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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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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다른 관점에서 보면
글쓴이: 비후悲吼
작성일: 15-07-25 22:37 조회: 909 추천: 0 비추천: 0
흠. 국어 점수가 왜 이리 낮게 나왔지?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시험 마지막인 날에 시험지를 잡은 채 고뇌하고 있었다.
같은 반 녀석들은 드디어 시험이 끝났다고 환희하고 있는 도중에 말이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가장 많이 틀린 걸까? 나는 시험지를 뒤집어 가면서 생각했다.
 
소설, 비문학 부분은 다 맞았다.
그렇다면 남은 부분은…….
바로 ‘시’였다.
이번 시험에서 약 50% 정도를 차지했던 ‘시’말이다.
“맙소사.”
나는 무심코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왜냐하면 시 부분의 전 문제가 전부 오답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이과라고 해서 국어보다 다른 과목들을 우선시 한 건 맞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공식이나 이론을 달달 외워야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무심코 방심했던 것이다.
 
까짓것 시험 전날 교과서를 한두 번 훑어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 했는데 돌아온 결과가 시 부분 전체의 오답이었다.
그래도 시 분야라니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정답을 적었을 텐데…….
찍은 것만 못했다라고 할 수 있다.
“하아…….”
하고 나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다른 과목들은 상위권이었지만 내가 비참한 결과를 낳은 국어, 그중에 시 분야였기에 특히, 나는 아버지에게 면목이 없던 것이다.
 
그 이유인 즉, 우리 아버지는 바로 국문학계에서 사람의 감정 표현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신 나름 이름 있는 시인이셨기 때문이다.
시인의 아들이 시 분야 전 오답이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고뇌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시란 무엇일까.
사전적인 의미로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정을 운율이 있는 언어로 표현하여 글로 옮긴 글이다.
그렇기에 딱 정해진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교과서적인 해답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가치관, 생각, 성향 모두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쓴 운율이 있는 언어로 표현한 글이 시이다.
작가가 쓴 전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엔 그 사람이 겪었던 일도 모르고, 그 일을 겪으며 한 생각, 다짐 등을 알 턱이 없다.
그저 그 시대가 그랬으니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썼을 거라 단정 지어 버리는 것이다.
 
그건 그저 상황에 맞게 조리해버리는 식상하고도 식상한 글씨 나부랭이 취급하는 행위가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화풀이 식으로 서론만 길게 하는 것도 지금 이 상황으로 인하여 내 정신적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요약하면 된다.
 
‘유명 시인의 아들이 시 분야의 전체 문제 오답.’
라고 말이다.
결과는 결과고, 생각과는 별개다.
다음 시험에는 전문 해석집이나 봐야겠다.
 
이번 결과는…….
설마 죽을 만큼 죄송하다고 빌면 아버지가 용서 안 해주시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친구들의 PC방 가자는 제의를 거절한 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향하였다.
 
학교에서 도보로 15분쯤 걸어가면 마을 중간 근처에 우리 집이 있다,
나는 이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 한다.
15분을 걸어가기도 지칠 뿐만 아니라 학교에 도착하면 졸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나 자전거는 다르다.
타고 가면 아침 바람이 온몸을 스쳐 지나가서 기분 좋게 졸린 몸을 깨워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그래도 페달을 밟으니 무거웠던 발걸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느낌이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벌써 눈앞에 우리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꿀꺽하고 긴장감에 침을 삼키고, 자전거 보관대에 자전거를 세워둔 후, 계단을 오르고 집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진한 커피의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이 커피 향은 우리 집에 아버지가 있다는 일종의 신호인 셈이다.
아버지가 엄청난 커피 애호가이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내 옷에 커피향이 떨어지지 않는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고 다녀왔다는 목소리를 내자 그제야
“오오, 우리 아들내미 돌아 왔냐.”
라고 밖에서 까지 들릴 것 같은 호탕한 목소리로 아버지는 날 환영하셨다.
나는 곧장 아버지의 방으로 향하였다.
쌓여있는 어려워 보이는 책들, 벽에 붙어있는 산이나 들 같은 풍경들을 찍은 사진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책상 위에는 커피포트가 올려져있는 우리 집에서 제일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방이 바로 아버지의 방이다.
아버지는 그 방의 책상에 앉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작업에 열중이셨다.
 
“엄마는요?”
방의 정적으로 왠지 안절부절 해져서 나는 대화할만한 주제를 꺼내 정적을 끊으려했다.
“아아, 아마도 네 엄마는 친구들이랑 놀고 온다고 했을 걸 아침에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다우신 대답이었다.
“정확한 건 모르는 거야?”
“아들 내가 작업에 열중할 때는 주위에 신경이 잘 안 간다는 거 알지 않냐.”
방금 내가 왔을 때의 대답한 것은 땡땡이 치고 있었던 거란 말이겠네? 라고 한 소리 하려고 했지만, 그런 거 까지 신경 쓰면 말이 길어지니 그만두기로 했다.
“아니 그래도 엄마 일인데 신경을 써야죠. 남 일도 아니고…….”
“하하, 설마 집 버리고 가기야 하겠어? 우리 아들은 너무 세세하게 군다니까.”
아버지는 내가 한 말에 그저 하하 웃으시며,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다.
보통 시인하면 말 수가 적으며, 조용히 사물을 바라봐 표현하는 감성적인 느낌의 이미지가 보통일 텐데.
우리 아버지는 이런 이미지와는 완전 별개인 느낌인 호탕함 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조용한 성격인 나에게는 조금 꺼져지는 면이 없잖아 있다.
생각에 잠겨 우두커니 서있자 이번엔 아버지가 말을 걸어오셨다.
“그러고 보니 최근 귀가가 빠르네. 시험기간이라고 했던가?”
이제야 눈치 챈 듯 아버지는 시험기간에 대해 물으셨다.
아니 눈치가 너무 없잖아 얼마만큼 작업에 열중인거야
“시험은 오늘 끝났어. 다음 주 부터는 평소대로 끝날 거야.”
“아, 그렇구나. 시험은 잘 봤고?”
“…….”
결국 이 때가 오고야 말았다.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뭐라고 대답하면 되는 걸까?
 
“아하, 시험을 망친거구나? 뭐 그럴 수도 있지.”
아버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말하셨다.
이 점이 제일 맘에 안 든다고 생각한다.
“일단 전체적으로 본다면 잘 봤다고 할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볼 때? 그럼 개별적으로 못 본거냐? 하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과목은 괜찮은데 국어가 말이야…….”
나는 잠시 말을 끊고 몸을 앞으로 굽히고 입을 열었다.
“국어 시 부분을 전부 틀렸어요. 시인의 아들로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이다.
그 행동에 아버지는
“그 뭐냐 딱히 그런 걸로 그렇게 까지 죄송하다고 생각 안 해도 괜찮단다.”
아버지는 나의 행동에 약간 놀라신 듯 했다.
그리고 괜찮다고 하셨다.
 
내가 이런 넒은 이해심을 가진 아버지를 맘에 안 들어 하는 이유는 혼을 내시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나를 혼내신다면 나도 그렇구나 하고 쉽게 넘어갈 텐데 그렇지 않으니 마음이 오히려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존중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는 것이다.
“아들 나랑 같이 밥이라도 먹으로 갈까? 때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니까”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려는 듯 아버지는 점심식사를 제안하셨다.
특별히 거부 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두 번 끄덕임으로 승낙함을 보였다.
 
그러고선 아버지를 따라 집 문을 나선 뒤,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자동차 안은 익숙하고도 편안하다.
아버지가 시인인지라 영감을 받기 위해서 인지 그저 놀러가는 것을 즐기는 건지 옛날부터 전국 이곳저곳의 명소나 관광지를 이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향을 적잖이 받아 나도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부자사이라는 거다.
차가 지나면서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며 생각했다.
 
그렇게 10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차 앞좌석에 붙어있는 거울에 어렴풋이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이 살짝 입 꼬리가 올라간 것이 보였다.
무척 즐거워 보이셨다.
“도대체 어디 가시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여요?”
그 질문에 아버지는 한층 더 해맑게 웃으시고는
“내가 지금부터 갈 곳은 내가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게 된 장소란다. 너도 마음에 들 거다.”
라고 의미심장하게 말 하셨다.
지금까지 아버지와 여러 장소를 다녀왔지만 아버지가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 곳이라니 왠지 가슴이 무척이나 두근거리는 울림이었다.
나는 관심이 샘솟듯이 끓어올랐지만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 콧소리로 흐응~하고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버지는 그 대답 아닌 대답이 마음에 드셨는지 방금 내가 한 것처럼 콧소리로 흐응~하는 소리를 따라하시고는 그대로 운전에 집중하셨다.
나 참 이런 면은 어린애 같으시다…….
 
차로 20여분을 더 달리고 도착한 곳은 거대한 산이 여러 개 붙어있는 산의 입구 쪽이었다.
“흐음 도착했다. 오랜만의 산길이라 몸이 조금 찌뿌듯하네.”
아버지는 차에 내린 후 기지개를 키며 말씀하셨다.
나도 옆에서 기지개를 키고는 목을 좌우로 움직여 목에서 뚜둑하고 소리를 냈다.
“일단은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가도록 하자.”
아버지는 한층 더 가벼운 느낌으로 산 입구 근처에 있는 국수집으로 향하셨다.
우리는 멸치국수 두 개를 시켜 놓고 한숨 돌린 후
15분 만에 국수 그릇을 싹 비워놓고 산행 길로 곧바로 향했다.
 
아무리 그래도 점심을 먹고 바로 산으로 향한다니 몸이 버겁다.
나는 앞장서서 걷고 있는 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아버지 어디 가는데 그리 서둘러요. 배 채운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아버지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발걸음을 잠시 멈춰주었다.
“내 정신 좀 봐 알겠다. 일단 산책길로 가서 배 좀 가라앉게 하자꾸나.”
“네 알겠어요.”
그렇게 나와 아버지는 꽃이 한껏 만발해 있는 산책길을 거닐면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아들아 시험결과에 대해서는 너무 낙심하지마라 이런 나조차도 국어시험에 30점도 안 나온 적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충분히 잘 해 나가고 있는 걸? 적어도 나 같은 사람보단 몇 배는 노력가이고, 생각이 깊다는 거 잘 안다. 꼭 시인의 아들이라고 따라오려고 하지 않아도 된단다. 애초에 시라는 걸 너무 무겁게 생각하려 하면 끝이 없는 거란다. 사람마다 각자의 특성이 있고 너와 나 즉, 부자사이에서 조차 가치관의 차이가 있지 않냐? 교과서의 해석은 어디까지나 많은 사람의 이해를 위한 수박 겉핥기식의 해석인 거야 그건 속뜻의 기초적인 틀은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정답은 되질 못해 파고드니 엄청 복잡하지? 다 그런 거야 그러니 너무 전전긍긍하지는 마라. 일단 나름 아버지이기에 너의 관점에서 조언 해주었는데 나쁘지는 않지?”
아버지는 내가 했던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는 그것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요약한 것을 읽으시는 듯이 말문의 막힘없이 술술 말을 하셨다.
솔직히 감탄해서 박수라도 쳐야 하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는 아이의 대변인이다.
그 말이 수백 번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런 조언을 듣고 안절부절 했었던 내 속마음은 고민이란 고민은 다 털어버린 듯이 무척이나 가벼워졌다.
놀랍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 없이 바라보는 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아버지는 이내 다시 입을 여셨다.
“흠. 정곡 이었구나 그렇게 자신이 고민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기에 나는 시인으로서 아니 그런 걸 떠나서 아버지로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이 장소로 널 데려 온 거란다. 그 경치를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단다. 자신만의 해답을 찾기엔 아직 머나먼 길의 시작점 부근이겠지만 어느 정도 나아갈 길의 갈피를 잡기 편할 거다. 지금 출발하면 딱 좋은 걸 볼 수 있겠구나 자 가자꾸나.”
아버지는 추억의 향수를 느끼는 사람처럼 유유히 산길을 오르셨다.
잠시 뒤를 돌아서는 여느 때처럼 장난기 섞인 얼굴로 배시시 웃으시고는
“아 참. 발아래 조심해서 오고”
라고 덧붙였다.
“아직도 애 취급 할 거야?”
나는 물론 약간의 투정을 덧붙였지만 말이다.
 
세 시간 정도를 오르니 시계는 벌써 6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버지 정상은 아직 멀었어요?”
몇 시간의 산행 길에 많이 지친 내가 불만을 토로하자
“이제 곧 정상이 코앞이다.”
라고 하셨다.
그 소리 분명 한 시간 전에도 하신 소리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고 묵묵히 오르려고 다짐한 순간
 
“자 봐라 저기가 정상이란다.”
도착을 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확 트인 광경에, 시원한 공기에, 앞에 있는 산꼭대기에 걸쳐있는 해가 일몰하고 있는 노을 녘에 감탄한 나머지 탄성이 저절로 목을 타고 나왔다.
이 풍경을 뭐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까?
표현력이 적은 나에게는 결코 간결하게 이 풍경을 정의하기란 무리일 것이다.
아니 그러지 않는 편이 좋을까나 무리하게 파고드는 것을 아버지는 원치 않으실 것이다.
 
“어때 절경이지?”
아버지는 생수 한 병을 나에게 내밀고는 물으셨다. 나는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네 무척이나 끝내주는 경치네요.”
하고 시선은 탁 트인 앞을 계속 응시하며 말했다.
아버지는 그 대답에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구나 내가 왜 여기를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장소라고 했는지 궁금하니?”
흐뭇해했던 아버지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확실히 궁금해 했던 문제이기에 나는 고개를 위 아래로 두 번 끄덕였다.
아버지는 반응을 보시고는 부드러우면서 약간은 긴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가셨다.
 
“그래 자신이 해답을 내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봐야지 이런 이야기를 누구한테 하는 건 두 번째라 아직 긴장되는 면이 있구나 하하, 아무튼 이야기를 해주려면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의 이야기를 해줘야 하겠구나.”
아버지는 심호흡을 크게 두 번 하셨다.
“내가 처음 여기로 왔었던 이유는 솔직히……. 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고 온 것이었단다. 조용한 장소를 찾고 면허는 없었기에 대중교통을 타고, 죽기 직전에서 조차 배가 고파서 아까 들렸던 국수집 알지? 거기서 배를 채우고, 산을 올라 이런 절경을 보면서 느낀 게 뭔지 아냐? 아, 아름답다하고 생각했다. 경치를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되돌아보게 해준 이 산에 감사해서 이걸 글로 나마 남기고 싶어서 시를 써 보았단다. 소설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에 재주가 없었기도 했고 해서 만들지는 못 했지만 말이다. 아 참.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셌구나 하여튼, 그 시를 ‘산길’이라는 제목으로 투고해 봤더니 글쎄 상을 탔지 뭐냐 그대로 시인이 되어서 네 엄마와 결혼 해 가정을 꾸리고 네가 태어난 거란다. 갓 태어난 너를 안을 때 내가 검지 손가락으로 건들었을 때의 감각, 아직도 그 감촉이 잊혀 지지 않는단다. 옛날의 자신은 절대로 알지 못했을 행복, 포기하질 않길 잘했다. 라고 되뇌었지 그래서 나는 이 장소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보는 거란다. 어때? 자신의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은 꼴이 되었지만 조금은 힌트를 잡은 것 같니?”
“아버지는 이 산을 보고, 시라는 형식으로 표현하셨군요. 나는 평생 그런 것은 못 할 거 같네요. 이 웅장함을 뭐라고 해야 할지 감도 못 잡겠는데…….”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나조차도 뭐라고 딱 표현 하지는 못해 그리고 그 시를 나는 완성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네? 그래도 상을 탈 정도면…….”
“그 상도 상으로 치자면 노력 상 같은 거였어. 물론 그것 덕분에 시인이 되자는 계기는 잡았지 무언가를 하고 나서 결과를 얻는 성취감을 느낀 건 그게 처음이었으니까 그 후로 책을 찾아가며 어휘력을 늘리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경험으로 시인으로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서 있는 거란다.”
여러모로 아버지는 약간 충격적인 소리를 하셨다.
아버지조차 완성하지 못한 시라…….
나도 한번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나도 이 경치를 시로 남기고 싶어요.”
그 선언에 놀라셨는지 눈을 크게 뜨시곤 두 번 깜박이시더니 이내 표정을 진정시키고 입 꼬리를 올리셨다.
한번 해 봐라 아들! 이라는 신호다.
자신감이 생겼다.
주변이 어둑어둑 해가 지자 그 곳은 또 다른 웅장함을 보여주었다.
 
이대로 별까지 보고 싶은 기분은 굴뚝같았지만 늦은 산길은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산길을 두시간만에 내려오고 우리를 데리고 왔던 자동차에 타고서 돌아오는 길에 있던 고기 집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문을 여니 엄마가 대체 둘이 어딜 다녀와서 이렇게 늦었냐고 화를 내셨지만 아버지께서 부자사이에 진솔하게 할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자 엄마는 아 그래? 하시고는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내 방에서 한숨 돌리고 시에 대해서의 자신의 생각의 정리와 어떻게 할지에 관해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정한 것은 좋은데 문제는 아무 것도 모르니 답답할 나름이었다.
확실히 상상한대로 쉽게 된다면 아무도 걱정 같은 걸 하지 않겠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버지는 기분 내키는 대로 쓰라고 하셨지만 오히려 기분 가는대로 하는 게 수십 배는 더 어려운 주문이다.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 싸매며 고민 또 고민하다가 이렇게 해선 아무런 진전이 없을 걸 알기에 나는 아버지 방에 가서 조언과 요령을 듣기 위해 내 방문을 열었다.
 
“아. 아들 마침 잘 됐다. 네 아빠랑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려줄래?”
문 앞에 서 있던 건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였다.
그대로 반 끌림 상태가 되어서 부모님의 방으로 끌려갔다.
아버지는 작업하시는 방에 계시는지 보이질 않았다.
엄마는 나를 적당히 앉히곤 구석 쪽에서 책상 하나를 가져오곤 내편 마주보는 방향으로 앉으셨다.
“엄마 대체 무슨…….”
“네 아빠랑 무슨 이야기를 했니?”
차마 말을 다하기도 전에 엄마는 말 꼬리를 자르시곤 물으셨다.
이런 면에서 보면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는 아버지와는 대조적인 사람이다.
 
“별건 아니고 그냥 등산하면서 살짝 이야기 한 거뿐이에요.”
“흐음. 그럼 시인이 된 계기 그런 것도 이야기 해주었겠구나.”
“응? 아버지가 엄마한테도 그 이야기 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한건 두 번째라고 하신 것 같다.
엄마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이셨다.
“벌써 너한테 그 이야기를 해줄 정도로 자라난 걸 인정 해준 거구나.”
엄마는 잠시 추억에 빠지신 듯 했다.
 
“엄마한테는 언제 이야기 해주셨는데요?”
“내가 너를 낳고 그 소리를 해주더구나. 원래 네 아빠랑은 아주 옛날 초등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냈었는데 그 때는 엄청 겁쟁이고 나서길 싫어하고 주눅이 잘 드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사람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변하더니 어림짐작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네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해주니 그 사람 나름 힘겹게 살아온 걸 단편적으로 나마 알아서 고생했다고 살아서 이런 아이를, 행복한 가정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해줘서 감사하다고 그대로 네 아빠를 꼬옥하고 안아주었단다. 이 행동으로 등에 얹고 있는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기 때문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이었기도 해서 그랬단다. 그랬더니 네 아빠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계속 안고 있었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 옷의 어깨 부분이 흥건해졌고 너무 꽈악 껴안아서 갑갑하기도 했지만 내 마음까지 후련해질 정도로 울어주었어 그때 결심했던 게 한 가지 있다면 이 사람은 내가 지탱해줘야겠구나. 라는 거 하나란다. 네 아빠는 겉은 강해보여도 속으로는 웬갖 걱정들을 안고 항상 고뇌하는 사람이니 아들인 네가 가끔씩 아주 가끔씩이라도 고민을 들어주고 짐을 좀 덜어줬으면 해.”
엄마의 관점으로 본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구나.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와 동시에 내가 생각했던 것은 역시 시는 내 스스로 완성해야겠다. 라는 것 이였다.
해서 나온 결과가 죽이 되던 밥이 되던지 그런 건 상관없다.
내 자신이 도전해서, 발견한 길을 내 스스로 내는 것에 중점을 두자
나는 엄마에게 인사를 드리고 내 방으로 향했다.
일단 책상에 앉아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생각의 정리이다.
내가 처음에 시에 대해 느낀 의문은 정해진 해석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답이라는 경지는 없다.
그건 아버지의 조언으로 납득했다.
아무튼 대회 같은 걸 노리고 하는 것도 아니기에 급박한 것도 아니다.
천천히 진행해도 되지만 지금 같이 생각나는 것도 날이 지날수록 옅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니 역시 기간을 정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들어보고 싶기도 하니까 공모전 같은 곳에 투고해 봐야겠다.
 
결국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서 내가 투고하기에 적절하고 기한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것을 골라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는 여러 가지 조언과 관련 서적들을 주셨지만 그것을 활용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번엔 내 스스로 하자는 결심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까지 아껴두었다가 쓰자고 생각했다.
사람의 가치관은 모두 다르기에 꽃이 지는 것조차 어떤 사람은 이별, 슬픔에 대입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꽃이 지고 피는 건 당연하기에 인생, 규칙적인 점이 인간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극과 극인 생각을 할 수 있기에 사람은 창의적인 동물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내가 아버지의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그 웅장한 경치를 보고 느낀 것은…….
내가 생각하는 나란 존재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것은…….
하고 질문들을 되풀이 하였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 생각만 하는 것 같다.
그것 또한 나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점심 전의 나를 되돌아 생각해보니 내가 직접 제대로 풀지조차 못했던 시를 지금은 자신이 머리를 쥐어 싸며 쓰려고 고생이라니 웃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아버지의 인생의 전환점이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 듯하다.
 
아버지처럼 극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나온 얼마 안 되는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 큰 자극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나도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비로소 전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발견한 해답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이제야 내 생각들은 정리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를 적는 것뿐이다.
이윽고 나는 펜을 잡아들고 종이에 써나가기 시작했다.
설령 그것이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 될지는 몰라도 그건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마다, 가치관마다, 특성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그런 시를 적고 싶기 때문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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