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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님과 마왕님의 대화
글쓴이: K미르
작성일: 15-02-07 14:12 조회: 1,262 추천: 0 비추천: 0

 “여어, 마왕.”

 “꽤나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네는군. 용사.”

 “이제 와서 뭘.”

 “그렇군. 이제 와서 별 의미는 없겠지.”


 나는 웃음으로 말을 건넸고,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와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와 그는 서로 나무 의자에 등을 기대어 서로를 마주볼 뿐이다. 은은한 촛불 하나만이, 어두컴컴한 방을 비추고 있다. 


 “일단 한 잔 어때?”


 나는 주전자에 가득 담겨 있는 술을 대접에 따랐다. 술이 아슬아슬하게 대접 턱에 닿았다. 크게 움직이면 술이 흘러내릴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마다치 않고 대접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대접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그 호쾌한 모습에 나는 입을 벌리고 웃었다. 그는 바닥이 보이는 대접을 나에게로 주었다. 그것을 받아들었다. 


 “?”

 “뭐해, 내가 따라줬으니 당신도 나에게 따라줘야지.”

 “당당한 놈이로고.”

 “이제 와서 뭘.”

 “하긴, 너는 처음부터 그랬지.”


 그는 자조하며 거리낌 없이 주전자를 들어 내가 들고 있는 대접에 술을 따른다. 그처럼 단숨에 들이켰다. 다시 바닥이 보이는 대접을 아무렇게나 던졌다. 쨍강, 하는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는데 많은 일들이 있었어.”

 “많은 자들이 있었지.”

 “많은 자들을 잃었고.”

 “많은 시련이 있었지.”

 “많은 시련을 넘었어.”

 “수고했다, 용사.”

 “내가 할 말이야, 마왕.” 


 서로가 서로를 향해, 경의를 담은 인사를 전한다.


 마주 보고 있는 눈동자에 서로의 모습이 비친다. 나도 그렇고, 그 역시 백발이 성성해 있었다. 세월의 흔적들이 느껴진다. 정말로 대화대로였다. 내가 그와 대립하면서 겪은 모든 일들은 우리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꽤 궁금해지는군. 어쩌다가 네 놈은 용사가 됐는가. 그리고 어쩌다가 나는 마왕이 됐는가.” 

 “흐음. 마왕, 그건 좀 이상한 질문이지 않아?”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피차 같은 생각이었었는지, “잊어다오. 갈 때가 되다보니 이런저런 말들을 내뱉게 되는군.” 이라며 말을 돌렸다. 


 “대답을 안 한다고 하지는 않았어.”

 “그런가.”

 “나는 네 과거를 몰라, 마왕. 그렇지만 내 과거는 알지. 그렇기에 나는 내가 왜 용사가 됐는지를 대답할 수 있어. 그건 마왕, 너도 똑같을 거야. 생각해봐. 우리는 수십억 중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존재들이야. 동시에 정점에 자리하는 존재지. 하지만 마왕, 우리는 서로 정점에 선 무리들이 달랐어. 나는 인간이었고, 당신은 마족. 그것만으로 나는 용사가 됐고, 마왕이 된 거야.”

 “장광설이구나. 너는 예전부터 그랬지. 하지만 뭐, 맞는 말 같다고 생각되는 게 더 우습군.” 

 “넌 항상 내 언변에 넘어갔어, 마왕.”

 “언변이 아닌 그 근거 없는 자신감에 넘어갔다고 해야 옳은 것이겠지.”


 “우하, 뼈아픈 돌직구네.” 그의 말에 나는 오버하며 웃었다. 그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마왕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그래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당신이 넘어가줬기에 우린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가 없잖나.”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저기 마왕, 이건 좀 멍청한 질문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새삼스럽게 일일이 말하지 말거라. 네놈의 말 중에 태반은 멍청한 질문이었으니 말이다.” 

 “우하핫, 가차 없네. 음~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며 당신들이 지켜야 할 사람을 지켰어?”

 “글쎄다. 꼭 그런 것이 필요한가?”

 “흐응?”


 나는 흥미를 가지며 턱을 괴었다. 


 “분명 나는 마왕 된 입장으로서 마족들을 지켜야 했지. 그것은 속박이며 의무였다. 그런 것에 딱히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잖느냐. 내가 어떠한 생각을 가진다고 한들, 내가 그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듯이, 지키는 것뿐이다. 그런 것에 딱히 생각이 필요하지는 않잖은가.”

 “그래도 그런 것이 있으면 뭔가 의지되지 않아? 기대고 싶어질 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줄 수도 있잖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응?”

 “고작 그런 의무 따위에 가지는 생각이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버팀목이 되어주었어.”

 “그런가. 그것이 너와 나의 다른 점이겠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들은 나 역시도.


 그래 처음부터 나는 그와 많은 것이 달랐다.


 태어난 날짜도, 태어난 곳도, 부모님도, 받은 애정도, 처음으로 만난 친구도, 사랑한 사람도, 지켜야 할 긍지도, 맹세도, 사람들도 모두 달랐다. 그럼에도 그와 나는 현재 이렇게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군.”

 “아직 시간은 남아 있어. 조금만 더 얘기를 나누지 않겠어?”

 “더 이상 정을 쌓기는 꺼려진다만.”

 “하하, 나는 조금이라도 더 정을 쌓고 싶은데.” 

 “부질없는 짓을 즐기는 자로구나.”

 “그것이 나, 용사의 특징이지.”

 “나쁜 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군.”


 그렇다. 정을 쌓고자 하는 것이 나의 특징이며 장기다.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이 선이든 악이든 정을 쌓는다. 그 결말이 해피엔딩일지도, 배드엔딩일지도 모르지만 쌓고 보는 것이 내 고질적인 버릇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누구와 정을 쌓는다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런 내 성격에 나는 호감을 가지고 있다. 남은 어떨지 몰라도.


 분명 이런 내 성격이 몇몇 사람에겐 해가 되고 귀찮을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정을 쌓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용사는 언제나 밝은 편에 서 있다. 밝아야 한다. 항상 밝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정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정을 쌓아도, 그 어떤 누구도 내 모험에 끝까지 따라오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정을 가장 쌓지 않았던 그만이 내 모험의 종지부를 장식하려 하고 있다. 


 절로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모순이라고 해야 할 것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웃었다. 나의 웃음이 멈출 때까지, 언제까지고 그는 지켜봐주었다.  


 슬슬, 최종장이 다가오려 한다. 


 “마왕, 당신은 행복한 삶을 살았어?”

 “행복하다고 하면 그것은 행복한 삶이고, 행복하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행복하지 않은 삶이 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것이다. 네놈은 어떤가, 용사.”


 의도치 않았던 역질문에 나는 할 말을 찾기 시작한다. 모쪼록 좋은 말들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끙끙 대며 굴리고 있자, 


 “그런가, 생각해야 하는가.”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쓴웃음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나를 보며 그런 웃음을 짓는 거지? 아냐, 나도 행복해. 엄청나게 행복해. 당신 못지않을 정도로 나는 행복해. 하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 턱 걸려 버린다.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이미 답은 내려져 있다, 용사여. 너는 인류를 구했다. 하지만 평화로워진 인류는 너를 버렸지. 자, 답에 가까이 다가서게 해주었다. 물으마, 네놈은 행복한 삶을 살았는가.”


 말이 하나하나 비수가 되어 나를 찔러간다. 육체적인 아픔은 없다. 하지만 마음 한 쪽이 가차 없이 깎이고, 파이고, 잘려나가는 아픔이 느껴졌다. 


 그래,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이곳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마왕성이다. 한 때 호화로운 금은보화들로 가득 찼던 마왕의 방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 금은보화도 찾아볼 수 없다. 흡사 지금의 내 방을 보는 듯한 착각을 받는다. 


 나는 분명 마왕에게 이기고 인류를 구했다. 하지만 인류는 마왕의 말대로 나를 버렸다. 평화로워진 세상에 ‘용사’라는 존재는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절대선이 필요한 것은 절대악이 있을 때 뿐. 절대악이 무너진 지금, 절대선은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 눈앞의 있는 그, 마왕은 나에게 패배하여 마족에게 버림받았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나, 용사는 마왕에게 승리하여 인류에게 버림받았다. 


 웃긴 일이다. 승리하여도, 패배하여도 나와 그는 버림받았다. 이 얼마나 우습고, 비열하며, 추악한가. 그들이 용사를, 마왕을 필요로 할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의 이름만을 외치던 그들은 더 이상 외치지 않는다. 울부짖지 않는다. 참으로 덧없는 일이다. 


 “네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 따위 없지 않느냐.”

 “아아….”

 “다시 말하마.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다.”

 “그렇네. 더 이상은 정을 쌓는 것도 무리네.”

 “그것을 의도했던 것이다.”

 “누가 마왕 아니랄까봐.”

 “그래, 난 이렇기에 마왕이 된 것이다.”


 나와 그는 서로의 허리춤에 차여 있던 검집에 들어 있는 검을 뽑았다. 스르릉, 하는 싸늘한 금속음이 예전의 감각을 생생하게 되살아나게 한다.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에서 파도처럼 흘러내려간다. 


 “여어, 마왕. 이제 우리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어. 그러니까 부탁하는 건데, 나와 함께 모험을 떠나지 않겠어?”  

 “용사여, 그대의 말대로 우리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답하마.” 


 ……. 


 그는 대답했다. 내가 기다렸던, 그리고 원했던 답을 말해주었다. 충분하다. 그 대답만으로 나는 구원받았다. 그 역시, 나의 부탁으로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용사인 나와 마왕인 그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간다. 돌아오기 시작한다. 대립했던 그 때의 시절이. 아무리 투구를 쓰고 갑주로 무장한다고 한들, 끝에 가면 실오라기만이 남아 서로의 얼굴이 드러났던, 그때 보았던 그 얼굴로.


 검날을 맞댄다. 


 그—마왕은 웃었고, 나—용사는 웃었다. 


 모험의 종지부를 찍는다. 길고 길었던 대서사시는 마침내 끝이 난다. 하지만 모두들 그런다. 끝은 새로운 시작, 이라고. 어릴 때부터 그 말만을 나는 언제고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이제 내 모험은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내 모험은 끝나지 않는다. 


 “자, 마왕. 모험을 떠나자.”


 모험을 떠난다.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떠난다. 곁에 그 어떤 버팀목보다도 튼튼한 버팀목이 있다. 나 역시, 어떠한 버팀목보다도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는 모험을 떠난다. 이상향으로 손을 뻗는다. 


 우리는 모험을 떠난다. 백일몽을 좇는다. 


 우리는 모험을 떠난다. 눈이—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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