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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글쓴이: 모핀
작성일: 14-06-04 05:01 조회: 1,085 추천: 0 비추천: 0

 




소리





가로등의 소등은 아침 5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아마 삼십분이 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빛이 귀해진 뒤부터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것을 조금 더 철저하게 지키게 되었다. 명진은 가로등 불빛을 맞으며 누워 있었다. 그는 눈이 부신 와중에도 빛 사이사이로 검은 것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다 모으면 채 한 줌 정도 밖에 되지 않을 나방떼가 이리저리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곧 소등이 시작될 터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주검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은 가로등의 소등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되리라. 명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가락을 꿈틀댔다. 질척한 것들이 만져졌다. 생각하긴 싫지만 그 질척한 것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명진의 몸 속에서 꿈틀대던 것들이었다. 평소 버릇대로 헛웃음이라도 짓고 싶었지만 입꼬리조차 올라갈 힘이 명진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젖은 이빨을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명진은 눈 앞에 보이는 나방떼가 흐려짐과 동시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듯한 착각을 했다. 그리고 은혜를 생각했다.

 

세상은 너무나도 쉽게 종말을 맞이하는 듯 했다. 명진은 그 날단순히 자신이 너무 일찍 일어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여전히 째깍대며 움직이고 있는 아날로그 시계를 보고 나서야 그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물론 시계에 대해서, 베개 밑에 넣어둔 리모컨을 찾아 티브이를 키고 떨고 있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명진은 세상에 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아침 9, 당연히 하늘에 떠 있어야할 태양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발전소에서 만들어내는 전기는 0.0001초도 빛을 발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아나운서는 말하고 있었다.

 

명진은 단순히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티브이를 켰지만 마치 라디오를 듣고 있는 것처럼 화면은 여전히 까맣게 나오고 있었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 듣고 있는게 아닌가,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명진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끊겼다. 남성 앵커의 목소리가 잠시 이어진 뒤 그렇게 뉴스는 끝났다. 끝났다는 것을 안 것은 늘 듣던 뉴스의 엔딩곡이 티브이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명진은 잠시 침대에서 주춤하는가 싶더니 이내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서리낀 창문이 끼이익 하고 열렸을 때,

오직 어둠뿐인 도시를 볼 수 있었다.

 

건물의 윤곽마저 희미한 그 어둠 속에 유일한 빛이라곤 시간이 무색하게도 떠있는 달이 내뿜는 빛 뿐이었다.

 

 

2

 

은혜는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가압경수로 발전소에서 그녀가 꽤 높은 직책임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선 딱히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버릇마냥 내뱉는 말 들 속에는 명진이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이 많이 속해 있었다. 명진은 작은 스튜디오에서 카메라를 다뤘다. 증명사진으로 시작해 캠코더나 HDV카메라를 들고 예식장 같은 곳에 나가기도 했다. 아무런 연관점이 없던 두 사람이 서로 만난 것은 어느 예식장의 뒤편 주차장에서였다. 한 손에 카메라를 든 채 담배를 태우고 있던 명진의 옆에 은혜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가 신랑 신부의 대열 맨 뒤쪽에 서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가 단순히 사진기자로써 와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귀찮지 않아요? ”

순간 그는 그녀를 보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말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을 알았다.

먹고 살아야하는데 어쩌겠습니까. ”

그녀는 간헐적으로 이것저것 물어왔다. 그의 직업에 대해서, 카메라에 대해서, 그가 입고온 옷의 메이커에 대해서. 명진은 순간순간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곤 했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가 스튜디오로 돌아와 메모리 속에 담긴 영상을 확인한 후였다.

 

화면 속엔 콘크리트 바닥 뿐,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와 그녀가 나눈 무수한 말들이 그 영상 속에 들어있었다. 해드셋을 낀 채 그는 그 말들을 다시 들었다. 당시엔 대충 대답했던 그 질문들에 대해 혼잣말 하듯이 차분히 대답했다. 문득 그는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신랑 측에게 완성된 예식 영상을 전달하며 그녀에 대한 연락처를 물었고 그녀를 다시 만났다.

 

아무런 연관점이 없이 우연히, 그리고 나름의 사심을 통해 만난 두 사람이었지만 빛이 사라진 세계에서 둘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게 되었다. 카메라맨과 발전소의 공무원. 두 직업다 빛이 사라진 새로운 세계에선 아무런 쓸모없는 직업이었다.

 

3

 

찾았어. ”

무엇을 이라고 차마 대답하기 전에 그녀의 웃음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금방 갈게. 하루종일 집에 있게된 그와 달리 그녀는 늘 어디론가 불려나갔다. 그녀가 미국의 어느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학위 까지 받고 온 엘리트라는 것을 그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빛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전기는 필요하다는 것도 다음 날이 돼서야 깨달았다. 빛이 없을 뿐이지 여전히 티브이와 전화기에선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구청이나 시청에서 몰고 다니는 대형 트럭의 메가폰에서도 여전히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어둠뿐인 세상이지만 '소리에게 있어 어둠은 적이 될 수 없었다.

빛을 만들어냈어. 우리나라가 처음이야. 맨날 모방하고 이것저것 짜깁기하던 우리가 해냈어. 아무도 우릴 무시하지 못할거야. ”

그녀가 웃으며 잔에 와인을 따랐다. 그녀의 얼굴 윤곽과 달빛에 비친 와인 병을 보던 명진이 나지막이 웃었다.

근데……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가 않아. ”

무슨 말이야? ”

정확힌 만들어낸게 아니거든. 만들어진 것을 제일 먼저 발견했을 뿐이니까. ”

그녀는 와인병을 식탁에 내려놓고 자신의 빈 잔을 슬쩍 들어올렸다. 그리곤 와인이 채워진 잔을 명진에게 슬쩍 밀었다. 검붉은 액체가 잔 속에서 물결치는 것을 명진은 보았다. 아니 보았다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명진은 그 반복된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은혜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기에 차마 명진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어제 저녁에…… 누군지 모르는 산모가 우리 연구실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어

 

명진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잔에 비친 달이 파르르 떨렸다. 마치 당장이라도 하늘에서 떨어질 듯이

 

그 산모의 배 속에서 빛이 있었어. 마치 빛이 태어나듯이 말이야. ”

 

4

 

세상은 빛을 만들어내는 법을 알게되었다. 빛은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그런 물질이 아니게 되었다. 세계 각지의 학자들은 이 것이 빛이 아니다로 시작해 과연 그럼 이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을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하지만 아무것도 밝혀낼 수 없었다. 단지 이 것이 일정된 시간동안 발광한다는 것을 알아냈을 뿐이었다. 사실 이건 빛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유치원생도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빛은, 12개월이 채 되지 않은 태아의 심장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각국은 이 빛을 사용하기 위해 인간 복제라는 수단을 사용하게 되었다. 인륜을 중요시하는 단체와, 수많은 종교단체들이 항의했지만 빛이라는 전지전능한 물질을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었다.

 

은혜는 맨 처음 빛을 만들어낸 어느 산모속의 아기에게 소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명진은 그 뜻을 따로 묻지 않았다. 순식간에 소리의 이름을 딴 발전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발전소라는 간판을 내건 인간농장이 단 몇 개월만에 수 백개가 되었다.

 

 

5

 

소리가 만들어내는 빛은 만질 수 있었다. 명진은 처음 그 것을 만졌을 때 솜사탕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폭신폭신하고 따뜻한 것 같았다. 이 빛이 열을 발생하는건 아냐. 은혜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말 오랜만에 조우한 이 빛에 자신이 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 빛이 단순히 밝을 뿐인데도 따뜻하다고 느꼈다. 티브이는 여전히 라디오나 다름 없었지만 거리의 가로등 숲은 이 빛들로 채워졌다. 매일 수많은 공무원들이 이 빛을 전구 갈아 끼우듯 가로등 속에 집어넣었다. 이것이 당연해질 무렵 은혜는 점차 집에 들어오는 빈도가 줄었다. 대신 은혜의 목소리를 티브이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귀찮지 않냐고 물어오던 그녀는 티브이 속에서 인류에 대해 운운하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명진은 무언가 잘못되어감을 느꼈다. 여태껏 알아오던 모든 것들이 붕괴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녀는 도태된 그를 떠나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잠시동안 명진도 그 빛을 갈아끼우는 일을 함으로써 그녀에게 다가가려했지만 곧 이런 행동이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한 채 허공을 허우적대는 거나 다름없음을 느꼈다. 좌절했다. 어둠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좌절했고 모든 것이 귀찮다고 생각했다. 티브이 속에선 은혜를 여러 호칭으로 불렀다. 박사, 교수, 때로는 따라 부르기 힘든 어느 연구소의 소장이라고 했다.

 

스튜디오의 차임벨은 작동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출입하지 않았으니 그 새 고장이 난 것도 명진은 모르고 있었다. 램프 속에 소리가 만들어낸 빛을 담은 채 그는 스튜디오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직원이 셋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자리에 없었다. 직원들이 두고간 책이나 펜들이 책상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지만 곧이어 작동할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서랍을 열었다. 6mm 비디오 테이프가 그곳에 있었다. 아무런 글자도 쓰여있지 않았지만 그는 단번에 그 것이 어떤 테이프임을 알았다. 다들 이메일이나 USB 메모리에 영상을 받길 원했기 때문에 테이프는 항상 남아돌았고, 그는 어느 영상을 남아도는 테이프에 녹화했다.

그는 데크에 테이프를 집어넣고 재생시켰다. 모니터는 여전히 까맣게 나오고 있었지만 소리는 선명했다. 먼저 육중한 차가 한 대 지나다니는 소리 그리고 그 후,

 

귀찮지 않아요? ”

 

그는 책상에 엎드려 그녀의 목소리를 끝까지 들었다.

 

명진은 무언가 결심한 듯 데크에서 테이프를 뽑아들고 스튜디오를 나섰다. 스튜디오 앞에 세워둔 자신의 봉고에 올라탄 그는 오랜만에 잡는 핸들을 붙들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와이퍼가 지 멋대로 돌아가는 것을 무시한 채 그는 액셀을 밟았다.

 

그녀의 연구소에 다다를 즈음 그는 맞은 편에서 차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가로등 불빛은 먼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어둠은 커튼처럼 그 가로등 사이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심해에서 물고기끼리 맞닥뜨리면 이런 느낌일까 그는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레미콘 차량을 보고나서 생각했다. 아차 하고 핸들을 꺾는 찰나 전 속력으로 달려오는 레미콘 차량은 그대로 명진의 봉고를 들이 받았다.

 

달걀 껍질이 으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명진은 자신이 허공에 떠오르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곤두박질 쳤다. 남성의 비명소리 같은 것을 들은것도 같았다. 하지만 땅이 잠시동안 울리고 나서 그는 조용해진 도로 한복판에 누워있게 되었다.

 

명진은 은혜를 생각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렸고 이내 오래된 테이프가 감기듯 그녀의 목소리가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

그의 눈두덩이 위로 나방 한 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멀리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2014 / 06 / 04 모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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