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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77회차/2]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글쓴이: 로우하트
작성일: 13-06-29 23:27 조회: 1,493 추천: 0 비추천: 0
일상이란 늘 그렇듯 으레 따분하고 평범하기 마련이다.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 씻고, 먹고, 등교한다.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항상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들은 후 하교 종에 맞춰 귀가할 사람은 귀가하며 동아리활동을 하는 사람은 동아리실로 바쁘게 뛰어간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 그것에 충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싫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후자다.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생활한다고 한들 반복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따분함을 느끼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소소한 만남 속에서 지금 당장 웃는다고 한들 그 기쁨이 계속 지속되리라고 완벽하게 믿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고등학교 2학년.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도, 그만두기에도 어중간한 시기에 나는 염세주의자가 되어 무기력하게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야, 학교 끝났다. PC방이나 가자.”
“그래, 먼저 가라.”
“항상 가던 곳에 자리 잡아 놓고 있을 테니까 빨리 와라!”
학교가 끝나면 떠들썩한 무리에 섞여 요새 유행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을 한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은 이런 생활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겠지만 꿈도 없고 충만한 힘과 재능을 발산할 곳도 없는 이 세대의 청소년들이 시간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이니 어찌하리.
바쁘게 교문을 나서는 친구 녀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방을 정리하고 일어서니 텅 비었을 것이라 예상했던 교실에 나 이외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여, 전국일등.”
“어…… 누구더라.”
가깝게 지내는 녀석들 외에는 관심이 없는지라 눈앞에서 반갑게 손을 드는 녀석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솔직하게 물어보니 황당한 표정이 되돌아왔다. 미안.
“1학기도 다 끝나가는 데 담임 정도는 기억해라.”
아, 선생님이었나. 어째 사복을 입고 있나 했지.
“죄송합니다.”
“쯧…… 재미없는 표정이구만. 됐다, 그보다 너 이번 논술대회 어떻게 할 거냐?”
“지난번에 대회는 안 나간다고 말씀 드린 걸로 아는데요.”
현재 내 성적은 정확히 전국 1위. 6월에 실시한 전국모의평가 올 백을 맞았으니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치른 시험들도 전부 백 점이었다. 딱히 공부에 신경을 쓰거나 하지 않는데도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책들의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치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랬었나? 아하하, 그래도 자꾸 위에서 압박이 들어와서 말이지. 어쨌든 안 나간단 말이지? 그렇게 처리해 두마.”
“감사합니다.”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몇 번 나갔던 전국 대회에서 대상을 휩쓸어버렸더니 이제 학교에서는 나를 상장 타오는 기계로 만들 셈인가 보다. 그저 반 협박, 반 장난으로 나간 것 뿐, 상장이나 트로피를 모으는 취미는 없단 말이다, 이쪽은.
“넌 귀가하면 뭐하고 사냐? 동아리 활동도 딱히 안 하는 것 같은데.”
오지랖 넓은 선생님이 물어온다. 이 사람, 용건을 다 봤으면 빨리 가서 일이나 할 것이지 왜 계속 말을 거는 거지.
“……굳이 대답해야 합니까?”
“어? 아,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럼 안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딱 잘라 거절하니 당황하는 선생님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온다. 신발을 갈아 신고 교정으로 나서는 데 뒤에서 숨 가쁜 소리와 함께 달려 나온 선생님이 헉헉 대며 소리쳤다.
“호, 혹시 상담할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라!”
슬쩍 돌아보니 구슬땀을 흘리는 얼굴이 보였다. 뭐, 딱히 기대하고 있는 눈빛은 아니어서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보이고 걸음을 재촉했다. 고민이요?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도 있지 않으면 해결하지 못할 고민이랍니다.
“차라리 세계가 멸망해 버리는 것도 좋을 텐데.”
지루한 일상만이 반복된다면 없어져도 상관없지 않을까. 일탈? 해봤자 그것도 반복되다 보면 다시 지루해질 뿐이다. 무엇보다 별로 내키지 않는다.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은 이미 내 관심사에서 벗어난 지도 오래라서 이제 와서 목표를 잡아도 전부 하릴없어진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대체 무엇을 목표로 한단 말일까.
어릴 때는 부모님의 권유로 세상에서 신동, 천재라고 불리는사람들과 비공식적으로 시합 비스 무리한 것을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에게 아무런 만족감도 주지 못한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저 일반인보다 약간 더 재능을 가진 녀석들이 TV에 나와서 어른들의 장단에 맞추어 재롱을 떠는 것일 뿐.
“진짜들은 조용히 살고 있겠지.”
내가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딱히 특별한 인간도 아니다. 재능을 겨루어 보라고 한다면 나도 TV에 나오는 녀석들과 다를 게 없고, 돈과 권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재능은 그저 쓰레기일 뿐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을 뿐이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내 배경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재벌. 가만히 앉아 기다리면 막대한 돈과 권력이 굴러들어온다. 배경이 아니더라도 그런 것들은 내가 가진 능력만으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물론 이런 능력을 갈고 닦는데 배경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내가 평범한 집안의 자식이었다면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으흐흐.”
생활고에 시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자니 슬쩍 웃음이 흘러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은 그쳤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그래봤자 잠시 머무는 관심일 뿐이다. 기껏 해봐야 집에 가서 ‘나 오늘 거리에서 혼자 처 웃는 고등학생 봤다? 완전 대박ㅋㅋㅋ’ 라고 할 정도겠지.
그래도 남의 가십거리가 되는 건 별로 즐거운 기분은 아니다. 무시하고 PC방으로 갈까 하다가 진동과 함께 수신된 문자를 보고 관뒀다. 또 사교 파티냐.
“내일 가면 왜 안 왔냐고 난리를 치겠지, 녀석들.”
물론 지금은 게임에 집중해서 이미 날 잊은 상태겠지만. 그런 녀석들에게 굳이 문자를 보낼 필요성을 느끼진 않는다. 그저 내일 매점에서 간식이나 사주면 그만이니까.
아무리 내가 싫증을 낸다고 해도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 희생이 필요하다. 반의 떠들썩한 녀석들과 어울리거나 최상류층들만의 사교파티에 참여하는 정도가 바로 그것이다.
“늦어!”
재벌가의 후손이라는 걸 숨기기 위해 지하철로 등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귀가도 자연스럽게 자가용으로 다니는 것보다 느려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 때문인지 집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소파에 앉아있던 누님의 호통이 쏟아졌다. 그보다 내 맨션 문은 대체 어떻게 열고 들어온 거냐. 분명 비밀번호는 나만 알고 있는데다 열쇠가 있어야만 열 수 있다고.
“만나기로 한건 모나리자 아니었나?”
모나리자는 한 벌 당 수백만 원이 넘어가는 고급 정장, 드레스 판매점이다. 대여도 가능해서 별로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파티가 있을 때마다 그곳에서 빌리기 때문에 단골 고객으로 등록되어있을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니까 와버렸지! 문자를 보낸 지가 언젠데 이제 오는 거니?”
“난 지하철로 움직이니까 늦게 가는 게 당연하잖아. 우리학교 교복 차림으로 그 가게를 갈수도 없으니 당연히 집에 들렸다가야겠고, 그렇다면 더 늦어지겠지. 그래서 시간은 6시로 잡아 놨는데 그걸 못 참아?”
“파티가 6시에 시작하는데 만나는 시각을 6시로 잡으면 늦어버리잖아?”
“원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야.”
“네가 주인공이냐?”
코웃음 치는 누님을 내버려두고 탈의실로 들어가 재빨리 교복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원래 인생은 전부 내가 주인공인 법이다. 그걸 늦게 깨달으면 주위에 휩쓸릴 뿐, 주도권을 잡지 못할 게 뻔하지.
“정일그룹 회장도 참 느긋하군. 자회사 중 5개가 넘어가는 데도 파티나 벌이고 있다니.”
“급할 때야 말로 돌아가야 하는 법 아니겠니?”
“그것도 상대 나름이야. 초성그룹 상대로 그런 여유를 부리다간 큰 코 다치는 정도로 끝나진 않을 걸.”
무엇보다 초성그룹은 23살이라는 나이에 아버지인 회장을 밀어내고 총수 자리에 앉은 그 ‘괴물’이 있으니까 말이지. 내 예상으로는 그 인간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 정일그룹이 아무리 한국에서 10위권 내의 재벌가라고 해도 3, 4년 내로 무너진다. 넉넉잡고 5년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
“너나 아버지나 그 성진이라는 남자를 너무 경계하는 것 같아. 그 사람이 위험해?”
“글쎄, 지금의 우리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까.”
“에이, 뭐야. 그럼 민감할 필요는 없겠네.”
‘지금’은 말이지.
“그래도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게 좋을 거야.”
“으음~”
누님은 남의 말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평범한 척을 하는건지 정말로 평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믿고 경영을 맡길 인재는 아니다.
하. 지. 만.
만의 하나라는 경우의 수.
아버지의 뒤를 이을 사람이라고는 누님과 나. 복잡한 가계도 아니니 뒤통수를 얻어맞을 데라고는 누님밖에 없으니 조심해서 손해 볼 것은 없겠지.
“뭐, 조심한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지만.”
“응? 뭐라고 했어?”
“아니, 별로.”
모나리자에 들렸다가 파티 장소로 가니 초성그룹 회장의 차가 호텔 로비에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와, 배짱 좋은데.”
“회장이 직접 오다니 놀려먹을 작정인가?”
“그런 것도 있지.”
누님과 내가 초성그룹의 깔끔한 세단을 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어느 샌가 등 뒤로 다가온 남자가 말을 걸었다.
“성진 씨.”
“이런,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편하게 지내자고.”
쾌활하게 웃는 남자. 요새 여러모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강 성진이다. 지난번 파티에서 우리 누님을 눈여겨보더니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겠다, 이건가?
“그건 아버지부터 공략하고 나서 하시죠.”
“턱없이 높은 허들이군.”
“회사 두세 개 정도 넘기면 낮아질지도 모르죠. 물론…”
“그 두세 개가 나에게는 뼈를 깎을 정도겠지. 이래봬도 통뼈라고?”
보이지도 않는 근육을 보여주는 척 팔을 들어 보이는 성진이라는 인간을 시원하게 무시하고 고개를 돌리니 바로 옆에 작은 소녀가 있었다. 여자라고 해도 평균에서 훨씬 작은 신장이었다. 내가 계속 쳐다보니 부담스러웠는지 슬쩍 성진의 뒤로 숨어들었다.
“누구죠, 이 생쥐아가씨는?”
“생쥐라니. 비교하려면 고양이 정도로 하라고! 내 여동생이다. 이름은 강 하늘이야.”
성진이 뒤에 숨은 아가씨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조금 안정되는지 살짝 옆으로 빠져나오는 모습이 작은 설치류를 연상케 한다.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계속 쳐다보니 나와 하늘이라는 소녀를 번갈아보던 성진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 관심 있어? 내 여동생이 좀 귀엽긴 하지.”
“시스 콘이냐…….”
아하하 웃는 성진과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서니 호화스럽게 꾸며진 내부 속에서 여유롭게 만찬을 즐기는 이 시대의 귀족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선 연회장 한가운데에서 주위에 모인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계시는 우리 아버님.
“오, 왔구나. 우리 자랑스러운 아들딸들!”
크게 호들갑스럽지도, 냉정하지도 않은 태도. 과연 아버님이시다.
“그리고…… 최고의 루키 강회장도 왔군!”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초대받을지는 몰랐는데 말입니다.”
“그런가? 난 오히려 예상하고 있었는데?”
아버님의 말에 순간적으로 날카로워지는 성진의 눈빛을 포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이 인간, 역시 속은 천년 묵은 능구렁이라니까.
“능구렁이 오라버님은 내버려두고 자, 아가씨. 저와 한곡 추시렵니까?”
“어엇?”
요즘 사교파티에 굳이 댄스를 출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눈앞의 작은 소녀가 맘에 들었기에 슬쩍 손을 내밀며 웃음 지었다. 당황하는 성진의 얼굴을 보니 절로 입가가 비틀어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가, 감사 하, 합니다.”
댄스 신청을 받을 줄을 몰랐는지 황급히 말을 더듬으며 위로 펼쳐진 내 손 위로 조심스럽게 작은 손을 올려놓는다. 물론 180이 넘는 나와 150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댄스를 추는 것은 너무 언밸런스해 보일 것이 뻔했기에 리드하는 척 하며 테라스로 그녀를 데리고 나왔다.
“저, 저기……!”
테라스로 나오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잡혀진 손에 살짝 반동이 오며 다급히 나를 부르는 게 느껴졌다. 손을 들어 잔 두 개를 받아든 내가 슬쩍 건네자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허둥거리다 받아들고는 벌컥 들이키고 얼굴이 빨개졌다. 아, 이 술 도수가 너무 셌나?
“괜찮아요? 단순한 샴페인인줄 알았는데.”
“괘, 괜탄아요(괜찮아요). 데가 술이 좀 야테요(제가 술이 좀 약해요).”
벌써부터 홍시처럼 달아오른 얼굴과 혀 꼬이는 발음을 보니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 걸 알고 있는 걸까. 비틀거리기까지 하는 그녀를 난간에 살짝 기대게 만들고 나자 가쁜 숨을 내쉬며 배시시 웃음을 베어 무는 것이 보였다. 은근 파괴력 있는데?
“아, 오빠가 찾으러 다니네요.”
“음?”
평소의 여유롭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당황한 모습으로 회장을 휘젓고 다니는 성진을 가리키며 말하자 횡설수설하며 뭔가 말하던 소녀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정일그룹 회장에게 붙들려 인상을 쓰는 성진의 얼굴을 보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일까.
“하늘양은.”
“에?”
“하늘양은, 저 오라버니가 맘에 드십니까?”
“으응... 맘에 드, 딸꾹! 들어여.”
“남의 회사를 5개나 빼앗는 것도 모자라서 더 뺏으려고 맹공격 중인 악독한 오라버님인데도?”
“그, 그래도!”
“흐음…….”
조그만 주먹을 꼭 쥐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가씨를 보니 갑자기 조금 더 괴롭혀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그녀를 자극하는, 성진에 대한 험담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질문했다. 어떻게 보면 매우 무례한 행동이기는 했지만 이제 와서 별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마지막에 내뱉은 말은 나로서도 조금은 찔리는 질문이었다.
“……설령 가족이라고 해도 눈감고 배신할 정도로 냉정한 오라버님인데도 말입니까?”
그 말에 그녀는 화를 내는 대신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감은 두 눈이 살짝 떨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더 이상 더듬지도, 꼬이지도 않은 맑은 목소리였다.
“설사 오빠가 우리를 배신해도 괜찮아요. 지난 15년간 병실에 누워 있던 저를 아무리 바빠도 매일같이 찾아와 두세 시간동안은 함께 있어주었던 오빠를 저는 좋아하니까요. 헤헤…….”
왜일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일 터인데.
그녀의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대수롭지 않은 그 한마디가 내 심장과 영혼을 강타하는 듯했다. 호수 표면에 떨어진 작은 물방울이 만든 파동이 점점 커져가는 것처럼 그 한 마디가 어느새 커져서 내 전신에 전율을 일게 만들고 있었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스르르 쓰러지는 그녀를 안아들자 두근거림이 두 배, 세 배로 증폭되었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움켜쥐듯 가슴을 움켜잡고 살짝 무릎을 꿇어 그녀가 편히 잘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하하하, 설마 이건…….”
품안에서 새빨간 얼굴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소녀를 보니 자꾸만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던 권태의 쇠사슬이 이 소녀를 보는 순간 한 가닥씩 끊어져 갔다.
저 멀리서 정일그룹 회장에게서 벗어나 헐레벌떡 계단을 올라오는 성진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질투를 느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어떠한 형태든 상관없다. 지금 내 심장을 울리고 있는 이 고동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순간의 행복을 놓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녀를 처음 볼 때부터 알았지만, 외면했던 이 감정이 이대로 끝나는 것은 더 이상은 원치 않았다. 그런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와중에 황급히 다가온 성진이 나에게서 소녀를 뺏어들고 몸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괴롭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얻은 감정은 더더욱 그렇다. 시기도, 질투도, 사랑도. 짧은 순간에 느꼈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생각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 모든 감정들이 내 심장을 움직이고 있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라지는 성진의 등 뒤를 바라보던 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지금까지 나와는 상관없었던, 쓸모없던 소리였다.
“상담…… 한번 받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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