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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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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93회차/2] 대신할 자
글쓴이: 초설
작성일: 14-04-19 23:49 조회: 1,226 추천: 0 비추천: 0
얼마나 잔걸까.
팔이 저릿저릿한 게 감각이 없다.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는 게 수업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시야에 아무도 없는 어두운 음악실의 모습이 들어왔다. 창밖도 어두컴컴한 가운데 기분 나쁠 정도로 붉은 만월이 떠있었다.
뭐야, 수업이 끝났으면 좀 깨워줄 것이지.”
고등학교 입학 첫날이다 보니 서먹서먹한 것은 이해하지만 같은 반 친구가 자고 있으면 깨워주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은가. 살짝 기분이 상해 낮게 투덜거렸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홀드 키를 눌렀지만 반응이 없다. 배터리가 다 된 것인지 켜지지도 않았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달빛 덕분에 시간을 확인하는데 무리는 없었다.
110. 생각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었다.
경비원은 뭐하고 있는 걸까. 학생이 이 시간까지 음악실에 있으면 순찰 할 때 깨워줘야 하는 것 아닌가.
오싹한 기분을 애써 무시하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뒷문으로 향했다. 교실에 가방을 가지러갈지 아니면 그냥 집으로 갈지 고민하며 문을 열려고 할 때, 누군가가 먼저 문을 열었다.
활짝 열린 문 앞에는 허리까지 오는 흑발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여자가 서있었다. 그녀는 달리기라도 한 듯 머리가 산발이 되어 있었고 작은 입에서는 연신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흰색 블라우스에 베이지색 카디건과 짧은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검은색 오버니삭스를 신고 있는 것으로 봐서 우리 학교 학생인 것은 확실했다.
새벽에 눈앞에서 산발머리를 한 여자를 보고 멍하게 굳어버린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꽤나 놀랐는지 사슴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멍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먼저 정신을 차린 그녀가 복도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다급하게 내 손을 붙잡고 교실 구석에 비어있는 캐비닛으로 끌고 들어갔다.
캐비닛이라는 게 물건을 넣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들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보니 두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좁았다.
몸이 밀착되다보니 그녀의 거친 숨결이 목이 닿았고 가슴에는 뭉클한 느낌이 느껴졌다. 살짝 굽혀진 내 무릎이 그녀의 다리 사이에 놓이면서 짧은 치마가 아슬아슬한 부분까지 말려 올라가 새하얀 허벅지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를 상황에서 코끝에 달콤한 향기까지 느껴져서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버릴 것만 같았다.
얼굴이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화끈거리는 나와 달리, 그녀는 창백한 인상 그대로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런 무표정과 다르게 내 가슴에는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심장이 격하게 고동치는 것은 지금 이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캐비닛에 숨어야만 하는 상황 때문일까?
그 생각도 오래 하지 못했다. 불편한 자세를 바로 잡기 위해 몸을 조금씩 움직이다보니, 그녀의 치마가 더 말려 올라가면서 연분홍색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기…….”
이 알 수 없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녀가 황급히 손을 들어 내 입을 막더니 눈짓으로 캐비닛 밖을 가리켰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캐비닛의 작은 틈으로 음악실을 바라보고 있으니, 곧 촌스러운 운동복을 입은 사람이 흐느적거리면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한손에 몽둥이 같은 것을 들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음악실 한 가운데 서서 술에 취한 듯 몸을 흔들흔들 거리더니 곧 들어올 때처럼 흐느적거리며 음악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사람이 나가고 난 뒤에도 한동안 굳은 듯 미동도 없던 그녀가 곧 내 입에서 손을 때고 캐비닛 밖으로 걸어 나갔다.
말려 올라간 치마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저기, 이건 무슨 상황이죠?”
내 질문에 그녀가 우아하게 몸을 돌렸다. 긴 흑발이 부드럽게 물결치는 모습이 낮이었다면 아름답게 보였겠지만 새벽에 보고 있으니 아름답기는커녕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기분 좋은 듯 화사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이상한 사람이 계속해서 쫓아와서 말이지. 해코지 당할까봐 숨었어.”
확실히 그 움직임은 이상했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뭔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상한 것은 이 여자가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냐는 것이다.
저기…… …….”
내가 호칭을 어떻게 부를지 몰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검지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여소미라고 적혀있는 플라스틱 명찰이 달려있었다. 이름 위쪽에 빨간색 줄이 있으니 3학년인 게 틀림없었다.
, 그러니까 소미 선배는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거죠?”
글쎄, 그러는 넌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니?”
내 질문에 대답 대신 역질문을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거기에 대놓고 제가 먼저 질문했으니까 선배가 먼저 대답해주세요.‘ 같은 유치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 곳에 있었던 이유를 먼저 말했다.
음악실에서 잠들었다가 깨니까 이 시간이네요. 선배는요?”
맞춰볼래?”
선배는 여전히 대답할 마음이 없는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대충 생각해보자면 선배는 두고 온 물건을 찾으러 왔거나 몰래 가져갈 물건이 있어서 학교에 들어왔고, 그 모습을 경비원에게 들켜서 쫓긴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 그 이상한 사람은 술 취한 경비원이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상하기는 하지만 딱히 궁금한 것은 아니니까.
됐어요. 전 집에나 갈래요.”
선배의 말에 대충 대답해주고 뒷문으로 향했다. 교실에 가서 가방을 가져갈까하고 생각하다가 그냥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든 것도 없는 빈 가방을 찾으러 교실까지 가기가 귀찮았다.
음악실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선배가 내 옷을 잡아당겼다.
여자가 위험한 상황인데 이런 곳에 내버려두고 혼자 갈 거야?”
나갈 거면 따라오시던가요.”
불쌍한 척 하는 선배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적막한 복도로 걸어 나갔다. 이런 식으로 표정변화가 심하고 성격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은 취향이 아니다. 정확히는 싫어하는 편이었다.
음악실은 5층 중간쯤에 있기에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오른쪽 계단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 숨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적막함이 가득한 복도의 끝 쪽은 무저갱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 어둠에 둘러싸여있었다.
그 어둠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 살짝 겁이 났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계단 쪽으로 걸어가는데 선배가 달려오더니 내 팔을 붙잡고 팔짱을 꼈다.
선배, 이건 또 뭐하는 거죠?”
? 너 도망갈까 봐.”
배시시 웃으며 망설임 없이 말하는 선배의 모습에 한마디 해주려고 하다가 그만뒀다. 그냥 빨리 집에 돌아가서 씻고 자고 싶었다. 솔직히 무서움이 약간은 줄어드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는 것도 있었다.
내가 별 반응 없이 묵묵히 걸음을 옮기자 따분했는지 선배가 입을 열었다.
한밤중의 학교는 귀신이 나올 거 같아. 그치?”
그렇지 않아도 으스스한 분위기에 귀신 얘기를 하니 소름이 돋았다. 문득 소미 선배에게 흰 소복을 입혀놓으면 처녀귀신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 뭐 그러네요.”
귀신 안 무서워해?”
귀신도 무섭긴 한데, 저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생각해서 말이죠.”
, 그래. 그것도 그렇지.”
내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선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있잖아, 귀신 중에 제일 무서운 귀신이 뭔지 알아?”
뭔데요?”
예의상 대꾸 해줬지만 별로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도 왜 자꾸 귀신 얘기만 하는 걸까?
그게 뭐냐면 말이지…….”
계단 앞에 도착했을 때, 선배가 말을 흐리더니 제자리에 멈춰 섰다. 선배의 시선은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향해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선배의 시선을 따라가니 계단 위쪽의 어둠속에 누군가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달빛이 잘 미치지 않아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형체로 봐서는 조금 전 음악실에서 본 경비원이 틀림없어 보였다.
경비원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
경비원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뭔가 말했지만 바람 빠지는 소리 때문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이유를 말해야 할지 아니면 도망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경비원이 계단을 내려와 몇 걸음 앞까지 다가왔다. 달빛을 받아 서서히 드러나는 경비원의 얼굴을 보며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속에는 공허한 어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입은 귀 밑까지 찢어져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알 수 없는 말을 할 때마다 찢어진 틈으로 찐득찐득해 보이는 붉은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히익!”
끔찍한 몰골을 보고 헛바람을 들이키는 순간, 경비원이 고개를 내 쪽을 돌리더니 들고 있던 몽둥이를 내리쳤다.
엄청난 굉음이 울리면서 바로 앞에 있던 계단의 손잡이가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구겨졌다. 내 머리를 노렸지만 거리 계산을 잘못해서 엉뚱한 곳을 때린 것 같았다. 경비원이 다시 몽둥이를 들어올렸다. 저것에 맞으면 확실히 죽는다.
선배, 뛰어요!”
나는 선배의 손을 붙잡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4층을 지나 3층으로 통하는 계단의 중간까지 내려 왔을 때, 내 앞에 선배와 같은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이건 또 뭐야!”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여자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여자도 경비원처럼 눈이 있어야 할 곳이 뻥 뚫려 있고 입은 귀 밑까지 찢어져있었다.
인님에게제물…….”
조심해!”
선배가 소리 지르는 것과 동시에 눈앞이 번쩍이더니 몸이 뒤로 기울었고 머리카락 몇 가닥이 허공에 흩날렸다. 여자의 손에 쥐어져있는 커터 칼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4층으로!”
이번에는 선배가 내 손을 붙잡고 뛰었다. 계단을 올라 4층 복도로 진입해서 달리던 중 뒤를 돌아보니 괴물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뛰어오면서 바로 뒤까지 따라붙고 있었다. 이대로 달리다가는 붙잡힐 것만 같았다.
도망칠 수 없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했다. 반쯤 도박하는 심정으로 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선배, 신발 벗어요!”
내 외침에 선배가 재빨리 신발을 벗어들고 뛰었다. 나도 신발을 벗어들어 괴물들 뒤쪽으로 힘껏 집어던지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신발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왔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우리를 쫓아오던 괴물들이 몸을 돌려 신발이 떨어진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직은 안심할 수 없기에 소미 선배의 손을 붙잡고 왼쪽 계단까지 멈추지 않고 달렸다.
다행히 왼쪽 계단에는 괴물이 없는 것 같았다. 내 신발을 쫓아간 괴물들도 이쪽으로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긴장이 살짝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 내가 계단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자, 선배도 내 옆에 앉아 거침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의 상황을 이해 할 수 없는지 선배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꿋꿋하게 질문했다.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저것들이 소리에 반응하는 것 같아서 실험해본 것뿐이에요.”
두 괴물 모두 눈이 없는데다가 내가 소리를 지를 때 공격해왔다. 정말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라면 신발을 신고 복도를 달리는 것은 나 여기 있으니 빨리 잡아가라고 홍보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신발을 벗고 달리니 발소리가 줄어들어서 위치를 알기 어려워졌을 테고 그 와중에 뒤쪽에서 큰 소리가 들리니 자연스럽게 타깃도 바뀐 것 같았다. 반쯤 도박하는 심정으로 해본 실험이 잘 먹혀서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선배, 저것들 뭔지 아세요?”
……아니, 잘 모르겠어.”
선배는 내 질문에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작게 대답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선배가 입을 닫자 기분 나쁜 적막감이 주변에 내려앉았다.
, 괴물의 정체가 뭐든 상관도 없고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한시라도 빨리 학교를 빠져나가는 것이니까.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1층까지 뛰어 내려가고 싶었지만 처음 겪는 일 때문인지 다리가 덜덜 떨리면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선배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일까? 고개를 돌려 선배의 모습을 바라봤다.
음악실에서 정리했던 선배의 머리는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더욱 심하게 산발이 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려 웃음이 나왔다. 속마음이 무심코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선배는 지금 모습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처녀귀신 같거든요.”
그거 칭찬이야?”
, 뭐 그런 걸로 하죠.”
처녀귀신 같다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볼을 살짝 부풀린 선배가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낮게 속삭였다.
사실 그 말의 반은 사실이야.”
반은 사실이라니? 뭐가?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있을 때 선배의 질문이 들려왔다.
그런데 넌 이름이 뭐야?”
참 빨리도 물어본다 싶었다. , 나는 명찰을 달고 있지 않으니까 모를 수밖에 없겠지만 이름은 내 유일한 콤플렉스라서 알려주는 것이 살짝 망설여졌다.
……하연이요. 남하연.”
하연? 예쁜 이름이네. 꼭 여자이름 같아.”
역시나, 예상한 반응이었다. 이런 반응이 싫어서 일부러 명찰도 달고 다니지 않았는데 말이다. 더 이상 이름과 관련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잡담은 이제 그만하고 슬슬 내려가죠.”
그래. 하연아~”
선배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름이 콤플렉스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어보였다.
선배, 전 이름으로 불리는 거 싫어하는데 말이죠.”
꽤나 차갑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럼 뭐라고 불러?”
그냥 후배라고 불러주세요.”
알았어. 하연 후배~”
머리가 지끈거렸다. 천성이 그런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배는 사람의 신경을 긁는 재주가 탁월한 것 같았다.
하아, 그냥 마음대로 부르세요. 어차피 오늘만 보고 안볼 텐데요.”
.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 말에 바로 긍정하는 선배의 모습에서 살짝 묘한 느낌을 받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하는 동안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의 떨림이 멈췄고 평소대로 힘도 잘 들어가서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자, 선배가 득달같이 달라붙어 팔짱을 꼈다.
도망 안 갈 거니까 너무 달라붙지 마요.”
내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팔에 물컹거리는 느낌이 전해져 오는데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묘한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올까봐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1층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1층의 복도에도 괴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어!”
누가 들으면 한참동안 집에 못 간줄 알겠네요.”
그렇게 말했지만 나 역시 기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 겪는 이상한 일 때문에 몸도 마음도 전부 지쳐서 며칠을 고생한 것처럼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선배가 팔짱을 풀고 건물 중앙에 있는 출입문 앞으로 뛰어갔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것처럼 말하던 것과 달리 선배는 출입문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선배의 뒤를 따라 걸어가서 어깨너머로 확인해보니 출입문 양 손잡이에 쇠사슬이 촘촘하게 걸려있었다.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말도 안 돼.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여기가 맞는데…….”
선배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쇠사슬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 선배를 내버려두고 나는 창문을 하나씩 열어봤다. 이상하게 잠금장치를 풀었는데도 열리는 창문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접착제를 발라놓은 것 같았다.
그 때, 복도 전체에 쇠가 부딪히는 굉음과 함께 선배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 왜 안 열리는 거냐고! !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선배, 진정하세요.”
내가 선배를 말리고 있을 때, 복도의 오른쪽 끝에 검은 형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굉음을 듣고 내려온 괴물인 것 같았다.
이곳에 계속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서 선배를 정문에서 억지로 떼어내 뒤쪽에 있는 양호실로 끌고 들어갔다.
선배를 침대에 앉혀놓고 살짝 밖을 확인해보니 괴물은 복도 끝 쪽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쪽으로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선배는 아직도 멍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뺨을 톡톡 쳐보기도 하고 어깨를 잡고 흔들어보기도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선배, 정신 좀 차려 봐요. 여기서 나가야죠.”
안 돼, 늦었어. 여기서 나갈 방법은 없어.”
방법이 없으면 만들어야죠.”
내 앞에 있는 철제의자를 들어 올려 창문을 힘껏 내리쳤다. 얇은 유리가 힘없이 깨질 것이라는 내 생각과 달리 유리창에는 흠집하나 나지 않았다.
선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조적인 웃음을 띠고 있었다.
출입문은 전부 잠겨있고 창문을 열리지 않는다. 나갈 수 있는 곳은 전부 막힌 것과 다름없었다.
그 때, 오늘 등교하면서 본 것이 떠올랐다.
선배, 혹시 옥상에 비상계단 같은 게 있지 않나요?”
그래, 그게 있었어!”
내 말에 언제 침울했었냐는 듯 선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하시고, 일단 냉수 마시고 정신 좀 차리세요.”
종이컵에 정수기의 물을 받아 선배에게 건네준 후 몸을 풀었다. 잔뜩 긴장해서 굳어있던 몸이 풀리면서 이곳저곳에서 뚜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순간, 물을 마시고 있던 선배가 종이컵을 떨어뜨리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고통스러운지 몸을 웅크리며 신음을 흘리는 것으로 봐서 물이 기도로 넘어간 것 같았다. 등을 두드려주려고 뻗은 내 손을 선배가 거칠게 뿌리쳤다.
선배의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이어서 신음 소리는 기침 소리로 바뀌었고, 기침은 갑자기 터졌다가 끊겼다 하며 반복되었다. 사레들렸는지 그 뒤로도 한동안 기침을 해대던 선배가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나를 표독스럽게 노려보던 선배가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다시는 그 소리내지마!”
몸을 풀 때 난 소리를 말하는 것일까. 살기어린 선배의 눈빛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선배가 소리친 것 때문에 괴물이 몰려오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뚜둑. .
그 소리에 선배가 다시 살벌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어찌됐건 내가 낸 소리는 아니다. 결백을 주장하듯 양 손을 들어올렸다. 내가 미동도 하지 않는 동안에도 뚜둑거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양호실 안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설마…….”
선배가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괴물이 다가오는 것일까.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나무 지휘봉을 집어 들고 선배 뒤에 바짝 붙었다.
문틈으로 머리를 내밀어 복도를 살펴보던 선배가 문을 힘껏 열어젖히더니 내 손을 잡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뛰어!”
선배의 손에 잡혀 왼쪽 계단으로 달려가던 중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보통사람보다 두 배 이상 길어 보이는 팔다리를 이상한 각도로 꺾은 채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괴물이 있었다. 그 팔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뚜둑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180도로 꺾인 머리에는 고양이의 것으로 보이는 눈이 박혀있었고 찢어진 입에서는 연신 소름 돋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인간 같은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진짜 괴물이었다. 달리는 속도도 다른 괴물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 대로면 순식간에 붙잡힐 것 같아서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내 손을 잡고 이끌던 선배가 나에게 이끌리는 상황이 되었다. 왼쪽 계단으로 진입해 두 계단씩 뛰어올랐다. 그래도 괴물과의 거리가 벌어지지 않았다.
괴물은 벽면과 천장에 붙어서 달리며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선배만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괴물의 긴팔이 선배를 잡기위해 휘둘러질 때마다 귓가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도 선배도 괴물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계단을 뛰어 올랐다.
2층과 3, 4층을 지나 5층까지 올라온 순간, 선배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괴물이 선배 위로 덮치듯 떨어져 내렸다. 괴물의 팔다리 사이에 누워있는 꼴이 되어버린 선배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섭다. 이대로 그냥 달아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커터 칼에 베일 뻔 했던 나를 선배가 구해주지 않았던가.
손에 들고 있는 나무 지휘봉을 꽉 움켜쥐었다. 끝부분이 뭉뚝하기는 하지만 힘껏 찌르면 충분히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배만 바라보고 있는 괴물에게 달려들어 한쪽 눈에 지휘봉을 찔러 넣었다. 눈알이 터지는 느낌과 함께 살을 헤집는 느낌이 내 손을 통해 전해졌다. 괴물이 고통스러운 듯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동안 선배를 일으켜 계단을 올라갔다.
위쪽에는 옥상으로 통하는 철제문이 있었다. 드디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엄청난 희열이 몰려왔다.
선배가 나보다 앞서 문으로 걸어갔다.
드디어…….”
선배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문을 열자, 스포트라이트를 정면에서 비추는 것 같은 강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너무 강한 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앞이 보이지 않았고 몸도 마비된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깨닫는 순간, 선배의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연아, 구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입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선배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했던 질문 기억나? 귀신 중에 가장 무서운 귀신은 말이야…… 물귀신이야. 물귀신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리를 대신 할 자를 구해야 한대.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원한이 없는 사람이라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대.”
선배의 목소리가 잠시 멈추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네 말이 맞았구나. 귀신이나 할 짓을 사람인 내가 하고 있으니,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게 맞구나……. 있잖아, 난 너무 지쳤어. 저것들을 피해 도망쳐 다니면서 나를 대신할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어.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너를 만났을 때는 너무 기뻤어. 나를 대신할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 기뻤어……. 만약 네가 너를 대신할 사람을 찾아서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온다면…… 그때는 제대로 사과할게. 이런 나를 용서해줘. 미안해…….”
그 말을 끝으로 밝은 빛이 점점 옅어지더니 결국 사라져버렸다. 굳었던 몸이 움직여졌다.
눈앞에는 철제문 밖에 없었다. 선배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철제문은 아무리 힘을 줘도 열리지 않았다.
선배! 소미 선배!”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며 소리쳐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암담한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 주저앉았을 때, 등 뒤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 제물…….”
뚜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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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으로는 처음 써보네요. 제대로 쓴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없이 쓰다보니 뭘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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