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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용사와 마왕
글쓴이: 미르쨘
작성일: 14-08-28 12:32 조회: 924 추천: 0 비추천: 0

 나는 용사다. 나는 세상을 지키는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 용사다. 그렇기에 나는 세상을 지키고 구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실패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알아낼 수 없었다. 도저히 내가 지켜야 하는 세상이 무엇인가를……

 나는 용사다.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은 참으로 간단하다. 세상을 지켜라. 
 나는 용사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은 정말로 간단하다. 세상을 위해 싸워라.
 나는 용사다. 나는 무엇을 위해 용사가 됐는가? 그 질문에 답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내 눈에는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세상이 있었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정의가 있었고 악이 있었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사랑과 평화가 있었다. 나는 용사다. 나는 세상을 지켜야 한다. 고로 여기서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대체 어떠한 세상을 지켜야 하는가? 우리들의 세상을 지켜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의 세상을 지켜야 하는가? 우리들의 세상에 던진 그 질문은 그 세상에선 우문이었다. 자격미달이다. 그런 소리를 들었다. 실패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어떤 세상을 지켜야 하는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것으로 끝이다. 나는 더 이상 용사가 아니다. 

-

 나는 마왕이다. 나는 세상을 파괴시킬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 마왕이다. 그렇기에 나는 세상을 파괴시켜야 한다. 그러나— 나는 실패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는 핑계일 뿐이다. 알아낼 수 없을 뿐이었다. 내가 파괴시켜야 할 세상이 무엇인가를…… 왠지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나 그저 불쾌한 기분으로 치부해 나는 그 기분을 소거시켰다. 

 나는 마왕이다. 나는 무엇을 파괴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은 참으로 간단하다. 세상을 파괴시켜라.
 나는 마왕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은 정말로 간단하다. 세상을 파괴하기 위해서 싸워라.
 나는 마왕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마왕이 됐는가? 그 질문에 답은 물어볼 필요도, 들어볼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세상을 파괴시켜서 도대체 얻는 게 뭐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그런 숙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나는 세상을 파괴시켜야 하는가? 그리고 파괴시킬 세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들의 세상? 그들의 세상? 우리들이던 그들이던 그저 상관 쓰지 않고 파괴해야 하는 건가? 우리들의 세상에 던진 그 질문은 그 세상에선 우문이었다. 마왕은 약하다. 그런 소리를 들었다. 그것으로 끝이다. 나는 더 이상 마왕이 아니다.

-

 전직 용사였었던 자는 그저 나그네처럼 온 세상을 돌아 다녔다. 전직 마왕이었었던 자 역시, 나그네처럼 온 세상을 돌아 다녔다. 황량한 평야에 한 술집이 있었다. 그 술집에 두 나그네는 서로 운명의 만남을 가졌다. 

 전직 용사였었던 자가 농도가 짙은 와인을 마왕의 잔에 따르며 말문을 꺼냈다.

 “나는 세상을 지키는 숙명을 가진 채 태어났었다. 허나 나는 그 숙명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것은 도저히 내가 어떠한 세상을 지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대는 어떤가, 마왕.”

 전직 용사가 따라준 와인을 단 한 번에 들이킨 다음 반대로 농도가 짙은 와인을 용사의 잔에 따랐다. 입을 열었다.

 “그 질문, 분명 너희들의 세상에도 던졌겠지. 그리고 우문이란 소리를 들었겠지. 나도 마찬가지다. 용사, 나는 세상을 파괴시키는 숙명을 가진 채 태어났었다. 허나 나는 그 숙명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도저히 내가 어떠한 세상을 파괴시켜야 할지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직 마왕이 따라준 와인을 전직 용사도 한 번에 들이켰다. 용사와 마왕은 비슷했다. 서로의 목적이 성질이 반대일 뿐, 용사와 마왕은 비슷했다. 그렇기에 그 두 남성은 서로 잔을 나누며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에게 버림받은 마왕이여.”
 “세상에게 버림받은 용사여.”

 동시에 말문을 열었다. 

 “그대라면 나의 우문에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서로가 동시에 한 우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전직 용사였던 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정된 웃음을 내보였다. 전직 마왕이었던 자 역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정한 웃음을 내보였다. 한참을 그 두 남성은 호쾌하게 웃었다. 

 “자, 그럼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라고, 전직 마왕.”

 “아아, 그렇지. 전직 용사.”

 —치직 

치직― 치지직, 칙—

 “정신이 드십니까?” 

 그런 말이 들려오고 나는 시야가 조금씩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누워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자 나를 반겨주는 흰 가운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인자한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약간 부담스러워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떠셨습니까?”

 “……참으로 긴 시간을 잠들어 있었던 것 같군요.”

 “후후후, 그럴 수밖에요. 당신은 용사와 마왕의 삶을 동시에 체험했으니까요. 그래서 어떠셨습니까. 실패한 용사와 마왕의 삶은?”

 “정말로 체험하는 것이 아닌 진짜로 제가 용사나 마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참으로 안쓰러운 삶이었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정말로 체험은 이걸로 끝입니까? 그 이후에 얘기는 없는 겁니까?”

 나의 길지는 않은 소감과 그 후에 이어진 질문에 흰 가운을 입은 중년의 남성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남성은 짝— 하며 박수를 쳤다. 나는 그 소리에 잠깐 놀라 고개를 들어 그 중년의 남성을 바라보았다. 

 “체험이 그곳에서 끝난 것을 후회하십니까?”

 “당연하고말고요. 도저히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혹시 그 이후에 얘기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체험을 하게 해주시지요.”

 “그러지요. 하지만 더 이상 당신이 깨어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은 그 삶에서 모든 인생을 다 보내게 될 테니 말이죠. 자. 그럼 뒷얘기를 천천히 감상하시길 용사이자 마왕이었던 자여.”

 치직— 치직, 칙 치지직—

 나는 용사다. 그러나 용사이기 이전에 마왕이다. 

 나는 마왕이다. 그러나 마왕이기 이전에 용사다. 

 우문을 던지도록 하지. 용사이자 마왕인 나는 세상을 지켜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파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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