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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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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개와 돌 이야기 -2-
글쓴이: 칭소마라
작성일: 14-04-13 07:42 조회: 1,153 추천: 0 비추천: 0

***


찰나의 실수였다. 찰나의 실수.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수육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물이 끓는 소리가 거실에 울리고 냄새가 가득 찼다.

기가 죽어 걱정됐던 오수도 보글보글 소리를 듣고 폴짝폴짝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 정도 냄새에 이 반응이라면 혹시 고기라도 구웠다간 큰일이 날 것 같다.

혹시라도 불에 닿아 다치거나 하면 안 되니 붙잡고 끌고 와서 놀기 시작했다. 자그락 공도 던지고 까슬한 털을 만져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참이었다.

“예, 나갑니다.”

대문까지 거리가 있어 들릴 리도 없지만 가볍게 대답하며 인터폰으로 향했다. 그냥 택배다. 이 산동네를 도느라 고생이 많으시군 혼잣말을 하며 문을 열고 맞으러 나가려던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의외로 작고 초라한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그때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고 바로 소리가 난 곳으로 뛰었다.

소리가 난 곳은 부엌. 가스레인지 옆 바닥. 그곳에서 오수는 김이 피어오르는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채 삶은 고기를 뜯고 있었다. 김이 피어오르는 수육의 누린내가 역하게 느껴졌다.

“아니…. 이게, 괜찮아?”

대답할 리도 없건만 일단 물었다. 오수에게서는 예의 그 컹하는 소리뿐. 멀쩡해 보인다. 조금 전까지 팔팔 끓는 물이었다. 팔자 좋게 고기 뜯으면서 쳐다보지 마라. 지금 김이 나고 있다. 응급처치, 그리고 병원! 나는 흐르는 물에 수건을 적신 뒤 오수를 감싸고 뛰어 나갔다.


“이건… 멀쩡한데요?”

“네?”

나 스스로도 당황해서 눈이 커진 게 느껴졌다. 수의사 선생님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멀쩡하다니까요?”

“그런….”

“워낙에 강하게 말해서 지금 온몸을 다 뒤져봤잖아요. 근데 없어요. 아, 그리고 신기한 게 있네요.”

“네? 또 무슨…?”

수의사 선생님이 오수의 앞발을 잡고 배를 드러냈다.

“자, 보이죠? 여기 상처가 있었잖아요?”

수의사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오수의 배를 가리켰다. 하얀 털이 드러난 배는 아무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이상하죠? 원래 그렇게 심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하루 만에 없어질 것도 아니었거든요. 수술실도 녹는 거긴 한 데 벌써 다 없어졌네요. 혹시 다른 개 아니에요?”

약간 웃음기가 섞인 수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뚫어져라 오수의 배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까득까득 하는 뭔가를 긁는 소리, 까랑까랑거리는 작은 소리가 너무 거슬려서 잠에서 깨고 말았다. 손으로 더듬더듬 벗어두었던 안경을 기고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평온해 보이는 아내의 숨소리 사이로 신경질적인 쇳소리가 끼어든다.

“지금 몇 시야….”

핸드폰 액정에 비친 시간은 2시 20분이다. 이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

거실문을 열고 나오자 현관문 쪽에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듯한 주황색 털 뭉치. 그 털 뭉치가 움찔 움직이자 두 개의 빛덩어리가 빙글 돌며 나타났다. 내 목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오수야?”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일어나 아내가 서 있다.

“응. 나가고 싶어하는 모양인데.”

“그럼 잠시 나갔다 오면 되지 않아?”

이 한밤중에 갑자기 일어난 참인데 참 쉽게도 너무한 소리를 한다.

“그런 버릇 함부로 들이면 나중에 고생해.”

밤마다 자기가 나가 놀고 싶다고 응석 부리는 걸 받아줄 수는 없다. 주로 내가 귀찮으므로.

오수에게 터벅터벅 걸어갔다. 빛덩어리 두 개가 학학거리며 이리저리 뛴다. 눈에 어둠에 적응하니 맹렬히 흔들리는 꼬리가 보였다.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나는 오수를 안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오수가 문 쪽을 바라보며 낑낑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자자, 이 녀석아.”

이 밤중에는 그냥 이 정도로 참아달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이불을 덮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잠에 들기가 더 힘들었다.


***


수상한 웅성거림이 가득하다. 처음 골목에 나섰을 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서로 마주 보며 소곤거리고 있다. 평소처럼 큰 소리를 내지도 않고 아주 조심스럽게.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얘기한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주머니는 어깨를 크게 한 번 떨고 몸을 돌렸다. 나를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이구, 리애네 아빠. 그게 말이지…”


“보시다시피”

잠시 말을 끊은 경관이 골목 안쪽을 바라봤다. 경관의 뒤로는 노란 줄이 하나 쳐져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수는 안쪽을 보면서 기다려 상태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뭔가 좋은 냄새라도 나는 건가.

“그러니까 저기 까만 얼룩 보이시죠? 어젯밤에 불이 났었거든요. 이게 누가 담배라도 핀 건지 저 밖에서 난 건데. 어찌 된 일인지 저~기, 저 집까지 불이 옮겨붙는 바람에 아주 난리가 났어요. 상당히 많이 탄 모양이더라고요. 사람이 안 죽어 다행이지.”

생각 이상으로 상세하게 알려주는 경관 아저씨. 아무래도 혼자 밖에서 지키고 있느라고 많이 심심했던 모양이다. 아주머니들이 알려준 것보다 더 자세한 정보다.

“혹시 시간은….”

“새벽 2시가량이네요. 아들내미가 가장 먼저 발견하고 도망쳐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어젯밤, 거기다 시간도 비슷하다.

“네. 그렇군요. 큰일이네요. 그럼 수—”

“저기, 저 낙서 보이세요?”

“네?”

경관 아저씨의 말에 다시 바라본다. 까맣게 탄 담벼락에 희미하게 굵은 선이 보인다.

“네. 보이는데요. 저거 요즘 동네 이곳저곳에 그려대는 낙서죠? 근데 낙서가 왜요?”

경관이 살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손까지 들어서 입을 가린다.

“지금은 다 타서 잘 안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저기에 만화캐릭터 짝퉁이 그려져 있었거든요? 그 왜 있잖아요. 머리 삐죽거리고 막 장풍 쏘고.” 경관이 속삭였다.

“예에. 그래서요?”

“쉿. 불이 난 곳이 그 캐릭터가 있던 곳이고 불이 옮겨 붙은 집이 그 장풍 방향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혹시 그 낙서쟁이가 방화범이 아닐까 하고.”

“예….”

경관 아저씨가 많이 심심하신 모양이다. 이런 추정, 함부로 알려주면 안 될 텐데. 솔직히 경관 아저씨가 적당히 장난치는 걸지도 모르니까. 꼭 그런 것이길 바란다. 어느새 경관 아저씨 뒤로 다가와 점점 얼굴을 굳혀가는 인물이 그저 지나가는 길이길 바란다. 화장실 용무라도 급한 거라고 믿는다.

시끄러운 호통소리를 뒤로 한 채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


무능한 남편을 둔 탓으로 내 아내는 언제나 바쁘다.

아내는 이렇게 바쁜 자신을 보필할 수 있다니 매우 유능한 남편이라고 말한다.

사실 어느 쪽으로 표현하든 별 차이는 없다. 내가 유능하기 때문이든 무능하기 때문이든 그에 상관없이 내 아내는 매우 바쁘니까.

또 한참 볼 수 없을 거다. 달에 2, 3일 정도 보는 게 고작. 고래서 떠나는 날에는 가능한 한 성대하게 만찬을 준비한다. 매번 준비하다 보면 소홀해질 법도 하지 않느냐고 물어올지도 모르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도 그럴 게 나야 그런 것도 귀찮아질 만큼 한심한 인간이지만, 매번 리애가 기뻐하니까. 아내가 오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니까. 소홀해지지 않는다.

기뻐하는 그 표정을 보면 내 마음을 세탁기에라도 넣고 새로 빨아오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언제나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 들여 만찬을 준비한다.

“여보세요? 거기 XXX피자죠?”


하하. 아내가 좋아하는 게 피자인데 뭐 어쩌란 말인가.

참고로 XXX는 트리플 엑스 라지로 읽으면 된다. 처음에 광고전단지에 찍혀 있는 XXX를 봤을 때는 그리다 만 마법진인가 싶었다. 무슨 레슬링 선전 문구인가도 싶었고. 암튼 맛이 좋다. 피자가게가 맛만 좋으면 된 거 아니겠나. XXX 소시지 맥스 피자를 추천한다.


“어젯밤에 불이 났대?”

입에 욱여 넣은 피자를 씹으며 아내가 말했다. 한 손에는 맥주가 담긴 컵을 들고 있다.

“응. 그것도 꽤 큰 불이. 오수가 문을 긁던 시간에 말이야.”

눈을 돌려 오수를 바라보니 침을 뚝뚝 흘리며 기다려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료를 먹이는 게 맞겠지만 오늘 정도는 별식으로 챙겨줘도 되지 싶다. 그래도 그냥 주기는 좀 그렇고 뭔가 칭찬할 일이 있으면 좋겠는데. 흠, 뜨끈한 건 먹다가 데던지 목이 막힐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조금 챙겨뒀다가 간식으로 줘볼까.

“오, 그거 대단한 거 아냐? 이름을 잘 지은 건가?”

콜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살짝 한숨을 쉬었다. 한가족의 집이 불타버렸다. 금액으로 얼마가 나올지 계산하려니 까마득하다. 그런 나에 비해 아내는 조금 가벼운 기분인 것 같다.

“아빠, 오수가 불이 날 걸 미리 안 거야?”

옆에서 리애가 치고 들어온다. 이쪽이 오히려 애답지 않게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부모가 철이 없으면 오히려 아이가 빨리 철이 드는 법이려나.

“응. 아마…. 그래도 확실한 건 아니야.”

아이에 맞춰서 표정이 어두워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입꼬리에 살짝 힘을 주고 웃으려 노력했다.

“그럼, 어젯밤에 제대로 확인했으면 불이 그렇게 커—”

“리애야, 리애야.” 손으로 리애의 등을 팡팡 치며 말하는 아내. 리애가 바라보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건 아니야. 이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건 이거지. 다음에 오수가 똑같은 행동을 하면, 미리 불에 대응하면 되겠구나! 이거지.” 아내가 씨익 웃는다.

미래지향적이기도 하고 꽤 좋은 관점이다. 일부에선 자기 얘기 아니라고 쉽게 얘기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우울해 쳐져 있는 것보단 좋은 얘기겠지. 다만 좀 걸리는 것이….

“대응이라니?”

“응? 그거야 불을 끈다는 거지?”

“누가 말이지….”

“그야 당신?” 그렇게 애교 있게 고개를 갸웃거려도 말이지…. 살짝 마음도 설레고 좋긴 한데 전혀 좋지 않다.

“일반인이 화재현장을 맞닥뜨려도—”

“처음엔 불도 작을 테고 감당이 안 되는 불이면 신고하면 되지.”

“아니….”

“와, 아빠 불 꺼? 소방관처럼?”

……. 리애가 눈을 반짝인다. 왠지 방금 먹은 콜라가 체할 것 같다. 에이, 아니다. 그래, 설마 또 불이 나겠냐. 저 호수같이 맑은 눈을 봐라. 커다란 눈망울에 저 갈색 눈동자를 보란 말이다. 딸내미가 저런 눈빛으로 아빠를 볼 때 할 말은 하나뿐이다.

“그럼 나만 믿어!”


***


설마 같은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설마 다음에 오는 말은 일어날 확률이 10% 정도는 증가하니 조심하도록 하자. 손을 뻗어 핸드폰의 시각을 확인하니 2시 12분. 어두운 방안에 까랑까랑 소리가 울렸다.

“다녀와~.”

자리에서 누운 채 나지막이 말하는 아내가 원망스럽다. 꼬리를 흔들며 뭔가 기대하듯 학학거리는 오수를 보며 나는 살짝 한숨을 쉬고 목줄을 채웠다.

“다녀오자, 오수야.”


“헉. 허억, 헉. 허컥. 헉. 허억.”

4와 2. 4는 2의 두 배, 즉 200%. 대충만 전력을 살펴봐도 둘 중 무엇이 더 우위에 있는가는 자명하다. 전쟁에서도 이 정도의 차이면 어지간히 신묘한 전술을 쓰지 않는 이상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숨이 차다.

인간이 네발 달린 짐승을 뛰어서 쫓는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지 않나. 자전거를 타던지 사냥총을 들고 지프차를 타든지 해야지. 하지만 나는 달렸다. 딱히 다른 방법도 없고. 찬바람을 맞아서인지 뭉쳐오는 뒷목을 느끼며 열심히 달렸다.

그래도 나는 정말 잘 뛰었다. 아마 오수도 ‘이래야 내 주인이지, 훗.’하며 뿌듯해 했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가로등 불빛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 머리에 산소가 안 돌아서인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저 아직 저녁에 먹은 피자와 다시 마주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자.

오수를 따라서 약간 밝은 빛이 새어나오는 모퉁이를 돌아 들어가자 보인 것은, 막다른 길. 쓰레기봉투를 쌓아둔 장소였다. 빛은 그 쓰레기 더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수거차가 와서 가져가기 전까지 지저분하게 쌓여서 눈살을 찌푸리게 해야 할 비닐봉지들이 불타고 있다. 새빨간 불씨가 튀어 오른다. 뛰느라 잠시 멈춰 있던 오감이 다시 작동하며 타닥거리는 소리가 귀를 때리고 검은 연기가 코끝을 찌른다.

아직 그리 크게 타오른 건 아니다. 집 하나를 집어삼킬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대여섯 개가 모인 쓰레기봉투 전부가 지리산으로 극기훈련을 갔을 때의 캠프파이어처럼 불타고 있다. 입고 있는 옷으로 덮어서 끌 수 있는 수준이 결코 아니다. 이게 캠프파이어라면 안전요원에게 모든 걸 맡기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내가 뭔가 해야 한다.

물, 물이 필요한가? 아니면 모래나, 길 어딘가에 제설용 모래가 있지 않았던가. 그걸로, 아니, 아니지. 일단 사람을 불러야—

바삭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검은 그림자가 발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누구? 하지만 지금은 일단 불을 꺼야 한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았을 때—

오수가 불덩이로 뛰어들었다.

목줄이 당겨지는 건 느끼지 못했다. 아마 불과 너무 가까이 붙었던 거겠지. 목줄의 길이가 길었던 거다. 그 이전에, 설마 불로 뛰어들 거란 생각은 못 했지만.

“오수야!” 불러보지만 다가가진 못했다. 눈으로 보이는 불꽃의 경계. 하지만 불은 보이지 않는 곳부터 압도적으로 뜨겁다. 순간적으로 내민 손이 욱신거렸다. 오수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뛴다. 괴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여전히 웃는 얼굴. 꼬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뭔가를 물어뜯듯이 마구 뛰었다. 마치 불꽃을 먹어치우는 것 같다.

어느새 불꽃이 사그라졌다. 오수는 타서 무너져내린 쓰레기봉투 사이에서 까맣게 탄 봉제인형 하나를 꺼내서 물어뜯다가 바닥에 내팽개쳤다.


***


“네. 다행히 크게 될 불이 아니었는지 도착하시기 전에 불은 어떻게 껐습니다만.”

차마 오수가 불을 먹어치웠다고는 못하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앞에 경관 아저씨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이야, 그거 다행이네요. 어제도 불이 났고 여러모로 어수선한데 가벼운 불로 끝나서 정말 다행이지 뭡니까.”

수첩에 뭔가 끄적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경관 아저씨. 평범한 인상에 사람이 좋아 보이는— 잠깐, 이 분 혹시 오늘 낮에 봤던 분인가?

“이거 혹시 방화 같은 건 아니겠죠?”

내 말에 경관 아저씨는 까만 그을음이 남은 골목길을 잠시 바라보았다. 흐린 가로등 불빛 아래 한층 어두운 재와 바닥에 굴러다니는 까맣게 탄 봉제인형. 경관 아저씨는 몸을 수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댔다. 손까지 올려서 입을 가린다. 낮의 그 경관이—

“그게 말이죠. 최근 낙서가…”

틀림없다. 그 경관이다.

“그러고 보니 그 불이 났을 때 말인데요. 수상한 그림자를 봤습니다.”

내 말에 경관 아저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어떻게? 인상착의는요?” 안 그래도 가까운데 부담스러울 정도로 얼굴을 밀착시켰다.

“아니…. 어두워서 보인 건 없어요. 키는 좀 작았던 것 같네요. 이 정도?”

말하며 내 목 부근에 손을 대서 보였다. 경관 아저씨가 흠흠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뭔가 휘갈겨 적었다.

“그나저나 훈련받지도 않은 개가 화재현장을 발견하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소방견이라든가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야, 정말 똘똘한 녀석이에요.”

경관 아저씨는 더 이상 물을 것이 없는지 수첩을 주섬주섬 집어넣는다.

“네. 확실히.”


***


하얀 곰 인형의 얼굴을 손으로 쥐고 꾹꾹 눌러보았다. 오수의 털보다 부드러운 느낌이 제법 좋다. 감촉은 재질에 따라 어떨지 모르겠지만 곰 인형이라는 게 사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동글동글하고 짧은 팔다리도 그렇고 동그란 눈과 코라든가 시옷 모양으로 생긴 입이라든가. 흔하디흔한 생김새다.

그렇다고 해도 묘하다.

한밤중에 문을 긁던 오수. 혹시나 했던 화재가 정말로 또 발생하고. 불꽃 사이를 뛰어다니던 오수. 나동그라진 봉제 인형. 까맣게 탄 몸체 일부의 흔적이 본디 하얀색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담란이 이사 기념으로 선물해준 이 인형과 어제 쓰레기 더미에서 불타고 있던 인형이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가자, 자기야~.” 준비를 끝낸 아내가 나를 불렀다.

“그래.” 나는 하얀 곰 인형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애는 학교에 가서 없기 때문에 현관에는 나와 아내 그리고 오수뿐이다.

“갑시다. 우리 소방관 나리. 소방견 나리~.”

아내가 나와 오수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했다. 오수가 컹하고 짖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지금 아내는 다시 출장을 나가는 길이다. 나와 오수는 그 배웅을 위해 따라 나선다. 현관을 열고 뚜벅뚜벅. 바람따라 굴러가는 낙엽들이 조금 차갑다. 아직도 굴러다닐 낙엽이 남아있다니 이상기후 때문인가 낙엽들이 순 제멋대로 생겨난다.

초록색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응?”

“어?”

아내가 낸 소리에 돌아보니 아내는 우리 집 담벼락을 보고 있다. 그 시선을 따라 담벼락을 보니 거기에는 낙서가 있었다.

굉장히 거친 느낌으로 박력 있게 쓰인 ‘이 집에 방화범이 산다’라는 문구와 삐죽삐죽하게 그려진 괴물인지 뭔지 모를 인물이 클클거리는 소리를 낼 듯이 웃고 있는 낙서. 최근 동네에 늘어난 낙서 테러인 듯하지만 이런 악질적인 문구가 첨부된 건 처음 봤다.

“누가 단단히 오해한 모양인데?” 아내는 담벼락을 보며 웃었다. 화통한 여자 같으니.

“이게 대체….”

골이 지끈거려서 이마에 손을 대었다. 어젯밤에 오수와 함께 화재현장을 발견한 게 소문이 잘못 퍼지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불을 끈 것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왜곡이 될 수 있는 걸까. 오히려 소문 쪽이 아니라….

문득 어젯밤 봤던 사람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림자의 정체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그림자가 날 봤고 방화범으로 오해를 했다거나 뒤집어씌우려 한다거나 그런 것 아닐까? 그래도 내가 불을 끈 것은 확실하다. 별 효과는 없을 거다. …없겠지?

하지만 이건 확실히 곤란하다. 나는 괜찮더라도 리애가 무슨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고 집주인이 이런 낙서가 있는 걸 좋아할 리도 없으니까.

“이걸 언제 지우지.”

쳐다보고 있어도 낙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나는 발을 옮겨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고생하라구.” 옆에서 들리는 아내가 웃음소리가 조금 짜증 났다.


***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의 해결방안은 두 가지가 있는 법. 하나는 그 문제의 근원을 뿌리 뽑아 치워버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문제를 덮어 지워버리는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젊은 치기로 완벽을 기한다며 빡빡 문질러 대기도 했지만 그래서야 나오는 것은 회색 시멘트 가루와 땀구멍으로 솟아나오는 한줄기 땀뿐이다. 이 추위에서야 금방 식어서 한줄기 떨림이 될 뿐이지만.

“그래도 이런 식이면 편한 거지, 그래.”

악마 같은 형상이 가득 차 있던 담벼락에 베이지색 페인트가 침투한다. 붓놀림에 따라 영역을 넓혀가는 페인트는 순조롭게 악마를 봉인했다.

결국 이 나이를 먹고 깨달은 것은 이렇게 덮어버리는 것이 꽤나 매력적이고 평화로운 해결법이라는 거다. 굳이 시멘트를 긁어낼 필요는 없다. 의외로 그것은 본질이 아니었다. 떨어져 나간 시멘트는 새로운 골칫덩이가 될 뿐. 이걸로 좋다.

됐다! 끝이다!

붓을 내려놓고 가슴을 펴며 기지개를 켰다. 제법 두툼하게 입었지만 꽤 오래 밖에 서 있었더니 추웠다. 그런데도 햇빛을 받고 있던 오른쪽 귀만은 살짝 뜨끈하니 간지럽다. 간지러운 귀를 어깨로 긁적이며 몸을 돌리니 시야 한켠에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주황색 후드티를 푹 눌러쓴 그리 크지 않은 키의 사람이다. 키도 작고 체형이 둥글둥글한 게 여자 같긴 한데 확신할 수가 없다. 저렇게 전봇대 뒤에 숨어서 사람을 째려보고 있으니 알 수가 없을 수밖에.

“저기?”

내가 부르며 손을 뻗으니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주춤주춤 다시 한두 걸음 앞으로 나왔다. 어째 시선이 바닥을 향하고 있다.

“아저씨가 방화범이죠?”

낙서를 보고 벌써 오해하는 사람이 나온 건가.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살짝 충격이다. 여기서 잘 대응해야 한다. 리애가 이런 취급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겠지.

얇고 가는 목소리. 심히 듣는 사람의 상처를 짐작하지 않는 아이다운 화법이다. 후드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목소리로 추측건대 상대는 아이. 그것도 여자아이다.

“아니란다. 그건 오해야.”

웃으며 대꾸했다. 여자아이의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속이 좁진 않다. 굳이 예를 들자면 저 여자아이가 이 낙서를 한 장본인이어도 괜찮을 정도다.

“거짓말쟁이.”

아이의 도발이 꽤나 견고하다.

“네가 이 낙서를 보고 착각을 한 건 알겠는데. 이건 질 나쁜 낙서쟁이의 장—”

“낙서?” 아이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거 낙서 아니거든? 이 방화범 아저씨가?” 아이가 나를 노려보며 다시 한 발짝 걸음을 뗐다.

“컹!” 발치의 오수가 짖었다. 페인트칠을 하느라 발치에 목줄을 묶어뒀었지. 햇빛을 받으며 졸고 있었는데 지금 대화로 깬 모양이다.

아이는 으윽 소리를 내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빠르게 다시 올렸다가, 불안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오수를 겁내는 것 같다.

“야, 솔직히 이게 낙서가 아니면…. 근데 뭘 그런 걸 가지고 발끈해?”

“이 아저씨가 정말….”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노기 띤 목소리지만 더 다가오지는 않았다.

“평생 낙서나 지워라, 방화범!” 아이는 뒤로 돌아 뛰어서 사라졌다. 바람에 날리는 후드가 야속하게 팔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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