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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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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ROBO - 上
글쓴이: 라노베니아
작성일: 14-12-13 18:45 조회: 887 추천: 0 비추천: 0
ROBO



1

 아는 로봇이 싫었다.
 3살 때 부모님을 잃었는데, 로봇 때문이었다.
 무시무시한 로봇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미국도, 한국도, 전부 사라져버렸다.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 민족도 없어졌다. 지구상에 남은 건 딱 두 가지. 인간과 로봇이었다.
 로봇은 딱 세 종류였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인간들을 감시하는 치안유지로봇, ‘경계선’에 서서 정찰을 하는 주둔병사로봇, 그리고 마지막 그 모든 로봇들을 조종하고 관리하는 로봇들의 머리, 관리자 어드민(ADMIN) 그렇게 세 종류가 있었다.
 인간들은 로봇이 지정해주는 장소에서만 마을을 꾸려 살아갈 수 있었다. 딱 경계가 있는 것이다. 로봇이 단단한 강철로 된 벽을 만들어 그곳을 지켰다. 그게 ‘경계선’이었고 주둔병사로봇이었다.
 노아는 자기보다 네 살 위인 누나랑 단 둘이서 힘겹게 살아갔다. 하지만 그렇게 힘겹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정이 많고 친절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구는 이제 딱 두 가지 분류밖에 없었다.
 로봇과 인간.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학교가 끝났다.
 선생님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신호로 아이들은 하나같이 질세라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갔다. 어느 시대든 아이들은 똑같았다.
 노아도 가방을 메고 친구랑 교실을 나섰다.
 “아, 오늘도 지루했어. 다 아는 내용인데 매일매일 지루하게 설명을 하셔.” 노아는 터벅터벅 걸으면서 말했다.
 “그, 그래……? 나는 하나도 모르겠던데…. 몇 번이고 들어도 이해가 안 돼.”
 친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노아의 불평을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마 반 아이들 모두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노아와 그의 친구는 교문을 나섰다. 교문 이래 봤자 사실 납작한 나무판으로 지어진 부실한 울타리에서 유일하게 뚫려있는 곳일 뿐이다. 노아는 괜히 울타리를 툭툭 건드리면서 걸었다. 건드릴 때마다 울타리가 전체적으로 살짝 흔들렸다. 겁이 난 친구는 노아를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매번 소용없었다. 노아는 묵묵부답 울타리를 건드리면서 걸을 뿐이었다.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노을이 마을을 뒤덮어 온 세상이 주홍색으로 물들었다.
 마을 이래 봤자 볼품없는 황토색 땅 위에, 나무로 된 부실한 집이 수십 채 있을 뿐이었지만 주홍색으로 빛나니 그것도 깨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노아는 언제나 걷던 길목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는 들은 적이 있다. 로봇이 누군가를 때릴 때 나는 둔탁한 소리.
 노아는 망설임 없이 달려 나갔다. 친구가 이번에도 또 말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달리면서 끄집어낸 손에는 주먹만 한 공이 들려있었다. 빨간 빛을 내는 버튼이 달린 쇠로 된 공이었다.
 소리가 나는 곳에 도착해보니 역시나 로봇이 사람을 때리고 있었다. 그 무겁고 커다란 주먹으로 소녀의 배를 때리고 있었다. 한 대. 두 대. 맞을 때마다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고, 쓰러진 소녀를 다시 들어 올려 똑같이 때렸다.
 노아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주저 없이 쇠공을 던졌다. 던지기 전에 버튼을 누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쇠공은 로봇을 지나쳐 저 멀리 골목길 저편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게 노아의 의도였다. 쇠공이 바닥에 닿자 한순간 삐─ 하는 신호음이 멀리서부터 작게 들려왔다. 그 후, 소녀를 때리던 치안유지로봇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가짜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사람 같지만, 전혀 사람 같지 않아서 왠지 웃겼다.
 치안유지로봇은 뻣뻣한 두 다리를 느릿느릿 번갈아 움직이면서, 쇠공이 날아간 곳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노아는 낮게 웃었다.
 하지만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너덜너덜해진 소녀가 땅에 쓰러져 있다. 노아는 무서운 표정으로 소녀에게 달려갔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소녀의 옷은 이미 반쯤 찢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시퍼런 멍 자국 같은 게 드문드문 보였다.
 노아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어른들은커녕 그의 친구마저 없었다. 진즉에 도망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노아는 소녀를 업기로 했다. 소녀는 자신과 비슷한 몸집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땀이 주륵 주륵 흐르고 심장이 아파왔지만, 그보다도 더하게 가슴이 아파왔다. 노아는 이를 악 물면서 가까스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디뎠다.
 해가 다 저물었다. 밤하늘은 별들로 반짝였다. 달은 보이지 않았지만 은하수는 또렷이 보였다.
 노아는 한 천막의 문을 비집고 소녀를 엎은 채로 들어갔다. 그곳은 누나가 일하는 작은 병원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누나가 바로 노아를 알아차리고 달려와 주었다. 누나는 눈이 고구마만큼 커져서 노아의 이름을 불렀다.
 “누나, 이 아이…. 녀석들한테 당해서…….” 노아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겨우겨우 말을 이었다.
 “부탁이야. 도와줘…….”
 “알았어, 알았으니까. 나한테 맡기고 너는 저기서 쉬고 있어.” 누나는 소녀를 안아들면서 말했다.
 누나는 소녀를 안은 채 천막에 연결된 다른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노아는 숨을 고르면서 나무의자에 앉았다. 나무의자가 삐걱거리는 것과 노아의 한숨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부탁이야, 누나.”
 노아는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그 아이를 살려줘…, 하고. 노아는 두 손을 꼭 마주잡고 기도를 했다.
 누구에게? 이제는 있지 않은 달에게.
 의외로 얼마 안 돼서 누나는 연결된 천막에서 나왔다. 물론 얼마 안 됐다는 건 노아의 생각이었다. 기도를 올리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이었다.
 누나 등 뒤로 환자복을 입은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다행이 힘든 기색 하나 없이 건강한 모습이었다. 노아는 기뻐서 웃음 가득한 얼굴로 소녀에게 달려갔다.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소녀는 갑자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여자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그러더니 빼꼼하고 얼굴을 내민다.
 노아는 당황해서 발을 멈추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연신 “어…, 어….”하면서 굳은 표정으로 소녀의 얼굴을 삐걱삐걱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몰랐다. 처음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누나가 말을 꺼냈다.
 보다 못한 누나가 대신 이야기해주었다. 로봇에게 심한 꼴을 당하고 있던 걸, 길을 지나가던 노아가 보고 구해줬다고. 짧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눈은 어쩐지 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 움직임도 어쩐지 굼떴고, 얼굴 표정에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딱히 아파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노아는 걱정하지 않았다.
 “누나, 그럼… 이제 이 애는 집에 가도 되는 거야? 확실하게 다 나았지?”
 “응. 다 나았어. 그런데…” 누나는 말을 흐렸다.
 노아는 고개를 기울였다. 누나가 뭘 말하려는 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은 것이다.
 “이 아이는 집이 없대.”
 그 말은 꽤 충격이었다. 이 마을에 고아 같은 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인정은 후했다.
 “정말 집 없어?” 노아는 아직도 누나 등 뒤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소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소녀는 여전히 말없이, 고개만 세로로 끄덕일 뿐이었다.
 노아는 눈썹을 한 번 찡그렸다. 그리고 이내 누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집에 머물게 해주자, 누나.”
 “음….” 누나는 잠깐 고민하더니, “…알았어. 일단 그럼 집에 가있어. 좀 있다 퇴근하고 가서 밥 지어줄게.”하고 예상외로 쉽게 허락해주었다. 노아는 기뻐하기 이전에 고개부터 갸우뚱했다. 누나가 이렇게 쉽게 허락해주다니, 어쩐지 몹시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어쨌든 노아는 소녀를 데리고 천막을 나와 집을 향해 걸었다. 소녀는 처음에 그렇게 몸을 피했던 것 치고는 노아의 뒤를 순순히 따라주었다. 여전히 표정도, 눈빛도,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옜지만 노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은 저마다 다양했고, 각자 생각하는 바도 달랐다. 노아는 소녀의 그런 부분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다.
 노아는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소녀를 보았다. 생각해보니 소녀의 이름을 몰랐다. 같이 생활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서로 이름을 모른다는 건 웃긴 일이었다.
 “나, 노아라고 해. 너는?”
 “…….”
 소녀는 가만히 투명한 시선만을 던졌다.
 노아가 재차 묻자, 그제야 소녀가 입을 열었다.
 “아리….”
 뒤의 말을 흐리면서 한차례 갸웃하더니, “리이~?”하고 말꼬리를 올렸다. 마치 상대에게 묻는 것 같았다.
 “아리이~?” 노아도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그러자 응, 하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노아는 조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리인 건지, 아리이인 건지, 또는 아리이~?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노아는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그런 걸로 고민하는 자신이 바보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아리’가 맞겠지, 뭐.
 노아는 아리를 데리고 집에 들어갔다.
 노아의 집은 누나와 단 둘이 살기에는 조금 넉넉한 크기였다. 그래도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고, 딱 3명이 살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부실한 나무집 치고는 무려 2층이나 돼서, 1층은 거실 겸 부엌, 누나의 방 이렇게 있었고 2층은 노아의 방으로 쓰고 있었다. 노아의 방은 혼자 지내기에는 조금 넓은 편이었다.
 마침 딱 아리가 들어앉으니 보기가 좋았다. 노아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리며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조금 있으면 누나가 와서 밥지어줄 거야.”
 노아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네모난 파란색 물체를 보면서 말했다. 시계였다. 초침도 없고 숫자도 없지만 노아는 그걸로 시간을 확인했다.
 “먼저 씻고 있을까?”
 노아는 아직도 방 한가운데서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아리를 보다 못해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리는 역시 대답이 없었다.
 “먼저 씻을래? 어잇 차.” 노아는 침대에서 펄쩍 일어나더니 아리를 욕실로 안내했다.
 1층의 부엌 옆에 나란히 붙은 그 욕실은 샤워 부스가 하나 있을 뿐인 매우 좁은 곳이었다. 욕실 문 앞에 지저분한 커튼이 쳐져 있어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가구도, 도구도, 집도 모두 나무였지만 샤워기와 부엌의 수도꼭지, 화장실의 변기만큼은 쇠로 되어있었다. 로봇은 물 공급만큼은 철저하게 관리해주었다.
 “그럼… 아, 잠깐만.” 노아는 아리를 샤워 부스 안으로 안내하고는 1층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그리고 금방 다시 돌아왔다. 노아의 손에는 원피스 한 벌이 들려있었다. 아무 장식 없는 노란색 천조가리였지만 생김새는 원피스였다.
 “이거 누나가 어렸을 때 입었던 건데, 소중한 건지 아직도 갖고 있대.”
 노아는 문 앞에 옷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 발짝 나와서 커튼을 쳤다.
 “다 씻으면 그 옷으로 갈아입어.”
 “응.” 아리는 이번엔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그대로 노아는 별 생각 없이 아리가 옷을 벗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다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뭐지…, 굉장히 두근거려.” 노아는 중얼거렸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가보다. 평생 살면서 겪지 못했던 경험을 지금 몇 번째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호기심 많고 항상 새로운 걸 찾아다니는 자신에게 그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근거림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곧 알 수 있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까운 시일 내로. 꼭.
 노아는 책상에 앉아 바로 앞에 열린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하늘 사이로 무수한 별들이 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 빛은 과거의 것이다. 노아는 흐리멍덩한 얼굴로 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별을 보는 것도 지루해질 때쯤, 2층으로 올라오는 작은 발소리가 들려 노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있자, 아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야아아!” 노아는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치면서 재빨리 책상 위에 머리를 묻었다.
 아리는 알몸이었다.
 “무, 뭐하는 거야! 왜 옷 안 입었어!”
 “옷?”
 모르겠다는 듯이 되묻는 아리에게 질려하면서 노아는 손을 더듬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손수건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눈 위에 가리면서 노아는 아리 쪽으로 고개를 돌려 고함치듯이 말했다.
 “아까! 내가 입으라고 준 옷 말이야! 문 앞에 뒀잖아?”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아리의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들려왔다.
 “찾아볼게.”
 “어, 문 바로 밑에 뒀으니까 빨리 찾아서 입고 와.”
 “응.”
 작은 발소리가 계단 밑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노아는 손수건을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가슴이 죄여온다.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버렸다. 이 기분은 뭘까, 노아는 괜히 가슴께에 손을 얹고 옷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쩐지 별들이 더욱 밝아진 느낌이었다.

2

 “발명?”
 “그래.”
 노아와 아리는 저녁을 먹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노아는 오자마자 책상 자리에 앉았다. 아리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천천히 번갈아가며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표정 없이 하는 게 꼭 무릎 운동이라도 하는 것 같다고 노아는 보면서 생각했다.
 “널 구해줄 때 쓴 폭탄도 내가 만든 거야.” 노아는 조금 자만해져서 가슴을 젖히며 강조했다.
 하지만 아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발명해서 뭐하게?”
 다른 질문을 받고 싶었는데…, 노아는 맥이 빠져서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대답했다.
 “경계선.”
 “경계선?” 하고 아리는 물었다.
 아리는 노아를 쳐다보았다.
 “경계선을 넘어보는 게 내 꿈이야. 그 너머엔 분명 말도 안 되게 멋진 뭔가가 있을 거야. 뭐, 어른들은 이웃마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노아는 아리를 마주보며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무도 실제로 가보진 않았잖아. 모르는 거야.”
 아리의 눈동자에 노아의 얼굴이 비쳤다.
 아리는 말없이 침대 끝에 앉아 있기만 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노아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자야 될 시간이었다.
 “이제 그만 자자.” 노아는 의자에서 내려오면서 말했다.
 “응.” 아리는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노아는 당황해서, “무, 뭐하는 거야. 여기서 자려고…?”
 당연히 누나랑 같이 잘 줄 알았는데…, 아니! 나는 남자고 너는 여자야!
 노아는 당황한 나머지 또 고함칠 뻔했지만, 이번에는 꾹 참았다. 침대 위에 누워서 가만히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아리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별로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래, 그냥 옆에서 잘뿐이잖아.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이상한 것이다. 자기는 어째서 이렇게 민감하게 구는 걸까? 그냥 같이 잘뿐이다. 게다가 침대도 넓었다. 항상 혼자 자는 게 불만일 정도로.
 노아는 아리 옆에 누웠다. 베게는 원래 길어서 어린애 둘이 베기에 딱 적당했다. 노아는 이불을 덮었다.

3

 누나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손에 든 촛불 빛을 반대쪽 손으로 살포시 가렸다. 방안은 조용했다. 별빛만이 조용히, 노아와 아리를 비추고 있었다.
 “아….”
 누나는 나직하게 노아의 이름을 불렀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믿을 수 없는 걸 본 사람처럼.
 누나는 눈을 감았다.
 “변했구나….”
 눈을 떴다. 별빛이 아름다웠다.
 한동안 그렇게 나란히 침대 위에서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노아와 아리를 가만히 보았다.
 누나는 쿡쿡 웃었다.

4

 노아는 눈을 떴다. 아니, 눈이 뜨였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직 한밤중이었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잠든 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무슨 소리지, 노아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는 바로 옆에서 났다. 아리가 끙끙거리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숨소리도 거칠었다.
 “괘, 괜찮아…?” 노아는 작게 물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아리는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하다. 노아는 가만히 아리를 바라보았다.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들러붙어있고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아리는 몹시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끙끙거리면서 이불을 쥐어뜯기도 했다. 가만히 지켜보다 못한 노아가 아리를 깨우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아리가 그 손을 잡았다.
 노아는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리는 더욱 강하게 노아의 손을 쥐었다.
 “…….”
 노아는 포기하고 아리 옆에 꼭 붙어서 마주잡은 손 위에 자신의 나머지 손을 얹었다.
 마주잡은 손에서 땀이 배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축축했지만… 또한 따뜻했다. 노아는 그 감촉이 싫지 않았다.
 그래서 악몽에 시달리는 아리를 지켜봐주었다.

 5

 문뜩, 노아는 잠에서 깼다.
 “일어나, 일어나, 빨리~”
 그 소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밤중에 별로 자질 못해서 조금만 더 자고 싶었다. 이불을 끌어올리면서 옆으로 누웠다.
 다시 잠을 청했다.
 “일어나, 일어나, 빨리!”
 “아, 시끄러워!”
 노아는 자는 걸 포기하고 이불을 제치고 벌떡 일어났다.
 누가 자꾸 깨우는 거야!
 하고 소리치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만 쩍 벌려졌다. 눈앞 가까이 아리의 얼굴이 있었다. “일어나~” 하고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어…, 아, 알았어.”
 노아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마주 서서 아리를 한 번 유심히 살펴보았다. 똑같은 아리였다. 하지만 조금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뭔가가 달랐다.
 “놀자.” 아리는 제자리에서 콩콩 뛰면서 졸랐다. 얼굴엔 미소가 한 가득이었다.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아 보인다. 노아는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한밤중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괴로워하는 아리의 얼굴은 다시 보기 싫었다.
 “으음, 지금 시간이 몇 시지?” 노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고, 책상 위 시계를 보았다. 해가 쨍쨍한 학교 갈 시간이었다.
 노아는 아리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책가방을 챙기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밥을 먹고, 누나는 직장으로, 나는 학교로.
 그런데 아리는 그 모든 과정에서 노아를 자꾸만 귀찮게 했다. “놀자~ 놀자~” 계속 그 소리였다. 등교하는 길에서조차 계속 옆에 딱 달라붙어서 똑같은 소리를 해댔다.
 “…못 논다니까!” 노아는 참다 참다, 이내 걸음을 멈추고 큰소리를 냈다.
 “…….”
 이번에는 아리가 나쁘다. 안 된다는 걸 자꾸 그렇게 졸라봤자 아무 소용없는데. 노아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아리를 보았다.
 아리가 울고 있었다.
 입을 꾹 다물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얼굴도 새빨개졌다. 노란색 원피스 자락을 양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노아는 당황했다. 여자아이를 울린 적은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분명 아리가 나빴는데, 나빴을 텐데…. 노아는 어쩔 줄 몰라서 애꿎은 손만 허공에서 휘저어댔다.
 “그…, 아. 으아…!”
 “나랑 놀기 싫어?” 아리가 우물우물 물었다.
 “아니야! 놀고 싶어!” 노아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놀자?”
 “알았어!”
 어느새 노아는 학교를 땡땡이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노아는 자기합리화를 했다.
 둘은 하루 종일 신이 나게 놀았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어른들이 일하는 모습이나 새로 짓고 있는 건물들도 보았다. 텃밭도 보았고, 몰래 숨어들어 서리도 해봤다. 어른들한테 걸려서 도망치는 중에도 아리는 뭐가 그리 재미난 지 연신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죽을 둥 살 둥 도망치기에 바빴던 노아는 그런 아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노아가 길을 안내하면 아리가 노아의 손을 잡아끌고 어떻게 놀지 정했다. 놀이는 대부분 마음 가는 대로 엉망진창이었다.
 해가 내려앉고 마을이 빨갛게 물들 때까지 둘은 지칠 줄 몰랐다. 노아가 마을 변두리에 있는 사람 한 명 안 사는 높은 언덕으로 안내하자 그제야 아리가 기분을 가라앉히며 이제 쉬자고 제안했다.
 노아와 아리는 탁 트인 언덕의 커다란 바위에 앉으면서 해가 저무는 걸 보았다. 마을도 한 눈에 들어오고 하늘도 드넓게 펼쳐져 있다. 온통 주홍일색이었다.
 “아름답다.” 아리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리의 눈동자에 타오르는 빛이 스며들더니 초롱초롱 빛났다.
 “이 장소는 나밖에 몰라. 누나도 데려온 적 없고…, 나만의 비밀장소야.”
 “정말?”
 “응.”
 둘은 가만히 마주보았다.
 노아는 왠지 쑥스러워졌다. 괜한 소리를 한 건가, 후회됐다.
 아리가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
 “좋아해.”
 “…뭐라고?”
 노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니, 나를? ……왜? 그야 물론 나도 아리가 좋지만. 어떤 의미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까.
 “좋아해.” 아리는 재차 말했다.
 아리의 얼굴이 붉게 상기돼있는 건 노을 때문인지 아니면…….
 노아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리의 얼굴이 노아를 덮었다.
 “…….”
 “…….”
 노아는 마음을 정리하고 그녀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품어왔던 감정에 솔직해지자고 자신을 타이르면서, 입술에 맞닿은 감촉을 받아들이면서,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나도 좋아해.”
 얼굴을 잠깐 떼고 노아가 대답했다.

6

 “얘가 저번에 말한 내 친구야.”
 노아는 자기보다 키가 조금 작고 통통한 남자아이의 어깨에 팔을 걸치면서 아리에게 소개했다.
 남자아이는 항상 노아와 붙어 다니던 그 친구였다.
 “응, 안녕! 만나서 반가워!” 아리는 정말로 반갑다는 듯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그래……, 아, 안녕.” 친구는 조금 거북한 미소를 지으며 우물쭈물 거렸다.
 솔직히 어떤 반응을 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등굣길에 갑자기 납치를 당했다. 납치범이 학교 친구라는 것에 첫째로 놀랐지만, 갑자기 여자 친구라며 소개를 해주는 노아한테 둘째로 놀랐고, 여자 친구인 아리가 저번에 로봇한테 당하던 그 아이라는 것에 셋째로 놀랐다. 그때 자신은 전부 다 내팽개치고 자기 혼자 산다고 도망쳤었는데….
 “자! 그럼 이제 뭐하고 놀까!”
 “나, 나……” 친구가 입술을 오물오물 움직이며 말했다.
 “응! 나~, 나~ 뭐?”
 아리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친구 얼굴에 귀를 갖다 대었다.
 “정말 괜찮아…? 놀아도…….”
 노아가 친구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그때 일 신경 쓰는 거야?”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풉, 괜찮아. 난 신경 안 써. 어쩔 수 없는 거고. 누구나 로봇은 무서워하니까. 심지어 어른마저 무서워서 꽁무니 빼면서 도망치는데 뭘.”
 친구가 감동했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노아를 와락 안았다.
 “노, 노아야…. 고, 고마워……. 그리고 미안 했어…….”
 “아, 야! 울지 마! 사내 녀석이 울면 어떡해! 그리고 좀 떨어져!”
 “그럼 이제 뭐하고 놀까!” 아리가 헤실헤실 웃으면서 소리쳤다.

7

 이번에도 노는 방식은 같았다. 노아가 길을 안내하면 아리가 손을 잡아끌고 마음 내키는 대로 놀았다. 다만 아리가 잡아끄는 손의 개수가 하나 더 늘었을 뿐이었다. 친구는 처음엔 머뭇거리며 잘 놀지 못했다. 하지만 금방 아리랑 친해지고 잘 어울릴 수 있었다.
 아리는 어제보다 더욱 기운차게 놀았다. 점점 힘이 넘쳐지는 것 같았다. 노아는 기분이 좋았다. 자기 여자 친구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건 행복한 기분을 들게 했다. 친구도 있었고.
 세 명이 되니까 즐거움도 세 명분으로 늘어난 것 같았다.
 어느새 해가 지평선에 걸렸다. 땅거미가 지고 마을은 짙은 핏빛으로 뒤덮여갔다.
 노아와 아리, 노아의 친구는 별 내용 없는 이야기들로 웃고 떠들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어른 목소리와 로봇 목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왔다. 어른은 술에 취한 듯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로봇은 변함없는 말투로 딱딱하게 말할 뿐이었다.
 “가보자.” 노아가 조용히 말했다.
 친구는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먼저 내달려가는 노아를 뒤늦게 허겁지겁 뒤따라갔다. 아리도 따라갔다.
 셋의 눈앞에 역시 술 취한 어른과 로봇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어른은 나이가 많아 보였고 허리도 구부정했고 두꺼운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그 손으로 로봇에게 삿대질하며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용은 로봇에 대한 불만이었다. 마을 관리 제대로 안 하냐, 로봇이 우리에게 해주는 게 대체 뭐냐 등등.
 노아는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로봇은 계속해서 똑같은 대답을 할 뿐이었다.
 “흥분하지 마라. 흥분하면 제재를 가하겠다.”
 기계적인 어투로 그 말만을 반복한다. 가짜 눈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마치, 오르골 태엽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한 어른이 갑자기 로봇에게 덤벼들었다. 몸통으로 세게 들이박았다. 하지만 로봇은 끄덕도 안했다. 꼿꼿이 두 다리를 펼치고 있었다. 쇠로 만든 몸은 그 반동으로 어른을 넘어뜨릴 뿐이었다.
 “으, 으악!”
 로봇이 무겁고 차가운 손으로 어른의 팔을 잡아 꺾었다. 그러자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어른의 비명소리가 뒤섞여 길가에 울려 퍼졌다.
 노아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도와줘야해. 로봇유도용 폭탄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주머니에서 폭탄을 꺼내기 전에 아리가 노아의 팔을 잡아 세웠다.
 “부탁이야…, 로봇에게 반기를 들면 안 돼……. 위험해….”
 “무슨 소리하는 거야!” 노아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 그래…, 아리 말이 맞아. 노아야, 위험하니까 그냥 가자….” 친구가 먼발치에서 중얼거렸다. 노아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아리는 글썽이면서, 계속해서 노아의 팔을 놓지 않았다.
 노아는 화가 나서 힘으로 아리의 손을 뿌리쳤다. 아리가 땅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저걸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 노아는 아리를 한 번 뒤돌아보고, 그리고서 뛰어나갔다.
 로봇이 어른을 돼지나 닭 잡듯이 때리고, 또 때리고, 계속 때렸다. 모른 채 지나칠 수 있을 리가 없다. 노아는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손에 든 로봇유도용 폭탄을 저 멀리 집어던졌다.
 잠깐 있다가, 땅에 떨어진 폭탄이 삐─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로봇은 소리가 난 쪽으로 걸어가지 않았다. 어른을 때리던 주먹이 허공에 멈췄지만 폭탄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지 않았다.
 술에 취한 어른이 도망간다. 로봇은 어른을 붙잡지 않았다. 노아는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좋았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로봇이 노아가 있는 곳을 향해서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성큼성큼. 금방 거리가 좁혀지고, 로봇이 노아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잡았다.
 “으, 으아악!” 노아는 비명을 질렀다.
 로봇은 그대로 노아를 들어올렸다. 노아의 발이 땅 위에 떠올랐다. 노아는 머리가 차갑고 아프다고 생각했다. 뭐가 뭔지 몰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식간에 머리가 잡히고, 이어서 배, 어깨, 팔, 다리, 노아는 차가운 기운을 느끼면서 얻어맞았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그렇게 계속 맞다 보니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그때, 아리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뭐라고 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리의 목소리가 확실했다. 고개를 돌렸다. 흐리멍덩한 시야 안으로 땅에 무릎을 꿇은 채 울고 있는 아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로봇을 향해 뭐라 뭐라 말하고 있었다. 두 손을 꼭 마주잡은 채 울면서 고개를 몇 번이고 숙였다.
 노아는 눈앞이 뿌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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