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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81회차/1] 마법 통신 인터넷
글쓴이: 바굼바
작성일: 13-07-27 14:50 조회: 1,292 추천: 1 비추천: 0

  하늘에는 용이 날아다니면서 군림하고, 지상에는 마법사들이 패권을 쥐고 있으며, 검사들은 길바닥에서 배를 곪는 세상이 있다. 태초에, 그러니까 아직 마법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던 때, 검을 들고 마물들을 소탕하던 용사들의 후예는 대부분 반란을 꾀하다가 처형당하거나 노예가 되었고, 운이 좋은 경우에는 마법사들의 하인이 되기도 하였다.

  여기, 어느 일류 마법사의 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한스도 그 용사의 후예 중 한 명이다.

  “한스, 차 끓여 와.”

  방문을 덜컥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까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스는 바닥을 쓸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도도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의 주인 세실이 외출을 마친 모양이었다.

  “아가씨, 이제 막 청소를 끝내던 참이라 공중에 먼지가 가득합니다. 차는 먼지가 가라앉으면 그때 하시지요.”

  “잔말 말고 끓여 와. 먼지를 후후 불면서 느긋하게 차를 즐기는 것도 나름 정취가 있으니까.”

  저렇게 말해놓고 차에 먼지가 앉으면 투덜거릴 게 뻔하다. 세실이 한스를 놀리는 흔한 패턴이었지만 한스는 불평하지 않고 차를 대령했다.

  “한스, 내가 오늘 뭘 가져왔는지 아니?”

  세실은 찻잔에 차를 따르는 한스에게 눈을 번득이면서 말했다.

  “글쎄요. 차를 한 번에 끓여주는 마법 도구면 좋겠는데요.”

  한스의 시큰둥한 반응에, 세실은 두고 보라는 듯 음흉하게 웃으며, 품 안을 뒤적거리더니 네모난 흰색 돌덩이를 하나 꺼내 보였다. 그러고는 그걸 흔들면서 입으로 “짠~.” 하는 소리를 냈다.

  “이게 뭡니까? 매직 스톤이나 소울 잼 같은 겁니까?”

  세실은 푹 한숨을 내쉰다 내쉰다.

  “하긴, 한 낱 하인 따위가 이 고급 마법 도구를 알아볼 리가 없지. 이건 인터 스톤이라고 해서, 다른 마법사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엄청난 마법 도구라고.”

  “이 작은 돌덩이가 말입니까?”

  “그래, 이것 하나만 있으면 직접 다른 마법사를 찾아가지 않아도 두꺼운 마법서 수 십 권에 준하는 정보를 단번에 열람할 수 있지.”

  “음, 대단하네요. 그건 그렇고, 차에 먼지가 앉기 전에 드시지요.”

  “반응이 왜 그따위야! 내가 이거 얼마나 갖고 싶어 했는지 알기나 해?”

  세실은 방방 뜨면서 한스의 가슴팍에 작은 주먹을 팍팍 내질렀다. 한스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주전자를 놓칠 뻔 했다. 기우뚱, 주전자를 간신히 붙잡은 한스는 식은땀을 닦으며 반론한다.

  “아휴, 아가씨. 마법사도 아닌 제가 그런 걸 보고 어찌 마음이 동하겠습니까? 제가 갖고 놀 줄 아는 거라고는 검하고 활 밖에 없습니다요.”

  “한심하기는….” 한스를 보면서 쯧쯧 혀를 차더니, “그렇다면 내 특별히 무지몽매한 너를 위해 잠시나마 마법사의 특권을 누리게 해주마. 가까이 와서 봐 봐.” 세실은 한스의 멱살을 잡아 자기 옆으로 확 끌어당겼다. 세실의 금빛 머리칼이 한스의 코를 찌르면서 향긋한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나를 보지 말고 이걸 보라고, 멍청아.”

  “아, 아, 예!”

  한스는 횡설수설 세실이 손에 든 돌덩이에 눈길을 향했다. 네모난 돌덩이 한 가운데에는 또 네모나게 움푹 파인 공간이 있었고, 그 밑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 한 작은 구멍이 몇 개 나 있었다. 세실은 그 구멍 중 하나에 왼쪽 엄지손가락을 넣었다.

  “여기에 이렇게 마력을 넣으면….”

  곧이어 네모난 공간에서 반짝 빛이 나면서 ‘검색’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세실이 그곳에 손가락으로 ‘용’이라는 글자를 써 넣고 기다리자 커다란 용이 불을 뿜는 모습이 나타났다. 한스는 그걸 보고 소스라쳐 몸을 팍 튕겼다.

  “아, 아가씨! 돌 안에 용이 들어가 있어요!”

  “넌 정말 멍청하구나. 이건 용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용의 그림이란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니까 잘 보고 있어.”

  한스가 호들갑을 떨자 어께가 으쓱해진 세실은 계속해서 몇 개의 그림을 더 보여주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마을, 무지개, 궁전 등, 글자만 입력하면 뭐든 다 나오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작은 돌덩이로는 멀리 떨어진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연극을 감상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야말로 만능이었다.

  인터넷이라는 통신 마법이 처음 나타난 20년 전 당시부터, 인터넷이 이렇게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사실상 인터넷이 생겨난 취지는, 많은 마법사들에게 동일한 마법 지식을 균일하게 퍼뜨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오락성이나 편의성이 가미되면서 점차 그 취지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인터넷이 수많은 마법사들을 이롭게 한 위대한 마법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인터넷 덕에 마법사들은 시간을 들여 마법 주문서를 암기하거나 필사할 필요가 없어졌고, 가만히 앉아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체력과 마력 소모가 최소한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스는 인터넷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실이 인터 스톤을 가져온 이래로 그녀가 방구석에만 틀어박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외출을 하더라도 세실은 줄곧 인터 스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가씨, 천둥이 치고 있어요!”

  “응, 인터넷에서 오늘 비 온다고 하더라고.”

  “아가씨, 빵이 다 떨어졌는데 같이 사러 나갈까요?”

  “아니, 인터넷으로 주문 해놨어.”

  “아가씨, 밖에서 강아지를 주웠어요!”

  “응, 시끄러우니까 내보내.”

  “아가씨, 아가씨!”

  “아 좀 닥치고 청소나 해!”

  세실이 한스를 상대하는 일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세실의 몸뚱이는 항상 바로 옆에 있었지만, 마음만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스는 당장에 세실을 홀린 그 돌덩이를 가로채서 밟아 부셔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그녀가 슬퍼하는 얼굴이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던 세실이 아침 일찍부터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이었다. 세실의 부름에 잠이 깬 한스는 비몽사몽 침실을 나와 세실 앞에서 거하게 하품을 해재꼈다. 세실은 그러는 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팍 내려치면서 말했다.

  “한스, 당장 마차를 준비해. 갈 곳이 있어.”

  “예?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서둘러 가십니까?”

  “어서 준비하기나 해.”

  세실은 웬만해서는 비행 마법으로 느긋하게 이동을 하지만, 급한 볼일이 있을 때는 빠른 마차를 이용하곤 한다. 얼굴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세실이 꽤나 안절부절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한스가 마차 끌고 나오자 세실이 그 옆에 사뿐히 올라타며 말했다.

  “마법 상점으로 가자.”

  “아니 어쩐 일로 직접 마법 상점을 다 찾아가고 그러십니까? 여태 인터넷으로만 구매 하시더니….”

  “인터넷이 안 되니까 그러는 거지. 너는 그런 것도 간단하게 유추하지 못 하는 거니?”

  “방금 막 일어난 놈한테 유추를 바라지 마시지요….”

  사정을 들어보니 인터 스톤이 고장 나서 새 것을 사러 가는 모양이었다. 종일 빼먹지 않고서 갖고 노니까 고장 날 만도 하다고 한스는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돌아다니는 마법사들이 꽤 많이 보였다. 여유부리기로는 일가견 있는 마법사들이 갑자기 이렇게 부지런을 떤다는 점이 의문이었지만, 마법 상점에 도착한 한스는 의문점이 싹 풀렸다.

  수도 셀 수 없는 마법사들이 마법 상점 앞에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마법 상점 앞에 바글바글 모여든 수 백 명의 마법사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 외치고 있었다. “인터 스톤이 고장 났어!” 고장 난 것은 인터 스톤이 아니라 인터넷 그 자체였다는 것도 모르고….

  그날부로 인터넷이 먹통이 되어 도시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인터넷에 본인의 마법 연구 성과를 기록하던 마법사는 모든 성과가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톱을 탁탁 뜯어 먹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인터넷에 하루 일과를 뽐내던 젊은이들은 손에 가시가 돋아나려 하고 있었다. 나라에서 가장 작은 도시 꼴이 이러하니 번화한 다른 도시들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인터넷 마법을 창시한 ‘넷’이라는 사람을 찾아가 원인을 밝혀내면 될 일이었지만, 그가 거주하는 곳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기로 유명한 비루스 산의 정상이었다. 숱한 마법사들이 인터넷을 되살리기 위해 비루스 산을 올랐으나, 그 중에서 살아 돌아오는 자는 거의 없었고, 만약에 살아 돌아온 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모두 도중에 포기한 자들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보다 못한 세실이 직접 나서기로 결심 했다. 한스는 비루스 산으로 향하려고 짐을 싸드는 세실의 팔을 붙잡아 말렸다.

  “아가씨, 가지 마세요. 가면 개죽음이라구요!”

  “내가 개같이 약하다는 말이야?”

  세실이 울컥해 지팡이를 머리 위로 치켜들자 한스는 움찔 몸을 움츠렸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겨우 인터넷 하나 때문에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그러지 마시고 좀 더 경과를 지켜보는 게 어떠세요? 그깟 인터넷 없이 몇 달 지낸다고 병이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런 얼간이!”

  “악!”

  세실은 소리치면서 지팡이로 한스의 정수리를 콱 내려치고는 이어서 말했다.

  “내가 겨우 유흥거리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아둔한 여자로 보여? 만약 여기서 내가 인터넷을 되살린다면 역사에 내 이름을 길이길이 남길 수 있다는 거잖아! 너라면 안 가고 배기겠니?”

  과연 명예에 죽고 명예에 사는 마법사들이나 할 법 한 생각이었다. 결국 한스는 세실의 고집을 말리지 못했다.

  물론 한스가 세실을 홀로 떠나가도록 놔둘 리는 없었다. 어차피 세실에게 한 평생 봉사하다가 죽기로 맹세한 이상, 세실이 마그마 속으로 뛰어든다고 해도 한스는 그 뒤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둘의 여행이 시작 되었다.

  비루스 산은 폭설이 몰아치고 눈사태가 멎지 않는 험난한 곳이었지만, 웬만큼 수련한 마법사의 마법을 웃돌 만 한 위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껏 비루스 산에서 죽음을 맞이한 마법사들에게도 폭설이나 눈사태는 적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곳에 서식하는 마물 들이었다.

  놈들은 세실의 강한 마법에 조금도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세실은 그제야 앞서서 비루스 산을 오른 마법사들이 왜 손쉽게 죽음을 맞이한 것인지 알아챘다. 비루스 산의 마물들은 마법에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는 녀석들이라서 물리 공격에 취약한 마법사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여기에서 한스의 검이 진가를 발휘하였다. 세실의 마법에는 눈 하나 깜박 안 하던 녀석들이 한스의 검으로는 단박에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비록 검술 실력이 다소 엉성하기는 해도 과연 용사의 후예라 함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한스는 마물들을, 세실은 폭설과 눈사태를 맡으면서 조금씩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산 정상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궁전 하나 정도 될 법한 커다란 건물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그 폭은 용이 두세 마리는 거뜬히 들어갈 정도였고, 높이는 하늘을 뚫을 듯 해 고개를 아무리 쳐들어 봐도 지붕이 좀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두 사람의 키를 합친 높이를 훨씬 웃도는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자, 거대한 도서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에는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그것이 천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책을 몇 개 꺼내 읽어보니 지식, 그림, 화상 등의 다양한 정보가 책에 기록 되어 있었다. 아마 인터넷에서 기록 된 모든 정보가 이 책들에 저장되는 모양이었다. 한스와 세실은 쓸 만한 책을 한두 권씩 슬쩍해가면서 도서관 안쪽으로 향했다.

  약 10분간 걸어가자 마침내 도서관 중심에 다다랐다. 거기에서 두 사람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늙은 노인의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노인은 세실이 한때 인터넷을 통해 봤던 인터넷 창시자 ‘넷’의 얼굴과 거의 일치했다.

  “시체 상태를 보니까 인터넷이 먹통이 될 때쯤에 죽은 것 같은데.”

  세실은 부패된 그의 시체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한스는 계속해서 목구멍 위로 밀려올라오려는 구토감을 연거푸 삼켜대며 간신히 세실 옆으로 다가갔다.

  “누가 이런 짓을….”

  “보나마나 마법사가 한 짓일 걸.”

  “어떻게 아세요?”

  “여기 있는 책들을 훔치고 인터넷을 없애버리면, 상급 마법 지식을 독점하고 최강의 마법사가 될 수 있으니까. 아까 책장 군데군데 빈 공간이 있는 거 봤지? 거기 꽂혀 있던 건 아마 상당히 가치가 높은 정보였을 거야.”

  “겨우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인터넷을 없애버렸다고요?”

  “너한테는 겨우 그것일지 몰라도 우리 마법사들한테는 목숨보다도 귀한 게 지식이야. 나도 물론 예외는 아니지.”

  세실의 말에 한스가 침울해져 있자 그녀는 팔꿈치로 그 커다란 등짝을 푹 찍었다.

  “으억.”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빨리 인터넷을 재가동할 방법이나 찾아보자.”

  “아, 옙!”

  세실이 이동하려 하자 한스도 따라 그녀 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때 갑자기 발밑이 환하게 빛나는 게 느껴졌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뒤돌아본 세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스!”

  세실은 온몸을 던져 한스를 덮쳐들었다. 예상치도 못한 그녀의 행동에 의표를 찔린 한스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세실과 뒤엉켜 바닥을 뒹굴었다. 한스가 영문을 몰라 횡설수설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굉음이 울리며 조금 전 서 있었던 자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함정 마법이야.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또 한 번 옆에서 쾅 폭발이 일어나 하마터면 휘말릴 뻔 했으나, 세실이 재빠르게 한스의 멱살을 쥐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안심하기는 이르다. 폭발은 곧이어 연쇄적으로 도서관 곳곳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책장이 하나 둘 씩 무너지면서 천장에서는 불이 붙은 책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도서관 안에 있다가는 책 더미에 깔려 죽든, 폭발에 휘말려 죽든, 뭘 해도 죽는 것은 확정이었다.

  세실은 한스의 멱살을 놓지 않고 서둘러 도서관 입구로 날아들었다. 위, 아래, 앞, 뒤, 옆 할 것 없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폭발을 가까스로 피해가며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에, 빵 하고 커다란 폭발이 등 뒤에서 덮쳐들어 한스와 세실은 그대로 도서관 밖으로 튕겨나갔다. 둘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데굴데굴 눈 바닥을 굴렀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한스는 머리에 뒤덮인 눈을 털어낼 생각도 않고 냉큼 일어나 바닥에 처박힌 세실에게 달려갔다. 한스가 세실을 일으키자, 그녀는 그의 가슴팍을 확 밀쳐내고는 짜증이 잔뜩 난 표정으로 온몸에 묻은 눈덩이를 탁탁 털어냈다. 명색이 일류 마법사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떤 개새끼인지는 몰라도 하는 짓이 지독하게 악질적이네.”

  “아, 아가씨! 아가씨 머리가 홀랑 타버렸어요! 아이고 이를 어쩌나, 아가씨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이렇게 흉해져 버렸으니…!”

  “에라 이 븅신아!” 세실은 안절부절 못하는 한스를 발로 뻥뻥 차면서 성질을 부렸다. “넌 이 상황에 내 머리가 눈에 들어와? 엉!?”

  “악,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세실은 발길질을 멈추고 불타고 있는 도서관을 바라보았다. 도서관은 이미 사방이 불길에 휩싸여서 세실의 마법으로 진화하기에는 무리였다. 인터넷을 되돌릴 최후의 희망은 연기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세실은 아무 수확 없이 도서관을 뒤로해야만 했다. 산을 내려가는 것은 오르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지만, 발걸음은 오를 때보다 배는 무거웠다. 동네방네 인터넷을 꼭 소생시키리라 단단히 일러놓고 왔는데,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가게 됐으니 이웃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세실에게는 다소 미안한 일이었지만, 한스는 오히려 마음이 한 결 후련해졌다. 이제부터 세실이 인터넷에 빠지기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루스 산을 오른 여정은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듯 했다. 한스는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자기의 모험담을 피로할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하지만 한스가 친구들에게 모험담을 들려줄 기회는 이제 없었다. 돌아가 보니 도시가 폐허가 돼 있던 것이다. 길거리에는 마법사들의 시체로 가득했고, 건물들은 온통 불에 타 무너져 있었다. 좀처럼 동요하지 않던 세실도 그걸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한스는 세실을 그늘진 곳에 앉혀놓고, 어딘가 살아 있는 사람은 없는지 길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마법사들 중 한 명이 움찔 움직인 것을 발견했다. 한스는 얼른 달려가 그의 어께를 안아 들었다. 어께에 칼이 찔려 출혈이 상당했다.

  “저기요. 정신 차려보세요! 제 목소리 들리시죠?”

  한스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마법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더니 한스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보자마자 겁에 질린 듯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

  “괜찮으니까 진정하세요! 상처가 깊긴 해도 급소는 피했으니까 출혈만 막으면 죽을 일은 없을 거예요.”

  한스가 입고 있는 쭉 옷을 찢어 그의 어께에 감아주려 하자 마법사는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마법사가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 나를 죽이지 않는 거지…?”

  “예? 무슨 말씀이세요?”

  마법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스를 가만히 보면서 생각하고는 말했다.

  “자네 모습을 보아 하니 한동안 도시를 떠나 있었던 모양이군. 어젯밤, 마법사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틈을 타 검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건 알고 있나?”

  한스는 천을 두르다 말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허탈하게 웃는다.

  “에이, 설마요. 아무리 마법사들이 혼란스러워 하기로서니, 검사들이 무슨 수로 이 많은 마법사들을 죽일 수 있었단 말입니까?”

  “전력이 부족했거든.”

  한스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시에 있는 검사가 아무리 많이 모인다고 해봤자, 이 많은 마법사의 인구를 뛰어넘을 리는 만무했고, 더구나 검을 잡은 자가 마법을 쓰는 자보다 전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마법사는 전력이라고 할 수 없어….”

  “무슨 말입니까?”

  “인터넷 마법이 생기고부터, 많은 마법사들이 주문서를 버렸거든. 검색하면 순식간에 주문이 나오니까 암기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마법사도 많았지. 그럴 때 인터넷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나?”

  “….”

  지난밤의 상황이 어땠는지, 한스는 대충 상상이 갔다. 인터넷을 잃은 거리의 수많은 마법사들은 득달같이 달려드는 검사들에게 아무 저항도 못하고 죽어나갔을 테고, 개중에 전력이 될 만 한 마법사들은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많은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도망치거나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당신들은 아무런 대비도 안 하고 있었던 겁니까?"

  “이 지경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겠어.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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