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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81회차/2] 우리들의 재종반
글쓴이: LSN가을
작성일: 13-07-27 23:57 조회: 1,504 추천: 0 비추천: 0

우리들의 재


재수라는 게 처음에는, 뭐가 대단한지 알 수 없었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피폐해 지는데다가, 좋아하는 게 있어도 할 수 없다. 공부할 시간도 모자란데 다른 데에 신경을 쓴다는 것 자체가 사치다.

그 때문에 점심도 이렇게 맥도날드에서 런치세트로 때우고 있고…….

나는 감자튀김 한 조각을 들어 케첩에 찍고 입안으로 넘긴다. , 며칠째 햄버거만 먹는 걸까 난.

! 시우다!”

신세 한탄을 하고 있으니, 소희가 햄버거 세트가 담긴 플라스틱판을 들고 내 앞에 앉는다. 나와 동갑이지만, 아직도 앳되어 보이는 이 긴 머리 소녀는 한소희’. 중학교 때부터 쭈욱 같은 학교에 다닌 친구로, 현재도 같은 재수학원 재종반(재수종합반)에 다니고 있다.

어제도 햄버거 먹더니, 오늘도 또 햄버거야? 그러다가 몸 상해!”

소희가 잔소리를 시작한다. 나를 걱정해 주는 것도 좋지만. 손에 햄버거를 들고 말해봤자 전혀 와 닿는 게 없는데.

솔직히 먹을 만한 게 없잖아.”

그래도~. 한국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

저기요, 지금 당신의 손에 들고 있는 건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 버거로 보이는데, 제 눈에 이상이 있는 겁니까?

식당은 비싼데다가 오래 걸리고, 노점에서 파는 건 위생적으로 못 믿겠어.”

나는 창문 밖을 본다. 맥도날드 앞으로 즐비한 노점들. 그 유명한 노량진 컵밥을 먹기 위해 고시생들이 노점 앞에 붐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저렇게 사람들 많은 곳에서 먹는 건 사양이다. , 여기도 사람 많기는 피차일반이지만.

그치만~. 매일 햄버거만 먹으면 당뇨 같은 거 걸릴 거라구?”

, .”

나는 햄버거를 들고 한 입 베어 문다. , 질려. 소희말대로 저녁때는 정상적인걸 먹어야하나.

역시 이렇게 점심시간마다 시우랑 이야기 하니까 좋다. 고등학교 때로 온 것 같아. 처음부터 재수 할 걸 그랬나?”

아뇨. 그거 진짜 안 좋은데요. 실패해도 한양대인 게 어디야…….

소희는, 작년 입시에서 한양대에 합격했다. 물론 소희가 노리던 학교는 SKY이었지만, 그 대학들은 떨어지고 한양대만 붙는 바람에 반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소희처럼 SKY를 노렸지만, 수능을 역대 급으로 망치는 바람에 지원한 대학에 전부 탈락. 이렇게 재수를 하고 있다.

근데, 너는 왜 재종반으로 온 거야? 반수 학원도 많잖아.”

그건……. 그냥? 재종반이 그래도 반수생들 보단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아서?”

왜 다 물음표야. 이 녀석, 생각은 한 건가?

그렇구나.”

나는 적당히 맞받아쳤다. 소희가 말하는 의미를 알 수는 있지만, 내가 반수생이 아닌 입장에서 공감은 어렵기 때문에.

시우야.”

내 햄버거 세트를 다 먹고 소희가 다 먹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소희가 나를 불렀다.

?”

우리, 같은 대학 가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고 소희는 순수100%의 미소를 지으며 방긋 웃었다. 순간, 마음이 설레였다. , 안 돼. 다른 생각을. 아직 소희는 단순히 친구일 뿐이다.

정말, 애구나.”

나는 소희 입에 묻은 햄버거 자료를 발견하고 휴지로 입을 닦아준다. 이런 어린(정신연령이)애한테 좋아한다는 감정을 품는 건 아직 이르다고…….

정말! 애 취급 하지 마!”

소희는 마치 화내는 것처럼 손을 쥐고 가슴 쪽으로 모은다. 아니, 진짜 화내는 게 맞나?

알았어. 다음부턴 안 그럴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우우. 다음에 또 애 취급 하면 진짜로 화낼 거야!”

지금 내가 머리 쓰다듬는 게 애취급이라는건 인식 밖인가. , 그보다 이제 4교시 시작할 시간이구나. 손목시계의 분침이 9을 가리키고 있다. 1245. 4교시 시작시간은 10분이니, 미리 가서 준비해야한다.

다 먹었으면, 가자.”

!”



우리는 맥도날드를 빠져나와 바로 학원으로 돌아갔다. 학원 시간도 없거니와, 노량진에선 갈 곳도 없다. 주위에 갈만한 곳이라곤 게임방, 노래방 같은 오락시설 뿐. 그리고 산책이라도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공원은 사육신공원이다. 어느 누가 무덤을 옆에 두고 산책을 하고 싶을까.

우리가 우리들의 반인 연고대반에 들어가자 평소와는 다르게 몇 명의 애들이 교실한편에 모여 뭔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뭔 일이야?”

나와 소희는 그 애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고, 소희가 그들에게 말을 했다.

, 소희구나. 진태랑 민아가 사귄데!”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부터 둘이 평소 보다 더 붙어 있는 것 같았는데.

?”

소희는 그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은 3월부터 둘의 사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수능이 끝나면 사귀겠네. 누가 먼저 고백할까?’같은 이야기도 우리들 끼리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희는 6월 중순에 반수과정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둘의 관계를 눈치 못 챘을 것이다.

뭐야, 그럼 수능 날이 100일이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무리 중에 한명이 말했다. 오늘은 D-99. 그렇다는 건 어제 둘 중 하나가 고백했다는 건가.

그래서 어제 고백한 거야.”

그리고 거기에 대답한건 오늘의 주인공 중 한명인 진태. 수능 앞둔 재수생이 연애라니, 팔자도 좋네.

좋겠네…….”

내 옆에 있던 소희가 작게 말한다.

아 맞다, 소희를 보니 오늘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소희야. 캔 커피 사줄까?”

? !”

소희는 아무 의심 없이 대답했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도 의심은 하고 대답을 해야지, 이렇게 순진해서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 이런 순진한 애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이 나지만.

나는 복도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 커피 2개를 뽑아 하나를 소희의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근데 갑자기 웬 커피?”

소희는 머리위에서 떨어지려고 하는 커피를 양손으로 잡아내면서 말했다.

, 담임한테 적당히 둘러대 줘. 오늘 축구 봐야해. 저녁 시간 이후로 빠질꺼니까.”

이러면 소희는 캔 커피를 얻어먹었는데 안 들어 주기 미안해서 부탁을 들어 주게 된다. , 순진한 애를 이용해 먹다니 나도 이제 글렀네.

! 또 당했다!”

정말이지, 매번 속는 게 멍청한 거라고.”

돈가스에서 팥빙수로. 팥빙수에서 캔 커피로. 종류만 바꿨을 뿐인데 3번이나 속아버린다. 이런 식으로 자라버린다면 나중에 크게 사기 한번 당할지도 모르겠다.

우우! 내가 성적은 더 높네요!”

세상 사는데 공부머리만으로 살 수는 없는 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말할 수 없었다. . 어차피 소희가 나보다 높다고 해도 1~2점 차이지만.

시우야.”

?”

소희는 머리 위에 놓아둔 캔 커피의 균형을 맞추다가, 내 이름을 부른다.

시우는 재수생이 연애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 진태랑 민아 이야기인가.

“100일만 참으면 다 할 수 있는데, 뭐 하러 그러나. 하는 생각이야. 별로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옹호하는 것도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소희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사실, 그 이유는 알 수 있다. 하지만 말해선 안 된다. 소희도 그것을 알기에, 바로 표정을 숨기고 원래의 웃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 수능.”

.”

그리고 종이 울린다. 다시 교실로 돌아가고, 수업이 시작된다.

 


, 소희야. 수능 완성 영어답지 있어?”

5교시 시작 전, 어제 집에서 풀다가 답지를 놓고 왔는지 답지가 없어서 소희에게 빌리기 위해 답지 유무를 물어 보았다.

우리 사이에는 지극히 평범한 일. 여기서 소희는 있다면, 당연히 빌려 줄 테고. 없으면 자기가 미안해할게 없는데도 미안해라고 말할 것이다.

, 아니. 없어.”

소희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평소와는 다른 말과 행동. 소희는 계속해서 나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소희야, 왜 그래. 뭔 일 있어?

,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묻자 소희는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말하고는,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정말, 무슨 일일까? 7년 동안 저러는 건 본적이 없는데 말이다.



또 하루가 시작됐다.

수능까지 남은 날짜도 2자리수가 되었고, 다른 반에선 포기하고 학원을 안 나오는 애들도 생긴다지만, 적어도 우리 반은 변한 게 없다. 단 한 가지를 빼고는.

소희야. 어제는 고마웠어. 여기 답례.”

나는 엎드려 있는 소희의 책상에 음료수를 올려놓는다. 소희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어제 저녁부터 뭔 문제가 있는 걸까? 그렇다면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소희야. 괜찮아?”

소희는 내 말에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봤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소희는 어제처럼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뒤로도, 소희는 나를 볼 때마다 피해갔다. 점심을 같이 먹자고 이야기 하려 했을 때도, 저녁때도 마찬가지로.

소희가 나를 피할 이유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뭔가 말실수를 했나 생각해 봤지만, 1주일 안에 그런 일은 없었다. 물론, 내가 생각해 내지 못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희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일로 화가 나거나 하는 애는 아니라는 걸, 이 세상에서 내가 두 번째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근데 왜일까. 소희가 날 피하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밖에 없다. 소희를 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 소희 본인을 붙잡고 물어 봐야 한다. 왜 나를 피하는지, 무슨 이유인지. 그리고 그 이유를 듣고 내가 잘 못한 게 있으면 확실히 사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원래 관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교실 한 켠에 붙어 있는 디지털시계에 11:30이라는 시간이 표시된다. 야간 자습이 끝나는 시간. 소희도 시계를 봤는지 가방을 싸고 있었다.

난 소희에게 계속 나를 피하는 이유를 묻고 싶다.

하지만, 지금 내가 소희에게 뭔가 말을 하면, 방금 전처럼 바로 가방을 들고 도망을 갈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소희가 지나갈 길목에 숨어 있다가, 소희가 오는 순간 붙잡고 이야기를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여자애를 상대로는 다소 거친 방법이긴 하겠지만, 소희라면 이해해 줄 것이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의 벽 쪽에 숨어서 소희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린다.

터벅터벅, 하는 발소리가 접근해 온다. 가벼운 발소리.

발소리만으로 소희라는 것을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온다면, 숨어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소희는 그것을 보고 저기에 누가 있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통로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기회는 한번 밖에 없다. 내 앞으로 여자애가 지나간다, 어두워서 잘 확인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여자애의 어깨를 잡고, 벽 쪽으로 밀어 붙인다.

그리고 얼굴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소희였다.

시우?”

소희, 미안하지만 도망은 못가. 말해 줘. 왜 도망을 치는 거야? 내가 잘 못한 게 있으면 말해 줘. 사과 할 테니까.”

나는 소희에게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을 털어 놓았다. 소희는 그 말을 듣고는 어제처럼 얼굴을 붉히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시우는, 잘 못 한 거 없어. 그러니까……. 우아아아앙!”

그리고 소희는 내가 어깨에서 손을 놓은 틈을 타 빠르게 몸을 숙였다. 그리고 내 팔 밑으로 빠져 나가 계단 밑으로 달려갔다. 저 바보가. 계단에서 뛰다가 넘어지면 어쩌려고.

하지만 놓칠 순 없었다. 나도 소희가 한 바보같이 위험한 행동을 똑같이 재현한다. 4층에서부터 빠르게 내려가 학원 밖으로 나가자, 소희가 계속 달려가고 있는 게 보였다.

몸집은 작은 주제에, 달리기가 왜 이렇게 빠른 거야!

계속해서 달린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다리가 저리기 시작한다. 소희는 점점 멀어져 간다. 소희 말 대로 햄버거만 먹으면 안 되겠네 이거. 남자가 이게 뭔 꼴이냐. 여자애 하나도 잡지 못하고.

힘들다. 지친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나는 소희를 향해 계속 달린다.

달리고 계속 달린다. 지금 소희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멈춰 있는 상태.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버스가 오기 전에, 소희를 붙잡아서.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왠지,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다시는 예전의 관계를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달리는걸 멈추지 않았다.

소희야!”

나는 소희가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미 소희는 다가온 150번 버스의 계단에 발을 올리고 있는 상태. 나는 그런 소희를 향해 힘껏 소리친다. 하지만 소희는, 그런 나를 힐끗 보더니, 마치 도망치듯 버스 위에 몸을 실었다.

. 그리고 버스는 출발해 버렸다.



이렇게 소희를 놓친다고, 나와 소희와의 관계가 끝이 날거라곤 생각 되진 않는다. 근데 내일도 소희가 날 피하고. 내일모레도 피하고, 그 다음날도 피하고, 계속해서 피하게 된다면?

대학교를 가서도, 아니 졸업할 때 까지도 계속 해서 피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경우다. 나와 소희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나게 되는 거다.

오늘, 내가 소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평생 지금의 나를 후회할 것이다. , 소희를 놓쳤나. , 패스트푸드만 먹고 운동을 안했나. 아니, 어째서 소희가 나를 피하게 하는 이유를 만들었나.

모든 것을 후회할 것이다. 내가 지금 소희를 놓친 것 때문에.

아니, 아니야. 아직 놓치지 않았다. 나는 도로를 향해 손을 내민다.

나는 택시를 기다린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였다. ‘빈 차라는 빨간색 글씨가 적힌 택시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소희가 탄 버스가 출발한지 3분이 돼서야 나는 택시에 탈 수 있었다.

나는 택시 문을 열고 자리에 앉는다.

“e-편한세상 114동으로 가주세요. 대방동이요.”

타자마자 일말의 생각도 하지말고 소희의 집으로 가달라고 말한다.

난 방금 소희를 놓쳤다.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한번은 놓쳤지만, 두 번은 놓치지 않는다.

비록 소희보단 늦게 출발했지만, 버스는 삥 돌아가는데다가 정류장 까지 거친다. 아직, 희망은 있다.



여기 돈이요. 거스름돈은 괜찮아요.”

거스름돈을 받을 시간 조차 없었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빠르게 소희네 집을 향해 달려갔다.

아직 소희가 집에 왔는지, 안 왔는지 조차 모른다. 전화를 한다면 오히려 눈치를 채고 집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소희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 뿐.

어둠속에서 누군가 걸어온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사이로 보이는 건 작은 여자애. 내가 제일로 아끼는 그런 여자애.

시우?”

그 여자애는 놀란 듯이 말한다.

뭔 일이야. 정말이지, 걱정 되잖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 작은 여자애, 소희는 그렇게 말하고 114동 입구 쪽으로 달려간다. 그렇게 쉽사리 통과하게 두지 않는다. 나는 전력으로 소희의 앞을 막아 세운다.

하지만, 소희의 작은 몸집을 내 몸으로 막기에는 크기 차이가 너무 컸다. 소희는 빠르게 입구 쪽으로 달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다. 놓칠 수는 없다.

나도 빠르게 달려가서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간다.

들어가서 시야를 바로 잡으니, 소희가 자기 집의 문을 열고 있는 게 보인다. 저 문이 닫히면 돌이킬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나는 빠르게 문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닫히기 전에 문을 향해 손을 뻗는다.

 

 

나는 문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희를 붙잡는 거조차.

아무것도 아닐 리 없잖아!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이야기를 하던 여자애가, 갑자기 자기를 피하는데. 그게 아무것도 아닐 리 없잖아!”

나는 소희가 마지막으로 한 말에 반박을 한다. 문은 이미 닫혔다. 내가 내지른 말은 일말의 희망, 소희가 내 말을 듣고 다시 대답을 해주기를 바라는 희망이었다.

면 좋겠다.”

내 바람이 소희에게도 닿은 걸까, 문 뒤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뭔소린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소희도 그걸 걱정한 듯, 다시 한번 말을 한다.

우리, 같은 대학 갔으면 좋겠다.”

. 좋겠지.”

나는 소희에게 대답 해준다. 어제는 어떻게든 얼버무렸던 대답.

시우야.”

?”

그때 말했잖아. 왜 반수학원 같은 데 안가고 재종반에 온 거냐고.”

, 그랬었지.”

그냥. 시우가 너무 보고 싶었어. 매일 같이 보고 싶어서. 시우가 다니는 재종반으로 간 거야.”

소희의 말. 그것은 우리 사이에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우리 둘의 불문율. ‘그때이후로 서로 한 번도 입 밖으로 내 본적 없는 말.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헤헤, 바보 같지?”

정말, 바보다. 겨우 나를 보기 위해서, 학원을 정한거야?

“‘그때시우가 말했었잖아. 미안해. , 시우를 볼 때마다 정상적으론 생각할 수 없게 됐어. 지금까진 참아 왔었는데. 민아랑 진태랑 사귄다는 말을 들으니까,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돼서. 시우를 정상적으로 대할 수 없었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된다는 건 아는데.”

1년전이었을 것이다. 3학년이 되기 전에, 소희가 나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나도 소희가 싫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겐 고3이라는 짐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소희에게 미안해. 우리는 이제 고3이잖아. 수능이 끝나고, 둘이 대학을 가게 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 하자.” 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지금까지 우리들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품게 되도 그걸 숨기면서 그냥 단순한 친구로서 지내온 것이다. 재수생이 된 지금 까지도. 그것이 우리들의 불문율이었다.

문 뒤로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소희는, 내가 걱정할까봐 울음소리를 죽이고 있을 것이다. 그런 바보 같은 애다.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1년 전에 한 말 때문에, 그걸 마음에 품고 나를 피한 것이다.

진짜 바보다. 완전히 바보다. 하지만 나도, 그런 바보를 사랑하기에. 자리에서 일어서서 문을 연다.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고 보이는 건 현관에 웅크려서 입을 막고 울고 있는 소희.

시우?”

소희가 나를 올려다본다.

바보야. 말할게 있으면 그냥 말해. 이렇게 혼자서 울지 말고.”

그치만, 시우가 말했잖아.”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를 좋아해주는 여자애가 2번이나 고백을 하는데, 내가 그걸 또 거절 할 것 같았어? 그런 건 남자가 아니야. 그런 남자가 있다면 고추를 떼버리라고해!”

1년 전에도, 우린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린, 3이였고. 지금은 재수생. 사랑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근데, 그래서?

나는 소희를 껴안는다.

사랑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잠을 줄여서라도 만들어 내면 된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핑계에 불과 했다. 그냥 나는 겁쟁이였던 거야. 소희랑 친구 이상이 되는 게, 연인이 되는 게 그냥 겁이 났을 뿐이다.

정말 그래도 될까? 내가 시우를 사랑해도, 좋아한다고 말해도 될까?”

뭘 걱정하는 거야. 당연히 되고말고.”

나는 소희를 바라본다. 소희는 눈물을 닦고는 다시 원래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을 점점 가까워져, 입술이 닿는다.



재수라는 게 처음에는, 뭐가 대단한지 알 수 없었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피폐해 지는데다가, 좋아하는 게 있어도 할 수 없다. 공부할 시간도 모자란데 다른 데에 신경을 쓴다는 것 자체가 사치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숨겨 왔던 것이다.

마음을 숨겨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입어도. 계속 숨기고 숨겨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끝.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시작했다.

이게 어떤 미래로 이어 질지는 알 수 없다. 원하던 대학에 붙을지, 아니면 떨어질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우리 둘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

결국엔 재수를 실패해서, 삼수를 하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영원히 대학을 못 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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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단편제를 쓰긴 했지만, 어제 노량진에 갔다 오니까 갑자기 소재가 번득 생각나서.

써서 올립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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