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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99회차/1] 소설에 대한
글쓴이: 장금씨
작성일: 14-05-31 23:56 조회: 1,482 추천: 0 비추천: 0

*

 

그럼 오늘은 자신의 꿈을 말하는 시간을 가지겠어요.

변호사. 의사. 대통령. 가수. 프로그래머. 수의사. 경찰관. 소설가. 작곡가. 소방관. 포켓몬 마스터. 선생님. 피아니스트. 탤런트. 감독. 제일 예쁜 신부 -에이 그게 뭐야-. 모델. 과학자. 현모양처 그게 뭐야? 바보야 그것도 모르냐-. 사장님. 발레리나. -선생님 얘네 또 싸워요- 시인. 프로게이머. -수현아, 현민아 왜 싸우고 그래. 현민이가 저보고 바보래요. 바보 맞잖아- 경호원. 바람.

? 바람?

애들아 이제 그만.”

그만!”

입 앞까지 나온 말을 삼켰다. 교실이 시끄러웠다. 나를 제외한 23개의 꿈들이 자유롭게 교실을 돌아다녔고 바보와 지식인은 싸웠으며 어른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나의 꿈만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식도를 타고 들어가 위장에 머무르며 소외되고 있었다.

 

*

 

흐음. 진로희망계획서를 받고 진로희망란에 큼지막하게 적었다. 8년 전에 못했던 말을 지금에서야 할 줄이야. 물론 글로 쓰는 거지만.

근데 막상 적으니 그때 말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시원함보단 이것을 보는 선생 또는 그 주위의 인물들의 반응이 먼저 생각나 그 위에 볼펜을 덧입혔다. 으흠. 역시 좀 이상하겠지.

그렇게 10분가량 펜을 굴리며 고민하고 있자 자칭 바람이 되고 싶다던 소꿉친구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뭘 그리 고민해?”

아니 그냥 좀, 고민되네.”

그냥 대충 쓰면 되지.”

그렇게 말하며 자랑스럽게 나에게 자신의 계획서를 내밀었다. 10M 멀리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큰 글자가 가운데에 쓰여 있었다.

부자가 네 꿈이냐.”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그냥 희망이잖아 진로희망.”

진로희망이란 단어의 뜻은 알고 있는 건가 싶어 바람을 한심하단 눈빛으로 쳐다봤다. 근데 그 와중에 바람이 대충 뱉은 어떻게든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맘에 들었다. 나도 녀석처럼 뭐든지 어떻게든 써 내리고, 어떻게든 성공하고, 어떻게든 돈을 벌고, 어떻게든 행복한 삶을 얻는 완벽한 인생을 가지고 싶어졌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군. ‘어떻게든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좋아지기까지 했다.

그럼 뒤에서부터 걷어오도록.”

고민과 함께 돌리던 펜을 멈췄다. 그리고 적었다.

어떻게든.

 

*

 

면접관이 물었다. 진로희망계획서에 창작가라고 적으셨는데 어떤 걸 만드시는 건가요?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고 여러 개의 많은 세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 새로운 일들, 평범하면서도 색다른 일들로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작은 강연이라도 하듯 손짓까지 써가며 나의 세계를 설명했다. 하하. 면접관 하나가 짧게 웃었다. 그들의 표정은 이해가 아닌 웃음으로 가득했다.

조금 후에야 겨우 진정한 듯한 면접관이 목을 한번 가다듬고 물었다.

그것은 그림인가요, 글인가요?”

생각입니다.”

다른 면접관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무언가로 표현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생각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으니까요. 뭐 당신이 에디슨이라도 되서 뭐라도 발명하면 모르겠지만요. 생각을 영상화 하는 거라던가? 하하.”

……굳이 표현하자면 글로 표현합니다.

오호. 그럼 소설가시군요.”

면접관이

 

*

 

      창작가 소설가

 

*

 

종이를 넘겼다. 이런 걸 쓰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한 장을 넘기자 줄이 그어진 공책이 아닌 새하얀 공책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없이 하얀, 순백한 종이. ()의 공간이야말로 창조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히 줄 없는 공책을 샀다. 나는 없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마치 에디슨같이.

일단 한 줄을 써 적었다. 이것은 꼬이고 꼬인 여러 인물에 의한 평범한 연애 이야기다.으흠. 괜찮군. 아주 간단하고 가볍고. 좋아. 고개를 끄덕였다.

 

*

 

최근 우연찮은 기회로 유명 포털 사이트에 소설 연재를 하게 됐다. 아는 분의 추천으로 시작한 연재였다.

이것은 여러 인물에 의한 얽히고 얽힌, 여러 가지의 이야기의 꼬리를 문 사랑 이야기다.으흠. 괜찮군. 자판이 탁탁 튀겼다.

첫 연재 때, 나는 간략하면서도 독자에게 상상을 맡기는 유연하며 흐릿한 글. , 문장다운 문장이 들어있는 글을 쓰려고 몇 번, 몇 십번, 몇 백번을 고쳐 쓰며 머릿속에 골치를 쌓아가고 있었다. 내 담당 편집자님은 나보고 편하게 쓰라곤 했지만 내 세상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 내 속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결코 편하게 쓸 순 없었다. 계속 읽고 계속 고쳤다. 그렇게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속도와 맞먹을 문장들이 타자를 거쳐 하나씩 배열되고 있자, 담당자님이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저녁에 밥이라도 같이 먹어요. , 학교가 늦게 끝나나요?”

아뇨. 괜찮아요.”

그럼 7시에 집으로 데리러 갈게요.”

전화를 끊으려 귀를 떼는 순간 담당자님이 아차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 원고 꼭 가져오세요. 제 메일로 보내주셔도 되고요.

 

*

 

약속대로 7시에 담당자님은 차로 집 앞까지 마중 나오셨다.

, 뭐 먹고 싶어요?”

열심히 달리는 차 안은 담당자님의 목소리처럼 편안했다. 나긋하며 차분하고 부드럽다. 당장이라도 잠에 빠질 것 같아 일단 대답했다.

그냥 아무 거나요.”

운전을 잘하는 건가 싶어 담당자님의 손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알 수 있었던 건 그냥 핸들이 부드럽게 돌아간다는 것 정도였다.

그럼 그냥 제가 잘 아는 맛집으로 갈게요.”

.”

곱창 좋아하세요?”

.”

…… 너무 굳지 마시고 편하게 말씀 하세요. 편하게요.”

편하게라.

.”

 

얼마 후 우리는 곱창 집에 도착했다. 오래된 전통! 국산! 최고의 질! 최고의 맛! 그런 문구들이 창문에 붙어있었다. 어서 오세요. 안에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7시가 퇴근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술자리를 벌이고 있었다.

술은 안 되니까…… . 사이다 괜찮죠?”

.”

담당자님이 곱창과 소주와 사이다를 시켰다. 그리고 순서대로 소주와 사이다, 곱창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메일 잘 받았어요. , 아직 읽지는 못했고요.”

그러면서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곱창집에서 노트북이라니. 처음 와보는 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노트북을 한쪽자리에 걸쳐놨다. 다행이도 4인 테이블이라 자리는 넓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조금 신경 쓰이는 것만 빼면.

, 이제 드셔도 되요.”

마우스를 딸깍 대면서 다른 손으로 나에게 곱창을 권했다. 그냥 먹으면 되는 건가? 곱창을 가위로 잘게 잘라 젓가락으로 집었다. ……. 딱 봐도 맛이 없어 보였지만 뭐 죽기야 하겠나. 흐물흐물한 드럼통같이 생긴 얇은 고기를 입에 조심히 털어 넣었다.

.”

생각보다 맛있었다. 정확히는 다른 맛있는 음식의 맛있는 맛보단 고소한 맛이 있었다. 그렇기에 맛있었다.

……

맛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자, 마우스를 딸깍 거리던 담당자님이 긴 신음을 끌어냈다. 난 곱창을 하나 더 집어 먹었다.

이거 글을 너무 잘 쓰셨는데.”

심각한 표정과 달리 담당자님의 입에서 칭찬이 나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그게…… 여기선 좋은 게 아니에요.”

의외가 아니라, 입이 틀리고 표정이 맞는 거였다. 나는 담당자님이 하신 말에 무슨 철학이 담겨있을지 잠깐 생각했다. 없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으로는 그 철학을 이해기도 어려웠으며 이해할 수도 아니, 하기도 싫었다. 맛있는 건 맛있는 거다.

정확히는 너무 어렵게 쓰셨다고 해야 하나.”

맛이 어려운건가.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맛을 음미하는 것이 언제부터 어려운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지금 내 앞의 담당자가 과연 진짜 담당자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이쪽이 좀 그래요. 독자층들이 조금 어리다보니까 문장보다는 대화 위주로 써야 하고,”

대체 왜? 제대로 된 형체도, 배경도, 동작도 없이 말만 나오는 게 읽기 좋다고?

소재도 조금 가벼운 걸로 가주셨으면 좋겠어요. 평범한 연애 이야기 정도?”

가벼운 소재. 가벼운 이야기. 그래서 연애인가. 연애가 가볍단 말이지.

고치시기 힘드신 거 아는데. 일단은 저희랑 계약을 하신 거니까 조금만 힘내주세요. 다행히 이 글도 연애 쪽인 것 같으니까 여기서 힘만 좀 빼고 쓰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담당자는 말했다.

편하게 써주세요.

언제부터 편하게라는 말이 극악의 난이도를 의미하는 최악의 단어가 된 걸까. 잠깐 생각했다.

 

*

 

그 이후부터 나의 표현에는 문장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문장은 있었지만 문장다운 문장이 사라졌다. 그저 간단명료한 몇 가지의 단어가 나열 되어 있을 뿐. 아무 무게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야기의 반 이상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우주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한없이 하얀, 순백한 종이. ()의 공간이 아닌, 암흑 물질이 가득 찬 우주.

그래도 나는 글을 계속 써내려갔다. 쓸 수밖에 없었다. 글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나로 인해 만들어진 상상력 98%와 인력 1.9% 그리고 0.1%의 잉크/전기로 된 작은 인생이었기에 나는 그것을 책임지고 이어가야했다. 물론 반 이상이 빠져버린 무게감 없는 인생이었지만.

친구 말대로 어떻게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첫 연재물을 올렸다. 그런데 댓글은 의외로 괜찮은 평가를 내고 있었다. 다음이 기대된다느니, 아래까지 내리기 불편하니 위로 꺼지라느니, 대작나무 타는 냄새라느니. 상당히 파격적인 문장들로 나를 칭찬했다. 그들의 인생과 같아서 일까. 아니면 그들도 무게 없는 인생을 살고 싶어서일까. 적어도 난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은 평가만 해주면 되는 거였다. 내가 만든 작은 인생의 점수를.

 

*

 

점심시간이었다. 글이 가벼워진 후로 글 쓰는 시간이 줄어서 편해졌다. 마침 한가한 때에 한때 바람을 꿈꿨던 친구에게 내가 물었다.

너 어렸을 때 꿈이 왜 바람이었냐?”

바람? 뭔 바람?”

그야 나도 모르지. 아마 부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입을 모아 바람을 휘이 불었다.

내 어렸을 때 꿈이 바람이었나?”

물론, 내 기대에 부응하듯 기억도 못하고 있었다.

바람이었어. 네가 내 앞자리였잖아. 뭐 갑자기 일어난 싸움 때문에 시끄러워져서 흐지부지 끝났지만.”

바람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그냥 바람이 시원해서 라던가 어디라도 갈 수 있어서.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싶은데. 넌 그런 것도 기억하냐. 대단하구만.”

그것기억하는 거야. 조금 특별했거든.”

그럼 그때 네 꿈은 뭐였는데?”

소설가.”

 

*

 

모든 일에는 모든 책임이 따른다.

아마 난 그 문구의 영향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봤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8년 전에 봤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가 끝난다면 나는 다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리라. 그렇게 마음먹었다 이번에야말로 결코 가볍지 않고, 제대로 된, 상상력 98%와 인력 1.9% 그리고 0.1%의 잉크/전기로 된 존재들에게 인생을 부여하는 완벽한 이야기를 쓰자. 누구에게도 평가를 받지 않는 나만의 이야기를.

 

*

 

변호사. 의사. 대통령. 가수. 프로그래머. 수의사. 경찰관. 소설가. 작곡가. 소방관. 포켓몬 마스터. 선생님. 피아니스트. 탤런트. 감독. 제일 예쁜 신부. 모델. 과학자. 현모양처. 사장님. 발레리나. 시인. 프로게이머. 경호원.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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