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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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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84회차/3] 호감에 관하여
글쓴이: 감주
작성일: 13-08-17 03:50 조회: 1,514 추천: 0 비추천: 0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굉장히 성가신 일이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설령 상대가 날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제일 대표적인건 극한 상황, 즉 상대와 내가 위기상황에 빠져 있을 때 드러나는 본심이다. 하지만 이건 본심이라기 보다는 본성이 드러나므로 그다지 좋은 판별법은 아니다. 제일 확실한건 내가 없을 때의 나에 대한 평가를 아는 것이다. 
"하~ 처음엔 그래도 괜찮나 했지만 역시 얼굴만 잘 생겼지 진짜."
흔히 말해 뒷담. 나와 접점이 없는 제 3자와의 대화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수단이다. 뭐 이건 그만큼 확실하지만 거기에 비례하는 리스크가 있다.
"그래도 걔 꽤 얼굴은 잘생겼잖아?"
"얼굴만 잘 생겼지 뭐 말만 하면 헤헤거리고 그냥 호구야 호구."
한 때 좋아했던 여자는 내가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런 말을 한다.
"헤~? 그럼 어쩌게?"
"그냥 적당히 때 봐서 차버려야지 뭐. 애초에 문자로 고백한 걸 덥썩 물었을 때부터 별로 재미가 없었어."
"하하! 그 때 우리도 불러줘! 표정 구경하고 싶어!"
그녀의 친구는 단순히 좋은 구경거리를 볼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좋아좋아! 니네가 사진 찍어놔! 알았지?"
확실히 뒷담이란 조금 충격이다. 그리고 진실은 때때로 무척이나 잔인하다. 대강 그런 진리를 나는 중학교 때의 어느 날 알게 되었다.

"시라..."
나는 노트에 적힌 오늘의 과제를 보며 중얼거렸다. 시, 영어로 poem 이라고 한다. 사전적인 의미는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을 말한다. 
"시란 뭘까?"
오늘 따라 아무도 없는 과방, 논의 상대는 같은 강의를 듣는 서희 밖에 없다. 서희는 나의 질문에 잠시 허공을 쳐다보곤 말했다.
"시는 사전적인 의미로 자연이나 인생에..."
"아니. 그런걸 묻는게 아니잖아. 사전적 의미가 지금 무슨 의미가 있냐고."
장난하냐? 같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무시한 채,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시... 시라...
"고작 20년, 그 중에 19년은 부모님의 의향에 따라, 학교 생활의 반은 나라에서 시키는대로. 사실 진정한 내 인생은 몇 년일까? 실인생으로는 갓난아기와 비슷한 나한테 감흥과 사상따위가 있는 것일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제 자음모음을 배울 나이인데 말이야."
"그렇게 심각한 문제야?"
"당연하지. 너도 예외는 아니야! 아니면 나보다 생일이 빠르니까 넌 어른이라는거냐! 이런 생각 따위 이미 진작에 끝낸거냐?"
"비약이 너무 심해... 아 몰라. 나도 이제 집중할거니까 시끄럽게 굴지마."
고개를 홱 돌리며 천천히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한 서희. 저런 야속한 여자를 봤나... 같은 과 동기가 지금 이렇게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는데. 그나저나 지금 몇 시지? 밖은 벌써 해가 지고 있다.
"윽. 벌써 6시야. 배고프지 않냐?"
"산만해. 아까 간식 먹었잖아. 치매걸린 노인도 아니고 정말... 심각한 문제는 벌써 해결한거야?"
눈매를 날카롭게 하며 노려보는 서희. 조금 도가 지나쳤나보다. 
"저녁이라도 먹으면서 천천히 생각할까... 했는데. 하하, 그래. 나도 좀 조용히 생각을 해볼까?"
"후... 먹자 저녁. 네가 그 얘기 꺼내니까 나도 배가 고파졌잖아."
노트를 덮으며 일어나는 서희. 그 표정은 마치 떼 쓰는 아이에게 두 손 두 발 다 든 어머니와 같았다. 오늘은 리미트가 빠르구나... 뭐 이런 날씨라면 진작에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래! 마침 제가 어제 용돈을 받았습니다. 고로 오늘 저녁은 제가 사도록 하죠!"
나의 과장된 포즈에 서희는 슬쩍 미소를 띄우더니 후후후, 하는 마녀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래? 그럼 오랜만에 삼겹살이나 구워먹으러가볼까?"
"5천원 이내로 부탁드립니다!"
"뭐야~ 째째해!"
"가난한 고학생의 심정을 헤아려 줘..."
"어쩔 수 없네. 한X으로 봐주지 뭐."
내 절박한 표정이 제대로 먹힌 것인지 그녀는 쿡쿡 웃더니 도시락 집을 제안한다. 사실 그대로 밀고 나오면 눈물을 머금고 지갑을 열게 되겠지만 이런 점을 배려해주는건 정말 사랑스러워. 
"문단속 제대로 했지?"
"응. 방금 3번이나 확인했어."
"한 번이면 되잖아?"
"이런 류는 건망증이 심해서 안되."
나는 정말 미치도록 사소한 것은 꽤나 잘 잊어먹는 성격이다. 매일 아침 집을 나오면서 문을 잠그는 것이라던가, 책상 위에 두고 나오는 샤프 한자루라던가. 항상 달고 다니는 것은 하나씩 빼먹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버릇을 들였다. 샤프 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지만.
"아! 방금 내 인생에 대한 감흥이 떠올랐어."
"응?"
"시 말이야! 지금 막 시상이 떠올랐다고."
서희는 더 자세하게 말해보라며 나를 재촉한다. 나는 천천히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들을 조합해본다.

나는 강아지 같다.
지나가는 곳마다 내 나름의 영역표시를 한다.
교실에는 샤프를
화장실에는 핸드폰을
결코 잊어먹은게 아니야

"잊어먹은거잖아!"
강력한 태클 좋습니다! 음 하지만 굉장히 좋은 느낌이었는데. 난 일단 최악의 경우 이 시를 과제로 내기로 했다.
"이야~ 시라는거 정말 별거 아니네요. 이런 수순이면 다음 주 쯤에는 엄청난 시가 한 편 탄생하는 건 아닐까?"
"정말 엄청난 건 엄청나게 낙천적인 너야."
"후후, 그런 식으로 태클만 걸다간 뒤쳐질걸요. 서희 양?"
"지금의 너 따위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
새삼스러운 지적은 서희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어느새 도시락 집에 도착한 우리는 문 앞에서 메뉴를 봤다. 나와 서희는 메뉴를 정한 후 카운터 앞에 갔다.
"전 치킨마요 큰거랑 사이다 하나요. 서희 너는?"
"난 노블레스 도시락이랑 얼그레이 한잔."
딱 봐도 비싸보이는 메뉴명. 난 반사적으로 처음 들어보는 두 메뉴에 다시 메뉴판을 유심히 봤다. 과연 뇌내 필터링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으로 5천원짜리 도시락 하나와 3천원짜리 음료수 사진이 있었다. 젠장 비싸... 3천원 오버잖아 이거! 게다가 음료수
주제에 어째서 내 도시락이랑 같은 가격?
"네. 치킨마요 3천원, 노블레스 5천원, 사이다 천원, 얼그레이 3천원 다 합해서 만 천원 되시겠습니다."
이모티콘으로 따지면 ^^ 정도 될 거 같은 느낌으로 말하는 점원. 차마 여기서 서희와 3천원 차이를 가지고 떠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메뉴명을 미리 들어놨어야 했어.
"여기 치킨마요, 노블레스 나왔습니다."
미리 음료수를 받아 홀짝이고 있던 우리는 서로의 도시락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치킨과 계란, 그리고 자유대로 뿌려먹을 수 있는 김가루와 간장, 마요네즈. 저 쪽은 치킨 스파게티 함박돈까스. 이 무슨 질적 차입니까? 우리는 같은 공간 다른 신분의 식
사를 했다.
"아~ 너무 많다. 미래야. 나 이거 다 못 먹겠어. 조금만 먹어주라~"
손을 모으며 난감한 표정으로 말하는 서희. 그 악랄한 미소를 난 놓치지 않는다. 젠장, 애초에 네가 그 만큼의 양을 먹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 단순히 처음보는 도시락을 자기 돈으로 사먹긴 조금 불안했던 것이다. 두고보자 이 자식. 하지만 난 먹는다. 내 도시락은 양이 부족하니까!
"잘 먹었다! 이거 생각보다 맛있네. 하지만 여자가 먹기엔 조금 많은 것 같기도!"
뭐가 같기도냐 이 자식! 귀여운 척 해봤자다. 다음에 네 용돈 때를 난 놓치지 않겠어.
"아! 나도 방금 시상이 하나 떠오른 것 같아!"
"응? 그래?"
흥미가 돋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무심코 되물어본다. 서희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름이 간다.
오늘 먹었던 노블레스 도시락.
내일도 어김없이 반복될 수업.
한 달 뒤면 시원해질 날씨.
오늘은 왠지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을지도.
가을이 온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거냐!"
그만큼 먹고서도! 라는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여자는 밥 배랑 디저트 배가 따로 있잖아."
당연하게 얘기하지 말라고. 여자는 신인류냐?
"하하! 황당하다는 표정 너무 웃겨!"
왠지 갑자기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상황이 됐다고 느끼는건 착각일까요? 신이 있다면 한번쯤 물어보고 싶다. 
"아이스크림은 내가 살게. 가자!"

여자, 분위기를 타면 하늘 끝까지 가는 생물.
그 생물이 보는 하늘 끝에는 뭐가 있을까?
아이스크림이 있을까?
아마, 우주 같은 논리적인 대상은 없을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우리는 역으로 향했다. 모 천안 쪽 대학에서 통학하고 있는 친구는 역 끝자락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라 열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다. 왜 사람들이 인서울 인서울 하는지 난 그 이유를 깨닫고 있었다. 통학거리가 3시간이라는건 
1시간 이내인 입장에서 보자면 왜 안죽고 여태 살아돌아다니는거지 정도의 느낌이다. 확실히 옛날부터 교통의 문제는 정말 컸다.
퇴근시간이기도 하고 보통 8시쯤에 귀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하철은 사람소리로 꽤 붐빈다. 그 소음을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든다. 서희도 마찬가지인 듯 내 옆에서 가만히 스크린에 뜨는 문구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벌써 2학기구나."
"그렇네."
대학교를 들어가고 mt를 들어가고 공부하고 놀고, 시험보고, 방학하고, 알바하고 그런 약 8개월 정도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고등학생 때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의 흐름. 그리고 군대를 생각해야 되고. 서희를 본다. 대학교 들어가고 나서 
사귀었던 친구들 중 하나지만 정말 잘 맞다고 생각한다. 잘 받아주고, 잘 받아쳐주고 개그맨은 조금 힘들지도 모르지만 아마추어 정도라면 꽤 잘 하지 않을까?
"서희야."
"응?"
"방학 전에 들었던 말의 대답. 지금 해도 될까?"
난 그런 서희에게, 고백받았다. 여자에게 고백하게 만든다는건 남자로서 최악이라고 하지만 난 그런 것도 일종의 능력이라고 본다. 뭐 일단 이 경우는 봉인해두고 싶은 능력이지만. 나는 과도한 호감을 받는건 익숙하지 못하다. 이대로가 가장 좋다. 흔히 
애니에서 보던 만담하고, 같이 붙어다니고. 거기까지. 연애파트로 넘어가는건 원하지 않는다. 
"왜 하필 지금?"
나에게 시선도 향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물어보는 서희. 그러게... 왜 갑자기 지금일까? 그건 나도 모른다. 멍해 있던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떠오른 감정, 그리고 그 감정에 따른 말을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내뱉었다. 
"별로 네가 나보다 3천원이나 비싼 음식을 먹어서 그런건 아니야."
"그건 인간 실격이야."
그래. 절대 그건 아니다. 인간적으로 3천원 때문에 여자를 찬다는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이야?
"그냥 갑자기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까. 넌 그냥 친구로는 괜찮은데 여자로서는 아닌 것 같아."
"이유같은 건 별로 어떻든 상관없어. 왜 하필 지금이 거절할 때라고 생각한거야?"
"그건..."
난 그 와중에 이유를 하나 찾았다. 지금 이렇게 멍하게 있는 시간이 가장 사람이 뭔가를 받아들이기 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니까. 하지만 그런걸 말하는건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내가 이 순간에도 그녀를 배려하고 있다
는 걸 그다지 알리고 싶지 않다.
"별로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어."
"하하, 바보네."
"응."
"나 같은 여자 찾기 힘들어. 너 같은 놈 잘 받아주고 잘 받아쳐주고."
"그러네. 남자였으면 불알친구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남자면 지금처럼 계속 붙어다닐 수 있는거야?"
"그럴리가. 난 남자랑은 듀오 안 뛰어."
그런가, 라고 중얼거리며 그녀는 내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묻었다. 그 이유를 알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시선을 향하지 않았다. 이게 그녀에게도 내게도 회복불가능한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한 최선이다. 열차가 온다는 신호가 들린다. 그녀는 열차가 모습을 보일 때 쯤에 몸을 떼었다.
"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어. 먼저 돌아가."
"... 그래. 조심히 돌아가."
결코 앞모습을 보이지 않고 걸어가는 서희. 하지만 열차에 올라타며 그녀를 흘깃흘깃 바라보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그런걸 바라보는 사이 열차는 어느샌가 역을 떠나고 있었다. 사람들을 모두 싣고 떠나간 역은 한동안 정적 속에 휩싸였다.
"담배... 필 줄 알았다면 좋았겠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홀로 멍하니 있는 것은 아까와는 달리, 무척이나 괴로웠다.

영진 : 오늘 팀랭 ㄱㄱ?
진수 : ㄱㄱ 저녁 먹고 봅새.
수재 : 오늘은 내 헤카림 캐리 보여줌 헤헿
재리 : 헤카림 벤
나 : 헤카림 벤이요.

과제 도중 울린 채팅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난 다시 과제에 집중했다.
"다 끝냈다!"
전공 과목의 과제를 모두 끝낸 난 고뇌에서 탈출한 기쁨을 작게 표현하며 교양 과제 목록이 적힌 노트를 꺼냈다. 이번 주 교양 숙제는 하나밖에 없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노트에는 '시 작성' 이라는 글이 날림체로 쓰여 있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것은 '서희는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였다.
"하, 나 결혼이나 제대로 할 수 있는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에 매번 이런 브레이크가 걸린다면 언젠가 나한테 다가오는 여자는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내 쪽에서 다가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녀가 했던 말대로다. 아마 난 언젠가 이 때를 무척이나 후회하게 되겠지.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자니 집중이 되지 않는다. 만화속에서 보던 표현을 인용하자면 머릿 속이 터져버릴 것 같다. 
놓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아니, 어떻게가 아니다. 잡았다고 했을 때 나는 그녀를 제대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건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지금보다 더 그녀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남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아."
거기서 생각이 멈췄다. 답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불가능하니까. 어떤 조건을 달아도 그건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역시 놓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든다. 머리가 계속해서 돌고 있다.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생각이 폭주하며 될대로 되라지라는 느낌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서희에게 전화중인 내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자 머릿속이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젠장."
조용히 욕지기를 내뱉으며 이걸 끊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마 끊는다고 해도 그녀의 성격상 다시 연락을 해 올 가능성이 크다. 폰을 꺼버리면 되나? 하지만 그건 싫다. 뭘 하고 싶은거냐고 나는!
"...여보세요?"
조금 주눅든 목소리와 함께 서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라도 걸렸냐? 이번주는 비 한번도 안내렸는데."
"끊는다."
"자, 잠깐만!"
잠시 간의 정적이 흐른 후 들려온 서희의 말에 나는 황급하게 그것을 저지했다. 하지만 저지했다. 이젠 뭘 해야되지? 뭐라도 말을 해야 될 것 같은데...
"할 말 없으면 끊는다."
"시! 시 다 했냐!"
"뭐, 대충."
"어디 읽어봐!"
"뭐? 내가 왜?"
"대충이라도 했다며! 읽어보라고!"
"그러니까 내가 왜 읽어야 되는건데?"
"읽을 때까지 전화 안끊을 거니까! 사실 난 너 외에 사람이랑은 다 합쳐봐야 30분 이내라 오늘 하루동안은 켜도 아무런 타격이 없어!"
"전혀 협박이 안되는데... 오히려 동장 받아야 할 부분 아니야? 걔다가 내가 끊으면 그만이잖아."
새삼스러운 지적에 나도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돌아보았다. 그치만 그 냉정함도 오래가지 못했다. 왠지 이 때 재촉해야 된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어, 어쨋든! 빨리!"
"하아... 이 개새끼! 그런 식으로 무참하게 까 놓고! 다짜고짜 전화해서 한다는 말이! 고작 그거냐 이 새끼야!"
여자애가 쌍욕은 좀 아니지 않냐는 말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입 밖에 내지 않기로 했다. 말의 내용은 대부분 날 욕하는 것이었지만 별로 기분나쁘게 들리진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편안해진 나에 대해 놀랐다. 설마 내가 M속성이 있었을 줄은...
"나. 역시 널 좋아해."
"...어?"
신나게 내 욕을 하다 당황하는 서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젠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학기 전부터 내 마음은 너랑... 어?"
통화 종료음? 저 편의 미묘한 잡음이 사라지며 들리는 소리를 듣고 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통화 종료라는 문구가 잠시간 깜박거리다 대기화면으로 돌아가는 휴대폰 화면을 보며 나는 내 안의 무언가가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현재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수신함으로 이동..."
"이 자식."
역시 뒤는 이런 거죠. 갑작스럽게 그녀가 내 고백을 듣고 당황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째선지 모르게 조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렇지 전화기를 꺼 놓는건 조금 아니지 않나?
"월요일에 학교에서 봅시다. 정면승부 나도 좋아해."
그런 식의 복수를 맹세했다.

"야! 이서희!"
아직 강의가 시작하기에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남겨두고 난 서희를 큰 소리로 찾았다. 조금 소란스럽던 교실의 이목이 나에게 확 집중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목소리를 들은 서희도 나와 주위를 돌아보더니 급격하게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시, 시끄럽잖아!"
"감히 전화를 끊어? 그래도 그건 아니지 임마! 남이 얼마나 고심하고 고백했는데!"
"어! 어! 어!"
고백이라는 단어에 남자여자 할 것 없이 조그마한 환호로 분위기를 띄운다. 서희의 얼굴은 급기야 쇠를 달구었을 때 정도로 달아올랐다. 당황해서 말 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한다. 
"걔다가 핸드폰까지 꺼놓는다는건 말이지 정말. 뭐, 그래도 난 이해해. 즉 이건 그런거지? 여기서 직접..."
"다, 닥쳐! 더 이상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 진짜로!"
"죽여! 죽여! 어차피 실패하면 조금 죽고 싶어질 거 같으니까 그냥 죽여!"
"제발 닥쳐!"
나를 향해 달려오는 서희. 하지만 그 전력돌진은 정말로 날 죽이려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렬했다.
"뭐, 뭐야? 진짜냐! 진짜냐!"
영화 같은 것을 보면 1인칭 시점으로 상대방이 칼을 들고 달려오는 장면이 있다. 자신의 시점에서 누군가가 그런 기세로 달려오는 것은... 스팩터클 정도로 표현할 느낌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내 어깨쪽을 잡고 질질 끌었다. 당연히 그 나이대 여자가 그 나이대 남자를 끌 수 있을리 없지만 난 그녀가 이끄는 쪽으로 따라갔다. 닫힌 교실 문 쪽에서 환호성이 크게 들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 미쳤어! 어떻게 교실에서!"
서희의 얼굴은 아직도 제 정신을 못차린 듯 하다. 아까보다 더 붉어진 것 아닌가? 이상하게 마음이 침착하다. 저 녀석의 얼굴 콕 하고 손가락으로 누르면 터지지 않을까? 하는 황당한 망상도 떠오른다. 
"음. 하지만 휴대폰 꺼놓은 네가 더 나빠. 오늘 아침에도 조용히 말하려고 전화했는데 안받았잖아."
"어? 아. 그건 수신 거부를 풀어놓는 걸 깜빡..."
"수신 거부? 뭐야 수신 거부 한거야? 왜? 어째서? 이젠... 꼴도 보기 싫다 이거야?"
"아, 아냐! 네가 갑자기 그런 소릴 하니까 너무 당혹스러워서! 풀어놓는걸 깜빡한 건 진짜 실수야!"
"흐응?"
"윽...지, 진짜 실순데...윽..."
너무 몰아붙인 것일까? 갑자기 그녀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우, 울지마! 내가 잘못했어!"
우는 아이는 안아주면 진정된다지만 서희는 아이는 아니다.
"나, 나도 생각할 시간정도는... 줘야 되잖아. 난, 2달이나 기다렸는데. 그런데도 넌 그냥 몰아붙이기만 하고. 너무해 너."
푹, 푹, 하는 뭔가가 박히는 느낌이 들렸다. 내 몸에서.
"갑자기 네 태도가 그렇게 변해버리면, 나도 무서워. 혹시 다루기 쉬운 여자라고 생각되버린 것 아닌가. 그런 생각 든다고."
그런가. 그제서야 나는 서희의 진심을 조금은 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굉장히 이기적인 놈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그런 괴로운 경험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만이 그런 감정을 가졌다고 생각해 버리는 건 굉장히 중2병스러운 행동이었구나.
"아... 음... 미안해. 정말. 나는 나만이 그런 경험을 가졌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구나. 정말 미안해."
"... 말해줘."
"응?"
"제대로 앞에서, 말해줘."
무엇을, 이라고 물어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심호흡을 하고 서희를 바라본다. 역시 이쁘다. 사랑스럽다. 음, 분위기에 맡기지 않고 고백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구나. 갑자기 나도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좋아해, 서희야."
"응."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는 서희. 하지만 그게 끝?

"너는?"
"어, 나는 그러니까 방학 전에..."
"비겁해. 빨리 너도 말해줘."
버벅거리며 여기저기 시선을 돌리는 서희. 그 모습은 방학 전의 달밤, 마치 소설속에서나 보던 성녀와도 비슷한 느낌으로 고백하던 때와는 틀리다. 순수하고, 꾸밈없이.
"윽... 으... 저도... 좋아해요. 미래를..."
어째서 3인칭? 걔다가 내 이름 고유명사 같은 느낌이 아니라 왠지 이중적인 의미로도 들리는 것 같고. 뭐 상관없나...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연인이 되었다.'

누구나 A를 생각한다.
누구나 B를 생각한다.
누구나 C를 생각한다.
네 껍질의 뒷면도 누군가는 어울릴 수 있을거야.
무섭다면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비웃음 당할 거라고 생각해서 네 껍질을 감춘다면
언젠가는 아무도 네 껍질에 흥미를 가지지 않을거야.
그건... 두렵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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