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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冬時)에 동시(童詩)를 쓰다.
글쓴이: 갯럭시
작성일: 15-11-12 18:58 조회: 749 추천: 0 비추천: 0
 
학교 다녀왔습니다.”
 
나는 차가운 공기를 내뿜고는 집 안에 있던 따스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아직 겨울은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춥다니, 우리나라의 사계절 중
봄과 가을이 곧 없어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신발을 벗으려고 하니 발에 무언가가 채였다.
굽이 닳을 대로 닳아서 그것이 본디 높은 굽을 가지고 있던 구두라고 의심이 되는
낡고 빛바랜 구두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구두를 집어 나란히 정리 해두고 집안에 들어선다.
집안에서는 누구에게는 낯설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종이의 냄새와 잉크의 냄새, 두 가지가 어우러진 창작의 향기.
 
, 돌아왔니?”
 
낮은 책상에 등받이 의자에 앉아있던 엄마는 살짝 뒤돌아보고 누군지 확인하고
이내 뒤돌아 버렸다.
 
엄마, 좀 신발장 정리 좀 해. 남들이 보면 뭐라 하겠어.”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한다.
엄마는 나의 잔소리에 알겠다는 듯이 펜을 든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런 엄마의 행동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방 안에 들어서서 책가방을 내려놓는다.
책가방의 무게가 사라지자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외투부터 차례차례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는다. 보통 남자아이들은 정리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아니, 남자아이들이라고 하면 차별적일지도 모른다. 여자아이들도 방 정리는 싫어하는 편이니까. 그래서 보통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 정리를 하기 일쑤지만 나는 엄마가 청소를 잘 하지 않으니 언제부턴가 스스로 나서서 직접 청소를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들인 정리의 버릇이 꼬마 주부라고 동생에게까지 별명을 받게 되었다.
 
교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거실에 나섰다.
거실 한 가운데에서는 엄마가 펜을 잡고 열심히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었다.
언제나 책상 앞에서 앉아 굽어진 허리로 잉크를 종이에 흘리며 글을 쓰는 저 등이.
현철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배경이었다.
 
엄마, 저녁은 뭐 먹을래?”
 
저번에 먹다 남은 장조림이랑 나물 있잖아, 김치도 있고. 삼찬이면 정성이지.
, 맞다. 내가 밥통 취사버튼 눌렀었나?“
 
엄마의 말에 나는 밥통으로 다가간다. 아니나 다를까 퉁퉁 물에 불린 쌀이 그대로 밥통 안에 담겨있었다.
 
안 눌렀어, 어차피 40분 정도면 밥은 다 되니까.”
 
나는 취사버튼을 누르고는 거실에 널브러진 잡동사니들을 줍기 시작했다.
휘어진 펜촉, 찢어진 원고지, 꾸겨진 원고지, 잉크로 범벅이 되어있는 원고지.
태반이 엄마의 작품 활동에서 나오는 쓰레기이다.
엄마는 동화작가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동물이 말을 하고 사람이 모두 착해서 못된 짓을 하면 벌을 받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 같이 친구가 되는 이야기.
오직 아이이기에만 믿을 수 있는 이야기.
 
. 오늘 현수는 동아리 대회 준비 때문에 늦는데.”
 
겨울인데 대회가 있어?”
 
시 대회라는 거 같아. 동계 올림픽이라도 하려나 보지
 
현수는 내 동생의 이름이다.
어릴 때부터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아했다.
그렇기에 잦은 상처가 몸에서 지워질 날이 없었다.
인대가 늘어나 본 것은 물론 뼈까지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뛰노는 것을 보면 무엇이 그렇게 즐겁나 싶기도 하다.
현수는 축구부에 들어가 있다. 주력으로 뽑히는 선수라는 것 같다.
앞날이 창창하고 재능이 있다고 코치 선생님이 말했다며 자랑했었다.
그 뒤로 자신의 포지션이 어떻고 개인기가 어떻다는 둥 말을 해왔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에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밥 다 되면 나올게.”
 
.”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요즘 들어 많은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왔다.
3, 수험생을 앞둔 늦가을.
나는 무언가를 사색하는 것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현실도피라던가, 공부하는 것이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물론, 그런 부분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가방과 책장에 가득 찬 교과서와 문제집들을 보면 진저리가 났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 한 구석이 비어서 무언가 채워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연애, 청춘, 우정.
영화나 만화, 소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이용해
이 마음의 구멍을 막아야만 할 것 같았다.
 
2병이다. 오글거린다.
이런 말도 당연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때론 자신을 돌아보는 감정에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다.
하루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감성이란 것은 죽어버린 것일까.
별이 보고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엄마, 이따가 밤에 별 좀 보고 올게.”
 
웬 별?”
 
작가의 아들이다 보니까 가끔 감성적이게 될 때가 있어서 말이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맘껏 풋풋한 10대의 감성을 풍기고 와야지.”
 
엄마는 웃으며 원고지를 써내려간다.
엄마의 손은 잉크가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내가 편하게 컴퓨터로 치면 되지 않으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자 엄마는 손으로 적은 글이야 말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글이라고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는 왜 동화작가가 됐어?”
 
그 말에 엄마는 드물게 글을 써내려가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는 펜을 잉크통에 넣어버렸다.
 
너는 왜라고 생각해?”
 
엄마는 도리어 내게 물었다.
 
엄마가 아이를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야?”
 
엄마는 유난히 어린아이를 귀여워했다.
동물도 좋아한다.
새끼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렇기에 동화를 쓰는 게 아닐까.
 
현철아, 너는 무언가를 써본 적이 있니?”
 
엄마는 물었다.
 
학교 수행평가라면 질리도록 써봤는데?”
 
그런 것 말고. 직접 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듯이.”
 
그런 것 있던 적이 없다.
내가 조용히 생각하고 있자 엄마는 내게 원고지 한 부를 내밀었다.
 
네가 원하는 걸 써봐, 직접 네 손으로. 시든, 수필이든, 소설이든 무엇이든.”
 
그 때 타이밍 좋게 밥솥이 밥이 완료되었다는 소리를 내었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밥을 먹자고 했다.
삼찬이 정성이라고는 듣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어제 먹은 반찬은 어저께도 먹었던 거였다고 생각해보니.
너무 똑같은 반찬만 먹으면 영양 면에서 좀 그렇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고 나서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별을 보기 위해서였다.
손에는 볼펜 한 자루와, 엄마가 준 원고지 한 부를 들고.
 
우리 동네에는 별이 보기 좋은 뒷산이 있었다.
알 사람만 안다는 동네의 명물이다.
우리 동네는 그렇게 수도권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골도 아니다.
밤 불빛이 그렇게 밝지는 않아 별이 잘 보인다.
 
익숙한 뒷산을 오르며 하늘을 보았다.
별이 아름답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과학시간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별은 우리 지구로부터 몇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별은 이미 부서져서 없어졌을 지도 모른다고
항상 과거의 하늘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보낸 과거는 저 별들 사이에 있을 지도 모를까.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저 과거의 별 속으로 간다면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걸까?
인류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하며 걷고 걸어
그리고 뒷산의 끝에 다다랐을 때.
아무것도 없어야할 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이 곳을 아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밤중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아무리 낮고 익숙한 곳이더라고 해도 산은 산이니까.
뒷모습을 보니 여자아이였다.
긴 머리칼이 꽤 눈에 띄었다. 많이 길었다.
얼마만큼이나 오래 기른 것일까?
나이는 나랑 비슷한 또래 같았다.
왜 저 여자아이는 이 곳에 온 걸까?
나처럼 별을 보러 온 걸까?
 
타박, 타박.
 
풀을 밟는 내 발소리.
고요한 밤 하늘아래, 그 소리는 너무나도 컸던 걸까?
여태까지 등을 돌린 채 서 있던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 소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작게 빛나는 것이 보였다.
소박한 빛, 곧 꺼져버릴 것 같은 작은 별빛.
 
소녀는 울고 있었다.
정말 의외의 상황에 나는 당황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소녀는 당황하지도 않고 잘 되었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 나랑 이야기 좀 해.”
 
나는 그 말에 자연스레 소녀에게 다가갔다.
한 발자국 씩 다가갈 때마다 소녀의 얼굴이 제대로 보여 왔다.
울어서 퉁퉁 부운 눈에, 추워서 발갛게 달아오른 볼.
처음으로 보는 여자아이의 우는 모습에, 나는 왠지 모를 신비함까지 느끼고 있었다.
 
, 작가야?”
 
날카로운 목소리, 아까까지 울고 있었던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그런데 왜 원고지를 들고 있어?”
 
우리 엄마가 주셨어.”
 
소녀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마도 나도 옆에 앉으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 옆에 가서 앉았다.
 
그럼 네 엄마는 작가야?”
 
소녀가 나를 보지 않고 묻는다.
보이는 것은 언덕의 앞에 비추어지는 우리 마을의 풍경.
밤이지만 아직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빛으로 밝게 빛났다.
저 아름다움 속에 땀과 눈물과 고생이 깃들어 있다는 걸
소녀도 알까?
 
우리 엄마는 동화작가야.”
 
대표작은?”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눈사람
 
, 그 책?”
 
아는 거야?”
 
아니, 몰라. 제목이 재미있어서.”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여자였다.
이 소녀는 왜 울고 있었을까?
사랑에 괴로워서? 짝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아니면 뼈아픈 이별을 경험해서?
아니, 성적 때문일 수도 있다.
성적 때문에 속상해서 우는 여자아이들은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이 소녀의 당돌함으로 볼 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무엇이 이 당돌한 눈을 가진 소녀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 걸까.
 
네 어머니가 부럽다.”
 
소녀가 말했다.
 
어째서?”
내 꿈도 작가거든.”
 
동화?”
 
아니, 소설.”
 
소녀는 야경에서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본다.
나도 그녀와 같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별들, 크고 작은 빛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빛도, 사실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고
손가락으로 가리면 보이지 않는 별들도 실제로는 엄청나게 거대하다.
게다가 가까워지면 우리 몸은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연소되어 소멸되어버린다.
가까이 있다면 아름답다는 것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더 클 것이다.
 
너 별이라는 소설 알아?”
 
소녀가 물었다.
 
양치기와 귀족 소녀의 사랑이야기 아니야?”
 
소녀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작가의 아들이라고, 책은 읽는 구나?”
 
엄마가 어릴 적부터 책을 잔뜩 사왔으니까, 일종의 세뇌 교육이 아닐까?”
 
어머니한테 감사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덕분에 너는 나랑 이렇게 이야기가 통하니까.”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소설을 읽고 작가가 되고 싶었어. 무얼까 책을 읽었고 글씨를 읽었을 뿐인데
머릿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별을 보는 모습이 상상되고
마음이 따스해져 오는 거야. 그래, 나도 이렇게 글을 쓰자,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글을 쓰는 거야. 그래서 나는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 했어
 
나는 내 손에 들린 원고지를 바라보았다.
좁은 칸 안에 글자를 채워나가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보다 아름답고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
조금은 동경하게 되었다.
엄마가 그 굽은 등으로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적고 있었던 것일까.
 
저기, 네가 말한 그 동화는 무슨 내용이야?”
 
소녀가 물었다.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눈사람?”
 
 
그 동화는 엄마가 처음으로 내게 자랑하면서 생일 선물로 선물해주었던 동화책이다.
물론, 그 책으로 작가 데뷔를 한 것이 아니었다.
책으로 따진다면 아마도 열 몇 번째의 책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자신의 동화책 중 단 하나의 동화책도 나에게 자랑하며 주지 않던 엄마가
나에게 유일하게 한 번 주었던 동화책.
그 동화책은 아직도 내 책장에 낡은 채로 꽂혀있을 것이다.
 
한 아이가 겨울에 눈사람을 만들어. 정성스럽게 마음을 담아서.
나뭇가지로 팔도 만들어주고 돌멩이로 눈을 만들고 집에 있던 몽당연필로 코를 만들어주고
아직 남아있는 낙엽으로 입도 만들어줘. 그리고 춥지 않게 자기가 매고 있던 목도리를
대신 매줘. 그리고 겨울 내내 그 눈사람이랑 이야기를 해, 자신이 오늘 했던 일
슬펐던 일, 즐거웠던 일. 하지만 겨울은 언제나 영원하지 않아.
시간이 가고 봄이 다가오면서 눈사람은 점점 작아져.
그리고 아이는 눈사람이 녹는 것이 우는 걸로 보이는 거야.
그래서 아이는 수건을 가져다가 눈사람을 계속 닦아줘
 
순수하구나.”
 
소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어느 날, 눈사람은 결국 녹아서 사라지고 말아.
아이는 슬퍼서 울어, 눈사람은 친구였으니까.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곁에 있어주었으니까.
그래서 아이는 왜 눈사람이 자기를 떠나간 건지 곰곰이 생각하는 거야.
그냥 녹아 없어졌을 뿐인데
 
소녀는 계속해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러다가 아이는 자기가 눈사람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해.
자신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가버렸다고.
그래서 아이는 편지를 써. 눈사람에게 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담아서 편지를 쓰고
그걸 우체통에 넣어
 
그렇다고 해서 눈사람이 돌아오지 않을 텐데.
우체통에 넣는다고 해서 그 편지가 눈사람에게 닿지도 않을 텐데.
 
그 날 밤에 꿈에 눈사람이 나와서, 아이에게 말해. 나에게 이름을 붙여주어서 고맙다고.
다음에 겨울이 온다면 다시 날 만들어 달라고. 아이는 그 눈사람과 약속해.
그래서 아이는 다음 해 겨울 눈사람을 다시 만들어서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동화는 끝나
 
동화답다면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
그 동화로 엄마는 내게 무얼 말하고 싶었을까?
 
나는 말이야. 한 소녀와 한 소년이 사랑이야기를 쓰고 있었어.”
 
소녀가 내 이야기를 듣자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녀는 색맹이야,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이 흑백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그래서 소녀는 음악을 하기 시작했어. 소녀에게는 흑백으로도 알 수 있는
악보와 피아노 건반에 이끌렸던 거야. 그런 소녀의 곡을 들은 소년은 소녀에게
호기심이 생겨. 그 소년은 어릴 때 피아니스트의 꿈을 꾸었지만 현실 때문에
도망쳐 온 아이야. 소년은 소녀에게 점점 다가가, 소녀의 곡을 듣고 싶어서.
그 소녀의 곡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자신이 현실 때문에 도망친 걸
후회되게 만들어 소년은 몇 년 동안 치지 않은 피아노를 두드리게 돼.
소년은 모든 색을 볼 수 있어. 하지만 소녀는 볼 수 없어.
어떻게 해서든 그 둘은 마찰이 생기고 말아.
소년은 소녀를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나도 슬펐어.
자신은 이미 색을 알고 있고 소녀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기에
소녀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슬펐어.“
 
아련한 이야기다.
이 소녀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이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어.
소년의 마음이 어떻게 해야만 소녀에게 닿는 건지. 어떠한 일도 해줄 수 없는
무기력한 소년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하는지. 너무 슬펐어.“
 
그래서, 울었던 거야?”
 
소녀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내게 물어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소년의 마음이 어떻게 해야 소녀에게 닿는 다고 생각해?”
 
나는 소녀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했다.
자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소녀의 마음에 닿는 법.
소녀에게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소년의 말은 소녀에게는 어쩔 수 없이 비꼬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상처를 줄 수 있다. 소년은 소녀에게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나는 오늘 엄마에게 왜 엄마는 동화 작가가 되었냐고 물어봤거든,
그런데 아무 말 없이 원고지를 주면서 나에게 진심을 담아서 글을 써보라고 했어
 
나는 펜을 집어 들었다, 원고지도 한 손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멍하니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소녀에게 물었다.
 
저기, 너는 그 소설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야?”
 
?”
 
어떠한 글이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작가의 생각이 있기 마련이야.
아무런 생각도 없이 쓴 글이 독자에게 전해질 리가 없으니까
 
내 말에 소녀는 침묵했다.
설마 아무생각 없이 글을 썼던 걸까?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었어.”
 
소녀의 표정은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아마도 소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소설을 쓰는 것을 싫어했겠지.
벌이도 확실치 않고 무명이면 수입조차 없는
설사 성공한다하더라도 크나큰 돈은 벌지 못하는
가시밭길 같은 작가의 길에 어떤 부모님이 맘 편하게 자식을 보낼 수 있을까.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해, 진정으로 책을 보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작가가 얼마나 훌륭한 직업인지 모른다니까
 
소녀는 투덜거렸다.
 
그렇다면 네 소설과 같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시켜야 하잖아?”
 
소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을 지적 받았기 때문일까?
그리고 당분간 아무 말이 없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키며 말했다.
 
실제로도 말하지 못한 것은, 마음을 담은 글에도 담을 수 없다는 것인가.”
 
소녀는 중얼거렸다.
 
도움이 됐을까?”
 
나는 소녀에게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에 은근히 흙먼지가 많이 묻어있었다.
나는 바지를 털어냈다.
 
많이 도움 됐어. 고마워.”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에 나는 조금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전히 눈은 부어있고 볼은 발갛게 달아올라있는 얼굴이었지만
소녀의 웃음은 아까와는 달리 맑게 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말이 도움이 됐다면 기쁠 따름이다.
 
난 이제 가볼게.”
 
소녀는 내게 말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된다면, 내 작품 후기에 네 이야기를 써줄게.
우연히 네가 내가 낸 책을 읽고 그 책에 적힌 후기를 읽는 다면
인연이니까, 만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고는 소녀는 달려갔다.
뭔가 바람 같은 소녀였다.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라보았다.
 
만약 아름다운 첫사랑이 있고,
그 첫사랑을 추억 한다면 이 언덕 위에서 그녀를 만났던 것을 첫사랑이라고 하려면 되려나.
마치 한 겨울의 꿈과 같았다.
혹시 그녀는 환상이 아닐까?
 
마음이 비어간다.
하지만 내가 아까 느꼈던 공허감과는 달랐다.
채워짐과 동시에 비어간다는 것이다.
 
내 마음은 항상 무언가로 가득 차있었다.
그것이 공부에 대한 부담이든 미래에 대한 걱정이든 자신에 대한 한탄이든.
하지만 그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있었었다.
 
나는 그 구멍을 채우기 위한 맹목적인 청춘이란 것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맹목적인 청춘이란게 이 겨울밤의 한 소녀와의 만남으로 어이없게 차버린다는 사실이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래, 빈 게 아니다. 허무한 것이다.
 
사람은 외로움을 느낀다.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그 무뎌진 감정은 다른 감정에 의해 삼켜지기 마련이다.
 
내 무뎌질 대로 무뎌진 가슴의 구멍은,
그 소녀의 만남으로 인해 메워져 버렸다.
 
나는 웃었다.
그 자리에 앉아서 원고지에 글자를 적었다.
소설도 아니었다, 동화도 아니었다.
 
나는 시를 적고 있었다.
 
땅에서도 빛이 나고 하늘에서도 빛이 나는 한 겨울밤의 언덕에서
환상과 같은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몽환적인 시.
 
마치 아이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쓴 시
 
그래, 마치 동시(童詩)같았다.
 
그렇게 시를 다 적었을 때 즈음 다시 하늘을 올려보았다.
별이 반짝인다, 별은 항상 하늘에 있다.
아주 멀리서, 아주 먼 과거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오늘 밤의 특별한 추억도 저 별들 사이에 하나의 반짝임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시를 적은 원고지를 접는다.
 
비행기를 접어서, 언덕에서 마을로, 날린다.
 
만약 이 비행기가 닿는다면 우리는 운명인걸까?”
 
라고 그 소녀의 말을 모방하듯이.
 
그렇게 겨울에 쓴 나의 첫 번째 동시는
별들이 지켜보는 밤하늘을 가르며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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