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98회차/2] 리디 싱클리어
글쓴이: 휴먼토치
작성일: 14-05-20 00:02 조회: 1,547 추천: 0 비추천: 0

<리디 싱클리어>


  리디 싱클리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활기찬 그녀의 모습을, 사랑이 가득 담긴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추수를 앞둔 밀밭처럼 황금빛으로 굽이치는 풍성한 머리칼은 리디의 귀밑으로 곱게 흘러내려 와 있었고, 주근깨 하나 없는 맑은 뺨이 붉게 상기되도록 늘 부지런을 떨고, 이웃집 아낙과 나이 든 우유배달부에게도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한다. 겉으로 드러난 이런 모습들을 아무리 가져다 늘어놓는다 해도 리디가 사랑받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만인의 사랑을 독차지 한 리디 싱클리어. 잘 익은 과실을 바라보듯 주변 사람들을 흐뭇한 감정에 빠트리는 그녀의 진면목은 나뭇가지 위에 고립된 아기고양이나 전쟁터에서 총상을 입고 돌아온 젊은이들이 리디의 에메랄드빛 눈동자 속에 들어와 박히는 순간이었다.


  “아아. 어쩌면 좋아. 여보세요! 주변에 누구 도와주실 분 없나요?” 자신의 가족에게 밀어 닥친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들을 도움을 구하는 것처럼, 리디는 나무에 올라가서는 내려오지 못하는 고양이를 구출하기 위해 사다리를 빌리러 이웃집에 뛰어 들어가거나 다친 젊은이의 손을 잡아 직접 마을의 병원으로 안내했다. 리디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이웃집의 늙은이는 그저 가볍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사정을 청취한 뒤 고양이를 나무에서 지면으로 내려주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총상을 입고 돌아온 젊은이는, “꼬마숙녀님, 전 이미 의사 선생님과 제 다리에 들어간 철심이 어느 지역 공장에서 만들어졌는지까지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하고 정중하게 거절했으나, 리디가 감기에 걸린 날이면 청진기를 들고 진료를 하는 것과 더불어 분홍빛 소용돌이가 들어간 커다란 사탕을 주고는 했던 의사의 병원으로, 결국 끌려가고 말았다.


“상처가 생기면 매일매일 의사선생님을 만나야 해요!”


  리디는 젊은이에게 강하게 주장했다. 리디가 젊은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둘째 문제로, 젊은이가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교환하는 동안 리디는 대기자들이 앉아 있는 딱딱한 의자에서 커다란 분홍빛 사탕을 날름거릴 수 있었다. 모든 치료 과정을 마치고 나온 젊은이는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는 리디와 그녀의 얼굴 절반을 가릴 만큼 큼지막한 사탕을 보고서 겨우 상황을 이해했다. 리디는 다소 얌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결코 자신만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이기적으로 굴지는 않았다. 젊은이도 그런 사실을 알았기에 병원을 나서면서 리디의 황금빛 머리칼을 한번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꼬마 숙녀님, 의사선생님이 사탕을 너무 자주 먹으면 이가 썩을 거라고 걱정하는군요.


  외부의 모든 것들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동원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인 것처럼 리디는 세상을 여러모로 이해하고자 했다. 길가에 핀 이름 없는 들꽃을 발견하고는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어보기도 했고, 이제 막 볕을 통과시키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종달새의 지저귐을 듣고는, 그래 오늘은 햄 아저씨네 볼프강-햄 아저씨네 마당에서 손님이 들어오면 컹컹거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암케로, 리디를 보면 쭐래쭐래 다가와 헥헥 거리는 수많은 짐승 친구 중 하나다-이 새끼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하고 일정에 햄 아저씨댁 방문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녀를 보는 사람들의 온화한 시선만큼이나 만물의 모든 흐름이 그녀를 떠받치고 유유히 흘러가면 좋으련만! 리디에게도 남들만큼이나 괴롭기도 하고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문젯거리가 한 가지 있었다. 남들에게 털어놓지도 못할 그 고민거리와 만나기 위해 리디가 오늘의 마을 순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민거리씨는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시지 않았다. 동이 트면 리디는 두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먹잇감을 찾는 동작으로 사방팔방을 돌아다녔다. 오늘은 톰이 가져온 동화책을 함께 읽고 토끼풀이 가득 자라난 언덕에서 여섯 잎사귀가 달린 기묘한 토끼풀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결국 네 잎사귀가 달린 풀만 세 개를 찾아내는 성과만 거두고 말았지만. 리디는 톰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고민거리씨는 해질 녘이 되어 리디가 허기를 이기지 못해 집으로 돌아올 즈음부터 보통 그 자리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리디는 엄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하면서 엄마가 돌아와 저녁으로 스튜를 끓이는 동안 시간이 걸리니 고민거리씨와 먼저 만나기로 했다. 리디는 2층의 복도로 올라갔다. 나무 바닥이 살짝 삐걱거리기는 했으나 겨우 이런 조그만 여자 아이를 지탱하지 못할 것이었다면 지난 해 엄청난 강풍과 함께 찾아왔던 태풍에 일찌감치 폭삭 무너졌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복도의 삐걱거림이 불안한 소리가 아니라 고민거리씨에게 리디가 다가가고 있음을 살짝 미리 귀띔해주는 것이라 여겼다. 리디가 갑자기 다가가 고민거리씨를 부르면 화들짝 놀라며 지붕의 경사를 데굴데굴 굴러 내려갈지도 모르니까.


  다락방의 구석에 난 들창을 열어 고정 시킨다. 열린 창으로 하늘이 내다보인다. 화로에서 타오르는 장작더미의 빛깔처럼 주황빛과 선명한 붉은 광선이 하늘을 점거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맥의 골 사이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농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등과 어깨에 뜨뜻한 온기와 함께 평온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고, 하늘의 빛깔이 잉크처럼 번진 호수는 태양을 삼킨 것처럼 반짝였다. 종종 나무들을 베러 사람들이 찾는 숲에서는 나무들 사이로 밤이 살짝살짝 어두운 그림자를 내보이며 언제쯤 숲을 벗어나 들판과 마을에 찾아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완연히 해가 지고 별빛으로 가득한 밤의 커튼이 둘러지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고민거리씨도 분명 있을 거야.


  리디가 조심스럽게 들창 밖으로 몸을 내민다. 다행히 지붕의 경사는 심하지 않았고, 들창 밖으로 나가면 거의 평지와 다름없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리디는 거침없이 들창을 나와 지붕에 올라섰다. 저녁 때의 바람이 온기를 전달함과 동시에 선선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오묘한 신비를 풍기며 리디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안녕. 리디.


  밀크티를 떠올리게 만드는 향긋한, 노곤한, 느릿한 목소리가 리디를 반겼다. 고민거리씨는 벌써 와 있었던 모양이다. 리디가 먼저 온 고민거리씨에게 인사를 했다. 고민거리씨는 머리인지 몸통인지 모를 둥글고 반짝반짝한 은비늘빛 몸체를 위 아래로 한 번 끄덕이며 화답했다.


-빙글빙글은 해님이 숨는 시간이면 항상 여기에 있구나.


-리디. 너의 호칭엔 오류 있음. 나는 자율기동병기 ‘포트-697’.


  포트-697은 빙글빙글 동체를 회전시키며 외부현황판에 붉은 도트로 화난 표정을 지어보였다. 라디는 포트-697의 신경질적인 발작에도 아랑 곳 없이 그의 곁에 다가가 치마 엉덩이를 손으로 잡고 지붕에 앉았다. 오히려 허공에 둥실둥실 떠오른 포트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 볼 뿐, 포트-697의 노여움에 대해서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노을은 세상을 붉은 섬광의 바다로 덮어버렸고, 그보다 더욱 짙은 색의 붉은 지붕 위에는 치마를 곱게 정리하고 앉은 리디와 허공에 떠오른 포트-697이 나란히 자리했다. 리디가 먼저 미안해, 하고 말을 꺼냈다.


-오늘도 여섯 잎 클로버를 찾지 못했어.


-목표 달성 실패. 이틀 이내에 찾아야 함. 차원 분기까지 47시간 52분 10초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포트-697은 리디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리디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던 어느 날 밤, 쥐들도 잠들었는지 지붕과 벽틈에도 침묵이 가득한 밤, 새벽까지 종종 붉은 테두리의 두꺼운 책-아빠는 그것을 논문이라는 단어로 일축했지만 리디가 보기에는 새로운 종류의 의자 높이 조절용 깔개라고 생각했다-을 읽던 아빠마저 곤히 잠든 날 밤, 딱따구리의 두드림처럼 누군가가 리디의 2층 창문을 똑똑똑 두드렸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소나기의 방문일까, 빗방울이 땅바닥의 차가운 웅덩이보다 안락한 집안이 더 좋아보여서 들여보내 달라고 창문을 두드리는 걸지도 몰라, 잠결에 혼몽한 정신으로 애써 잠을 깨지 않으려던 리디는 결국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말소리를 몇 시간 동안이나 못들은 척 하며 선잠에 들었지만, 결국 가위에 눌려 벌떡 일어나다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소나기 대신 창문을 두드리고 있던 것은 포트-697이었다.


-톰하고 같이 찾아봤지만 그래도 클로버는 찾지 못했어. 만약 이대로 이틀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상수계 21.972u단위 시간 전, 아군 오버홀 유닛이 허수인(虛數人)의 공허계수다차원공진파(空虛係數多次元共振波)에 의해 전부 파손. 열여섯 차원을 잇는 차원 외벽의 균열, 수습 불가.


  분명 리디가 태어나면서부터 들어온 말이 분명하지만 포트-697의 설명은 단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상수계니, 오버홀이니, 허수인이니 하는 단어들은 리디에게 있어, 이국에서 흘러들어온 떠돌이 유랑 악단이 부르는 툴툴족의 전통음악만큼이나 낯설었다. 툴툴족의 전통음악은 심지어 음악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지경이었는데, 악기대신 유랑 악단의 악사들은 양손에 국자같이 생긴 나무막대기를 부딪치는 소리와 땅바닥을 구르는 발소리에 맞추어 ‘아이호이후’ 하는 어구를 반복할 뿐이었다. 리디는 다시금 그 엉터리 같은 전통음악이 포트-697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유심히 귀를 열어 집중했다. 포트-697는 리디의 이해나 숙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떠들어 댔다. 리디는 요정 같은 이 금속 물체가 눈 오는 날 마당을 미친 듯이 뛰노는 강아지와 닮은 구석이 있구나 하고 납득했다.


-오버홀 유닛 추가 투입을 위해 상수계 0.072u시간이 요구됨. 그러나 차원 외벽 붕괴로 인해 차원 소멸까지 상수계 0.021u시간 전. 다차원수호결전함대의 인공두뇌 분석 결과 현 차원 내 나비효과에 의거한 차원관성으로 상수계 0.055u시간 확보가 유일한 방안.


-빙글빙글. 전혀 이해를 못 하겠어. 쉽게 말해 줄 수 없을까?


-리디. 여섯 잎 클로버 찾지 못하면 하늘과 땅이 사라진다. 차원 내 모든 게 사라진다.


-거짓말!


  엄마는 리디에게 하늘과 땅은 신의 축복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새들이 버젓이 날 수 있고 땅에서는 식물들이 푸른 머리를 들어 올리며 자란다고 했다. 그런 하늘과 땅이 사라진다니! 신님이 노하기라도 한 걸까? 언젠가 리디를 재워주면서 엄마가 말했다. 리디, 항상 언제나 정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한단다. 만일 네가 다른 사람보다 너를 우선해서 행동한다면 이기적인 어른이 될 거야. 이기적인 사람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해. 방앗간 집의 브리나를 떠올려보렴. 이미 시집을 갈 나이가 지났지만 안하무인처럼 행동하는 바람에 누구도 청혼하지 않잖니. 신님도 이기적인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신단다. 리디는 얼마 전에 자신이 병원으로 데려간 젊은 남자를 떠올렸다. 오. 신님. 제가 사탕을 먹고 싶었던 것을 전부 알고 계셨나요. 자칫하면 자신의 잘 못으로 참새와 두더지들이 살아갈 터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리디. 진실이다. 꼭 찾아야 한다. 리디의 여섯 클로버를 미래의 자식에게 주어야만, 그가 전쟁터에서 생존한다 이후…1만 5천46세대에 이르러 탄생한 그 후손만이 허수인의 공격에서 살아남는다. 차원 외벽 붕괴를 지연한다.


  포트-697의 이야기를 리디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리디는 사탕을 먹고 싶었던 한 순간의 욕심에 의해 수많은 농민들과 창공을 누비는 왜가리, 딱따구리, 독수리, 땅을 누비는 볼프강, 볼프강의 새끼들, 염소 무리, 두더쥐, 기분 나쁘게 생긴 쥐들이 보금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였다. 포트-697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소리쳤지만 그는 항상 진실을 또는 미래에 다가올 일을 정확히 예측했다. 가령 날씨에 대해 오전에는 맑지만 점심을 먹은 이후엔 소나기가 내린다거나, 내일 짚더미를 가득 실은 짐마차 10대가 줄지어 마을에 들어선다거나, 심지어 톰이 새 동화책을 살 것이라는 일까지 예견했다. 리디는 포트-697을 신뢰했다.


-빙글빙글! 클로버만 찾으면 되는 거지?


-리디. 맞다.


-빙글빙글이 도와주면 안 될까? 날씨도 맞추는 굉장한 능력이 있잖아.


-불가. 간섭에 대한 오차율을 분석 계측한 결과 포트-697은 클로버를 찾는 행위와 독립되어야 함. 구두 보고로 한정된 기능 유지.


  역시나 내용은 이해할 수 없으나 도와줄 수 없다는 의사만큼은 리디도 알 수 있었다. 선명한 붉은 색이었던 지붕 위로 얇은 밤의 막이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서산 너머로 해가 똑 떨어져 버리자 숲에서 호시탐탐 세상을 노리던 밤의 그림자가 쏟아져 나왔다. 산골짜기 , 호수의 건너편, 들판의 지평선 끝에서부터 선선한 바람을 파도처럼 밀어내며 어둠이, 캄캄한 밤이 당당하게 다가오고 있다. 하늘에선 벌써부터 총총한 별 한 두개가 떠올라 있다.


  언제 돌아왔는지 모르지만, 집의 안쪽에서 리디를 찾는 소리가 복도를 달려와 들창을 넘어왔다. 엄마가 이제 돌아온 걸까? 아니면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났다는 알림일까. 리디는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분명 들창을 넘어가 있는 것을 보이면 엄마에게 엉덩이를 호되게 얻어맞겠지. 위험한 행동을 했다고.


-내일은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빙글빙글.


  포트-697은 들창을 통해 다시 집의 내부로 들어가는 리디에게 카메라를 향했다. 그것이 그의 눈이었으니까. 리디는 살살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뒤꿈치를 들고 들창으로 이동해 먼저 창틀을 짚고 상체를 밀어 넣었다, 이어서 리디의 엉덩이와 다리가 쑥 빨려 들어갔다. 들창이 닫히기 전, 리디의 얼굴이 쏙 나오더니 저녁 인사를 건넨다.


-빙글빙글, 오늘 밤엔 좋은 꿈 꿔.


  다음 날 리디는 톰과 톰의 친구인 행크까지 동원해 온 언덕을 샅샅이 뒤졌다. 토끼풀이 자라난 곳은 마을 언덕 말고도 들판으로 가는 오솔길이나 숲의 초입에 있는 낮은 녹지, 마을에 있는 학교 뒷마당 등 다양한 장소가 있었지만, 그 어느 곳도 마을 언덕처럼 토끼풀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토끼풀 군락을 벗어나기 위해 한참을 달려야 하는 곳은 없었다. 리디는 광활하고 광대한 그 토끼풀의 왕국으로 위풍당당하게 쳐들어가 인질들의 얼굴을 모조리 살펴봤지만 찾고자 하는 얼굴을 만날 순 없었다.


첫째 날엔 다섯 잎의 클로버를 발견했지만, 여섯 잎의 클로버는 찾지 못했다.


   결국 약속 한 둘째 날이 되었다.

   선연한 종달새의 울음이 수업시작의 종이라도 된 것처럼 리디는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쫑긋하며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침이면 자신을 깨워주는 저 종달새의 하늘이 내일이면 사라져버리게 될지도 몰라. 리디는 아침을 먹어치우자마자 이번엔 학교의 뒷마당부터 시작해 토끼풀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제 언덕에서 여섯 잎 토끼풀을 찾아야 한다고 지나치게 강요한 탓인지 톰과 행크는 오늘은 목공소에서 쐐기 빨리 박기 대회를 구경 가기로 했다며 리디의 요청을 거절했다.


  아. 리디 싱클리어. 부드러운 밀밭 색 머리칼이 땀에 젖어 그녀의 볼에 달라붙고, 풀밭에 반쯤 앉아버린 통에 치맛자락이 풀빛으로 물들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손톱 끝이 풀색으로 물들었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태양이 중천을 지나가 점점 기울기 시작하면서 항상 밝고 명랑했던 리디의 얼굴에도 수심이 찾아왔다. 리디의 가슴 속에서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여섯 잎 클로버를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 속 불안을 키웠고, 불안은 가시가 잔뜩 박힌 덩굴을 뻗어 리디의 심장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나쁜 아이는 역시 벌을 받는 거구나. 나 때문에 하늘과 땅이 사라진 걸 엄마가 아시면 얼마나 실망을 하실까. 영영 시집도 못가고 못난이 브리나처럼 손가락질 받을지도 몰라. 이게 전부 사탕 때문이다. 사탕을 준 의사까지 미워지려고 한다.


“꼬마숙녀님, 오늘은 또 누구를 돕고 있나요?”


  토끼풀이 자란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가, 병원 앞을 지나던 리디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병원의 입구에서, 자신을 사탕의 유혹과 미혹의 수렁에 빠트린 젊은 남자가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의사에 이어서 이제 막 젊은 남자까지 미워지려던 참이었다. 리디는 자신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토끼풀을 찾는 고생을 하는 일에 분명 눈앞의 젊은 남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병원에 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자신이 사탕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리디는 당당하게 토끼풀 원정대에 참여하라고 젊은 남자에게 엄포했다. 젊은 남자는 웃으면서 그러겠노라며 어느 곳으로 모실까요, 하고 배우처럼 허리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다시 언덕으로 올라갔다.

  허허벌판처럼 드넓은 풀밭을 모래를 줍듯이 찾아다녔다. 몇 번인가 리디가 젊은 남자에게 혹시나 여섯 잎의 클로버를 밟을지 모르니 발 디딤에 주의를 주었다. 젊은 남자는 그 때마다 어이쿠, 하는 넘어지는 흉내를 내면서 발을 번갈아 우쭐거렸다.


  점점 토끼풀의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 짤막한 키의 토끼풀 그림자가 늘어진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얼마나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인지 당장이라도 별이 떠오를 듯, 하늘은 담청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평소처럼 맑은 하늘에 솜뭉치 같은 조각구름이 떠올라 있었지만 리디에게는 끔찍하리만치 어둡고 축축하고,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이제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을 것이다. 빙글빙글을 차마 볼 면목이 없다. 하늘도 땅도 사라져 버릴 것이다. 빙글빙글의 말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으니까. 리디는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젊은 남자의 눈에도 그렇게 비쳤다.


“꼬마숙녀님, 그 여섯 잎 클로버를 찾지 못하면 큰일이 벌어지나요?”


“하늘과 땅이 사라질 거래요.”


“하늘과 땅?”


“네. 제가 사탕을 먹고 싶어 하는 바람에요!”


“그럼 함께 병원에 갔던 제게도 책임이 있군요!”


  젊은 남자가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이마를 탁, 친다. 그리고 상의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낸다. 그것은 상당히 두꺼워 보이는 금속으로 만든 카드였다. 젊은 남자가 그것을 리디에게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카드에는 여섯 잎의 클로버가 양각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카드의 일부는 마치 송곳으로 한 번 찍은 것처럼 눌린 자국이 나 있다.


“제 가문의 문양이 여섯 잎의 클로버랍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도 늘 가문의 증표인 카드를 가슴에 넣고 다녔지요. 덕분에 총알을 막을 수 있었어요. 저는 이제 더 이상 전쟁터에 나갈 일이 없으니 꼬마 숙녀님에게 진짜 여섯 잎의 클로버대신 이 카드를 드려도 될까요?”


  리디 싱클리어. 그녀가 여섯 잎의 클로버가 그려진 금속 카드를 받아든다. 기다렸다는 듯이 해가 떨어지고 갑작스럽게 시야가 어두워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엔 백색의 고결한 달이 동그란 모습으로 떠올라 있다. 하나 둘 별빛이 반짝이며 밤하늘을 장식하기 시작한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문득 리디는 자신의 집 방향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달빛처럼 빛나는 동그란 무언가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유성처럼 빛의 꼬리의 궤적을 남기며, 그것은 달빛을 받아 반짝이면서 허공으로 솟구치고 있다. 젊은 남자도 그 신비한 빛을 발견하자 몇 백 년 만에 찾아와 하늘을 지나가는 혜성을 바라보듯, 다시 없을 황홀한 장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두 사람은 풀내음이 가득한 언덕에서 달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너무도 높은 하늘로 떠올라 이제는 사라져버리겠다 느꼈을 때, 하늘에선지 아니면 그 하늘의 지평 너머에서인지 모를 공간에서 빛의 알갱이가 설탕가루처럼 쏟아져 내리며 마치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상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알록달록한 무지개가 유리잔에 들어찬 것 같다. 어두운 커튼을 친 것 같았던 하늘이 이제는 알록달록한 장막이 되어 출렁거린다. 아름답고, 치명적이고, 진실하고, 여운이 가득한 빛깔이었다.


리디 싱클리어.

황금빛 머리칼과 에머랄드빛 눈동자를 지닌 소녀.

여섯 잎의 클로버가 새겨진 카드를 손에 들고는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 보인다.

드디어 찾았어—, 라고 말하듯이.



-끝


긴글 읽어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