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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원숭이를 추억하며.
글쓴이: vivi
작성일: 16-01-03 00:49 조회: 678 추천: 1 비추천: 0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붉은 원숭이' 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언제라도, 언제까지라도. 그가 붉고, 또 원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붉은 원숭이다. 언제까지라도. , 그러면 이야기를 시작하자.
 
내가 그를 만난 건 중학교 2학년 겨울의 일이다. 그는 전학생이었고, 나는 도서위원이었다. 이 둘 사이에 무슨 접점이 있는가 하면, 그가 틈만 나면 도서실에 드나들던 학생이라는데에 있다. 전학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던 그는 자주 책을 빌리러 도서실에 드나들었는데, 나는 아무 감정도 깨달음도 없이 그의 책 바코드를 찍곤 했다. 그가 책을 빌리러 왔던 한 달동안 그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했으니, 나는 정말로 아무런 감정도 없었던 것이리라. 정말 그랬다. 나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그도 나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내가 아니라도 주변에 사람들은 많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던 그가 기댈만한 적당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야기하지 않았고, 서로 아는 사이도 되지 못했다. 뻔한 일이었다. 조용한 도서위원인 나와 활달한 전학생인 그. 나는 조용한 성격의 도서위원이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서툴렀던 탓인지- 항상 쌀쌀맞게 굴었고, 딱히 눈에 띄는 타입의 인간도 아니었던 것이다. 한 두명의 친구를 가지고 있고, 조용한, 눈에 띄지 않는 나. 그런 내가 태생적으로 튀는 인간인 그와 친해지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의 관한 설명을 하겠다. 미리 말해두는 편이 혼란을 가중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그의 이름은 'A' . 외자로 써서 A. 흔한 이름은 아니다. 그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특이한 이름이다. 그리고 예쁜 이름이다. 또 그의 관한 설명을 하자면, 그는 그 이름만큼이나 눈에 띄는 학생이었는데, 우선 그 단정한 외모가 그랬다. 그는 꽤나 단정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 외모를 보려고 일부러 반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어차피 반 장난이었겠지만, 그는 그만큼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또 그는 외로움을 잘 탔다. 친하지 않았던 나에게도 보일 만큼 사람을 좋아했는데, 그의 외모나 특이한 성격 탓인지, 사람들도 그에게 몰려들곤 했다. 그리고 그의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가 붉은 머리였다는 것, 정말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한 새빨간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타고난 머리라고 했다. 아마 그 새빨간 머리카락도 그의 별명을 붉은 원숭이로 만드는 데 한 몫 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봄의 일이다. 우리는 놀이공원으로 가는 현장 체험 학습에 들떠 있었다. 그 날 아침 일찍부터 버스로 달려 정오 쯤 놀이공원에 도착했다. 도착한 놀이공원 입구에서, 평소처럼 그는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었고, 나는 그 바깥쪽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모두가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던 그 때, 어딘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비명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한 여자가 새파랗게 질린 채 나무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무 위에는 마찬가지로 겁에 질린 아이가 있었다. 어떻게 올라간 건지, 아이는 꽤 높은 곳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망연히 아래만 내려다보았다.
 
뚜둑. 다음 순간, 나뭇가지에서는 균열의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는 더욱 크게 소리질렀고, 아이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 때 였다. 그가 날아오른 것은.
 
 그는 나무 위로 날듯 기어올라 아이를 붙잡았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이를 달랬고, 여자는 울듯 웃듯 그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부른 119가 온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A, 원숭이 같네!"
 
아이를 병원으로 보낸 후 돌아온 그에게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한 말이었다. 그 뒤로 그의 별명은 붉은 원숭이가 되었다. 그는 그 별명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을 한 친구의 뒷통수를 갈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그는 두고두고 붉은 원숭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고는 했다.
 
, 이제 붉은 원숭이라는 별명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마쳤다. 나는 이제 3학년 여름에 그의 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여름의 그는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히 해 보자면, 아주 외로워 했던 것 같다. 3학년의 여름. 그가 가장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붉은 원숭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친구였다. 물론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니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일이었다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괴로워 하는 것 같았다. 반에서 단체로 갔던 장례식에서, 미친듯이 오열하는 그를 보았으니까. 장례식 이후로도 그는 며칠씩이나 학교에 오지 않았다.
 
가장 가까이 지내던 사람을 잃었다. 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단지 그는 괴롭고, 또 외로워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못견뎌 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 이제 어떤 사건에 관하여 말하겠다. 우리가 중학교 3학년 겨울에 일어난 일이다. 이건 아주 중요하다. 그의 마지막을 담은 기록이니까. 그리고 나 는 평생 이런 이야기를 또 쓰지 못할 것이다. 내 평생에 한 번밖에 쓰지 못할 이야기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줬으면 한다. 부디 잘 듣길 바란다.
 
장례식이 있은 후 몇 달, 가을 쯤이 되자 그는 다시 쾌활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친구들과 어울렸고, 다시 웃기 시작했다. 몇 달동안 마음을 정리한 듯 싶었다. 애시당초 그는 그런 불행이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다. 언젠가는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었을 터다. 어쨌든, 그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할 거라고는.
 
3학년의 겨울, 눈이 펑펑 오던 어느 날. 그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화한 날.
 
7교시는 수학 시간이었다. 매달 바꾸던 자리, 그 달은 우연찮게도 그의 옆 자리에 앉게 되었고, 그 날의 교실은 따스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따스해서, 따스함에 목이 졸려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는 머플러를 한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겠지만, 그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인지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머플러, 안 더워?"
 
정적이 흘렀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말을 걸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머플러?"
", 머플러."
"괜찮아."
 
그리고, 정적.
 
그대로 대화가 끝나 버릴 줄 알았다. 더 할 말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정적을 깨고 말을 걸어 왔다.
 
"B."
"?"
 
그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이때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양된 기분으로 말을 받았다.
 
"오늘, 며칠이야?"
"1225,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
 
가만히 생각해보면,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던 그에게 그런 날은 버겨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창문을 열고 창틀 위로 손을 뻗었다.
 
"B."
 
"고마워."
 
대체 뭐가 고맙다는 말이었을까. 다음 순간, 그는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비명과 외침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던 그 교실에서, 나는 몇 번이고 생각했다. 대체, 뭐가 고맙다는 거였어, A?
 
아수라장 사이로 붉은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니, 붉은 원숭이는 결국 살아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그의 장례식을 한다고 했다. 나는 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때의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었으면서도 그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모두는 괜찮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괜찮은 것 같지가 않았다. 언제까지라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장례식으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학교에 나갔다. 힘든 결정이었다. 내 눈은 아직도 그 때의 죽어가던 그를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랫만에 나간 학교에서, 그의 흔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그가 죽었어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나는 미친듯한 허무함을 느꼈다.
 
* * *
 
생각해보면 중학교 3학년의 봄. 나는 그 때의 그를 동경했다. 날듯이 나무를 기어올라 아이를 구하던 붉은 원숭이. 지나치게 눈부신 광경. 그 때부터 쭉 그를 봐왔다. 한 번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더 날아올라주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그 때의 그가 자유로워 보였으므로. 결국, 붉은 원숭이는 날아올랐다. 다시 한 번.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와선 아무 소용 없는 말들일 뿐이지만. 그 후로부터 2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그를 거의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순간순간 내가 그를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잊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 그런 법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아주 슬프게 느껴졌다.
 
붉은 원숭이는 이제 우리들 곁에서 사라졌지만, 이미 떠나가 버린 그가, 부디 그곳에선 편히 쉬길 바란다.
 
외로움을 잘 타던 붉은 원숭이를 추억하며, 20161225.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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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기념으로 붉은 원숭이를 주제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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