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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92회차/1] 기어 나오다.
글쓴이: 산군임
작성일: 14-04-12 16:52 조회: 1,492 추천: 0 비추천: 0

꿈을 꿨다.

 

자기 돈을 돌려달라는 개미들이 찾아와서 내 몸을 물어뜯는 기분 더러운 꿈.

 

지랄하고 있네, 그걸 내가 왜 돌려줘.

 

쓰레기들로 가득 찬 바닥을 헤집으면서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그러자 내 몸은 지탱할 곳을 잃었는지 바닥을 향해 고꾸라졌다. 마치 상한선의 주가가 폭락하듯이 바닥에 머리를 거하게 박았다. 아프다아..

 

바닥이 차다. 아니, 내 몸이 찬 건가. 일어날 힘을 잃은 채로 볼을 바닥에 대고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 배만 안 고팠으면 다시 잠들었겠지.

 

헤집은 과자봉지에서 바퀴벌레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집은 상당히 더러운 집이라던데, 아무래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방은 상당히 더러운 방이 된 모양이다.

 

아니, 몇 주 전까지는 좀 깨끗했어. 내가 더럽게 써서 그렇지.

 

바퀴벌레는 과자 몇 조각을 등에 인 채로 어디론가 기어가고 있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바퀴벌레는 천천히 기어가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마치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져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최소한 거실 겸 부엌까지는 나가보자.

 

 

거실이라 쓰고 부엌이라 읽는 이곳은 주요 서식지인 쪽방과는 다르게 제법 깨끗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 정정하겠다. 싱크대 쪽은 그리 깨끗하지 않다. 몇 주에 걸친 설거지거리가 잔뜩 쌓여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어서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신문 구멍 쪽으로 다가가자 이번엔 안 그래도 좁은 구멍에 여러 개의 종이 뭉치들이 잔뜩 쑤셔 박혀 있다. 손만 쭉 뻗어 한꺼번에 종이 뭉치들을 집안으로 끌고 왔다. 가장 먼저 보인 건 A4 용지에 출력한 인터넷 기사였다.

 

우량주 도사, 바퀴벌레의 몰락? 그는 현재 어디로…….”

 

여기 있다, 이 새끼야. 언제부터 알았다고 아는 척이야, 아는 척은.

 

나도 모르게 신경질이 나버려서 종이 뭉치 하나를 현관문 쪽에다 거칠게 던져버렸다.

 

……짜증난다. 우량주 도사가 뭐야, 우량주 도사가. 폼 안 나게 스리.

 

바닥에 다시 코를 박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머리 위로 무언가 닿은 느낌이 들었다. 좀 자게 가만히 납두면 안 되겠. , 배고프다.

 

머리를 들자 처음으로 보인 건 종이, 아까 보았던 신문들 사이에 껴있던 A4용지인 모양이다.

 

뭔가 했더니 협박장이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필체 감정까지 한다고 잡지를 하나하나 오려서 만든 정성스러운 협박장. 내용은 지금 당장 빚진 돈을 갚지 않으면 블라블라…….

 

아아, 그래 빚을 졌었지. 개미들 모아서 크게 한탕 해버렸는데, 그게 망해버렸지. 제기랄.

 

숨겨줄 거면 제대로 숨겨 주던 가. 나는 새도 떨어트렸다는 바퀴벌레 님이 지금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건지? 잠시 잊었던 현실을 다시 생각하니 갑갑해져만 간다. 개미들은 이제 날 철천지원수처럼 생각하고 있겠지?

하긴, 나 같아도 그럴 거다.

 

 

기어 다니는 것도 질려버려서 안간힘을 써 오랜만에 일어섰다. 역시 높은 공기는 맛이 다르다는 속설은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다. 더럽게 맛없다.

 

싱크대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도대체 이 방은 뭐냐? 마굴? 내 시선을 느낀 듯 아까와는 다르게 바퀴벌레들은 재빨리 쌓여있는 설거지 성속으로 대피했다.

 

그걸 눈으로만 살짝 훑은 후, 나는 냉장고를 열었다. 꽤나 오랫동안 안 열었던 게 화근인지 썩은 계란 냄새가 훅 하고 콧속으로 들어왔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이정도의 냄새는 냉장고 안이나 집 안이나 마찬가지라 딱히 그렇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였다.

 

문제는 먹을 게 없다. 진짜로.

 

하아, 우울하다.

 

 

냉장고 문을 도로 닫고 나는 다시 거실에 누웠다. 생각보다 거실 바닥은 편해서 주거지를 이곳으로 바꿔야할 생각이 들었다. 청소는 귀찮아.

 

검은 먼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발로 신문지를 건드렸다. 이곳에 오기 전, 증권가에 폭탄 몇 개를 묻어두긴 했는데 잘 터지긴 했으려나.

 

채광창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쪽으로 신문을 둔 뒤, 재빠르게 볼 면만 훑어보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좋지 않다. 최악. 내가 예상했던 게 모두 빗나가버렸다.

 

진짜 망했어. 아무래도 벌을 받는 모양이다.

 

멋도 모르는 개미들을 농락한 벌.

 

지금으로부터 그러니까. 얼마 지나지도 않는다. 한 몇 개월 전, 나는 개미들 등쳐먹는 사기꾼, 바퀴벌레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개미 투자자들에게는 잘못 된 정보를 뿌리고 나는 정확한 정보를 지닌 채로 개미들을 놀려먹는 바퀴벌레. 내가 붙인 별명은 아니지만,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년간 주식판에서 굴러먹다가 마지막으로 크게 한 건 해먹으려고 했던 게. 망했다. 빼도 박도 못할 정도로 망해버렸다.

 

평소처럼 익명의 닉네임을 걸고 배팅을 하는 거였는데 크게 가려니까, 사람들이 나를 안 믿어 주기에 결국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도박에서 졌다. 깡통을 찬 사람들이 어째서 한강을 찾는 건지 그때의 난, 절실히 느꼈다.

 

그때 생각이 머릿속에 기어 들어오니 괜시리 또 짜증이 났다. 정신 차리자, 정신.

 

몸을 일으켜 싱크대 쪽을 바라보니, 바퀴벌레가 또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왠지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거울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퀴벌레의 생존력은 매우 끈질기다. 목을 잘라도 길게 사는 놈들은 무려 3개월 동안이나 산다고 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나도 바퀴벌레처럼 오래 산다. 천문학적인 단위의 금액을 까먹어 놓고도 나는 이렇게 산다. 남들이라면 벌써 마포대교 따라 한강으로 다이빙 했겠지.

 

왠지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나왔다. 믿어둔 보험 같은 건 없지만 죽기밖에 더 하겠냐 라는 심정이다.

 

띠리링.

 

전화기가 울렸다. 이곳으로 오기 전 대포폰 하나를 뽑아놨는데 그건 분명히 내 마지막 지인들에게만 알려준 번호다. 저게 울릴 이유는 없다. 이미 빚쟁이들한테 다 죽었을 게 분명하니까.

 

몸을 일으켜 언제 썼는지 기억도 안 나는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액정도 보지 않은 채 꾹 눌렀다.

 

 

거기, 사람 아직 있나?”

 

늙었지만 힘 있는. 그리고 절제가 돋보이는 목소리였다.

 

아직 안 죽고 살아 있습니다.”

 

아직 살아있네? 바퀴벌레.”

오랜만이네요. 회장님.”

 

이가 빠득 갈렸다. 정회장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얻은 정보의 출처.

 

아직 안 죽은 김에 얘기나 좀 하자.”

 

할 말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한번 들어봐라.”

 

……

 

그렇게 말하더니 정회장은 헛기침을 한번 했다. 여전히 구렁이 몇 십 마리는 잡아먹은 것처럼 거지같은 노인네다. 아니, 거지는 아니지. 일단 부자니까.

 

바퀴벌레, 니 내일부터 일 하나만 같이 하자.”

 

……무슨 일요? 설마 제가 그 꼴이 났는데 정회장님과 다시 일을 같이 할 것 같아요?”

 

내 날 서린 말을 들었는지 정회장의 웃음소리가 스피커 사이로 기어 나왔다.

 

할 수 밖에 없을 텐데…….”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니 지금 조폭 개미들한테 쫓기고 있다면서 그거 해결할 수 있나?”

 

……제가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십니까.”

 

이번엔 정회장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냥 전화 꺼버릴까.

 

니 사람들이 바퀴벌레라 불러주니까 네가 진짜 바퀴벌레인 줄 아나?”

 

……

 

너만큼 삶에 의욕이 있는 놈도 드물 거다. 지금은 그렇게 처박혀있겠지만 곧 재기 할 거란 거 나는 안다. 바퀴벌레는 언제 뒤질지 모른다. 언제 뒤질지 모르니까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빨빨빨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너한테 손을 뻗는 거다. 너는 사는 것에 욕심이 많은 녀석이니까.”

 

그래서 제가 결국은 정회장님이랑 일을 같이 해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

 

뱅뱅 돌려대니 이 영감탱이 속셈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내가 직접적으로 말하자, 정회장은 더욱 직설적으로 나를 찔렀다.

 

그래서 니 결국 나랑 일 안할 끼가?”

 

정회장의 진득한 목소리에선 비웃음이 확연히 느껴졌다.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빨간 버튼을 꾹 눌렀다.

 

배고프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야겠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먼지에 쌓인 검은 져지를 걸친 채 현관문 밖으로 나왔다. 시간개념은 몽땅 잃었지만 철문 밖으로 보이는 햇살이 아직 하얀 걸 보아서는 시간은 아침에 가까운 것 같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들어 올려 한 걸음 한 걸음 뻗어나갔다. 그리고 굳게 닫힌 철문을 열어 집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맞는 햇살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쪽방 쪽으로 난 채광창으로 쬔 햇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따뜻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앤디처럼 팔을 뻗어 햇살을 맞이했다. 그러자 잠시나마 몸이 더욱 따뜻해진 기분이 들었다.

 

바퀴벌레는 빛에 민감하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난 빛에 민감하지 않다.

 

그렇지만 난 바퀴벌레다.

 

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아마도 난 내일부터 정회장과 일을 다시 시작하겠지. 다시 개미들 등쳐먹는 바퀴벌레로 돌아가는 거다.

 

그렇지만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다면 난 다시 바퀴벌레로 돌아가도 좋다. 그러니까 난 결국 바퀴벌레인 거.

 

에이, 이게 무슨 개소리래.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주머니를 뒤져 보니 배춧잎 한 장이 나왔다. 이걸로 담배 한 갑, 그리고 라면 몇 봉지를 사가면 딱 계산이 맞을 것 같다.

 

나는 편의점이 있는 솟아오른 해를 향해 걸어갔다. 햇살은 포근함을 넘어서 점점 따가워져 갔지만 딱히 크게 짜증이 나진 않았다.

 

오히려 그 감각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그거면 됐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전구처럼 켜졌을 뿐이다.

 

후기 

단편제 엄청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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