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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개와 돌 이야기 -3-
글쓴이: 칭소마라
작성일: 14-04-13 07:43 조회: 1,382 추천: 0 비추천: 0

***


햇빛이 간질간질하니 기분 좋다. 우리 집에서 경사진 골목길을 따라 내려와 한적한 공원을 가로질러 상점가로 들어선 뒤 오른쪽으로 꺾으면 정면에 파출소가 보인다. 나는 문 옆에 마스코트와 눈인사를 하며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적한 실내. 안의 접수처 같은 곳에 경관 한 명이 앉아 있다. 평범한 인상에 사람 좋아 보이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 뭔가 별명이라도 붙여 주고 싶을 정도로 자주 본다, 경관 아저씨. 이 사람은 24시간 일하는 머신인 건가. 대체 왜 이 시간에도 여기 있는 걸까.

“네, 무슨 일로… 어? 이거, 이거, 이거, 소방대원이 오셨네요~.”

나를 보자 환히 웃는 경관 아저씨.

“네. 안녕하세요. 다름 아니라 여쭤볼 것이 있어서—”


—약 5분가량 우리 집 담벼락에 있었던 낙서에 대해 설명했다.

“그럼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까?”

“아뇨.”

나는 조금 낭패를 느끼며 대답했다. 혹시 남겨뒀어야 하는 건가. 너무 경솔하게 빨리 지워버렸나. 그래도 그런 건 빨리 지우지 않으면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르는 법이다.

“예? 그럼 신고를 받기도 조금 난감합니다만. 뭐 접수야 당연히 하겠지만서도….”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는 경관 아저씨.

“그 부분은 제가 좀 경솔했네요. 뭐… 사실 신고하려는 게 아니라 그 낙서쟁이에 대해 좀 듣고 싶어서요.”

그랬다. 사실 처음부터 낙서 같은 것으로 신고할 생각은 미처 못했다. 그저 이 못된 놈을 잡아서 혼내주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고. 어젯밤 일 때문인지 나답지 않게 너무 나선 걸지도 모르겠다.

“낙서쟁이에 대해서 말입니까.”

경관은 눈을 감고 잠시 깊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을 가까이 댄다. 손까지 올려서 입을 가렸다.

“사실 이건 쉬이 알려드리면 안 되는 겁니다만….”

그러면 알려주지 않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런 대단한 건 부담스럽습니다만…. 그리고 이 자세와 거리도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래. 불도 직접 끄시고. 정의로운 분이니까. 특별히….”

이렇게 보니 내가 약간 들뜬 것도 다 이 양반이 문제였지 싶은데.

“잠시 안쪽으로 오시죠.”

경관은 몸을 일으키고 눈짓으로 따라오란 신호를 보냈다.


철로 된 문을 통해 들어가니 회의실로 쓰는 곳인지 넓은 책상 하나와 화이트보드가 눈에 띄었다. 책상 위에는 프로젝터 하나가 선을 주렁주렁 단 채로 놓여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그렇게 말하고 경관 아저씨는 문을 열고 나갔다. 죄를 지은 건 없지만 파출소 안 하얀 벽에 하얀 화이트보드까지. 이렇게 하얗고 장식 없는 방에 혼자 있으려니 긴장된다. 잠시 멍하니 있자니 경관 아저씨가 주황색 바인더를 가지고 들어왔다.

“이럴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따로 모아뒀었죠.”

경관이 고개를 숙이고 크크크하고 웃었다. 이럴 때가 대체 뭐지? 경관이 이러면 안 되는 것 같은데…. 나는 딱히 불법을 범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런 내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관은 히죽거리며 바인더를 팔락이기 시작했다. 뭐 대충 쓰레기 무단투기, 요즘에 낙서도 낙서지만 이쪽도 좀 늘었다. 박스 같은 것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거나. 그리고 소매치기, 좀도둑, 뭐 이 정도면 흉흉하긴 하지만 있을 법한 것들… 뭐? 살인? 자살? 이게 동네 파출소 바인더에 있을 내용이 맞, 동네 주민인 나는 생전 처음 듣는 내용인데?

내가 깊이 알고 싶지 않은 내용에 눈을 돌리고 얼마 안 돼서 경관 아저씨가 펄럭임을 멈췄다.

“여깁니다.”

경관 아저씨의 확신에 찬 소리에—어째 또 크크크 웃었다— 바라보니 빼곡히 숫자, 글자가 가득 차 있고 그림도 하나 있다.

“이게 뭐죠?”

“지금까지 신고 접수된 낙서와 제가 순찰 돌면서 발견한 낙서의 목록입니다. 요 한 달 동안 얼마나 그려대는지 아주 고생했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 제 동료의 목격 증언에 따라 작성한 몽타주입니다.”

경관 아저씨가 몸을 한층 더 깊게 숙이며 나를 바라봤다. 나도 분위기상 몸을 숙였다. 그림이 좀 작은 편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축소복사라도 한 것 같다.

“사실 조금 미흡하긴 합니다만. 동네에 CCTV라도 있는 것도 아니고 애가 좀 날래야 말이죠.”

흑백으로 명암처리가 된 그림은 척 보기에도 수작이지만 경관의 말대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몽타주라고 보긴 힘들었다. 후드에 가리지 않은 눈 아랫부분만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하지만 역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외모다.

“그러고 보니 제 동료가 ‘거기 낙서쟁이, 서라!’라고 소리치니 ‘낙서가 아니라고!’라며 발끈했다더군요. 자기가 예술가도 아니면서 묘하죠. 애초에 그런 걸 그렸으니 낙서라고 하는 거고.”

“네.”

“그리고 뭐더라 동료 말로는 키도 작고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자애 같았다고 하더라고요.”

키가 작은 여자아이. 후드티를 눌러쓰고. 거기다 낙서가 아니라며 발끈한다….

“역시…….”


***


오늘도 까랑까랑 소리에 잠이 깼다. 시간은 2시 4분. 이것도 불이라면 3연속이다. 이 정도까지 되면 확실히 방화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긴 어차피 그런 추론은 경찰이 할 일이고 내 알 바는 아니다.

불을 끈다는 것도 소방관이 할 일이라고 하면 별 할 말은 없지만 불이란 커지기 전에는 작은 손짓으로도 꺼지는 법이다. 그러니 가능하면 내가 꺼버리는 것이 깔끔하다. 안 되면 그때야 소방관을 불러야지.

어느 쪽이든 오수가 있으니 별걱정은 없다. 한밤중에 일어나 시끄럽게 굴어대는 이 강아지. 이 작고 귀염성이 있는 몸이 이렇게 믿음직스럽다니 괜히 웃음이 났다.


“다녀오자.” 오수에게 조용히 목줄을 채웠다.


***


하품이 났다. 이틀 연속으로 자다 깨서 뛰어다녔더니 피로가 쌓일 만큼 쌓였다. 설마 또 불이라니 두 번밖에 겪어보지 않았지만 지긋지긋하다. 현장에서는 또 까맣게 탄 인형이 발견됐다. 경관 아저씨가 이건 연쇄방화범이 틀림없을 거라며 크크크 웃었다. 대체 언제 쉬는 걸까, 그 경관.

평소대로라면 낮잠이라도 잤을 텐데 오수가 워낙 활동적이라 잠을 잘 생각도 못 했다. 마치 리애가 아직 아기였을 때 같다. 일단 이 낙서를 지우고 오수 산책도 시키고 저녁거리를 사오고…. 오늘도 푹 자긴 글렀다.

눈을 돌려 담벼락을 바라보니 베이지색을 바탕으로 어제와는 또 다른 낙서가 펼쳐져 있다. 뭔가 머리만 동그란 막대기인간 같은 것이 불에게서 도망치는 그림. ‘이 집에 방화범이 산다’라는 문구는 그대로다.

다시 한 번 베이지색으로 슥슥 칠해나갔다. 어제 칠한 페인트가 제대로 말랐을지 잘 모르겠다. 다 마르기 전에 이렇게 칠하다 보면 나중에 한 꺼풀씩 벗겨지는 거 아니려나. 페인트칠을 도통 해본 적이 있어야지.

그렇게 슥슥 다 칠하고서 몸을 돌리니 어제처럼 도전적인 눈빛을 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파출소에서 주워들은 특징에 낙서를 낙서라고 하면 발끈하는 것까지 저 아이가 낙서쟁이가 틀림없다.

어제와 같은 주황색 후드티. 그 소매가 상당히 요란한 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래 마치 뭔가 칠하다가 잔뜩 묻은 것처럼. 저렇게 명확한 흔적을 어제는 보지 못 했다. 나도 참 둔한 놈이다.

“아저씨가 방화범이잖아?”

눈을 마주친 채로 조용히 대치하자 못 견뎠는지 낙서쟁이가 먼저 소리쳤다. 여전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대체 뭐 때문에 왜 나한테 이런 소리를 하는 거냐.

“아니라고 했잖아.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그보다 이런 낙서는 그만해 주지 않을래? 민폐라고. 주인집에도 미안하니까.”

말하며 한 걸음 다가갔다. 어제와 달리 내 다리에 오수의 목줄은 없다. 조금 불쌍하지만 오늘은 집에서 대기. 아무래도 뛰는 데 방해가 되니까. 물론 오수가 발은 더 빠르지만 딱히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니 없는 편이 더 편하게 뛸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미리미리 혼자 있는 훈련을 시켰을 텐데. 따지고 보면 데려온 지 3일밖에 안 지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려나.

내가 몇 걸음 다가가도 낙서쟁이는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흥. 그렇다면 뇌우칠 때까지 범죄자의 표식을 남겨줄 테니까!”

“뇌우라니, 무슨 기우제 지내냐?”

잠시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 아무래도 자신이 한 말실수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나저나 동네 요란하게 잘도 소리친다. 저 애 경범죄이긴 하지만 엄연히 경찰에 쫓기는 입장이지 않던가. 저 아이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경관에게 중범죄의 혐의도 받고 있다.

“범죄자의 표식이라니 저런 낙서를 가지고.”

적당히 대꾸하며 다시 몇 걸음.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낙서쟁이는 여전히 의기양양했다. 흥. 바로 잡아다가 볼기짝을 때린 뒤 경찰에 넘겨주마.

“흥. 사람들이 알아줄 때까지 계속 남길 테니까.”

알아주긴 뭘 알아준다는 거냐. 애초에 난 불을 끈 사람이라고.

“그런 얘기는 경찰에 가서 직접 하게 해 주마…. 낙서쟁이야…!”

나는 별다른 예고 신호 없이 다리를 움직였다. 낙서쟁이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과연 경관들의 추적을 몇 번이나 따돌렸던 관록이 있는 건가.

하지만 지금은 환한 대낮이고 여자아이와 성인 남성의 차이는 크다. 도망쳐 숨기도 힘들고 체력차이도 어지간하니 놓칠 걱정은 적다.

각오해라, 낙서쟁이!

낙서 가득한 골목에 공허한 발소리가 울렸다.


***


골목을 누비며 나의 숨소릴 퍼뜨렸다. 온 골목골목 종횡무진 뛰어다닌 결과 나는 상당량의 심폐지구력 경험치를 획득했고 추가로 굉장한 수치심도 얻을 수 있었다.

평소 단련된 신체로 활동하는 경관들이 잡지 못한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민중의 지팡이를 우습게 보는 일은 없도록 다들 주의해야 한다.

이 세상에 스스로의 오만함으로 무너져 내린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극악무도한 히틀러도 그러했고 혁명에 선두에 섰던 나폴레옹도 그러했다. 오만에 의한 심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며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런 교훈을 고작 작은 여자아이를 쫓으며 깨닫다니 이 정도면 싸게 얻은 거지.

아무튼 나는 낙서쟁이와의 추격전으로 오늘치의 활동량을 모두 채웠지만 집에서 우두커니 나를 기다린 오수는 그렇지 못하다. 개라는 동물은 집 밖에서 터뜨리지 않으면 집 안에서 터져 버리는 시한폭탄 같은 것인 관계로 나는 힘든 몸을 끌고 다시 산책을 나와야 했다.

매번 똑같은 경로로 산책하면 산책로를 외워 무슨 훈련 하듯이 길을 익히게 된다고 하므로 오늘은 다른 길로 향한다. 혹시나 개가 산책을 두려워하면 우선 길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줘야 한다지만 내츄럴 본 길거리 태생인 오수는 그런 것 따위 없다. 어떤 길은 나보다도 잘 알지도 모른다.

우선 마을 외곽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외곽을 따라 내려가면 옆에 바로 숲이 있지만 길도 없고 제법 경사가 가팔라서 그리로 들어가기는 힘들다. 그렇게 외곽을 따라 내려온 후 새주소로 계양로 162라 불리는 샛길을 따라 산을 쭉 돌아 반대편으로 나오면 오늘의 산책로에 다다른다.

난 솔직히 이미 지쳤지만 오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컹컹거리며 보채는 오수를 보며 산 중턱까지만 올라가자고 일단 거기까지는 해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종아리에 살살 올라오는 은은한 고통만 아니라면 산을 오르는 것은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이다. 100m 정도만 올라와도 공기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데다 비록 푸른 초목은 아니더라도 장난감 블록마냥 오밀조밀 붙어있는 건물들을 내려다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거기다 동행과 함께하는 산행은 상당히 새로운 기분이 든다.

손에 든 물통의 물을 마시고 오수에게도 조금 주었다. 상당히 잘 마신다. 개는 땀샘이 발바닥에만 있다고도 하니 지금 생각 이상으로 더운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오수가 물을 할짝거리며 마시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귀를 쫑긋하더니 코를 킁킁거리며 오솔길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응? 또 뭐가 있냐?”

대답 대신 컹하는 소리가 돌아왔다. 오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대답이겠지. 척 보기에도 나무가 울창하고 바닥에 울퉁불퉁한 것이 지나다니기 힘들 것 같은 모양새인데…. 여름이었다면 엄청나게 벌레에 쏘일 것 같다.

뭐 그래도 지금은 겨울의 초입이다. 그리고 집에 혼자 뒀던 게 미안하기도 하니 잠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어….”

“엇…!”

“컹! 컹!”

당황과 담란과 짖는 소리가 뒤섞였다.

내 손의 목줄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목줄에 매인 오수는 그 6배는 더 날뛰고 있다. 그리고 날 바라보는 담란의 눈초리는 그 12배로 날카롭다. 너무 그러지 말아줬으면 한다. 난들 댁이 여기 있을지 알았겠냐고.

여전히 웃기는 파란 목걸이를 건 채로 흰 가운을 입고 있다. 대체 저 가운은 왜 계속 고집하는 걸까. 싸길래 통신판매로 같은 걸 20벌 사버렸다거나 하는 사연이라도 있냐.

“아직도 그 강아지를 키우고 계십니까?” 담란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양반이 못하는 소리가 없네.

“예. 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이 산속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그쪽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가던 길 가시죠. 아니, 개가 그 난리를 치니 적당히 뒤로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관자놀이 핏줄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하나하나 사람 신경을 건드리는 데 재주가 있다. 오수 녀석은 이 상황에서도 학학대며 담란에게 달려들려고 하고. 개들도 분위기는 제법 잘 읽는다고 들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안 그래도 돌아갈 겁니다.”

말하면서 오수의 목줄을 당겼다. 오수는 담란에게 달려드는 것을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래 봤자 소형견. 힘 대 힘이라면 조…금 버겁지만 지지 않는다.

“그나저나 상처는 어떠십니까?”

“상처….” 잠시 멈칫한 담란이 생각났다는 듯이 왼손을 오른손으로 덮었다.

“아, 상처요? 아직 아픕니다만 그건 왜 물으시죠? 치료비라도 내실 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 조금 전까지는 개털 한 줌만큼의 마음이 있었는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다. 사람은 몸으로 기억한 것을 쉽게 잊히지 못하는 법이다. 방금 전 담란의 사기꾼 초능력자가 ‘이거?‘하며 가운데 카드를 고르는 것 같은 동작이 어떻게 사실일 수가 있겠는가.

사람에게 뛰어오르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버릇이다. 그것이 호의의 표시이든 적의의 표시이든 고쳐야 할 버릇이란 것은 인정하겠다. 인정하고 얘기를 해보자.

애완동물의 목숨이란 것은 사람보다 가볍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몇몇 몰상식한 인간들의 처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에 혹은 조금 강한 야생의 본능 때문에 인간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 그들에게 돌아가는 처벌은 실로 가혹하다.

사실은 적응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누군가가 선택을 받느냐 아니냐. 삶과 죽음의 양자택일. 사람이라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을 직접 죽음에 처하게 하진 않는다. 하지만 동물이라면 직접 죽인다. 그런 차이다.

애완동물들은 잘못 찍힌 낙인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담란이 하는 바로 이런 행동으로.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기분 나쁘다.

“영수증이라도 보여주시면 그렇게 하죠.”

“하? 됐습니다.”

그렇겠지 영수증이 어디 있겠나.

“그럼 이만.”

화를 누르고 자리를 피하려니 담란에게서 도망치는 기분이 들어 비참했지만 조용히 오수를 안아 올렸다. 몸을 돌리는데 풀숲 사이로 커다란 봉투가 보였다. 이상한 목걸이, 커다란 봉투, 흰 가운. 이 세트가 담란을 구성하는 물품인가. 수제인형을 만든다면서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건지.

“흥. 뭐 대단한 소리라도 하나 했더니. 댁네 집에 낙서를 봤습니다. 최근 일어나는 방화도 댁이 방화범인 거 아닙니까?”

뒤로 돌아가려는 내게 담란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관자놀이 부근에서 틱하고 뭔가 튀는 소리가 들렸다.

“하긴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도 없고. 개도 그렇고 가만 보면 그 집 아줌마도 딸내미도 시끄럽고 다들 뭔가 이상한 거 아닙—”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이 양반이 진짜! 당장 그 손부터 제대로 보여줘 봐!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해 보게! 뭐, 아줌마? 딸내미? 개가 어쩌고 저째? 방화범은 무슨—. 그 불을 끈 게 애초에 나라고!”

이런, 화를 내고 말았다. 담란은 내 일갈에 멍해진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까지 벌리고 있다.

“…불을 꺼?”

무심코 화를 내 버린 것을 후회하며 혀를 차는데 담란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말이 맴돈다. 그래, 내가 불을 끈 게 그렇게 충격이냐?

담란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꼬리만 올리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요? 잘 알았습니다. 다만 확인은 안 되겠네요. 하지만 이건 확인할 수 있죠. 자—.”

담란이 자신의 왼손을 들어올려 손등을 보였다. 거기에는 조금 흐릿하지만 찢긴 자국이 있었다.

“여기 보이시죠?”

분명히 그런 것으로 보였다. 낫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꽤 깊은 상처가 담란의 손에 남아있다. 확실히 짐승에게 물린 자국으로 보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다.

고개를 살짝 꺾어가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는 담란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담란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럼 다음에 뵙죠.”

놀리듯이 양손을 펴 보인 담란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몸을 돌려 비척비척 오솔길을 걸어 사라졌다.


***


담란과의 충돌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의외로 별일이 없다. 새로운 화재소식도 없고 낙서도 없고. 최근에는 산책하다 담란과 마주치지도 않았다. 생각하기로는 오수가 꼬리를 흔들며 학학거리기 시작하면 그쪽으로 가지 않은 덕분인 것도 같다.

대체 오수는 담란의 어떤 점이 좋다고 그러는 건지. 사람이란 게 알고 보면 다들 좋은 점이 있는 법이라지만 내가 담란의 좋은 점을 알게 되는 일은 평생 없을 거다.

“물어와~.”

한적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을 타고 흔들거리며 원반이 날아간다. 오수가 타닥타닥 원반을 따라간다. 몇 번 해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공중에서 원반을 물 수 있다니 역시 대단하다.

한적한 주말의 공원에는 몇몇 가족들이 나와 여가를 즐기고 있다. 날이 좀 춥다 보니 다들 활동적이다. 축구를 한다거나 캐치볼을 한다거나. 그중에서도 원반을 던지며 놀고 있는 리애와 오수는 좀 튀는 편이다.

“헤헷, 잘했어.”

리애가 원반을 물어온 오수를 쓰다듬어준다. 오랜만에 동네 공원에 나와 바람을 쐬니 기분이 좋다. 리애와 함께 나오니 이 맑은 하늘을 만끽할 수 있다. 최근 며칠간 오수의 활동량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젊음과 젊음을 부딪혀서 휴식을 도모하다니 실로 책사가 아닌가, 나.

리애가 원반을 던진다. 오수가 받는다. 반복한다. 반복, 반복. 평화롭다. 롭긴 한데 정말 지치지도 않는구나. 보는 내가 먼저 지쳐버렸다.

갑작스레 이런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오니 적응이 안 된다. 불도 없고 낙서도 없다니 무슨 우연인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게 평범한 본래의 일상이지만.

어느샌가 친해진 경관 아저씨에게 듣기로는 아직 방화범도 낙서쟁이도 잡지 못한 모양이지만 더 이상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런 건 나와 상관없다. 그냥 이대로 아무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


“아빠~ 이제 들어가자~.”

리애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목 언저리가 뻣뻣하다. 그만 벤치에서 졸았던 모양이다. 추운 날씨에 선잠까지 잤더니 몸이 으스스한 게 감기에 걸릴 것 같다.

“그래, 가야지.”

반쯤 감긴 눈으로 대답하며 일어났다.


리애를 따라서 허술한 난간의 계단을 지나고 골목을 따라 올라가 모퉁이를 몇 번 돌아 우리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담벼락에 그려진 낙서를 보았다.


***


거미를 피해 도망치는 사람. 그 뒤에는 군데군데 불타고 있는 거미가 불타고 있는 거미줄을 뿜어낸다. 수군대는 듯한 듬성듬성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빈틈을 메운다. 절규가 들려올 듯 처절한 느낌의 낙서가 우리 집 담벼락을 수놓고 있다.

리애와 오수를 데리고 나오고 지난 시간이 대략 2~3시간. 상당히 한정된 시간에 여러 가지를 그려 놨다. 낙서쟁이는 확실히 나름대로 예술혼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지금껏 낙서가 없었던 것도 이 구도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일까. 불이 안 나서 그런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낙서가 갑자기 명작이 된 것은 아니다. 그려낸 개체는 늘어났지만 그만큼 난잡해졌고 지저분한 그림인 건 똑같다.

인생무상. 나는 말없이 페인트를 덮어씌운다.

손이 시려워서 잠시 붓을 놓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안에서 자그락 소리가 돈다. 그 소리에 자고 있던 오수가 벌떡 일어나 신이 나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뛰어다닌다. 잠시 가만히 있자 오수는 내가 손안의 공을 던질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건지 이내 얌전하게 앉아 햇볕을 쬐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붓을 잡으려 할 때 시선이 느껴졌다.

저번처럼 전봇대 뒤에 숨어 사람을 째려보고 있다. 언제 저기까지 온 걸까. 저번과 같은 주황색 후드티를 입고 있다. 낙서할 때의 작업복 같은 걸까.

낙서쟁이는 저번처럼 나와 오수를 번갈아 보며 머뭇거렸다. 1대1로 대면할 때의 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오수를 무서워하는 거다. 아직 작은 강아지인데 무서워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오히려 귀엽지 않은가.

어째 됐든 내게는 좋은 일이다.

“낙서쟁이야, 안녕~”

오수를 보며 떨고 있었던 주제에 손을 흔들며 부르자 발끈하며 노려본다.

“한동안 불이 나지 않아 어떤가 했는데 아직도 반성하지 않았군, 방화범.”

낙서쟁이가 떨리는 게 보일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문 소리를 냈다.

반성하고 아니고는 뭐로 판단하는 걸까. 방화범으로서 반성이라면 피해자에게 사과를 한다거나 불을 지르지 않는다거나 그런 것일 테니. 낙서쟁이가 내 반성 여부를 판단할 방법은 없을 텐데.

“아직도 낙서 같은 소리를 하다니.”

뭐라는 거야? 여기서 낙서가 왜—

“주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르게, 최초의 구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이렇게 수많은 개체를 이런 구도로 그려냈다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당당한 선언! 방화가 어쩌구 하다가 어째서 네 낙서 얘기가 나오는 거냐.

“참고로 전부5번 박스에 숨었다!”

손을 쫙 뻗어 손가락 5개를 보이는 낙서쟁이. 아아, 그렇구나. 고생이 많았네. 그러고 보니 너랑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웬 냉장고 박스가 있구나. 설마 거기서 계속 잠복하고 있었냐.

“아이고 골치야….”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뭐 아무래도 좋아. 아무튼 이제 더 이상 낙서는 곤란해. 그만두지 않는다면 혼을 내주지.”

“흥, 느려터진 주제에.”

낙서쟁이가 고개를 좌우로 까닥였다. 손목도 돌리고 발도 가볍게 턴다. 잡을 테면 잡아 보라는 오라가 느껴진다.

하지만 뭐 상관없다. 내가 경찰도 아니고 딱히 잡을 필요도 없고. 뻔히 보이는 약점을 가진 스스로를 원망해라.

오늘 난 오수의 목줄을 발에다 묶는 짓은 하지 않았다. 팔에다 둘러서 언제든 풀기 좋게 해뒀다.

“지금이라도 사과한다면 용서해주마.”

“흥. 무슨!”

“흠…. 그러냐.”

최후통첩은 끝났다. 나는 오수의 목줄을 시원스레 팔에서 풀었다. 멀리서도 확실히 볼 수 있도록 팔을 크게 휘둘렀다.

“어? 무, 무슨 짓이야?”

낙서쟁이가 살짝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자그락 소리를 내는 공을 꺼냈다.

“후. 후. 훗. 바로 이런 것이지. 오수야, 물어!”

크게 소리치고 공을 던졌다. 오수가 내달리고 낙서쟁이도 당황해서 바로 뛰기 시작했다. 물론 오수는 공을 쫓아갈 뿐이지만 낙서쟁이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겠지. 단지 공포에 질려 도망갈 뿐이다.

후드티의 후드를 펄럭이며 도망치는 낙서쟁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겁먹어라. 이곳에 네가 무서워하는 짐승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거라.

자그락거리는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 속도는 낙서쟁이보다 빠르다. 사람이 힘껏 던진 투사체는 아무리 느려도 시속 60킬로는 나온다. 사람의 발보다 빠른 것이 당연하다.

오수도 내가 던진 공보다 빠르지는 않다. 짧은 발을 열심히 움직여 쫓아갔다.

공이 점점 낙하한다. 동시에 낙서쟁이와 가까워졌다. 오수가 열심히 발을 움직여 달렸다. 공은 점점 낙서쟁이와 가까워지다가 낙서쟁이의 머리에 맞고 자그락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대로 후드티의 후드로 들어갔다.

낙서쟁이는 계속 뛰었고 후드에서 자그락 소리가 났다. 오수는 계속 쫓는다. 사람이 던진 공보다는 못해도 개도 충분히 빠르다. 대충 말하자면 사람의 두 배는 빠르다. 낙서쟁이와 오수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오수가 낙서쟁이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그 후드로 달려들었다. 꺄악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일이 커졌다. 혀를 차며 달려가자 낙서쟁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을 문 오수는 태연하게 내게로 와 다시 놀라달라는 듯 꼬리를 살랑인다. 정말 눈치 좀 있어라.

내 생각보다 더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를,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며 나는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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