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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94회차/3] 탐정의 꽃놀이는 끝나지 않고
글쓴이: OLite
작성일: 14-04-26 10:02 조회: 1,495 추천: 0 비추천: 0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하늘이었다.

  바람에 휘날리듯 날렵하게 하늘을 수놓으며 그 자태를 뽐내는 구름과, 그 구름조차 퐁당 빠져버릴 것 같은 푸르름을 머금은 하늘. 그런 하늘을 올려다보는 내 눈 앞으로 연분홍빛의 벚꽃잎이 흩날렸다. 오랜만에 촉촉한 감상에 젖어드나 싶더니, 내 잠시 동안의 안식은 동료의 외침에 의해 산산이 깨졌다.

  “이봐! 유성하! 아니, 유 탐정 나으리! 그런 데서 멀뚱멀뚱 뭘 하는 거야! 건배라고 건배!”
  “알았어, 갈게!”
 조금은 퉁명스러움을 담아 짧게 대답하고는 아쉬운 듯 한 번 더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는, 벚꽃잎은 없었다.

 

  “그럼, 에이쟈의 돌 도난 사건 해결을 축하하며-”
  『건배!!』
  도심에서 벗어난 외진 언덕. 스무 명이 훨씬 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커다란 벚나무 아래에 모여 건배를 외쳤다. 원래 사건 해결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기획된 탐정 사무소 멤버 네 명만의 조촐한 꽃놀이는, 그러나 사무소의 건물주인 주인댁 아저씨가 그 계획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 본래 궤도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발이 넓고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주인댁 아저씨의 성격에 단 네다섯 명이 모이는 꽃놀이란 있을 수 없다. 결국 주인댁 아저씨가 이 사람 저 사람 불러 모으면서, 조촐하게 계획되었던 모임은 순식간에 스무 명이 넘는 규모의 성대한 잔치로 변해버렸다.

  “그랬다니까. 자포자기에 빠진 녀석이 의뢰인을 향해 권총을 들이대는 순간! 이 몸의 펀치가 작렬했다는 말씀이지! 그 다음은-”
  “신의 각도로 날아든 로킥이 녀석의 정강이에 꽂혔고?”
  “감탄스러울 정도로 훌륭한 움직임으로 녀석의 권총을 빼앗아 탄창을 분리했겠죠.”
  “우악!? 너, 너희들! 그걸 벌써 말하면 어떡해!”
  “그치만 퉁퉁이씨, 그거라면 너무 많이 들어서 사무소 멤버 전원이 달달 외웠을 정도라구요. 아마 보름 전에 새로 들어온 나연이도 외웠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때 나연아?”
  내성적인 성격의 신참 동료는 질문을 받자 조금 곤란한 듯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봐요. 사골도 아니고 같은 이야기만 계속 하면 질리게 마련이라니까.”
  “흠……. 하는 수 없지. 이 이야기만은 비밀로 간직하려 했는데, 이번만 특별히 알려주도록 하마. 그건 10년 전, 어느 날 밤의 사건이었지…….”
  퉁퉁이씨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하고는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자리의 모두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다음 순간 퉁퉁이씨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 또한 우리가 이미 들은 적이 있을 게 뻔하다는 것이었다.
  “후…….”
  솔직히 말해 이런 종류의 시끄러운 모임에는 익숙하지 않다. 구석진 자리에서 홀로 맥주 한 캔을 비운 나는 두 번째 캔과 함께 말린 오징어 한 마리를 집어들고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빠져나왔다.
  1분 정도 언덕 아래로 내려가다가 작은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꺾어진다. 수풀이 우거진 길로 들어서서는 온 몸에 휘감겨오는 나뭇가지들을 밀쳐내며 걷다보면 곧이어 낡아빠진 2층짜리 폐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일대가 온통 녹음 일색인 곳에서 홀로 우뚝 서있는 콘크리트 건물은 단순히 생각하면 매우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단순히 내가 그 풍경에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오랜 세월 방치된 탓에 이끼나 담쟁이넝쿨이 벽면을 뒤덮은 덕분에 풍경에 녹아들어서일까. 마치 멸망한 문명을 암시하는 것처럼도 보이는 그 인공구조물은 결코 눈에 띄는 건물은 아니었다.
커다란 쇠사슬로 묶여 들어갈 수 없는 정문을 지나 건물 뒤편에 있는 자그마한 뒷문으로 향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출입구였기에, 나는 손잡이를 잡고 힘주어 문을 밀었다.
  키기기익-!
  녹이 슬다 못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낡아빠진 문이 삐걱거리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문이 열리자 문틈으로 건물 안에 쌓인 공기가 흘러나온다. 쇠 비린내와 함께, 건물 안에 방치된 온갖 잡동사니들에게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많이 봐줘도 ‘매캐하다’고밖엔 표현할 수 없는 먼지 냄새였지만, 나는 그 냄새에서 정확히 10년 전, 이곳에서 함께 같은 꿈을 꾸었던 한 명의 여자아이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다. 그것이 내가 이 곳에 찾아온 목적. 사실은 꽃놀이라는 핑계를 대면서까지 이 폐건물에 온 것도, 모두 ‘6년 전의 오늘’을 되새기며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애쓴다 한들 그녀는 여기에 있을 리가 없다. 10년 전 나와 함께 약속한 직후, 그녀는 이곳을 떠나 모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하하……. 다 알면서 나란 놈은 대체 뭘 기대하고 여기까지 온 거지…….”
  자연스레 자조적인 웃음이 나온다. 씁쓸한 기분에 빠져 흥이 식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함께 웃고 떠들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곱씹으며,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2층으로 향한다. 먼지가 수북한 계단에 발을 디딜 때마다 발목 높이까지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뚜벅 뚜벅 뚜벅
  마치 흙투성이의 운동화발로 비밀기지를 뛰놀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다는 걸 강조라도 하듯, 딱딱한 구둣발 소리가 건물 안에 울려 펴진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자 가장 처음 보이는 계단 정면의 방 안에는 칠이 벗겨져 시멘트가 군데군데 드러난 회색 벽과 함께 심하게 녹슨 철제 캐비넷이 있었다.
  “역시 그대론가…….”
  두 사람 만의 비밀기지. 아무도 찾지 않는 건물은 바깥쪽도 안쪽도 10년 전과 어느 것 하나 달라진 것 없는 모습이다. 바뀐 거라고 해봐야 깨진 창문으로 날아든 낙엽이 바싹 말라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정도다. 그대로 걸음을 돌려 두 번째 방으로 향했다. 언덕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리고 이 건물에서 가장 커다란 창문이 있는 덕분에 그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방.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건물이라 해도, 이제는 더 이상 그 방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풍경을 볼 수는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렸을 적부터 남달랐던 모험심이 불쑥 머리를 내민 탓일까, 아니면 다른 불순한 기대를 품었기 때문일까. 바보 같은 내 모습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어 입가에서 씁쓸한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녹이 슨 문 손잡이를 돌리며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계속 있던 나는 맞은편의 커다란 창문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빛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윽…….”
  잠시 후 한쪽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빛에 서서히 익숙해진 눈에 비춰진 것은…… 아아, 역시 예상대로의 풍경이다. 휑한 방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가구라고는 나란히 놓여있는 두 개의 낡아빠진 철제 의자 뿐. 그 밖에 살풍경한 시멘트벽 외에 그 방의 디테일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두꺼운 창틀 정도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색의 긴 머리가……!?
  “어, 어……. 어……?”
  당황했다. 솔직히 말해 그 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반 정도는 정신이 나간 상태로, 나머지 반의 정신은 어디다 뒀는지도 모른 채 얼빠진 소리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 아아.”
  생각치도 못했던 인물은 조금 놀라는 듯한(얼이 나간 수준의 나 정도는 아니었지만)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은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까지도 나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런 내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훗, 그 얼빠진 모습은 여전하네?”
  그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멈춰있던 내 사고가 간신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이 매어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 간신히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하… 하루카……?”
  “응, 하루카야. 네 소꿉친구 테라사키 하루카.”
  싱긋 웃으며 말한 하루카는 내가 알던 하루카와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시간. 하지만 TV에서, 신문에서 그녀의 모습을 몇 번이나 봐왔을 터였다. 무심코 음흉한 상상을 해버리게 만드는, 남심을 자극하는 성숙한 몸매.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것 같은, 그야말로 명탐정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강렬한 눈빛. 수많은 사람과 카메라를 앞에 두고도 당당하게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자신의 추리를 이야기하던 그 배짱 등. 메스컴에서 보아왔던 그런 이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내 앞에 서있는 테라사키 하루카라는 인물에게서 뿜어져나오는 기백은 TV화면 너머로는 느낄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과연 내가 알던 하루카가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그녀의 ‘존재’는 내 상상 이상으로 달라져 있었다. 창문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던 머리칼을 쓸어 넘긴 하루카는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오랜만이야. 성하 군. 정확히 10년 만의 인사일까?”
  “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 이런 곳에 있을 때가 아니잖아! 뉴욕에 간 거 아니었어?”
  그렇다.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수많은 미궁 속의 사건을 해결한 탐정. 그 뛰어난 추리능력과 더불어 아이돌적 이미지까지 가진 빼어난 외모 덕분에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탐정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명탐정 테라사키 하루카. 오늘만 해도 지난 달 해결한 로스엔젤레스 D.D 살인 사건의 트릭을 밝히기 위해 뉴욕에서 기자회견이 있을 터였다.
  “어머, 어떻게 알았어?”
  “그건……!”
  ‘너에 대한 건 항상 빠짐없이 찾아보고 있으니까!’라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눌러 삼켰다. 그녀와 나는 잘 쳐줘야 탐정놀이를 같이 했던, 고작 그것뿐인 소꿉친구 사이. 그녀와 헤어지고 남몰래 키워온 짝사랑을 그녀가 알아줄 리 만무하다.
  “시, 신문만 봐도 알잖아! 지난달부터 신문이고 잡지고 뉴스고, 오로지 명탐정 테라사키 하루카, 테라사키 하루카. 네 이름만 언급하기 일쑤고, 나머지 이야기도 온통 D.D 살인 사건의 이야기뿐이었다고. 자기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음……. 그것도 그렇네.”
  하루카의 묘하게 느긋한 그 태도는 10년 전과 똑같았다. 도저히 세계 제일의 명탐정이라곤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다른 변화에 비하면 그런 느긋함 정도는 티도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 유일한 과거와의 접점에서 나는 내심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대화를 이어나갈 말이 떠오르지 않아 우물쭈물하고 있는 내게 하루카가 손짓했다.
  “이리 와서 앉는 건 어때? 계속 서있을 건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며 하루카는 낡은 철제 의자에 털썩 앉는다. 풀썩. 하고 먼지가 일며 하루카의 연분홍빛 스커트를 더럽혔지만 하루카는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응? 왜 그래?”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하루카. 나는 말없이 손가락을 뻗었다.
  “?”
  하루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착실히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하루카가 앉지 않은, 즉 내가 앉을 예정이었던 나머지 하나의 의자. 당연하지만 녹이 잔뜩 슨 그 의자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바닥 이상으로 심하게 더러운 상태였다. 그것을 보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지은 하루카는 잠시 후 어깨를 움찔거렸다.
  “……읏!”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털어보지만 새빨간 녹은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비범한 관록을 풍기던 지금까지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하루카는 엉덩이에 뭍은 녹만큼이나 새빨간 얼굴을 하고선 ‘에잇! 에잇!’하며 녹과 씨름을 벌였다. 어렸을 때와 쏙 닮은 그 어리버리한 모습에 완전히 긴장이 풀려버린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훗-!”
  “뭐, 뭐야! 사람이 곤란해 하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아하하하! 미안……. 내가 알고 있던 하루카가 맞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솔직하게 안도한 마음을 드러내며 정장 상의의 앞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하루카에게 건넸다.
  “고, 고마워…….”
  부루퉁한 얼굴로 손수건을 홱 낚아챈 하루카는 옷이 깨끗해졌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는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하루카에게, 나는 아까부터 계속 말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려 했다.
  “있잖아, 여긴 무슨 일로-”
  “어디에 있건 내 마음이잖아?”
  “그야 그렇지만 분명 뉴욕에서…….”
  “조수인 왓슨에게 맡기고 왔어. 어차피 다 해결한 사건이고, 시시한 트릭 따위는 왓슨도 이미 다 꿰뚫어보고 있었으니까 내가 나가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
너무나 당연해 의문조차 가질 필요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트릭이 아니라 네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이는 거라고…….’라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삼켰다. 역시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게 확실하다. 머리를 굴릴 때면 늘 매서운 눈으로 단서를 살피지만, 반대로 긴장이 풀어지면 몰라볼 정도로 어리버리한 무방비한 모습을 드러내는 조금은 특이한 소녀. 그게 내 소꿉친구, 테라사키 하루카인 것이다.
  “경시청본부에서 협력요청이 있어서 뉴욕을 뜬 김에 잠깐 들렸을 뿐이야. 그래도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데, 10년 동안이나 못 와봤으니 한 번쯤은 들러보는 게 좋겠다 싶었던 것일 뿐이야.”
  나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조용히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기 시작한 하루카. 그 고고한 모습에 조금 전의 당황했던 소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옛날부터 항상 그랬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얼빠진 짓을 해서 사람을 방심시켜놓고서는, 또 어느 샌가 쉽게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만들어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그 변화무쌍한 분위기에 끌려다니느라 어린 시절 품고 있던 어렴풋한 동경을 하루카에게 전하지 못한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루카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걸까, 하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10년 전의 나에게, 고작 10살 밖에 안 되는 꼬맹이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바보같이 여기곤 했다. 그러나 10년 동안이나 같은 고민을 껴안고 끙끙댈 정도로 하루카는 내게 있어 너무나 커다란 존재였다.
  『함께 세계 최고의 명탐정이 되어서 만나자!』
  하루카의 그 말 한 마디를 들은 순간, 내 꿈은 이미 확고하게 정해졌다고 봐도 좋았다. 하루카가 일본으로 가게 된 이후, 하루카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 결국 우여곡절 끝에 탐정 사무소를 차리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도, 학창 시절의 노력도, 지금에 와선 내 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린 탐정 사무소의 일도.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은 그녀의 그 말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아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상대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명탐정. 그에 반해 이쪽은 고작해야 월세 30만원의 쥐꼬리만 한 사무소를 간신히 차렸을 뿐이다. 개업 이후 반년 동안 들어온 의뢰도 딱 두 건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프로 탐정으로써 누군가에게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심코 ‘이걸로 하루카의 뒤를 따라갈 수 있게 된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다. 쫓을 수 없는 환영을 쫓아 헛고생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암시를 걸어서라도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않으면, 후들후들 떨려 자칫 앞으로 나아가는 걸 포기해버릴 것만 같은 나약한 나 자신을 지켜낼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 내 눈 앞에 평생 닿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던 그녀, 하루카가 서있다. 10년 만에 돌아온 기회. 수천, 수만 번이나 상상했던 재회. 놓치지 마라.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나는 내 모든 용기를 간신히 쥐어짜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아……. 나, 탐정 사무소를 열었어.”
  “응.”
  하루카의 대답은 담담하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녀도 나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던 것일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신문은커녕 일간지의 구석에 쥐꼬리만하게 광고를 내는 게 고작인 탐정사무소의 소식을, 전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하루카가 알 수 있을 리 없다.
  ‘그럼 어째서……? 무엇 때문에……?’
  머리를 흔들어 머릿속을 가득 채워가는 의문들을 날려버렸다. 죽을 만큼 긴장해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감추려 애쓰며 나는 말을 이었다.
  “그야 너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의뢰도 들어오고 있고, 이번엔 꽤 어려운 사건도 하나 해결했어.”
  “응. 알고 있어.”
  “하아……. 역시 그렇- 어? 아, 알고 있었어?!”
  “응. 성하와 관련된 거라면 뭐든지. 입학한 학교 이름, 교복 사이즈, 오늘 아침의 메뉴. 그리고 어제 본 영상의 제목까지.”
  “뭣…….”
  “음……. 어젯밤은 그… 정말 굉장했어…….”
  하루카는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말꼬리를 흐렸다. 찰나의 순간, 사건을 해결하고 피곤한 마음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던 사실이 뇌리를 스친다. 그리고 그 다음은-
  “어, 어,어, 어떻게 네가 그걸 아는 거야!?”
  “어머, 진짜였구나.”
  순식간에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하루카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멍청하게도 혐의를 스스로 자백한 꼴이 되었지만, 그녀에 한해선 진짜로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게 더욱 무서운 점이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날조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증거의 등장과, 그 증거를 완벽하게 이용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의 연속. 그것이 바로 명탐정 테라사키 하루카다. 그리고 그 공식이 내게도 적용되지 말란 법은 없다. 어떠한 방법을 이용해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을지 모르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등줄기를 타고 으슬으슬한 한기가 느껴졌다.
  ‘대체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 거야…….’
  머릿속으로 오만 생각을 하며 하루카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였다.
  “성하야.”
  “…응?”
  “네가 탐정이 된 건……. 무엇 때문에서야?”
  갑자기 날아든 하루카의 돌직구. 설마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당황한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너 때문이야”라고 말한다면 고백처럼 들릴까? 아마 고백처럼 들리겠지. 꽉 막힌 벽창호도 아니고, 아무리 그런 쪽엔 둔할 것 같은 하루카라도 그 정도면 단번에 알아차리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은 하루카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최고의 기회다. 지금 당장 이 기회를 이용하지 않으면 남자로써의 내 이름이 운다.
  “후우…….”

  가슴 깊이 숨을 들이켜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모든 잡생각을 지워 머리를 비운 뒤
  눈을 질끈 감고
  10년 동안이나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을, 계속해서 키워나갔던 부푼 마음을 입에 담는다.

 
  “너 때문… 아니, 하루카, 네 덕분이야. 나는, 네 덕분에 탐정이 되려는 꿈을 꿀 수 있었고, 네 덕분에 결국 이렇게 탐정이 될 수 있었어. 그러니까 지금, 나는……!”
  “후후……. 역시 그렇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어?”
  “전부 알고 있었어. 요 10년간 네가 탐정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도, 그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것도. 10년 전, 오늘 내가 했던 말을 잊어버린 적은 없어.”
  얼마나 힘들게 입 밖에 내보낸 말이었는지, 하루카는 알고 있을까? 그 사력을 다한 내 고백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하루카의 말에 온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 알고 있었다는 건 무슨 의미지? 내 ‘그런’ 마음까지 알고 있었다는 이야긴가?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10년 전 이곳에서 했던 자신의 말이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가? 혼란에 빠진 나에게 하루카의 질문이 이어졌다.
  “있잖아 성하야,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
  “어, 으응…….”
  “내가 탐정이 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혹시 알고 있어?”
  “그야 당연히-”
  대답을 하려던 나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하루카로부터 ‘함께 명탐정이 되자!’라는 말을 들은 기억은 있었지만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함께 탐정놀이를 하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 때문이었더라……?
  “역시.” 하고 말하며 작게 웃은 하루카는 내게서 등을 돌려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루카는 무슨 말을 하고 싶는 건지, 나는 왜 여기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건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아무런 생각도 정리되지 않는다. 그저 느낄 수 있는 것은 역광을 받아 빛줄기 속에 녹아드는 하루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사실과, 그 모습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는 느낌뿐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간식으로 나왔던 우리 반의 바나나우유가 상자 째로 사라졌던 사건 기억해?”
  “글세……. 아-?”
  고개를 가로저으려던 나는 10년 이상이나 잊고 있었던, 꼬맹이 시절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모두가 기다리던 일주일만의 바나나우유. 그러나 감쪽같이 상자째로 사라진 바나나우유의 소식은 당시 우리 반의 모든 아이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선생님조차 이유를 몰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뻔 했을 때 하루카는 혼자서 몰래 교실을 빠져나갔었다. 사라진 바나나우유 때문에 하루카가 사라진 사실도 모른 채 소란을 피우던 우리는 잠시 후 하루카가 낑낑대며 끌고 온 바나나 우유 상자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대체 어떻게 찾았냐는 질문에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며 자신이 관찰한 내용과, 그 정보를 토대로 바나나우유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솔직히 그때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런 하루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리고 나서 내가 하루카에게 했던 말은-
  “굉장해! 꼭 명탐정 같아 하루카.”
  추억에 잠겨있던 내게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를 흉내 낸 하루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8살 꼬마가 순수하게 감탄하며 말해준 그 한 마디 때문에, 나는 처음으로 진짜 탐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성하가 조금이라도 더 기쁘게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성하에게 조금이라도 더 멋진 사람으로 보일 수 있도록 말이야.”
  하루카가 하고 있는 말은 이상하다. 그래선 마치 하루카도…….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네 앞에 나타난 내 모습은 그때의 나처럼, 너를 기쁘게 해줄 수 있게 된 걸까? 응? 성하야…….”
  듣고만 있어도 가슴이 아릿해지는, 애타는 연심이 담긴 하루카의 목소리.
  여기서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10년에 걸친 나의 짝사랑은 짝사랑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심적, 물적 증거가 ‘반드시 그렇게 된다.’라는 확실한 결과를 도출해내고 있다. 아무리 내가 반푼이 탐정이라지만 그 정도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혼자서만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더 이상 날 기억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기억한다고 해도, 만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내 마음을 전한다고 해도, 그때 과연 하루카의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수백 수천 번을 반복했던 내 고민이다.
그러나 내 마음을 진작에 알아차렸던 하루카는 그런 불안을 겪지 않았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가. 거절당할 지도 모르는 불안한 고백이 아니다. 당연한 결말을 맞이하러, 결말을 알고 있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러 온 것일 뿐이다.
  ‘치사하잖아 하루카. 너무 치사한 거 아니냐고…….’
  그 불안요소가 모조리 사라지고 단 하나만의 결과만이 남은 지금 가장 기뻐해야 할 것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바보 같은 똥고집을 피우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대답을 미루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내게, 한 줄기 봄바람이 불었다.
  “……읍!?”
  머릿속이 새하얘질 만큼 달콤한 향기.
  입술에 맞닿은 연약하고 부드러운 꽃잎.
  온화한 봄기운이 온 몸을 휘감아들며, 순간 정신이 아득한 곳으로 날아간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기억나는 건, 통통 튀는 걸음으로 사라져가는 하루카의 뒷모습 뿐이었다.
 


  “아…….”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비로소 혼자 풀밭에 누워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났는지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적당히 식혀진 봄바람이 나부낀다. 
  “하루카…….”
  하루카의 이름을 부르며 검지로 입술을 더듬어본다. 그 아련한 감촉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어서, 고개를 돌리면 그녀의 모습이 보일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테라사키 하루카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심에 빠져 몸을 일으키자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 하나가 떨어졌다.
  “응?”
  예쁘게 접힌 분홍색의 작은 편지지. 조심스럽게 그것을 펼치자 그 안에는 또박또박 정성들여 쓴 손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당신의 마음을 훔쳐갑니다.

  명탐정 유성하님, 보물을 되찾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 괴도 하루카 -

  마지막엔 대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못생긴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건 검은색의 긴 머리를 가진 사람의 형태에 흔해빠진 괴도가면을 쓴 모습 정도. 아마 하루카 자신을 그린 것 같았지만, 이건 콩깍지가 씌인 내가 봐도 엄청 못 그린 낙서로 보일 뿐이다.
  “푸훗! 이게 뭐야!"
  잔뜩 기분이 고조된 나는 폐건물 뒤쪽의 언덕배기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하루카! 그거 알아? 지금쯤 바다 건너에 있을 테니까 하는 소린데, 너 말야! 되~게 이상하다? 아하하하하!”
  누가 보든 말든 아랑곳 않고 그야말로 미친놈처럼 신나게 웃은 나는 터덜터덜 언덕 꼭대기로 돌아갔다. 이미 판은 거의 다 끝나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까지 병나발을 불고 있는 것은 역시나 주인댁 아저씨와 퉁퉁이씨 정도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넥타이까지 머리에 질끈 둘러멘 아저씨는 날 보자마자 비틀비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는다.
  “어허이, 이놈 보게? 어딜 갔다 온 거야 탐정 나으리? 주인공이 빠져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알긴 알아?”
  “섭섭하시다는 분이 보드카를 병째 들고 마시나요. 보통?”
  “에헤이! 이건 그거야 그거! 음… 뭐냐면, 그거! 하여튼 간에 요놈아, 어디 가서 뭘 했어? 혹시……. 이거냐? 흐흐…….”
  아저씨는 헤벌쭉하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삐죽 세웠다.
  "글쎄요……."
  “으잉, 아니라고는 안 하네? 그러고보니…… 묘한 향기가 나는데. 향수도 아닌 것이 꽃향기라고 하기엔 너무 달콤한 것이 기묘하구먼. 것참……. 대관절 어디 갔다 온 거냐? 진짜루 이거야?”
  삐죽 세운 새끼손가락을 꼬물꼬물 거리며 날 놀리려 하신다. 평소 같으면 정색을 하고 달려들었겠지만, 이번엔 젊잖게 웃으며 한 마디 받아칠 뿐이다. 

  “어딜 가긴요, 여기에 뭐하러 왔겠어요.”
  “뭐긴, 꽃놀이 하러 왔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봄날의 예기치 못한 꽃놀이.
  다음번엔 내가, 그녀에게 당한 기습공격을 그대로 되갚아 줄 차례다.

 

 

 

 

 

 



쓰다보니 분량이 아슬아슬했네요.

 


다소 왜색이 짙은 인물명 선정이 되었습니다만...

주인공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는 의미로 '아득하다' 라는 뜻의 遥か(하루카)와

제시어인 꽃놀이에 어울리는 春花(하루카)의 중의적 표현을 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한국어로 두 의미를 섞어서 쓸만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은 제 작명실력의 부족을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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