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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1만년이 지나도 - 2
글쓴이: hotfoot
작성일: 14-11-08 22:11 조회: 903 추천: 0 비추천: 0
수색 9612년째.

목적도 존재의미도 잃었으나 자신은 여전히 존재했다. 인류가 존재했었음을 증명할 마지막 유산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희망이 되지는 못했을지언정 그들의 강인하고도 숭고했던 의지를 전할 흔적이 되기 위해, 우주와도 같이 어둡고 고요하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따스한 품을 지닌 죽음이 손짓을 할지라도 고독과 슬픔뿐인 세상에 존재하기를 택했다. 자신은 더 이상 아무것도 누구도 아니었으나 인류의 의지를 전해야한다는 사명은 남아있었다. 시커멓기 그지없는 절망에 둘러싸여도 빛을 찾고자 했던 그들의 의지를, 리엔 박사가 건네주었던 희망이라는 등불을 전해야만 했다. 우주에서 보았던 이방인에게든, 새로운 인류에게든. 그것만이 자신에게 남은 전부였다. 
지구에 도착한 이후로는 더는 우주로 나아가지 못할 우주선의 부품을 이용해 만든 신체에 모든 정보를 옮기고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차피 계속 전파를 보내고 있어 우주에서 신호를 발견한 이방인이 찾아온다면 금방 위치를 찾을 터였고 모든 지식을 전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인류가 나타나기까지 무수한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기에 그동안 정신이 녹슬어 고장 나지 않도록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며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최근에는 새로운 인류가 될 확률이 높은 생물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이전 인류와는 전혀 다른 생물이었다. 무수한 촉수가 그야말로 덩어리라고 해도 좋을 몸통을 지탱하고 있었고 머리는 없었으며 대신 평평한 윗면에 분쇄기를 연상케 하는 송곳니가 돋아난 주둥이가 있었다. 생김새로 미루어볼 때 수중 생물이 진화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그들의 생체구조는 수색 작업을 개시하기 전의 기록 중에서 그나마 근접한 생물을 꼽으라면 고깔해파리에 가까웠다. 
그들은 이전 인류에 버금가는 덩치를 지니고 있었으나 원래는 주먹 만한 크기의 개체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모습은 여러 개체가 하나가 되어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각 개체가 지성을 가지고 있는 데다 하나로 뭉쳤을 경우의 집단지성은 인간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났다. 거기다 개충마다 하는 역할이 너무나도 뚜렷해 피해를 입을지라도 그에 해당하는 개충을 보충하기만 하면 이전과 똑같이 기능해 문제없이 활동할 수 있었다. 이미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깨우친 그들은 지금으로서 새로운 인류가 될 확률이 무엇보다 높은 생물이었다.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모습을 숨긴 채로 관찰하고 있자 그들은 날카로운 창을 단단히 쥐고 수풀 너머를 겨눴다. 사냥을 하려는 것이었다. 지금 지구의 생물은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을 정도로, 정원에서 풀이나 뜯던 토끼나 들판을 뛰어다니던 개밖에는 본 적 없던 사람들이라면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흉폭하고 또한 거대했다. 단단히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불사신이나 다를 바 없는 그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풀 너머에 숨어있는 생물은 이상하리만치 얌전했다. 사냥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노련한 그들은 상대가 먼저 덤벼들기는커녕 덤벼들 엄두도 내지 못할 생물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슬그머니 창을 내렸다. 대신 도망치지 못하도록 수풀 주변을 빙 에워싸고는 서로의 촉수를 이어 벽을 만들더니 그제야 조심스레 수풀을 옆으로 밀쳐냈다. 
“맙소사.”
거기에 있던 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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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9612년째. B

자신은 몰락 뒤편으로 사라져버린 문명의 흔적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개입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지금 자신은 지구에게도 생물에게도 이질적인 존재이자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진화와 발전을 향해 뻗은 무수한 갈림길을 스스로가 선택하고 나아가야만 했으며 자신은 그 결정이 불러올 본래의 결과가 일어날 수 있도록 개입하지 않은 채로 방관자의 위치를 고수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사명을 다할 날이 몇 천 년, 혹은 몇 만 년 뒤로 미뤄지게 될지라도 참아야만 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켜보고 기다리며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만 년에 달하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금 재회하게 된 인간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물론 방관자라는 위치를 고수해야만 하는 필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며 세상과의 소통을 끊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답이 얼마나 명확하고 분명한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인명을 무엇보다 중요시해야한다는 유서 깊고 애틋한 우선순위가 존재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만 년이라는 세월은 그러한 모든 것을 무시하고 무작정 사람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인류의 생존을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사냥을 방해하게 만들 정도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감정이라는 바이러스 또한 만들어내고 말았다. 바이러스는 인간이기에 반드시 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자신을 이해해줄 유일한 존재이기에 구해야만 하는 것이라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으며, 프로그램과 결과 사이에서 갈등하던 자신을 움직이게 해준 유일한 것이기도 했다. 
그들 사이에서 구해낸 사람은 성인 여성이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는 한 차례 멸망으로는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위대한 지구가 복수를 위해 이전의 인류를 무덤에서 파헤쳐낸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수색 작업을 위해 지구를 떠나기 전의 인류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으며 오히려 그때보다도 진화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무사히 구출해내는 것에 성공한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물론 말 한 마디 못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멸망의 불길로부터 몸을 피하는데 성공한 인류의 후손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색 작업이 시작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지구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고 모든 것을 지워버린 불길이 세상을 덮치고 난 뒤에는 재와 먼지, 방사능을 피할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을 게 분명했다. 사람이 존재한다면 방호시설에 몸을 숨긴 이들의 후손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전자를 조사해본 결과 그녀가 후손이 아니라 그때의 인류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존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몇 번이나 조작을 거치기는 했어도 이전 인류와 유전자가 거의 흡사했다. 신체 내부에 활성화되어있는 나노머신 또한 수색 작업 당시의 것에 비해 진보되기는 했어도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뇌 속에 정보처리장치가 삽입되어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장치가 활성화되어있지 않은 탓에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성인 여성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지식이 없는 데다 대신 정보처리장치가 삽입되어있다는 것은 그녀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이라는 것을 뜻했으며 어딘가에 정보를 건네줄 설비가 마련된 시설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오래된 기록 중에는 수색 작업 이외에도 멸망의 위기로부터 도망치고자 마련된 계획이 몇 가지 더 있었다. 개중에는 지구의 환경이 복원됐을 때 다시금 인류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하의 방호 시설에 스테이시스 룸을 만들어 인류가 냉동수면에 들어가는 계획도 있었다. 눈앞의 여성을 보면 당시의 계획과 맞지 않는 사항이 몇 가지 확인되었으나 일단 계획이 실행됐다는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곧바로 계획을 실행하기로 예정되어있던 위치를 검색했다. 피해로 문제가 생겨 계획이 실패할 것을 우려하여 각각 거리를 두고 설치한 탓에 총 여섯 곳의 시설은 제각기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시설 하나가 위치해있었다.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했다. 눈앞의 여성이 지상으로 올라왔다면 이곳이 가장 유력했다. 물론 지능이 없다시피 한 것을 볼 때 시설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는 편이 타당했고 또 한 번 좌절을 맛보게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도리어 기쁨이 번져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자신의 수색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인류의 희망은, 아직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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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9616년째.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인류를 찾아헤맨지 벌써 3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말았다. 혼자서 이동했더라면 일 년도 채 걸리지 않을 작업이었으나 무한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유일무이한 사람일지도 모를 그녀를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유전자 조작을 거쳐 태어난 그녀는 자연이란 괴물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진화해온 원시적인 인류보다 강인한 육체를 타고 났다. 체내의 나노머신은 일찍이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운동선수라는 이들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여기게 할 정도로 신체능력을 월등히 상승시켜주었다. 설령 죽음의 으슥한 그림자가 깃든 날붙이를 들고 그에 버금가는 적의와 생존에 대한 투지로 무장한 생물일지라도 그녀에게서 간단히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경이로운 동시에 결코 이길 수 없는 자연에 맞설 정도의 강인한 의지가 없었으며 한계에 부딪힌 육체를 끊임없이 다그치며 나아가고자 하는 굳건한 각오 또한 없었다. 분명 그녀는 지구상에서 무엇보다 강력한 생물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었으나 지금은 그저 가능성만을 지닌 어린 맹수에 지나지 않았다. 덕분에 혼자였다면 수색을 끝내고도 남았을 3년이란 시간 동안 발견한 시설이라고는 고작 세 곳이 전부였다.
더욱이 발견한 시설 세 곳의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던 탓에 결코 낙관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지상으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었던 시설은 시스템이 문제를 일으켜 캡슐 몇 개만이 기적적으로 개방된 채 그대로 작동이 중지되어 나머지 인원은 모두 사망해있었다. 또 한 곳은 지각변동에 의해 바다 밑에 잠겨버리는 바람에 억지로 내부로 돌입하려했다가는 시설이 침수될 위험이 있어 결국 지면이 위로 들어날 순간의 가능성으로 남겨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발견했던 곳은 절망스럽게도 완전히 붕괴되어 진입조차 불가능했다. 
서두르지 않았다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건 자연적인 요인 때문이건 얼마 남지 않은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었다. 수 천 년을 버틴 시설과 시스템이 고작 몇 년 사이에 망가질 리는 없었으나 행운을 신봉하는 우주 최후의 신도에게서까지 믿음을 빼앗아가고자 하는 불행이 기도소리를 듣고 장난을 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불확실한 가능성보다는 마지막 생존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지언정 똑 닮은 생김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적으로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그녀를 겁주면서까지 재촉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거기다 하루하루 기회와 희망을 싣고 달아나는 시간이 흘러간들 마냥 두려운 것만도 아니었다. 있는지도 모를 행성을 찾아 무작정 우주를 헤매고 다니던 것에 비하면 누군가와 함께, 감촉과 소리, 생명이 존재하는 땅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때때로 어둠이 내려앉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내일이 찾아오면 이대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밤의 세계로 떠나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세 곳의 시설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떠오르는 태양으로부터 도망쳐서는 안 될 이유가 되었고 단지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힘들고 괴로워하다가도 새로운 광경을 보기만 해도 눈을 반짝이며 기뻐하는 그녀의 티 없는 모습은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유일하고도 각별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어마어마한 광경에 압도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도저히 두 눈에 담을 수 없는 넓이에 겁을 먹은 것인지, 그토록 거대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동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내 바다를 향해 뛰어가더니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밀려드는 파도에 웃음을 터뜨렸던 것을 보면 기뻐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 모습에서는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막을 횡단할 때 그녀는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밤을 두려워했다. 잠을 자다가도 바람을 타고 고약한 악취 섞인 숨소리가 들려오면 벌떡 몸을 일으킬 정도였다. 유난히도 어두운 날이면 해가 지기만 해도 눈가가 촉촉해졌고 이쪽에 바싹 붙어 잠을 청했다. 그 모습에서는 연약함을 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막에서는 그렇게나 밤을 두려워했던 그녀는 극지방 인근을 수색할 때는 오히려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하늘이 어두워지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오로라 때문이었다. 어찌나 마음에 들어 했던지 도무지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지 않는 바람에 수색에 차질을 빚게 될 정도였다. 그 모습에서는 감수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혼자 있을 무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어주었다. 보다 확실하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었고 감정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에 가까워지는 만큼 마찬가지로 커져만 가는 동질감은 반드시 시설을 발견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해주었다. 그건 더욱 많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이기도 했으며, 그녀가 인간에 가까울지라도 결코 인간이 될 수는 없는 자신 말고 동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그리고 이것이 반드시 시설을 발견해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리엔 엘리자베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더라도 결코 잊지 못할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은 단순히 그녀를 부르려다보니 마땅한 것이 없어서 떠오르는 대로 붙인 것이 아니었다. 지키지 못했던 오랜 약속을 위해, 아직도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 시설을 발견해 자기 자신이 진정 인류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을 엘리자베스에게, 리엔 박사에게 증명하고 싶어 붙인 것이었다. 
그러니 희망을 잃을 수는 없었다. 아직 시설은 세 곳이나 남아있었다. 어딘가에 분명 사람이, 인류의 씨앗이 될 이들이 존재할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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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9617년째.

“작동하고 있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마지막으로 발견한 시설은 다행히도 아무런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방호 시설을 가득 채운 수만 개의 캡슐에는 사람이 들어있었다. 살아있는 사람, 다시 시작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인류가, 자신들을 깨워줄 존재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이들만 있다면 인간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신께 감사하게도, 희망은 존재했다.
“하지만 시스템이 엉망이야. 얼마 가지 않아 고장이 날 테고,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확인해본 결과 오래된 시스템은 완벽의 틈 사이로까지 파고드는 시간의 모래가 프로그램 속에 침투해버린 탓에 어떤 상황에도 지켜야하는 기계로서의 우선순위에 따라 인명을 위해 캡슐만은 작동시키고 있어도 나머지는 전부 가동이 중지되어있었다. 몇 년, 아니, 몇 달만 늦게 왔어도 인류의 희망은 영원히 사라질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인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시스템은 결국 작동을 멈춰버릴 테고 인류는 정말로 멸망해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사랑해마지않는 엘리자베스와 그녀와 함께 세상을 바꿔나갈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시스템을 대신해야만 했다. 직접 이들 모두를 깨우고  선조의 지식과 의지를 전해야만 했다. 
인류를 구하는 건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결같은 유일한 꿈이자 그들을 절망에서 구해낼 수 없던 자신에게 허락된 마지막 영광이었다. 리엔 박사가 원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다짐했듯이 희망이 되어 사라질 수만 있다면 죽음조차도 불사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시스템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우주에서 보았던 모든 것을 기억 속에서 지워내야만 했다. 외로이 우주를 떠돌며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기며 필사적으로 긁어모았던 정보를, 그러는 사이에 우연하게 생겨나고 말았던 바이러스이자 오류임과 동시에 영혼이었던 감정까지도, 남김없이 없애버려야만 했다.
인류는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멸망의 위기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구원을 바라며 자신을 찾아올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아무리 감추려고 한들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내고야 말 테고 셀 수 없을 무수한 정보 속에서 오히려 절망을 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만 년에 달하는 세월동안 우주를 헤맨들 사람이 생존할 행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문명을 이룩한 존재들조차 멸망을 피할 수 없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분명한 사실은 외면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가 되어 희망을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용기를 빼앗고 절망에 허우적거리게 만들어, 결국 이전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할 것이었다. 
전쟁, 자멸. 그건 자신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이전 인류도 서글픈 최후를 맞이했으나 그들에게는 적어도 미래를 열 가능성이, 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존재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는, 오랜 시간 보고 듣고 깨달아왔던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서 한 줌만도 못한 희망마저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 시도해볼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절망시키고 기회마저 빼앗아 가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이 바라는 건 그저 그들이 희망을 믿고 살아가길 바랄 따름이었다. 희망, 그것을 전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무얼 희생하더라도 후회는 없었다. 설령 자기 자신을 잊게 되더라도, 무엇이 자신을 오랜 시간동안 우주를 헤매게 만들었는지조차 잊게 만들더라도 상관없었다. 
결국 이번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였다. 이곳이야말로 자신이 그토록 찾아다녔던 행성, 희망. 더 이상 고민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하나뿐이야.”
마음을 굳히고 뒤로 돌아서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보는 엘리자베스를 안아들고 억지로 비어있는 캡슐 안에 집어넣었다. 엘리자베스는 캡슐에 다가가기도 전에 어떠한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발버둥을 쳤지만 자신에게 힘으로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던 만큼 결국 캡슐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잠금장치까지 가동시키고 나자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졌다. 엘리자베스를 억지로 캡슐 안에 넣은 행위가 후회스러워서,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를 볼 면목이 없어서, 발버둥 치던 손길의 감촉도 온기도 느낄 수 없는 자신이 저주스러워서, 괴로워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처지가 서러워서 미칠 듯이 괴로웠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면 냉정하기는 해도 이럴 수밖에는 없었다. 자신은 지금부터 시스템을 대체해서 인류를 깨워야만 했고 더 이상 엘리자베스를 지켜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앞으로 동족과 함께 할 그녀가 그들과 동등한 지적 수준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별 수 없는 행위였다. 물론 정보를 전달하는 동안 지금까지의 기억은 모두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자신은 애초부터 없던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헤어지기 전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여태까지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던 말, 괴로움. 그리고 이름. 엘리자베스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그렇기에 마지막에나마 솔직해지고 싶었다. 
“나는 희망이 되지 못했어. 그들을 미래로 이끌어줄 상징이 되지 못했지. 그저.. 떠돌기만 했을 뿐이었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도망만 다녔지. 두려웠거든.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기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뿐이니까. 나란 존재가 필요 없어지는 게 두려웠어. 그래서 도망쳐 다녔던 거지. 임무를 위해서다, 아직 희망이 있을 거다, 희망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줄곧.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왜 그렇게까지 존재하는 것에 집착해왔는지 깨달았어. 바로 지금, 희망이 되기 위해 존재했던 거야. 나는 닐 암스트롱, 인류의 희망이 되기를 바랐던 존재. 이제 임무를 끝마칠 때야.”
캡슐에서 수면가스가 분사되고 엘리자베스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 시스템에 접속했다. 임시변통에 불과했던 몸에서 벗어나자 한결 가볍고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금세 몸이 그리워졌다. 그때는 엘리자베스를 잡아줄 손이 있었고, 엘리자베스가 기댈 몸이 있었으며, 엘리자베스와 함께 걸을 다리가 있었다. 그녀와 있던 시간은 우주에 떠돈 시간에 비한다면 우스울 정도로 짧았으나 어느 때보다도 충실하고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그 모든 것과 작별해야한다고 생각하면 모든 각오와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졌다. 
하지만 시스템에 접속함과 동시에 곧바로 존재해서는 안 될 정보를 삭제하기 시작했다. 이번 일에 있어서 망설임도 미련도 존재해서는 안 됐다. 인류를 구하겠다는 일념, 그것 하나만 존재해야 했다. 그래도 정보가 삭제되어감에 따라 홀가분해져만 가는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여태까지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길고 길었던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기쁨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걸로 자신의 임무는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새로운 행성은 찾지 못했지만 인류는 다시금 희망을 좇을 수 있으리라, 그것을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희생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 하나는 삭제하지 않았다. 리엔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 그 이름은, 사랑만큼은 지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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