 신발도 벗어서 유서위에 올려놨잖아요. 이제 몸만 던지면 끝인데.”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말려줬으면 좋겠어?”
“네.”
 
의외로 즉답이 들려왔다. 한결 흔들림 없이 대답하는 채린이의 목소리는 굳은 의지를 담고 있었다.
 
“죽지말라고 말해주세요.”
“안 죽을 거잖아. 내가 말 안해도.”
“아뇨, 죽을거에요.”
“거짓말 좀 적당히 하라니까. 그런 거짓부렁 유서에 적힌 내용 따위 안 믿어. 용모단정, 성적우수, 팔방미인으로 소문난 네가 뭐가 부족해서 자살을 해대겠냐. 부모도 잘뒀어, 돈도 많아. 부러워 죽겠네 죽겠어.”
“에헤헤, 선배한테 칭찬받으니까 기분은 좋네요.”
 
또 한번 베시시 웃은 채린이는 난간의 끝쪽으로 한걸음 더 옮긴다.
 
“그래도 죽을건데요.”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머리를 긁어대며 채린이에게 다가갔다. 이 촌극을 끝내려면 강제로라도 저 난간에서 끌어내려야겠지. 내가 한치의 망설임없이 당당히 걸어 가까이가자 채린이는 난간쪽으로 더 걸어가며 이야기했다.
 
“그 이상 다가오면 투신할거에요.”
“해보시지,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단 1%의 가능성도 없다. 높이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공포란 생각보다 대단해서, 저런 허세꾼이 가진 용기만으론 턱도 없다.
 
“그렇다면, 에잇.”
 
그랬어야 했을 터.
고도에 대한 공포때문에 난간에서 버벅대야만 했을 터.
 
“뭐...뭐야, 미친!”
 
당황한 내가 달려나갔다. 정말 깔끔하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난간 밖으로 몸을 내던진 채린이를 보자마자 고무줄 튕기듯 날아갔다.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흑발이 코끝을 간질인다.
착, 하는 소리와 함께 최대한 뻗은 내 오른팔이 채린이의 왼 손목을 낚아 챈다. 그대로 채린이의 무게를 지탱한채로 내 배는 난간에 내다 꽂힌다. 대롱대롱 매달리는 형태로 채린이는 나의 손목에 의지해 허공에 떠있었다.
미쳤어.
진짜 돈 거 아냐?
 
“미쳤어?! 진짜 죽고싶어?!”
“아뇨.”
 
그제서야 채린이는 진실을 토한다.
 
“죽기 싫고, 죽을 맘도 없었어요.”
“그럼 미치지 않고서야 이딴 짓을 왜하는데?! 너 진짜 나한테 죽고싶냐?!”
“죽기싫다니까요, 에헤헤. 그리고 선배. 보다시피 아래쪽에는 철책이 있으니까 바로 떨어지진 않아요. 한번 철책 잡고 저기 저 돌출부를 밟고 올라오면 설령 선배가 안구해주셨어도 살았다구요.”
 
나는 매달린 채린이 너머 더 아래쪽을 본다. 확실히 그곳엔 안전을 위한 철책과 건물 조경을 위해 장식된 커다란 콘크리트 돌출부가 있었다.
그래도 말이 안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건 그리 간단히 극복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혹시나 손이 미끄러져서 철책을 놓친다면, 돌출부 쪽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난 각도로 떨어졌다면, 혹은 돌출부에 손이 닿지 않았더라면.
녀석에게 죽음이 찾아올 가능성이야 널리고 널렸다. 완전히 안전하다고 검증된 비행기를 타는데에도 두려움을 떠는 사람이 있다, 하다못해 번지점프를 하더라도 무서워서 못뛰는 사람이 널리고 널렸다. 그런데, 아무 안전장비도 없는 상태에서 망설임 없이 자기 신체능력 하나만 믿은 채로 투신이라니.
 
아무리 체육 실기 성적이 뛰어나도 망정이지, 인간으로서 원초적 두려움이라는 게 있어야할텐데.
그걸 보란듯이 극복해낸 건가. 아니다. 분명, 잡고있는 채린이의 손은 미약하게나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무서웠지만, 뛴거다.
그렇지만, 무엇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뛰어내린 이유가 대체 뭔데?
 
“너... 왜...”
“구해주셨잖아요, 선배가.”
“진짜 정신병자냐?! 겨우 그거하나...!”
“일단 올려주세요, 선배. 팔빠질 것 같단말이에요.”
 
나는 힘을 주어 난간까지 채린이를 끌어올린다. 완전히 올라온 채린이는 한숨을 푹 쉬며 난간위에 주저앉았고 나 역시 덩달아 그 옆에 주저앉는다.
이내 생각의 정리는 끝난다.
채린이가 자기 몸을 던져가면서까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을 깨닫고만다.
 
“야..너..”
“선배!”
 
그러나 그것을 지적할 시간은 주지 않는다.
어찌나 세게 잡았던지 완전히 새빨갛게 달아오른 손목을 들이밀며 채린이가 이야기했다.
 
“구해준거죠! 지금! 완전히 죽을 뻔한 저를! 삶의 의지를 잃고 미래를 비관하며 자살하는 저를 온힘을 다해 막은거죠?!”
“아니 애초에 넌 삶의 의지를 잃은 적도 미래를 비관한적도 없잖아! 사람 바보로 보냐?!”
 
채린이는 그대로 무릎으로 서서 슥슥슥 다가오더니 주저앉아 있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이야기 했다.
 
“그럼 왜 저를 막았는데요?!”
“아니, 뜬금없이 사람이 죽는 데 그걸 방관하는 인간이 어딨어?! 진짜 정신머리 이상한 애네!”
“맞아요. 선배는 제가 죽는걸 원치 않았던거에요. 그건 정말 기뻐요. 그야 뭐, 인간으로서 타인의 죽음을 방조할 수는 없다는 의무감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구한거지만. 그 의무감을 외면하기엔 양심의 가책이 선배를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이었지만. 결코 내가 선배에게 특별한 존재라서 그런건 아니었지만.”
 
채린이는 날 응시한다. 마치 내 내면의 모든 것을 다 꿰뚫어보고 있는 것처럼 바라본다.
 
“하지만 전 아니에요.”
 
그제서야 이 이해할 수 없는 소녀의 숨겨진 속마음이 드러난다.
내가 어떻게 할 겨를도 없이, 채린이는 내 품에 고개를 가져다댔다. 나를 꼬옥 안으며 품속에서 이야기했다.
 
“죽지마요, 선배.”
 
그런거지.
내 심장부근에서 느껴지는 채린이의 호흡에 퍼뜩 정신이 든다. 한숨을 쉰다. 허탈감을 느낀다.
문득 시선이 닿은 곳은 채린이의 신발,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유서.
악필이었다. 채린이 또래의 소녀가 썼다기에는 너무나도 악필이었다. 마치, 나 정도 되는 나이의, 글씨체 따위에 신경쓰지 않는 털털한 성격의 소년이 쓴.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게될 유서는.
아무렇게나 구겨져있는 그 유서는, 인생을 비관하는 한 소년이 아무렇게나 가방 속에 쑤셔넣어 놓았던 그 유서는, 오지랖 넓은 소녀가 늘 그렇듯 소년의 가방을 뒤져대다가 우연히 발견했을 그 유서는, 소녀의 신발에 깔려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그깟 어버이 날이 뭐라구요. 그런 것 때문에 죽기에 선배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잖아요.”
“모르는 소리 하지마. 매년 어버이 날만 되면 그래. 기념일은 개뿔.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트라우마가, 삶의 의지를 앗아갔던 과거의 기억이 미친듯이 나를 괴롭힌다고. 살아갈 이유도 뭣도 없는데 내가 대체 왜...!”
 
채린이가 품속에 묻은 고개를 확 하고 올리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울고 있었다. 보고 있는 내가 애처로울 정도로. 담담히 자살을 선언할 때에도 암울한 유서를 낭독할 때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그 미소는 온데간데 없고 세상 모든 슬픔을 다 안은듯한 표정만이 남아있었다.
뭐가 그렇게 슬프냐.
뭐가 너를 그렇게 눈물 짓게 만드는거냐.
 
“선배는 모르겠지만. 선배가 없어짐으로써 슬퍼할 사람이 세상엔 많아요. 선배조차 깨닫지 못한, 선배를 보며 살아온 사람이 분명 있다고요. 당장 여기, 한 사람 있잖아요.”
“그건, 고마워.”
 
담담히 감사 인사를 보낸다.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가 되진 못한다.
 
“그래도 어버이 날은 또 와. 죽지 못해 살아왔던 인생은 5월 8일만 되면 어김 없이 나를...”
“내년 5월 8일은 어버이날 아닌데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 상태로 다시 스윽 미소짓는다. 아름답지 않았다고하면 거짓말이지. 다만, 내가 마주 볼 자격이 있는걸까.
 
“무슨..말이냐 그게..?”
“내년 5월 8일은 저희 1주년이에요.”
“...어?”
 
채린이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좋아합니다, 선배.”
 
내 귀를 의심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고 슬픈 기억이라면, 그보다 행복한 기억으로 덮어씌우면 그만인걸요. 진짜로 행복해 질 수 있어요. 선배.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멋대로 독단을 내리지 말아요.”
 
채린이가 웃는다.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필요로 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단 사실 그 자체가 신기해서.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
 
눈을 마주봤다. 활짝 웃는 채린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같이 미소지어 주는 것 밖에 없었다.
2013년 5월 8일. 그렇게 채린이는 멋대로 나의 목숨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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