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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99회차/1] 소설가가 있는 소설
글쓴이: 뿌리
작성일: 14-05-31 23:37 조회: 1,005 추천: 0 비추천: 0

 

 

 소설가가 있는 소설

 

 

 “, 그러니까 다하씨......!”

 망설이며 작게 소리치는 목소리. 붉게 상기된 얼굴.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다. 적어도 내게 보여주는 수줍은 모습과 귀여운 얼굴, 그리고 항상 나를 웃게 해주는 그녀 그 자체만큼은. 내게 충분히 아름다웠다.

 “저와 결혼해 주세요오……”

 이어 울음 섞인 고백을 하는 그녀는. 미안하지만 아름답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이다지도 슬픈 고백이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찾아오게 되는 것은. 눈물로, 목메임으로, 상처로, 그리고 아픔으로 다가오게 될 이 고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말. 정말 미안해요오…… 이런 마음, 여태 숨기고 있었어요…… 미안해요. 이제서야 말하게 되어서……”

 그만. 그만. 이젠 그만……

 더 이상 말하지 말아 주었으면. 이 이상 말하지 말아 주었으면. 흐트러진 그녀의 옷자락과 눈물자국과 부끄러움에 붉게 상기된 얼굴과 슬픔으로 울먹거리는 눈빛과.

 그리고. 눈물과, 눈물도……

 이젠 그만.

 “이제서야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차가운 말투. 난 지금 화가 나 있는 걸까? 기뻐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 행복에 겨워 눈물짓기에도 아까운 시간들을- 겨우 분노로 채우려는 것일까.

 아니다. 아니야. 난 지금 화가 나 있는 게 아니다. 화가 나지도, 그녀를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녀를, 내게 고백해준 그녀를 더 할 나위 없이 사랑하고 있다.

 헌데. 헌데도……

 “너무 늦어 버렸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언제나 꽁꽁 숨겨놓았다가 언제고 마음 속에 품어 놓았다가, 다하씨가. 다하씨가……”

 이윽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울려 버렸다.

 그녀에게 사랑 받고 있는 나는 누구 인가. 갑작스런 고백에도 기뻐 할 수 없는 나는 누구 인가. 그리고 여기는 어디인가.

 하얗다. 머리 속도. 마음 속도. 새하얗고 새까맣다.

 “후우……”

 나는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눈앞이 흐려졌다.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아른거렸다. 내가 보는 그녀의 모습처럼, 그녀도 그 아름다운 눈을 눈물로 적신 채 나를 흐리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온 세상이 하얀 백지 같았다. 내가 누워있는 이 곳도. 벽지도. 천장도. 그리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도. 모두.

 “, 안돼요 다하씨…… 눈빛이 흐려졌잖아요. ? 정신 잃으면 안돼요…… 저 이제 고백 했잖아요…… 그 동안 못한 말. 내가 못해 드렸던 거 다 해드릴 게요. 조금만 참아요…… 괜찮아요. 제가 있잖아요. 버틸 수 있어요…… ?”

 눈 앞이 흐렸던 건, 눈물 때문만은 아니었구나. 의식도, 그녀의 목소리도 점점 흐려져 간다. - 행복했던 순간들을 생각하고 싶었다. 지금 너무 행복해서, 조금 정도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만이 밀려왔다.

 행복했던 나날들이 없었다. 희뿌옇게 바랜 추억 속을 되돌릴 때마다 나는 늘 울고 있었거나, 혼자 있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적어도 그것만은 확실했다. 그것이 변하게 된 것은 최근 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 그것은 행복하다 말할 수 있었다.

 “다하씨……?”

 나는 세상에서 더 없을 만큼 황홀함에 젖어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내 손을 맞잡은 그녀의 손이 점점 뜨겁게 변해갔다. 떨어지려는 내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녀는 더욱 더 세게 붙잡았다.

 “…… 저기 다하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비명 지르고, 내게 매달려 미친 듯이 오열하는 목소리가-

 이 세상 마지막에 남은 내 행복의 전부였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와나 이게 뭐냐 진짜. 내가 써 놓고도 암울하네. 나란 자식. 이렇게 새드 엔딩을 좋아했던가?”

 나는 첫사랑의 실연을 맛 본 추억과, 이별한 기억들을 하나 하나 곱씹으며 손가락을 세었다.

 “……”

 무려 9.

 “와나 씨발. 이딴 거 쓸 만 하네. 진심 내가 봐도 암울하다 싶었더니 무의식 속에 있는 나란 놈아. 차인 게 그렇게 억울 하더냐? ? 겁나 쩔게도 혐오하네. 커플들.”

 에라이 된장. 무의식의 나란 놈이 이런 이상 해피엔딩을 쓸 수 있을 리가 있나. 뭣 좀 제대로 해볼라치면 꼭 이런 식으로 새드 엔딩을 만들어 먹으니 독자들에게 욕을 안 먹을 수가 있나.

 “에라 모르겠다. 욕 쳐먹고 존나 오래 살아 보련다. 독자님들아. 초반에 달달한 꿀 빨았으면 뒷맛은 좀 써야 인생 아니겠습니까? 지난 화에서 새드 엔딩 추리한 새끼는 상이라도 줘야 해 진짜. 나도 일주일 전만해도 이딴 막장 아침 드라마식 뽕빨 엔딩으로 끝낼 줄은 생각도 못했다니까. 니가 작가해라 걍.”

 마지막 엔터를 치고 문서를 저장했다. 그리고 퇴고도 없이 바로 업로드. 이것이 정석이다. 어차피 난 관심이나 끌려고 글 끄나풀 좀 끄적거리려고 하는 것뿐이니까. 이 놈의 백수생활만 끝나면 다신 글에 손 쓰나 봐라.

 -

 몰려오는 피로에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담배 한 개피. 죽어난다 죽어나. 늘 이쯤 되면 때려 치워야지.’ 하는 회의감이 들어오는데. 오늘은 느낌이 좀 다르다.

 “난 정말 어떻게 돼 먹은 놈일까……”

 천장의 전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외로움이라도 타는 것마냥 중얼거리고 있는 내 꼴이 우습다 말하겠지만, 그런 나 자신조차 내게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어릴 때 사랑했던 순수한 연애 소설에 나오는 학창시절을 동경하기도 했다. 그리고 때때로 판타지에 빠지며, 평범한 주인공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게도 그런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에 빠진 적도 있었다. 때로는 슬픈 결말에 울기도 했고, 멋진 묘사 멋진 장면들을 상상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소설을 써 내는 작가들을 동경했다.

 한 번은 나도 그런 소설을 써보겠노라 마음 먹고 있지도 않은 필력을 폭발 시켜 글을 써본 적도 있었다. 처음 쓴 나의 소설은 언젠가 내게도 찾아 왔으면 했던 꿈 같은 사랑 이야기. 이상형을 여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대리 만족을 느끼며, 또 독자들도 나와 같은 상상을 느꼈으면 하는 바램에서 써 보았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이야기.

 진심으로 바랬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연이은 취직 실패에 생활비마저 모자라고 남들이 비웃던 꿈을 좇아 노력했던 길을 걸은 나의 모습은- 한 마디로 잉여인간이다.

 하하-

 자조적으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울고 있는 건가.

 이런 막장 소설의 주인공도, 이런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의 주인공도, 그리고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도 부러웠다. 하나같이 내가 꿈꾸던 것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겪어 보고 싶었던 것들을 겪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항상 내게 없는 것들을 가졌다.

 “부러운 새끼들. 씨발 난 이게 뭐냐고. 뭐 존나 쌈박한 그런 일탈 안 생기냐? 조만간 내가 쓴 소설로 딸 치게 생겼네. - 나 진짜. 인생 좆 같아서 원. 나도 어느 뽕빨 하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능력 없고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새끼란다.”

 그러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자신은 겪어 본 적 없는 것들 것 상상하며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 판타지이고 소설이고 이야기인 것을.

 평범하지 않은 일상. 새로운 것들. 흥미와 재미를 추구하며 때로는 감동을, 또 때로는 교훈을 가지는 그런 소설은-

 그야 말로 멋지지 않은가-!

 “그래 오냐. 존나 좆 같지만 그래도 써 주마. 이딴 잉여라서 겁나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고, 되도 않는 욕심도 부려 볼 수 있는 거다.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상상에서라도 만들어 주마! 이게 바로 상상 딸이다!!!!!”

 밖으로 새어 나갈 정도로 크게 소리 질렀다.

 “……와 씨…… 쪽 팔려 뒤지겠네. 상상력으로 수정할 게. 오늘 이불 킥 하나 한다.”

 후우-

 마지막 한 모금을 내 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어서 몸들이 어지간히도 굳었는지 움직일 때마다 뚜둑- 거리거나 삐걱- 거렸다.

 “읏샤- 그럼 성실한 놈이 댓글 달았는지 확인이라도 해 볼-“

 모니터 화면에 눈을 돌렸을 때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이질감이라고 할까- 이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모니터에서 이상한 것이 부풀려져 튀어나왔다.

 “, 이게 뭐냐.”

 나는 툭 건드려 보았다. 살구색의 둥그스레한 그것을 찔러보자 움찔하고 반응이 왔다.

 “이거…… 이거…..! ? 잠깐만 현실 놈아?”

 나는 격앙된 목소리로 외치며 그것을 연속해소 콕콕 찔러 보았다. 누를 때 마다 뭉클하고 전해지는 묘한 느낌하며 부드러운 그 형태는.

 “…… 슴가?!”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연속해서 움찔거리더니 조금 더 앞으로 튀어 나왔다. 움직이고 바둥대는 그것은 점점 더 튀어나오더니- 결국 들이밀었다.

 한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

 입을 열었다.

 동글동글하고 맑은 눈동자에 볼살이 약간 남은 귀여운 얼굴. 꼬집고 깨물고 할짝 거리고 싶을 만큼 깜찍한 얼굴과 달리 한국에선 볼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하고 착한 마음씨를 소유한 그녀는-

 “! 찾았다!”

 나를 가리키며 그렇게 외쳤다.

 “좋아! 너로 정했어!”

 “오와? 야 잠깐만?!”

 그녀는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멋대로 내 멱살을 잡더니 자신이 나온 모니터 속으로 나를 끌어 들였다.

 “입 다물고~ 내가 나중에 이것저것 다 보상 해 줄 테니까 일단 나만 따라와! 난 지금 네가 무지 필요하니까!”

 , 필요하다고?! 이 내가?!

 멱살을 붙잡힌 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헤드락 기술에 걸린 것처럼 품에 안겨 있었다. 머리 쪽이 조낸 부드럽다. 이곳 저곳 피가 몰려드는데…… 뿅가 죽네!

 “~ 다 왔다!”

 이윽고 멀리서 눈부시게 밝은 빛이 비쳐졌다.

 나는 그 빛을 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 고맙다 작가 이 새끼야. 잉여 인생으로 겁나 부려 먹더만 마지막에 이런 선물을 주냐…… 게이는 아니지만 사랑한다. 뿌리 새끼.’

 엄지를 척 들어, 내게 보였다.

 별 말씀을. 거기 가서 존나 멋지고 쭉쭉빵빵한 여자들이랑 행복하게 잘 살아라. 넌 강제 하렘이다.

 근데…….

 이런 거 쓰고 있는 나는…… 씨발 누가 모니터 속에서 안 나와 주냐.

 좆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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