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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과 한 마디
글쓴이: 칭소마라
작성일: 14-12-10 03:15 조회: 1,254 추천: 0 비추천: 0
산책과 한 마디


이 한 문장으로 정의된다. 나는, 이 한 문장으로 정의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도저히 첫 문장을 시작할 수가 없다. 문법이 이상하진 않을까, 또 일어체를 쓴다고 하지 않을까, 지나친 개그 욕심을 냈다고 할 수도 있고, 지루하단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고작 한 문장인데, 고작 한 문장인데 뭘 알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으니 미치겠는 거다. 여러 가지 말을 듣고 고민해 보았지만 역시 결론은 ‘아직 모르겠다’이다. 공부가 부족한 탓일 지도. 글을 쓴 기간이 짧아서 일지도. 퇴고할 때 게으름을 피워서인가? 이유가 너무 많다. 결론은 하나인데 이유만 많다. 그중에 답이 없다. 오히려 모두 정답인가?

사실 첫 문장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보통은 좋든 아니든 그냥 밀어붙였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딱히 뭘 써야 할지, 생각나는 것이 없다. 내게 글은 어차피 취미인데, 그런 부담 따위 느껴본 적 없는데. 난생처음 느껴본다.

글쓰기가 힘들다. 어렵다.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자신이 좀 생겼다고 공모전에 나가보려 한 탓이다. 아주 약간의 긴장감에도 이렇게 돼버린다. 이러니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지.

그저 한숨이 나온다.

천장 한 번 보고 바닥 한 번 보고 크게 한숨을 쉬고. 손에 든 샤프가 어설프게 돈다. 컴퓨터로 쓰는 걸 좋아하지만 하도 안 써지길래 조금 바꿔봤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샤프는 손에 들고 가지고 놀 수 있으니까 모니터만 뚫어져라 바라볼 때보단 덜 심심하다는 정도?

뭔가 이상한 일이라도 해볼까. 사람들과 마주치긴 싫고. 집 구석에만 박혀 있는 건 답답하고. 나갈까. 사람 눈을 피해서 밤 2시쯤에.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돌아다녀 볼까. 그래도 나가면 뭐든 있겠지.

첫날은 허탕을 쳤다.


우울증 예방을 위한 한 가지 팁. 햇볕을 쬐라. 계절우울증이란 것도 있고. 생각보다 아주 중요하다. 일주일에 5분만 쬐도 충분하다는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직사광선 하루에 30분 이상 정도 꼭 쬐라. 뭐 기본적으론 병원 가야겠지만 사람마다 여러 사정이 있는 법이고 정신과 가란다고 가는 사람도 적고.

오늘도 밤산책을 나왔다.

사람 없는 것도 좋고 시끄러운 음악을 튼 가게가 없는 것도 좋은데 의외로 불은 안 끈 곳이 있다. 가장 흔하게 보이는 곳은 가구점. 광고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 밤중에 지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럴까.

나는 굳이 따지자면 도시 사람이다. 아파트 단지와 커다란 공원, 4, 5층 정도 되는 상가가 끝없이 이어진 풍경이 익숙하다. 하지만 밤중에 앞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그 연속이 생각보다 아주 짧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알기 어렵다. 차창에 가리고 가로등 불빛에 가리니까. 하지만 걸어서 갈 때는 아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도시는 밤에 떠오르는 빛의 배다. 우리는 모두 그 위에서 비틀거리며 떠서 뱃멀미를 한다. 아주 구역질이 난다.

뭐, 그게 어쨌다고. 둘째 날도 허탕이다.


밤산책이 의미가 있는 건가? 사실 전부터 밤에 다니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별 자극도 되지 않는 것 같다. 낮에, 낮에 나가볼까. 하도 밤에 쏘다니니 오늘도 오후 6시에 일어나고 말았지만. 내일 정도는 낮에 나가볼까.

오늘은 이미 나와버렸지만. 여긴 또 신기한 동네다. 경사진 길에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런데도 전봇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곳은 보통 허공을 가르는 전선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법인데 이상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마주쳤다.

“거기 서라, 인간.”

“어, 네. 일단 서겠습니다. 왜 그러시죠?”

밤중에 돌아다닌다고 불량배를 만날 확률이 높지는 않다. 애초에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누구든 만나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네 녀석이 밤마다 우리 구역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알고 있다. 목적이 무엇이냐?”

더구나 이런 자를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

내 앞을 막아섰던 그림자가 어느새 늘어났다. 기척으로 내 뒤도 꼼짝없이 막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건 내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둔한 내가 고양이의 기척을 알 수 있는 거다. 그래, 고양이다.

내 앞을 막고 있는 건 보랏빛 털에 양쪽 눈 색깔이 다른 고양이다.


“아야야.”

아프다. 오늘도 일어난 시간이 늦다. 어제처럼 밤산책을 나갈 수밖에 없겠지만 오늘은 뭔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젯밤 만난 고양이, 제임스에게 신기한 징표를 받았다. 손목에 새겨진 세 줄의 상처. 기자증 같은 거랬나. 제임스가 고양이들이 취재하는 데 협조할 거라고 말했다.

취재라니 진저리가 쳐지지만 고양이니까 괜찮겠지. 좋은 소재를 얻을 수 있기를.


우울한 감정을 다스리는 데는 자세도 중요하다. 고개를 숙이지 마라. 머리를 숙여 땅을 보는 것은 목에 과도한 긴장을 일으키고 뇌로 가는 혈류량을 줄게 한다. 어쨌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정말 기분이 울적해진다. 웃는 표정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도 하는데 그런 효과인 것 같다.

그렇다고 젖히는 것도 좋은 자세는 아니다. 바른 자세는 정수리를 누군가 움켜쥐고 들어 올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제 유연함은 고양이 중에서도 으뜸이란 말이지요. 제 몸을 한 번이라도 쓰다듬어 본 인간들은 다른 녀석들을 쓰다듬을 때 딱딱한 박제인형을 쓰다듬는 줄 착각할 지경이랍니다. 저기, 듣고 계십니까?”

미안. 딴생각했다.

“네. 물론이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세부 씨. 그럼 오늘은 이만.”

“으, 어어니, 잠깐. 인간 씨.”

무시하고 일어났다. 고양이의 유연성 강좌를 완벽한 문장으로 정리해서 실어봤자 인간은 봐주지 않을 것 같다. 도무지 이 고양이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 이런 거 어디다 써먹냐. 정말 특별한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네.

제임스는 보이지 않는다. 그 녀석이 제일 재밌을 것 같았는데. 눈도 신기하고. 적당히 카리스마도 있고.

하긴 그래 봤자 고양이라 귀엽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인간.”

제임스가 찾아왔다. 척박한 도시환경에서 자연산 쥐를 잡는 법에 대해 상세히 듣느라 지친 통에 오드아이 고양이의 등장이 제법 반갑다. 참고로 왼쪽 눈이 초록, 오른쪽 눈은 노랑이다.

“뭔가요, 제임스 씨?”

반가운 기색을 감추고 물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을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평소대로 무뚝뚝한 표정을 짓는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뭘 헤하고 있어?”

실패했다.

“뭐 부탁은 별거 아니다. 인간을 좀 막아줬으면 한다.”

“인간?”

“그래. 우리 구역에 계속 나타나는 수상쩍은 인간이 있어. 그 인간의 속셈을 알아내고 막아줬으면 한다.”

“어….”

이야깃거리다. 고양이 백 마리와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양질의 소재가 나올 같은 기분이다. 평소대로라면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싫은 일이지만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양이와 얘기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긴 걸까.

거기다 제임스가 경계하는 인간이라면, 왠지 나와 동류일 것 같기도 하고.


동류일 리 없다. 다가가기 싫다. 어찌 된 거냐, 제임스. 애당초 술주정뱅이들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자기 구역에서 전부 쫓아냈다고 했으면서. 왜 이 아가씨는 쫓아내지 않은 거야. 나는 여자는 해치지 않는 주의 뭐 그런 건가? 아니, 고양이인데 그런 게 있어? 애초에 제임스의 성별은 무엇일까. 이름 때문에 남자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제임스니까 외국인이겠네. 하지만 엄연히 이 동네에서 사는 토박이 고양이 아닌가. 아니지. 털 색을 보면 토박이는 아닌가. 귀화한 건가. 고양이도 귀화했다고 할 수가 있는 건가. 같은 쓸데없는 고민이나 할 때가 아니잖아.

주정뱅이이긴 한데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다. 체구가 작은 여자다. 품에는 스케치북 같은 것을 안고 있다. 소매가 긴 스웨터를 입고 있는데 다른 외투는 없다. 몽실몽실하니 모습으로만 치면 따뜻해 보이는 복장인데 실제로는 바람이 다 새서 춥지 않을까.

소재 없이 돌아다닌 지가 벌써 일주일이다. 글은 한 자도 못 썼고. 인터뷰해주겠다. 마음껏 소재로 써주겠다고 이 아가씨의 이야기를 말이지. 우하하하하핫.

“저기요.”

“헉.”

동공이 풀린 아가씨가 나를 보고 있다.

“정신 사나우니까 사람 뒤에서 히죽거리지 마세요. 그 꼴을 보고 있자니 기분도 나쁘네요.”

어떻게 저런 불분명한 발음으로 이렇게 칼날같이 사람 마음을 찌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물러날 순 없지.

“뭘 보고 계세요?”

“그냥 야경요, 개새야.”

자연스럽게 여자의 옆에 앉으려던 내 무릎이 움찔했다. 여전히 풀려 있는 동공으로 제법 날카롭게 째려본다.

“꺼져.”

“네….”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우스개로 간혹 진지하게 꺼내는 화제 중 하나가 과연 어떤 무술이 최강인가이다. 거기에 대한 대답 중 가장 정답에 근접한 것은 이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야, 최강은 야마카시 아니냐?

야마카시. 담벼락, 난간, 레일, 건물과 건물 사이, 일반적으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을 길 삼아서 질주하는 활동. 본래 명칭은 파쿠르지만 야마카시라는 영화 덕분에 야마카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야마카시가 최강이란 게 무슨 소리냐고? 쉽게 말해 도망치는 게, 즉 살아남는 게 가장 강한 거 아니냔 얘기다.

그 통찰력에 절로 고개가 끄덕인다. 그렇다. 살기를 느꼈을 때는 싸움을 피해 도망칠 수 있는 것, 그것이 강한 것이다. 거기서 일부러 맞붙어 싸우는 것이야말로 하수 중의 하수란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부끄럽지 않다, 제임스.”

“변명은 그 정도로 하고 다시 좀 부탁하마.”

통하지 않았다. 내 어깨가 살짝 처졌다. 고양이 놈 깐깐하기는.

“그러면 진지하게 답하겠는데. 난 이런 일에 맞지 않아. 술 취한 여자 쫓아내기라니, 못한다니까.”

제임스가 나를 보며 눈을 몇 번 끔벅였다. 초록과 노랑이 깜박인다.

“우리 구역의 애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다닌다며? 뭔가 재밌는 이야기가 없냐면서. 그리고 항상 실망해서 돌아선다던데.”

제임스를 주변에서 본 적은 없는데. 고양이 사이의 정보통이라도 있는 건가.

“내 얘기를 들려주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스펙타클한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이 눈과 관련된.”

제임스가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스펙타클한 전쟁….”

나는 다시 한 번 주정뱅이 여자와 싸우기 위한 결의를 다졌다.


“아저씨 또 왔어?”

오늘은 좀 얌전한 목소리다. 다짜고짜 술병, 뭐 술병은 없지만 손에 든 스케치북이라도 휘둘러 올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네, 뭐. 야경, 저도 야경 좋아해서.”

“웅. 그래. 여기 꺼 좋지.”

여자가 조용해졌다. 아차, 야경 같은 소리하지 말고 여기서 뭐하냐고 그럴 걸 그랬나. 이렇게 조용해지면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하지? 모, 모, 모, 모, 몰라.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햇빛을 본 지가 오래되었다. 그런 데도 기분이 울적해지지 않는 것은 꾸준히 밤산책을 다니며 고양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덕분일까. 다들 수다쟁이고 말이다.

사실 고양이라고 하면 더 도도한 이미지로 알고 있었는데, 굳이 따지자면 제임스처럼. 한 마디 툭 던지고 사라지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말이지. 뭐 그건 다른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여기 야경 참 예쁘죠?”

“그러니까 여기 죽치고 있죠. 아저씨 때문에 기분 잡치지만.”

이 아가씨도 고양이 같다. 조금만 말을 잘못하면 맞을 것 같아서 무섭다.

“아저씨는 왜 여기서 문대고 있어요?”

툭 던져온 질문에 놀랐다. 여자의 표정을 살펴보지만 여전히 뚱하다.

“저, 그, 그러니까….”

고양이의 부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소재를 찾고 있다는 것도 거부감이 들 것 같고. 그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네?”

“사실은 전공 공부라도 다시 해봐야 하나 싶긴 한데 말이지. 지금은 바로 할 만한, 해야 될 일이 없어. 나 취업준비생인데. 어차피 공채도 다 끝나가고. 아직 뭔가 있기는 있는데 거기에 목매기는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까운 것도 같고. 차라리 다음을 준비하자니 뭔가 막막하고 의욕도 안 생겨. 그래서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 놀고 앉았네요.”

“하하하…. 노는 거 아냐. 즐겁지가 않은걸.”

여자가 한숨을 쉬었다. 바닥에 놓인 자갈 아래로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물론 인간의 속셈을 알아내 달라고도 했지.”

“그랬지.”

“하지만 언제까지 뜸들일 셈이냐?”

“그러게.”

제임스가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낸다. 화가 난 모양이다. 또 발톱에 긁힐까 싶어서 손을 빼냈다.

“진정해. 애초에 난 그런 데 자신 없다고 했잖아. 그래도 지금 뭔가 순조롭게 돼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실제로 순조롭다. 제법 친해진 것 같다. 뭔가 이 아가씨 얼굴 보고 있으면 흐뭇하고 제법 미인이기도 하고. 후훗. 

“아저씨는 언제까지 놀고 있을 거예요?”

물론 그것은 한쪽의 착각일 수도 있다. 본디 이별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법.

“일단은 1월까지.”

“완전 즉답? 아저씨. 아저씨는 생각하는 쓰레기네요.”

부정하지는 않는다. 나 어쩌면 초등학교 때 방학보다도, 중학교, 고등학교 방학보다도 편하고 길게 놀고 있는 거 아닐까? 어쩌면이 아니라 대충 계산해도 방학의 두, 세 배는 놀고 있는 것 같은데.

“아저씨 내 이름은 알아요?”

“어, 아니. 모르는데.”

물어본 적 없다. 어차피 둘만 있으니 대화를 하더라도 대충 허공에 읊조려도 되는 수준이고. 물어볼 생각 못 했다.

“사람이 뭐 이러냐…. 지연이에요, 지연. 감지연.”

“아….”

“아저씨는?”

“난 ***야.”


지연. 어감이 좋군. 제법 정감이 있는 이름이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거 맞아?”

“그럼.”

이렇게 자신감 있는 대답을 한 것이 얼마 만이던가. 그래, 실로 순조롭고 나는 기분이 좋다. 이렇게 매일매일 백 단어 이상 내뱉는 것도 오랜만이다. 백? 그보다 많으려나. 열 단어도 사치일 때가 많다 보니 감이 안 잡힌다. 어쨌든 기분 좋다.

“공모전인가 하는 건 어쨌어? 빨리 소재를 털어서 써봐야 하는 거 아냐?”

“아….”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째 요새는 산책 말고는 한 일이 없는 것 같기도. 밤은 먹었던가? 배가 고프지 않으니 먹은 거 아닐까.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뭘 먹었더라? 운동도 안 한 것 같은데. 먹은 기억이 없으니 운동한 기억도 없는 건가? 뭐 상관없을 것 같다. 기분이 좋으니까 몸도 괜찮은 거다.

그렇지?


“이게 뭐게요.”

지연이가 품에 안고 있던 스케치북을 들어 올린다. 볼 것도 없이 스케치북이다. 안에 뭐가 있을지 묻는 걸까?

“그림…. 그림 그렸어?”

“어, 네. 어떻게 알았어요?”

“그야 스케치북이니까.”

“오. 아저씨 눈은 아저씨 부모님이 심심해서 뽁뽁이를 터뜨리다가 실수로 뚫어둔 건 줄 알았는데 제법이네요.”

“야, 야. 그 독설은 너무 아픈데.”

“사실 제가 미대 입시를 준비했었거든요. 뭐 이건 그냥 취미용이지만.”

무시냐…. 하긴 익숙하다.

“준비? 미대는 어떻게 됐는데?”

“아이고 이렇게 되어서 이러고 있습니다.”

아차 싶어서 지연이의 안색을 살폈지만 다행히 그리 어두운 표정은 아니다. 아니기는 하지만 마음이 죄인다.

“학원은 정말 끔찍했거든요. 재미도 없는 정물만 계속, 계속, 하루종일, 그리고. 무슨 득도하려는 것도 아니고 선 하나, 선 둘, 선 셋. 반복하고 반복했어요. 재미고 뭐고 남는 게 없었어요. 근데, 그런데도. 왜 그랬는지…. 재능인가? 재능일까요?”

모르겠다. 타인의 재능에 대해 내가 뭐라 말할 수 있겠나. 내가 미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기껏해야 운? 그런 거다. 실력 따위는 알아볼 눈이 없다. 미술에 대해서라면 눈이든 귀든 그냥 뚫어놓은 구멍 맞다. 그러니까 너도 운이 없었겠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함부로 말해도 될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입바른 소리로 위로해도 되는 걸까.

“또 닥치고 계시네요. 그놈의 혓바닥은 집 놔두고 어딜 그렇게 마실을 나가나.”

“나, 난. 취업준비생에, 아니. 그냥 날백수야.”

최악이다.

“그래도 뻔뻔하게 밤산책이나 다니면서 이렇게 놀러 다니잖아. 넌 그, 잠깐, 아니. 그러니까 원래 오래 준비하던 게 무너지면 힘들기도 하고 방황도 하는 거야. 괜찮아. 괜찮다니까.”

“하아. 그래도 가장 화가 났던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누구보다도 잘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괴롭고 지긋지긋해졌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어요. 왜지? 언제부터 손목을 움직이는 게 반사적으로 그저 보이는 대로 아무 마음도 감정도 담기지 않고 그저 움직이게 되었을까. 다 그리고 군것질 뭐할까. 체중을 좀 줄여야 하는데, 피곤한데 씻지 말고 잘까. 그런 거나 생각하게 되었을까.

뭐랄까. 이미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져버린 것 같았달까요. 원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어렵다고도 하잖아요. 헤.”

“아냐.”

그런 걸 인정하게 하고 싶지 않다.

“네?”

“사회라면 좋아. 비정하고 더럽고 완전 제멋대로인 이 사회라면 좋아. 얼마든지 원망해도 돼. 사회는 절대로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그게 기본이니까. 하지만 자기 자신은 아냐. 이 세상 모든 게 날 버려도 자기 자신이 날 버리는 법은 없어. 그래서는 안 돼.”

“아뇨. 그렇게 말씀하셔도 말이죠. 제 몸이라고 제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실 저 자신이라고 그렇게 확실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마 지연이 말이 맞다. 내 말 따위 맞을 리 없다. 난 기껏해야 궤변을 늘어놓을 뿐이다. 기왕이면 더 제대로 된 얘기를 해주고 싶지만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이런 얘기를 밀어붙이는 것뿐이다.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결코 실패를 학습하지 않아.”

“네? 그게 무슨.”

“엘리트니까 당연한 게 아니야. 그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가 실패할 만큼을 시도하지 않는 거야. 최대한 피해 가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성공을 경험해, 계속해서 성공을 배워. 실패하는 법은 배우지 않아.”

“뭐…. 그렇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회적으로는? 하지만 개인적인 성공은 그냥 네 거야. 사회는 더러우니까 성공을 안 시켜줘도 네 개인의 성공은 그냥 네 거라고.”

“으~ 개인의 성공이라니….”

“다들 뭔가 착각을 해. 끈질기게 달라붙고 달라붙어서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생각해. 그건 소년만화야. 그렇게 해서 해내는 건 괴물이라고.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넌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내일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만큼만 힘내서 네 성공을 이뤄내라고. 우선은 아무리 작은 거라도 실패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거야.”

“음…. 아무리 그래도 성공이라니 거창하게 들리는 걸요.”

“가볍게, 가볍게 생각해. 사회에서 갈아대서 도저히 성공을 쌓아갈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넌 다행히 그런 건 아니니까. 음…. 아닌 거 맞지?”

“글쎄요. 어떠려나?”

조금 실언을, 아니 말 전부가 실언일까 걱정했지만 지연이의 말투는 가볍다. 다행이다. 숨이 찬다. 얼굴도 빨개진 것 같다. 어차피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겠지만 신경 쓰인다.

“와아. 아무튼 이거 위로에요?”

“음. 아마.”

“고마워요.”

“천만에.”


“일장연설은 잘 들었다. 이제 속셈은 다 파악한 거잖아. 그만 친해지고 얼른 쫓아내라고.”

제임스의 무덤덤한 표정. 식빵자세.

“하지만 쫓아내라니. 지연이는 그냥 야경을 볼 뿐이잖아.”

무심코 쓰다듬어보려 하면 털을 곤두세운다.

“그러니까다.”

“무슨 얘기야?”

“모르겠나?”


“보여드릴까요, 이거.”

지연이가 스케치북을 잡고 살짝 흔든다. 겉표지가 까만 스케치북이다. 계속 흘려 보다 보니 스케치북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오, 보여줘. 보여줘.”

지연이가 뾰로통한 표정을 하고 말한다.

“어쩜 이리 무감동하실까. 스케치북을 펼치면 와를 연발하도록 하세요.”

“와~.”

“펼치면, 이 양반아.”

한 대 맞았다. 불시에 기습을 당해서 제법 아프다.

“자, 그럼.”

지연이가 스케치북의 표지를 넘겼다. 드러난 첫 장에는 까만 바탕에 밝은 점 몇 개가 있다.

“이건… 야경이야?”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스케치북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조금 인상이 다르지만 이 풍경과 같다. 별 하나 없는 새까만 하늘과 대조적으로 빛나는 도시의 조명들.

“눈썰미 있네요. 근데 와는?”

“와~.”

“늦었어, 양반아.”

한 대 더 맞았다. 그래도 이번엔 덜 아프다.

“자, 다음 장 갑니다.”

방금과 같은 그림이다. 아니, 조금 다르다. 다만 그 차이는 아주 미세해서 알아차린 내가 놀라울 지경이다. 조금 더 차가워졌다고 할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정말 미세해서 제대로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연이가 계속해서 스케치북을 넘겼다. 계속해서 같은 풍경, 하지만 다른 인상의 그림이 나타났다. 온도가 다른 그림, 불꽃놀이를 하는 그림, 야시장이 펼쳐져 한층 더 밝아진 그림 등등.

그리고 마지막 장에 다다랐다. 점점 요란해지던 그림이 다시 처음 것처럼 얌전해졌다.

“이거 처음 거랑 어떻게 다른지 알겠어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스케치북을 팔락이며 처음 그림과 마지막 그림을 살핀다. 틀린그림찾기를 하는 기분. 전체적으로 보다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코끝을 대고 꼼꼼히 살펴봤다.

“찾았다. 이거, 창문? 불빛이 하나 없네?”

“뛰어내린 사람.”

“응?”

“그 순간을 그린 거에요, 상상이지만.”

“그래? 오 정말 자세히 보니 그냥 가린 게 아니라 뭔가 그림자 같은 게 있어.”

“우와, 이런 얘기에도 무덤덤해요?”

“응? 이런 얘기? 아, 뭐 이거 그릴 때 딱히 좋은 기분이 아니었나?”

놀라지 않은 건 아니다. 그냥 표정에 드러나지 않은 거지. 하지만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태연한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아니. 난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정말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떨어지는 사람은 저에요. 마지막 통보를 받고 절망한 저요.”

“상상?”

“아뇨. 진짜.”

그래. 결과가 안 좋았구나. 역시 사회는 어렵다. 치사하다고 할까. 원하는 직업도 얻을 수가 없고 만렙도 마음대로 못 찍고. 치사한 놈들.

“뭐 누구나 힘들잖아. 막 말하긴 민감한 주제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새삼스러워할 것도 없지.”

그래. 사실 말을 안 할 뿐이지 자살충동 정도는 누구나 하루에 한 번씩 느끼잖아? 네가 힘들긴 뭐가 힘드냐고 타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은 또 자기 일이 힘들고 또 죽고 싶어 하고 다들 그런데 호들갑 떨 필요야.

“평소에는 썩은 눈초리를 하고 있으면서 이런 얘기는 그렇게 똘망똘망한 눈초리로 하다니 아저씨도 정상이 아니에요.”

“익숙해지면 별 느낌도 아니니까. 하긴 뭐, 나야 별 힘들게 사는 것도 아니다만. 넌 이때 많이 힘들었나 보다?”

“이때요?”

“어.”

“이때라니. 지금이죠.”

“어… 아?”

지금이라니. 입시 통보에 절망한 거라며? 나이, 나이 차가…! 지연이 고등학생인가? 으아아, 대충 따져도 7살 정도? 이럴 수가.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데 왜 지금까지 몰랐지.

“에구, 에구. 이 양반한테는 기대할 게 없다니까.”


“7살, 7살이라…. 제임스, 넌 어떻게 생각해?”

“도둑놈이로군.”

“무슨 고양이가 그딴 표현을….”

“일단 그것으로 고민하는 것부터 네 녀석은 훌륭한 쓰레기이니 걱정 말아라. 어쭙잖게 미화하려하지 않는 점은 칭찬해주마.”

칭찬. 전혀 아닌 것 같지만 기뻐해 둘까.

“기뻐하지 마.”

예리한 지적이다. 지연이를 쫓아내는 일로 얘기를 나눈 지도 벌써 일주일. 그 정도는 알아차리는 건가. 난 이 고양이의 속을 모르겠지만 밀이다.

“그나저나 지연이, 여전히 술냄새가 많이 난단 말이야.”

“그래.”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겠지?”


“연락처 알려줘.”

“연락처? 이제 와서요?”

“이제 와서? 음, 뭐 상관없어. 내가 우울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용한 비법들을 전수해 줄 테니까.”

“갑자기 그건 왜요?”

“난 상담은 안 믿거든. 정신과는 모르겠지만 네 발로 안 가면 별 소용도 없는 거고. 그러니까 민간요법이라도 맨투맨으로.”

“에이, 재미없어.”

지연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얘기할 거면 그만할래요. 저 가요.”

생각보다 차분한 걸음이다. 그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걷는다.

“아니, 아냐.”

나도 따라 일어났다. 앞으로 걷는다. 발이 미끄러지고 균형이 무너지는 걸 버티며 나아가 지연이의 손을 잡았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는 예감이 든다.

“아냐. 그런 얘기가 아니야. 아니고 그러니까 난 그냥. 햇빛 아래서 널 보고 싶어. 나중에, 내일이라도 언제라도 좋으니까 햇빛 아래에서 보자.”

“안돼요.”

실언이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기색으로 이건 실언이라고 잘못된 선택을 한 거라고 느껴졌다.

지연이가 계속 발을 옮긴다.

공터의 앞은 낭떠러지다. 지금에서야 알았다. 이 낭떠러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어둠 아래 한층 더 깊은 어둠이 저 아래에 있다. 지연이는 발을 멈추지 않는다.

이대로는 저 아래에, 지연이가 사라진다. 하지만 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무릎을 꿇은 채로 바라보고 있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지연이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역시나 그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다. 

“고마워요.”

그게 마지막이었다.


“제임스.”

“뭐냐, 인간.”

“지연이가 갔어.”

“그래, 잘했다.”

“지연이는 뭐였어?”

“글쎄.”

“여긴 뭐야?”

“글쎄.”

제임스는 대답해 주는 것이 없다. 그냥 말없이 나와 함께 야경을 바라보고 있다. 배도 안 고프고 시간도 모르겠고 그냥 멍하니 야경을 보고만 있었다.

“야, 제임스.”

“뭐냐?”

“그 눈에 얽힌 스펙타클한 전쟁은 뭐야?”

“궁금한가? 내 사랑스러운 외모에 얽힌 인간들의 전—“

“닥쳐, 인마.”


운동이 감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는 회복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야 다 쓸모없는 소리다. 회복하지 않는 운동은 그냥 독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거 하나는 꼭 명심하라고 알려주고 싶은 건, 바로 호흡이다.

길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쉰다. 복식호흡을 하면 좋지만 뭐 아무래도 좋다. 좀 대충해도 된다. 어차피 평생 숨 쉴 건데. 무조건 깊게 쉬자. 숨을 길게 내쉬면서 몸의 긴장을 풀어봐라. 기분 좋은 이완감이 온몸을 덮게 하는 거다. 느려진 심장박동이 온몸을 기분 좋은 고동으로 채워 줄 거다.

적어도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호흡이라. 잘 모르겠군.”

“고양이랑 인간은 해부학적으로 다르니까.”

“하긴 인간은 우리처럼 유연할 수는 없지.”

제임스와 별의 별 이야기를 주워섬기고 섬겨도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계속 이대로 정체된 상태다. 멀리 떨어진 어느 건물에서 나오는 빛을 관찰한다. 몇 번이고 다시 봐도 그림자는 없었다, 이제는.

“왜 몰랐지?”

“원래 꿈속에선 꿈인지 모르는 법이지.”

“꿈은 아닌 것 같은데.”

“깨고 나면 알겠지. 벗어나기 전엔 모르는 법 아니겠어?”

“하아….”

“너도 이제 슬슬 네가 있을 곳으로 가야지.”

제임스가 몸을 일으킨다. 고양이답게 발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온다.

“어떻게 하려고?”

“꿈에서 깨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뭐? 대체 뭐… 으아아악!”


“아아아아악!”

“정신이 드십니까! 다행이네요!”

이 사람…. 겨드랑이가 엄청 아프다. 상황은 모르겠지만 너무 아파서 콱 그냥 신고해 버리고 싶다. 무지막지하네, 소방관 아저씨.

영양실조였다고 한다. 무슨 정신으로 걸었는지 몰라도 119에 전화를 했다고. 전화는 왔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기에 달려왔다고 했다. 겨드랑이의 고통이 가시고 보니 상당히 큰 신세를 진 모양이라 소방관 아저씨에게 따로 인사를 드렸다. 의외로 나랑 비슷한 또래였다.

손목에 나 있던 상처 때문에 살짝 오해를 받아버려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차라리 향정신성의약품을 달라고 상담 따위 싫다고 말은 했지만 나름 성실하게 다녔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밤산책을 나왔다. 본래 공모전의 소재를 찾기 위한 거였지만 지금은 글 쓸 여력이 없다. 근성부족이라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뭐… 근성부족이 맞으니 참.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공터에는 내 상상 그대로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별 하나 안 보이는 까만 밤하늘과 도시의 조명들.

내가 지연이에게 한 말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까. 어설픈 잔소리에 짜증을 내진 않았을까? 좀 더 많은 걸 물어봤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지연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병원에서 퇴원하고서 간단하게 검색을 했다. 어느 빌딩에선가 어느 여학생이 뛰어내렸더라는 소소한 기사를 발견했다. 특별한 일도 아니다. 매년 있는, 매일 있는 일이다. 그 기사도 내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지금 이 풍경이 보인다는 건 역시 꿈이 아니었단 얘기 아닐까?”

제임스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다. 이럴 땐 상담사 선생님이라도 보고 싶구만. 친절하게 대답도 잘 해주시는데.

한참을 웅크리고 있다가 폰을 꺼내 들었다. 사진이라도 찍어두자 싶다. 솔직히 핸드폰 카메라로 이 야경이 찍힐 리는 없지만 그래도 찍어두고 싶다.

역시나 뿌옇게 떠오르는 야경. 그래도 찍었다. 찍고서 확인한다. 그러다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래, 난 119에 전화한 기억 따위 없었지. 그리고 손목에 상처를 낸 기억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했다. 그 범인이 누굴까 심증만 가득하던 차였다.

내 핸드폰, 사진앨범의 가장 최근의 바로 전 사진에, 거기에 보라색 털에 오드아이를 가진 고양이의 셀카가 찍혀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나는 그저 울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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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고 못 쓰고의 판단은 읽는 분이 해주시는 거지만 그걸 떠나서 저는 이 글이 부끄럽습니다. 짧은 제 식견이 너무 많이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을 것 같군요.

그래도 올립니다. 부끄러운 소리 안 하고 뭉개는 버릇이 생길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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