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단편제 90회차/1] 목적지
글쓴이: Dukcsoo
작성일: 13-12-28 23:12 조회: 1,503 추천: 0 비추천: 0

 K. 그에 대해 회상해본다. 아마 혈기가 넘쳤을 20대 초반. 나는 그의 밴드에서 색소폰으로 활동했다. 그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작곡 작사까지 전부 그가 했다. 장르는 불규칙했다. 언제는 까칠하게 흘러가는가 하면, 언제는 머리를 마구 흔들며 소리쳤고, 언제는 몸을 들썩이며 리듬에 몸을 맡겼다. 덕분에 내가 참가하지 않는 곡들도 제법 됐다. 그때마다 나는 관람석에 앉아 그들을 구경했다. 난 그런 점들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K는 뭔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우리 밴드는 어느 날 갑자기 해체됐다. K는 그 날 헤비메탈 공연을 했다. 나는 관람석에 앉았다. 그리고 관중들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똑같은 기분으로 그 장면을 봐야 했다. K는 곡이 끝나자마자 뒷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에 날을 겨눴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K가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고 나서야 비명이 터졌다.

 결국 K는 죽지 않았다. 허벅지를 한 번 찌르고 나서 쓰러졌을 뿐, 목을 긋지는 못했다. 곧바로 누군가 신고를 했고, K는 실려 갔다. 몇 시간 후, 문자로 해체 통보가 왔다. 나는 그 날 이후로 K를 만날 수 없었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라졌다.

 그가 평소에도 뒷주머니에 나이프를 지니고 다녔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날이 자살을 하기에 적합한 날이었던 걸까. 왜 하필 무대에서 죽으려고 한 걸까.

 옆을 돌아본다. K가 앉아 있다. 색소폰이 목에 걸려 있다. 밴드를 하던 시절, 그가 관악기를 만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그가 지금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관악 오케스트라의 용병 색소폰으로 앉아 있다. 질투하게 된다. 나는 그때부터 계속 색소폰만 불어왔다. 그에 비해 그는 도대체 몇 개의 악기를, 얼마나 잘 다룰 수 있는 것일까.

 그와 재회한 지 불과 삼 일 지났다. 그는 어제 저녁, 내가 이곳에 왔을 때 당연하다는 듯이 앉아서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나는 들어오던 발걸음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제법 나이 들어 보이긴 했지만, 그건 분명 내 기억 속의 K였다. 작사 작곡을 하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던 그가, 자살기도 소동으로 우리 밴드를 공중분해 시켰던 그가, 그 자리에 앉아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자리는 내 바로 옆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는 그제야 옆을 돌아봤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간단하게 안녕.” 하고 인사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얼이 빠져 버린 것 같았다. 안녕? 심지어 오랜만도 아니고 안녕’?

 적응하는 건 의외로 쉬웠다. 그는 옛날에도 괴짜였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괴짜다. 나는 그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그는 묵묵히 연습만 했다. 나는 종종 연습을 멈추고 그가 부르는 걸 가만히 들어봤다. 나보다 잘하면 잘했지, 못하는 건 없는 듯했다. 과연 공연 일주일 전에 갑자기 용병으로 들어와도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다.

 K가 들어오고 바로 다음 날, 우리는 회식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K는 거절했다. 그가 단장한테 한 말이라곤 난 이미 저녁을 먹었습니다.”라는 것뿐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K니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밴드 시절에도 늘 겉돌곤 했다. 함께 밥 한 끼 먹은 일이 없었다.

 딱딱. 지휘봉이 보면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휘자가 단상 위에 올라가 있다. 나는 그와 그의 지휘봉에 집중한다. 악기를 든다. 천천히 호흡한다. 지휘봉은 높이 치솟는다. 나의 시선은 따라간다. 지휘봉이 내려온다. 그리고 따라간다. 숨을 뿜는다. 관악기들이 일제히 소리를 낸다. 연습실이 울린다. 연주는 순조롭다. 공연까지는 앞으로 3일 남았다. 이 정도라면 충분하다.

 흐름에 변화가 생긴다. 나의 신경이 두 눈에서 오른쪽 귀로 집중된다. 지휘자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것 같다. 음악은 불안정해진다. 지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결국 지휘자가 연주를 중지시킨다.

 “뭡니까, 거기.”

 지휘자는 제법 화가 난 눈치다. 그럴 만도 하다. K는 자신의 파트를 완전히 바꿨다. 마치 모두의 코러스를 받는 독주 같았다. 마이크를 댄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돌출되는 연주였다. 지휘자가 화내는 이유는, 아마 그 연주가 실수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K의 연주가 튀기는 했지만 그 음악에 아주 잘 어울렸다. 당장 그의 색소폰 앞에 마이크를 대 줘도 괜찮을 듯했다. 하지만 이런 오케스트라가 그런 식으로 돌아갈 수 있을 리 없다.

 K는 지휘자의 말을 무시하는 것 같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딴청을 피운다. 지휘자는 또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할 거면 나가!”

 의자가 덜컥인다. K가 일어선다. 지휘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 연습실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말려야 되는 것 같다. K는 괴짜고, 음악에 미쳐 있고, 아마도 지금 굉장히 화가 난 상태다. 과거 그의 난폭한 행동공연 후 자살기도 같을 것을 보면 지금은 제법 위험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K가 고개를 까딱 숙인다. 의자에 도로 앉는다.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지휘자는 멍청히 서 있다. 몇 초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다. 그가 헛기침을 한다. 연습은 다시 시작된다.

 오늘도 오케스트라 사람들은 회식을 하러 갔다. 나는 볼 일이 있다며 슬쩍 빠져나왔다. 대신 혼자 편의점에 들어가는 K를 따라 들어갔다. K는 혼자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와 제법 오랜 시간 알고 지냈지만 여전히 친하지는 않다. 내가 맞은편에 앉으면 K는 컵라면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게 아닐까.

 그래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K는 음악적으로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남자다. 나는 늘 그를 질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관심을 가졌다. 그는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어떤 삶을 살아가는 걸까.

 “오늘 연주 멋지던데.”

 맞은편에 앉으며 다짜고짜 그런 소리를 했다. K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피식 웃었다.

 “비꼬는 거야?”

 “아니, 진심이야. 멋졌어. 만약 오케스트라가 아니었다면, 오케스트라라고 해도 지휘자가 좀 더 현명했다면 네 연주를 오히려 칭찬했을 거야.”

 “비행기 태우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웃음을 거두지 않는다. 그에게 다가가려는 내 시도는 그리 나쁜 결과가 아닌 거 같다.

 “어쩌다가 색소폰을 불게 된 거야? 얼마나 불었어?”

 내 질문에, 그는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냥. 얼마 전부터. 좀 하다 보니까 되더라.”

 “, 그래.”

 아니꼽다. K와 대화를 하려고 든 건 괜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K는 라면을 먹으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그의 감정 표현은 노골적이어서 그런 것들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도 건성으로 하고 있다거나, 장난으로 하고 있다는 건 아니야. 난 진지해. 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음악에 영혼을 담지 않아본 적이 없어.”

 난 대답하는 대신 살짝 웃어 보였다. 그러자 K도 마찬가지로 웃어 보였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도 K가 언제나 진심이라는 것쯤은, 그가 음악에 모든 걸 맡겼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난 너무나도 쉽게 전력을 다할 수 있는 그가 부러웠을 뿐이다.

 “이 일, 계속할 수 있겠어?”

 내가 물었다. K는 말없이 젓가락질만 했다. 나도 대답에 연연하지 않고 햄버거를 먹었다. 대답은 돌아왔다.

 “해야지. 이번엔 이런 음악을 하기로 했으니까.”

 “하긴. 계속 할 게 아니었으면 좀 전에 참지 않았겠지.”

 “의자 들고 한 대 후렸을걸.”

 “색소폰이 아니라?”

 “악기는 상하면 안 되지.”

 편의점에서 나온다. K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K도 손을 한 번 들어 보인다. 내가 어디 살고 있고, K가 어디 살고 있는지는 관계가 없다. 우리는 반대로 향한다. 길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다. 그저 밥을 같이 먹을 수 있고, 밥 먹는 동안 흥미가 동하는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다. 나는 그것에 만족한다.

 

 

 오늘도 K는 악보대로 부르지 않는다. 어제처럼 톡톡 튀지는 않지만 미묘한 흔들림이 있다. 지휘자는 몇 번 눈치를 줬지만 K는 본채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좋지 않지만 연주는 계속 이어진다. 결국 그들은 암묵적인 합의를 한 것 같다.

 연주에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다. 계속 K의 소리를 듣게 된다. 하지만 틀리는 일은 없다. 나는 그만큼 이 곡을 많이 연습했다. 그리고 K를 신경 쓰며 연주하는 건 그 옛날, 나의 습관이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확실히 K의 연주는 대단했다. 그가 써준 같은 곡을 연주하고 있음에도 그는 뭔가 달랐다. 직선으로 내달리는 느낌이었다. 망설임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그가 음에 비브라토를 넣어 떨고 있을 때도, 느리고 슬픈 발라드를 부를 때도 지체되는 느낌이 없었다. 그의 소리는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음악이 끝난다. 악보를 넘긴다. 다시 준비한다. 지휘봉만을 바라본다. 이미 다 외운 곡이다. 모든 게 물 흐르듯 연주된다. 생각을 멈춘다. 그저 멜로디와 리듬에 모든 걸 맡긴 채 표류한다.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지휘자가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자각했다. 악보가 아닌 K를 따라가고 있었다. 지휘자는 나를 지적하지 않았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휘자와 K, 그리고 몇몇 사람들 외에는 알아차린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한 음 한 음 내는 게 고통스럽다. 곡이 끝난다. 화장실에 가겠다며 자리를 빠져나온다.

 K는 의외로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같이 밥을 먹는 게 오늘에야 두 번째인데, 훨씬 가까워진 기분이다. 음악에 관해서 뭔가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제법 신나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그의 말에 딱히 토를 달지 않는다. 그의 신뢰를 얻는 건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나저나 너는 이 일 언제까지 할 거야?”

 K가 물었다. 나는 당황했다. 좀처럼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글쎄.”

 “관악 오케스트라는 좋아. 난 이게 되게 마음에 들어. 관악기의 느낌 말이야. 현악기가 뭉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야. 웅장하게 울리는 느낌. 가득 메우는 느낌. 감싸는 느낌. , 넌 관악의 어떤 점에 매료된 거야? 옛날부터 색소폰 일편단심이잖아.”

 “…….”

 또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음악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관악도 좋아한다. 색소폰도 좋아한다. 하지만 저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음악을 먹고 음악을 싸면서 산 건 아니잖아.”

 말을 돌려본다. 내가 곤란해 하고 있다는 걸, K도 분명 알아줄 것이다.

 “, 말할 것도 없어. 나를 제법 오래 봐왔잖아. 난 비뚤어진 놈이야. 음악 말고 할 게 뭐가 있었겠어?”

 K는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나는 내가 이야기를 회피했듯이 K에게도 회피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집을 향해 걷는다. K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스스로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는 과격한 인간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몇 가지 짐작은 가능하다. 그의 턱 아래에는 흉터가 있다. 잘 안 보이는 곳이라 웬만해선 모르는 사실이었다. 누구도 그 흉터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K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게 길게 찢어진 상처였음은 알 수 있었다. , 그는 기념일이나 명절에도 연습을 했다. 어딘가에 가는 일은 없었다. 역시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질문하지 못했다.

 목이 서늘하다. 손으로 매만져본다. 차갑다. 조금 문지르자 열이 올라온다. 손을 뗄 수가 없다. 나는 결국 목을 잡은 채 걷는다.

 

 

 바로 내일이 공연이다. 연습실의 열기가 상당하다. 방심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악기와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나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이런 종류의 긴장감은 늘 느낀다. 옆을 돌아본다. K는 여전히 연습에 몰두해 있다. 그도 이런 긴장감을 느끼기는 할까.

 지휘에 맞춰 합주를 한다. 평소와 다를 게 없다. 나는 K가 아닌 악보를 따라간다. K가 나를 힐끗 보긴 했으나 별 불만은 없어 보였다. 연주가 끝나고, 다시 시작되고, 또 몇 곡이 이어서 흐른다. 지휘자는 음악이 끝날 때마다 몇 가지 지적하곤 하지만, 그다지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순조롭다.

 휴식 시간, 나는 K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역시 어제는 대화가 영 어색하게 끝나 버렸다. 뭐라고 말을 시작하면 좋을까. 어차피 또 음악 얘기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참에 K의 뛰어난 기술을 전수받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K.”

 그는 입에 색소폰을 문 채 눈동자만 움직였다.

 “혹시 연주에 관해서 비결 같은 거 있어?”

 그제야 색소폰을 내려놓고 나를 본다. 역시 음악에 대한 이야기라면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다. 그는 입맛을 몇 번 다시고 말했다.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어. 이런 걸 비결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손가락을 화려하게 놀려 멋진 기교를 부리는 법? 아니면 영혼을 담은 음악을 하는 법?”

 “후자일 것 같네. 색소폰 기교라면 아직 너한테 밀리지 않아.”

 “하하. 그럴 거 같아. 난 아직 색소폰을 놀랄 만큼 잘 부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난 내 실력에 만족해.”

 그는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신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난 영혼을 담은 음악을 할 줄 알거든.”

 “대체 그 영혼을 어떻게 담는데?”

 “내 모든 걸 음악에 거는 거야.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해.”

 “모든 걸? 나도 지금까지 음악만 해온 사람이야. 더 이상 뭘 걸어야 해?”

 “아니야. 내가 보기에 넌 언제나 한두 발짝 물러서 있어. 위급할 때 후퇴할 수 있도록.”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해 봤다. K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모든 걸 던지고 음악에 뛰어들었다면, 지금까지 여기서 용병 색소폰이나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K는 계속 말했다.

 “내 생각에, 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물러서 있는 거 같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고?”

 “목적지가 없는 거지.”

 “넌 있어?”

 K는 검지로 자신의 허벅지를 톡톡 두드렸다. 그 손을 턱으로 옮겨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모양새도 취해 보였다.

 “있어.”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있잖아, 내가 무대에서 칼을 들었던 일. 난 그때 그곳이 내 목적지라고 생각해서 죽으려고 했어. 그 연주를 통해서 난 최후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던 거야. 그런데 목에 칼을 들이대고 나니까 이상하더라고. 주위를 둘러보니까, 여기서 끝내는 건 영 아니다 싶었어. 그래서 밴드를 해체시킨 후에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어. 음악 학원 강사도 해보고, 피아노도 쳐보고, 합창도 해보고, 바이올린을 배워서 현악 오케스트라 용병도 뛰어봤어.

 마치 자랑 같은 이야기다. 우리는 이제야 30대 초반이다. 그런데 그는 몇 년의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이미 너무나도 잘하는 것들을 버리고 또 다른 것들을 손에 잡을 수 있었다. 그 재능과 용기에, 나는 질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 관악기에 도전한 거야. 완전한 오케스트라는 안 해봤지만, 그다지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은 이걸로 끝이야. 여기가 내 목적지야. 난 여기로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물러선 적이 없어.”

 K는 나에게 넌 어디로 가고 싶은 건데?”라고 질문했다. 나는 고민하는 척했다. 하지만 고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더 생각해 볼게.”라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저녁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K에게 인사를 했다. 집을 향해 걷는 동안 계속 생각하게 됐다. 나는 대체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이대로 용병 일을 계속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자면, 내 목적지는 이곳이 된다. 하지만 그건 싫다. 나는 내가 용병보다 좀 더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모두가 검은 양복을 빼입고 자리에 앉아 있다. 관중석은 아직 비어 있다. 홀은 넓다. 앞으로 한 시간 후면 빈 좌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연주를 할 것이고, 그 소리는 이 안에 맴돌며 울릴 것이다.

 지휘자가 단상에 올라간다. 지휘봉을 든다. 말은 필요 없다. 음악은 시작된다. 지휘에 집중하면서도 악보를 힐끗 본다. 내가 K에 말려들지 않도록 경계하고 싶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더 확신했다. 나와 K는 다르다. 어설프게 그를 흉내 내다가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걸 깨달아 버릴 것이다. 그의 말대로, 난 목적지도 가지지 못한 채 언제나 물러서 있는 사람이다. 전력으로 달리는 남자를 쫓아갈 수는 없다.

 마지막 곡이 클라이맥스에 달한다. 온몸이 찌릿찌릿하다. 나는 이 감각이 싫지 않다. 어쩌면 나는 이것에 빠져 계속 색소폰을 불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나는 목적지를 정할 수 있을까. 거대한 꿈을 가진 소년처럼 외국으로 나가겠다고 소리칠 수 있을까. 나는 K에게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휘가 격렬하다. 음악은 마지막 매듭을 맺는다. 적어도 내가 듣기에는 흠이 없는 연주다. 만족스럽다. 음의 잔상이 작게 메아리친다. 의자가 덜컥거리는 소리를 낸다. 옆을 보니 K가 벌떡 일어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대기실에서 나는 예정대로 K에게 말을 걸었다.

 “나름의 목적지를 정할 수 있을 것도 같아. 하지만 허무맹랑한 꿈 같기도 한데. 넌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내 한계가 어디까지일 거 같아?”

 K는 나를 힐끗 보더니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난 널 다 아는 게 아니야. 어떻게 가늠하겠어? 네가 어디까지 빠져들 수 있고, 어디까지 전력일 수 있을지.”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냥 해보는 수밖에 없겠지.”

 “그 말대로야.”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K는 그 동안 계속 뭔가 생각하고 있었는지, 흥미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왕궁 같지 않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K는 내 표정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무대 말이야. 관악기가 가득한 무대. 이 홀. 금빛과 은빛이 반짝이고, 넓은 공간을 웅장함이 메우고……. 결국 나는 수많은 여행을 하고 왕궁에 도착한 거야. 굉장히 기분 좋아.”

 “대충 알 거 같아.”

 지휘자가 단원들을 부른다. 우리의 차례가 오고 있다. 악기를 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모두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문득, K에게 질문할 거리가 떠오른다.

 “이번 일 끝나면 어디로 갈 거야? 계속 색소폰 불 거야?”

 그라면 좀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왕궁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 왕궁의 모든 악기를 다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휘를 해도 어울릴 것 같다. K가 지휘하는 악단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 K가 가는 길을 함께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분명 힘에 부치긴 하겠지만, 나 역시 전력으로 뛰어들면, 색소폰에 모든 걸 바치면 그를 따라가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더 이상의 목적지는 없어.

 그 말은 용병 일을 계속 한다는 걸까. 나는 좀 더 대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무대로 나가야 했다. 자리에 앉아서 잡담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괜찮다. 이 연주에서 최선을 다한 후 K와 얘기해도 늦지 않다. 그는 나에게 제법 친근하게 굴어줬다. 내가 따라간다고 해도 거절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만약 그가 계속 용병 일을 한다면 나 역시 그를 따라 용병 일을 하면 된다. 어떻게 되든 그의 곁에 있으면 목적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주가 시작된다. 시선은 지휘봉을 따라간다. 그러던 중, 그 너머가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커다란 홀, 관객, 웅장한 소리, 우리를 감싸는 울렁임, 빛나는 악기들……. K의 말이 맞다. 이곳은 왕궁이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지금까지 수십 번은 더 겪어온 무대인데 어째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K는 그렇게까지 나를 흔들어 놓았던가.

 얽매이지 않는다. 악보를 따라가든, K를 따라가든 그것은 내 자유다. 어떻게 연주해도 난 어긋나지 않는다.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마다 K는 나에게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나도 같이 웃어 보인다. 지휘자도 딱히 불만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또 우레 같은 박수가 들려온다. 나는 지금까지 이 기분을 별로 만끽하지 못했던 것 같다. 눈을 살며시 감는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다음 곡이 시작된다. 피스를 문다. 나는 또 다시 음악에 감싸지고, 음악에 녹아든다.

 마지막 곡이 끝난다. 숨이 가쁘다.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지휘봉이 나의 과거를 내리치는 단두대가 된다. 악기를 내려놓는다. 정적이 찾아온다. 관람석과 무대는 분리된다. 박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된다. 이곳에는 나를 흔들어준 친구가 있다. 옆을 돌아본다.

 K는 일어서 있었다. 나는 리허설 때 그의 행동을 떠올렸다. 왜 그는 일어선 걸까. 시선이 그의 몸을 따라 올라간다. 그의 팔을 들어 올려져 있다. 손에는 검은 무언가가 들려 있다. 관악기금빛이나 은빛이 아닌, 검은 관악기다. 그의 손가락은 색소폰이 아닌 방아쇠에 걸려 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봤다. 몇 년 전,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던 때와는 달랐다. 그는 침착했으며, 무표정이었고, 그저 정면을 응시했다. 나는 그가 방아쇠를 당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인지, 지휘자도, 다른 연주자도, 관람객도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그저 자리에 앉은 채,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방아쇠가 당겨진다. 총성이 울린다. 여러 비명이 홀을 메운다. 그는 결국 관악으로 마지막을 맺었다. 이곳은 그의 왕궁이었고, 금빛과 은빛이 반짝였고, 웅장한 음악이 모두를 감쌌으며, 마지막에는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올랐다.

 

 

 색소폰을 분다. 너무나도 익숙하다. 무슨 곡을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서 떠도는 멜로디를 내뱉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K. 내 평탄하고 아무 일도 없는 인생에 번개처럼 끼어든 사람. 그는 나에게 목적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너무 급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야 30대에 돌입했을 뿐이다.

 K가 어떻게 총을 구해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오지 않았다. 무연고 장례식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은 봉사대라고 적힌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그와 제일 가까운 건 나였다.

 나는 색소폰을 계속 불기로 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나는 K와 같아질 수 없다. 그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않고, 이해받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길만 내달리다가 사라졌다.

 나에게는 흔적을 남겼다. 그가 어째서 나 같은 걸 상대해줬는지 모르겠다. 그저 변덕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친해졌다고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확실한 건, 난 지금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답은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일단 내 앞가림이 가장 급할 것이다.

 색소폰을 내려놓는다. 눈을 감아본다. 색소폰에 댄 손가락들을 까딱여본다. K가 마음대로 바꿔버린 멜로디가 귓가에 들려온다.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