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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89회차/1] 장례식이 없는 세계
글쓴이: Dukcsoo
작성일: 13-12-21 23:57 조회: 1,685 추천: 0 비추천: 0

 주위가 고요하다. 오직 마찰음만이 아침의 알람처럼 시끄럽게 울린다. 잠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마찰음이 울린다. 또 멈춘다. 걷는다. 시끄럽다. 뒤를 슬쩍 돌아본다. 그는 누워있다. 스스로 걸을 줄 모르는 존재다. 나는 그에게 사슬을 칭칭 감아 끌고 다닌다. 다시 앞을 본다. 길을 너무 길게 이어져 있다. 하늘은 너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오직 나와 그만이 작은 먼지처럼 굴러다닌다.

 아스팔트 도로. 블록으로 만든 인도. 콘크리트 건물. . 내가 그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부분은 오직 비어있지 않다는 것뿐이다. 내 몸은 빨갛고 끈적끈적한 느낌의 어떤 것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직접 몸을 열어서 본 적은 없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자판기 앞에 설 때마다 고민하게 된다. 이 녀석과 나의 차이점은 뭔가.

 “난 햄버거.”

 관이 말했다. 난 깨달았다. 자판기는 말을 하지 못한다. 나는 말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차이점이다.

 “식상한 농담이야.”

 내가 말했다. 관은 피식 웃었다.

 “상식적으로, 넌 먹을 거면서 난 먹지 못하게 한다는 게 말이 돼?”

 “너랑 나랑 같지 않으니까, 말이 되지.”

 “뭐가 달라. 이렇게 대화하고 있는데.”

 “넌 비어있고, 난 꽉 차 있어.”

 “비어있으니까 채워줘야지.”

 “채우면 안 되잖아. 내가 들어가야 할 곳인데.”

 관은 또 피식 웃었다. 나는 그가 입도 없는 주제에 말할 수 있고 비웃을 수 있다는 게 짜증났다. 관을 발로 툭 찼다. 하지만 세게 찰 수는 없었다. 잘못해서 부서지기라도 하면 곤란해진다.

 “들어올 일 없어.”

 나는 햄버거 버튼을 눌렀다. 햄버거가 툭 떨어진다. 덮개를 열고, 손을 쑥 집어넣어 햄버거를 꺼낸다. 포장지를 벗긴다. 관을 마주보며 앉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화풀이다. 그의 말은 너무 옳았고,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충 불러야 할 거 같은데.”

 그가 말했다. 나는 앉은 채로 고개를 슬쩍 들어 자판기의 미터기를 봤다. 그 말대로 미터기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나는 남은 햄버거를 입 안에 우겨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죽 장갑을 고쳐 끼고 다시 사슬을 잡았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거슬린다. 나는 언제나 이런 소음들에 짜증을 낸다. 사슬은 말조차 할 줄 모른다. 만약 아주 작은 목소리로라도 말할 수 있었다면 난 관 대신 사슬과 대화했을 것이다. 관은 너무 건방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목소리가 큰 관하고 대화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지나칠 만큼 비어있다.

 다시 관을 끌며 걷는다. 중간 중간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흘낏거린다. 도움되지 않는 습관이라고 생각하지만 고칠 수가 없다. 고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관이 잘못한 건 그다지 없는 것 같지만, 이 정도 눈총쯤은 그도 기꺼이 받아줄 수 있을 것이다.

 건물은 많지만 전부 비어있다. 골동품 같은 것들이 쌓여 있긴 하지만 그것들 중 나에게 의미 있는 물건은 거의 없다. 그들은 비어있을뿐더러 말조차 하지 못한다. 나는 어느 정도 철이 든 이후로 건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자판기는 건물 밖에 있다. 건물에 들어가는 건 그저 탐험에 지나지 않는다. 난 깨달았을 뿐이다. 그 탐험은 전부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곳에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하지만 의미 있는 건물이 있다. 내 집이다. 누군가 정해준 건 아니다. 그냥 내가 집으로 정해서 내 집이다. 나는 마침내 집에 도착한다. 다른 것들과 다름없는 사각기둥이다. 그리고 회색 콘크리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색을 칠했던 흔적이 있다. 관을 끌고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사슬을 내동댕이친다. 어깨의 견장을 풀고 장갑을 벗는다. 그것들도 아무렇게나 휙 던져 버린다. 모두 바닥에 떨어진다. 중간에 부딪힐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나는 보충이 싫다. 반드시 집 안에 고정돼 있어야 한다는 게 싫다. 하지만 이건 법이다. 어길 수 없다. 이유도 타당하다. 보충은 사람이 직접 하러 오는 것이기 때문에 마주쳐서는 안 된다. 접촉의 여지를 만들어서도 안 된다. 이것은 모두의 안전을 위한 일이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을 때면 계속 의문이 든다. 내가 살아있는 게 맞는 걸까. 아니, 이런 의문은 유쾌하지 않다. 다른 생각을 해볼까. 그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배웠던 걸 다시 떠올려보자.

 우리가 더 이상 우리가 아니게 되고, 무리가 될 수 없게 된 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고 한다. 고작 50. 과거로 치면 한 사람의 수명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인류는 분해됐다. 원인은 인간의 분해다. 최초의 사건은 서기 2017년에 일어났다. 당시의 수도였던 서울, 그곳의 어느 고등학교. 학생은 선생에게 대들었고, 선생은 화가 나서 학생을 때렸다. 그러자 학생의 엉덩이가 전자레인지에 넣은 토마토라도 되는 듯 펑 터졌다.

 헛웃음이 나온다. 관이 나를 슬쩍 보더니 자기도 씩 웃어 보인다. 말을 걸 속셈이다.

 “뭐 재밌는 거라도 있어? 역시 보충은 재미없는데 이야기라도 해봐. 네가 하나 이야기해주면 나도 하나 이야기해 줄게.”

 괜찮은 거래다. 나는 입 안에서 혀를 두어 번 굴렸다.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살 수 있었던 걸까. 사람들끼리 뭉쳐서, 무리를 이루고. 상상도 안 돼. 그렇게 사는 삶이 가능한가? 하루하루 인구가 반절로 감소할 텐데.”

 관은 제법 실망한 눈치다. 혀를 차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또 그 이야기야? 제대로 된 거래를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야. 너도 이야기 해줘야 해.”

 “그럼 나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네 이야기에 대한 답을 해줄게.”

 몇 번째 듣는 걸까, 관의 그 이야기는. 듣는 동시에 머릿속에서도 음성이 재생된다. 관은 분명 이렇게 운을 뗄 것이다. 잘 들어봐, 바보야. 그리고 헛기침을 딱 두 번 한 후에 2초쯤 뜸 들일 것이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류가 이렇게 흩어져서 살게 된 건 2030년대쯤의 일이야. 2017, 전 세계에서 적사병(赤死病)이 발생했잖아. 대충 1020년쯤 되는 세월동안 인구가 100분의 1까지 줄어들었다고.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고양이처럼 서로를 툭툭 치면서 전쟁을 했어. 폭탄은 쓸 필요가 없었지. 야구공만 맞아도 머리가 펑 터지니까. , 폭탄을 만들 사람이 더 이상 남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말이야. 어쨌든, 적사병이 있기 전에는 모두 그렇게 무리를 지어 부대껴 살았다고. 인구는 70억이 넘었고, 땅덩어리는 좁았고, 부대껴 살 수밖에 없는데다가 부대껴 사는 게 원래 자연스러운 거니까.

 내 머릿속의 음성이 끝남과 동시에 관의 말도 끝났다. 적사병. 빨갛게 죽는 병. 펑 터진다. 인간은 적사병 이전에도 큰 충격을 받으면 죽었다고 한다. 적사병은 그저 인간이 허용할 수 있는 강도를 급격히 낮췄을 뿐이다. 그래서 적사병 환자의 딸이자, 적사병 환자인 나는 그때의 사람들처럼 무리를 지어 살 수 없다. 누군가를, 심지어 보충을 위해 방문한 공무원을 만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대화할 상대는 관밖에 없다.

 나는 침묵했다. 집은 또 텅 비고 말았다. 아니다. 내가 여기에 있으니까 빈 게 아니다. 하지만 적막이 공허로 다가오는 것은 어떻게 해도 부정할 수가 없다. 결국 관도 같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그는 이럴 때마다 먼저 말을 꺼낸다. 그래봤자 하던 이야기의 연장일 뿐이고, 수십, 수백 번 반복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아무튼 사람이란 게 살려고 하는 본능이 대단해. 적사병에 걸린 순간부터 지금까지 존재해온 방식이 부정당해버렸는데 말이야. 지성적인 동물이고 뭐고 툭 쳐서 펑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그래도 인류는 바보짓 끝에 방법을 얻었다고. 사실 그 바보짓도 계획 중 하나였는지도 몰라. 인구가 엄청나게 감소하니까 땅이 남고, 땅이 남으니까 흩어져 살 수 있지. 흩어져 살면 사고가 날 일도 적어지고, 자연스레 생존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지금의 너도 그 피와 내장의 흔적을 딛고 선 수혜자라고.”

 “그래서, 고맙게 여겨야 하나?”

 “그건 아니지.”

 나는 또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사람들은 관도 안 끌고 다녔다는 게 생각났다. 역시 이런 건 떠올릴 때마다 헛웃음이 나온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때로는 관과 기록, 교육들이 나에게 거짓말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게, 관이 없으면 갑작스레 죽었을 때 담을 주머니가 없다는 소리 아닌가. 그럼 그 시뻘건 덩어리들을 다 어디에 담아야 하나. 게다가 도대체 음성언어는 어디에 써 먹으며, 대화라는 것의 존재는 어떻게 유지하나.

 하늘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보충이 온 것이다. 헬기의 소리는 더욱 커지다가 마침내 수그러든다. 가만히 누워 하품이나 해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시계를 지급받긴 했지만 영 쓸데가 없다. 시간은 하루라는 것을 여러 조각으로 쪼개서 수치화한 것이 시간이다. 그건 이해했다. 하지만 어디다 써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찾아서 읽었던 기록과 책들에도 시간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는 없었다.

 다시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보충이 떠난다. 나는 일단 기뻐해야겠으나, 뭘 기뻐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밖에 나갈 수 있게 됐지만 나가봤자 할 게 없다. 난 또 이 무거운 관을 질질 끌며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아니, 그 전에 나는 오늘 뭘 위해 나갔던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휴대폰이 진동한다. 그다지 꺼내보고 싶지가 않다. 어차피 보충 담당의 메시지다. 그래봤자 매번 같은 말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할 뿐이다. 그래도 나는 휴대폰을 꺼낸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을 죽일 방법이 없다. 손가락으로 휴대폰의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슥 밀어 잠금을 푼다. 역시 메시지 하나가 와 있다.

 “어라.”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메시지는 분명 보충 담당이라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 맞다. 하지만 내용이 다르다. 글을 읽기도 전에 숨이 멎는 기분이 든다. 몇 줄 늘어나 있는 검은 글자는 나에게 하나의 세계로 다가온다. 숨을 가다듬고, 눈을 부릅뜬 채, 조심조심 문자를 읽어 내린다.

 “귀하는 올 해 만 16세가 되어……, 세계인류생존법안에 따른 난자 제공의 의무를……. 뭐야 이게.”

 옆에 누워있던 관이 킥킥 웃는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놀라서 문자를 읽는 걸 다 본 모양이다. 기분이 나빠진다. 이건 보충 담당이 어떤 변화에 의해 나에게 메시지를 남긴 게 아니다. 그저 시스템에 따라, 자신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바보야. 보충 담당이 뭐가 아쉬워서 너한테 따로 메시지를 남기겠어. 그냥 할 일만 하는 거지.”

 “. 다물어. 지금 기분 나빠.” 

 휴대폰을 휙 던져버린다. 어쩌면 액정이 부서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저 보충 때에 맞춰 자판기에 종이 하나를 붙여놓으면 된다. 추가 신청서. 휴대폰에 체크만 해두면 보충이 그 자판기 옆에 휴대폰도 두고 갈 것이다.

 “있잖아, 보충 담당은 왜 그렇게 몸을 사리는 거지?”

 내가 물었다. 관은 당연한 질문을 하냐며 핀잔을 줬다. 그래도 그나마 참신한 질문이었는지 제법 들뜬 목소리였다.

 “정부에서 시키니까 그렇지. 걔넨 공무원이잖아.”

 “왜 정부는 그런 걸 시키는데?”

 “또 당연한 질문이야. 잘 생각해 봐. 사람은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거 배웠지? , 세상에는 특이한 사람도 많다는 것도 배웠을 거야. 맞지?”

 “당연하지.”

 “그럼 보충 담당이 올 때 보충 담당을 때리려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

 “왜 그런 짓을 해?”

 “나도 모르지.”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납득하지 못했다. 관의 말은 터무니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보충 담당을 때릴 이유는 없다. 그러면 펑 터지는데, 그걸 누가 치우란 말인가. 게다가 보충 담당은 관도 헬리콥터에 두고 내릴 게 뻔한데. 난 그럼 헬리콥터를 찾아 모험을 떠나야 하는 건가. 아니, 그 전에 내가 보충 담당을 어떻게 때리지? 그냥 어린애인데.

 “잠깐. 내가 16살이라고?”

 “웬 뒷북이야.”

 “내가 언제 16살이나 됐지? 생각해 보니까 네 말이 맞아. 내가 어떤 이유에서 나쁜 마음을 먹으면 보충 담당을 때릴지도 몰라.”

 “오호. 어떤 나쁜 마음?”

 “그 동안 나와 한 마디도 대화해 주지 않았잖아. 그래서 미워질 수도 있어.”

 “그래, 대충 그런 식이겠다.”

 16. 관이 예전에 말해준 적 있다. 16세가 되면 성인이 된다고. 그때가 되면 새 생명이 태어나는 데 협조해야만 한다고. 받았으니까 줘야 한다고.

 그때 받은 교육의 내용은 이랬다. 원래 인간은, 대부분의 포유류는 성행위를 통해 번식한다. 하지만 적사병은 인간에게서 성행위도 앗아갔다. 남녀 불문하고 성행위는 하체를 상실하는 행위가 돼 버렸다. 인간은 포유류의 번식을 포기해야 했다. 몸에 부담을 거의 주지 않는 세밀한 채집기를 만들어 정자를 채집하고, 난자를 채집해, 그것을 합성해 아기를 만드는 게 유일한 방법이 됐다. 만들어진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자란다. 10세가 되면 인큐베이터에서 나와 독립한다.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동안 필수적인 지식은 배우기 때문에 혼자 생존할 수 있다.

 나는 집을 돌아다녔다. 얼마 안 가 인큐베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 난자 채집기는 그 안에 들어있었다. 종이상자를 꺼내 열어본다. 설명서가 함께 들어있다. 난자 채집기는 안이 비어있는 원통 모양의 플라스틱이다. 설명서를 펼쳐 읽어본다. 중간쯤을 읽고 있을 때 갑자기 뭔가 떠오른다.

 “있잖아.”

 “.”

 “이거 하면 내 아기가 생기는 거지?”

 “굳이 말하자면 네 아기가 생기는 게 맞지만, 그다지 감흥은 없을걸. 어차피 넌 난자를 보내는 것뿐이고, 아기는 거기서 만든 후에 너와 관계없는 지역에서 자라게 될 거니까.”

 “아쉬운데, 그런 건. 내 아기가 생긴다는 건 그런 거잖아? 나와 닮은 애가 10살이 돼서 인큐베이터에서 나오고, 어리둥절하다가 관을 만나고, 끙끙거리면서 관을 끌고 다니고……. 또 언젠가 지금의 나처럼 채집기를 손에 쥘 거 아냐.”

 “그건 그런데.”

 “뭔가 기념……? 축하……? 그런 걸 할 방법이 없으려나.”

 관은 대답이 없다.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 걸까. 나도 고민해본다. 하지만 그런 건 배운 적이 없다. 내가 포기하려 할 때쯤, 관은 말했다.

 “원래 사람이라는 건 그런 걸 좋아해. 하지만 이제는 거의 하지 않네. 혼자서 기념이나 축하를 하는 건 아무래도 우스꽝스럽잖아.”

 “……. 그래도 사람의 생명에 관한 건데. 생명은 소중한 거라고 배웠단 말이야.”

 “. 죽음에 관련한 기념이라면 있어. 기념? 아니야. 의식이지. 하지만 본질적으로 비슷하지 않아?”

 “의식? 뭔데?”

 “장례식.”

 “장례식?”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과 죽음을 기리는 의식이야.”

 한 손에 채집기를 든 체 벽에 기대어 앉아 상상해본다. 장례식. 사람이 죽었을 때 의식을 치러주는 것. 어떤 느낌일까.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슬퍼할까, 기뻐할까. 혹은 공포에 떨까?

 난자 채집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설명서의 마지막에는 난자를 채집한 후 2시간 이내에 보충을 불러 채집기를 건네주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다시 가죽 장갑과 견장을 꼈다. 집을 나와 가장 가까운 자판기를 향해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설명서에는 어떤 방법으로 채집기를 건네줄 것인지 안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모른 척, 보충에게 직접 건네주려고 하면, 한 번쯤은 대화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걸 관에게 말했더니 그는 또 나를 비웃었다.

 “위법이야. 설명서에 안 적혀 있었어도, 보충과 접촉하지 않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그래도 억지로 만나려고 하면……. 너무하잖아. 그래도 난 하나의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거라고. 알고 있어. , 엄마가 되는 거잖아? 근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대화 한 번 할 수 없다니, 말도 안 돼.”

 “억지로 다가가려 했다간 네가 죽을 거야.”

 “죽이려고 하면 싸우면 돼. 벌써 16살이고, 성인이니까.”

 “, 왜 보충들이 헬리콥터 바람에 찢겨 죽지 않는지 알고 있어? 그 사람들은 일단 방탄 옷으로 온몸을 두르고 있어. 그 무게 때문에 항상 온몸이 아프겠지만, 어쨌든 네가 때린다고 죽진 않는단 말이야. 게다가 그 사람들은 총도 가지고 있어. 적사병 이전이라면 살상능력은 없었을 총이지만, 네가 맞으면 바로 터져서 죽어.”

 나는 그 말을 무시했다. 관은 내가 듣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점점 더 조급하게 설명을 늘어놨다. 목소리는 침착해졌다가, 달래듯이 말했다가, 화냈다가, 마지막에는 포기했다.

 “멋대로 해봐.”

 그 이후로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관을 끄는 소리와 사슬의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들린다. 자판기 앞에 도착한다.채집기를 내려두는 대신 옆 건물에 들어가 숨는다. 나는 관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관은 코웃음을 친다. 시끄럽게 굴든 말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2시간 이내. 처음으로 시간을 써먹은 게 아닌가 싶다. 덕분에 처음으로 시계를 차고 밖에 나왔다. 기다리는 내내 시계를 흘끔흘끔 보게 된다. 초침은 빨리 가는 듯하면서도 답답하고, 분침은 움직이지 않는 척 꾸물거리며, 시침은 보는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초침이 몇십 바퀴를 돌고, 분침이 제법 움직이고, 시침이 그 무거운 발걸음을 조금 떼려던 때, 헬기의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러다 터지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보충과 대화하려다 심장이 터져 죽은 사람이라니. 보충도 분명 그 자리에서 웃느라 숨이 넘어가 죽어버릴 것이다. 헬기의 소리가 잦아든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본다. 멀리에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점점 가까워져 온다. 아마 저쪽에서는 나를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조심히 움직여야 한다.

 보충 담당이 자판기 앞에 도착한다. 그는, 또는 그녀는 온몸을 하얀 옷과 헬멧으로 무장하고 있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일단 인간임은 확실하다. 살짝 발을 내딛어 본다. 보충 담당은 자판기 어딘가에 놓여있을 채집기를 찾고 있는 듯하다. 나를 눈치 채지 못한 게 분명하다. 다시 한 발 내딛는다. 목을 몇 번 만져본다. 할 수 있다.

 “……, 저기요.” 

 내 목소리가 허공을 메우는 건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내 목소리가 내 귀를 꿰뚫는 순간, 나는 전율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 말을 걸었다. 대화할 수 있다. 이제 보충 담당이 뭔가 한 마디만 해주면 된다. 이러면 안 된다든가, 어서 들어가라든가, 하다못해 총을 뽑아들고 꼼짝 마!” 하고 위협해주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

 보충 담당은 자판기 옆을 살펴보던 자세로 잠시 굳었다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검은 렌즈에 가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나를 본 것이 틀림없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관하고 대화할 때, 나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지금 저 사람은 어떤 표정으로 날 보고 있을까. 어떤 목소리로, 어떤 말투로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심장이 마구 뛴다. 숨이 가빠져온다. 손목을 들어 시계를 흘끔 본다. 시계는 좀 전과 다를 바 없이 움직인다. 이 기계는 잘못됐다. 시간을 저렇게 조각내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지금 너무나도 긴 시간 동안 온몸이 바짝 굳은 채 얼굴은 타오를 듯이 뜨거운데, 고작 몇 초라니.

 보충 담당이 한 발자국, 나를 향해 내딛는다. 나는 몸을 움찔 떨었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무섭다. 어쩌면 바로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 죽으면, 어쩌면 장례식이란 걸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 사람이 적어도 빨갛게 터져 흩어진 나를 관에 주워 담아주지 않을까. 하얀 장갑에 싸인 손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그리고 내 손에 있던 채집기를 빼간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스르르 무너진다. 보충 담당은 그대로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간다. 어째서인지 눈물이 난다. 시계를 흘끗 본다. 역시 잘못됐다. 잠금을 풀고 아무데나 던져 버린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그리고 다시 눈물을 흘리며 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의 옆에 주저앉아 계속 운다.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두워진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세워놓은 관에 기대 잠들었다 깨어난 상태였다.

 “있잖아.”

 “.”

 관은 평소처럼 대답해줬다. 하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장례식이라는 거, 사라졌지?”

 “. 적사병 이후에. 어떻게 알았어?”

 “장례식이라는 건 누군가 죽었을 때 하는 의식이라며. 그러면 우리는 항상 매 순간이 장례식이어야 할 거야. 하지만 의식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

 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장갑을 고쳐 끼고, 사슬을 메고, 관을 끌며, 집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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