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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용사와 미쳐버린 기사 그리고 울부짖는 성녀
글쓴이: 글자나열꾼
작성일: 15-07-04 19:23 조회: 1,031 추천: 0 비추천: 0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여기서 남자라는 단어는 죄수라고 바꿀 수 있다.

 이 죄수라는 말은 다시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연쇄살인마로.

 아, 접두사가 빠졌다.

 아동연쇄살인마로.

 자, 이제 이 아동연쇄살인마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이 아동연쇄살인마의 이름은 스탈랑 비뇰 라비아탄. 몰락한 귀족가문의 후손이었으나 자수성가하여 가문을 일으켜 세운 자다. 용사의 동료였으며……이번엔 형용사가 빠졌다. ‘타락한’ 용사의 동료였으며 아동연쇄살인마로 잡히기 직전까지는 수만의 병사를 이끄는 변경백이었다.

 이런 자가 어째서 아동연쇄살인마로 변했는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이것일 것이다.

 타락한 용사 말이다.

 스탈랑이 있는 곳은 어딘가의 감옥이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디선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축축한 감옥. 

 스탈랑은 내일 정오에 죽을 예정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목이 메여, 죽을 때까지 신체의 부분 부분을 잘라내는 능지형(凌遲刑)에 처해질 것이다. 잔혹한 형벌이었으나 이 자의 손에 죽어나간 생명의 수가 삼백에 달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자비가 넘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감옥 안으로 빛 한 줄기가 세어들어왔다. 해가 떠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곳은 해가 떠도, 달이 떠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지하감옥이다.

 돌바닥을 두드리는 군화 소리와 감옥을 밝히는 광원이 스탈랑에게 다가왔다.

 스탈랑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빛을 본 것이었기에 스탈랑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스탈랑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내일 죽을 몸인데 이렇게 고문할 필요가 있나? 남의 고통을 즐기는 성벽이 있다면야 이해해주지. 내가 한 짓도 어떻게 보면 그와 별 차이가 없으니. 자신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 말이야.”

 감옥에 들어온 무리 중 일부가, 아니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성내는 소리를 내었다. 성을 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모두 나가주세요.”

 “허나 대사제님. 이 사람은”

 “300명을 잔인하게 죽인 악독한 범죄자죠. 그리고 저의 동료였고, 사지가 쇠사슬로 구속당했어요. 나가주세요.”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유일한 한 사람에게 반대의사를 내비췄다. 유일한 한 사람은 침착하게 그들을 다독였다.

 결국 한 명이 나머지 모두를 이겼다.

 “저희는 문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주십시오.”

 대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등불 하나를 남기고 병사와 간수들은 감옥을 나섰다.

 발소리, 문 열리는 소리, 발소리, 문 닫히는 소리.

 그리고 물 떨어지는 소리.

 드디어 말소리.

 “스탈랑.”

 “대사제님.”

 “이제 유제라고 불러주지 않으시네요.”

 “유제.”

 “고마워요.”

 대사제 유지에 말라사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유지에는 마흔 줄에 접어들었으나 아직도 아름다운 여자였다. 세월의 손길은 그녀에게 미를 앗아가기는커녕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다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유지에의 앞에 있는 남자는 달랐다.

 한 때 수많은 여자들을 (그리고 소수의 남자들도)홀리던 미청년은 사라지고 백발과 주름이 성성한, 그리고 흉하게 비쩍 마른 남자만이 남았다. 아직 쉰도 안 된 나이이건만 이렇게 늙고 말았다. 그러나 세월도 그의 눈에서 빛을 앗아가지는 못했다. 과거의 희망과 열정과는 다른 광기와 분노가 빚어낸 빛이었지만 말이다.

 스탈랑은 눈이 빛에 적응이 되자 눈을 똑바로 뜨고 유지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대사제정도나 되시는 분이 내일 죽을 대역죄인에게는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스탈랑의 비아냥거리는 태도에 유지에의 미소가 굳었다.

 “스탈랑.”

 “제 이름이 스탈랑이라는 거 그만 알려주셔도 됩니다, 유제. 서로의 근황도 잘 알 테니 쓸데없는 말 말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죠.”

 스탈랑의 홀대에 유지에의 눈에는 절로 눈물이 고였다. 과거의 스탈랑은 이러지 않았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예의를 차리던 스탈랑이었지만 함께 마왕의 군세와 싸우고 나서부터는 친근하고 다정하게 ‘유제’라고 불러주던 그였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그 친근감과 다정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유지에는 울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당신을 죽이러 왔어요.”

 스탈랑은 낄낄 웃었다. 

 “성녀라고 불리시는 분의 손에 죽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공부는 많이 하셨습니까? 능지형은 책만 봐서 능숙하게 하기는 힘들 텐데요? 이거 시작하자마자 죽는 거 아닙니까?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적어도 하루정도는 살아있게 회치셔야 할 텐데요.”

 결국 유지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스탈랑. 당신은 어째서?”

 울음기와 수많은 의문, 그리고 유지에의 손이 유지에의 입을 막았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수많은 의문들은 유지에의 가슴속에서 맴돌았다.

 ‘스탈랑. 당신은 어째서 저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구는 건가요?’

 ‘스탈랑. 당신은 어째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굴 수 있나요?’

 ‘스탈랑. 당신은 어째서 그런 잔혹한 짓들을 저지른 건가요?’

 ‘스탈랑. 당신은 어째서 저를……’

 유지에는 마지막 의문과 눈물을 동시에 닦아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자비에요.”

 유지에는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이걸 먹으면 잠이 드는 것처럼 고통 없이 신의 품으로”

 유지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평소 쓰던 말을 쓴 것이지만 스탈랑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신은 제가 신의 품으로 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스탈랑은 유지에의 말을 끊었다. 스탈랑은 차갑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300명이나 되는 생명을 앗아간 제가? 꽃봉오리조차 되지 못한 그 어린것들의 생명을 거둔?”

 스탈랑의 말에 유제는 당황하며 반사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진심으로 믿고, 참회하며, 구원을 바라면……”

 “개소리 집어치우세요, 대사제 나리.”

 스탈랑은 노골적으로 적의를 내비췄다. 유지에는 스탈랑의 적의에 자신도 모르게 한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길어봤자 하루밖에 되지 않을 저의 남은 생애동안 제가 회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짧은 시간 안에?”

 스탈랑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미소였다.

 “또 묻겠습니다. 제가 죽인 그 어린 생명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에 물들지 않은 그 깨끗한 영혼들 말입니다. 신의 곁이 아니면 어디입니까? 참회한 제가 신의 곁에 간다고요? 참회하고 죽은 후에 벌어질 일을 상상하니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조약한 신성모독이었다. 반박하기는 쉬웠으나 유지에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지금 신성모독을 범하는 이 아동연쇄살인마는 한 때는 신실한 기사였다. 기사도 소설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은 남자. 고지식하다는 평가도 들었으나 그건 그가 결코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은 기사는 어떤 유혹에도, 어떠한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정의와 도덕을 따랐다. 악에 분노하고 선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던 기사. 그랬던 기사가 지금은 극악한 죄를 저지르고 신을 모독하고 있었다. 유지에는 스탈랑의 옛 모습을 알고 있었기에 스탈랑을 비난하지 못했다.

 그 날. 그 일이 있은 후. 스탈랑은 더 이상 기사로 남지 못했다. 신분이 바뀌었다는 말이 아니다. 바뀐 건 스탈랑의 내면이었다.

 스탈랑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십팔 년.”

 유지에는 움찔했다. 스탈랑의 말이 욕설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탈랑이 입에 올린 것은 욕이 아니었다.

 “그 날. 그 일이 일어난 후. 오늘까지. 18년 동안 신을 찾아 헤맸습니다.”

 스탈랑이 욕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유지에는 안도할 수 없었다. 차라리 욕을 해주었다면 지금보다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며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신을 찾지 못한다면 신이 나에게 오도록 하자. 적어도 신의 대리자라도 나를 찾아오게 하자. 하지만 어떻게? 저는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신 혹은 신의 대리자라도 만날 수 있을까? 선행? 글쎄요. 당신도 아는 저의 지인은 그 누구보다도 선량하고,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선행을 했지만 신을 만나지 못했죠.”

 유지에는 스탈랑이 말하는 지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용사.

 타락하고만 용사.

 “그래서 저는 역으로 생각했습니다. 악인이 신의 천벌을 받아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말입니다. 누구보다 사악한 짓을 저지르고 신에게 직접 그것도 아니면 신의 대리인에게 벌을 받자. 그러면 적어도 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죽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죽였습니다. 찔러 죽이고, 목 졸라 죽이고, 밟아 죽이고, 떨어트려 죽이고, 물에 빠트려 죽이고, 불에 태워 죽이고, 굶겨 죽이고, 과다 출혈로 죽이고, 삶아서 죽이고, 모래에 파묻어 죽이고, 꼬챙이로 꿰어서 죽이고, 기름에 튀겨서 죽이고, 내장을 빼내서 죽이고, 독약을 먹여서 죽이고, 연기로 질식시켜 죽이고, 거꾸로 매달아 죽이고, 팔다리를 찢어죽이고, 척추를 하나씩 꺾어가며 죽이고, 녹은 쇳물을 부어 죽이고, 폐에 구멍을 내서 죽이고, 좁은 구멍에 비집어 넣어 죽이고, 인두로 지져서 죽이고, 배가 터질 때까지 음식을 먹여 죽이고, 바늘로 된 관에 넣어 죽이고, 짐승에게 죽게 만들고, 범죄자에게 죽게 만들고, 평범한 자들에게 죽게 만들고, 친구에게 죽게 만들고, 형제에게 죽게 만들고, 부모에게 죽게 만들고, 스스로 죽게 만들고, 이른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계속 죽이고, 한 명씩 죽이고, 여럿을 한 번에 죽이고, 아, 그러고보니 이런 적도 있군요. 어두운 감옥에 아이들을 가두고 서로를 잡아먹게 해서 죽이기도 했었습니다.”

 유지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행한 악을 고하는 스탈랑의 모습에 토할 것 같았다. 아이들이 당했던 고통도 고통이지만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가 그런 악을 행했다는 사실이 유지에를 괴롭게 만들었다.

 “열 명을 죽이면 나타나겠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십 명을 죽이면 나타나겠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백 명을 죽이면 나타나겠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백오십 명을 죽이면 나타나겠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백 명, 삼백 명을 죽이면 나타나겠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스탈랑은 고개를 숙였다. 스탈랑의 어깨가 떨렸다. 뚝뚝하고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한참 후에 스탈랑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스탈랑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울고 있었다.

 “유제. 신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생명들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데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스탈랑의 눈물을 본 유지에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스탈랑은 계속해서 말했다.

 “유제. 18년 전 저는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확신합니다. 신은 없습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 명이 죽고, 삼백 명을 넘어가는, 아니 삼백하고도 열일곱에 달하는 어린 생명이 죽었고, 그보다 많은 생명이 죽었습니다.”

 스탈랑의 목구멍에서 끅끅하고 억눌린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스탈랑은 울음기를 억지로 삼키고 물었다.

 “유제. 유제. 유제. 유제. 정말로 신이 있다면 어째서 저의 악행을 방기하고 있는 겁니까? 신은 있습니까? 만약에 있다면 그들은 정말로 선량하고 전지전능하며 우리를 사랑하는 겁니까?”

 유지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떤 말도 이 남자의 인식을 바꿀 수도, 이 남자를 위로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지에는 남자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슬슬 세월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손이 깡마르고 거친 얼굴에 닿았다. 유지에는 손가락으로 스탈랑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유제. 저는 신의 부재를 재차 증명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다가 스탈랑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눈물도 그쳤다. 스탈랑은 무표정으로 말했다.

 “그 날. 18년 전 그 날. 신의 부재가 증명되었습니다.”

 유지에의 얼굴이 굳었다. 반대로 스탈랑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스탈랑은 분노에 차서 외쳤다. 유지에는 스탈랑의 분노어린 외침에 놀라서 뒷걸음치다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 날! 한 여인이 죽던 날! 한 여인이 신의 이름을 외치며 불타 죽던 날!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선량하던 여인이 죽던 날!”

 감옥 문이 거칠게 열렸다. 대사제를 호위하던 병사들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대사제님!”

 “들어오지마!”

 유지에는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병사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스탈랑의 광기어린 외침과 유지에의 악에 받힌 목소리가 감옥을 시끄럽게 했다.

 “전부 나가!”

 “용사가 죽던 날! 용사가 마족과 내통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던 날!”

 유지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지에는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던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감옥 안으로 들어온 병사들을 다시 밖으로 몰아냈다. 유지에가 병사들을 떠미는 힘은 호리호리한 중년여인이 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했다.

 스탈랑은 여전히 외쳤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검을 들었던 용사가 만들어낸 증거와 불합당한 절차로 재판 받고 불에 타죽던 날! 누명을 쓴 용사가 신을 부르며 불에 타죽던 날!”

 유지에는 기어코 모든 병사를 감옥 밖으로 쫓아냈다.

 “절대로! 내가 나갈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말하고 유지에는 감옥문이 부서져라 세게 닫았다.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평범한 양치기가 되려고 했던 한 여인이 억울하게 죽던 날! 신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유지에는 거친 발걸음으로 다시 스탈랑 앞으로 돌아왔다.

 “유제! 유제! 신은 없습니다! 용사가 억울하게 죽던 날! 신의 존재를 증명하던 증거는 전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스탈랑은 온 몸을 흔들며 괴성을 질렀다. 그 모습은 광인. 이성이라는 것이 사라진 짐승. 모습만 사람의 형상을 취하고 있을 뿐인 존재였다. 스탈랑의 괴성이 감옥 벽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유지에는 스탈랑의 비명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아차렸다. 스탈랑은 용사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오랫동안 용사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발광하던 스탈랑이 갑자기 축 늘어졌다. 스탈랑의 몸은 발광할 때 쇠사슬과 벽에 부딪혀서 생긴 상처로 가득했다. 

 스탈랑이 발광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유지에는 다시 스탈랑에게 다가갔다. 스탈랑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스탈랑?”

 숨을 쉬느라 스탈랑의 어깨와 배가 오르내리는 것을 제외하면 스탈랑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유지에는 두 손을 뻗어 스탈랑의 턱을 받치고 조심스럽게 스탈랑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스탈랑의 몸은 뜨거웠다. 스탈랑의 시선은 초점이 없었다. 발광하느라 진을 다 빼서 안 그래도 수척했던 스탈랑의 얼굴은 더욱더 수척해져있었다.

 유지에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스탈랑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탈랑. 만약 당신이 살 수 있다면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건가요?”

 스탈랑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스탈랑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유지에와 눈을 마주쳤다. 스탈랑은 울부짖느라 완전히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길군요. 먹이려면 지금 당장 먹이고, 안 먹일 거면 여기서 꺼져주시죠.”

 “스탈랑. 전 진지해요.”

 “유제. 전 이미 죽었습니다. 모르십니까? 18년 전 그녀가 죽던 날 저는 죽었습니다. 제가 믿던 모든 것들이 죽어버렸습니다. 제가 믿어 의심치 않던 도덕과 선과 신념이 그녀의 죽음과 함께 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스탈랑의 주름 고랑에 다시 물이 차기 시작했다.

 “제 평생 유일하게 사랑하던 여인이 죽었습니다. 용사가, 그녀가 죽은 이후의 저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공허입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지금 죽여줄 거 아니면 꺼져주시죠.”

 유지에는 스탈랑의 고개를 받치고 있던 손을 뺐다. 스탈랑의 고개가 다시 힘없이 떨어졌다. 유지에는 메마른 눈으로 스탈랑을 바라보다가 다시 독약병을 꺼냈다. 유지에는 병마개를 열고 한 손으로 스탈랑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스탈랑은 유지에의 손에 있는 병을 보고 천천히 입을 벌렸다. 유지에는 스탈랑의 열린 입 속으로 독약을 흘려 넣었다. 스탈랑의 울대가 힘없이 떨렸다. 병의 내용물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유지에는 독약병을 스탈랑의 입술에서 뗐다. 스탈랑의 입속의 내용물이 전부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자 유지에는 스탈랑의 턱에서 손을 뗐다.

 스탈랑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어깨가 크게 오르내리고 숨소리도 빨라졌다. 주기가 점점 빨라지던 호흡이 들숨과 날숨의 구분이 힘들어지자 스탈랑은 마지막으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일리엔……”

 스탈랑의 단말마는 용사의 이름이었다.

 
 
 스탈랑이라는 인간에서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존재 앞에서 유지에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하하.”

 한숨을 내쉬고 나니 유지에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전혀 즐겁지 않았다. 어쨌든 웃음이 나오니 계속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웃음이 절규가 되었다.

 유지에 말라사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유지에 말라사는 그녀가 평생 동안 사랑했던 남자였던 존재 앞에서 비명을 질렀다.

 유지에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옷을 잡아뜯었다. 손톱으로 자신의 몸을 할퀴고 이빨로 살점을 물어뜯었다. 고통스러웠으나 마음의 고통에 비해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유지에 말라사가 사랑했던 남자가 죽었다. 남자는 지금 유지에의 앞에 있었다. 유지에가 직접 죽였다.

 “스탈랑! 어째서 당신은 저를 바라봐 주지 않았나요! 스탈랑!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했는데! 저 역시도 일평생 당신을 사랑했는데! 어째서! 스탈랑! 스탈랑! 어째서 이미 죽어버린 년을 계속 사랑했나요! 스탈랑! 어째서 저는 사랑해주지 않았나요! 제가 더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했는데! 어째서 저를 바라봐주지 않고 양이나 치던 비천한 계집을 사랑했나요! 그 년이 사라지면 저를 사랑해줄 줄 알았는데! 스탈랑! 어째서 당신은 죽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저를 바라봐주지 않았나요! 스탈랑! 스탈랑! 스탈랑!”

 유지에는 시체가 되어버린 스탈랑에게 달려들었다. 유지에는 시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유지에가 평생 동안 바라던 것이었다.

 “어째서 죽고 나서야 간신히 저의 것이 되었나요? 스탈랑! 어째서 대답하지 못 하나요! 스탈랑! 대답해주세요!”

 그러나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자가 대답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스탈랑! 그 년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했었죠? 예! 맞아요! 억울하게 죽은 거! 용사를 유죄로 만들 증거는 전부 한 사람의 손에 만들어진 거예요! 누구일 거 같나요? 말해보세요! 스탈랑! 네! 제가 만들었어요! 제가 그 년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었어요! 어때요! 화나죠!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스탈랑 저를 욕해요! 스탈랑!”

 유지에는 스탈랑의 손을 잡고 그것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며 흔들었다.

 “분노해요 스탈랑! 당신이 사랑했던 자를 죽인 자가 앞에 있잖아요! 스탈랑! 저를 죽여요! 당신의 손으로 죽여요! 스탈랑! 질투에 눈 먼 성녀가 당신이 사랑하던 용사를 죽였어요!”

 유지에는 스탈랑의 손을 넣고 다시 스탈랑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어째서 당신이 살아있을 때 이러지 못했을까요? 어째서 당신이 살아있을 때 저의 죄를 고백하지 못했을까요? 아마 당신의 분노가 두려웠나보네요! 당신을 사랑한다면서 당신이 사랑하는 이를 죽이고 당신을 죽이고 말았어요! 웃기죠? 웃어요! 스탈랑!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유지에는 다시 온몸을 쥐어뜯고 물어뜯으며 절규했다.

 “스탈랑! 스탈랑! 제가 어떻게 했어야 당신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어렸던 저는 당신께 제 마음을 알렸다간 당신이 저와 거리를 벌리는 것이 두려워 고백할 수 없었어요! 매일매일 당신의 곁에 머무르면서 당신과 웃을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말았어요! 그러다가 당신은 용사를 만나고 결국 그녀를 사랑하고 말았어요! 어째서 제가 아닌 용사인가요! 스탈랑! 그 이전부터 당신의 곁에 있었는데 어째서 제가 아닌 그 년인가요! 만약 당신이 저를 사랑해주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스탈랑! 전부 당신이 나쁜 거예요! 스탈랑! 스탈랑!”

 유지에는 심장이 뛰지 않는 스탈랑의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스탈랑……제발……부탁해요. 대답해줘요. 스탈랑. 분노라도 해줘요. 스탈랑.”

 유지에에게 죽은 스탈랑은 대답할 수 없었다. 유지에는 스탈랑의 가슴에 기댄 체 눈물을 흘렸다. 

 “스탈랑. 만약 천국과 지옥이 나뉘어져 있으면 당신은 지옥에 있겠죠? 신께서 아무리 관대하더라도 당신 같은 자를 천국에 들이지는 않겠죠?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용사 년은 천국에, 당신이 그토록 부정하던 신의 곁에 있을 거고요. 그 년은 천국에 갈 만하죠. 세상을 구했고 억울하게 죽었으니까요.”

 유지에는 아직 내용물이 반이 남은 병을 집어들었다.

 “그러면 저는 어떨까요? 평생 성녀로 추앙받았으나 자기 욕심으로 용사를 죽이고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사랑하는 이를 죽인 이 개년은요? 천국일까요? 지옥일까요? 신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알 수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량하다고 절대로 확신할 수 없는 신이 있다면 저는 어디로 가게 될까요? 지옥이죠? 지옥이겠죠? 당연히 저는 지옥으로 가야해요. 스탈랑. 저는 지옥으로 가서 다시 당신과 마주하겠어요.”

 유지에는 병의 내용물을 한 번에 비웠다. 씁쓸한 맛이 혓바닥에 흔적을 남기고 목구멍을 넘어갔다.

 “그 년은 천국에 있어요, 스탈랑. 당신은 지옥에 있고요. 그리고 저도 지옥에 가게 될 거에요. 스탈랑 지옥에서 다시 당신을 만나면 저는 살아생전 이루지 못했던 것을 그곳에서 이루겠어요. 그곳에서 당신에게 고백하고 당신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어요.”

 유지에는 울었다. 유지에는 웃었다. 유지에는 절규했다. 유지에는 스탈랑의 몸에 기댔다. 유지에의 호흡이 가빨라졌다. 유지에의 정신이 흐릿해졌다. 유지에는 눈을 감았다.

 성녀 유지에 말라사는 스탈랑 비뇰 라비아탄의 곁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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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모티브는 잔 다르크와 질 드 레 입니다.

 용사의 모티브는 잔 다르크.

 스탈랑의 모티브는 질 드 레.

 유지에의 모티브는 잔 다르크 + 잔 다르크를 죽인 원흉.

 사실 처음 글을 쓸 때의 유지에는 스탈랑을 죽이는 것은 맞지만 용사에게 누명을 씌우지는 않았습니다.

 유지에도 스탈랑처럼 용사를 구하려고 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하며 평생 스탈랑에게 죄책감을 가지며 살다가.

 능지형이 확정된 스탈랑이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하지 않게 하기위해 독약을 먹이며 눈물을 흘리는 엔딩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험 공부하다가 멘붕이 와서 그냥 얀데레로 바꿔버렸죠.

 멘붕의 증거로 안 그래도 엉망으로 쓰는 글이 더 엉망이 되어 버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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