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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갈색 어둠속의 악마. 그리고 광부.
글쓴이: SeriousM
작성일: 15-02-26 23:32 조회: 1,047 추천: 0 비추천: 0


흑갈색 어둠속의 악마. 그리고 광부.



어두운 갱도 깊은 곳으로부터 다급한 뜀박질 소리가 울려 퍼졌다철로가 깔려있는 갱도를 따라 뛰어나오는 뚱뚱한 체구의 광부그로즈니는 들고 있던 곡괭이도 뒤로 휙 집어던진 채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헐떡이며 칠흑같이 어두운 통로를 향해 크게 소리 질렀다.


"-봐아아아!!! -렉세이세묘노-광차 가동시켜여기서 빨리 빠져나가야 해!"


두터운 보호화를 신은 육중한 발을 거칠게 홱홱 놀릴 때마다 더러운 광부 옷 상의에서 삐져나온 그로즈니의 두툼한 뱃살이 출렁거렸다그로즈니는 그저 까마득한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뒤를 힐끗 돌아보다가 그 쪽에서 쩌적쩌적 하고 무언가 바스러지는 을씨년스러운 소리가 들려오자 이내 다시 겁에 질려 소리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그 순간 머릿기름과 석탄분진에 떡진 산발의 머리터럭이 눈앞을 가리자 그로즈니는 기겁하며 더러운 손으로 얼굴을 훅 훑어냈다그러자 그로즈니의 찡그린 얼굴에 검댕이 묻어 기묘한 모양의 마블링을 만들어냈다.


"알렉세이세모뇨프이봐?! 대답 좀 해보라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두운 통로를 한참동안이나 뜀박질한 그로즈니는 드디어 앞에 보이기 시작한 갱도 중간역의 불빛을 보고 다시 소리 질렀지만 아까처럼 통로의 그로즈니의 목소리만 웅웅 울릴 뿐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그리고 그로즈니를 뒤따르고 있는 어둠속에서 쩌적거리며 섬뜩한 소리를 내는 것들은 그와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으와아아아악!!!"


그로즈니는 백열등 불빛이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중간 역에 들어서기 직전 자신을 쫒는 그 무언가가 땟물이 잔뜩 탄 뒷덜미를 척 잡아채려 하는 것을 느끼고 몸을 앞으로 엎어지듯 날리며 철로에 퍽석 넘어졌다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것이 혹여 발목을 잡고 저 어둠속으로 다시 끌고 가지는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상상에 새된 비명을 꽥꽥 질러대며 철로를 잡고 필사적으로 기어갔다곧이어 그의 손에 석탄을 옮기는 광차를 움직이는 증기 보일러의 본체가 만져지자그로즈니는 허겁지겁 보일러를 그러안고 부들부들 떨며 흐느꼈다.


"올가... 으흑......"


보일러에 아주 미약하게 남아있는 온기만이 극도로 공포에 질린 그로즈니를 달랬다.


-----


그로즈니는 중간 역에 마련된 다 부서져가는 벤치에 걸터앉았다그리고 더러워진 손을 마찬가지로 더러운 바지자락에 쓱쓱 닦는 의미 없는 짓을 한차례 하고는 호주머니에서 종이주머니와 자그마한 양철 통조림 하나를 꺼내들었다종이주머니엔 둥그런 검은 빵이통조림엔 멋없는 글씨체로 아랄 캐비어’ 상호명이 인쇄되어 있었다이 캐비어는 일전에 그의 동료광부 알렉세이가 관리관 사무실에서 몰래 꿍쳤다며 자랑하던 물건으로이번 달 할당량을 다 채우고 잠시나마 갱에서 해방되는 날 집에 있는 값나가는 포도주와 함께 곁들여 먹을 것이라 호언장담하던 물건이었다한창 광차 보일러와 해후를 나누다가 정신을 차리고 철로 근처 돌무덤에서 통조림을 찾아낸 그로즈니는 친구가 아끼는 물건을 함부로 가지고 가는 게 영 찜찜했었지만갱도 저 밑에서부터 전력질주하면서 이곳까지 도망치는 와중에 땀을 한 양동이는 흘린 그로즈니는 짠 것이 몸살 나게 필요한 상태였기에 알렉세이에게 무언의 사과를 남기며 캐비어를 주머니에 챙겼었다.


그로즈니는 벤치 근처에서 또 용케도 찾아낸 티스푼만한 숟갈로 캐비어를 한술 떠 주먹만 한 검은 빵에 발라 한 입 베어 물었다.캐비어의 짭짤한 맛과 검은 빵에 들어있는 잘 갈리지 않은 호밀이 오득 씹히는 맛이 났다지금 먹고 있는 검은 빵은 오늘 아침 탄광으로 들어설 때 즈음 그로즈니의 여동생인 올가가 집에서 탄광까지 애써 걸어와 챙겨준 점심거리였다빵 굽는 게 아직 미숙한지라 만드는 빵마다 딱딱하고 거칠었지만 그로즈니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 만들어주는 음식이기에 맛없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로즈니는 빵에 캐비어를 얹어먹는 조금은 사치스런 점심을 먹으며 중간 역 역사 안을 슥 훑어보았다말이 좋아 '이지 사실상 광부들의 쉼터 목적이 더 강한대충 탄광을 널찍하게 파서 공간을 만든 게 전부인 곳이었다게다가 역에 있는 광차라곤 석탄을 내가는 낡디낡은 작은 광차 하나가 전부아까 그로즈니가 살펴 본 결과 그마저도 부품 몇 개가 나갔는지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았으므로이곳을 탈출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꾀죄죄한 역 내부나 고장 난 광차보다 그로즈니를 더 실망시키게 만든 것은 역 내에 그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밖에서 끌어들어오는 전기로 작동되는 백열전구 몇 알만이 이곳을 비출 뿐그의 동료인 알렉세이나 세묘노프심지어 탄광 속을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쉬고 있는 광부들을 괜히 타박하며 꼴 뵈기 싫은 행동만 하는 말라깽이 관리관 드라고비치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설상가상으로 그 많던 백열전구들은 통로 쪽 것들이 줄줄이 다 파손이 됐는지 단선이 됐는지 역 안쪽 것들만 덩그러니 빛나고 있다는 점도 실망감에 한 몫 했다고로역에서 갱도로 내려가는 통로나 지상으로 올라가는 통로나 모두 다 칠흑 같은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그로즈니는 한숨을 푹 내쉬며 빵을 한 입 더 베어 물려 했다.


그러나 짧은 여유도 거기까지역 내부의 불이 갑자기 꺼지고 말았다.


쩌저적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우두둑하며 벽 뚫리는 괴상하고 다분히 위협적인 소리가 깜깜한 시야 가운데 사방에서 점점 그로즈니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로즈니는 먹던 빵도 놓치고 그아아-앗 소리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그 갑작스런 움직임에 앉아있던 부실한 벤치도 무너져버리며 그로즈니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쿵 찧어버렸다.섬뜩한 소리는 아직 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소리의 근원이 그로즈니의 웅크린 몸까지 닿고 말았다뾰족하고 거친 악마의 손가락 같은 그것들이 그로즈니의 몸을 발견하고 옭죄려 했지만 그로즈니는 새된 비명을 질러대며 무기력하게 발버둥 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무슨 조화인지 역내의 백열전구가 다시금 켜지며 역 내부를 비췄다악마의 손길들은 끼이이익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통로 밖으로 후퇴해 나갔다그리고 그로즈니는 눈꺼풀에 비치는 빛 덕에 용기를 내어 뜬 눈을 통해 도망치고 있는 그 악마의 손길들을 목격했다검은 나무뿌리처럼 생긴 기괴한 놈들갱도의 막장에서 갑자기 벽을 뚫고 나타나 한창 작업을 하던 그로즈니와 그의 동료들을 찌르고 목 졸라 죽이던 그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아까의 고장 때문인지 전구 몇 알은 완전히 꺼져버려 한 층 어두컴컴해진 역내를 바라보며 그로즈니는 깨달았다저 악마들은 빛 아래서 그 혐오스런 손길을 뻗칠 수 없다는 것을그리고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가뜩이나 조금 있는 캐비어가 땅바닥에 제대로 엎어져서 지금은 그로즈니의 오른발에 밟혀있었다는 것을그로즈니는 알렉세이에게 또 다시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


역 내의 캐비닛과 보관함들을 이 잡듯 뒤진 끝에결국 마침내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발견한 그로즈니의 얼굴에 검댕 묻은 얼굴에 안도 섞인 주름이 옅게 지어졌다.


그로즈니는 갱도 깊은 곳의 발파작업에나 쓰이는 두터운 보호복을 껴입고 안전모의 턱끈을 꽉 조여 맸다끈들 주위로 삐죽삐죽한 수염이 붙은 살진 턱살이 보기 안 좋게 툭툭 튀어나왔지만 상관하지 않았다그리고 역 내부에 비치된 전동드릴을 움직이는 동력기관에 연결된 증기 배관을 분해해 그 앞에 개폐기가 달린 어댑터를 끼웠다이제 어댑터의 손잡이를 당길 때마다 개폐기가 열리며 발화점에 가까운 뜨거운 증기가 고압으로 뿜어져 나올 것이었다방어구에즉석 제작한 살벌한 무기에이렇게 그로즈니가 준비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광차에 달린 보일러의 수리 때문이었다.


그로즈니는 석탄을 가득 채운 양동이에 불붙은 성냥을 넣어 불을 올린 뒤 갱도로 내려가는 쪽 통로에 불붙은 석탄들을 흩뿌렸다석탄의 새파란 불길로 밝혀지는 통로 안에서 괴기스런 나무뿌리들이 불빛을 피해 특유의 쩌적소리를 내며 좌우로 물러섰다그리고 그 불길의 끝엔 손바닥만 한 황동 톱니바퀴가 어슴푸레하게 보였다광차의 보일러 수리에 필요한 마지막 부품이었다톱니바퀴를 확인한 그로즈니는 타오르는 석탄을 한 차례 더 통로에 쏟아 부었다그리고 배관의 어댑터를 단단히 잡은 채 결의에 찬 표정으로 통로를 바라보며 몸을 조금 낮췄다.


"이야아아아...!!!"


그로즈니는 괴성을 지르며 그대로 통로 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도깨비같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저 멀리 톱니바퀴를 향해 달려가는 그로즈니를 보고 악마들이 미약한 석탄의 불빛을 뚫으며 용감하게 그 손길을 뻗쳐왔지만 그로즈니가 배관에서 뿜어대는 지옥불보다 뜨거운 증기에 다시 어둠속으로 쫒겨나갈 뿐이었다숨을 헐떡이며 황동 톱니바퀴에 다다른 그로즈니는 톱니를 황급히 주워들고 다시 역 내로 재빠르게 발길을 돌렸다.


마침 석탄의 불길들은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고그로즈니가 역 내에 막 들어설 쯤엔 불길은 아예 싹 꺼져버리고 말았다그로즈니는 왁왁 욕설을 내뱉으며 사방으로 증기를 뿜어낸 끝에 가까스로 역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신의 가호와 같은 백열전구의 빛 아래로 들어온 그로즈니는 배관을 던져버리고 광차의 내부를 확 열어젖히며 수리를 시작했다복잡한 기관 한참 안쪽에 있는 이 톱니가 어떻게 저기까지 굴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속까지 분해해야 했기에 그로즈니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여동생 올가의 얼굴을 꼭 살아서 다시 보겠다는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동료 알렉세이에게 캐비어 값을 꼭 갚겠다는 일념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의 의도를 어둠속의 악마들도 알아챘는지 역 내부의 전구들은 갑자기 심각한 수준으로 깜빡깜빡 점멸하기 시작했다분명 아까의 정전도 필시 이것들의 소행이었을 터였다꺼졌다 켜졌다를 빠르게 반복하는 불빛 아래 빠른 손놀림으로 수리를 하고 있는 그로즈니의 모습이 마치 스톱모션 영화를 보는 듯 했다그리고 점멸을 거듭하는 전구 아래 악마의 손길들도 가만있지 않고 어둠속에서 빛 속으로 분주하게 왔다갔다 움직이는 것을 반복하며 그로즈니를 노리고 있었다.


마침내 수리를 끝낸 그로즈니는 재빨리 보일러를 가동시켰다그러나 광차의 가동을 위해 보일러를 완전히 예열시키려면 아직 몇 분이 더 남아있었기에그로즈니는 아까 던져둔 증기배관을 도로 집어 들고 갱도 안쪽과 출구 쪽 어둠을 향해 증기를 마구 뿜어댔다분노 섞인 욕설과 고함은 덤이었다.


"뒈져버려뒈져버려이 버러지 새끼들아!"


검은 뿌리들이 뜨거운 증기를 맞고 주춤대던 사이광차의 보일러는 예열을 완료하며 기계에 달린 작은 종을 땡 하고 울렸다맹렬하게 증기가 뿜어지는 어댑터의 주둥이 소리에악마들이 움직이는 특유의 소름끼치는 소리에자신이 내뱉는 욕설과 고함소리에 윙윙거리는 갱도 속에서 그로즈니는 용케 그 소리를 듣고 증기배관의 어댑터를 확 잡아 빼 던지고 광차를 향해 뛰었다마개 없는 배관에서 마구잡이로 분사되는 증기들이 악마들에게서 도망치는 그로즈니의 뒤를 엄호했다.


그로즈니는 광차에 올라타 출발 레버를 힘껏 당겼다그리고 그와 동시에 역 내의 백열전구들도 마침내 악마들에게 함락당해 그 역할을 다 하고 소등되어버렸다광차의 바퀴는 고속회전하며 철로를 긁어 무수한 불똥을 튀겼다곧이어 광차는 광차안의 그로즈니를 노리고 달려드는 혐오스런 뿌리들을 모조리 박살내버리며 앞으로 달려나아가기 시작했다그로즈니는 광차 짐칸 안에 콕 틀어박혀 몸을 웅크리곤 고속 이동하는 광차가 앞길을 가로막는 것들을 모두 밀어내며 달려가는 소릴 잠자코 듣고 있었다광차에 올라서며 무심결에 집어든 삽자루는 품에 꼭 안고 있었다.


-----


몇 분이나 지났을까광차 위로 보이는 천장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암흑에서 어슴푸레한 검은 색으로 바뀌자 그로즈니는 용기를 내어 광차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철로의 끝에 하얀 빛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탄광의 막장에서부터 악마들에게 쫓기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미소가 그로즈니의 입가에 번지기 시작했다드디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야오빠잘 알잖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집에서 덜 식은 쿠키를 그로즈니가 집어먹으려고 하는 때 같이 성급한 짓을 할 때 여동생이 평소에 습관적으로 자신에게 하던 말이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생각났던 것이었다그로즈니는 그 이상한 낌새 때문에 찝찝해 하며 광차가 질주하는 철로를 눈을 찌푸리며 자세히 보았다출구의 빛과 자신이 탄 광차의 사이에 놓인 철로의 땅속에서 무언가가 움질움질 올라오고 있었다그로즈니의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철로 밑의 땅에서 올라오는 저것은 분명 아까까지 자신을 집요하게 쫓던 악마의 뿌리가 분명했다.


"...어윽이런 빌어먹으을!!!"


그로즈니는 광차의 간이 브레이크 레버를 당기려 손을 뻗었지만 뿌리는 무자비하게 철로를 이탈시키고 박살내버리며 올라왔다휘어져버린 철로에 다다를 때까지 감속하지 못한 광차가 철로를 이탈하며 엎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그로즈니는 거세게 구르는 광차에서 비명을 지르며 튕겨져 나왔다.


그로즈니는 어슴푸레한 허공을 붕 날려가다가 차가운 돌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곧 이어 안 아픈 곳이 없는 몸을 이곳저곳 부여잡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로즈니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빛이 바로 앞에 있었다다 탈출해놓고 여기서 붙잡힐 수는 없었다그로즈니는 세차게 발을 내딛었지만 방금 철로를 박살낸 뿌리줄기는 빠르게 뻗쳐 와 그로즈니의 발목을 휘어잡아 넘어뜨렸다마치 일전에 역에 들어설 때처럼 고꾸라진 그로즈니는 다른 쪽 발로 잡힌 발목의 뿌리를 퍽퍽 밟으며 소리 질렀다다행히도 검은 뿌리는 거친 저항에 잡은 발목을 놓아주는가 싶었지만 그로즈니도 잘 알고 있듯 그 뿌리는 악마의 손아귀였다뿌리는 발목을 놓자마자 대신 그로즈니의 목덜미로 그 뾰족한 끝을 향했다.


거친 악마의 손길이 그로즈니의 목을 졸라왔다그로즈니는 폐 속으로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숨을 들이쉬려 꺽꺽 애쓰며 두 손으로 검은 뿌리를 이리저리 잡아당겼다그러나 막장에서 일하던 근육질의 힘센 장정들도 손쉽게 목졸라 죽이고 찔러죽이던 이들이었다저항의 몸짓은 그저 숨을 더 막히게 할 뿐그로즈니의 살찐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이대로 있다가는 몇 분아니몇 초 안되어 목이 꺾여죽던가 숨이 막혀 죽을 것이 자명했다그로즈니는 빛이 보이는 출구까지 도달해서 결국 이 꼴이 난 자신과 밖에서 자신을 기다릴 여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솟구쳤다.


"끄윽... ..미안... 끄으윽,.."


그대로 눈동자가 눈꺼풀 뒤로 넘어가기 직전그로즈니는 자기 발치에 놓인 무언가를 인식했다광차에 올라탈 때 무심결에 집어 들었던 삽이었다그로즈니의 빨갛게 충혈된 동공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여동생이 말한 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님을 그로즈니는 되새기며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발등으로 삽자루를 차올렸다절모하게 삽자루가 손에 닿자그로즈니는 두 손으로 삽을 잡고 이제 곧 터져버릴 듯 빨개진 눈으로 조준하여 자신의 목을 조르는 뿌리의 줄기를 향해 삽날을 거세게 내리쳤다죽어도 풀 수 없다고 느낄 정도의 힘으로 목을 졸라대던 뿌리는 어이없게도 삽날에 무참히 쪼개지기 시작했고몇 차례 더 휘두르자 무참히 부서져 버렸다그로즈니는 그제야 석탄가루 섞인 광산의 공기를 맘껏 들이킬 수 있었다전직 군인이던 동료 세묘노프가 언젠가 광산 주변의 잡초들을 능숙하게 삽날로 한방에 쳐내면서 말 했듯 삽은 훌륭한 벌목도구였다그로즈니는 반 토막 나 꿈틀대는 나무뿌리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크게 휘두른 삽날로 수차례 땅에서 솟은 뿌리를 내리쳐 말 그대로 개박살을 내버렸다잘린 부분을 버리고 땅 속으로 뿌리줄기가 다시 숨어드는 것을 보고 그로즈니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그리고 삽자루를 튼튼히 잡은 채 탄광의 출구를 향했다.


"... 헤헤헤... 드디어...밖이야..."


그로즈니의 입에서 절로 헤실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드디어 출구가 지척이었다좀 더 걸어가니 밖에서 들어오는 환한 빛줄기가 눈이 시릴 정도로 쪼여왔다그 빛을 받고 있자니 광차에서 나가떨어져 다친 몸이나 아까 꽉 졸려 시퍼렇게 멍이 든 목이나 그 밖의 까진 상처들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그로즈니는 그대로 빛을 향해 뛰었다.분명 그 빛의 너머에그 너머에 있는 집에서 여동생이 그로즈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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