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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성당.
글쓴이: Acheroraptor
작성일: 15-12-01 01:03 조회: 615 추천: 0 비추천: 0

나는 벽을 가득 채운 담쟁이들을 잡아 뜯었다. 바짝 마른 줄기를 잡아당기자 벽돌가루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문을 닫은 지 5년이 지난 이 성당은, 내가 유일하게 산책을 하기 위해 들리는 곳이었다. 얼마 안 있어 건물도 철거할 테지만 이곳이 흉물처럼 보이는 것은 정말 내키지 않았다.

쭉 그랬다. 쓰던 글이 막히거나 같은 문예부 부원들이 얼마 남지 않은 대회 때문에 힘들어 할 때, 나는 언제나 이 성당에서 마음을 달랬다. 태어날 때부터 신은 한 번도 믿어본 적 없지만, 이상하게도 달빛이 환히 들어오는 반쯤 무너진 지붕 아래 있으면 머릿속에 청량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무 바닥이 썩기 시작하고 십자가가 빛바랜 지금은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결말까지 가지 못한 원고와 달력에 빼곡하게 쓰인 X, 각본에 대해 걱정하는 1학년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릴 뿐이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천장은 반이 약간 못 되게 남아있었고 바닥엔 풀이 무성했다. 오른쪽 구석에 있는 고해실은 정말 말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다. 문에 달린 장식부터 경첩까지 녹이 안 슬은 곳이 없어 어떻게 지금까지 형상이 남아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온몸에 힘이 풀리며 나른함이 느껴졌다.

어릴 때는 숨바꼭질하다 곤란해지면 이곳에 숨고 문을 잠그곤 했는데, 몇 번은 의자에 앉은 채 잠들었다가 들켜서 된통 혼나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다. 이 삐걱대는 의자에 등을 기대자 떠다니던 원고가 희미해지며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에 조금도 저항하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고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눈으로 보면 달라진 게 없었지만, 고해실 바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구멍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비추는 긴 의자 위에 하얀 셔츠에 치마를 입은, 내 나이 또래 정도의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십자가를 보며 계속 들어주세요, 들어주세요, 하는 말을 반복했다. 머리카락이 검고 긴 데다 특히 환한 곳에 있어서 피부는 마치 순백색처럼 보였다. 조금은 경건한 느낌마저 주는 그 여자가 바로 우리 동아리의 후배라는 것을 눈치채자, 나는 나도 모르게 의자를 차며 신음을 흘렸다.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두 눈이 내 쪽으로 휙 돌았다. 그녀는 일어서서 천천히 고해실 쪽으로 걸어왔다.

신부님?”

그녀는 약간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낡은 곳에 어떻게······ 신부님이신가요?”

“······.”

나는 말을 꺼내자마자 손에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제길, 뭐라고 말했어도 신부라고 하는 것보단 나을 것을! 당장 뛰쳐나가서 실은 너희 부장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미 벽 하나만 둔 채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가 무슨 기도를 저렇게 간절하게 하는지가 그렇게 알고 싶었나? 대답을 생각하던 중에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성당엔 한 번도 와본 적 없지만······ 고해성사에서 털어놓은 말은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들키지 않게 목소리를 한결 낮춰서 말했다. 그녀는 다행이다, 라고 말하며 주먹을 꼭 쥔 손에 힘을 풀었다. 틀렸다. 이제 고해가 끝날 때까지 빠져나갈 길도, 해명할 방법도 스스로에게 한 질문에 해답도 할 수 없다. 벽 너머의 상황을 알 리 없는 그녀는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겠지만······ 낮에는 학교 다니면서 글을 쓰고, 저녁 이후엔 카페랑 편의점에서 일을 해요. 가족은 네 살 어린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절 무척이나 따르지만 늘 새벽에 돌아오니까 거의 챙겨주질 못해요, 그래서 그 애는 자다가도 제가 올 때에 알람을 맞춰서 깨어나곤 하는데······ , 죄송해요. 말이 길어졌네요. 그래서 그저께도 오자마자 남동생의 방에 제일 먼저 들어갔는데, 이상하게도 집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동생 얼굴은 온통 멍투성이였어요. 처음엔 친구랑 싸우기라도 했나 싶었어요. 그래서 상처를 봐주려고 했는데, 머리에 담뱃재가 약간 묻어 있는 게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머리에 난 긴 상처를 보면서 확신했어요. 이건 분명 아빠한테 당한 상처라고.”

그녀는 말을 멈추고 검지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원래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벽 너머를 조금도 볼 수 없었지만, 눈앞에 그녀의 표정이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지치고 불안하지만 묘하게 후련한 기색이 있고, 쉼 없이 왼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이.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사실 지금까지 그녀가 한 말이 특별한 것은 아니고, 어쩌면 고해실의 신부는 흔히 듣는 것일지도 모르리라.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상상하고,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는 동안 잡생각은 점점 줄어들었고 손은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친한 부원을 속여서, 결코 하고 싶지 않던 말을 스스로 털어놓게 만드는 것에 대한 자괴감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나는 불안한 기분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저기, 혹시 제가 뭔가 잘못한 건가요? 그렇다면 역시 그만두는 게······.”

아니······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약간 잦아들었다.

, 그리고 저는 남동생을 빼면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분명 아빠는 술을 마시러 나간 것이겠죠. 며칠에 한 번은 술집에서 밤을 새거든요. 방법은 딱히 생각나지 않았지만, 저는 동생을 위해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뭔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아빠는 반 토막 난 술병을 들고 우리 방으로 걸어왔어요. 오자마자 고함을 치면서 동생한테 달려드는데도 저는 당황해서 막지 못하고 나동그라졌죠. 그 다음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의 얼굴에는 술병의 깨진 곳에 긁힌 상처가 몇 개고 생겼어요. 아빠는 어째선지 만취했는데도 아직 상처가 남은 부분만 골라서 집요하게 고통을 주더군요. 그래서 저도 더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급한 대로 방 안에 있는 도자기를 들어서 아빠 머리에 내려쳤는데, 뭐라고 비명을 지르더니 동생의 몸 위로 푹 고꾸라졌어요. 실은 그때부터 움직이지 않았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당황해서 두어 번 더 내려쳤어요. 아마 피가 나오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냐면······ , 죄송해요. 더 말할 마음이 들지 않아요.”

이해합니다.”

나는 대답하고 나서 그녀가 한 말을 다시 머릿속으로 곱씹었다. 펜과 종이가 없어서 그녀의 말을 받아 적을 수 없기에 나는 손을 쉼 없이 움직이며 단어 하나하나를 기억하려 애썼다. 침묵이 이어졌지만 나는 좀처럼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여전히 그녀의 말을 듣고 싶었지만 미안함과 공포가 더욱 커져갔다. 눈을 감자 묘한 불신을 담은 눈으로 고해실 벽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러면 안 돼, 너는 신부도 아니고 그녀의 말을 들을 권리도 없다고. 나는 그 말을 머릿속에서 치울 수가 없었다.

그럼, 지금은 어떤 기분이 들지요?”

모르겠어요. 이렇게 입 밖에 내는 것도 여기가 처음이에요. 일단은, 아직 현실감이 별로 없어서인지, 지금 슬프단 생각이나 죄책감이 들진 않아요. 다만 동생이 걱정이에요. 그렇게 심하게 맞고 시체에 깔리기까지 했는데······. 신부님, 아직 그럴 만큼 정신이 없진 않지만 지금 마음 같아선 이 문을 열고 신부님한테 매달려서 죄를 사해 달라고 빌고 싶어요. , 그런다고 죄에 따르는 벌까지 없어지진 않는다고 하던가요?”

그녀는 손을 들어 올리며 맑은 목소리로 웃었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따라하면서 비로소 손을 멈추고 가슴을 진정시켰다.


방금까지 그녀의 말을 외워두려던 시도는 전부 쓸모없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오늘 한 대화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여전히 뭐라도 쓰고 싶었지만 더는 고해를 듣고 싶지도, 그녀의 표정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벌이라니, 저는 제가 죄를 사할 자격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힘없이 열린 입에서 자조 섞인 독백이 새어나왔다. 그녀가 네? 하고 조그맣게 반문하자, 나는 더 이상 신부처럼 목소리를 낮추는 것도 포기하고 말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글쎄요. 일단 집에 들어가서 동생부터 재우고,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신부······ 교회에 찾아왔을 때부터 거의 열한 시가 다 됐으니까요. 이상한 생각일까요?”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이상하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다. 나는 실로 방금 한 대답이 만족스러웠다.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요. 자기 전엔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이불로 배를 잘 덮길 권하겠습니다.”

그녀는 내 말에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보다 조금 더 크고 명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실례했다는 말과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지금은 자정이 한참 넘었으리라. 고해실 문을 열고 텅 빈 교회를 빠져나가면서, 나는 그녀와 그녀의 남동생의 집이 여기서 멀지 않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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