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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제 88회차/1] 김치찌개가 끓어가는 나날
글쓴이: Dukcsoo
작성일: 13-12-14 23:12 조회: 1,591 추천: 0 비추천: 0

 짤랑. 문을 열자 종소리가 나를 반긴다. 편의점의 조명은 언제나 밝고 화사하다. 제법 긴 시간동안 함께 해 온 녀석들이 나를 둘러싼다. 커피, 초콜릿, 과자, 삼각김밥, 라면, 생필품, 새로 들어온 물건들도 많을 텐데 낯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바로 옆에 있는 카운터 쪽에서 들려오는 인사말도, 이젠 너무 익숙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가 아닌 안녕하세요’. Y라는 이름의 그녀와는 편의점의 온갖 것들 속에서 지낸 만큼을 같이 지냈다. 일단은 선후배 관계다. 그래봤자 내가 그녀에게 있어 선배인 부분은 살아온 시간 찔끔과 편의점에서 먼저 일해 봤다는 알량한 자긍심뿐이지만

 “.”

 옆을 돌아보며 간단하게 대답한다. 바로 걸음을 옮긴다. 아까부터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녀석이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심지어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도 살 생각을 못해본 녀석이다.

 내가 카운터에 그 녀석을 내려놓자 후배 Y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 역시 질세라 Y와 눈을 마주친 채 물러서지 않았다. Y는 나와 키 차이도 별로 안 나고 눈매도 제법 매서운 아이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고집을 부릴 때면 언제나 한 발 물러서주곤 했다.

 “선배. 갑자기 뭐예요? 샌드위치랑 김치를 헷갈리신 건 아니죠?”

 편의점 선배도 선배인가라는 당연한 의문을 Y로부터 들어본 적은 없다. 편의점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일했으니 선배라고 불러.’ 하고 장난을 치듯 말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Y는 언제나 날 선배라고 부른다. 실제로 같은 학교에 내가 나이도 많긴 하지만, 군대 때문에 동급생이다. 나는 그 선배라는 호칭이 오직 편의점 선배로만 적용된다는 느낌을 늘 받는다.

 “아냐. 나 진짜 김치 살 거야.”

 “한국인에게 김치가 최고인 건 딱히 부정할 생각이 없지만, 사람은 김치만으로 살아가지 못해요.”

 “그래서 여기 햇반도 있잖아.”

 Y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반응인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편의점을 굉장히 애용하지만, 선택의 폭이 아주 편협한 사람이다. 언제나 김밥, 삼각김밥, 샌드위치, 햄버거 중에 하나를 고르고, 음료수는 행사하는 걸 고른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을 그렇게 먹고, 저녁을 그렇게 먹는다. 배가 별로 안 고플 때는 점심도 거른다. 덕분에 집에 있는 압력밥솥은 골동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가 됐고, 냉장고도 전기세가 아까워서 코드를 뽑아두는 장식품이 됐다. 그런 내가 갑자기 햇반과 편의점 김치를 들고 계산해 달라고 하니, Y로서는 제법 불안한 변화일 수도 있다.

 “무슨 바람이 불었어요?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는다던데.”

 “아주 악담을 해라. ……별 거 아니고, 그냥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진 거뿐이야.”

 “김치찌개요?”

 “. 난 평생 인스턴트만 먹을 줄 알았어?”

 Y는 계속 불안한 눈으로 날 힐끗거리면서, 결국은 그 녀석들을 계산해줬다. 나는 봉투에 햇반 하나와 작은 김치 하나를 담고 편의점을 나왔다. 김치의 양이 좀 적을 것 같지만 상관없다. 작은 냄비에 적은 김치찌개를 하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편의점을 찾았다. Y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카운터에 놓인 김치 하나와 햇반 하나, 그리고 한심한 남자 하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안쓰럽고 바보 같아서 못 봐주겠다는 눈치다.

 “실패했어요?”

 “실패라면 실패고 성공이라면 성공이지. , 발명가들이 꼭 A를 발명하겠다고 해서 발명한 건 아니잖아? 사실 B를 원했는데 어쩌다 보니 A가 대박 터진 경우도 많지.”

 “그래서, 대박이었어요?”

 “아니. 아쉽게도.”

 준비는 완벽했다. 자취를 결정하고 이사 온 뒤로 딱 한 번 켜 본 가스레인지, 선반 안에 있어서 그나마 골동품은 덜 된 냄비, 그래도 많은 활약을 해주고 있는 전자레인지. 하지만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턱 올려놓자 앞길이 막막했다. 도대체 김치찌개는 어떻게 끓이는 건가. 엄마의 김치찌개를 지겹도록 먹었건만 그 레시피는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방 안에서 컴퓨터만 붙들고 있었고, 부엌에 갈 때라곤 간식거리가 부족할 때뿐이었다.

 결국 라면을 끓이듯이 냄비에 물을 담고 봤다. 그러자 머릿속이 한 번 반짝였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오히려 이런 문제는 어깨에 힘을 줬을 때 더 어려워지는 법이다. 아인슈타인은 말하지 않았나. 문제 속에 답이 있다! 그래, 김치찌개라는 그 이름 자체에 답이 있다. 김치찌개니까 물이랑 김치가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김치의 밀봉을 뜯고 냄비를 향해 와락 투하했다. 김칫국물이 옷에 조금 튀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것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까짓 거, 명예로운 상처쯤으로 치지, . 의기양양하게 가스 불을 켜려고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칙칙 소리만 내며 불이 붙을 생각을 않았다. 그제야 나는 가스 벨브가 잠긴 걸 알았다. 벨브를 열고 다시 시도하자 파란 불꽃이 와락 일어났다. 나는 가만히 그 불꽃을 보고 있었다. 가만히 피어오르지만 아주 가끔, 아주 조금 일렁였다. 곧 김치 가득한 물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렇게 나는, 잠시 일렁이고 부글거리는 내 마음을 냄비에게 맡길 수 있었다.

 “그렇게 끓였는데…….”

 “그건 김치찌개가 아니라 김칫국이네요.”

 “정답이야. 제법인데?”

 Y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피식 웃었다. 그녀가 한숨을 습관처럼 내쉬곤 하는 것을 알게 된 건 최근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제법 씩씩하고 당찬 느낌이라 한숨 같은 것과의 연관성은 없어 보였다.

 “자취생이 요리도 할 줄 모르고, 여러 모로 실격이네요.”

 “고정관념을 버려.”

 “아무튼, 김치찌개는 김치를 볶은 다음에 물을 부어야 해요. 두부도 넣는 게 훨씬 좋구요.”

 나는 그렇게 또 봉투를 덜렁덜렁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Y가 요리를 할 줄 안다니, 의외였다. 겉으로만 보면 체육계라 가정적인 면모는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면 딱히 요리를 할 줄 몰라도 김치찌개 정도는 다 할 수 있다는 건가.

 김치를 둘둘 볶고, 물을 붓고, 끓인다. 나는 또 멍하니 서서 파란 불꽃과 시뻘건 물을 지켜봤다. 그러고 있다가 문득 나는 Y보다 잘난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Y와 나는 같은 지방대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격이 다르다. 나는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든 넘기자는 식으로 보냈다. 공부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성적이 오르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미지근한 성적으로, 미지근한 대학에, 맘에도 없는 학과에 지원했다. 반면 Y는 수의학과다. 중학생 때부터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내내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머리가 나빠서 고생했다고,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나라는 자취생은 그 올곧고 빛나는 아이에게 요리로도 이길 수 없었다.

 김치찌개(를 목표로 나아간 빨간 국물)이 부글부글 끓는다. 내가 그릇에 그것을 담고, 햇반의 뚜껑을 쭈욱 잡아당겨 벗겨내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법 기대됐다. 냄새는 그럴듯했다. 집에 3개밖에 없는 숟가락 중 하나로 김치찌개를 한 가득 떠서 입에 넣었다.

 “……맛없어.”

 

 내가 또 김치와 햇반, 두부를 카운터에 내려놓자 Y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또 한숨 한 번이 슥 지나가고, Y가 입을 열었다.

 “실패했어요?”

 “맛없더라.”

 “그래서 이번엔 어쩌려구요?”

 “MSG.”

 “?”

 “집에 다시다 있더라. 그거 넣으면 맛있을 거 같아.”

 Y의 눈빛은 썩 걱정스러워 보였다.

 “왜 그렇게 집착해요? 갑자기 김치찌개라니, 뜬금없어요.”

 “……. 글쎄.”

 나는 고개를 살짝 들고 다른 곳을 봤다. 담배가 보였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저 작은 마약에서 위안을 얻는 걸까. 이번엔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눈시울이 뜨거워서 Y를 마주볼 수가 없었다.

 “그냥이지, 그냥. 갑자기 엄마의 김치찌개가 그리워졌다고나 할까.”

 “그런 이유라면 MSG는 안 되죠. 차라리 인터넷에 레시피 검색해서 따라해 보는 게 어때요? 그 정도면 선배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말대로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Y의 말대로 레시피를 보고 따라하는 것만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요즘 시대에 김치찌개 레시피 정도는 1분 안에 찾을 수 있는 물건이다.

 하지만 나는 그 1분 동안 레시피를 찾을 수 없었다. 컴퓨터를 키자마자 검색어들을 일일이 클릭해 보고, 웹툰을 보고, 게임을 하고, 문득 정신을 차린 게 오후 8시쯤이었다. 이미 해는 떨어진 지 오래고 배는 김치찌개든 뭐든 얼른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레시피에 나온 대로 하는 건 내 맘대로 끓이는 것보다 까다롭다. 덕분에 컴퓨터 앞과 가스레인지 앞을 몇 번이나 왕복해야 했지만, 원룸이라 의외로 고생은 덜했다. 역시 끓기를 기다리는 시간만큼은 제법 한가로웠다. 가만히 파란 불꽃을 본다. 또 상념에 잠긴다.

 엄마. 울 엄마. 우리 집은 잘 사는 편이 아니다. 내 위에 형도 있고, 내 아래에 여동생도 있다. 엄마는 맞벌이 주부로서 식당 일을 하고, 집에서도 부엌과 베란다에서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빈둥거리지 말라고 욕을 할 뿐, 직접적으로 시키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그저 열심히 하라고, 그 말만 늘 반복하셨다.

 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건가. 회의감이 든다. 어릴 적에는, 심지어 고등학생 때까지도 이런 기분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이라곤 억지로 하는 학교 공부와 쌓인 스트레스를 풀 게임뿐이었다. 결국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었다. 상장은 초등학생 이후로 받아본 적이 없다. 군대에서도 남들은 포상 휴가니 뭐니 할 때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속으로 욕지거리만 중얼거렸다. 대학에서도 나는 다를 게 없는 인간이다. 이제 졸업도 그다지 먼 이야기가 아닌데, 난 아직 내 학과가 뭐하는 곳인지도 설명하기 힘들다. 친구라고 할 만한 친구도 Y밖에 없고, 학점도 간신히 바닥을 면하고 있다.

 한숨을 내쉬었다. Y가 한숨을 자주 내쉬는 이유를 알 거 같다. 나도 이런 내 자신을 보면 한숨이 나오는데, 그런 나를 선배라고 불러주는 Y는 오죽할까.

 

 오늘도 Y는 의미심장한 눈을 치켜뜬다. . 바코드가 찍힌다. 1800원에 두 개, 내가 언제나 먹는 편의점 샌드위치다. . 다시 찍힌다. 600. 샌드위치를 사면 할인해 주는 음료수다. Y는 계산이 끝난 그 둘을 검은 봉투에 넣어줬다. 나는 웬만해선 편의점에서 먹지 않는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통보하듯 그만뒀기 때문에 점장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마주칠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 돼서 편의점 의자는 좌불안석이다.

 “오늘은 샌드위치네요. 의미가 뭘까요, 대체.”

 “, 평소대로잖아.”

 “김치찌개는 어떻게 됐어요?”

 “, 이제 됐어.” 

 Y는 봉투를 내게 내밀며 물었다.

 “만족이에요, 포기에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쩐지 Y를 볼 면목이 없어, 다음에는 Y가 없는 시간대에 오자고 생각했다. 동시에, 내가 지금까지 늘 Y가 있는 시간에만 이 편의점에 왔다는 것도 알아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편의점을 나왔다.

 

 어떻게든 열심히 해보자. 김치찌개에 매달리지 말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수업은 젠장, 졸리다.’로 끝났다. 어제 만든 김치찌개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맛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냉정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만뒀다. 그래도 뭔가 슬픈 기분이 들었다. 그 후 슬픈 기분을 풀겠답시고 새벽까지 게임을 한 게 잘못이었다. 결과적으론 더 서러워졌을 뿐이다.

 비틀비틀 걷는다. 몸에 힘이 전혀 없다. 잠기운이 남은 건지, 아니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마음이 발을 거는 건지 알 수 없다. 앞이 또렷이 보이지만 좀처럼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또렷이 보이는 건 벽이다. 벽은 내 앞을 가로막고, 아주 조금씩 나에게 밀려주고 있다. 하지만 옆을 돌아보면, 너무나도 빨리, 열심히 나아가는 사람들이 한가득 있다. 무릎을 꿇고 싶어진다. 발이 미끄러진다. 몸이 살짝 뜨는 느낌과 함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고통이 온몸을 뒤덮고, 잠시 정신을 잃고 만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우습다. 기브스 한 다리를 내려다본다. 계단에서 미끄러지다니. 그렇게 정신 놓고 있다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무런 답도 나오지 않아 다시 털썩 눕는다. 집에서는 항상 이불을 깔고 자는 터라 침대가 적응되지 않는다. 이 미묘한 높이감이 불편하다. 하지만 더욱 불편한 건 내가 여기에 일주일이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리 외에도 여기저기 다친 곳이 많다. 다행히도 뇌진탕이라든가 장기를 다쳤다든가 하는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그래도 의사는 젊은 사람이 얼마나 정신을 놓고 다니면 그 높은 계단을 쭉 구르냐며 혀를 끌끌 차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 나갔다.

 병원식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매 식사 시간마다 목발을 짚고 근처 편의점까지 갔다. 편의점 문을 열 때 들리는 소리가 어서 오세요라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무심코 김치가 있는 곳으로 갔다가 그 자리에 1분쯤 가만히 서있기도 했다. 병실로 돌아와서는 다시 누워서 시체처럼 잠들고, 다시 깨어나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다시 잠들고……, 그것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문득, 할 짓이 하도 없어 창밖을 내다보다가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 적에도 이렇게 입원한 적이 있었다. 왜 다쳤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때도 짧은 입원이었지만 굉장히 답답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싫었던 건 병원식이었다. 얼큰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엄마는 다른 요리보다 김치찌개를 훨씬 잘했던 것 같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입술을 꽉 깨문다. 계속 생각나지만, 어떻게든 감추려고 했던 생각, 감정, 그 울컥하는 것들이 입 밖으로 구토처럼 튀어나오려 한다. 김치찌개가 갑자기 먹고 싶어 편의점에서 김치를 집기 바로 전 그 날, 드물게도 엄마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굉장히 멀쩡한 목소리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너무 심심해서 전화를 해봤다고 한다.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바로 내려갈게.” 하고 소리를 지르다시피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그러지 말라며,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별 거 아니니까 그다지 신경 쓰지도 말라며 쓸데없는 농담을 섞어 말했다. 그러고는 재밌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싸구려 아줌마 농담은 그렇게 서글픈 느낌이었던가.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배반하고 있다. 엄마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간신히 깨달았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동안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던 건, 다시 엄마에게로 돌아가 하소연하고픈 어리광이었다. 엄마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됐다고, 고해성사 하듯이 말하고, 위로와 격려를 한껏 받으며 다시 일어서고 싶었던 것이었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소리 죽여 울었다. 얼굴이 축축해지고 온몸에 힘이 빠지고 결국 잠이 들 때까지,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퇴원하자마자 들른 곳은 Y가 일하고 있는, 내가 일했던 그 편의점이었다. Y어서…….’까지만 말하고 말을 멈춘다.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게, 나는 입원해 있는 동안 Y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Y의 번호를 등록해 두긴 했지만 외우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내 휴대폰은 계단에서 미끄러졌을 때, 완전히 깨져서 수리를 맡겨야 했다.

 “선배……. 한동안 연락도 없고 오지도 않더니, 뭐예요. 다쳤으면 다쳤다고 연락이라도 해주지. 어쩌다 그랬어요? 다리 언제 나아요?”

 다쳤으면 다쳤다고……, 나는 Y와 그렇게 친밀한 관계였던가. 잠시 의문을 느꼈지만 표출하고 싶지는 않았다. Y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을 해주고 있었고, 그건 싫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는 Y에게 병원에 입원했던 일을 적당히 말한 후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집어 왔다.

 “다친 사람이 이런 것만 먹어도 돼요?”

 “뭐 죽을 병 걸렸나. 그냥 좀 부러진 건데.” 

 Y에게 잘 있으라고 인사를 했다. 손잡이에 문이 닿을 때, Y는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자취방, 그대로에요?”

 “. ?”

 “그냥요. 오늘 수업 다 들은 거죠?”

 Y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퇴원 기념으로 치킨이라도 사와 주려는 걸까.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걸어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항해 중이었다. 거대한 고춧가루가 내 배다. 나는 붉은 바다를 항해한다. 이곳은 냄비해(). 오늘의 테마는 김치찌개인 듯하다. 크기가 제각각인 김치들이 빨간 국물을 가르며 헤엄친다. 그 중에는 쪼글쪼글한 것도 있고 빳빳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보며 입맛을 다실 여유는 없다. 나는 배 중에서도 가장 하찮은 고춧가루에 타고 있을뿐더러, 저 김치들을 사냥할 젓가락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김치찌개는 잔잔히 흐른다. 고춧가루도, 그 위에 타고 있는 나도 함께 흐른다. 평화로운 항해다. 하지만 그것은 점점 커지는 일렁임에 의해 깨진다. 기포가 하나 올라오는 듯 싶더니, 이내 김치찌개가 통째로 부글부글 끓는다. 나는 내 유일한 재산인 고춧가루를 꼭 붙잡는다. 고춧가루는 빙글빙글 돈다. 요동친다. 냄비해의 끝에서 끝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또 다른 끝으로 날아간다. 몇 번이나 김치찌개의 속으로 잠수했다가 나온다. 나는 그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쉰다. 다음 재앙을 예상하는 사람처럼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있다.

 뜨겁다. 몸이 익는 것 같다. 손에서도 점점 힘이 빠진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투명한 눈물이 이 시뻘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보여질 일은 없다. 김치가 퍼덕거리며 나에게 부딪힌다. 나는 결국 고춧가루를 놓아버린다. 휩쓸려간다. 가라앉는다. 점점 숨이 막혀온다. 눈이 감기려 한다.

 그때 시야에 한가득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것을 단번에 알아봤다. 참치다. 그것도 통조림에 들어있었을 법한 짧은 원기둥 참치가 김치찌개를 가르며 헤엄치고 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제 방법이 없다고, 포기해버린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의 목소리. 엄마인가? 아니다. 젊다. 누가 이렇게 소리치는 걸까. 머릿속이 메아리로 가득하다. 선배. 선배! 선배!

 “선배!”

 “……!”

 눈을 뜨니 Y의 얼굴이 가까이에 보였다. 전등을 등지고 있어서 어둡지만 확실히 보인다. Y의 표정은 초조하고, 다급하고, 공포와 걱정으로 일그러져 있다.

 “정신 좀 차려 봐요, 선배. 땀 좀 봐! 무슨 꿈을 꾸기에 그리 끙끙 앓아요? 이거 봐, 많이 아픈 거잖아. 좀 더 입원하는 게 낫지 않아요? 병원에서 더 입원하라 그러는 거 돈 아깝다고 그냥 나온 거 아니에요?”

 “아니야. 그냥 가위 좀 눌린 거 같아.”

 나는 그제야 내가 집에서 누워 있다가 잠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막상 제대로 해보자고 생각은 했지만, 그동안 어리광을 부렸고 나 자신이 좀 더 나아져야 한다고 깨닫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누워서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 있을까. 또 실패하는 건 아닐까. 또 실패했을 땐 누가 나를 다시 깨워주지.

 “그나저나 웬 일이야? 내 집에 다 오고.”

 Y는 비닐 봉투 하나를 꺼내들어 보였다.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눈치지만 멀쩡하게 말하는 걸 보고 조금은 안심한 모양이다.

 “김치찌개 끓여주려구요.”

 “김치찌개?”

 “결국 제대로 못 끓여 먹었죠?”

 “.” 

 그래도 이제 왜 그랬는지 원인을 찾았다. 나는 그 원인을 말하려 했으나 Y가 선수를 쳤다. 그건 참치통조림이었다.

 “선배네 어머니께서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나 참치를 안 넣었을 거 같지가 않더라구요. 근데 선배가 따로 돼지고기를 샀을까, 하고 생각했더니 금방 아닐 거 같지 뭐예요.”

 Y는 바로 요리를 시작했다. 나는 잠자코 앉아서 기다렸다. 뭔가 도와줄까 물어봤지만 Y는 괜찮다며, 환자는 그냥 앉아 있으라고 했다.

 “그나저나, 무슨 꿈이었어요?”

 “……, 그리 구체적인 것까진 기억 안 나는데. 김치찌개를 항해하는 꿈.”

 “, 뭐예요, 그게.”

 “근데 김치찌개에 빠져 버렸어. 게다가 김치찌개가 바글바글 끓는데, 엄청 괴로웠어. 지금도 느낌이 생생해.”

 Y는 어느새 도마와 식칼을 찾아 파와 두부를 썰고 있었다. 내 쪽을 돌아보지 않고 나긋나긋 말하는 Y의 목소리는 어쩐지 포근했다.

 “있죠. 난 선배가 꼭 물에 빠진 고양이 같아요. 나는 나보다 약한 애들을 돌봐주는 게 좋아서 수의사가 되기로 했거든요. 꼭 선배가 동물 같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어서, 때로는 그 발버둥을 멈추려고 하는 거 같아서 늘 도와주고 싶어요. 위태위태하거든요.”

 Y는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김치찌개를 냄비 채로 가져와 앉은뱅이 밥상에 올려놨다. 받침대도 Y의 것이다. 나는 마음속에서 뭔가 물컹 하는 것을 느꼈다. Y는 잠시 동안 자랑 같은 걸 늘어놓았다. 편의점 김치 가지고 찌개가 되겠냐느니, 집에서 김치를 가져왔으니 이게 진짜라느니, 다음에는 돼지고기를 넣어서 끓여줄 테니까 기대하라느니……, 전부 고마운 말뿐이었다.

 “. 먹어봐요. 요리는 그다지 많이 하지 않지만 선배보단 훨씬 잘할 테니까.”

 김치찌개의 짜릿한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진다. 마치 김치찌개 안에 들어간 듯하다. 하지만 꿈속에서의 뜨거운 고통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포근함이 나를 감싼다. 수저를 든다. 아무 말 없이 한 숟갈 퍼서 입에 넣어본다. 젓가락으로 김치도 집어먹는다. 참치도 큰 덩어리로 골라 입에 하나 넣는다. Y가 당황하며 내 어깨를 다독인다. 또 걱정하는 얼굴이다. 그제야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한 숟갈 먹고 울고, 한 숟갈 먹고 울고를 반복했다. 엄마 품의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소리 내 울었다. 김치찌개는 맵고, 뜨겁고, 깊고, 얼얼하고, 너무나도 맛있었다. 몸 안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동안의 설움과 망설임이 작은 냄비의 김치찌개처럼 흘러넘친다. 나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 빠져나가고, 그 안을 또 다른 뜨거운 무언가가 채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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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라노벨을 써서 내 진면목을 보여줘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요즘 라노벨을 안 읽어서 그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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