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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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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천사의 극약
글쓴이: 법의짐승
작성일: 13-07-01 23:58 조회: 1,038 추천: 0 비추천: 0

어느 날, 소녀가 말했다.

 

그거 알아? 옛날 중국에서는, 사형수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를 만두에 찍어 먹으면 어떤 병이라도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대.” 하얀 침대에 누워 있는 소년은 고개만 돌려 소녀를 바라보았다.

 

외부와 격리된 하얀 방의 하얀 침대. 그럭저럭 소년이 2년 가까이 침대 생활을 하고 있는 병원의 독실이었다. 불치의 병이라고 하면 요즘에는 다소 듣기 힘든 표현이지만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는 그가 걸린 병은 불치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애초에 어려운 병명 같은 것은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그였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근 2년 가까이 성실하게 소년을 문병 오는 소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유린.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조금 신기하지 않아? 사형수라면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잖아. 그런데 그런 사람의 심장이 어떻게 병을 치료할 명약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소년의 황당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계속 즐거운 듯이 말을 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생명을 빌리고 싶었는지도 몰라.”

생명을 빌린다고?”

. 생명, 하면 심장이잖아. 그러니까 그 심장에서 나온 피 역시 생명이 들어 있는 것이겠고. 그러니 사형수가 죽은 뒤에도 심장만 살아 있으면 거기엔 아직 생명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빌릴 수만 있다면 병을 낫게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 몰라.”

쓸데없는 얘기구만.”

 

인혈만두니 생명을 대여하느니 황당한 말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소년은 침대 안에서 돌아누워 버렸다.

 

잠깐 문세휘, 뭐야 그 태도는. 모처럼 내가 문병을 왔는데.”

매일 오고 있잖아. 때로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다고. 나는 환자니까.”

거짓말.”

 

유린은 세휘의 마음속을 뚫어보는 것처럼 소리를 내어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오지 않으면 심심해서 견딜 수 없지? 혼자서 이런 곳에서 매일같이 누워만 있는 건 지겹기 짝이 없을 테니까.”

……별로.”

 

귀찮은 듯 내뱉는 세휘의 말에 유린은 다시금 키득거렸다.

누나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유린은 세휘와 같은 나이였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던 클래스메이트. 2년 전 갑작스럽게 세휘가 병으로 쓰러졌을 때 가장 먼저 병문안을 왔던 것도 유린이었고, 입원 후에도 매일같이 찾아와 주는 클래스메이트는 지금에 와선 그녀 하나뿐이었다.

이상한 것은……하고 세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실 그는 유린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던 건 확실한데 머릿속에 없었다. 그럭저럭 2년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입원하기 이전의 기억에서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녀의 얼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친구가 많고 같은 반 녀석들의 얼굴은 거의 다 기억하고 있는 그가 전혀 생각해내지 못한다는 건, 아마도 어지간히 존재감이 희미한 소녀였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때, 세휘? 그런 만두가 실제로 있다면 좋을 것 같지 않아?”

됐네요. 그런 기분 나쁜 만두 같은 건 먹고 싶지 않아.”

 

세휘는 고개를 돌린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병이 낫는다 해도?”

당연하지. 피투성이 만두 따위 누가 먹고 싶겠냐. 그리고 설령 먹고 싶다고 한들, 그런 게 요즘 세상에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재미있잖아.”

 

남이 아픈 것을 놓고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보통 이런 무신경한 이야기를 하면 버럭 화를 내야 하겠지만 이 소녀에게는 그런 식의 대응이 전혀 효과가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사귄 친구처럼, 어지간한 화나 독설은 그대로 감싸 안아서 없애 버린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슬며시 말을 돌리며 세휘는 유린을 바라보았다.

 

우리 말야. 이전에 언제 만난 적이 있었나?”

 

줄곧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지만 실제 입에 담은 것은 처음이었다. 어느 정도 그가 예상한 대로 유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무슨 말이야?”

 

그러나 말이 나온 이상 물러날 수는 없었다. 세휘는 어색함을 무릅쓰고 계속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네가 문병을 오기 시작하기 전에 말이야. 학교에서라거나, 동아리에서라거나. 언제, 이야기 한 일이 있었나 싶어서.”

그건……하지만, …….”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유린은 한동안 멍하니 세휘를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하긴, 그럴 수도 있지.”

, 역시 어디선가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던 거야? 학교에서?”

아니.”

 

그렇게 말하며 유린은 살짝 웃었다.

 

세휘, 학교에서 인기가 꽤 많았었지?”

 

갑자기 나온 뜻밖의 말에 세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있었다.

 

고백 받은 횟수도 많고, 발렌타인 때에는 소문이 날 정도로 선물을 받고. 공식적으로 커플이 된 아이는 없었지만, 적당히 사귀는 애들은 꽤 있었지?”

아니, 그건…….”

최단 기록은 아침에 고백을 받아서 저녁에 찼던 것. 방과 후에 일어났던 일이고, 그 애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반에서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잠깐,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 거야?”

글쎄에, 나는 뭐든지 알고 있으니까.”

 

당황해서 추궁해 보았지만 유린은 싱글싱글 웃으며 응수할 뿐이었다.

확실히 그는 인기가 좋았다. 성적도 우수하고 용모도 수려. 운동도 잘 하고 친구도 많은 그는 어딜 가든 주목을 받았고 중심에 서 있었다. 당연히 그런 멋진 남학생과 가까워지고 싶어하던 여자아이들은 꽤 있었고, 상당히 가벼운 성격인 그는 그때그때 적당히 바꿔가며 여러 명의 여자아이를 사귀기도 했었다. 2년 전 갑작스럽게 쓰러진 뒤에도 한동안은 그의 애인이라고 칭하는 여자아이들이 문병을 오곤 했었다. 지금 와서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눈앞의 소녀 하나뿐이었지만.

 

가만, 그럼 혹시 너…….”

 

그때 사귀었던 아이 중 하나인가, 하고 세휘는 새삼스럽게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청순해 보이는 길고 윤기 있는 흑발. 부드러운 얼굴선과 눈매는 같은 동급생이라기보다는 누나 같은 느낌이었다. 짙고 검은 눈동자는 그야말로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깊은 심연을 간직한 듯, 어딘지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항상 교복만 입고 있기는 하지만 그 몸의 굴곡은 동년배 소녀들을 뛰어넘는 스타일을 갖추고 있어 분명 교실에서도 남자들의 인기를 끌 만한 타입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특징을 다 머릿속에서 비교해 봐도, 역시 이 소녀는 그의 기억에 없었다. 약간 답답한 기분에 세휘는 머리를 조금 긁적였다.

 

모르겠는데. 항복.”

……푸훗.”

항복했으니까 웃지만 말고 말해 달라고. 설마 정말 우리 예전에 사귄다든가 했었어?”

비밀이야.”

 

작게 웃으며 대답하는 소녀에게 세휘는 더 이상 추궁할 수 없었다. 불퉁해진 세휘를 웃으며 바라보던 유린은, 문득 살짝 고개를 가까이 가져왔다.

 

한 가지만 말해 줄게.”

?”

내가 바라는 건 한 가지라는 거.”

 

살짝 풍겨오는 달콤한 향기. 분명히 어디선가 이 냄새, 맡은 기억이 있다고 세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너를 지키고 싶어.”

 

조용한 목소리로 그녀는 그렇게 속삭였다.

 

인혈만두가 아니라, 그 어떤 수단이라도 상관없으니까……너를 구하고 싶어. 반드시, .”

 

말을 잇지 못하는 그를 잠시 바라보던 소녀는 이윽고 키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 갈게. 내일 또 보자.”

 

작게 문소리가 났다. 닫혀 버린 하얀 문을 세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렇지 않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병원에서의 시간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이 되는 시간이 계속하여 지나갔지만 소년의 병에는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침대 위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보내게 되면서, 그 역시 오래 누워 있는 병자들이 흔히 그렇듯 날카로워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잠을 자지 못하게 되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리고 그럴 때면 그는 한 가지를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매일같이 그를 2년 가까이 찾아와 주는, 성실한 한 소녀에 대해서.

 

분명 그 녀석은 날 알고 있었어.’

 

그것도 그냥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숨기고 싶은 사실이나 비밀 같은 사정까지 알고 있다. 평범한 클래스메이트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분명 뭔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최근에는 애매해진 기억이 꽤 많았다. 가끔 찾아오는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담당 의사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주로 사람에 대한 기억이 자꾸 흐려져 몇 번이고 돌이켜 생각해야 겨우 기억해내는 등의 곤란한 일이 많았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도 병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아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도대체 그 여자애는 누구일까?

교실에서 본 기억도 가물가물한 것을 보면 딱히 가까이 지낸 일도 없었을 것이다. 보통 여자애들은 몇 명씩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지만, 개중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게 혼자 행동하는 아이도 있다. 그럼 유린도 그 중 하나였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건 이상하다. 혹시 그 애 쪽에서 일부러 나에게 들키지 않게 모습을 숨기고 있었을지도……그렇다면, 혹시…….

 

스토커……?”

뭐라고?”

으아악!?”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기겁한 그는 침대에서 굴러떨어질 뻔 했다. 어느새 그의 침대 옆에 태연한 모습으로 유린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 왜 그러는 거야?”

, 그그그건 내가 할 소리라고! 언제 내 옆에 와 있었던 거야? 기척도 없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정말로 이상하다는 듯 유린은 눈썹을 찡그렸다.

 

아까 확실하게 노크하고 인사한 다음 들어왔잖아. 기억 못하는 거야?”

…….”

 

그랬나.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혼란한 생각을 가까스로 다잡으며 눈을 거칠게 비볐다.

 

저기, 세휘.”

 

다소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유린이 말했다. 충혈된 탓인지 붉어진 눈동자가 말없이 그녀에게 시선을 향했다.

 

방금 들었는데……수술, 지금이라면 날짜를 잡을 수 있다고 하던데.”

 

그 말에 세휘의 얼굴에 일시에 구름이 깔렸다. 수술. 그것은 그가 줄곧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계속해서 피하고 싶은 화제 중 하나였다.

 

왜 그래?”

받고 싶지 않아.”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유린에게서 세휘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이야, 수술을 해야 나을 수 있잖아?”

……, 과연 그럴까. 의사는 장담 같은 건 해 주지 않았어. 수술을 하더라도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없는 거라고.”

 

이전에 담당의에게서 들은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반드시 나을 거라는 보장은 없는, 말하자면 5050정도의 확률을 가진 수술이라고. 불안에 사로잡힌 그에게 그것은 일종의 인체 실험을 하자는 식으로까지 왜곡되어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는 수술을 받고 싶지 않았다.

 

나으냐 마냐의 반반이라면 수술을 받든 안 받든 똑같은 거잖아. 난 싫어.”

,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됐어. 이건 내 일이라고. 너도 이제 상관하지 마.”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한 단계 높아진 다급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 상관이 없을 리가 없잖아! 그런 어린애 같은 소리,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어린애 같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세휘는 내내 담아 둔 스트레스를 폭발시키고 말았다.

 

남의 몸이라고 멋대로 말하지 마! 따지고 보면 너와는 처음부터 상관없는 일이었잖아! 2년 가까이 침대에만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기분을, 네가 알 수나 있어? 애초에, 넌 지극히 건강하고, 아프지도 않고, 지금이라도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잖아! ,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

 

갑작스럽게 마주친 병자의 히스테리에 놀라 유린이 말을 잃은 사이, 세휘는 몸을 일으켜 유린을 노려보았다.

 

어린애 같은 소리, 맞아. 그 정도는 나도 안다고. 알고 있단 말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 잠깐 세휘야. 그렇게 화 내지 말고…….”

애초에 너, 누구야?”

 

당황하는 유린을 향해 세휘는 드디어 노골적인 의구심과 함께 창 같은 시선을 향했다.

 

난 널 교실에서 본 기억 따위 없어! 만난 적도 없고! 지금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넌 틀림없이 내 기억에는 없는 녀석이라고! 도대체 누구야? , 자꾸만 나에게 참견하는 거지?”

 

병에 대한 짜증. 흐려진 기억에 대한 짜증.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문병객 소녀에 대한 짜증이 한데 모이고 모여, 그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소녀를 노려보았다.

 

혹시 일부러 나에게 접근한 거야? 뭐가 목적이지? 난 너 같은 건.”

세휘.”

 

그 순간, 갑자기 유린이 말을 뚝 자르는 바람에 그는 무심결에 말을 멈추었다.

조금 숨을 삼키고 바라보자 유린은 어느새 정색을 하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엔 긴장의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고 똑바르게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미안해. 많은 것을 말해 줄 수는 없어. 다만 한 가지만 말할게.”

, 뭐라고?”

내가 바라는 건 언제나 하나야. 너를 구하는 것. 무엇과 바꿔서라도…….”

 

풍겨오는 익숙한 향기. 코끝에 닿는 향기는 분명히 기억에는 있으나 머릿속에서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기이한 자취를 남기고 사라졌다.

 

부디 그것만 기억해 줘.”

 

작게 속삭였다.

 

그것만은 절대……절대로 거짓이 아니니까.”

 

세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검은 바다를 담은 듯한 신비한 눈동자를 똑바로 눈앞에서 바라보면서, 그는 다만 말을 잃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거칠고 성난 밤이었다.

궂은 날씨는 비바람을 동반한 폭우로 창밖의 풍경을 살벌하게 바꾸고 있었다. 세휘는 혼자 침대에 누워 밖의 어지러운 난장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근 그 아이가 오지 않는다. 아직도 수술에 대한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그에게 드디어 질린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사정이 생긴 것인지. 그는 부석부석해진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흐트러뜨렸다.

 

……, 무엇과 바꿔서라도 구하고 싶다고 하더니만. 결국 입 발린 말이었냐.”

 

이런 말은 일종의 분풀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내뱉듯 말했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고는 도무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말을 내뱉고 난 뒤에도 가슴은 전혀 시원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답답해져 갈 뿐이었다.

새카만 창밖은 불안했다.

수술도 불안했다.

모든 것이 불안했다.

아무나 좋으니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령, 그 애가 정말로 스토커였다고 해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아악!?”

 

무심결에 세휘는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창밖에서 웬 여자애가 갑자기 나타나 고개를 들이댄 것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는 무심결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열어 줘……세휘, 문 좀…….”

, 유린?”

 

그제야 그는 젖은 유리창에 찰싹 붙어 있는 것이 익숙한 여자아이의 얼굴임을 깨달았다. 깜짝 놀란 그는 우선 창문을 열었다.

 

, 뭐 하는 거야 너! 대체 어떻게…….”

. 소리 지르지 마.”

 

온통 푹 젖은 생쥐 꼴이 된 유린은, 그럼에도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반쯤 연 눈망울에서 보이는 시선은 흔들림 없이 그에게 곧바로 꽂히고 있었다.

 

……뭐 하러 온 거야. 면회시간은 벌써 끝났다고.”

 

방금 소리 지르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으므로 그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러나 소녀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작게 저을 뿐이었다. 그녀의 오른손은 왼쪽 가슴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꾹 누르고 있었고, 왼손으로는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빗속을 달려오기라도 한 듯, 창 안으로 몸을 들여놓는 그녀의 몸은 어깨며 다리며 할 것 없이 온통 젖어 있었다.

 

잠깐, ……그건?”

 

문득 세휘는 유린이 왼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에 시선을 보냈다. 한 손 안에 들어올 만한 크기의 말랑말랑해 보이는 것. 비에 맞지 않게 꼭 품고 있었던 듯, 온 몸이 다 젖을 정도로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그 물건만은 젖지 않은 것 같았다.

종이에 꼭 싸여서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는 무언가’. 둥글고, 따뜻하고, 빨간.

 

!?”

 

순간. 갑작스러운 공포에 세계가 순식간에 좁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소녀의 손 안에 들린 물건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올가미에 걸린 동물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 , 유린!?”

세휘. 내가 했던 말, 기억해?”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자그마한 그것. 새빨갛게 물든 그것은 마치 손으로 빚은 만두처럼 보였다. 새빨간 만두를 손에 든 채, 유린은 생긋 웃었다.

 

, 무슨 말이야. 그보다, 그거! 그건 설마!”

그 어떤 방법이라도. 인혈만두든 무엇이든, 너를 구할 수만 있다면 사용하겠다는 말.”

기억해? 하고 묻는 유린의 얼굴은 도자기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세휘의 얼굴 역시 이 이상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그래……고마워.”

 

무구한 미소와 함께 유린은 세휘의 손에 지금까지 자신이 들고 있던 것을 옮겼다. 미처 거부할 틈도 없이 받아들은 그것은, 틀림없이 새빨갛게 피에 물든 만두로 보였다.

아니. 그뿐이 아니었다. 그 만두는 그의 손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두근, 두근, 하는 규칙적인 움직임. 피를 찍은 만두 정도가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틀림없는 심장 그 자체였다!

 

, 병이 나을 거야. 어서 먹어.”

……어떻게 이런 걸 먹어! 이게, 이이이게 대체 뭐야!”

 

그는 전신을 덜덜 떨면서 유린을 바라보았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눈앞의 모든 것이, 그 무엇에도 비할 바 없이 무서웠다.

 

믿어 줘. 세휘.”

 

그러나 유린은 가슴을 꾹 누른 채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 어느 때라도, 나는 네가 살아남기를 바라고 있어. 부디 믿어 줬으면 해.”

………….”

 

그 말과 함께,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세휘는 전신에 엄습하던 떨림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부탁이야.”

 

공포로 새카맣게 좁아진 세계 안에서 오직 그녀의 눈동자만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타산 없이 2년이나 되는 시간을 꾸준히 그와 함께 해 주었던 소녀. 이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손에 넣어서 반드시 그를 구하고 싶다고 단언하였던 소녀. 다른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해도 그 마음만은 그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 없는 곧은 마음아니 심장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그녀의 모든 것이었던 것이다.

 

…….”

 

눈을 찌르는 빨강을, 손의 꿈틀거림을 모두 무시한 채 그는 손 안의 만두를 입으로 가져갔다. 몸을 감싸고 있던 두려움과 불안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부드럽게 부푼 만두의 표면에 가만히 입을 가져갔다.

마른 입술에 닿은 감촉은 의외로 따뜻하다고, 그는 무심결에 생각했다.

 

 

*****

 

 

아주 순조로워.”

 

유린은 의사의 말을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만사 오케이야. 2년이나 간병하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요.”

세휘는 틀림없이 나을 수 있는 거죠?”

 

의사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체 그리 병약한 몸은 아니었으니까. 수술의 경과도 좋고, 무엇보다 본인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수술에 임했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지. 네가 정말 헌신적으로 노력해 준 덕이 크다고 할 수 있어. 쌍둥이 누나라고는 하지만, 어머니들도 그렇게까지는 보통 못하지.”

……별거 아니에요.”

 

세휘와 같은 시기에 태어난 쌍둥이 누나. 문유린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 남은 문제는……정신적인 건가.”

 

의사는 차트를 몇 차례 뒤적였다.

 

병의 영향으로 2년에 걸쳐 기억력 장애가 지속적으로 관찰되어 왔지. 특히 부모형제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일수록 정도가 심하군. 그리고 환각을 동반한 섬망(&#35691;)……. 이것도 심각한걸.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아마 병의 진행 도중에 아가씨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을 텐데, 괜찮던가?”

 

의사의 말에 유린은 아무런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의사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을 이었다.

 

안심해요. 내 아가씨의 정성에 감복했으니까, 특별히 국내 최고의 정신과 의사에게 소개장을 써 주지. 보통은 년 단위로 예약이 잡혀 있는 사람이지만 이것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진료받을 수 있을 거야.”

……정말 감사합니다.”

 

유린은 공손히 소개장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섰다.

 

 

 

높은 병원 문을 잠시 바라보던 유린은 이내 돌아섰다. 모퉁이까지 걸어간 그녀는 문득 손에 들린 소개장을 양 손가락으로 잡고, 반으로 찢었다. 그리고 또 반으로. 또 반으로……오래지 않아 종이는 완전히 조각조각으로 분해되어 버렸다.

 

……괜찮아.”

 

희미하게 느껴지는 따스함을 안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그는 나를 선택해 주었으니까.”

 

3자인 의사는 모르는 사정.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

학교에서 인기가 많고 항상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남동생에게, 유린은 아주 오래 전부터 쌍둥이 누나가 아닌 소녀로서 희미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엄연히 남매. 그 마음도 결국 영영 보답 받지 못한 채 사라질 거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병을 계기로 상황은 극적으로 뒤집혔다. 그녀의 존재를 완전히 잊은 남동생은 그녀를 처음 보는 여자애로 대해 주었다. 이전엔 듣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장난을 치거나 호감을 표시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환각이 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으면서도 세휘는 결국 그녀를 믿는 쪽을 선택해 주었던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평범한 고기만두를 인혈만두로 보이게 연극을 꾸며 본 것은 물론 그녀였지만 그녀 자신도 그가 그렇게까지 쉽게 응해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그 신뢰가, 그녀는 정말 눈물이 나도록 기뻤다. 그런데 정신과 치료를 받고 다시 누나동생 사이로 돌아간다니, 이제 와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 이러면 돼.”

 

종이를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고 유린은 돌아섰다.

 

괜찮아. 내가 계속 지켜 줄게……세휘.”

 

둘이서, 언제까지나 같이 있자.

마음에 상처를 입은 동생을 생각하며, 마음에 상처를 안은 소녀는 작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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