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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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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개와 돌 이야기 -4-
글쓴이: 칭소마라
작성일: 14-04-13 07:45 조회: 1,009 추천: 0 비추천: 0

***


지저분한 종이로 감싼 까만 막대가 종이 위를 지나자 까만 알갱이가 고슬고슬 맺힌다. 그대로 몇 번 문지르자 아무것도 없던 백지에 뭔가 생겨난다. 생겨난 뭔가가 뭔지는 도통 모르겠다만.

“우와아, 멋지다~. 은경 언니.” 손뼉을 치며 리애가 말했다.

“헤헤. 당연하지 완전 멋지지?” 약간 까만 피부를 가진 여자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낙서쟁이는 의외로 꽤나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단발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둘이서 함께 내려다보고 있는 스케치북에는 크레파스로 그린 까만 콩나물 같은 것이 보였다. 기본적으로 담벼락에 그려져 있던 낙서랑 별 차이는 없다. 그대로 난잡하다.

“멋지다~. 고래~. 또 그려줘!”

“그래. 자, 이번엔 뭘 그려볼까~.”

고래였다니. 아니, 어디가? 대체 리애는 어떻게 그걸 알아차린 걸까. 벌거숭이 임금님의 옷처럼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그림인가? 역시 내 아이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 아니, 저게 그런 거일리가 없지! 물론 리애는 순수함 그 자체지만.


오수에게 덮쳐진 낙서쟁이가 바닥에서 일어날 생각도 못 하고 울고 있는 관계로 어른으로서 심한 자책감을 느끼고만 나는 낙서쟁이를 달래 집안으로 데려오고 말았다. 일단 진정시키고 얘기를 들어보려는데 리애가 도착했다.

그리고 여차여차 리애와 낙서쟁이—이름은 은경이라고 한다—가 함께 놀기 시작했다. 의외로 같이 잘 놀았다. 그림 수준이 리애와 비슷해서 그런 거려나.

지금 방안에서 오수는 얌전하게 누워서 졸고 있다. 아무래도 오수를 겁내니 별수 없었다. 조금 전 상황 덕분에 더 겁먹은 것도 있을 테고.

사과도 겸해서 저녁을 먹고 가라고 권했기 때문에 저녁식사인원이 늘어버렸다. 미리 준비해둔 것으로는 양이 부족해서 배달을 시켜먹기로 했다. 메뉴는 중국집이다.


짜장면을 먹은 그릇을 포갠다. 주황색 후드티를 입은 은경이도 나를 따라 그릇을 포개고 랩이나 종이뭉치 같은 쓰레기를 모았다.

“아저씨, 죄송해요.” 고개를 들어 은경이를 보았다. 은경이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정리에 집중하고 있다. 리애는 응? 하며 뭐가? 라고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리애도 정말 좋은 애였고. 저녁도 맛있었고. 아저씨 좋은 사람 같아요. 제가 오해했을 지도.”

진작 좀 그렇게 생각해 주지. 난 아무리 봐도 선량하고 평범한 아저씨인데 말이지. 납득한 이유는 좀 이상하지만.

리애는 그렇지라며 히힛하고 웃었다.

“그래. 날 왜 방화범이라고 생각한 거야?”

“음…. 밤에 그 불난 데에서 아저씨를 봤어요. 막 숨을 헐떡이면서. 지금 생각해 보니 잘못 봤을 수도.” 헤에~라고 추임새를 넣는 리애.

“잘못 본 건 아냐. 실제로 있었는걸.”

은경이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놀랐다. 그럼 역시? 같은 소리도 했다.

“아니. 현장에 있으면 다 범인인 건 아니잖아. 난 최초발견자라고.”

“그리고 불도 껐어!” 리애가 소리쳤다. 정확히는 오수가 끈 것 같지만 굳이 설명하진 말자.

“으아…. 정말? 죄송해요…….” 은경이 눈을 동그랗고 뜨고 몇 번 깜빡이더니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응. 괜찮아.” 리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는 리애가 괜찮다면 전부 괜찮으니 괜찮은 걸로 했다.


***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통을 돌려 허리를 풀어줬다. 뚜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도 한번 돌려주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빙빙 돌리다 졸린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캄캄한 가운데 가전제품의 램프 불빛 몇 개가 반짝였다. 냉장고의 웅웅거리는 소리 사이로 까랑거리는 뭔가 긁는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을 내려보니 2시 14분. 항상 이 정도 시간대. 낙서 다음은 불이냐.

머리를 긁으며 나오니 오수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새삼 말이지만 이 눈빛은 맛있는 것을 기다리는 눈빛과 닮았다.

까슬까슬한 털을 쓰다듬어주고 목줄을 채웠다. 오수가 손가락을 핥는다. 닿는 감촉이 간지럽고 차갑다.

목줄을 쥔 채로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오늘 밤은 유난히 춥다. 뺨에 닿은 입김이 차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대문까지 총총 뛰는 나의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오수. 오늘은 오수가 조금 유난스럽게 군다. 아무래도 내 느린 발에 맞추려면 답답하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혼자 보낼 수도 없으니 미안하게 됐다.

타닥거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려 했다.

“아차….” 조금 서두른 탓인지 손에서 열쇠를 놓쳤다. 허리를 숙여 열쇠를 주우려는 순간 목줄이 손에서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엇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닫힌 대문 아래 틈새로 오수가 빠져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수와 함께 달릴 때는 네발 달린 짐승을 어떻게든 따라잡기 위해 아득바득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했다. 하지만 항상 내 앞에서 파닥거리며 줄을 당겨대던 녀석이 없으니 영 힘을 내서 달릴 수가 없다.

솔직히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냥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어느 골목 구석이려니 생각하고 냄새와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며 뛸 뿐이다.

잠시 멈추고 숨을 골랐다. 땀방울이 맺힌 몸이 순식간에 식었다. 벌써 10분 정도 헤맸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뭔가 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방향을 고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다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숨소리가 격해져서 타는 소리가 가렸다.

대신 코끝에 탄내가 점점 강해졌다. 골목길 모퉁이에 아른아른 빛나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했다고 안도하며 모퉁이를 돈 순간—

피투성이로 물든 쇠파이프—

피투성이로 물든 구깃구깃한 하얀 가운이—

그렇게 빨갛게 물든 얼룩덜룩한 피투성이의, 피가—


오수가— 바닥에, 피투성이로, 어?


구깃구깃하고 얼룩덜룩한 가운이 내게 달려든다. 불을 등지고 까만 그림자가 진 모습이 무섭다. 시야 위쪽에서 뭔가 하얀 것이 반짝였고 난생처음 듣는 커다란 소리가 머리에 울린다.

울린다?

아니, 아프다. 잠깐의 암전이 지나간 사이에 머리에서 고통이 느껴진다. 아스팔트 바닥이 보인다. 지저분한 컨버스화가 보인다. 구깃구깃한 가운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이상한 디자인의 푸른 돌이 보인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상태로 고개를 들어 바라본 것은 이상한 돌을 목에 건 검은 그림자. 다시 번쩍하며 파이프가 날아온다. 이번엔 팔로 막았다. 짜르르한 통증이 오른 팔목에 퍼진다.

다리와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쪽 눈이 감겨서 시야도 갑갑하다. 복부로 발이 날아왔다.

“으흐억…!”

배를 감싸고 굴렀다. 누운 채로 올려다보자 단발머리의 남자가 보인다. 불꽃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얼굴. 하지만 저 이상한 목걸이는 잘 기억하고 있다. 담란이다.

“이게… 무슨… 짓이야…!”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진다. 떨리는 팔로 몸을 지탱해 일으켰다. 똑바로 담란을 바라보려 했지만 몸이 떨리는 것이 멈추지 않는다.

“불은 아름다워요. 바람에 휘감기는 일렁임도 좋고 따스하게 스며드는 그 빛깔도 사람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지요.”

파이프가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들린다. 키링키링. 카랑카랑. 굉장히 거슬리는 소리가 난다.

“하지만 본질은 그보다 안에 있습니다.”

담란은 양손을 크게 벌렸다. 손에 쥐고 있던 파이프가 기울어지며 쓰러졌다. 쇳소리가 날카롭게 캉캉캉 울리다 점점 작아진다.

“불은 곧 에너지 그 자체. 지구에 생명을 잉태한 태양은 섭씨 6000도의 불덩어리. 그 열기가 이 지구에 생명을 주었습니다. 그 불이란 것, 거기서 나오는 열기를 우리 생명체는 갈망하고 욕망하여 존재합니다.”

담란은 뭔가를 움켜쥘 듯 손을 움직여 앞으로 내밀었다. 몸을 뒤로 젖히고 황홀경에 빠져있다. 뿌드득 이와 이가 맞물리는 소리가 내 이에서 들린다.

“하지만 아무리 갈구해도 우리 생명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열에는 자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그릇의 한계라는 것이겠지요. 만약 일반 생명체와는 비견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열을 품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태양의 열을 모두 빨아들이고 이 지구에 겨울이 찾아오게 할만한 열을 품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몸을 일으키려는 내게 다시 담란의 발이 날아온다. 지탱하던 팔이 무너지고 몸이 꼴사납게 엎어졌다.

다시 발을 들어 올리려던 담란이 잠시 허공을 보더니 중얼거렸다.

“아… 벌써 사람들이… 남은 얘기는 세상의 겨울에서 나눕시다.”

담란이 팔을 내리고 목을 두어 번 돌렸다. 숨을 한 번 내쉬고 품에서 흔들리던 이상한 돌을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솔직히 제 얘기 믿지 않으시죠? 상관없습니다.”

오른손으로 무릎에 손을 대고 허리를 숙이며 돌을 쥔 손을 내게 내민다. 담란의 손이 서서히 내게 다가온다. 결코 빠르지 않은 속도로. 꽉 쥔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이 보인다.

“솔직히 저 개 때문에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아주 쌤통이네요.”

가까워진 담란의 얼굴. 불빛 때문에 어두운 가운데서도 담란의 얼굴이 비틀어지며 웃으려 하는 것이 보인다. 입꼬리가 경련하듯 떨리는 담란의 얼굴은, 솔직히 괴이하고 무섭다.

입에서 나온 입김이 차갑게 식는 것이 느껴진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추위가 밀려온다. 어느샌가 떨리는 입술을 느끼며 푸른 돌을 바라보았다. 돌의 매끈한 표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나는 생각 외로, 처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돌 안에 뭔가 일렁이는 것이 보이는 것 같다. 불꽃이 비치는 가도 싶었지만 담란에게 가려지는 불꽃이 여기서 비칠 리는 없을 것 같다. 어째 됐든 그것은 부드럽게 휘감기며 부드럽게 빛났다.

아름다운 것이 잔뜩, 몸은 차갑게 굳어간다. 돌이 다가옴에 따라 점점 심한 추위가 느껴진다. 마치 한겨울을 눈앞에 둔 듯한 추위가 온몸에 사무친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돌이 내게 닿으려 할 때에—


“크르릉!”

담란이 머리를 흔들며 휘청거렸다. 약간 새된 비명을 지르고 손을 마구 휘젓는다.

처음 듣는 짐승의 소리가 들린다. 담란의 머리에 붙은 주황색 작은 그림자. 마치 담란의 머리에 불이 난 것 같다. 담란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떼어내려 버둥거렸다.

휘청거리던 담란이 쇠파이프를 밟고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이 보였다.

쌤통이다. 이 녀석…….


***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어중간하게 붉은 하늘과 흰 꽃병 하나였다. 꽃병에는 노란색의 이름 모를 꽃이 하나 꽂혀있다. 시간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돌리려 하니 온몸이 쑤셔왔다. 막연한 기억으로는 그냥 몇 대 얻어맞기만 한 것 같은데 어젯밤에 생각보다 여러모로 무리를 한 모양이다.

어제, 사실 지금이 얼마나 지난 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창밖을 보니 하늘 끄트머리가 붉은 것이 해 뜰 녘이나 해 질 녘인 모양이다.

“아빠…?”

“우움…. 아저씨?”

내 옆에는 리애와 은경이…가 있었다. 둘 다 자다 깬 건지 눈을 끔벅거리고 있다.

“괜찮아, 아빠?”

“그래. 괜, 찮은 거 같아.”

리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리애의 눈물이 글썽거렸다.

“괜찮다니까.”

울먹이는 리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리애가 아빠라고 말하며 품에 안겨 왔다. 말하긴 그렇지만 조금 아프다.

“은경이 너는 왜 여기에?”

은경이를 바라보자 리애와는 달리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아저씨가 쓰러진 걸 발견했거든요. 리애 혼자 있게 할 수도 없어서….”

이거 아무래도 큰 신세를 진 것 같다. 낙서쟁이 소녀에 리애와 정신연령이 비슷한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이 은혜는 꼭 갚아야겠다. 다음에는 꼭 탕수육까지 사주마.

“그래. 고마워. 어, 그러면 불, 아니 그보다 오수는?”

“아… 불은 금방 껐어요. 근데 오수는…”

은경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말끝을 흐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왜? 오수가 어떻게 된다는 거지?

품 안에서 훌쩍이던 리애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오수가 안 보여!”

“뭐?”

“아저씨가 쓰러져 있던 곳에 목줄만 발견되고 오수는 보이지 않았다고 경관 아저씨가…”

어젯밤 내가 쓰러지기 전 상황이 떠올랐다. 불꽃이 타오르는 가운데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던 오수의 모습—.

개라는 동물이 실제로 얼마나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 속의 그 조건 없는 충정이 나는 싫다. 피로 물들었던 주황색 털이 생각났다. 인생은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이 있다.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는 것. 아주 단순한 약속.

한순간 얼굴이 굳어지려 했지만 리애의 앞이라서 참았다.

“담란은… 담란은 잡았어?”

“누구? 아니, 아무도 잡았다는 사람은 없었—”

물론 약속을 지키지 않기는 쉽다. 깨라고 존재하는 것이 약속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하지만 스스로 의식하고 그것을 저버리는 것도 아주 괴로운 일이다. 사람이라면, 아니. 적어도 나는. 그러니까 나는 이런 우직한 충정 따위 받고 싶지 않았단 말이다. 숨 막힐 것 같으니까 이런 부담 필요 없으니까.

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살짝 따끔한 감각을 느끼며 팔에 꽂혀있던 링거도 뽑아버렸다. 귀찮게도 환자복을 입고 있지만 아마 입고 온 옷이 어딘가 있을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빠?” “아저씨?”

“미안한데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다오. 금방 올게. 은경아 리애랑 좀 있어줘.”

말하고서 침대 옆 수납장에 있던 옷가지를 찾아 꺼냈다. 화장실에서 적당히 갈아입어야겠다. 나는 옷가지를 들고 병실문을 나섰다.

지긋지긋하다.

“어? 소방, 한진수 씨?”

문앞에서 눈에 익은 경관 아저씨와 마주쳤다. 제복 차림으로 과일바구니를 들고 있다.

“우리 옆집, 폐가의 진담란을 잡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개라는 동물이 싫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복도를 달려나갔다.


***


“헉. 허억. 헉. 크훕. 컥. 헉.”

꽤 먼 거리를 달려와 버렸다. 병원이 가까웠으니 망정이지 거리가 멀었다면 완전히 김이 빠졌을 테지. 다행히 완전히 지치기 전에 도착했다. 담란의 집에.

매일 지나치던 낙서투성이의 담벼락. 잔뜩 녹이 슨 철문.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음울한 분위기의 폐가. 특별히 잡히거나 도망치지 않았다면 담란은 아직 여기 있을 터다.

최근 불도 끄러 다니고 경관이랑 얘기도 자주 하면서 나답지 않게 나서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원래대로의 나라면 병실에 누운 채로 수화기를 든 채 경찰에게 한마디 진술을 하고 끝이었을 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긋지긋해도 나는 가장이고 가장은 가족을 보살펴야 하는 법이다. 다들 알겠지만 개의 세계는 서열사회이다. 나는 오수의 가장이기도 하단 얘기다. 그렇다면 보살펴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책임을 져야겠지. 가장으로서.

“가족으로서 말이다!”

녹슨 대문을 발로 차 열었다. 발에 걸리는 것은 대문의 중량뿐이다.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싱겁게 열렸다. 아무래도 문은 닫혀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마당에는 잡초가 듬성듬성 난 흙바닥이 펼쳐져 있다. 캠프파이어 마냥 쓰레기와 나뭇가지 같은 것을 쌓아 놓은 것이 두세 군데 보였다. 그 위에는 장식이라도 하듯 인형이 하나씩 올라가 있다.

곳곳에 금이 잔뜩 간 건물 외벽에는 씨를 뿌렸을 리도 없는 덩굴 같은 것이 타고 올라가 자랐고 거미줄이 빈 부분을 채워서 장식했다. 다 비슷한 붉은 벽돌을 썼을 텐데도 이 집의 벽돌은 때가 타서 어두워 보인다.

창가로 촛불이라도 켠 듯 일렁거리는 불빛이 비쳤다. 폐가에 눈이 달린 것 같다. 금방이라도 얼굴을 찡그리고 포효할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나는 살짝 침을 삼키고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 크게 소리쳤다.

“이봐, 나와라! 담—”

순간 폐가가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다. 낡아서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검은 문을 열고 나온 것은 여전히 부스스한 단발에 흰 가운을 입고 사람 눈 만한 푸른 돌이 달린 이상한 목걸이를 한 담란이었다.

“어라? 살아계셨습니까?”

태연한 목소리로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자신의 가슴께를 쳐다봤다.

“그때 분명히… 미처 닿기 전이었나요? 뭐,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담란이 나를 똑바로 보고 웃었다. 내 가슴속에서부터 뭔가가 뜨거운 것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너…”

“네?”

담란이 물으며 한 발 내게 다가왔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어…!”

고작 두세 걸음 만에 담란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나는 담란의 멱살을 잡고 검은 문 옆, 벽돌로 된 붉은 벽에 담란을 밀어붙였다.

“큭… 뭐가, 말이죠?”

담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숨이 막히는지 쿨럭거리며 말한다. 하지만 팔을 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굴 수 있지?

“오수는 어떻게 됐어?”

“아… 크윽. 오수? 아, 그, 개 말이군요.”

일그러졌던 담란의 얼굴이 한층 더 비틀어져 다시 추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크하하하. 참 유쾌—”

팔에 힘을 줘서 더 이상 말을 못하도록 틀어막았다. 알았다. 더는 들을 필요가 없다. 여기서 내 마음대로 혼을 낸 뒤에 경찰에 넘기면 그만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그냥 이 상태로 밀어붙이는 것도 괜찮겠다. 사실 난 폭력적인 일은 잘하지 못한다. 기왕에 자세가 잡혔으니 이대로 기절시켜버리면 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기절할 경우에 다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네 뭐네 그런 얘기를 들은 것도 같지만 상관없다. 상관있을 리가 없잖아. 이 녀석은 그 정도로 혼나도 된다. 틀림없다.

조금씩 힘이 풀리는 손에 다시 힘을 주려고 했다.

“커… 조심—”

열려 있던 폐가의 검은 문에서 불기둥이 솟구쳤다. 갑자기 날아온 뜨거운 열기에 나는 얼굴을 감싼 채 몸을 굴렸다.

몸을 일으키니 폐가에 엄청나게 큰 불이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쓰레기 더미에 붙은 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캠프파이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하나의 봉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어느새 옮겨붙은 건지 마당의 쓰레기 더미들도 빛을 발하며 열기를 내뿜었다. 한겨울을 향해 가던 날씨가 순식간에 역행한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이 식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크크크큭. 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담란은 내가 밀어붙였던 벽에 그대로 이글이글 거리는 불꽃이 비져나오는 문 옆에 서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어!”

내 말에 담란은 잠시 생각하듯 손가락을 턱에 대고 고개를 까닥이다… 대답했다.

“그 개는 계속 걸리적거렸거든요. 제가 다니는 곳마다 계속 따라오고… 진수 씨네 개라고 했을 때는 많이 놀랐습니다만. 뭐 어쨌든 이제 그 개는 처리한 것 같으니까요.”

담란이 벽에서 한걸음 떨어졌다. 흰 가운이 불길에 타서 누렇게 색이 바랜다.

“태연해요? 아니죠. 전 지금 아주 최상의 기분이랍니다!”

담란이 양손을 위로 뻗으며 소리쳤다. 담란의 소리에 맞춰 불길이 더 거세게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눈의 착각은 어째 됐든 담란이 저렇게 의기양양해 있는 꼴은 상당히 보기가 싫다.

“시끄러워!”

나는 다시 담란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려 했다. 힘없이 와락 담란의 몸이 휘청거리며 벽에 부딪힌다. 방금과 똑같다. 어젯밤과는 다르게 담란에게 무기도 없다. 충분히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

어—?

갑작스러운 오한, 한기, 심장이 멎는, 숨이 한순간에 막혀서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 손끝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아픔이 느껴진다.

“아…”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주저앉은 채였다. 그냥 몸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추위가 느껴진다. 흰 가운 자락을 따라 시선을 올리니 담란이 히죽거리는 웃음을 띤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바로 일어나 담란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담란과 거리를 벌리니 쓰레기 더미의 불꽃의 열기가 피부로 스며든다. 얼어붙은 것 같던 몸에 온기가 돌고 겨우 숨이 쉬어졌다.

“뭐야?”

겨우 그 한 마디를 꺼냈다. 아마도 얼빠진 표정으로. 담란을 바라보면서.

“어라. 옷을 어지간히도 두껍게 입으셨네요. 덕분에 알이 충분히 먹어치우지 못한 것 같아요.”

담란은 어느새 손에 쥐어 든 푸른 돌을 들어서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네? 어제도 대충 설명해 드렸는데….”

정말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 모를 수도 있죠. 그게 당신의 한계라는 거겠죠.”

“이 자식…!”

담란이 하는 얘기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나를 모욕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힘이 풀린 다리에 억지로 힘을 줘서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바들바들 떨린다.

“흥! 어차피 네가 잡혀간 다음 천천히 들으면 될 일이야.”

당장에라도 담란에게 다가가 제압하고 싶지만 분하게도 아직 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 여기선 뭐라도 말을 해서 시간을 끌어야 할 것 같다. 병원에서 나올 때 경관 아저씨에게 대충이라도 말을 해뒀다. 분명 뭔가 조치를 취해줄 것이다.

거기다 지금은 대략 6시이다. 만약 경관 아저씨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이렇게나 커다란 불이 났으니 신고도 금방 들어갈 것이고 누군가 온다면 담란을 잡을 수 있다. 그거면 된다.

“잡혀요? 누가?”

“그야 당연히 너지.”

담란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배까지 잡고서 웃음을 멈출 줄 모른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질문을 좀 바꿀게요. 누가 잡아요?”

담란이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산에 난 불 때문에 다들 그리로 갔을 텐데?”

“뭐?”

“그리 어려운 얘기는 아니에요.”

담란이 벽에서 떨어져 몇 걸음 내게 다가왔다.

“원래 이 동네가 인원이 많이 투입되는 곳이 아니잖아요? 거기다 요 며칠, 밤마다 방화로 예상되는 사건이 있으니 순찰인원을 급하게 당겨 와야 하고 그러면 또 낮에는 사람 부족해지고.”

내게 똑바로 걸어왔던 담란이 옆으로 슬금슬금 걸었다. 폐가의 열려있는 문 바로 앞. 불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담란의 모습이 가렸다.

“거기다 갑작스럽게!”

담란이 한 손을 위로 뻗는다.

“예상치 못하게!”

나머지 한 손도 위로.

“엉뚱한 시간에!”

양손을 한번 굽혔다가 다시 위로.

“짠.”

의외로 가볍게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폐가의 문에서 커다란 불꽃이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메마른 산에 큰 불이 났네요?”

불꽃 한가운데서 담란은 편안한 듯이 웃었다. 가운에 불이 붙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너무나 농담 같은 상황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제 여기서 나는 불을 막을 사람은 없어요.”

애초부터 제정신이 아닌 미치광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제야 알을 위한 먹이가 준비됐습니다.”

담란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 미치광이, 그 이상의 뭔가였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불꽃이 비쳐도 빛나지 않는 눈동자를 보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담란은 평소라면 절대 건드려선 안 될, 가까이 가서도 안 될 존재라는 것을.

담란이 천천히 걸어서 다가온다. 나는 떨리는 다리를 급하게 한걸음 뒤로 뻗었다. 몸이 비틀거린다. 균형이 크게 흔들리는 몸을 끌고 세 걸음 만에 꼴사납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끄트머리가 불에 그슬려 까맣게 변한 가운을 펄럭이면서. 어떻게 보면 아직도 불이 붙어 있는 듯한 가운을 가볍게 휘날리며. 담란이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온다. 가슴에는 푸른 돌이 흔들거린다.

그 푸른 돌에 일렁이는 작은 불꽃 같은 것이 쓰레기 더미의 불꽃보다도 폐가의 불꽃보다도 강하게 일렁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진수 씨는 전채요리네요.”

그리고 손으로 돌을 잡고 나에게 가까이, 돌을 미간으로 접근해왔다.


이번에야말로 끝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크르릉 소리와 함께 뛰어든 작은 생물이 있었다. 까슬까슬한 주황색 털이 난 그 생물은 마치 작은 불덩어리 같이 보인다.

담란이 소리를 치며 버둥거린다. 마구 버둥거리던 손이 주황색 작은 짐승을 붙잡아 휘둘러 던져버렸다.

작은 짐승은 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오수야…!”

나는 몸을 서둘러 일으켰다. 한 번 앞으로 엎어져 머리부터 바닥에 고꾸라졌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서둘러 몸을 다시 일으켜 오수에게 다가간다. 가까이 다가가 몸을 안아 올린다. 오수다. 틀림없다. 그리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게 아니라도 알 수 있다. 틀림없다. 이건 오수다.

“어떻게 저 개새끼가 아직도…!”

담란이 오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지금까지의 여유롭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피떡을 만들어서 불구덩이에 던져버렸는데…!”

담란의 머리에 피가 한줄기 흘러내렸다. 이마를 따라 오른눈에 들어가려는 피를 거칠게 닦아낸다. 그리고 내게 다가왔다. 손을 뻗어 내민다.

“그 개를 내놔!”

“안돼!”

나는 오수를 안은 채로 몸을 돌려 일어났다. 달리려는 데 등 쪽에 충격이 내달아 앞으로 쓰러졌다. 담란이 몸으로 부딪혀 온 것 같다. 오수를 놓쳐버렸다.

“크으…!”

담란이 내 등에서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찌나 엉망진창으로 오수를 잡으려 한 건지 내 팔을 밟고 넘어진다. 꼴사납게도 내 머리에 담란의 무릎이 찍힌 것 같다. 엄청나게 아파서 잠시 바닥에서 몸을 굴렸다.

몸을 일으키니 어느새 담란과 오수의 2차전이 벌어진 모양이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담란의 비명소리가 마구 뒤섞였다. 오수가 담란의 손을 물어뜯고 담란이 손으로 잡아서 던지고 오수는 다시 엉겨붙으면서 엉망진창으로 싸워댄다.

나도 몸을 일으켜 거기에 엉켰다. 오수에게 정신이 팔린 담란을 누르고 앉아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때릴 때마다 주먹이 징징 울리고 아프다. 충격이 있는 건지 아닌 건지 담란은 내 주먹에 얻어맞으면서도 한 손으로는 목걸이의 푸른 돌을 부여잡고 몸을 흔들어 나를 떼내려 했다.

정말로 떨어져 나갈 듯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담란의 손을 움켜쥐고 목걸이를 뺏으려 들었다.

담란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휘두르고 내 몸에 주먹을 날린다. 그래도 내가 유리한 위치에 있어선지 버틸 만하다.

나는 담란의 손을 붙잡고 계속 당겼다. 목걸이 줄이 팽팽하게 늘어났다. 돌을 잡고 실랑이를 몇 번 하자 팽팽해진 줄이 끊어졌다.

“끄아악!”

나는 소리치는 담란의 손에서 돌을 억지로 빼내서 저 멀리 던져버렸다. 손에 닿은 한순간 차갑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제길! 저리 비켜!”

담란이 소리치며 몸을 크게 비틀었다. 나는 더 강하게 누르려 했지만 몸이 부웅—하고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담란이 힘으로 나를 떨쳐내고 날려버린 것이다. 나는 담란이 허둥지둥 돌을 향해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보다 먼저 주황색 털 뭉치가 돌에 다가가서 빠각 소리를 내며 돌을 깨물었다.

“안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허둥지둥 달려가는 담란이 보였다. 빠각 소리가 명료하게 들렸다. 그리고 엄청난 열풍이 휘몰아쳤다.


갑자기 몰아친 얼굴이 익어버릴 듯한 뜨거운 바람에 얼굴을 가렸다. 비명 같은 바람 소리로 가득한 가운데 까드득까드득 소리가 유난히도 크고 명료하게 들렸다.

그리고 열풍이 잠잠해져 고개를 들자 불이 꺼지고 여기저기 흩뿌려진 쓰레기 더미들, 꼴사납게 엎어진 담란, 그리고 살짝 웃는 낯으로 나를 보며 앉아있는 오수가 보였다.

“컹!”

오수가 상당히 경쾌한 소리로 짖었다. 맛있는 것을 잔뜩 먹고 배가 부를 때,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와 비슷하다.

까슬까슬해 보이는 주황색 털이 바짝 곤두서서 얼핏 보면 불덩어리처럼 보이는 모습. 총명한 눈이 반짝이고 촉촉한 코가 새로운 먹을거리가 없는지 코를 킁킁거린다.

오수가 살짝 인사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눈을 깜빡인 걸지도 모른다. 기침을 해서 잠시 얼굴을 찌푸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오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짖고— 달려갔다.

불이 꺼진 폐가를 뒤로하고 녹슨 철문을 따라 나가버렸다. 나는 그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오수를 만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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