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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괴물이고 자시고 듣기나 해 (수정판)
글쓴이: 진로신
작성일: 16-05-23 02:28 조회: 799 추천: 0 비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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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 쌓인 흰 눈을 악보지 삼아, 건반 삼아 바닥에 아로새겨지는 연주자국이 늘어간다. 밤하늘 공기를 타고 흐르는 음악은 예상치 못한 존재에 의해 멈춰졌다.
 
“누구?”
 
“눈꽃 괴물”
 
정체를 밝히는 그녀는 소년보다 머리 하나 만큼 컸다.
 
“거짓말!!”
 
“어째서?”
 
소년의 단호한 반응 때문에 그녀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괴물이라기에는 너무 예쁘잖아?”
 
“난 괴물이 맞아. 인간이 아니니까"
 
“왜?”
 
“왜라니 그야 괴물이라고 부른 건 너희잖아”
 
그녀가 과거의 기억을 훑으며 말했다.
 
“난 부른 적 없는데”
 
“너도 인간이잖아”
 
“그거랑 네가 괴물인거랑 뭔 상관인데?”
 
“난 눈꽃 괴물이다”
 
“음 그냥 눈꽃이면 어때?”
 
“난 괴물이야”
 
“왜 괴물에 집착하는데 인간 같지 않은 외모라면 엘프라던가”
 
“엘프? 그것도 괴물인가”
 
소년은 엘프에 대해 설명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자신의 앞에 있는 미녀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허리까지 살랑거리는 흰 머리카락은 정말 눈꽃이라도 되는 듯이 달빛을 아름답게 반사했다. 크고 맑은 눈, 오뚝한 콧날, 매화 같은 입술, 가녀린 얼굴선을 포함한 외모에 후광 효과를 준다.
 
“과거에 뭔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해해줄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이해받지 못해서 괴물이라고 불렸으면 내가 이해해줄게”
 
“그게 무슨?”
 
“그러니까 괴물이 아닌 내가 너를 괴물이 아니라 인정한다고 내가 증인이야”
 
“하지만”
 
“눈꽃 괴물이고 자시고 듣기나 해”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분한 얼굴에도 소년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일단 넌 예뻐”
 
“둘째 엄청 예뻐”
 
“셋째 너무 예뻐”
 
“에?!”
 
진지하게 말하는 소년의 기세에 밀려 그녀는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가지 마”
 
소년이 그녀의 손을 낚아챈다. 그 감촉은 눈처럼 부드러웠고 눈꽃처럼 시리다.
 
“거봐 이제 믿어?”
 
그녀는 소년의 표정을 보고  손을 뿌리치며 한소리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해가 풀렸으니 다행인데. 왜 오히려 더 답답한가.
 
“난 음악이 좋아”
 
그녀는 의아했다. 갑자기 왜 음악타령인가
 
“음악이란 게 별거 아니야. 그저 연주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 사람이 있으면 되는 거지. 때로는 듣는 사람이 없어도 돼. 그래서 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음악이 좋아”
 
소년의 고독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왠지 모를 동질감. 그래봤자. 태생이 다른 자신과는 엄연히 다르다.
 
“음악에는 이런 것도 있어. 한사람이 연주하면 다른 사람이 그에 맞춰 연주하고 다시 처음 사람이 연주를 하는 방식이지”
 
그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계속 듣는 것 일까
 
“그러니 내가 말하고 네가 듣는 것도 내게는 음악이야”
 
“그건 대화라고 하지 않나”
 
“아까 말했지 눈꽃 괴물이고 자시고 듣기나 해”
 
“내게도 말할 권리가 있어”
 
“답가는 내 연주가 끝난 다음에 해”
 
그녀는 따지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소년은 그녀가 말을 해도 듣지 않겠지. 그녀는 그정도는 충분히 알았다.
 
“넌 좀 고쳐야해. 눈꽃은 어울리니까 맘에 들지만 괴물이란 호칭은 버려”
 
어째서 자신이 소년의 맘에 드네 마네에 따라 자신의 호칭을 바꿔야 하는가. 그녀는 의문을 가졌다.
 
“지금 내 연주는 마음에서 울려 퍼지는 감정의 멜로디고 당연히 진심이야”
 
이상했다. 이 소년은 왜 자꾸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 인가. 아니 연주였던가.
 
“내가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해 세상에 공개하는 연주라고, 무시하면 안 돼”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눈꽃 괴물이고 자시고 듣기나 하라니까”
 
“너야 말로 자꾸 나를 눈꽃 괴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녀의 말에 소년은 말을 하려다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그럼 여신은 어때? 눈꽃 여신”
 
“너무 부담스러운 이름이다. 게다가 나 같은 건 신의 이름을 사칭하면 곤란하다”
 
“여신만큼 예쁜걸. 내가 부르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내가 뭐라고 하겠다”
 
“거참 칭찬해줘도. 좀 더 자신을 가져. 여신 아니면 결혼하고 싶을 정도의 외모라고”
 
“결혼이라니 그런 바보 같은”
 
“지금 내 연주를 무시하는 거야?”
 
소년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주먹을 쥐고 따지는 소년이 오히려 귀여워 보였다.
 
“그러니까 기억하고 있던 과거의 인간들 따위 잊어버려. 이미 죄다 죽었겠지. 그리고 날 기억해. 첫눈에 반한 남자가 있었다고 괴물이 아니라 여신이라고 불러준 사람이 있다고”
 
정말이지 막무가내다. 자신의 가슴을 그리고 그녀의 마음도 두드리며, 당당히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은 내가 진짜 인간이 아닌 걸 믿고 있는 건가”
 
“그야 당연하지. 너처럼 예쁜데 사람이겠어. 그런 사람을 내가 어떻게 만나”
 
“나란 존재보다 내 외모가 더 비현실적이란건가”
 
외모만 보고 자신을 믿어준다니, 이걸 고마워해야할지 싫어해야할지, 그녀는 구분이 안 간다.
 
“여자친구는 환상의 동물이야. 내가 엄청나게 연주를 잘하면 음악에 낚여 올지 모르지만 아직은 멀었지”
 
그 말에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이 어떤 노래 소리에 이끌려 이곳에 당도했음을
 
“그러고 보니 그 노래는 네가 부른 것인가?”
 
"노래? 아 그 멜로디"
 
“그렇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이곳을 찾아왔다”
 
“내가 작곡한 곡에 이런 미인을 부르는 효과가 있었다니. 이러다 노벨평화상이라도 타는 거 아닌지 몰라”
반응을 보아하니 그 노래는 소년이 부른 게 맞다.
 
“그거 사실 별거 아니야”
 
“자세히 설명해라”
 
“왜? 듣고 싶어? 내 연주가 듣고 싶은 거야?”
 
아까의 남자다움은 전혀 떠올릴 수 없는 악동의 미소다.
 
“듣고 싶다”
 
“그냥 내가 눈꽃을 보면서 제멋대로 부른 거야”
 
“그 말은 즉석으로 그런 곡을 만든 건가”
 
"곡이라기에는 민망하지만 아! 그럼 이렇게 하자"
 
머리를 긁적이던 팔은 물론이고 반대쪽 팔도 벌리며 웃었다. 착각이겠지만 그녀 마음이 따듯해진다고 느끼는 미소였다.
 
“이걸 내가 곡으로 만들게. 그러니까 작명을 네가 해”
 
“내가?”
 
“응”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을 보며 그녀는 곤란한 듯 입가를 어루만졌다. 그녀는 한 번도 이름을 지어준적이 없었다. 이름조차 잊어버려서 과거 사람들이 부르던 눈꽃 괴물이란 이름을 사용해왔다.
 
“눈꽃 괴물”
 
“겨우 그거야?”
 
“어차피 소년이 말한 대로 인간이 아닌 외모니 괴물이라고 해도 되겠지”
 
“내가 예쁘다고 할 때는 아니라더니 자기가 여신이라고 하네”
 
“여신이라 한적 없다”
 
“뭐 됐어. 천천히 고민해봐“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서서히 벌어지는 입술에서 잘게 떨리는 목소리가 나온다.
 
“불가능해. 난 이제 곧 사라지니까”
 
“어째서?”
 
“눈꽃은 봄이 되면 녹아버리니까”
 
“그럼 다음 겨울에 와”
 
그런 발상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놀랐다. 언제나 인간들을 자신을 무서워하고 도망치고 벗어나려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되는 모양이네. 그럼 이제 끝이야”
 
“끝이라니?”
 
도대체 뭐가 끝인가. 그녀는 다급해졌다. 이대로 소년과 헤어지게 되는 건가. 그래서 내년까지 소년을 못 만나는 건 아니가. 정말 다음에 만날 수 있는 건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닌가. 온갖 생각이 머리를 괴롭혔다.
 
“뭘 고민하고 있어. 답가 들려줘야지”
 
“답가?”
 
“내가 말했잖아. 답가는 내연주가 끝나면 하라고”
 
그러고 보니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답가라고 해도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답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냥 내가 준 느낌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
 
내가 받은 느낌? 그녀는 자신이 소년을 만나고서 부터 느낀 감정을 돌이켜 보았다. 따듯하다. 봄에 꽃은 이런 마음으로 피어나는구
나. 녹아가는 자신을 느끼며 주위를 돌아본다. 나무에 피어난 눈꽃들. 꽃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진짜는 아니다. 태생이 다르다.
 
“답가는 무리야”
 
“뭔 소리야”
 
“너에게 받은 것으로 인해 난 녹아가니까”
 
“나 때문 인거야?”
 
소년의 촉촉해지는 눈가를 보며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너 덕분인거야”
 
인간과 그녀의 태생이 다르듯 꽃과도 다르다. 그녀가 눈꽃 괴물인 이유. 얼어서 만들어지는 눈꽃처럼. 그녀 역시 사람들의 냉대 속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이런 따스한 마음은 눈꽃괴물에게 해롭다.
 
“하지만 아직. 답가도 아직 안 해줬어. 작명도 아직 안 말했고. 내 곡도 아직 완성 안했어”
 
소년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흘렀다. 소년의 진심이, 감정의 멜로디가 내 마음에서 울려 퍼졌다. 선율은 착실하게 나를 녹여간다. 그녀는 위험한 연주를 떠올렸다. 서로를 상처 입히는 눈꽃괴물의 소야곡.
 
“답가해줄게”
 
그녀는 소년의 얼굴을 붙잡았다. 정확히는 뺨을 피아니스트가 부러워 할 만큼 가늘고, 여자들이 부러워 할 만큼 흰 손가락으로 붙잡았다. 소년이 움직이지 못하는 건 너무나 차가워서일까 아니면... 사실 그런 건 사소한 의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음악이다. 자신이 오직 그 하나만을 위해 세상에 공개하는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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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울었다.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쏟아진 눈물이 바닥에 있는 눈을 녹여간다. 그리고 천연의 거울에 소년의 모습이 비친다. 소년의 두 뺨에는 유독 더 빨간 부분이 있었다. 그 빨간 부분은 손자국처럼 보였다. 그녀의 연주가 너무나 뜨거웠기에 그렇게 자국이 남았다.
 
“너무해”
 
소년의 입에서 찬 공기가 흘러나온다. 이럴 거면 묻지 말걸. 답가 들으려 하지 말걸. 거듭되는 후회만큼이나 쌓여가는 울분. 소년은 자신이 여러 번 했던 말을 떠올렸다.
 
‘눈꽃 괴물이고 자시고 듣기나 해’
 
 아마 소년이 평생 한 말 중에 가장 현명한 말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듣기만 했어야 했다. 내가 들으려 해서는 안 되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연주하기 위해서였지 내가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욕심이었다. 눈꽃이 너무 예뻐서.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걸 알면서 무심코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눈꽃은 녹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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